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Chapter 391 - Chapter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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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1화

하동규가 고개를 들었다.“누구 말이냐?”진혁은 바둑알을 내려놓으며 짧게 대답했다.“방민호 말입니다.”하동규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준우가 먼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 갑자기 사직하고 자취를 감춘 전 은행장 말씀하시는 겁니까?”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하동규도 기억이 난 듯 말했다.“그러고 보니 정말 오래전부터 소식이 끊어졌지. 외국으로 나갔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그 사람은 왜 묻는 거냐?”“그 사람한테 아들이 있지 않습니까?”“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본 적은 없어.”하동규는 바둑판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방민호는 원래 사람 다루는 데 능했고 인맥도 넓었어. 그런데 십여 년 전에 갑자기 사직한 뒤에는 국내에 있는 사람들과의 연락도 전부 끊었지.”“정말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야.”진혁의 표정이 한층 무거워졌다.하동규가 그를 바라봤다.“네가 말하지 않았으면 나도 잊고 있었을 텐데.”“누가 그 사람 얘기라도 꺼냈냐?”“아닙니다.”진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담이 밖에서 돌아왔다.거실로 들어선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진혁을 한 번 바라본 뒤 하동규에게 가볍게 인사했다.“아버님.”진혁은 시선을 내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왔구나.”바둑판을 정리한 하동규가 준우에게 말했다.“프런트에 가서 저녁 식사 자리 남아 있는지 알아봐. 있으면 미리 예약하고.”“알겠습니다.”준우가 곧장 밖으로 나갔다.이담이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하동규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오늘 저녁은 진혁이랑 같이 식사할 건데, 너도 같이 가자.”어른이 먼저 권해서 거절하기도 어려웠다.이담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리고 그대로 방으로 들어갔다.진혁은 그녀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없이 시선을 거뒀다....그날 저녁.이담은 하동규, 진혁과 함께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그런데 복도에서 뜻밖의 사람과 마주쳤다.강민준과 유하연이었다.강민준이 먼저 웃으며 말을 건넸다.“하 회장님께서 강성시에 오셨는데도 미리 연락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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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2화

이담과 진혁은 먼저 룸으로 들어와서 하동규를 기다렸다.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않았다.한동안 이어진 침묵 끝에, 진혁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셔츠 단추를 느슨하게 풀었다.“나한테 할 얘기 없어?”이담이 담담하게 그를 바라봤다.“무슨 말을 듣고 싶은데?”진혁은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어차피 이담의 입에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더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잠시 뒤 하동규가 돌아왔다.여전히 어딘가 멍한 표정이었다.뜻밖의 재회가 남긴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진혁이 무심한 듯 물었다.“이야기는 잘 나누셨습니까?”은근히 놀리는 기색이 섞인 말투였다.하동규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오랜만에 만난 사람이라 몇 마디 나눈 것뿐이다.”“괜한 오해는 하지 말고, 네 어머니한테도 말하지 마.”진혁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제가 굳이 일러야 합니까? 어머니 성격 아시잖습니까?”이담은 조용히 입술을 다물었다.하동규는 슬쩍 이담을 바라보더니 화제를 돌렸다.“우선 주문부터 하자.”“빨리 먹고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구나.”식사가 시작된 뒤에도 부자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이담 역시 조용히 식사만 하고 있었다.그때 갑자기 이담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해 보니 은호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진혁은 말없이 이담을 바라봤다.발신자가 은호인 걸 확인한 이담이 하동규를 향해 말했다.“아버님, 전화 좀 받고 오겠습니다.”하동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이담은 복도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오빠.”[하성그룹 사람들과 같이 강성시에 내려갔다며?]“하빈이한테 일이 생겨서요.”이담은 시선을 내리깔며 조용히 말했다.“안 올 수가 없었어요. 하빈이에겐 이제 제가 유일한 가족이예요.”“더 이상 하빈이 혼자 두고 갈 수도 없고요.”“계속 강성시에 있게 했다가 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에요.”은호는 이담의 뜻을 금세 알아차렸다.[그럼 내가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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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3화

“소 회장님이셨군요.”진혁이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이렇게 바로 옆 룸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소준우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게 말입니다. 참 우연이네요.”진혁은 이담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제 아내가 왜 이렇게 쉽게 발길을 못 떼나 했더니, 알고 보니 따님을 기다리고 있었군요.”그 말에 소준우 부부의 시선이 동시에 이담에게 향했다.이담은 난처한 표정을 감추면서 재빨리 웃어 보였다.“소 선생님하고 만나기로 했거든요.”“바로 옆방에 있는 줄은 저도 몰랐어요.”신유리는 명월을 바라보며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하 대표님 사모님하고 약속이 있었으면 미리 말하지 그랬니?”명월이 못마땅한 얼굴로 받아쳤다.“말할 기회나 있었어요?”“너는 정말...”소준우는 금방이라도 화를 낼 듯했지만, 손님들 앞이라는 걸 의식한 듯 가까스로 참았다.그러면서 진혁과 이담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죄송합니다.”“저희 딸 성격이 원래 좀 저렇습니다.”진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저희가 방해한 건 아니겠죠?”신유리가 얼른 말을 받았다.“아니에요. 괜찮으시면 잠깐 들어와 앉으실래요?”이담이 입을 열기도 전에 진혁이 먼저 웃으면서 대답했다.“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자리를 함께하죠.”진혁은 자연스럽게 이담의 어깨를 감싸 안고 자기들 룸으로 향했다.문 앞에 이르자 이담은 그의 팔을 슬며시 밀어냈다.“방금 행동은 무슨 의미야?”진혁이 담담하게 되물었다.“남의 얘기를 엿듣는 건 재밌고?”이담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진혁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네가 상관없다고 생각해도.”“우리가 아직 부부인 이상, 나랑 상관없는 일은 아니야.”말로는 도저히 진혁을 이길 수가 없었다.이담은 고개를 홱 돌린 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혁 역시 더 말하지 않고 룸 안으로 들어갔다....다음 날 아침.이담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병원 앞에서 소연과 마주쳤다.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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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소연 씨가 사다 준 거야. 책을 많이 읽으면 마음도 좀 편해질 거라면서.”이담은 보호자 의자에 앉아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소연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괜히 소연 씨한테 폐 끼치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꼭 나한테 말해.”“난 네 누나잖아. 네가 뭘 부탁한다고 싫은 소리 할 사람도 아니고.”잠시 말이 없던 하반이 뭔가를 떠올린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그래도 누나한테 계속 기대기만 할 순 없잖아.”“나도 알아. 난 원래 철도 없고, 생각도 짧았어.”“엄마 아빠도 날 아끼긴 했지만, 사실은 나를 믿지 않았어.”“내 힘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누나가 하씨 집안에 시집가야 우리 집도 잘살게 될 거라고만 믿었고...”“누나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됐어.”이담이 부드럽게 그의 말을 끊고 손을 뻗어 하빈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다 지난 일이야. 이제 그런 얘기는 하지 말자.”잠시 침묵이 흘렀다.이담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하빈아, 경성으로 돌아갈래?”하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경성은 왜?”“부모님 집도 그대로 있고, 큰아버지네도 이제 더는 찾아와서 괴롭히지 못할 거야.”“네가 돌아가고 싶다면 사람을 보내서 데리러 오게 할게.”하빈은 한동안 말없이 이담을 바라봤다.곧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 여자 때문에 그런 거지?”“날 죽이려고 했으니까... 여기 남겨 두기 싫은 거지?”이담은 잠시 시선을 내렸다.“맞아, 네가 또 무슨 일을 당할까 봐 무서워.”“그리고... 문초연이 다시 널 찾아오는 일도 없었으면 좋겠어.”초연이 하빈의 친누나라는 사실은 끝내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그 사실을 알게 되면 하빈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빈은 씁쓸하게 웃었다.“알겠어, 누나도 내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잖아.”“더는 누나 힘들게 안 할게.”“나도 오랜만에 경성에 가 보고 싶어.”그 말을 들은 이담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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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5화

방민호.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하지만 애써 떠올리려 할수록 더 기억이 나지 않는 법이었다.이담은 더는 억지로 기억을 더듬지 않기로 했다.언젠가는 자연스럽게 떠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담은 주민영을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저희 이모하고도 친하셨어요?”주민영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제야 송지현이 이담의 이모라는 사실이 떠오른 듯했다.조카 앞에서 이모 이야기를 꺼낸 게 괜히 민망해져서 주민영은 어색하게 웃었다.“친한 사이는 아니었어요.”“몇 번 얼굴만 본 정도라 잘 아는 건 아니에요.”이담이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유하연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세 사람은 그렇게 30분 정도 더 이야기를 나눴다.그러다 민유아가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아, 예약 시간이 다 됐네.”“네일 받으러 가야 해서 난 먼저 일어날게.”주민영도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나도 이만 가 볼게.”두 사람은 유하연과 이담에게 인사를 남긴 뒤 다원을 떠났다.두 사람이 떠난 뒤, 이담과 유하연도 유리온실 밖으로 나왔다.유하연은 잠시 이담을 바라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사실 오늘은 심 선생님만 따로 만나려고 했어요.”“그런데 두 사람이 먼저 차를 마시러 찾아왔더라고요.”“오랜 친구들이라 그냥 돌려보낼 수도 없었고...”“혹시 마음 상한 건 아니죠?”이담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요. 덕분에 강성시 사모님들한테 인사도 드리게 된 걸요.”유하연도 따라 웃었다.“두 사람 다 소식이 정말 빨라요.”“이 동네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아는 사람들이죠.”“전 이제 익숙하지만 심 선생님은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유하연은 송지현 이야기가 나온 걸 이담이 불편하게 여겼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아무리 그래도 송지현은 이담의 친이모니까.이담은 잠시 시선을 내렸다.“사실은 전 이모에 대해 더 알고 싶었어요.”“오늘은 뭔가 들을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유하연이 의외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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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6화

유하연은 지난 일을 떠올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송지현은 화재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미영이와 정말 많이 닮았어요.”“쌍둥이였으니까요.”“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어요.”“그때 권 회장님은 송씨 집안에 딸이 둘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계셨어요.”“게다가 미영이와 처음 만난 그 연회가 열렸을 당시에는 송지현도 아직 해외에서 돌아오기 전이었고요.”유하연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원래 송 회장님은 미영이를 안씨 집안의 장남과 결혼하게 하고, 송지현은 권씨 집안으로 시집을 보낼 생각이었어요.”“그때 송지현도 처음으로 권 회장님을 만났죠.”“송지현을 본 권 회장님은 연회장에서 처음 보고 첫눈에 반했던 미영이라고 착각해서 말을 걸었어요.”“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송씨 집안에 딸이 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사람을 잘못 알아봤다는 걸 깨닫고 송지현에게 사실대로 설명하려던 바로 그때... 화재 사고가 일어난 거예요.”이담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럼 송지현 씨는 사고가 나기 전까지 아버지가 자신을 어머니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 거네요.”유하연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어쩌면 전부 운명의 장난이었는지도 모르죠.”이담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제야 송지현이 왜 자신의 언니를 그토록 증오했고, 자신의 아버지까지 원망했는지 이해가 됐다.송지현의 입장에서라면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했고, 두 사람도 서로 마음이 통한다고 믿었을 것이다.그런데 화재 사고로 모든 것이 무너졌고, 결국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는 친언니와 결혼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송지현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송지현이 아무리 불쌍한 처지였다고 해도 자신을 바꿔치기해서 어머니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렸고, 살인범인 초연과 손을 잡은 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다음 날.이담은 하빈의 짐을 챙기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모든 준비를 마친 하빈은 이담에게서 여행 가방을 건네받았다.“누나, 나 경성으로 가면 누나도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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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7화

직원이 초연을 옆 룸으로 안내했다.문 앞에 선 초연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가볍게 고쳤다.초연은 입가에 자신감 어린 미소를 띠운 채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병풍 너머로 한 남자의 실루엣이 희미하게 보였다.체격이 건장한 데다 젊은 남자라는 것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긴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면서, 병풍을 돌아 안으로 들어선 초연이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시런 선생님이시죠?”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테이블 위의 술잔을 집어 들었다.그리고 비웃듯 말했다.“몇 년이 지나도 하나도 안 변했네.”“하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놓쳤다고 해서, 남자 꼬시는 재주까지 없어진 건 아닌 모양이야.”초연의 미소가 그대로 굳어졌다.익숙한 목소리였다.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리자, 그 얼굴을 확인한 순간 초연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곧바로 비틀거리면서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방... 방준영?”“당신이 어떻게 여기 있어?”준영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송지현 밑에서 일하면서 아무 얘기도 못 들었나 보네.”“내가 돌아왔다는 것도.”초연의 얼굴에서는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고, 온몸은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초연에게 준영은 악몽 같은 존재였다.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잔인하기 그지없는 악마.과거 준영의 겉모습에 속아 넘어갔던 대가로 초연의 몸과 마음은 철저하게 짓밟혔다.그 치욕과 고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준영이 천천히 다가왔다.한 걸음씩 가까워질 때마다 초연의 몸은 더욱 심하게 떨렸다.준영의 발걸음이 그녀 앞에서 멈추자, 초연의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말았다.“제발...”준영은 그런 모습을 내려다보며 실소를 흘렸다.“넌 아직도 나를 이렇게 무서워하는구나.”곧 흥미를 잃은 듯 시선을 거뒀다.“착각하지 마. 한 번 질린 여자한테는 이제 관심이 없거든.”“널 후원한 데는 이유가 있으니까.”초연은 두 손을 꽉 움켜쥐었고 입술을 세게 깨물며 물었다.“이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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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8화

이담은 카드키로 객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거실은 불이 꺼져 있었다.문을 조용히 닫은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바 뒤편의 와인장에 불이 들어왔다.이담은 걸음을 멈추고 그쪽을 바라봤다.잠옷 차림의 진혁이 와인잔을 든 채 걸어 나왔다.“안 잤어?”“잠이 안 와서.”와인잔을 회색 대리석 바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진혁이 그녀를 바라봤다.“오늘은 꽤 늦었네.”“야근했어.”이담의 시선이 진혁의 손에 들린 와인잔으로 향했다.“몸도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았는데 술은 조금만 마시는 게 좋을 것 같아.”진혁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고요하던 눈빛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걱정 안 해도 돼. 이 정도로 안 죽어.”“당분간 과부 될 일은 없을 거야.”빈정거림이 짙게 배어 있는 말투였다.이담은 굳이 받아칠 생각이 없었다.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진혁이 그녀를 불렀다.“이담아.”이담이 뒤돌아봤다.“왜?”진혁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봤다.뭔가 말하려다 끝내 삼켰다.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단 한마디였다.“일찍 쉬어.”이담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 뒤 방으로 들어갔다.닫히는 방문을 바라보던 진혁은 와인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손등 위로 푸른 핏줄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문득 오늘 지연에게 걸려왔던 전화 내용이 떠올랐다.[오빠, 설마 심이담이 진심으로 오빠 곁에 있는 줄 알아?][내가 직접 들었어. 권은호가 그러더라.][심이담이 오빠 곁에 남아 있는 건, 큰어머니가 오빠 몸이 다 나으면 이혼시켜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래.][오빠 때문이 아니라.]진혁은 바 테이블 의자에 털썩 앉았다.이마를 감싸 쥐자, 가슴이 죄어 오는 듯 답답했고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었다....다음 날, 경성.“할머니, 저 유학 안 갈 거예요!”본가 거실에서는 지연이 마동순에게 애원하고 있었다.“오빠가 저한테 이럴 리가 없어요!”“모두 심이담 때문이에요!”“애초에 심이담을 외면한 건 오빠였는데 그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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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9화

초연은 애써 표정을 감추며 코웃음을 쳤다.“경성에 가서 가족도 찾았다더니 생각보다 빨리 돌아왔네?”옆에 있던 연구원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두 사람 사이가 안 좋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직접 보니 정말인 듯했다.이담은 초연 앞에 멈춰 섰다.그리고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담담히 입을 열었다.“내 일에 대해 꽤 잘 알고 있네. 뒤에서 신경을 많이 쓴 모양이야.”초연은 그녀의 말에 숨은 뜻을 알아차렸지만 모르는 척 웃어 보였다.“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이담은 옆에 있던 연구원에게 시선을 돌렸다.“먼저 가서 일하세요.”연구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네.”연구원이 자리를 뜨자, 이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더는 꾸밀 필요도 없었다.“모른 척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아무리 피해 다닌다고 해도 언젠가는 대가를 치르게 될 테니까.”초연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지만 곧 비웃음을 흘렸다.“설마 경고하려고 온 거야?”이담은 대꾸하지 않았다.한 걸음 더 다가온 초연이 둘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안타깝네.”“권씨 집안 딸이 됐다고 해도 날 어떻게 하진 못하잖아.”“누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이담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일부러 도발하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여기서 먼저 손을 썼다간 CCTV 앞에서 오히려 자신만 불리해질 뿐이었다.이담은 천천히 주먹을 풀었다.초연이 돌아서려는 순간, 이담이 입을 열었다.“당신은 친부모가 누군지 궁금하지 않아?”순간 초연의 발걸음이 멈췄다. 천천히 뒤돌아선 그녀는 이담의 의도를 가늠하듯 물끄러미 바라봤다.잠시 후 비웃음을 흘렸다.“난 고아인데 부모가 어디 있어?”“설령 살아 있다고 해도 날 키워 준 것도 아닌데 나랑 무슨 상관이지?”이담은 말없이 그저 웃기만 했다.초연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녀의 미소도 서서히 사라졌다.초연이 신경 쓰든 말든 상관없었다.방금 그 한마디가 당분간은 머릿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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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0화

초연은 연구 보고서를 들고 자료관리실로 향했다.담당 직원은 초연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어? 이 자료는 서정고 씨가 가져오기로 하지 않았나요?”초연은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서정고 씨는 급한 일이 생겨서 제가 대신 가져왔어요.”그러곤 아무렇지 않은 듯 덧붙였다.“안데르 교수님도 계신가요? 잠깐 뵈러 왔는데요.”직원이 고개를 저었다.“교수님은 이틀째 안 나오셨어요.”초연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아, 그러셨군요...”주변을 오가는 직원들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초연은 입꼬리를 희미하게 올렸다.이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료관리실을 빠져나갔다....병원.이담은 막 수술을 마친 뒤, 복도에서 보호자에게 환자의 경과와 주의사항을 차분히 설명하고 있었다.보호자가 병실로 돌아가자,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정고에게서 온 문자였다.이담은 곧바로 연구실로 향했다.지훈의 사무실 앞을 지나던 순간,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이 멈췄다.“아무리 그래도 심이담은 하씨 집안 며느리잖니. 설마 유부녀를 좋아하는 건 아니겠지?”여정아의 목소리였다.이담은 문 앞에 선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연구실 안에서는 지훈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제가 누구를 좋아하든 그건 고씨 집안이 관여할 일이 아닙니다.”여정아가 다급하게 말했다.“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심이담은 안 돼.”“우리 집안은 흠 없는 며느리라면 누구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심이담은 결혼도 했고...”말미에서 잠시 멈칫하다가, 여정아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슬쩍 바꿨다.“네 아버지도 절대 허락하지 않으실 거야.”“밖에 알려지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니?”지훈은 서류를 내려놓으며 그녀를 바라봤다.“어머니와 하 회장님 사이에 인연이 있었으니, 아버지가 신경을 쓰시는 것도 이해합니다.”여정아가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지금 그 얘기가 아니잖니.”“난 네 결혼 이야기를 하는 거야.”지훈은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말을 잘랐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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