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601 - Chapter 610

631 Chapters

제601화

가까이 지내는 부인들과 아가씨들이 한데 모여 앉아 연극을 보며 속삭였다.그 사이에는 묘하게 가까워진 친밀함이 감돌았다.장여진은 맹시은에게 바짝 붙어 앉았다. 마치 더 자세히 캐묻다 보면 자신도 정현으로 따라갈 수 있기라도 할 것처럼.송하윤은 주씨 큰 마님을 모시고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고 맹시은은 그 대각선 뒤편에 자리했다.주종현은 큰 마님의 다른 쪽에 앉아 있어 시은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이따금씩 뒤를 돌아보았다.아무리 눈치 없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다는 걸.송하윤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하늘의 때와 땅의 이치, 사람의 형세까지, 모든 것이 자신을 돕는 듯했다.연극이 절반쯤 흘렀을 무렵, 송하윤은 큰 마님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떠나기 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맹시은을 한 번 훑어보았다.시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 미친 여자가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걸까?그동안 수없이 모함당하고 번번이 수세에 몰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마음속의 줄이 팽팽히 조여졌다.송하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친 사람은 더욱 경계해야 했다.맹시은은 손짓으로 춘행을 부른 후 따라가서 살펴보라 지시했다.춘행은 차 한잔의 시간이 흐른 뒤 돌아왔다. 그녀의 얼굴빛은 좋지 않았다.그녀는 조심스레 아가씨의 귓가에 붙어 들은 이야기를 빠르게 전했다.순간, 맹시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송하윤 그 미친 여자가 감히 황후 마마 친정의 수연 자리에서 악행을 저지르려 하다니. 잔치 음식에 독을 풀도록 하인을 매수했다는 것이었다.잠시 후, 송하윤이 다시 돌아왔다.이번에는 노골적으로 맹시은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그녀의 입가에는 웃음이 한층더 짙어져 있었다.맹시은은 그녀가 우아하게 자리에 앉는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장여진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한창 재미있는 대목이었기에 장여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언니?”시은이 낮게 말했다.“오늘 잔치는 바깥 주루에 맡겼지?”“네.”장여진은 그녀가 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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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2화

장씨 부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독을 탔다는데 아직 사람도 못 잡았고, 어느 음식에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이걸 어찌 상에 올립니까!”“독이라고?!”만녕후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었다.“누가 그런 간 큰 짓을 했단 말이냐!”주종현 역시 장부 곳곳을 뒤졌지만 송하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허공으로 사라진 듯했다.“찾지 못했습니다.”만녕후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짚으며 외쳤다.“주 대인, 우리 두 집안이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리도 나를 궁지로 몰아넣는 것입니까!”연회는 끝내 시작하지도 못했다.그때, 장씨 큰 마님이 직접 뒷마당으로 걸어왔다. 부엌 앞에 모여 선 이들의 굳은 얼굴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일이냐?”앞에서는 손님들이 방치된 채였고 후작 부부는 부엌에 서 있었다. 아들이 철이 없긴 해도 이런 큰 구설을 일으킨 적은 없었다.늘 온화하던 장씨 큰 마님의 얼굴에도 분노가 어렸다.“손님을 버려두다니, 이게 무슨 체통이냐!”연회가 늦어지자 후작, 후작 부인, 큰 마님까지 자리를 떴고 무슨 일인가 궁금해진 손님들이 하나둘 뒤따라왔다.그때,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 사이에서 춘행이 마침내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아가씨, 저 사람입니다!”춘행은 틀리지 않았다. 그 남자의 입꼬리에는 점이 하나 있었다.다만 옷을 갈아입고 송하윤의 뒤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송하윤은 흘끗 춘행을 바라보더니 뒤에 선 남자를 돌아보았다.“이 아가씨와 아는 사이입니까?”남자는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춘행이 흥분해 외쳤다.“아가씨, 저 두 사람이 음식에 독을 타겠다고 말했습니다! 아가씨만 해칠 수 있다면 백 명을 잘못 죽여도 상관없다고 했습니다!”송하윤의 눈에 놀라움이 번졌다.“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춘행은 물러서지 않았다.“여기서 들었습니다! 연회 음식에 독을 타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남문에 돈과 마차를 준비해 두었다고도 하셨어요!”송하윤은 눈물을 머금은 듯 시은을 바라보았다.“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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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3화

만녕후는 본디 딸 덕에 겨우 후작 작위를 얻은 인물이었다. 권세도, 뿌리도 없는 집안이었기에 늘 전전긍긍하며 살아왔다. 혹여라도 딸의 앞길에 누가 될까 노심초사했다.이번 수연 역시 장 가의 체면을 조금이라도 세워보려는 자리였다. 황후 마마의 얼굴에 빛을 더하겠다는 욕심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세월이 흐른 후 사람들의 머릿속에 미세하게나마 기억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그런데 주종현이 연회를 송두리째 뒤엎어버렸다.이미 다 준비된 음식이 그의 한마디에 상에 오르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제 와 책임지겠다는 말로 덮고 넘어가겠다고?만녕후의 얼굴빛이 푸르다 못해 창백해졌다.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을 향해 꽂히는 듯했다.주종현은 폐하 곁의 중신이다. 그는 거침없이 말할 수 있다.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아닌 이 만녕후의 집안을 비웃고 있었다.“주 대인께서 오늘 우리 집 수연에 오셨기에 정성껏 술과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집 웃음거리를 보시고 싶었다면, 지금 충분히 보셨겠지요. 대인께서는 한마디 말로 우리 집 수연을 아수라장으로 만드셨습니다!”그 순간, 송하윤은 고개를 숙이며 눈동자 깊은 곳에 번뜩이는 웃음을 숨겼다.주씨 큰 마님은 거의 기절할 듯 분노에 떨고 있었다.강 씨가 맹 가를 등에 업었다고 하여 현이를 몰아붙였던 것 아닌가.이제 일이 꼬이자 종현이 그 오명을 대신 쓰겠다고 나섰다. 영국공부의 명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었다.주씨 큰 마님은 점점 늘어나는 구경꾼들을 둘러보았다.경성의 이름난 가문들이 모두 이 자리에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손자를 가리켰다.“너는 세 살 아이가 아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그 결과가 무엇인지 모른단 말이냐!”주종현은 할머니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할머니께서는 송 아가씨를 믿으시지만 저는 믿지 않습니다.”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저는 차라리 오명을 쓰겠습니다.”송하윤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곧장 눈가를 붉히며 고개를 들었다.“주 세자, 제 오라버니의 죄는 마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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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4화

맹시은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주위를 한 번 훑어본 뒤 시선은 마지막으로 송하윤에게 닿았다.“저는 그 말이 참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송 아가씨께 돌려드리려 합니다.”그녀의 목소리는 또렷했다.“마마께서 그러셨습니다. 곤붕이 날개를 펴면 구만 리를 난다 하였거늘, 어찌 처마 밑 참새의 지저귐을 돌아보겠는가.”지금의 그녀는 진국공부의 아가씨였다. 송하윤은 죄인의 친척으로 남의 집에 얹혀 사는 몸.그런데 함부로 자신을 모함한다고?그녀를 너무 높이 본 셈이었다.맹시은의 입가에 얇은 조소가 걸렸다. 이내 그녀는 장씨 큰 마님에게 공손히 예를 올렸다.“큰 마님, 오늘은 제가 확인을 철저히 하지 못해 여진 동생까지 놀라게 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저는 제 과거를 숨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과거 때문에 이렇게 경계심이 생겼으니까요.”쓴웃음이 스쳤다.“아무리 경계해도 장공주의 춘일연에서도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그 말에 여기저기서 작은 숨이 흘러나왔다.그 장공주의 춘일연에서도 누군가가 섞여 들어가 맹시은을 해치려 했는데 실권조차 없는 만녕후부라면 더 말할 것도 없었다.연회 음식도 외부 주루에서 들여온 인력이라 허점이 많았고 맹시은이 예민해질 만도 했다.장씨 큰 마님의 얼굴빛이 누그러졌다.“너를 탓할 일은 아니다. 경계하는 건 옳다. 이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진짜 사고라도 났다면 그게 더 큰 죄지.”만녕후 역시 춘일연의 일을 떠올렸다.소양대인은 지금도 절뚝거린다 들었다. 양 가의 어린 손자는 어렵게 국자감에 다시 나갔다가 장난꾸러기에게 놀라 바지를 적셨다지 않은가? 그 뒤로는 아예 나가지 않는다 했다.장씨 부인은 남편의 굳은 얼굴을 보았다. 조금 전 주종현을 면전에서 꾸짖었으니 이제 와 물러서기엔 체면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그녀가 한 발 나섰다.“노여워 마십시오. 지난달 황후 마마께서도 조모님의 수연 준비를 물으셨습니다. 집은 작지만, 저희도 힘껏 준비해 모두가 만족하고 돌아가시길 바랐지요. 헌데 이런 급한 상황에 일이 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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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5화

맹시은은 차갑게 얼굴을 돌렸다.“주 세자, 마차를 잘못 타셨습니다.”주종현은 이제 체면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기에 그저 뻔뻔하게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이 나라는 효를 앞세운다. 주씨 큰 마님이 송하윤을 감싸는 한, 지금 누구도 그녀를 어찌할 수 없었다.“연아가 보고 싶어서 그런다. 같이 가서 연아를 보려는 거다.”맹시은이 번뜩이는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감히 연아를 끌어들일 생각이라면 당신은 평생 그 아이를 못 보게 될 줄 아세요.”주종현은 곧장 두 손을 들었다.“연아는 나에게도 목숨 같은 아이다. 어찌 끌어들이겠느냐? 누구든, 내 부모라 해도, 그 아이를 한 치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진국공부의 마차는 이미 한참 앞서 나아가고 있었지만 영국공부의 마차는 아직도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주씨 큰 마님이 물었다.“현이는 아직 오지 않았느냐?”마부가 마른침을 삼켰다.“큰 마님… 세자께서는 진국공부의 마차를 타고 가셨습니다.”그는 왜 출발하라는 말씀이 없나 의아했었다. 알고보니 줄곧 세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주씨 큰 마님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숨이 가슴에 걸려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그러자 송하윤이 얼른 다가가 그녀의 등을 쓸었다.“고조모, 노여워 마세요. 화가 몸을 해칩니다.”한참이 지나서야 주씨 큰 마님은 겨우 숨을 고르며 짧게 내뱉었다.“가자.”만녕후부의 소동은 경성에 크게 퍼지진 않겠지만 영국공부의 조 씨는 이미 그 소식을 들은 상태였다. 오늘 연회에는 본래 그녀가 가기로 되어 있었다. 어젯밤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주씨 큰 마님이 그녀 대신 갔을 뿐.하필 그 한 번에 일이 터진 것이다.처음부터 조 씨는 송하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큰 마님이 감쌌고 주종현도 혼인을 원했다.그러다 송 가가 몰락했을 때 이 인연도 끝났다고 여겼다.그런데 큰 마님은 여전히 그녀를 감쌌다. 감싸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만녕후부에서 이런 소동까지 일으켰다.조 씨가 물었다.“종현은 돌아왔느냐?”향 유모가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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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6화

요즘 경성에는 제법 흥미로운 소문 하나가 돌았다.영국공부에 또 경사가 났다는 것이다.영국공의 두 통방이 잇달아 회임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자체로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니건만 어디서 퍼졌는지 한 명은 쌍태, 한 명은 사내아이를 배었다는 말까지 따라붙었다.영국공은 이미 오십을 훌쩍 넘겼다. 그 나이에 이런 겹경사라니.집안에 드나드는 이들마다 겉으로는 축하를 건네면서도 속으로는 모두 같은 질문을 던졌다.‘득남 비결이 무엇이지.’특히 조 씨는 가는 곳마다 붙잡혔다.“어찌 몸을 보하셨기에 그 나이에도 저리 정정하신가요?”말은 완곡했지만 뜻은 노골적이었다.결국 조 씨는 대문을 닫고 손님을 받지 않았다. 그럴 기력도, 송하윤을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이 소식이 진국공부에 전해졌을 때 맹시은은 그저 웃어넘겼다.하지만 아설은 오히려 혀를 찼다.“국공께서 혼자 힘으로 집안에 세 식구를 더하셨으니 아이를 바라는 이들이 송자묘보다 더 붐비겠어요.”맹시은이 힐끗 그녀를 보았다.“남 말만 하지 말고 너는 어쩔 건데. 나를 따라다니기 시작한 게 열일곱이었지? 올해 스물이다. 모르는 사람은 내가 네 앞길 막는 줄 알겠다.”아설이 발끈했다.“언니는 저보다 네 살이나 많잖아요!”“난 아이가 있지.”아설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말했다.“사실… 언니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스스로 벌고, 스스로 아이를 키우고…”“거기까지.”맹시은이 재빨리 말을 끊었다.“위심이 널 그렇게나 기다리고 있는데 괜히 마지막에 삐끗하지 마. 나한테서 배웠단 소리 나오기만 해. 난 위심 못 이겨.”아설이 씩 웃었다.“세자께서 대신 이겨주겠죠. 언니, 걱정 마세요.”맹시은이 눈을 흘겼다.“딴소리 말고. 전에 성왕의 빚 갚고 나면 생각해 보겠다더니, 빚도 끝났는데 왜 아직 말이 없는 거야? 그가 마음에 안 들어?”아설은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아니요. 좋아요. 그와 있으면 저도 기쁘고요.”그녀의 눈에 잠깐 혼란이 스쳤다.“헌데 꼭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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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7화

위심은 아설의 눈을 오래 바라보았다.삼 년 전, 사람에게 속아 울기만 하던 어린 계집아이가 이제는 스스로 장부를 넘기고 사람을 상대하며 당당히 한몫을 해내는 여인이 되었다.아설은 본디 맑은 사람이었다. 맹시은이 곁에서 오래도록 지켜 준 덕에 그 순수함은 아직도 빛을 잃지 않았다.“아설.”위심이 낮게 말했다.“저는 헛되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말했지요. 맹시은 아가씨도, 단낭도, 예전에 복동이를 돌보던 춘낭도… 다들 각자의 고통이 있었다고. 혼인이 꼭 좋은 일이라고는 저도 이제는 쉽게 말하지 못 하겠습니다.”그는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가 덧붙였다.“아직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다면 전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 덕에 저도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세자와 단비영이 왜 부인을 불안하게 만들었는지, 어째서 떠나고 싶게 했는지.”아설의 눈매가 환하게 휘어졌다.“그래요. 우리 둘 다, 제대로 생각해 봐요.”그녀는 조금 망설였으나 숨기지 않고 말했다.“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해요. 당신을 보면 기쁘고 같이 앉아만 있어도 기쁘고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기뻐요.”위심은 그 얼굴을 보다가 귀끝이 붉어졌다. 입가에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그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가락을 잡았다. 아설은 고개를 살짝 들어 그의 또렷한 턱선을 올려다보았다.여전히 묵직하고 든든한 남자. 그런데 오늘은 그 안에 깊은 정이 한 겹 더 얹힌 듯했다. 조금만 방심하면 그에게 끌려들어 갈 것만 같았다.두 사람의 이마가 서서히 가까워졌다.“크흠, 크흠!”갑자기 울린 헛기침 두 번에 둘은 번개처럼 떨어졌다.주종현의 얼굴이 심히 못마땅했다. 아직 미인도 품지 못했는데, 자기가 이루지 못한 일을 누가 먼저 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아, 저는… 가게에 일이 있어서요. 먼저 가볼게요!”아설은 얼굴이 새빨개진 채 달아났고,위심은 주종현을 힐끗 보더니 돌아섰다.“전 술이나 마시러 갈 겁니다. 세자께서는 볼일 있으시면 소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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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8화

“난… 정말 보고 싶었어. 정말, 정말 보고 싶었다고.”맹시은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여기서 술주정 부리지 말고 당장 나가요!”지금은 춘도도 춘행도 곁에 없었기에 그녀가 직접 다가가 그를 일으키려 했다.주종현은 그녀의 손을 붙잡은 채, 세상이 무너진 듯한 얼굴로 말했다.“시은… 내가 뭘 하면 되겠어? 내 심장을 꺼내 주면 만족하겠어?”지붕 위에서 보던 아설이 시선을 돌리며 중얼거렸다.“역겨워.”위심은 또 하나를 마음에 새겼다. 관심은 줄 수 있어도 역겨움은 주지 말 것.방 안에서는 시은이 술 취한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지붕 위에서 구경하던 아설은 한때 주인이었던 주세자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뒤집혔다.이렇게 좋은 언니를 어찌 감히 감당하겠다고!반면 위심은 남자가 절대 저질러선 안 될 실수들을 하나하나 차곡차곡 정리하며 알찬 수확을 거두고 있었다.맹시은은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주종현을 문밖으로 끌어냈다. 결국 마지막엔 위심이 양심을 되찾은 듯 나타나 그를 들쳐 업고 돌아갔다.다음 날.주종현은 숙취에 시달리며 눈을 떴다. 머리는 깨질 듯 아팠고 어젯밤 일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머리를 긁적이다가 뒤통수에 퉁퉁 부은 혹을 만졌다.“윽… 내가 언제 다쳤지?”기억이 날 리가 없다.맹시은이 그를 문턱 밖으로 끌어내던 순간, 손에 힘이 풀리면서 뒤통수가 문지방에 그대로 부딪혔던 것이다.그 장면을 아설과 위심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주종현은 깨달았다.자기가 진국공부 대문조차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위심.”그날 술을 마신 건 둘뿐이었다.“내가 술 취해서, 그녀를 화나게 할 만한 짓을 했나?”위심은 티 나지 않게 몸을 돌린 뒤 등을 보인 채 대답했다.“글쎄요. 딱히 기억나는 건 없습니다.”“이상하네… 전엔 날 무시해도 출입까지 막진 않았는데.”뒤통수를 다시 만지자 혹이 욱신거리며 그를 찔렀다.위심은 코끝을 한번 문지르고 헛기침을 했다.“세자. 첩자가 보고를 올렸습니다. 우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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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9화

지난번 술에 취한 뒤로 주종현은 꼬박 닷새나 맹시은에게 냉대당했다.그는 손가락을 세워 가며 몇 번이고 맹세했다. 다시는 그런 꼴로 취하지 않겠다고. 그제야 깨달았다. 술이 겁쟁이에게 용기를 준다는 말은 전부 위심이 파놓은 함정이었다는걸.그 사이 위심은 마치 막혔던 혈이 뚫리기라도 한 듯 달라져 있었다. 아설을 챙기는 건 물론이고 준비해 오는 것마다 기가 막히게 마음에 닿았다.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모습을 보며 주종현은 속이 시큼해져 거의 거품이 날 지경이었다.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여러 해를 함께한 형제인데 한 번쯤은 되갚아야 하지 않겠는가.“연아야, 동산 장자에 오디가 다 익었다더라. 아버지가 데리고 가 줄까?”“좋아요!”한여름의 동산 장자는 가장 서늘한 곳이었다. 특히 요즘처럼 열기가 극에 달한 때에는 더없이 좋은 피서지였다.연아와 선아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지난번에 사귄 또래 아이들을 찾으러 달려갔다. 대문 앞에 서기만 해도 통풍처럼 스치는 바람이 몸을 감싸안았다.아설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여긴 얼음도 필요 없겠네.”영국공부의 장자는 여럿이었지만 여름마다 가장 자주 찾는 곳은 단연 동산이었다.그러다 문득 멈칫했다.“혹시… 영국공부 쪽 사람들이 오면 어쩌죠?”맹시은이 담담히 말했다.“요즘 주 가 사람들은 바빠. 아마 장자까지 올 여유는 없을 거야.”그녀는 고개를 돌렸다가 아설의 짓궂은 눈빛과 마주쳤다.“그런 표정 짓지 마. 나도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야. 마주칠 일 없다고 그 사람이 먼저 말했을 뿐이야.”주 가에 무슨 일이 있는지 맹시은은 굳이 알려 하지 않았다.다만 주종현이 이렇게 한가로이 연아를 데리고 장자에 올 정도라면 목숨이 오가는 일은 아닐 터였다.장두는 이미 일부 오디를 따 놓았다.자줏빛이 선명한 오디는 알마다 통통하게 익어 있었다. 한 알을 입에 넣는 순간, 침이 고이며 달콤함이 혀끝을 적셨다.경성에 오래 머무는 동안 어쩌면 가장 그리웠던 맛이 바로 이것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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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0화

주종현은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헌데 오늘 이 방을 가득 채운 반딧불빛은 오직 너만을 위한 거야.”그의 손에 들린 것은 작은 도자 인형 한 쌍이었다.“가마 굽는 장인한테 직접 배웠어.”어둠 속에서 그의 귓불이 슬며시 붉어졌다. 수없이 많은 흙 인형을 망가뜨린 끝에야 겨우 눈에 볼 만한 한 쌍을 빚어낼 수 있었다.은은한 형광 아래, 맹시은은 그 도자기 인형을 바라보았다.정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 그의 손으로 만든 것이었다.여자 인형의 머리에는 그녀가 예전에 즐겨 꽂던 은비녀가 달려 있었다.한눈에 봐도 그녀였다.그 옆의 남자 인형은 연한 푸른 옷을 입고 두 손을 등 뒤에 감춘 채 작은 도자 인형 한 쌍을 들고 있었다.그는 그녀에게 인형을 건네는 순간을 그대로 빚어 놓은 것이다.맹시은은 조심스레 인형을 받아 들었다.입술이 달싹였지만 쉽사리 말이 나오지 않았다.예전의 주종현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보석상과 자수 공방을 불러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 했을 뿐.전생이든 지금이든 그는 단 한 번도 직접 마음을 써 본 적이 없었다.이제는 보석도, 비단도 그녀 스스로 충분히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사소한 일에 마음이 흔들릴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떠올랐다. 그가 서툰 손으로 장인에게 묻고 또 묻는 모습이.돈을 쓰는 일은 쉬운 사람이다. 어려운 건, 직접 손을 더럽히며 마음을 담는 일이었다.“마음에 안 들어?”그녀가 한참 대답이 없자 주종현이 조심스레 물었다.맹시은이 고개를 들었다. 반딧불빛이 그의 눈동자에 내려앉아 있었다.그녀는 그 안에서 낯선 조심스러움을 보았다. 차갑게 식은 도자 인형의 감촉이 손바닥에 닿아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그의 첩이 아니다. 그러니 돌아갈 과거도 없다.주종현의 입꼬리가 굳어졌다.역시...그때, 아주 작은 목소리가 떨어졌다.“좋아요.”주종현이 번쩍 눈을 들었다. 반딧불이 두 사람을 에워싸고 부드러운 빛이 서로의 눈에 스며들었다. 오랜 세월 알고 지냈지만 이렇게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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