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Chapter 401 - Chapter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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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1화

초연은 진혁을 증오했다.자신을 냉정하게 내친 그를 원망했고, 무엇보다 이담을 더 미워했다.이담만 없었다면 진작 진혁의 아내가 됐을 테고, 지금 눈앞의 이 악마 같은 남자한테서도 벗어날 수 있었을 테니까.준영은 잔 속의 술을 천천히 흔들며 초연의 눈에 서린 짙은 증오를 가만히 바라봤다.그러다 조용히 웃음을 흘렸다.“그럼 어디, 네 진심부터 한번 보여줘.”초연은 순간 굳어졌다.곧 그의 눈빛에 담긴 뜻을 읽어낸 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오후, 이담은 서둘러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가 안에 서 있는 지훈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눈이 마주치자 이담은 얼른 시선을 피하며 가볍게 웃었다.“우연이네요.”그렇게 인사를 건넨 뒤 한쪽으로 비켜섰다.지훈은 이담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오늘 좀 이상한데요?”이담이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뭐가요?”“오늘은 저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않으시네요.”이담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잠시 후 천천히 고개를 돌리면서 지훈을 바라봤다.“고 선생님,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요?”‘설마...’‘사무실 앞에서 내가 대화를 엿들은 걸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괜히 긴장감이 밀려왔고, 어색함까지 더해졌다.지훈은 자신의 뺨을 한 번 만져 보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제 얼굴에 이상한 거라도 묻었나요?”“아뇨.”“그럼 그냥 제가 보기 싫어진 건가요?”이담은 할 말을 잃었다.정말 한마디 한마디가 사람을 당황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이담이 어색하게 웃었다.“상상력이 꽤 좋으시네요.”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지훈이 먼저 내렸고 이담도 뒤따라 걸음을 옮겼다.괜히 자신이 너무 티를 냈나 싶어져서, 이담은 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고 선생님!”사실 지훈을 피하려던 건 아니었다.단지 아까 들었던 이야기를 아직 받아들이지 못해서, 어떻게 지훈을 대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었다.그 순간 지훈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면서 돌아섰다.미처 멈추지 못한 이담이 그대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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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잔인하다고?’이담의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그의 깊고 어두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 정도 가지고 잔인하다고 하는 거야? 예전에 나한테 했던 일에 비하면 만분의 1도 안 돼.”진혁은 이미 그런 대답을 예상한 듯 희미하게 웃었다.“그래, 넌 처음부터 끝까지 날 미워하고 있었어.”“내 곁에 남아 있는 것도 어머니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이고. 안 그래?”이담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만옥이 자신과 약속했던 일을 진혁도 알고 있었던 걸까?이담의 흔들리는 눈빛과 애써 피하는 시선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진혁은 그 작은 변화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았다.결국 자신의 생각이 맞았던 것이다.진혁은 힘없이 몸을 기대며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지로 삼킨 뒤 조용히 말했다.“가.”이담은 움직이지 않았다.그러자 진혁이 갑자기 소리쳤다.“가라고!”이담은 그의 격한 반응에 움찔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진혁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붙잡으려고 했지만 손끝은 허공만 스쳤다.멀어져 가는 이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의 가슴은 무겁게 내려앉았다.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천천히 올라왔다....이담은 호텔로 돌아가지 않고 택시를 타고 명월의 집으로 향했다.문을 연 명월은 이담을 보자마자 웃으면서 말했다.“우리 심 선생님도 갈 데가 없어졌나 보네요?”이담도 피식 웃었다.“갈 집은 있는데 돌아갈 곳이 없네요.”호텔에는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았다.오피스텔로 돌아가도 지훈을 마주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당장 갈 곳이 떠오르지 않았던 이담은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명월을 찾아온 것이었다.명월은 와인 한 병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오늘 소연 씨도 야간 근무라 집에 나 혼자예요.”“심심했는데 잘 왔어요. 같이 한잔할래요?”이담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한편, 하동규는 준우의 전화를 받고 급히 호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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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어느덧 밤이 깊어졌다.창밖으로는 도시의 화려한 불빛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다.이담은 명월과 함께 거실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술이 몇 잔 들어가자, 명월은 제법 취기가 오른 듯 이담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사실 예전부터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었어요.”이담이 고개를 갸웃했다.“뭔데요?”명월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고 선생님 좋아해요?”이담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막 대답하려는 순간, 명월이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솔직하게 말해야 해요. 괜히 저 기분 맞춰주려고 그러지 말고.”이담은 피식 웃으며 명월의 손을 살며시 내려놓고 와인잔을 들었다.“내 사정 알잖아요.”“고 선생님을 안 지 이제 몇 달밖에 안 됐는데, 저는 그런 생각은 해본 적 없어요.”명월이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호감도 없어요?”이담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신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그런 감정은 아니고요.”적어도 첫인상만큼은 좋았다.지훈은 누구나 인정할 만큼 훌륭한 사람이었다.예전 같았으면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너무 힘들었다.이렇게 많은 일을 겪고도 아직 자신이 진혁을 완전히 잊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지금 당장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라고 한다면, 아직은 자신이 없었다.명월은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씁쓸하게 웃었다.“제가 왜 고 선생님을 좋아하는지 알아요?”이담도 따라 웃었다.“잘생겨서요?”명월이 금세 고개를 저었다.“에이, 제가 그렇게 단순한 사람은 아니거든요.”“그냥 저랑 좀 닮았다고 느꼈어요.”“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으로는 외롭고,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았어요.”잠시 말을 멈춘 명월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제 이야기 들으셨잖아요.”“우리 집은 돈은 많지만, 전 부모님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딸은 아니었어요.”이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언니가 있다고 했었죠?”명월은 씁쓸하게 웃었다.“네, 열 살 때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갔다가 래프팅을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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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진혁은 결국 먼저 고개를 숙이면서 이담에게 사과했다.이담은 잠시 멍하니 진혁을 바라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팔꿈치로 진혁의 가슴을 밀어내며 말했다.“나 머리가 좀 어지러워.”하지만 진혁은 물러서지 않았다.깊은 눈빛으로 이담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날 피하고 싶을 때마다 꼭 핑계를 대더라.”이담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이, 진혁은 그녀를 그대로 안아 들었다.이담은 깜짝 놀랐다.“뭐 하는 거야?”진혁이 자신을 침대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이담은 재빨리 이불을 끌어당겨서 온몸을 감쌌다.진혁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씁쓸하게 웃었다.애초에 이담이 자신을 경계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내가 정말 무슨 마음이라도 먹었으면, 네가 피할 수 있었을 것 같아?”이담의 표정이 굳어졌다.금방이라도 차갑게 쏘아붙일 것 같았지만 진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잔뜩 갈라진 목소리에는 전혀 힘이 없었다.“다시는 억지로 그러지 않을게.”이담은 놀란 듯 진혁을 바라봤다.진혁의 말을 선뜻 믿을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낮추는 모습은 처음이었다.사람은 사랑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법이었다.진혁도 이제야 그걸 알게 된 걸까?이담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진혁은 한동안 침대 곁에 앉아 이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푹 쉬어.”짧게 말을 남긴 뒤 그대로 방을 나갔다.닫히는 문을 바라보면서, 이담은 복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술을 마셔서 괜히 마음이 흔들리는 걸까?’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질지도 몰랐다....다음 날.교외 병원.초연은 눈을 뜨자마자 자신이 링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잠시 후 담당 의사가 진료기록을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초연 씨, 현재 상태로는 이틀 정도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시는 게 좋겠습니다.”“보호자는 계신가요?”“남편이나 부모님이라도요.”초연은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없어요.”의사는 잠시 말을 멈췄다.“그럼 남자친구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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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이담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훈을 바라봤다.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떠오르는 건 없었다.“저희가 언제 만난 적이 있었죠?”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 대표님을 처음 만났을 때, 저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천천히 생각해 보세요.”말을 마친 지훈은 손가락으로 이담의 이마를 가볍게 툭 건드린 뒤 돌아섰다.이담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선 채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만 바라봤다.‘그게 무슨 말이지?’‘하진혁을 만났을 때 고지훈도 함께 있었다고?’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그런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한편, 지원은 프렌치 레스토랑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한참을 기다린 끝에 맞선 상대가 느긋한 걸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지원은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깔끔하게 빗어서 넘긴 머리에 반듯한 이목구비. 깊은 눈빛에서는 서늘한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지원의 취향은 아니었다.지원은 기다림에 지친 얼굴로 먼저 입을 열었다.“시런 씨 맞죠? 오기 싫으셨으면 굳이 안 오셔도 됐는데요.”“어차피 이 혼사는 부모님끼리 정한 거잖아요. 깨지면 오히려 저도 좋고요.”준영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았다.곧바로 작은 보석 상자를 지원의 앞으로 밀면서 말했다.“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사과의 의미로 준비했습니다.”지원은 보석 상자를 내려다보다 미간을 찌푸렸다.“무슨 뜻이죠?”준영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담담하게 말했다.“제 성은 방씨입니다. 이름은 준영이고요.”“시런은 해외에서 쓰던 이름일 뿐입니다.”지원은 과일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방준영 씨.”“이 자리에는 방준영 씨도 억지로 나온 거겠죠? 그러니까 이런 선물은 안 주셔도 됩니다.”준영은 담담하게 웃었다.“억지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누구와 결혼하든 저에겐 별 차이가 없으니까요.”그 말을 들은 지원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역시 남자들은 누구와 결혼하든 상관없는 건가?’보아하니 이 사람은 혼담을 거절할 생각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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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지원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안 그래도 정략결혼은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제는 더 싫어졌어요.”“그 사람이 그 여자랑 그런 관계라면, 저를 가지고 노는 거나 다름없잖아요?”“설령 나중에 명목상 부부로만 지낸다고 해도, 적어도 제 눈에 거슬리는 짓은 하지 말아야죠.” 이담은 잠시 시선을 내렸다.이담이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 말도 없자, 지원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왜 그래요?”이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아무것도 아니에요.”“아까 방준영이라고 했죠? 성이 방씨예요?”“네.”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전 시런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었어요.”“전 강성은행장의의 아들이라던데, 유학을 갔다가 돌아왔대요.”“본인이 직접 방준영이라고 이름을 밝혔어요.”이담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때 지원이 문득 뭔가 떠올린 듯 손뼉을 쳤다.“아, 맞다!”“예전 강성은행장이 확실히 방씨였어요. 아빠가 예전에 말씀하셨는데 이름이 방민호였나 그랬어요.”“혹시 방준영이 그 사람 아들 아닐까요?”방민호. 강성은행장.그 이름을 듣는 순간 이담의 손끝이 굳어졌다.잊고 있었던 기억 하나가 희미하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납치당했던 그날, 의식을 되찾았을 때 이담은 낡은 승합차 안에 있었다.차 안에는 자신 말고도 처음 보는 아이 다섯 명이 더 있었다.겁이 난 이담은 숨소리조차 죽인 채 몰래 바깥을 엿봤다.차 밖에서는 납치범 두 명이 우비를 입은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방민호, 우린 원래 부잣집 애들만 데려가기로 했잖아. 저 애는 왜 데려온 거야?][맞아. 우리가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이런 짓 하는 게 감옥 가려고 하는 건 아니잖아.][애가 한 명 더 늘어나면 골치 아파진다고.]우비를 입은 남자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았다.우비에 얼굴이 가려져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저 애가 우리가 아이들을 데려가는 걸 봤어. 살려 보내면 그대로 다 불어버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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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이담을 바라보던 경영진은 무의식적으로 고승범에게 시선을 돌렸다.고승범의 반응을 살피는 눈치였다.초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설마 고 선생님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넘어가실 생각은 아니시죠?”경영진의 표정이 굳어졌다.대놓고 고승범이 봐주고 있다고 지적한 셈이었다.그건 곧 자신들의 체면을 구기는 말이나 다름없었다.초연도 이제 더는 눈치를 볼 생각이 없었기에, 턱을 살짝 치켜들고 이담을 바라봤다.“나노 신약 연구 결과는 심 선생님이 직접 맡으셨잖아요.”“이렇게 일이 터졌는데, 심 선생님께서 모두에게 설명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이담은 담담한 표정으로 초연을 바라봤다.“제가 설명한다고 해서 초연 씨가 듣고 싶은 대답이 나올 거라고는 장담 못 하겠는데요.”초연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고승범은 컵을 들고 천천히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이 프로젝트를 제자에게 맡긴 건 그만큼 믿고 있었기 때문이네.”“내 제자가 자기 앞날을 망칠 짓까지 할 사람은 아니야.”고승범이 이담을 이토록 믿어주는 모습을 보자, 초연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심 선생님이 어르신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어떻게 확신하세요?”“내 제자는 내가 자네보다 훨씬 잘 알아.”고승범은 물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초연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얼굴에서는 억울함과 분노의 기색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왜 심이담은 아무렇지도 않게 저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거야?’‘나는 그렇게까지 애를 썼는데도 결국 남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일 뿐이고.’그때 이담이 초연을 돌아봤다.“초연 씨, 계속 남한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도 이제 지겹지 않아요?”초연은 순간 흠칫했지만, 곧 눈빛을 가라앉히며 태연한 척했다.“심 선생님이 당황스러우니까 아무한테나 누명을 씌우는 거 아닌가요?”“누가 아무한테나 누명을 씌우고 있는지는 곧 알게 될 거예요.”이담은 더 이상 겉치레조차 할 생각이 없었다.“부팀장님, 말씀해 주세요.”초연은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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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증거도 없잖아요!”초연이 결국 소리를 질렀다.평소 연구팀에서 상냥하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통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이담이 피식 웃었다.“A조 사람들은 모두 그 보고서가 폐기됐다는 걸 알고 있어요. 모르는 건 B조뿐이고요.”“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B조 사람 중 누군가가 먼저 나서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NL그룹과 내통한 사람 아닌가요?”초연은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A조 사람들을 하나씩 바라봤지만, 누구 하나 놀란 기색이 없었다.당황한 표정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마치 처음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했다.그제야 초연은 뭔가를 깨달은 듯했다.이내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처음부터 나를 함정에 빠뜨릴 생각이었구나.’“심이담, 정말 치밀하네!”“당신만큼이야 하겠어요?”이담은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전 처음부터 문초연 씨를 건드린 적이 없어요.”“그런데 문초연 씨는 계속해서 저를 함정에 빠뜨리고 누명을 씌웠죠.”“이번에도 제가 대비하지 않았더라면 또 당했을 거고요.”경영진은 곧바로 경호원을 불렀다.“문초연 씨를 경찰서로 데려가세요.”곧바로 경호원이 다가와서 초연의 팔을 붙잡았다.“놔요!”초연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저 안데르 교수님 제자예요!”“누가 감히 나한테 이래요!”바로 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세상에, 대체 무슨 일이죠?”마침 회의실로 들어온 안데르 교수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초연은 경호원의 손을 뿌리치고 그에게 달려갔다.“교수님! 저 좀 도와주세요!”안데르 교수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고승범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NL그룹에서 공개한 연구 보고서를 넘긴 사람이 저 사람입니다.”안데르 교수의 시선이 천천히 초연에게 향했다.초연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안데르 교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승범을 바라봤다.“고 선생님, 정말 잘못 아신 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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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초연은 경호원에게 이끌려 나가면서도 더 이상은 저항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담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짙은 불만이 서려 있었다.늘 하는 일마다 순조로웠던 초연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이담은 그런 초연에게서 담담하게 시선을 거뒀다.그때 안데르 교수가 이담에게 다가왔다.“그 논문이 심 선생님의 논문이었다는 걸 몰랐네요.”“그동안 문초연 씨의 말만 믿고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건 제 잘못입니다.”말을 마친 안데르 교수는 아쉬운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심 선생님이 고 선생님의 제자만 아니었다면, 정말 저와 함께 M국으로 가자고 했을 겁니다.”이담은 그저 살짝 웃으며 말했다.“당시에는 그 논문을 두고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어요.”“저 역시 제 연구를 확신하지 못했고요.”“하지만 교수님께서 연구가 단순한 가설로 끝나지 않고 세상에서 검증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잖아요.”“뇌의학 분야에서는 아직 교수님께 배울 게 많아요.”안데르 교수가 호탕하게 웃었다.“정말 제 제자로 삼고 싶군요!”“제 앞에서 제자를 데려가겠다고 말씀하시면 곤란한데요.”회의실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난 뒤, 고승범이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안데르 교수가 아쉬운 표정으로 고승범을 바라봤다.“그 사실을 좀 더 일찍 알려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눈앞에서 놓친 인재가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고승범이 못마땅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저한테 물어본 적도 없잖아요.”두 사람이 이 일을 두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담은 어색하게 웃었다.생각해 보면 자신도 제대로 설명한 적이 없었다....이후 이담은 고승범과 함께 회의실을 나왔다.이담이 계속 다른 생각에 잠겨 있자, 고승범은 초연의 처리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한 듯 더는 붙잡지 않았다.“할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처리해.”“나까지 배웅할 필요는 없어.”이담은 잠시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네, 교수님. 그럼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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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저녁. 이담이 식당에 들어섰지만 진혁 외에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진혁은 하얀 셔츠 차림으로 은은한 조명 아래 서 있었다. 걷어 올린 소매 사이로 단단한 팔뚝이 드러났다.진혁은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로 테이블 위 촛대에 불을 붙였다.그의 뒤로는 커다란 통유리창이 자리하고 있었다.창밖으로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어우러지면서 도시의 밤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있었다.예전의 이담이었다면 이런 분위기에 분명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이담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테이블 앞으로 다가갔다.“무슨 뜻이야?”진혁은 라이터를 끄고 희미하게 웃었다.“단둘이 제대로 식사한 지 꽤 됐잖아. 그래도 오늘은 좀 제대로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이담은 그제야 무슨 뜻인지 알아차렸다.“이렇게까지 격식을 차릴 필요는 없는데.”진혁이 낮게 대답했다.“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잖아.”이담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오늘따라 왜 자꾸 사람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말을 하는 걸까 싶었다.이담은 의자를 끌어당겨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꼭 죽을 날 얼마 안 남은 사람처럼 말하네. 말기 암 환자도 아니면서.”진혁이 피식 웃었다.“내가 죽는 게 싫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나?”“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이담은 더는 상대하지 않고 웨이터를 불러 식사를 주문했다.진혁은 그런 이담을 바라보며 말없이 웃었다.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진혁은 거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잠시 후 진혁이 눈을 들어 이담을 바라봤다.“생각해 보니 우리가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도 못 해봤었지.”이담의 손이 멈췄지만 바로 대답하지는 않았다.진혁은 느긋하게 스테이크를 썰며 말을 이었다.“예전에는 같이 여행이라도 가면 그때 제대로 데이트해 볼 생각이었는데, 결국 못 갔지만.”“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진혁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말을 꺼냈다.“우리 아직 제대로 결혼식도 못 올렸잖아.”결혼식.이담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이담은 수저를 내려놓았다.“오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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