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별이 되어 빛나리 / Chapter 1071 -الفصل 1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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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1화

그때, 무대 뒤편에서 지도 교수님이 출연자들에게 공연 의상으로 갈아입으라고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허지안은 곧장 정신을 가다듬고 나섰다.“하나야, 넌 먼저 탈의실로 가 있어. 내가 분장실에서 드레스 챙겨올게.”“고마워, 지안아.”허지안이 분장실로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짧은 비명이 들려왔다.“앗!”송하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황급히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왜 그래, 지안아?”허지안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손을 떨며 공연용 드레스를 받쳐 들었다.“하나야, 이 드레스 좀 봐...”송하나가 시선을 내리자 공들여 맞춘 드레스의 허리 옆 라인이 누군가 고의로 찢어놓은 듯 길게 벌어져 있었다. 올이 풀리고 원단이 해진 모습이 너무나 선명했다.이 드레스는 송하나가 이번 무대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옷이었다.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20분, 지금 와서 다른 드레스를 대여하거나 수선하는 건 불가능했다.그러나 망가진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는 것은 공연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자칫하면 송하나 본인도 망신을 당하고 더 나아가 학교의 위신까지 떨어트리게 된다.허지안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내가 직접 여기 걸어둘 때만 해도 멀쩡했어! 갑자기 이렇게 될 리가 없잖아. 누군가 악의를 품고 망쳐놓은 게 틀림없어.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비열한 짓을 하는 거야? 정말 질 나쁜 인간들이네!”소란스러운 기운에 지도 교수님이 다가왔다.“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소란스러워?”“교수님! 하나 드레스가... 누군가 고의로 찢어놨어요!”사태를 확인한 교수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이걸 어쩌지? 곧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데.”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공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바로 그때, 등 뒤에서 시아의 나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실은 제가 공연용 드레스를 두 벌 준비했어요. 다른 한 벌은 완전히 새 건데 하나 너랑 사이즈가 비슷할 것 같아. 너만 괜찮다면 일단 급한 대로 내 거 입어.”허지안은 순간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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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2화

연주가 끝나고도 긴 여운이 공연장을 맴돌았다.전 객석이 2초간 침묵에 잠겼다가 이내 천둥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그 함성은 잦아들 줄 몰랐다.송하나와 시아는 손을 맞잡고 함께 인사했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 고요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이었다.객석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감탄 섞인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와, 합주 진짜 미쳤다! 역시 우리 학교 양대 산맥이네. 실력에 비주얼까지 다 갖췄잖아!”“시아 선배야 원래 잘하는 거 알지만 송하나도 전혀 안 밀리는데?”“둘이 기 싸움 하느라 불협화음 날까 봐 걱정했거든? 웬걸, 합이 너무 좋아서 보는 내내 소름 돋았어. 나 이 조합 응원할래!”무대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지고 두 사람이 무대 뒤로 퇴장했다.팽팽했던 긴장감이 조금씩 풀리자 송하나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지는 듯했다. 고개를 들던 순간, 그녀의 시선이 굳게 고정되었다.백스테이지 입구, 심성빈이 희미한 불빛 속에 말없이 서 있었다.말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긴 여정의 피로가 역력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에는 어느새 더없이 부드러운 온기가 가득했다.그는 오직 송하나만을 그윽하게 바라보았다.송하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감정이 그녀의 눈빛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성빈 씨! 어떻게 여기에...”그녀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과 함께 믿기 힘든 감정이 묻어났다.한편 심성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애틋했다.“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내가 어떻게 빠질 수가 있겠어.”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송하나는 곧장 달려가 그의 품에 안겼다.그 순간, 심성빈의 몸이 미세하게 굳었다. 부드러운 그녀가 가슴팍에 와락 안기면서 등 뒤의 상처가 끔찍한 통증과 함께 다시 찢어지는 듯했기 때문이다.뼛속까지 저릴 듯한 통증이었지만 품 안에서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이 모든 아픔을 기꺼이 감내하게 했다.그는 이를 악물고 모든 고통을 삼키며 송하나를 놓지 않고 더욱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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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3화

안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찰진 귀싸대기 소리가 소품실 안을 날카롭게 갈랐다.시아는 군더더기 없는 동작으로 안나의 뺨을 단호하게 후려쳤다.이에 안나는 몸을 비틀거리며 고개가 꺾였다. 순식간에 달아오른 뺨 위로 붉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그녀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갔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서 뜨겁게 달아오르는 뺨을 필사적으로 감쌌다.동공이 아찔거렸고 목소리마저 파르르 떨렸다.“왜 때려, 시아야!”평소 시아의 곁에서 온갖 호사를 누리던 그녀였기에 이 갑작스러운 폭력으로 당황스러움과 분노, 그리고 깊은 혼란에 휩싸였다.시아는 그런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조금의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고 싸늘한 목소리가 실망감을 담아 흘러나왔다.“뻔한 연기는 그만해. 하나 드레스는 왜 망가뜨린 거야?”시아가 차분하게 추궁했다.“무슨 소리야? 난 아무것도 몰라.”안나는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시치미를 뗐다.그녀의 완강한 부정에 시아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 화면을 켰다.선명하게 녹화된 CCTV 영상이 두 사람의 눈앞에 펼쳐졌다.“백스테이지 분장실에 CCTV가 있다는 걸 몰랐나 봐?”시아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무대 올라가기 전에 사람 시켜서 영상 받아봤어. 거기에 네 모습이 아주 똑똑히 찍혀 있더라. 하나 드레스를 망가뜨린 게 바로 너였어.”자신의 행적이 발각되었음을 깨달은 안나는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다.“아니 그게 아니라 난 그저... 다 너를 위해서였어! 정말이지 송하나 너무 별로야! 걔가 우리 학교 오고 나서부터 네 모든 걸 다 가로채잖아.”“학교 축제 때 네 무대도 빼앗았고 이번 교류회에서도 네 몫인 스포트라이트를 다 뺏어간 거 아니야? 사람들 전부 걔한테만 시선이 쏠리잖아!”“난 너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해서 대신 화풀이라도 해주고 싶었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나를 위해서라고?”시아가 나직이 그 말을 되뇌었다. 모든 게 터무니없고 실망스러울 뿐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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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4화

“굳이 아니라고 발뺌할 필요 없어.”시아의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았다.“우리 꽤 오래 붙어 다녔어. 네가 뒤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무슨 속셈인지 내가 모를 것 같아?”“최우진이랑 어떻게든 엮이고 싶어서 내 취향이며 동선까지 그 주변 사람들한테 흘리고 다녔잖아. 아니야?”시아는 명실상부한 예술대 여신이었다. 뛰어난 외모와 독보적인 실력 덕분에 그녀를 짝사랑하는 남학생들은 줄을 섰다.하지만 워낙 철벽인 데다 온 신경이 학업과 피아노에만 쏠려 있어 남자들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다.다가갈 틈을 찾지 못한 남자들은 결국 시아의 주변인인 안나에게 눈길을 돌렸다. 안나에게 잘 보이면 시아에게 닿을 길이 열릴 거로 생각한 것이다.그간 안나가 남학생들에게 밀크티나 초콜릿을 받고 연애편지까지 대신 전해주는 것을 보면서도 시아는 일일이 관여하지 않았다.어차피 그 편지들의 종착역은 항상 쓰레기통이었으니까.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시아를 짝사랑하던 남학생 하나가 마침 최우진과 꽤 친한 사이였다.안나는 최우진에게 닿고 싶다는 욕심에 그 남학생에게 시아의 일거수일투족을 고스란히 팔아넘겼다.그맘때쯤 시아는 가는 곳마다 그 남학생과 마주치고 끈질기게 말을 걸어오는 통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시아가 딱 잘라 거절 의사를 밝히고 나서야 지긋지긋한 소란은 끝이 났다.시아의 추궁에 안나는 시선을 회피하며 옹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아니, 그건... 난 그냥 그 애가 인품도 괜찮고 조건도 좋으니 네가 좋은 인연을 놓치지 않았으면 해서 그런 거야. 다 너 생각해서 한 일이었다고.”“내 감정을 왜 네 멋대로 결정해?”시아의 눈빛이 서늘하게 굳었다.“전엔 네가 생각이 짧아서 그런 거겠거니 하고 다 넘어갔어. 널 믿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보니까 넌 처음부터 내 뒤통수를 칠 생각뿐이었네. 오늘부터 절교야. 너 같은 애랑 친구 안 해!”말을 마친 시아는 일말의 미련도 없다는 듯 그녀를 등지고 차갑게 돌아섰다.안나는 순간 사색이 되었다. 당황한 기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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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5화

소품실 근처를 지나던 허지안은 안에서 새어 나오는 인기척에 무심코 발걸음을 멈췄다.살짝 열린 문틈으로 엿본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시아가 안나의 뺨을 때리는 장면을 목격한 순간, 허지안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크게 흔들렸다.처음엔 그저 시아가 평소처럼 안하무인으로 주변 사람에게 화풀이하는 줄로만 알았다.하지만 대화의 전말을 다 듣고 나니 상황이 단번에 정리되었다.‘시아가 너무 착해서 문제지. 그동안 저런 애를 어떻게 옆에 뒀던 거야? 안나 저거 완전 악질이네. 뺨을 맞아도 싸지.’드레스 사건도 시아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자신이 괜히 사람을 오해했나 싶어 허지안은 마음 한구석이 찌릿했다.시아의 뒷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허지안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심스레 구석에서 걸어 나왔다.이제 막 송하나를 찾아 나서려던 참인데 소품실 문이 쾅 하고 열렸다.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안나가 악에 받친 표정으로 튀어나왔고 하필 고개를 든 곳에는 허지안이 서 있었다.제일 들키고 싶지 않았던 비참한 밑바닥을 들켰다는 생각에 안나의 이성이 끊어졌다.그녀는 분노와 수치심을 쏟아낼 대상을 찾았다는 듯 허지안을 잡아먹을 기세로 노려보며 쏘아붙였다.“여기서 다 엿듣고 있었지? 내 꼴이 웃겨? 이제 속 시원해?”처음에는 엿들었다는 사실에 움츠러들었던 허지안이었지만 안나의 뻔뻔한 태도에 금세 표정을 바꿨다.그녀는 눈썹을 까딱이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억지 부리지 마시죠. 누가 나쁜 짓 하라고 협박이라도 했어요? 시아 선배를 위한다는 핑계로 뒤에서 호박씨 까면서 남 해코지하다 들킨 거잖아요. 자업자득이지 누가 누굴 탓해요?”“진짜 말 그대로네요. 생긴 건 뻔뻔하고 하는 짓은 추잡스럽고 꼴에 욕심만 많아서는!”허지안은 한 걸음 다가가 안나에게 뼈 때리는 일침을 날렸다.“정신 차려. 그렇게 속 좁고 교활한 데다 계산기만 두드려대니 우진 선배는 물론이고 누가 너 같은 애를 좋아하겠어?”허지안의 비수 같은 말들에 안나의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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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6화

심성빈은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힌 채 눈을 감았다.몇 초간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사이 식은땀이 턱선을 타고 흘러내려 그의 앞머리를 축축하게 적셨다.한참이 지나서야 파도처럼 밀려오는 통증을 억누르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을 부축하려는 공수현의 손을 차갑게 밀어내며 나직이 내뱉었다.“괜찮아.”공수현은 타들어 가는 심정을 감추지 못한 채 초조한 목소리로 그를 다그쳤다.“대표님, 제발 그만 하세요! 등 상처가 또 터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서 처치 받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납니다!”하지만 애가 타는 공수현의 설득에도 심성빈의 의사는 확고했다.“아니. 차에 가서 간단히 지혈하고 붕대만 감으면 돼.”공연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30분, 병원을 왕복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무엇보다 그는 송하나가 나왔을 때 자신을 보지 못하는 상황을 용납할 수 없었다.더 중요한 건 병원 특유의 강렬한 소독약 냄새였다. 혹시라도 그 냄새가 몸에 배어 송하나가 눈치챌까 봐 그 무엇보다도 병원을 피하고 싶었다.자신이 다쳤다는 사실을 그녀에게만은 절대 숨겨야 했다.공수현은 더 이상 만류할 수 없음을 깨닫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의 지시에 따랐다.차 안에서 심성빈이 빳빳하게 각 잡힌 정장 재킷을 벗어 던지자 등 뒤의 셔츠가 붉게 물든 채 쩍 달라붙어 있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처참한 모습이었다.공수현은 손을 떨며 조심스럽게 상처 부위를 닦아내고 소독을 이어갔다.행여나 상처가 더 벌어질까 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정성을 다하는 손길이었다.그 시각, 백스테이지.송하나가 돌아오자마자 허지안이 헐레벌떡 그녀를 향해 달려왔다.“하나야! 여기 있었구나! 대박 사건이야. 진짜 엄청난 얘기 하나 들려줄게.”허지안은 남들 귀에 들어갈까 봐 다급하게 송하나의 손목을 낚아챘다. 인적이 드문 구석진 곳으로 그녀를 끌고 가더니 조금 전 소품실 앞에서 엿들었던 안나의 비열한 음모와 그 최후에 대해 낱낱이 털어놓기 시작했다.“네 드레스를 망친 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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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7화

“그때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몰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었지. 그런 막막하고 무력한 심정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알거든. 그래서 그때부터는 중요한 공연이 있을 때마다 습관처럼 드레스를 두 벌씩 준비해 둬. 나를 위한 비상구인 셈이지.”시아의 말에 송하나의 마음이 뭉클해졌다.겉보기엔 늘 당당하고 빛나는 시아에게도 그런 어두운 시련이 있었다니.어쩌면 스스로 같은 아픔을 겪었기에 남에게도 기꺼이 우산을 씌워줄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몰랐다.이 순간, 송하나는 시아의 투명하고 냉철한,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마음에 더욱 깊은 존경심을 느꼈다.어쩌면 시아가 드레스를 자신에게 준 것은 안나가 망가뜨린 그 상처를 대신 메워주고 싶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비록 시아가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안나는 그녀와 가까운 사람이었고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는 친구 사이였기에 습관적으로 감싸주었다.전에 처음 무대를 함께 준비하던 날, 안나가 무례하게 굴었고 이에 시아는 직접 사과하러 나왔었지.시아는 늘 그렇게 올곧고 책임감 있으며 듬직한 품격을 지닌 사람이었다.그제야 송하나도 마음을 열고 선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그럼 감사히 받을게요. 정말 고마워요, 시아 선배.”시아는 환하게 웃으며 송하나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그 눈빛에는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과 연민이 담겨 있었다.관객들이 하나둘 자리를 뜨고 송하나와 허지안도 함께 공연장을 나섰다.건물 밖으로 나서자 가로등 아래 서 있는 익숙하고 우아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바로 심성빈이었다.넉넉한 핏의 검은색 재킷을 걸친 그는 여전히 꼿꼿하고 수려한 자태로 서 있었다. 좀 전의 처참한 모습이라곤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품에는 탐스럽게 핀 하얀 장미 꽃다발이 안겨 있었다. 밤바람에 흩날리는 옷자락이 그의 분위기를 한층 더 다정하고 깊게 물들였다.옆에 있던 허지안이 송하나의 팔꿈치를 쿡 찌르며 짓궂게 웃었다.“하나야, 어쩐지 아까부터 안 보인다 했더니! 심 대표님이랑 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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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8화

송하나의 진심 어린 눈빛을 바라보며 심성빈은 마음이 녹아내렸다.그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래, 며칠 뒤에 원래 쓰던 거로 바꿔 놓을게.”별장으로 돌아온 송하나는 아직 무대 화장을 그대로 한 채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었다. 하루의 피로가 고스란히 녹아든 눈매였다.심성빈은 그녀의 지친 기색을 보며 다정하게 말했다.“오늘 고생 많았어. 일단 화장 지우고 따뜻한 물에 몸 좀 담가. 그래야 피로가 풀릴 거야. 일찍 쉬어.”송하나가 그를 바라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성빈 씨도요. 비행기 타고 먼 길 오느라 훨씬 힘들었을 텐데, 얼른 쉬어요.”두 사람은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문이 닫히자마자 심성빈은 꼿꼿했던 어깨가 무너져 내렸다.그는 검은색 외투를 벗어 던졌다등 뒤의 상처는 물에 닿으면 안 되기에 뜨거운 타월로 몸을 닦아내는 것이 최선이었다.서둘러 몸을 정돈한 심성빈은 상처를 가리기 위해 깨끗하고 헐렁한 홈웨어로 갈아입었다.다음 날 아침.심성빈이 눈을 뜨자마자 공수현의 전화가 걸려 왔다.“대표님, 등 뒤 상처는 반드시 전문적인 처치를 받아야 합니다. 그대로 두면 심각한 감염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어젯밤 간단한 지혈과 붕대 감는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했다.심성빈은 창가에 기댄 채 나지막이 대답했다.“알았어.”전화를 끊고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느릿하게 계단을 내려갔다.문득 가정부가 그를 발견하고 인사를 건넸다.“대표님, 아침 준비됐습니다.”“하나는요?”“아직 씻고 계십니다. 금방 내려올 거예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송하나가 내려왔다.“잘 잤어?”심성빈은 그녀를 바라보며 평소와 다름없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의자를 빼주었다.“오늘 학교에 별다른 일정 없어?”그는 늘 그렇듯 곁에서 아침을 챙기며 계란 껍질을 정성스레 깠다.송하나는 죽을 한술 뜨고 대답했다.“네, 없어요. 교류회도 잘 끝났고 학교도 하루 쉬거든요. 오늘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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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9화

송하나는 심성빈이 선물했던 핑크색 소형 스포츠카를 몰고 병원으로 내달렸다.급하게 응급실 데스크에서 정보를 확인한 뒤, 그녀는 허지안이 있는 병실로 쏜살같이 달려 들어갔다.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이마에 두꺼운 붕대를 감고 누워 있는 허지안의 모습이었다.“지안아!”송하나가 달려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살폈다.허지안은 송하나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친구의 초조한 얼굴을 보더니 손목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짐짓 밝은 척 대답했다.“괜찮아, 하나야. 별거 아니야. 그냥 작은 사고였어.”“처음 병원 왔을 땐 좀 어지러웠는데 지금은 훨씬 나아졌어.”그제야 송하나는 자초지종을 알게 되었다. 허지안이 아르바이트하던 학원에서 급하게 대타가 필요해 연락이 왔고 휴일이니 돈이나 벌어볼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가 그만 사고가 난 것이었다.맘이 급해 횡단보도를 건너다 달려오는 차를 미처 피하지 못했고 그 충격으로 머리를 바닥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그때 간호사가 검사 결과를 들고 들어왔다.“교수님, 환자분 검사 결과 나왔어요.”홍하나는 고개를 번쩍 들고 의사에게 물었다.“선생님, 결과는 좀 어떤가요? 많이 심각해요?”의사는 엑스레이 필름을 꼼꼼히 살피며 엄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현재로선 뇌출혈이나 골절 같은 심각한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머리 부상은 예후를 장담할 수 없으니 혹시 모를 지연성 출혈에 대비해 이틀 정도 입원해서 상태를 지켜봐야 합니다.”‘입원’이라는 단어가 떨어지자마자 허지안의 인상이 일그러졌다.“입원까지요? 선생님, 저 그냥 통원 치료하면 안 될까요? 집에 가서 푹 쉬면 금방 나을 것 같은데...”아르바이트해서 생활비라도 보태려던 참이었는데 돈은커녕 병원비만 쏟게 생겼으니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의사는 단호했다.“이봐요, 환자분, 몸이 곧 재산이에요. 머리 쪽 충격은 절대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입원해서 경과를 지켜보는 게 본인을 위한 거예요.”송하나는 그런 허지안의 손을 꼭 잡으며 안심시켰다.“돈 걱정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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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0화

밀려드는 불안감에 송하나는 다급히 심성빈에게 다가갔다.“피가 왜 이렇게 많아요? 어디 다친 거예요? 어디가, 어디가 다친 거냐고요!”심성빈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무슨 변명이라도 둘러대야 하는데 말문이 턱 막혀서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일촉즉발의 순간, 등 뒤에 있던 공수현이 기지를 발휘했다. 그는 얼른 자신의 손가락에 거즈를 감으며 웃는 얼굴로 끼어들었다.“하나 씨, 놀라지 마세요. 대표님이 아니라 제 피입니다. 아침에 회사에서 대표님 과일 깎아드리려다 그만 손을 크게 베어서요. 상처가 깊어서 피가 좀 많이 났는데 대표님이 걱정된다며 굳이 병원으로 데려다주셨지 뭡니까.”송하나는 반신반의하며 심성빈을 바라보았다.이에 심성빈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공 비서가 손을 좀 다쳤어.”그의 평온한 모습과 공수현의 붕대 감은 손가락을 보니 송하나의 의구심도 한결 옅어졌다.“난 또 성빈 씨가 다친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요.”심성빈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그런데 하나 너는 병원에 웬일이야? 어디 아파?”“아니요.”송하나는 차분히 설명했다.“지안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요. 아침에 아르바이트하러 가다가 차에 부딪혔는데 머리를 좀 다쳤대요. 병원 전화를 받고 재빨리 달려왔죠.”“그럼 상태는 어때? 많이 심각해?”“다행히 너무 심각한 건 아니에요. 지연성 출혈을 확인하려고 이틀 정도 입원하기로 했어요.”“사고 낸 운전자는 찾았어? 내 도움 필요해?”“괜찮아요. 경찰이 조사 중이니 금방 찾을 거예요. 제가 알아서 하니 걱정 마세요.”심성빈이 워낙 바쁜 사람이라 이런 사소한 일로 그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옆에서 지켜보던 공수현은 손에 땀이 흥건했다. 혹시라도 이 상황이 들통날까 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적절한 타이밍에 그는 둘 사이의 대화를 끊어내며 심성빈에게 말했다.“대표님, 슬슬 이동하셔야겠습니다. 20분 뒤에 중요한 온라인 회의가 있어서 더 지체하면 안 됩니다.”심성빈의 눈빛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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