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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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그때 심각한 표정을 한 경찰서 서장이 나오더니, 젊은 경찰에게 들어가 보라는 듯 손짓했다.눈빛을 교환한 부부는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따져 물었다.“류 서장님, 이게 대체 무슨 뜻이죠? 전에 분명 우리 형님 체면을 봐준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우리 아들 상황도 잘 아시잖아요!”류남규 서장은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저만 아나요? 두 분은 부모면서 저보다 더 잘 알 거 아니에요?”“상황이 이런데도 치료하지 않고 벌써 몇 번째예요? 매번 제가 대신 꺼내 줬잖아요!”두 부부는 류남규의 말에 아무 반박도 하지 못했다.류남규는 손을 휙 젓더니 뒤돌아섰다.“이번 일은 정말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이번에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을 건드렸어요. 제가 두 분을 도와드리면, 제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몰라요!”“그런 건 모르겠고! 우리 아들 병이 있는 거 알잖아요!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 대체 누군데요?”머리만 길었지 생각 없이 행동하는 두 부부를 보자 류남규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유 청장님도 참 안 됐어.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여동생을 뒀지? 잘나가던 집안을 여동생이 다 말아먹게 생겼네!’“하성그룹 사람인데, 싸울 자신 있어요?”류남규의 말에 여자는 뺨을 한 대 얻어맞은 듯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그날 밤, 어렴풋이 잠들었던 이담은 옆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모습에 놀라 눈을 떴다.복도에서 흘러든 불빛 덕에 이담은 겨우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진혁은 다리를 꼰 채 의자에 앉아서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렸다.“입원한 건 왜 말 안 했어?”이담은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말하든 말하지 않든 뭐가 바뀌는데? 그러는 하 대표님이야말로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에 나타났어?”말끝마다 자기를 ‘하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호칭에, 진혁은 눈꺼풀을 들어 이담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봤다.그렇게 한참 동안 바라본 그는 천천히 몸을 앞으로 기울며 이담을 응시했다.“꼭 그런 이상한 말투로 말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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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이담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과거를 떠올렸다.무려 11년 동안 묻어 두었던 기억은, 어느 초봄 고봉산에서 벌어진 아동 납치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그때 납치된 아이 중에는 이담도 있었고 진혁도 있었다.이담은 그때를 기억하고 있지만, 진혁은 모두 잊어버렸다.이담은 이불을 꽉 움켜잡았던 손을 풀고는 고개를 돌려서 진혁을 바라봤다.“없어.”“정말 없어?”남자는 눈살을 찌푸렸다.“없어.”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남자는 이담의 턱을 잡고 억지로 눈을 마주치며 다시 반복했다.“정말 없어?”이담은 남자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일부러 침착한 척 말했다.“정말 만난 적이 있으면 하 대표님께서 왜 날 기억 못하겠어?”그 말에 진혁은 잠시 멍해져서 반박하지 못했다.“나 이제 잘 거야.”이담은 진혁의 손을 떼어내며 말했다.“가든 말든 알아서 해. 침대는 따로 알아봐.”진혁은 동의도 거치지 않고 이담의 옆에 벌렁 누웠다.“난 보호자침대에서 자는 게 불편해.”이담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이담이 두말없이 이불을 들추고 일어나려고 할 때, 진혁이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이담은 넘어지는 순간 본능적으로 진혁의 옷을 잡았고, 그 힘에 이끌린 진혁이 이담과 함께 넘어지면서, 그녀는 아래에 깔렸다.닿을 듯한 거리에서 멈춘 남자의 숨결이 얼굴을 덮으면서 이담을 감쌌다.이담은 무의식적으로 마른 입술을 핥았다.그 모습을 본 남자의 눈빛은 한 층 더 어두워지더니, 이담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짝 만졌다....그때 마침 회진을 돌던 간호사가 병실 안의 야릇한 장면을 무심코 목격했다.이곳이 공공장소라는 생각에 간호사는 본능적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 두 사람을 떼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문득 생각해 보니 이 병실은 심이담의 병실이었다.게다가 방금 이담을 찾아온 사람은 다름 아닌 하진혁이다.‘헉!’떨리는 손으로 이 장면을 촬영한 간호사는 신경외과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고는, 간호사실로 돌아가자마자 소문을 퍼뜨렸다.그 시각, 병실 안의 야릇한 분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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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어머? 정말이에요?”“며칠 전에 그린힐에서 사진까지 찍혔다는데, 가짜일 리가 있겠어요?”“하 대표님이 신경외과 선생님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문 과장님이 여자 친구라고 인정했는데, 심 선생님이 갑자기 이러는 건 대체 뭐죠?” “설마 여자 친구인 문 과장님을 밀어내고 자기가 자리를 꿰차려는 건 아니겠죠?”“...”두 명의 간호사는 일부러 이담이 들으라는 듯 높은 목소리로 떠들어댔다.그 말에 이담은 헛웃음이 나왔다.‘정부? 내연녀?’‘대체 누구더러 내연녀라는 건데?’이 터무니없는 소문을 이담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하지만 하빈은 달랐다....병원 지하 주차장에 주차한 하빈은, 어두운 눈빛으로 차에서 내리는 초연을 바라봤다. 초연이 차에서 내린 걸 확인한 뒤, 그는 손을 소매 안에 감추고는 차에서 내렸다.초연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상대가 건너편에서 뭐라고 하자, 초연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뭐라고요? 진혁 씨가 그 정신병 환자의 일에 끼어들었다고요?”전화 건너편 사람은 다름 아닌 한경미였다.한경미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네, 저도 하 대표님이 왜 갑자기 그 일에 나섰는지 모르겠어요. 그 멍청이가 저를 불어버릴까 봐 너무 걱정이 돼요.] [제 언니와 형부가 그 사실을 알게 되면, 절대 저를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한경미의 남편이 병원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건, 국세청 청장으로 있는 형부 덕분이다.하지만 이번 일이 발각되면, 남편뿐만 아니라 한경미마저 따라서 못 볼 꼴을 보게 될 게 뻔했다.초연은 손톱을 깨물면서 분노의 눈빛을 내뿜었다.“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염산을 뿌리는 건데. 그 여자 얼굴만 망가뜨리면 진혁 씨도 절대...”말이 끝나기도 전에, 초연은 등 뒤에 누군가 서 있다는 걸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그 순간, 남자는 손에 든 스패너로 초연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다음 순간 초연의 핸드폰은 쓰레기통 구석으로 떨어졌고, 그 안에서 한경미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문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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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그 시각, 교외의 어느 한 공사장 안.시간이 흐를수록 초연은 하빈이 자기를 정말 죽일 수도 있다는 공포에 불안해졌다.중간에 계속 몸부림친 탓에, 초연의 손목은 밧줄에 쓸려 피부도 다 까졌고, 따끔거리는 통증이 전해졌다.초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그때 초연의 시선이 구석에 있는 유리 조각에 고정되었다. 하빈이 눈치채지 못한 틈에 초연은 의자를 조금씩 움직여 유리 조각 가까이로 다가갈 기회를 엿봤다.다만 초연이 구석에 거의 도착했을 때, 하빈이 마침 돌아왔다.초연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하빈은 단번에 초연이 움직였다는 걸 눈치챘고, 시선이 구석에 놓인 유리 파편으로 옮겨졌다.하빈이 다가오자 초연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테이프로 막은 입으로 계속 ‘읍읍’ 소리만 냈다.바닥에 놓인 유리 조각을 말없이 주운 하빈은, 갑자기 흥건해진 바닥을 보고는 눈썹을 꿈틀거렸다.겁에 질려 오줌을 지린 초연의 모습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빈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유리 파편을 초연의 얼굴에 갖다 댔다.“남의 가정에 끼어든 내연녀도 두려워하는 게 있나 보네?”초연은 하빈의 말이 조금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겁에 질려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그만 울어. 못생긴 게 짜증만 나니까!”하빈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하빈은 여자가 우는 거라면 딱 질색이었다. 물론 누나를 제외하고 말이다.초연은 더 이상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심지어 하빈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하빈은 초연의 입을 막고 있던 테이프를 조용히 떼어냈다. 말할 기회를 얻은 초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얼른 애원했다.“나... 나 좀 풀어주면 안 돼요? 풀어주기만 한다면 뭐든 하라는 대로 할게요!”“하라는 대로 하겠다고?”하빈은 냉소했다.초연은 하빈의 물음에 닭이 모이를 쪼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하빈은 유리 조각으로 초연의 얼굴을 가볍게 긁다가 목에 겨누며 말했다.“그럼 사람들 앞에서 우리 누나한테 사과하고 그동안 한 짓 인정해.”초연의 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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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그 말에 잠시 어리둥절해 있던 하빈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곧바로 씩씩거리면서 이담의 손을 밀어내고 초연에게 다가갔다.“이게 어디서! 당신이 우리 누나 해친 거 맞잖아.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로 했으면서 어떻게 이랬다저랬다 할 수 있어?”“하빈아, 안 돼...”이담이 막을 새도 없이 하빈은 초연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초연에게 닿기도 전에 진혁이 하빈을 발로 걷어찼다. 곧이어 안나가 손을 흔들자 뒤에 있던 경호원이 얼른 나서서 하빈을 제압했다.“이거 놔. 난 잘못한 거 없어!”하빈은 생각할수록 억울했다.“저 여자가 아니었다면 우리 누나가 고춧가루물을 맞을 일도 없었어. 다 저 여자가 지시한 거야. 내가 다 녹음했다고!”진혁은 어두운 눈빛으로 초연을 돌아봤다.초연은 고개를 마구 저으면서,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아니야, 진혁 씨. 저 사람이 나를 협박해서 그렇게 말한 거야.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어...”“문초연 씨, 제 동생이 문초연 씨를 납치한 건 잘못한 게 맞으니 인정할게요. 대신 사과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하빈이는 절대 남을 죽일 사람이 아니에요.”하빈이 초연을 납치했다고 할 때 이담이 걱정한 건 초연의 목숨이 아니었다.동생이 절대 함부로 살인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이담이 단지 바보 같은 동생이 또 대학 때처럼 충동적으로 행동해서, 초연을 다치게 해 앞날을 망칠까 봐 걱정했다.“심 선생님!”초연은 힘찬 목소리로 반박했다.“납치당한 사람은 저예요! 상대가 친동생이니 심 선생님은 당연히 친동생 편에 서겠죠!”“하빈이가 제 친동생이라...”“그만!”진혁은 지겹다는 듯 말을 끊으며 차가운 눈초리로 이담을 바라봤다.“어쨌든 납치한 건 사실이야. 납치범을 변호할 생각이야?”말문이 막힌 이담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맞는 말이다. 납치는 이미 범죄에 해당하기에, 진혁이 초연을 위해 경찰에 넘긴다면 인명 피해가 없더라도 하빈은 무조건 감옥행이다.“진혁 씨, 저 사람이 나를 협박하게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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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하빈의 모습에 이담은 마음이 찢기는 것만 같아 그 옆으로 다가가 부축했다.그때 경호원이 나타나 두 사람을 떼어놓으며 하빈을 강제로 연행해 갔다. 이담은 그 모습에 당황한 듯 진혁을 바라봤다.“뭐 하는 거야? 문초연만 무사하면 놔주기로 했잖아!”이담이 진혁에게 초연의 납치 사실을 알리면서, 절대 초연이 다치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었다.그때 진혁도 이담의 약속에 응했다.하지만 현재 진혁은 걱정에 사색이 된 이담의 얼굴을 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반박했다.“머리에 난 상처 안 보여? 무사할 거라고 했잖아.”이담은 그대로 얼어붙었다.그제야 초연의 이마에 난 핏자국이 보였다.“내가 괴롭히지 않겠다고는 약속했지만 그냥 풀어주겠다고 한 적은 없어.”진혁은 고개를 돌려 안나에게 명령했다.“당장 경찰서로 연행해. 납치 혐의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 거야.”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하빈은 경호원에게 끌려 나갔다.진혁은 초연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밖으로 걸어갔다. 심지어 이담을 지나치면서 그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그 사이 초연은 이담을 훑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두 사람이 차에 올라타자마자 안나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대표님, 이담 씨도 기다릴까요?”진혁이 입을 열려던 찰나 옆에 있던 초연이 머리를 짚으며 끼어들었다.“진혁 씨, 심하빈이 스패너로 내 머리를 때리는 바람에 아직도 어지러워.”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진혁은 고민도 없이 지시했다.“병원으로 가.”“그 여자는 혼자 택시를 타든 알아서 할 테니까...”...이담이 나왔을 때 진혁의 차는 이미 멀리 떠나갔다.초연 때문에 진혁에게 버려진 게 한두 번도 아닌지라 벌써 익숙해졌다.이담은 택시를 타고 이곳을 떠나려고 했지만, 워낙 외진 곳에 있어 차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핸드폰으로 차를 불러도 너무 멀어 주문을 받는 기사가 없었다.무더운 날씨에 주변은 온통 황폐해서 그늘진 곳조차 찾기 어려웠다.결국 이담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혼자 10킬로미터를 걸었다. 옷은 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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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그 사람은요?”“갔어. 급한 일이 있다면서.”아주머니는 몸을 일으켜 세우면서 말을 보탰다.“참, 그 총각이 병원비도 다 내고 갔어. 엄청 착한 총각이었어.”이담은 눈을 내리깔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그녀를 병원으로 데려다 준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보아하니 그 은혜를 갚을 기회도 없는 듯했다....진혁은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왔다. 다만 침실 문을 열고 들어섰지만 안은 텅 비어 있었다.그제야 진혁은 이담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얼른 핸드폰을 들어 전화를 했지만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문득 그곳이 외진 교외라 택시를 잡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자, 진혁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움찔했다. 얼른 외투를 챙겨들고 부랴부랴 문을 나섰다.이제 막 정원에 도착했을 때, 그의 시야에 가냘픈 여자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창백한 여자의 얼굴은 노을 덕에 그나마 생기가 돌아 보였고, 석양 아래에서 유난히 아름다웠다.그제야 긴장이 풀린 진혁은 이담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팔을 낚아챘다. 갑작스러운 힘에 이끌려서 이담은 하마터면 진혁의 품에 넘어질 뻔했다.“핸드폰은 왜 꺼져 있어?”진혁의 질문에 이담은 잠시 멍해 있다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베터리가 나갔어.”병원에 있을 때 이담의 핸드폰은 이미 베터리가 없었다.그나마 다정한 아주머니가 잔돈을 빌려준 덕에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다만 지하철은 그린힐에서 약 2킬로 정도 떨어져 있다. 이담은 처음으로 하루 동안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봤다.너무 먼 거리라 발뒤꿈치가 신발에 쓸려 쓰라렸고, 새끼발가락은 밀려서 아팠다.이담의 덤덤한 표정에 기분이 약간 언짢진 진혁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그러면 전화할 줄은 몰라?”이담은 멈칫하더니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진혁의 눈을 바라봤다.“전화하면 뭐? 문초연을 버리고 나 데리러 올 거야?”“사람을 시켜 데리러 가라고 했을 거야.”“참 고맙네.”피식 웃은 이담은 잡고 있던 손을 뺀 뒤 진혁의 옆을 지나쳤다.고개를 돌린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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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진혁이 언제 떠났는지, 이담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방안이 이미 조용했다.다만 그가 떠난 뒤 ‘자격이 없다’는 말만 계속 이담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한 글자 한 글자는 이담의 가슴을 후벼 팠다.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일지라도 여전히 아픔이 느껴졌다.‘하성그룹 사모님이 누구든 상관없기는.’‘상관이 없으면 나한테 왜 이러는데?’이담은 벽에 기댄 채 천천히 주저앉았다. 이렇게 무기력하기는 이담도 처음이었다....이틀 뒤, 심민철 부부는 아들이 납치 협의로 구치소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심지어 얼마 뒤 형을 선고받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두 사람은 순간 넋을 잃었다. 그러다가 경찰서에 수감된 하빈을 보고 나서야, 두 사람은 하빈이 정말 사람을 납치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그리고 그 상대가 진혁의 바람 난 상대라는 것도 알아버렸다.이담이 오전에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심민철과 이윤경은 병원 아래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이담이, 너!”심민철은 두말없이 다가가 이담의 뺨부터 후려갈겼다. 미처 피하지 못한 이담은 그 힘에 못 이겨 몸까지 비틀거렸다.이윤경이 다급하게 노기등등한 남편을 뜯어 말렸다.“뭐 하는 짓이에요?”이담은 뺨을 맞고도 찍소리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머리를 정리했다.심민철은 이담의 시큰둥한 태도에 더 열불이 나, 이담에게 삿대질하며 손까지 부들부들 떨었다.“저 태도 좀 봐. 하빈이가 자기 때문에 그 여자를 납치했는데 태도가 이게 뭐야? 하빈이가 누구 때문에 감옥에 가게 생겼는데!”“이렇게 재수 없는 계집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당신이 주워 왔을 때...”“심민철!”이윤경은 처음으로 남편의 이름까지 부르며 소리 질렀다.심민철은 몇 초 동안 멍해 있다가 짜증스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의 두 눈은 후회와 분노로 물들어 있었다.갑자기 끊긴 말을 똑똑히 들어버린 이담은 잠시 멍해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뭘 주웠다는 거예요?”“이담아, 아무것도 아니야. 네 아버지가 너무 화가 나서 헛소리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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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이담이 문을 열고 병실에 들어섰을 때, 안에는 초연뿐이었다.초연은 이담을 보자마자 경계했다.“심이담 씨가 여긴 어쩐 일이죠?”성큼성큼 다가간 이담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초연을 빤히 바라봤다.“지난 일은 없었던 걸로 하고 책임을 묻지 테니 이번에는 비긴 거로 쳐요. 그러니 하빈의 판결에 끼어들지만 말아줘요.”초연은 낄낄 웃으며 고개를 쳐들더니 이담을 깔보듯 바라봤다.“지난 일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니? 내가 심 선생님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요? 증거 있어요?”“그리고 심 선생님 동생이 날 납치해서 협박했는데, 내가 왜 판결에 끼어들면 안 되죠? 설마 이대로 가만히 놔줄 줄 알았어요?”이담도 따라서 피식 웃었다.“문초연 씨, 여기 아무도 없고 녹음하는 것도 아니니까, 했던 일은 인정하지 그래요? 연기는 그만하고.”초연은 여전히 발뺌했다.“뭐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심이담 씨, 지금 나 협박하는 거예요?”심이담은 주먹을 꽉 쥔 채 몇 초간 침묵했다.“협박하는 거 아니에요. 하진혁 씨랑 결혼하고 싶지만 마 회장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잖아요.”그 말에 초연의 안색이 싹 변했다.초연은 이담을 꿰뚫을 기세로 노려봤다.이담은 초연의 시선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초연 씨와 하진혁 씨 도움이 없어도 마 회장님께 도움을 청하면 그만이에요. 하진혁이 어떻게 생각하든 이제 상관없거든요. 내가 나쁜 사람이 된 게 처음도 아니고.”“만약 초연 씨가 귀국해서 또 자기 손자한테 매달린다는 걸 마 회장님이 알게 된다면, 초연 씨를 계속 하진혁 옆에 있도록 내버려둘 것 같아요?”이를 악문 초연이 창백한 얼굴로 이담을 바라봤다.“그럴 능력이 있으면 직접 마 회장님을 찾아가지, 왜 날 찾아왔어요?”“기회를 주는 거예요.”이담은 의자에 앉으며 여유롭게 말했다.“내가 정말 마 회장님께 도움을 청하면, 초연 씨가 계속 하진혁 옆에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요?”초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빌어먹을 할망구가 자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초연은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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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하빈이는 내 동생이야. 설사 감옥살이를 하더라도 무사히 지내길 바라는 것뿐이야.”이담도 자리에서 일어나 진혁을 응시했다.“공평을 원하는 게 뭐가 잘못됐어?”“공평?”진혁은 이담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계획적으로 납치한 건, 실질적인 피해가 없어도 범죄야. 그런데 어디서 공평 타령이야?”“실질적인 피해를 본 사람이 없다면 가볍게 판결을 내릴 수도 있어. 그런데 당신이 하빈이를 가만히 내버려둘까?”“아니.”진혁은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대답했다.이담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그래서 공평을 원하는 건데, 내가 잘못한 거야?”“그러게 왜 하필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대?”대놓고 초연을 두둔하는 진혁의 모습에 이담의 기대는 깡그리 사라졌다.그래도 이치로 따져볼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그것 또한 과분한 욕심에 지나지 않았다.하씨 가문의 권력이 하늘을 찌르는 데다 진혁이 워낙 이담을 싫어하니, 그녀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둘 리 만무했다.“심이담, 심하빈 일로 다시는 문초연 찾아가지 마. 문초연은 피해자라는 거 명심해. 우리 사이의 일은 문초연과 상관없어.”진혁이 떠나려고 돌아서자마자, 이담은 눈시울을 붉히며 소리 내어 웃었다.“그럼 난 피해자가 아니야?”‘문초연이 그동안 나한테 한 짓은?’‘난 그냥 당해도 싸다 이거야?’진혁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더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이담을 바라봤다.“하진혁, 나한테 한 번만 마음이 약해질 순 없는 거야?”‘한 번만.’‘그냥 딱 한 번만이라도 좋아.’“심이담.”진혁은 이담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나 문초연한테 진 빚이 있어.”그 말을 마친 진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나섰다.이담은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진 빚이 있다’는 말 한마디에서 누가 더 중요한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이담은 가슴이 바늘에 찔리는 듯 아파 와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그렇게 한참을 서 있던 이담은 겨우 안정을 되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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