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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아니.”송우주는 깜짝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두 눈이 휘둥그레진 채 유하늘을 바라보았고 잘못 들은 줄 알았다.“엄마,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유하늘은 허리를 숙여 한 글자씩 또박또박 말했다.“그러니까, 그림책 같이 보기 싫다고. 앞으로도 너랑 뭐 안 해. 농담 아니야.”송우주는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 나이대의 아이가 느끼기에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밀려왔다.이내 당황한 듯 옷자락만 베베 꼬았다.“엄마, 설마 진짜 저 버리는 거예요? 이제 집에 돌아왔잖아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너한테 권아람 엄마가 있는데 굳이 왜 온 거야?”사실 지금 돌아와봤자 이미 늦어버렸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송우주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람 이모는 엄마만 못해요. 그, 그 사람은 저랑 아빠를 속였어요. 심장병도 없고, 화가도 아니었어요.”말을 마치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한때 심장병을 앓던 권아람을 걱정하느라 엄마를 소홀히 했던 일을 떠올리자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유하늘은 그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권아람에 대한 모든 일이 거짓이라는 거 몰랐으면 나한테 돌아오는 일도 없었겠지.”“안 그래?”송우주가 대답하기도 전에 유하늘이 못을 박았다.그리고 비웃음이 섞인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그를 스쳐 지나 자리를 떠났다.“엄마? 엄마!”게다가 송우주의 말은 듣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송우주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어쩔 줄 몰라 눈시울을 붉혔다.집사 최민형이 다가와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도련님, 이제 그만 정리하고 주무시죠. 너무 늦었어요.”“저 엄마한테 버림받은 거예요? 절대 용서 안 하신대요?”송우주는 고개를 들어 간절한 눈빛으로 최민형을 바라봤다.최민형이 부드럽게 웃으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럴 리가요. 그래도 모자 사이잖아요. 도련님이 예전에 권아람 씨와 가까이 지낸 거 때문에 속상하셔서 그렇지, 곧 괜찮아질 거예요. 걱정 마세요.”유하늘은 위층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빠짐없이 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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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아, 죄송해요. 차가 갑자기 고장 나서 급히 옆집 차를 빌려 왔거든요.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양해 부탁드려요.”운전기사는 차에서 뛰어내리더니 혹시라도 거래가 취소될까 봐 노은결의 짐부터 받아들었다.유하늘은 노은결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냥 이 차로 이동하자는 신호였다.“한 시간 뒤면 배 타야 하니까 다시 부를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노은결은 어쩔 수 없이 유하늘과 함께 차에 올랐다.차 문이 닫히는 순간 기사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하지만 곧 무표정으로 돌아왔고 시동을 걸어 현장을 벗어났다.가는 동안 유하늘은 조용히 거리의 풍경을 감상했다.어릴 적부터 해외에서 자라 송여준과 함께한 이후에야 이 낯선 도시에 돌아와 살게 되었다.마음 붙일 곳은 아무 데도 없었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아이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지난 7년간 이 도시를 수차례 오가며 지냈다.예전에는 너무 아늑하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마치 송씨 부자 때문에 이 도시에 환상을 갖게 된 것처럼.이제 마음이 떠났으니 환상도 산산조각이 났다.이곳은 그녀가 자란 고향의 10분의 1도 못 미쳤다.한창 생각에 잠긴 와중에 갑자기 누군가 소매를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노은결이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문자 한 통을 보냈다.유하늘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여기 항구로 가는 길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기억하기로 항구는 남쪽 방향이거든요.]유하늘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곧바로 지도를 켜고 위치를 확인했다.운전기사는 남정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고 항구로 가는 방향과 정반대였다.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즉시 물었다.“기사님,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저희 항구로 가서 배 타야 해요.”운전기사는 그녀의 말을 듣고도 백미러로 힐긋 쳐다만 봤다. 게다가 시선에는 비웃음과 서늘한 기운이 가득했다.유하늘은 점점 불안해지며 거듭 재촉했다.“내 말 안 들려요? 차 세워요! 여기서 내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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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두 사내를 따라간 유하늘은 오히려 한시름 놓았다.노은결만 연루되지 않는다면 그거로 충분했다.검은 옷 사내는 그녀를 거실로 끌고 갔다. 이때, 소파에 앉아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거실 곳곳엔 먼지가 내려앉은 가구들이 보였다.남자는 더러운 소파에 기대어 앉은 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봤다.낯선 얼굴이었다.유하늘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당신 누구야!”남자의 입가에 비열한 웃음이 번졌다.“유시훈 여동생이 이렇게 예쁜 줄은 몰랐네? 단지 너무 마른 게 흠이야. 한 손으로도 목을 꺾어버릴 수 있겠는데?”유하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오는 길 내내 온갖 가능성을 떠올렸지만 오빠의 원수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혀끝을 깨물며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혔다.“당신 정체가 뭐야! 왜 날 납치한 거지?”남자는 대답 대신 휴대폰을 꺼내 들고 천천히 다가갔다.“네 오빠한테 전화해서 지금 운영 중인 그 보석 브랜드 총판권을 나한테 넘기라고 해. 국내에서 체인점을 열 수 있게 말이야. 안 그러면 오늘 여기서 멀쩡하게 나갈 생각하지 마.”유하늘은 깜짝 놀라더니 엉겁결에 말했다.“당신, 혹시 민석현이야?”남자는 의아한 얼굴로 눈썹을 까딱했다.“유시훈이 내 이름을 언급했었나 보군.”유하늘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며칠 전, 해외에서 오빠를 만났을 때 민석현에 대해 전해 들은 적이 있었다.그는 국내에서 꽤 알려진 보석 유통업자였다.요즘 내수 시장이 침체기에 들어서자 이익을 낼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오빠가 운영하는 회사의 보석 브랜드에 눈독을 들였고, 국내 판매 권한을 얻어 체인점을 열고 싶어 했다.하지만 오빠는 민석현의 신용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예전에 다른 브랜드를 가맹한 적이 있었지만 루머가 퍼져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당시 유하늘도 오빠의 판단에 동의했다. 국내 시장을 포기하더라도 평판을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아직도 그 일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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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그녀의 말에 민석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네 휴대폰으로 전화하고 스피커 모드 켜. 수작 부릴 생각 말고. 널 구할 사람은 없다고 했지? 송여준도 마찬가지일 테니까.”유하늘은 태연한 얼굴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페이스 아이디로 잠금 해제하고 여전히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척 송여준이 보낸 문자에 재빨리 알파벳 세 개를 보냈다.이 모든 걸 마치는 데 단 2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그때, 민석현이 잔뜩 경계하며 손을 뻗어 그녀의 휴대폰을 낚아챘다.메인 화면에 통화창이 떠 있었다.그제야 콧방귀를 뀌며 다시 휴대폰을 손에 쥐여주었다.“얼른 전화해!”유하늘의 손바닥은 땀으로 흥건했고, 심장이 쿵쾅거렸다.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심장 박동은 점점 빨라졌지만 몸에 아무런 불편함은 없었다.이내 정신을 바짝 차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유시훈이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그는 하품하며 말했다.“하늘아, 이 시간에 웬일...”“오빠.”유하늘이 말을 끊으며 고개를 들어 눈앞의 남자를 똑바로 응시했다.“혹시 민석현 기억해? 나 지금 납치당했는데 예전에 논의한 협력 조건에 동의해야만 풀어줄 거래. 제발 살려줘.”민석현의 눈썹이 까딱했다. 쓸데없는 말 빼고 본론만 간결하게 전달하는 모습에 매우 만족하는 듯했다.휴대폰 너머로 침묵이 이어졌다. 유시훈은 숨을 고르더니 자리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곧이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장난치지 마. 설마 농담은 아니겠지? 민석현이 널 납치한 거야? 지금은 안전해? 어디 있는데?”민석현은 짜증스럽게 혀를 차더니 전화를 빼앗아 귀에 대고 말했다.“유시훈, 우리 시간 낭비하지 말자. 네 동생 지금 내 손에 있어. 전에 제시한 협력 조건을 받아들이기 전에 살아서 내 영역을 빠져나가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알겠어?”유시훈의 목소리는 대뜸 날카롭게 변했다.“똑똑히 들어! 하늘이 건드리지 마. 내가 지금 해외라고 무사히 빠져나갈 거라는 생각은 버려. 국내 세력도 만만치 않게 있거든? 내 동생 머리카락 하나라도 건드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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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유하늘은 바짝 긴장하며 즉시 외쳤다.“다가오지 마!”민석현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생각이 너무 단순한 거 아니야? 널 힘들게 여기까지 데려오고 겨우 유시훈이랑 타협했잖아. 덕분에 내가 고생 좀 했지. 아직 분풀이도 못 했는데 그냥 보낼 리 있겠어?”유하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바로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경계심과 분노가 번뜩이는 눈빛으로 말했다.“도대체 뭘 바라는 거야? 네가 말한 조건은 다 들어줬잖아. 지금 원칙상 우린 협력하는 사이야. 거래에 문제라도 생기면 오빠가 가만 있을 것 같아? 그러면 너도 돈 벌 기회 날리는 거나 마찬가지야.”민석현은 턱을 매만지며 태연하게 말했다.“걱정 마. 너한테 원하는 건 유시훈은커녕 본인조차도 입 밖에 못 꺼낼 일이니까.”순간 유하늘은 섬뜩한 예감이 들었다. 뒤로 물러서자 등에 단단한 무언가가 닿았다.검은 옷 사내 두 명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남자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유하늘은 단번에 알아차렸다.하지만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민석현에게 이끌려 소파 위로 내동댕이쳐졌다.“오늘 우리랑 즐겨 보자고. 물론 창피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한테 말하든가.”민석현이 웃음을 터뜨렸다.“그때 되면 너 혼자 망신당하는 건 물론이고 송씨 가문 체면도 완전 깎이겠지? 남편한테 버림받고, 아들은 널 수치로 생각하고, 해외에 있는 오빠는 더 괴로워하겠지. 자랑도 아닌데 설마 진짜 떠벌리겠어? 안 그래?”여자에게 지조란 너무 중요한 문제였다.민석현은 말을 이어가면서 옷 단추를 풀더니 유하늘을 향해 걸어갔다.유하늘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드디어 위기를 모면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역겨운 짓을 꾸밀 줄은 꿈에도 몰랐다.유하늘은 소파를 짚으며 계속 뒤로 물러났다.“오지 마, 저리 가! 내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리면 오빠든 송여준이든 절대로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난 고작 순결을 잃었다고 창피해서 혼자 속으로 삭이는 그런 사람 아니거든?”민석현은 그녀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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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민석현은 그녀가 시끄럽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손을 들어 따귀를 때렸다.“닥쳐! 괜히 기분 망치게 하지 말고. 안 그러면 이따가 자비 따위 없을 거야.”유하늘은 머리가 띵한 나머지 그 자리에 굳어버린 채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민석현이 부하들에게 눈짓을 보냈다.“넋 놓고 서서 뭐 해? 바닥에 있는 여자 끌고 와서 옷 벗겨.”유하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내 고통을 참아가며 고래고래 외쳤다.“안 돼! 손대지 마. 내 친구 건드리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하지만 고개를 드는 순간 코피가 흘러나왔다.노은결은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거실 안은 금세 아수라장이 되었다.민석현은 못마땅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 유하늘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순간, 밖에서 브레이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사내들은 일제히 멈칫했다.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즉시 창가로 다가갔다. 선두에 멈춰 선 차에서 송여준이 내리는 것을 발견했고, 곧이어 차들이 속속 도착하더니 안에서 경호원들이 줄지어 나왔다.“송여준이에요. 유하늘을 구하러 사람들을 데리고 온 것 같아요. 어떡하죠?”사내의 얼굴이 급격히 굳었다.“대충 봐도 경호원이 스무 명은 넘어요.”민석현의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고개를 돌리자 얼굴에 피범벅이 된 채 몰골이 말이 아닌 유하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송여준이 쳐들어와서 이 장면을 목격한다면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안 봐도 뻔했다.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결국 이를 악물고 유하늘을 일으켜 세운 뒤 탁자 위의 헝겊을 집어 들어 입에 쑤셔 넣었다.그리고 눈짓으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빨리빨리 안 움직여? 두 사람 다 지하실로 끌고 가! 송여준이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니까 일단 숨어.”두 명의 부하는 노은결을 부축해 똑같이 헝겊으로 입을 막고 손도 묶었다.세 사람은 유하늘과 노은결을 강제로 지하실로 끌고 갔다.지하실.유하늘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고 머리도 어지럽고 아팠다.하지만 지금은 패닉에 빠져 두려워할 때가 아니었다. 송여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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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경호원은 송여준의 진지한 표정을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어요. 정말 떠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사정이 있어서 차는 두고 간 듯하네요.”송여준은 침묵을 지켰다.유하늘은 초조한 나머지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속으로는 그가 지하실을 발견하길 애타게 빌었다.이때, 머리 위에서 낮고 중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여기서 잠깐 기다려. 별장 지하실 확인하고 올게.”순간, 지하실에 숨어 있던 민석현 일당이 바짝 긴장했다.송여준이 정말로 그들을 찾아낼까 봐 두려웠다.유하늘과 노은결은 숨죽인 채 얼른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기만을 바랐다.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유하늘은 송여준의 등장을 이토록 간절히 바란 적은 처음이었다.지하실 입구에 도착한 송여준은 손을 뻗어 문을 살짝 밀었다.그러나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이내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이더니 즉시 입을 열었다.“여기 숨어 있나 봐! 당장 와서 문 열어.”민석현은 이를 악물었다. 두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이제 도망갈 구석이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결국 험상궂은 얼굴로 버럭 외쳤다.“송여준! 지금 당신 아내랑 아내 친구 데리고 있으니까 문 열 생각 하지 마. 안 그러면 유하늘은 내 손에 죽어. 알겠어?”송여준은 침묵에 잠겼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초조함이 묻어났다.“하늘이 놔 줘! 원하는 게 뭐야? 말해 봐, 다 들어줄 테니까. 하지만 내 와이프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린다? 그땐 넌 죽었어.”“흥, 어차피 사람은 내 손에 있는지라 문밖에서 협박해봤자 아무 소용 없어. 네가 들이닥치기 전까지 유하늘 해칠 시간은 충분해. 지금은 그런 헛소리나 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빌고 매달려야 하지 않겠어?”민석현은 겁먹기는커녕 고개를 빳빳이 쳐든 채 맞받아쳤다.송여준은 침묵하더니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어떻게 해야 내 와이프 풀어줄 거야?” 민석현이 냉소를 지었다.“경호원들 내보내고 혼자 들어와.”유하늘의 눈빛이 흔들렸다. 도대체 무슨 속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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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이내 싸늘하게 말했다.“어쩌지? 오늘 쿨하게 풀어준다고 해도 앞으로 나한테 좋은 점은 별로 없어 보이는데?”송여준은 주먹을 꽉 쥐었다.“계속 발버둥 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아?”유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걱정이 묻어났다. 그리고 민석현을 노려보며 단호하게 외쳤다.“내 와이프 풀어줘!”유하늘은 입만 열면 ‘와이프’라고 하는 송여준의 모습에 은근히 놀랐다.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누군가 지하실에 숨어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위험을 무릅쓰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쳐들어올 줄은 몰랐다. 더욱이 ‘내 와이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있지 않겠는가?그녀의 표정이 어딘가 착잡했다.민석현은 짜증이 난 듯 콧방귀를 뀌었다.“굳이 겁주는 소리로 협박 안 해도 돼. 그런 건 나한테 안 통하거든? 와이프를 구하고 싶어? 좋아.”이내 뒤에 서 있는 부하들을 가리켰다.“우리 셋이랑 한 판 붙자. 이기면 여기서 내보내 줄게. 만약 지면... 미안하지만 오늘이 마지막이 될 거야.”그는 턱을 치켜들고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말했다.“네가 데려온 경호원들이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우린 이미 뒷문으로 빠져나간 뒤겠지. 아무도 너희를 구할 수 없어. 알겠어?”송여준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민석현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느긋하게 슈트 재킷을 벗고 검은색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그래, 한번 놀아보자고.”민석현이 손뼉을 쳤다.“대단한 배짱이군. 하지만 칼은 감정이 없거든? 과연 우리랑 붙을 만한 실력인지 확인해 보지.”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 뒤에 있던 사내들도 호신용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다들 무기로 자신을 방어했지만 송여준은 맨손에 아무 준비도 없는 상태라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그런데도 물러설 기미가 안 보였고 손가락을 까딱이며 도발했다.“다 덤벼.”무심한 태도로 그들은 안중에도 없는 송여준을 보자 민석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곧이어 호통 소리가 지하실을 가득 메웠다.“서서 구명만 할 거야? 얼른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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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그들은 송여준을 봐줄 생각이 없는 듯 한눈파는 틈을 타서 동시에 달려들었다.송여준은 어둑한 구석에서 발견한 돌을 단단히 쥐고 선두에 서 있는 검은 옷 사내에게 힘껏 휘둘렀다.남자는 머리를 한 방 맞고 피를 철철 흘렸다. 이내 중심을 잃더니 맥없이 무릎을 털썩 꿇었다.송여준은 날아 차기로 민석현을 땅에 넘어뜨린 뒤 등을 밟은 채 한 손으로 뒤통수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돌을 높이 들어 올렸다.내리치기 직전, 민석현은 겁에 질려 거의 오줌을 지릴 뻔했다.결국 아연실색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우리가 졌으니까 얼른 와이프 데리고 가. 제발 죽이지만 말아줘.”송여준은 돌을 꽉 쥐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내리쳤다.민석현은 신음을 내뱉더니 털썩 쓰러졌다.마지막으로 남은 검은 옷 사내는 당황한 나머지 패닉에 빠져 손에 든 나이프를 버리고 거친 욕설과 함께 뒤꽁무니를 뺐다.모두가 떠난 뒤에야 송여준은 힘겹게 돌을 내려놓았다.그의 셔츠는 이미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오자 짙은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유하늘은 온몸이 떨렸고, 얼굴이 창백했다.자신 때문에 송여준이 이렇게 크게 다치다니.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왜 떠나지 않는 걸까?단지 그녀가 명목상의 아내라는 이유만으로?이때, 양손을 묶은 벨트가 풀리면서 입을 막고 있던 헝겊도 사라졌다.송여준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분명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유하늘의 손을 꼭 붙잡고 놓지 않았다.“괜찮아?”유하늘이 고개를 끄덕였다.“응...”하지만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송여준이 바닥에 털썩 쓰러졌다.유하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곧장 밖으로 뛰어가 경호원을 불러 그를 옮기도록 했다.송여준과 노은결은 그대로 차에 실렸다.경호원이 운전석에 앉아 밖에 서 있는 유하늘을 향해 말했다.“사모님, 뭐 하세요? 얼른 차에 타세요!”유하늘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지금이 바로 영영 떠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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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유하늘은 눈을 질끈 감고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은결 씨, 나...”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은결이 불쑥 끼어들었다.“송여준이 출혈이 심하다는데 지금 어디예요?”유하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바로 갈게요.”그리고 손을 들어 택시를 잡았다. 이번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기사님, 병원으로 가주세요. 빨리요!”택시 기사는 액셀을 풀로 밟고 병원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유하늘은 항구를 돌아보았다.어쩌면 표가 매진된 것도 하나의 징조였을지도 모른다.즉, 오늘은 떠날 타이밍이 아니었다.송여준은 그녀를 구하다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고, 지금 어떤 상태인지조차 알 수 없다.이대로 훌쩍 떠나버린다면 모든 속박을 벗어난다 해도 마음 한편이 계속 찝찝할 것이다.아무리 그래도 한 사람의 생명을 차마 무시하지는 못했다.결국 착잡한 마음으로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택시에서 내려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복도에는 송정희와 노은결만 있었다.유하늘을 발견하는 순간 송정희는 재빨리 뛰어와 그녀의 팔을 잡고 앞뒤로 흔들었다.“이 골칫덩이야! 여준이 피를 이렇게 많이 흘린 게 다 네 잘못이야. 재수 없는 년! 너랑 엮이고 나서 우리 집안에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아.”유하늘은 반항하기를 포기하고 입술만 질끈 깨물었다.노은결이 곧바로 나서서 제지했다.“지금은 의사가 치료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송여준 씨의 상태를 지켜보는 게 최선이에요. 설령 하늘 씨를 죽인다고 해도 조카가 무사히 깨어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그녀의 한마디에 송정희는 말문이 막혔다. 안색은 사뭇 어두웠고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이내 눈을 질끈 감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유하늘, 여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절대!”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술실 문이 열렸다.유하늘은 조급한 나머지 즉시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선생님...”“환자분은 현재 출혈이 매우 심한 관계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긴급 수술이 필요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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