Todos los capítulos de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apítulo 321 - Capítulo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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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화

주종현이 말을 재갈아 내달리며 앞으로 나섰다.“하 소공자? 하 장군은 어디 계십니까?”하연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저희 아버지는 성왕 전하께 붙들려 술을 드셨는지라 지금도 깨어나지 못하셨을 겁니다. 이 정도는 누워서 떠 먹는거랑 다른바 없는 일이니 저만 보낸 것이고요.”강세오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었다.“정현이 난리에 휩싸인 걸 뻔히 알면서 대장을 붙들고 술을 마시고 있다니!”하연은 이제 막 열여덟을 지난, 한창 혈기방장한 나이였다. 다른 건 하나도 관심 없다는 듯이 붉은 술이 펄럭이는 창을 번쩍 들어 주종현의 앞을 가로막았다.“당신이 주종현이겠지요?”주종현은 한 손으로만 고삐를 틀어쥔 채, 노골적으로 시비를 거는 그 얼굴을 싸늘하게 내려다보았다.“그렇습니다.”하연의 입가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그럼 잘 됐네요. 이 몸이 헛걸음한 것은 아니라서. 무공이 꽤나 좋다던데, 한 판 겨룰 담이 있습니까?”주종현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강세오가 중간에 끼어들어서는 손을 뻗어 하연의 붉은 술창을 덥석 잡아챘다.“하 소장군은 도대체 산적 토벌을 하러 온 겁니까, 싸움질을 하러 온 겁니까?”하연은 책만 파는 선비들하고 말 섞는 걸 제일 질색했기에 눈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이거 놓으시지! 이 몸이 싸우든 말든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강세오가 코웃음을 흘렸다.“나는 정현의 현령입니다. 당신이 실로 산적을 토벌하러 온 사람이라면 저하고 상관이 있습니다.”주종현은 실랑이를 벌이는 두 사람을 한 번 흘깃 보더니, 한 손으로 가볍게 고삐를 감아쥐고 말머리를 돌렸다. 그의 눈에 하연은 그저 애송이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그 애송이 하나도 이기지 못하는 몸이었다.“저기요, 가지 마시라고요!”하연은 멀어져 가는 주종현의 뒷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홱 돌리며 소리쳤다. 하지만 강세오가 큰 키로 몸을 틀어 서는 바람에 하연의 시야는 꽉 막혀버리고 말았다. 강세오가 눈꼬리를 살짝 치켜뜨더니 말했다.“하 소장군은 키는 크지 않는 모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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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고맙다, 시…”주종현이 낮게 중얼거리자 아람은 그의 손을 탁 뿌리쳤다.“전 지금 아람이에요. 주 대인하고는 한 점 관련도 없는 사람입니다.”주종현은 그녀의 새침한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아람 낭자. 소생이 감사를 드립니다.”아람은 소름 돋는다는 듯 그에게서 한 발짝 더 멀어졌다.“이건 좀 역겹네요. 앞으로는 이러지 마세요. 적응되지 않으니까.”밤이 되자, 현청 뒤쪽 후원으로 큼지막한 목욕 통 하나가 들여졌다. 약재를 고아 만든 약탕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그 통 안에 부어졌다. 뼈를 부수고 힘줄을 다시 잇는다는 그 약탕은 글자만 들어도 온몸이 다 아파질 것만 같은 처방이었다. 하지만 후원은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했다. 아설이 위심을 돌아보며 물었다.“세자께서는 소리 한 번 안 내시는데 당신은 왜 그렇게 괴로워하는 겁니까?”위심의 얼굴빛이 순간 굳더니 그녀를 밖으로 밀어내며 말했다.“듣지 말고, 보지도 말고, 묻지도 마십시오.”아설이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이번에는 아람이 바로 뒤를 이어 들어왔다.“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요?”“이봐 강 씨, 내가 정말 못 때릴 줄 아는 거야?”하연은 눈에 불을 켜고 앞을 가로막은 강세오를 노려보았다.“당신이 산을 태우겠다면 제 시체부터 밟고 넘어가시지요!”강세오는 이를 악물며 이 무모한 소년을 마주 보았다. 하연은 산에 불을 질러 산적들을 몰아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계지산은 외따로 솟은 산이 아니었다. 산 너머서는 또 산이 줄지어 있었고 산줄기는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불길이 한 번이라도 통제 불능이 된다면, 죽어나갈 백성들의 수가 산적보다 몇 배는 더 많을 것이다.하연이 냉소를 흘렸다.“역시 글밖에 모르는 선비는 쓸 데가 없다니까. 이 산적들이 몇 년 동안 여길 장악한 이유가 뭔지 압니까? 당신들 같이 측은지심을 떠는 선비들 덕분입니다!”“하 소장군께서는 하 장군을 따라 전장에 몸담은 지도 여러 해가 지났겠는데 지금까지 쓴 방법이라고는 죄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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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서남대영은 산악전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산적들이 숲으로만 숨어 들어가면, 그 누구도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뾰족한 방책도 내놓지 못했는데 한왕이 보낸 증원 삼천명이 모습을 드러냈고 성왕의 마차도 뒤따라 도착하였다. 허름한 현청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 차가운 공기가 팽팽히 곤두서 있었다.황제는 이미 산적 토벌을 명하는 조서를 내린 상태였고 지금 문제는 이 공로를 누구에게 돌리느냐였다. 한왕의 휘하 무장인 무 장군은 워낙 산속에서 병사들을 훈련시켜 온 터라 모두 산림 전투에는 익숙한 정예였다. 하지만 하연은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서남대영이야 말로 어명을 받고 산적을 토벌하러 온 대군이었다. 방금 정현을 위기에서 구해냈더니 그 공로를 가로챌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셈이었다. 감히 자신의 공적을 빼앗겠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연은 강세오의 옷깃을 확 잡아들고는 말했다.“당신이 현령이라며, 한번 말해 보세요!”그의 귓가에 이를 갈며 속삭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내 편을 들지 않으면 죽여버리겠으니 각오 하시고.”강세오는 하 소장군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로는 눈도 마주치기가 어려워졌다. 그녀의 살벌한 눈빛을 애써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하늘이 덮은 땅은 모두 황제의 땅이고, 그 땅 위의 백성은 모두 황제의 신하입니다. 산적 토벌은 곧 폐하께서 내리신 분부이니 누가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리느냐가 중요한…!”그가 말을 다 잇기도 전에 허리춤의 살이 누군가에 의해 사정없이 꼬집혔다.“강세오, 죽기 싫으면 똑바로 말해!”강세오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그녀를 흘겨보며 낮게 이를 갈았다.“하 아가씨, 남녀는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법을 모르십니까?”하연의 눈빛에서 불꽃이 튀었다.“지금은 비열한 작자가 내 공로를 가로채겠다는 것 밖에 모르겠는데!”소휘는 두 사람의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보며 입가에 엷은 웃음을 띄웠다.“보아하니 강 대인과 하 소장군은 꽤 친한 사이인 것 같군. 강 대인이 그에게 큰 일을 맡기고 싶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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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그렇다면 서남대영에서 서둘러 실질적인 계책을 내놓거라.”소휘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그럼, 본왕은 이만 물러가겠다.”현청을 나서기까지는 줄곧 웃는 얼굴을 하고 서 있었지만 문밖으로 나가자마자 그의 목소리는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저들이 그렇게까지 해 보고 싶다면 아정모더러 잘 놀아 줘라고 전하거라. 산적 회유의 공은 본왕이 이미 한왕에게 약속한 것이다. 그러니 누구도 가로채서는 안 된다.”소휘가 나가자 무 장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럼, 저도 물러가겠습니다.”의정당에는 하 부녀와 강세오만 남았다. 그제야 하연이 어색한 듯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당신이 도와줬다고 해서 제가 당신을 용서할 거라 생각하지 마세요.”강세오는 그날 산 아래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귓불까지 확 붉어졌다. 순간, 팔이며 다리며 심지어 눈동자까지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정현 백성을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운 서남대영 장병들의 마음을 식게 할 수는 없어서 그랬을 뿐입니다. 다른 방법은 제가 관여하지 않겠지만, 산에 불을 지르겠다면 저는 끝까지 반대할 것입니다. 그럼, 저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는 허둥지둥 발걸음을 옮겼다. 나가면서 손발이 뒤엉켜, 문턱에 채여 자빠질 뻔하기도 했다. 하연은 그런 꼴을 보고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하 장군이 입을 열었다.“이 난장판은 네가 떠맡은 거다. 어떻게 수습할 생각이냐?”하연은 여전히 투덜거렸다.“저 책벌레가 말리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그 산적들은 산불에 쫓겨 산 밑으로 다 굴러떨어졌을 텐데요!”하 장군은 젊은 시절 맹 노장의 부장으로, 산적 토벌에도 함께 나섰던 적이 있었다. 산을 태우는 방식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정현에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산줄기를 타고 끝도 없이 번져 나가는 불길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강 대인이 막아서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네가 큰일을 칠 뻔했다.”하 장군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산적들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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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그러나 크고 보니 고민거리가 되었다. 이제는 딸이 남을 두들겨 패고 다닐까 봐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애는 머릿속에 오로지 여장군이 되겠다는 생각밖에 들어차 있지 않았다. 큰 아들의 말로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하연이 한 번 큰 코를 다쳐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것이었다. 마침 그가 골라 둔 사윗감도 이곳에 와 있으니, 한 번 같이 지켜보자는 심정으로 동행한 것이었다.“주종현도 이 곳에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하연은 씩씩대며 아버지 옆에 털썩 붙어 앉았다.“딱 한 번 봤어요. 말을 걸어도 대꾸도 안 하더라니까요. 강세오, 그 책벌레보다도 더 기분 나쁘게 만들더라고요.”“널 이기는 남자에게 시집가겠다 하지 않았느냐? 이 아버지가 이미 그런 사람은 골라 놓았으니 올가을에 경성으로 돌아가면 얌전히 시집갈 준비나 하거라.”하 장군이 말하자 하연은 반사적으로 소리부터 질렀다.“싫어요!”하 장군이 눈을 부릅떴다.“그럼 대체 뭘 원하느냐? 하늘에 사는 신선이라도 데려다 달라는 것이냐?”왜인지 하연의 머릿속에는 조금 전 강세오가 자기를 뒤로 끌어당기던 장면이 불쑥 떠올랐다. 그녀는 얼굴을 굳히고는 말했다.“어쨌든, 주종현은 안 돼요. 보기만 해도 거슬립니다.”어릴 때부터 귀하게만 키운 딸이 이제는 골치가 아픈 존재가 되었다.“세가 도련님들 중에 괜찮다고 소문난 애들은 다 보여줬다. 그런데 이놈은 싫다, 저놈도 싫다고 얘기하며 다 거절하지 않았더냐? 그럼 싫지 않은 사람만 말해보거라.”하연의 눈앞에 왜인지 강세오의 얼굴이 번쩍 스쳤다. 왜 하필이면 저 책벌레가 떠오르는 걸까?“다 싫어! 전부 다 싫다고요!”그녀는 이를 악물고 발을 쿵 구르더니 홱 돌아서서 밖으로 내달렸다.현청의 앞뜰에서는 아직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고, 뒤쪽 후원에서는 주종현이 치료를 받고 있었다. 손 의원의 치료법은 꽤나 독했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탕 의원조차 감탄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탄식을 내뱉었다. 자칫하면 인명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기에 그는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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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밤이 깊어지자 산적들이 다시 기습해왔다. 서남대영은 곧바로 대응했지만 산적들은 산쥐처럼 흩어져 눈 깜짝할 새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끝없는 추격은 서남대영을 지치게 만들었다. 하연 역시 온 밤동안 수십 번이나 뛰쳐나갔다가 아무것도 잡지 못한 채 텅 빈 어둠 속에서 이를 부득부득 갈 수밖에 없었다. 막사로 돌아온 뒤, 그녀는 책상 위에 놓인 숨바꼭질이라고 적힌 쪽지를 구겨 던지며 씩씩거렸다.“하훈! 산적들이 도망 다닐 줄 알면서도 왜 나한테 한 수도 안 알려준 거냐고!”한편, 이른 아침. 강세오는 피곤에 찌든 서남대영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군기가 바짝 서있는걸로 유명한 서남대영이 이런 모습이라니?강세오가 막사 앞에 다다르자, 병사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전했다.“강 대인, 장군께서 말씀하시길, 모든 건 소공자의 명을 따르라 하셨습니다.”강세오는 산적 토벌과 같은 큰일을 어린 여자애한테 맡기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도대체 하 장군은 정현을 뭐라 생각한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이 아이의 소꿉놀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그는 불만을 안고서는 옆 막사로 들어갔다. 하연이 머리가 다 헝클어져서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강세오가 불쾌한 얼굴로 다가가서는 책상을 두드렸다. “하 아가씨, 혹 산적 토벌이 장난 같으시다면 돌아가시지요. 저희 정현의 백성들은 당신의 장난감이 아닙니다.”한 잠도 자지 못한 하연이 번개처럼 화를 내며 일어났다.“뭐라고요? 한 잠도 못 잤습니다, 한 잠도! 당신이 여기서 뭐라 말해댈 판이 아니라고요!”하연은 책상을 쾅 하고 손바닥으로 내리치더니 순식간에 강세오의 옷깃을 잡아당겨서는 그의 팔목을 꺾어 제압하고 목을 졸라맸다. 강세오는 눈 깜짝할 사이에 책상에 눌렸고, 하연은 그의 팔목을 잡고는 몸을 숙여 말했다.“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봐, 내 눈 아래가 지금 왜 이렇게 검은 줄 알아? 온 밤 동안 그 도둑놈들을 잡느라고 그런 거다!”강세오의 눈앞으로 불쑥 들이밀어진 얼굴은 좀 검기는 했지만 오관이 수려한 데다가 코 역시 오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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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세상 말세다, 진짜 세상 말세야.”강세오는 입술을 떨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휘청거리며 막사를 빠져나가다 딸을 찾으러 온 하 장군과 부딪칠 뻔하기도 했다.“강 대인, 무슨 일입니까? 얼굴이 왜 이리... 붉은 것입니까?”하 장군은 마치 귀신에게 쫓기는 듯한 강세오가 얼굴만 벌겋게 달아오른 채 어리둥절하게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엊그제까지만 해도 무척 침착하고 자제심 있는 젊은이 같더구먼 오늘은 도대체 무슨 일이지?”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딸 역시 바닥에 털썩 앉아서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네 얼굴은 또 왜 그렇게 빨개져 있는 것이냐?”하연은 정신을 차린 듯 눈을 깜빡이다 화끈거리는 자기 뺨을 손끝으로 만지며 괜히 시선을 피하고는 중얼거렸다.“그, 그냥 말다툼 좀 했습니다! 책벌레가 홀딱 삐쳐서 도망간 거죠 뭐.”하 장군은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뭘 알아내기는 했느냐?”그 말에 하 연은 다시 분통이 터졌다. 부서진 책상 조각 사이에서 오라버니가 준 비책을 꺼내 흔들며 말했다.“아버지! 오라버니는 산적들이 숨바꼭질할 걸 예상했으면서 한 수라도 알려주지는 못할망정이지, 이게 뭐예요! 이게 어디를 봐서 비책입니까!”하 장군은 두 손을 등 뒤에 깍지 낀 채 엄중히 말했다.“토벌은 장난이 아니다. 정오까지 뚜렷한 방책을 내놓지 못하면 돌아가서는 네 어머니와 경성으로 올라가 혼례 준비나 하거라.”하연은 이를 꽉 악물고 종이를 움켜쥐었다.“안 가요! 정오 전에 반드시 써먹을 수 있는 수를 만들 거예요!”아버지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작게 코웃음을 쳤다.“뭐, 똑똑한 사람 하나 구하면 되는 거지. 책벌레가 있잖아.”현청은 너무 낡고 초라했다. 하연은 강세오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말에서 내리기도 전에 잔뜩 화가 난 듯한 어린 여인이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그 뒤에는 주종현이 따라 나왔고, 주종현은 자신과 똑 닮은 여자아이와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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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급히 옷을 여미던 강세오의 손이 덜컥 멈췄다.“세상 말세다! 풍기 문란이 따로 없구나!”하연은 눈살을 확 찌푸렸다.“벗고 있던 건 너잖아! 왜 내가 풍기 문란이라는 거야?”“전 당신과 따지지 않을 겁니다.”그는 피하듯 옆으로 지나가려 했지만 하연이 그의 뒷깃을 잡고 툭 하고 다시 끌어당겼다.그녀는 음산할 만큼 천천히 고개를 가까이 가져갔다.“도덕이 어쩌고 예의가 어쩌고 하며 사는 게 너희 선비들이지? 나더러 손해 보게 해놓고 책임도 안 진다고?”강세오의 귀가 다시 붉게 달아올랐다.“그렇게 많은 남자들을 봐 놓고 그걸 제가 다 책임지라는 것입니까?”하연의 귀도 살짝 붉어지더니 말했다.“나와 입을 맞춘 남자는 너 하나거든? 그러니 네가 책임져.”강세오의 얼굴이 다시 한번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막사에서의 그 감촉이 다시금 뇌리를 파고들었다. 그녀의 시선이 그의 입가에 걸리더니 몸을 끌어당겨 발끝으로 살짝 올라 또 한 번 입술을 훔쳤다.“두 번째야. 이젠 진짜 책임져야 해! 나랑 혼례를 치를 일은 잠깐 미뤄두고 지금은 네 머리가 필요해서 그래. 나한테 아주 중요한 문제부터 해결해 줘!”강세오는 어릴 적부터 누이가 있었는지라 어린 처자들이 어렵다 느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이 작자는 완전히 계산에 어긋나는 천적이 다름없었다. 어느 집 규수가 맨몸의 남자를 보는 것도 모자라 잡아당겨서 입을 툭 붙이고 간단 말인가? 강세오의 정신이 세 번째로 증발하려던 순간, 하연이 그의 귀를 비틀어 억지로 시선을 자신에게 고정시켰다.“강세오. 정오 전에 산적 토벌의 방책을 내놓지 못하면 우리 아버지한테 네가 나한테 입 맞춘 사실을 그대로 말할 거야!”“분명 아가씨께서...! 아니, 왜 제가 범인이 되어있는 겁니까?”강세오는 하연의 치켜올라간 눈썹을 보다가 결국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젯밤 산적들이 사방에서 교란했고 아가씨께서는 밤새 쫓아다녔지만 아무것도 못 잡았다는 말이지요?”하연은 온 밤 동안 산적들에게 놀림을 당하다 날이 밝아온 뒤에야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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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주종현은 아직 손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지라 몇 합 버티지도 못하고 밀려났다. 그래도 강세오가 뛰어나와 말린 덕분에 사태를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아버지가 그토록 치켜세우던 주 대인이 고작 이 정도라니? 그녀는 아버지의 사람 보는 눈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자신이 직접 고른 강세오가 얼굴도 잘생겼고 머리도 똑똑했다.한편 아람 역시 자신에게 나이가 훨씬 어린 언니가 생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신을 대신해 주종현을 한바탕 두들겨 팬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주종현의 인생 길목마다 큰 걸림돌이 될 예정이었다.“어머니, 우린 어딜 가는 겁니까?”마차 위에서 연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람은 연아의 볼을 쓰다듬으며 답했다.“우린 곡창에 간단다.”산적의 위협이 가시지 않았지만 식솔들은 줄지 않았으니 곡식은 항상 문제였다. 지난해 조 가에서 압수한 곡식들 일부는 현청 창고에 넣었고 나머지는 나누어서 군량으로 전부 충당했다. 지금 정현에는 수천 명의 군사가 모여 있었다. 게다가 하나같이 밥은 어찌 잘 먹는지, 현청의 곡식 창고를 열었다고는 하나 며칠 버티지 못하고 바닥을 드러낼 판이었다.정현은 워낙 부유한 편이 아니다 보니 오라버니와 상의한 후 일단은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곡식을 매입해 난관을 버티기로 했다. 상인에게 있어서 밑지지만 않는다면 버는 것이었으니까. 아람이 곡식 장사를 하니 다행이지 자칫하면 강세오가 읍내 상인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빌어야 할 판이었다.정현에서 곡식 창고를 세운 것이 어쩌면 오라버니를 도우라는 하늘의 뜻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람 역시 미소 지었다. 복동이는 이제 눈을 뜰 수 있었기에 모든 것이 신기할 때였다. 밖에만 나가면 세상이 그렇게 즐거운지 까르르 웃기 바빴다.연아가 복동이의 포동포동한 손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어머니, 복동이는 언제 걸을 수 있어요? 제가 복동이를 데리고 원숭이 수레를 태워줄래요!”아람은 웃으며 답했다.“네가 한 살 더 먹고 진짜 누이가 될 즈음엔 복동이도 걸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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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그는 낮게 코웃음을 치더니 순식간에 몸을 숙이며 다가왔다. 눈동자 깊숙한 곳은 얼음처럼 차가웠다.“병사가 없는 장군을 본 적이 있느냐? 그리고 솥 없는 요리사 본 적이 있느냐? 폐하께서 나를 번왕으로 봉하셨으니 한 주의 책임이 내 어깨에 달렸다. 내가 무엇으로 그 책임을 지라는 것이냐?”아람은 뒷걸음칠 수밖에 없었다. 손끝은 소매를 꽉 움켜쥐고는 그의 눈을 피하며 나직하게 말했다.“전하께서는 만호의 식읍을 누리시고 천민의 공양을 받으시는 몸이온데 이때에 와서 어찌하여 국사의 걸림을 도모하시옵니까?”소휘는 그녀의 턱을 거칠게 집어 올려 피할 수 없도록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아람. 너도 네게 가장 유리한 길을 찾지 않느냐? 본왕이라고 왜 그러지 못하겠느냐? 너도 살기 위해서 경성을 떠났지 않았더냐? 본왕도 살아남으려는 것일 뿐이다.”그의 엄지가 그녀의 엷게 물든 입술 선을 느리게 쓸었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이 기울어지더니 딱 손 두어 뼘 앞에서 멈추고는 말했다.“아람아. 주종현의 그 달콤한 말장난에 속아서는 안 된다. 네가 겪은 상처들이 이렇게 쉽게 흩어져서는 안되지 않겠느냐? 그는 그고 너는 너다. 두 번 다시 강 마님이 될 생각인 것이냐? 상인이라면 상인의 일만 하거라. 다른 일에 관여할 생각은 하지 말고.”아람은 이를 꼭 깨물었다.“그 산적들은 진정 전하의 사람이라는 말이십니까? 그들을 군대로 모집할 것도 사실이셨군요. 맞습니까? 정현이 학살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으십니까?”소휘는 손을 놓으며 오히려 태평하게 웃었다.“본왕은 성사되지 않을 일은 하지 않는다. 강 대인은 너의 오라버니인데다가 훗날 본왕의 장인이 될 사람인데 보호해도 모자랄 판에 학살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않느냐? 정현의 역사를 한 번 훑어보거라. 산적들이 들이닥쳐서 죽은 자가 고작 이 정도였던 적이 있었느냐?”아람은 떨리는 손끝을 세게 움켜쥐었다.“저희 남매가 전하께 감사라도 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소휘는 소매 속에서 비취가 박힌 금팔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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