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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Author: 강맹아
진혁이 언제 떠났는지, 이담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방안이 이미 조용했다.

다만 그가 떠난 뒤 ‘자격이 없다’는 말만 계속 이담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 한 글자 한 글자는 이담의 가슴을 후벼 팠다. 이미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일지라도 여전히 아픔이 느껴졌다.

‘하성그룹 사모님이 누구든 상관없기는.’

‘상관이 없으면 나한테 왜 이러는데?’

이담은 벽에 기댄 채 천천히 주저앉았다. 이렇게 무기력하기는 이담도 처음이었다.

...

이틀 뒤, 심민철 부부는 아들이 납치 협의로 구치소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심지어 얼마 뒤 형을 선고받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두 사람은 순간 넋을 잃었다.

그러다가 경찰서에 수감된 하빈을 보고 나서야, 두 사람은 하빈이 정말 사람을 납치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그리고 그 상대가 진혁의 바람 난 상대라는 것도 알아버렸다.

이담이 오전에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심민철과 이윤경은 병원 아래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담이, 너!”

심민철은 두말없이 다가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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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제370화

    ‘진혁을 오빠라고 부르는 걸 보니 이 여자가 하진혁의 사촌 동생인가?’이담도 이씨 집안에 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예전에 이만옥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들었을 뿐,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진혁의 시선이 이담의 손을 잡은 여자에게 머물렀다.가볍게 헛기침을 한 진혁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민아야, 그만 장난쳐.”민아가 냉큼 이담의 뒤로 숨었다.“새언니, 이것 봐요. 오빠가 저한테 뭐라고 하잖아요.”이담이 난감한 듯이 웃었다.“저기, 민아 씨. 그럼 오빠 곁에 좀 있어 줄래요?”“오빠는 제가 없어도 돼요. 새언니는 어디 가세요? 제가 같이 갈게요!”“화장실 좀 가려고요.”민아가 고개를 갸웃했다.“병실에도 화장실 있잖아요?”이담이 입술만 꾹 다문 채 대답하지 않자 금세 눈치를 챘다.“아, 부끄러우신 거구나? 결혼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부끄러워요?”“민아야.”진혁이 미간을 찌푸리자 민아가 입술을 삐죽거렸다.“알았어, 알았어. 이제 말 안 할게!”이담은 그 틈에 침실을 빠져나왔다.병실 밖으로 나오자, 복도 저편에 서 있는 경호원들이 눈에 들어왔다.당장은 빠져나가기 힘들어 보였다.캐리어는 물론 신분증까지 경호원들이 가지고 있었다.공용 화장실로 들어간 이담은 핸드폰을 꺼내서 은호의 번호를 찾았다.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손을 멈췄다.아무리 자신이 권씨 가문의 딸이라 해도 이제 막 가족을 찾은 참이었다.아직 다른 가족들과는 제대로 가까워지지도 못했는데, 자신 때문에 권씨 가문과 하씨 가문이 척을 지게 해도 되는 걸까?이담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결국 은호에게 비행기에 탔다는 메시지만 보냈다.메시지를 전송한 뒤 강성대학병원에도 전화를 걸었다.개인 사정이 생겨 당분간 복귀하기 어렵다고 전했다.[심 선생님, 강 부시장님 소개로 온 것도 알고 고 교수님 제자인 것도 알아요. 그런데 부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우면 곤란해요.]병원 측에서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담도 이해하고 있었다

  •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제369화

    이담은 안나와 함께 병실 앞에 도착했다.마침 문이 열리고 이만옥이 밖으로 나오자, 안나가 고개를 숙였다.“사모님.”이만옥의 시선이 이담을 향했다.“진혁이 상태는 안 비서한테 들었겠지. 네가 무슨 생각을 하든 상관없어. 그래도 지금만큼은 진혁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구나.”이담이 대답하기도 전에 이만옥은 가방을 챙겨서 자리를 떴다.안나도 경호원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돌아갔다.한동안 문 앞에 서 있던 이담은 그제야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병실에서 나오던 한주원은 하마터면 이담을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심, 심이담 씨?”두 사람은 몇 번 마주친 적은 있었지만 친분은 없었다.주원이 소아정신과 전문의이고 진혁과 가까운 사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이담은 담담하게 인사했다.“한 선생님.”주원 역시 이담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진혁이 비밀리에 결혼한 아내라는 정도였다.예전에 봤던 이담은 늘 조용하고 얌전했다. 누구에게나 깍듯했고, 특히 하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는 유독 고분고분했다.당시 주원이 받은 첫인상은 그저 예쁘기만 한 여자였고, 공교롭게도 진혁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이기도 했다.‘오랜만에 봐서 그런 걸까?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 보이네.’생각을 정리한 주원이 가볍게 웃었다.“강성시 병원으로 옮겼다고 들었어요. 진혁이 보러 오신 겁니까?”“회장님께서 부르셨어요.”주원이 멈칫했다.‘회장님이라고? 남편 아버지를 아직도 그렇게 부른다고?’이담은 주원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진혁은 침대 머리에 기대 책을 읽고 있었다.발소리에 고개를 든 진혁의 표정이 잠시 굳어졌지만, 곧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한 듯 입을 열었다.“부모님이 보낸 거지? 굳이 말 들을 필요 없었는데.”“네가 시킨 거 아니었어?”책장을 넘기던 손이 멈추더니 진혁이 태연하게 웃었다.“이제 네 눈에는 내가 수단과 방법도 안 가리는 사람으로 보이나 보네.”이담이 대답하기도 전에 책을 덮었다.“맞아. 네가 와서 날 설득해 주길 바랐

  •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제368화

    마동순은 눈을 감은 채 손에 든 염주 팔찌를 천천히 굴렸다.손자와 자신이 아끼던 손주며느리.뭐가 더 중요한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는 건 사실상 동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다음 날, 은호가 이담을 공항까지 데려다주었다.차가 공항 입구에 멈추자, 강준이 트렁크에서 짐을 꺼냈다. 그때 뒷좌석 창문이 천천히 내려갔다.“이담아.”이담이 차창 곁으로 다가갔다.“왜요?”“정말 경호 안 붙여도 되겠어?”“괜찮다니까요.”이담이 난감한 듯 웃었다.“저 애 아니에요.”은호가 미간을 찌푸렸다.“걱정돼서 그렇지. 문초연이 아직 강성시에 있잖아.”“송유담이 잡힌 것도 이미 알 텐데, 당분간은 저한테 함부로 못 할 거예요.”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도착하면 전화하고. 혼자 해결하기 힘든 일이 생기면 강 부시장님 찾아가.”강민준의 이름이 나오자 이담이 문득 눈을 크게 떴다.“아, 맞다. 강 사모님 생신을 잊고 있었네요!”“괜찮아. 네가 가족을 만나러 경성시에 왔다는 것도 알고 계셔. 선물은 내가 대신 챙겨드릴게.”이담이 환하게 웃었다.“고마워요, 오빠. 이제 가 봐요. 저도 곧 들어갈게요.”은호와 인사를 나눈 뒤, 차가 멀어지는 것을 지켜본 이담은 캐리어를 끌고 공항으로 향했다.그 순간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 몇 명이 나타나더니 이담의 앞을 가로막았다.이담이 멈칫했다.경호원들 뒤에서 안나가 걸어 나왔다.“사모님, 회장님께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대표님이 아닌 회장님이었다.이담이 미간을 찌푸렸다.“아버님께서요?”“네.”“제 휴가는 끝났어요. 강성시로 돌아가야 해요. 하씨 가문 일은 이제 저하고 상관없어요.”캐리어를 끌고 지나가려 하자 안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면서 길을 막았다.이담이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모님을 모셔오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안나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목소리를 낮췄다.“사모님. 대표님을 살리는 셈 치고 한 번만 같이 가주세요.”

  •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제367화

    이담의 미소가 곧바로 굳어지더니,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갑자기 그 사람 얘기는 왜 해요?”지훈은 태연한 표정으로 담담히 입을 열었다.“그날 밤 가면을 쓴 사람, 하진혁 맞죠?”이담의 눈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어떻게 알았지?’이담의 표정만으로도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걸 알아차리자, 지훈은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거뒀다.“생각보다 한결같네요.”그 말을 끝으로 이담을 지나쳐 호텔 로비로 들어갔다.이담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지훈을 의아하게 바라봤다.‘갑자기 왜 저러지?’...지훈은 다음 날 볼일이 있다며 예정보다 서둘러 강성시로 돌아갔다.이담은 경성시에 이틀 더 머물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하지만 올해 쓸 수 있는 휴가는 이미 다 써버려서, 다음 날 아침에는 강성시로 돌아가야 했다.별장에서 가족들과 아침을 먹던 중, 권은석이 이담의 접시에 반찬을 올려주었다.“며칠 뒤면 우리도 용주시로 돌아갈 건데, 우리랑 먼저 갈래? 아니면 강성시로 돌아갈 거니?”잠시 생각하던 이담이 대답했다.“전 강성시로 먼저 돌아갈게요. 휴가를 너무 오래 썼어요. 교수님께서 미토콘드리아 표적화 프로젝트를 맡기셨는데 이제 돌아가서 살펴봐야 하거든요.”권은석은 굳이 붙잡지 않고 웃었다.“일 욕심 있는 건 좋지만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마라.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 오빠한테 말해. 얘는 시간도 많으니까.”“아버지, 이제 동생을 찾았다고 제가 빈둥거리는 것처럼 보이세요?”“네가 동생 찾은 것 말고 언제 제대로 된 일을 해본 적이 있어?”권은석이 은호를 흘겨봤다.“회사를 맡으라 해도 싫다더니, 설마 네 동생한테 떠넘길 생각이냐?”은호는 이담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이담이만 좋다면 전 상관없는데.”이담은 젓가락을 입에 문 채 고개를 저었다.“싫어요. 난 수술밖에 할 줄 몰라서 회사 경영은 못 해요.”부자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이담은 그날도 별장에서 묵으면서, 짐을 정리한 뒤 다음 날 비행기 티켓까지 예

  •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제366화

    이담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설명할 필요 없어. 누군지 관심도 없으니까.”진혁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래.”뭔가 더 말하려던 순간,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번졌다.몸을 돌린 진혁은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기침했다.이담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잠시 후 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어디서 지내고 있어? 가는 길에 안 비서가 데려다줄 거야.”“됐어. 바로 근처야.”진혁이 움켜쥔 손수건을 바라보던 이담은 시선을 거두고 차에서 내렸다.다시 돌아봤을 때도 진혁은 여전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얼굴에는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가 걸려 있었다.이담은 입술을 꾹 다문 채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차에 올라탄 안나가 진혁이 약 몇 알을 꺼내는 걸 보고 서둘러 생수를 건넸다.진혁은 곧바로 약을 삼키고 물을 마셨다.“대표님, 정말 사모님께 말씀 안 하셔도 되겠습니까?”“그럴 필요 없어.”진혁은 창밖을 바라봤다.유리창에 비친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다.“내가 죽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이야. 말해봤자 나만 괴롭겠지.”안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딴생각에 잠긴 채 호텔로 돌아오던 이담은 호텔 앞에서 송인성과 지훈을 마주쳤다.“심 선생님!”이담을 발견한 송인성이 다급히 달려오더니 털썩 무릎을 꿇었다.이담이 놀라 그를 부축했다.“송인성 씨, 이게 무슨 짓이에요?”“제발 부탁드립니다. 저한테는 하나뿐인 딸입니다.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그 아이가 잘못된 길로 빠진 겁니다.”송인성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제가 욕심을 부렸어요. 애초에 제 것이 아닌 걸 탐내선 안 되는데...” “받은 16억 원 중에서 14억은 아직 한 푼도 안 썼습니다. 하 대표님께 전부 돌려드릴게요. 나머지 2억 원도 평생 죽도록 일해서 반드시 갚겠습니다.”“그러니 제발 제 딸만은 고소하지 말아주세요. 이제 겨우 20살입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이예요!”딸을 위해 자존심까지 버리고 무릎을 꿇은

  •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제3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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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제6화

    “다 큰 어른이 뭐 하러 어린애와 사사건건 따져?”이담은 잠시 넋을 잃었다. 진혁이 자신을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노골적인 편애에 마음은 미어질 듯 아팠다.이담은 눈이 시큰거렸지만 눈물을 애써 참았다.“전 밀친 적 없어요!”진혁은 피식 웃었다.“그럼 고작 몇 살짜리 애가 스스로 넘어지고 너를 모함한다는 거야?”이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상대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줄 알면서도 왜 설명했을까...이담은 눈을 내리깔고 안정을 되찾으려고 애썼다.“오늘은 내가 재수 없었네요. 됐죠?”말을 마친 이담

  •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제5화

    진혁의 안색이 일순 어두워졌다. 초연의 손을 놓으려는 순간, 초연이 그를 꽉 붙잡았다.“진혁 씨, 나 아직도 몸이 안 좋은 것 같은데. 나랑 같이 약 가지러 가줄 수 있어?”여린 이담의 모습이 사라지자, 미간을 찌푸린 진혁은 시선을 거두면서 담담한 목소리로 동의했다.진혁은 초연과 함께 약국에 가서 약을 받았다. 진혁에게 고개를 돌린 초연은, 그의 정신이 딴 데 팔려 있는 걸 발견하고는 싱긋 웃으며 다가갔다.“진혁 씨, 준희가 사립 유치원에 가고 싶어 해. 아직 가족관계기록부가 없어서 그런데, 잠시만 진혁 씨 아들로 올릴 수

  •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제4화

    이담의 몸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남자를 바라봤다.“내가 무안을 줬다고?”‘그러니까 지금 문초연 때문에 나를 찾아온 거야?’“문초연은 네 상사야.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주면 안 되지.”진혁은 업무를 처리하는 듯 공적인 말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서 부부의 정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이담은 쓰라린 마음을 애써 참으며 피식 웃었다.“집도의가 나라는 거 잊지 마. 나한테 그럴 권리도 없어?”“그러는 너야말로 잊었나 본데.”진혁은 조롱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집도의를 교체

  • 놓자, 비로소 내가 사랑을 알았다   제3화

    진혁은 이담이 이혼을 언급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지,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이혼은 안 돼.”이담은 잠시 멍해졌다.‘이혼하기 싫어하는 게 설마...’미처 희망을 품기도 전에 남자의 말이 이어졌다.“할머니도 동의 안 하실 거야.”곧이어 쾅 하는 문소리가 이담을 현실로 끌어당겼다.이담은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 순간 솜뭉치가 가슴을 꽉 막고 있는 듯이 답답했고, 자기 생각이 얼마나 우스웠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하진혁이 나 때문에 이혼을 거절할 리 없지...’진혁은 단지 마동순이 동의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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