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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별이 되어 빛나리: Chapter 51 - Chapter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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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사진 속 이강우의 손이 송태리의 아랫배에 살짝 닿아 있었다.낮게 드리워진 그의 눈빛은 따뜻한 조명과 어우러져 평소와는 다르게 부드럽고 다정해 보였다.송하나는 막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때 휴대전화가 진동했고 화면에는 사진 한 장이 도착해 있었다.아슬아슬하면서도 다정한 그 장면에 송하나의 손가락이 순간 멈췄다.결혼 후 4년 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을 얻지 못했던 남자가 송태리에게는 이렇게 한없이 다정할 수 있었다.곧이어 두 번째 문자가 도착했다.[미안, 잘못 보냈어.]미안하다는 그 말이 오히려 더 신경에 거슬렸다.송하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놓아두었던 연고를 한동안 바라보다가 결국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이미 날카로운 상처가 너무 많았기에 가끔 찾아오는 달콤한 위로는 오히려 불쾌함만 안겨줄 뿐이었다.송하나는 침대 머리맡의 등을 끄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다음 날 아침, 송하나와 서유준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리자 안에는 이강우와 송태리, 최로운이 타고 있었다.순간 공기가 얼어붙는 듯했다.서유준은 송하나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다음 걸 타자.”송태리는 이강우의 팔에 매달린 채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안 타? 그럼 문 닫을게.”송하나는 가방끈을 꽉 쥐고 단호하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그녀는 자신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서유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탔다.좁은 공간에 다섯 사람이 바짝 붙어 서 있었고 송하나는 이강우에게서 익숙한 삼나무 향기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다.“강우 씨.”송태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어젯밤 늦게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오늘은 훨씬 나아졌어요.”이강우는 무심하게 대답했다.“천만에.”송하나는 무표정으로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등을 바라보았다.서유준은 자연스럽게 송하나 곁으로 다가가 일종의 보호막처럼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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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이강우의 턱선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눈빛에는 날카로운 그림자가 스쳤다.“말이 없다고 널 언어장애인으로 생각 안 할 테니까 그 입 다물어.”아침 햇살이 해변을 온통 물들였을 때, 동료들은 모래사장에 마련된 배구장에서 뜨거운 경기를 준비하며 열기를 더했다.손목을 다친 송하나는 호텔에 남아 쉬기로 했다.서유준은 대표로서 단체 활동에 함께해야 했지만 떠나기 전 그녀를 찾아가 살며시 당부를 건넸다.“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해.”호텔 카페 창가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던 송하나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앞에 놓인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어느새 물안개만 맺힐 뿐이었다.그때, 늘씬한 실루엣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심성빈이었다.그는 전화기를 귀에 대고 카운터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에서는 최로운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넌 대체 언제 오는 거야? 우리를 바람맞히는 거 아니지?”“도착했어. 5분만 기다려.”심성빈의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짖게 내려앉았고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전날 밤새 일을 처리하고 오늘 아침 일찍부터 이곳을 향해 달려온 모양이었다.“주문하시겠어요?”“아메리카노 테이크아웃으로.”심성빈이 커피를 받아 들고 돌아서려는 순간, 화장실을 향하던 송하나와 부딪쳤다.차가운 커피가 그의 정장 위로 쏟아지며 짙은 갈색 자국을 남겼다.심성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간신히 정신이라도 차리게 해줄 커피를 한 모금도 못 마시고 옷에 바쳤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정말 죄송합니다!”송하나는 허둥지둥 휴지를 집어 그의 옷을 닦기 시작했다.고개를 숙인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심성빈은 눈에 익은 얼굴을 알아챘다.햇살 아래 하얀 피부는 투명하게 빛났고 당황한 표정에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은 마치 나비의 날갯짓 같았다.‘송하나? 이강우와 이혼한다더니 왜 여기에 있는 거지?'심성빈이 상황을 파악하는 사이, 송하나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옷을 벗어주시면 제가 세탁해 드릴...”말을 마치기도 전에 심성빈의 얼굴을 본 송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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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심성빈, 뭘 그렇게 멍하니 보고 있어?”뒤에서 최로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성빈이 고개를 돌리자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이강우 일행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아무것도 아니야.”그는 시선을 거두며 말을 아꼈다.“이제 다 모였으니 모터보트 경주나 해볼까?”최로운이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며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지는 사람은 이긴 사람 이름으로 자선 단체에 2천만 원 기부하기!”이강우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심성빈은 새로 가져온 커피를 받아 들며 덧붙였다.“나도 좋아.”송태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머뭇거리며 말했다.“저도 하고 싶은데 잘 못해서...”“나랑 같이 타.”이강우의 말에 송태리는 기분이 밝아졌다.“괜찮겠어요?”최로운이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강우는 우리 셋 중에 모터보트 운전면허를 가장 먼저 딴 사람이잖아요. 실력도 제일 좋고. 태리 씨를 데리고 탄다고 질 것 같지는 않은데요.”심성빈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강우야, 나 방금 네 아내를 봤는데 같이 갈 거야?”“송하나는 강우랑 같이 온 거 아니야.”최로운이 장난스레 말했다.“현진 바이오테크의 일원으로 온 거지.”심성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현진 바이오테크에서 일한다고?”“그렇다니까.”최로운이 이강우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덧붙였다.“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회사 대표랑 썸 타는 것 같더라. 사이가 매우 좋아 보이던데.”심성빈은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현진 바이오테크는 심성빈이 다음 주에 독점 협력을 논의하려던 회사였다.현진에서 새로 개발한 항암제를 독점 계약으로 가져오려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다.이강우는 담배를 끄며 해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시합 안 할 거야?”“하지, 당연히 해야지!”모두 그의 뒤를 따라갔다.세 척의 모터보트가 해상에 일렬로 배치되어 있었고 이강우, 심성빈, 최로운은 각각 보트 앞에 서서 출발 준비를 마쳤다.“앞쪽 작은 섬 한 바퀴 돌고 먼저 돌아오는 사람이 이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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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최로운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리던 이강우의 얼굴에 그림자가 스쳤다.“강우 씨?”송태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그의 팔을 꼭 잡으며 말했다.“배가 고픈데 뭐 좀 먹으러 갈래요?”이강우는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래, 뭐 먹을까?”“다 좋아요. 강우 씨가 정하는 대로 할게요.”그는 송태리의 손을 잡고 해변의 바비큐 장소로 천천히 걸어갔다.밥 기운이 살짝 내려앉았고 바닷바람에는 약간의 짭조름한 기운이 섞여 모래사장을 스쳤다.펑!갑작스러운 폭죽 소리와 함께 밤하늘이 화려한 불꽃으로 물들었다.송하나가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동료 임지연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어디 가세요? 폭죽 보러 가야죠! 이거 이 대표님이 여자 친구분께 특별히 준비한 이벤트라고 해요. 우리도 같이 볼 수 있게 되었는데 빨리 가요!”송하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아니에요, 좀 피곤해서 먼저 들어갈게요.”“에이, 이런 단체 행사가 얼마나 있겠어요.”임지연은 그녀를 재촉하며 말을 이었다.“30분이나 계속 터진다네요. 정말 예쁠 거예요.”송하나는 어쩔 수 없이 임지연에게 이끌려 해변으로 나섰다.화려한 폭죽이 터질 때마다 구경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감탄을 연발했다.불꽃이 하늘을 수놓을 때마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이강우의 당당한 옆모습과 그 곁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송태리의 얼굴이 선명하게 들어왔다.“정말 로맨틱하네요.”임지연이 작은 목소리로 감탄했다.“이 폭죽들 다 특별 주문한 거라 하나에 수백만 원씩 한다네요.”송하나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기 남편이 내연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폭죽을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우스웠다.“화장실에 다녀올게요.”임지연이 어두워진 송하나의 얼굴을 보고 걱정 가득히 물었다.“몸이 불편하세요?”“더위를 좀 먹은 것 같아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즐겁게 구경하세요.”송하나는 모래사장을 벗어나 성큼성큼 걸어갔다.등 뒤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폭죽 소리는 귀에 거슬릴 뿐이었다.밤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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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정곡을 찔린 송태리는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높였다.“너!”“닥쳐!”송하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송태리의 말을 끊으며 날카롭게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 “옛날 같았으면 너는 첩도 아닌 신분이야! 정부인 앞에서 고개를 조아려도 모자랄 판에 네가 뭔데 나를 비아냥거려. 이씨 가문을 대신해 예의를 가르치는 거니까 새겨들어!”송하나는 분노에 몸이 떨리고 있었다.“너! 너 딱 기다려. 지금 바로 강우 씨를 불러내서 제대로 혼내줄 테니까!”“얼마든지.”송하나는 개의치 않았다. 이미 상황이 여기까지 왔는데 이강우가 뭐라고 한들 두려운 것도 없었다.그녀는 송태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어제 손목을 덴 것에 대한 복수도 이 한 방으로 충분히 갚았다.송태리는 화가 치밀어 즉시 이강우에게 달려가 하소연하려 했지만 문을 두드리려다 순간 멈칫하며 곰곰이 생각했다.‘아니지. 송하나에게 맞았다는 걸 강우 씨가 알게 되면 내가 얼마나 무능해 보이겠어. 게다가 작은 일을 크게 만든다고 뭐라 할 수도 있어.'송태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그녀의 눈빛 속에는 날카로운 결의가 번뜩였다.‘송하나, 기다려. 이번 일 반드시 갚아줄 거야.'그때, 심성빈은 방문을 살짝 열어둔 채 문에 기대어 서 있었다.그는 손잡이에 손을 올린 채 밖의 상황을 모두 듣고 있었다.뺨을 때리는 소리와 송하나의 날카로운 말 그리고 송태리의 격분한 협박까지.복도가 다시 고요해지자 그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문고리에 걸린 정장에 멈췄다.주름 하나 없이 깔끔하게 다림질된 옷을 보고 심성빈은 낮게 웃으며 옷을 집어 들었다.“재밌네.”한때는 이강우 뒤에서 조용하고 얌전하게, 마치 생기 없는 장식품처럼 있던 여자가 지금은 완전히 다른 면을 보여 주고 있었다.송태리를 때리는 그녀의 행동에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었고 내뱉은 말 한마디 한마디는 송곳처럼 날카로웠다.다음 날 아침, 송하나는 동료들과 함께 호텔 로비에서 체크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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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심성빈은 말없이 한들을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렸다.그의 시선은 백미러에 고정되어 있었다.송하나는 흰 셔츠에 연청색 바지를 차려입고 차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바닷바람에 그녀의 머리카락이 나부끼고 햇살을 가득 받은 모습은 청순하면서도 묘한 서늘함을 풍겼다.심성빈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스쳤고 그는 무의식적으로 도어락을 해제했다.그는 자신도 모르게 송하나가 차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송하나가 차 문손잡이에 손을 뻗는 순간, 이강우의 롤스로이스가 끼어들어 정확히 그녀 맞은편에 멈춰 섰다.“태리야, 너는 성빈이 차에 타.”송태리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왜요?”“할머니께서 방금 퇴원하셔서 본가에 가봐야 해.”송태리는 몹시 불편해했지만 할머니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그녀는 차에서 내리며 이를 악물고 송하나를 노려보았다.송하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다가 뒷좌석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그녀는 창문에 몸을 기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이강우는 백미러를 통해 송하나를 차갑게 훑어보았다.거리를 두는 그녀의 태도에 가슴 한구석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꿈틀거렸다.“내가 네 운전기사야?”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는 불쾌함이 서려 있었다.송하나는 천천히 눈을 뜨며 담담하게 말했다.“조수석 향수 냄새가 너무 강해서 불편해요.”그녀는 잠시 멈칫하다 다시 덧붙였다.“운전기사가 되기 싫으시면 지금이라도 내릴게요.”할 말을 잃은 이강우는 운전대를 꽉 움켜쥐었다.평생 누구에게도 무시당해 본 적 없는 그였는데 하필 자신이 눈여겨보지도 않던 송하나에게서 이런 무심함을 받으니 분노가 치밀었다.그럼에도 그는 이를 악물고 한마디를 내뱉었다.“출발한다.”차는 호텔을 떠나 안정적으로 달렸고 차 안은 두 사람의 숨소리마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아침부터 바닷소리에 잠을 설친 탓인지 송하나는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지더니 편안한 자세로 몸을 웅크린 채 어느새 잠이 들었다.이강우는 백미러로 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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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햇살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어 두 사람을 따스하게 감싸안았다.고요한 빛줄기 속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어쩐지 이 장면이 너무 눈부시게 보였던 이강우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점심을 마친 후, 홍경자는 기운이 없어 안정인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가 쉬었고 거실에는 이제 이강우와 송하나 단둘만이 남았다.송하나는 얼굴의 미소를 거두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할머니도 이제 퇴원하셨고 건강에도 큰 문제없으시니 저희 이제 이혼 절차를 진행하죠.”옥 단추를 만지작거리던 이강우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송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왜 그렇게 조급해? 나랑 빨리 이혼해서 네 옆자리를 그 선배한테 내어주려고?”그의 눈빛에는 조롱과 비아냥이 가득했다.송하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강우 씨, 저랑 선배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그녀는 이강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마디 한마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그와 반대로 송태리는 이미 이강우 씨의 옆자리를 차지할 날만 기다리고 있겠죠.”그녀의 평온한 얼굴에 불쾌감이 치밀었던 이강우는 목소리도 자연스레 날카로워졌다.“네 말이 맞아. 내 옆자리는 이제 빨리 태리에게 줘야겠어.”이강우의 말에 송하나는 뜨거운 것에 덴 듯 손끝이 살짝 움츠러들었지만 곧 냉정을 되찾았다.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러세요. 저는 별 상관없어요.”말을 끝내고 송하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이강우는 등을 곧게 세운 채 계단 모퉁이로 사라지는 송하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순순히 받아들이는 그녀의 대답이 이강우의 마음속에는 어떤 격렬한 반박보다 더 큰 갑갑함을 안겨주었다.예전 같았으면 담담하게 이혼을 받아들이는 송하나의 태도에 안심했을 터였다.필경 그때 이강우에게는 송하나와 이혼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으니까.그러나 지금은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쾌감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어떻게 저렇게 아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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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이강우의 얼굴에 그림자가 깊게 드리웠다.그는 일을 처리할 때면 빠르고 단호함을 원칙으로 삼는 사람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발목이 잡히는 상황을 가장 견디기 어려워했다.“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최소 석 달은 걸릴 것 같습니다.”윤태오가 무거운 어조로 한숨을 내쉬었다.“상대측이 철저히 준비해 온 모양입니다. 이 시점에 소송을 제기한 것도 우리의 허를 찌르려는 의도일 수 있어요.”이강우는 서류를 책상 위에 내던졌다.‘석 달이라...'그것은 명목상으로나마 이어지고 있는 송하나와의 결혼생활이 최소 석 달은 더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미였다.이혼을 간절히 바라던 송하나가 이 소식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어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등을 돌려 걸어가던 그녀의 뒷모습이 떠오르자 이강우의 마음속 불쾌감이 또다시 치밀어 올랐다.“뒤에서 누가 이런 장난을 치고 있는지 조사해 보세요.”그는 냉정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그리고 송하나에게 이혼은 당분간 보류한다고 전해 주시고요.”“알겠습니다, 대표님.”윤태오가 사무실을 나가자 혼자 남은 이강우는 의자에 몸을 기대어 눈을 감았다.하지만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머릿속에는 자꾸 송하나의 얼굴이 맴돌았다.이런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이 그를 묘하게 불편하게 만들었다.윤태오가 이강우의 지시에 따라 송하나에게 연락했을 때, 전화 너머의 그녀는 평온 그 자체였다.“송하나 씨, 대표님과의 이혼 문제는 당분간 보류가 필요합니다.”송하나는 실험 데이터를 정리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이야기는 제 변호사를 통해 해주세요. 앞으로 이혼 관련 사항은 그쪽과 연락하시기를 바랍니다.”말을 마치는 대로 송하나는 윤태오가 무언가를 더 말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녀는 휴대전화를 서랍에 넣고 다시 빽빽한 숫자와 그래프로 가득한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다음 날, 심성빈이 현진 바이오테크를 찾아 협력을 논의했다.현진 바이오테크가 연구한 항암제는 임상실험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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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심성빈은 과연 송하나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했다. 송하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녀는 논리 정연하게, 한마디 한마디에 무게를 실어 말했다.“현진이 협력사를 선택할 때 기준은 딱 세 가지입니다. 첫째, 양측의 전략 목표가 일치하는지입니다. 심하 그룹은 최근 의료와 미용 분야에 주력하고 계시잖아요. 현진 항암제의 장기적 마케팅 계획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둘째, 협력 방식이 대등한지입니다. 심하 그룹이 요구한 독점 대리권은 약물의 미래 활용 범위를 제한할 수 있어 저희 개발 의도와 맞지 않습니다. 셋째, 기술 보안 체계가 완벽한지입니다. 심하 그룹은 지난해 연구 자료 유출 사건이 있었고 현재 리스크 관리 등급은 저희 협력 기준에 미치지 못합니다.”송하나는 한 가지를 더 덧붙였다.“또한 심하 그룹이 제시한 가격은 업계 평균보다 15% 낮으면서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런 불균형 조건은 어떤 회사도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까요?”그녀의 발언은 논리 정연했고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모두 프로젝트 자체의 전문적 분석에 근거한 것이며 개인감정과는 무관했다.심성빈은 멍한 표정으로 송하나를 바라봤다.그는 송하나가 어느 정도 개인적인 변명할 거라고 예상했다.하지만 그녀가 제시한 이유는 모두 합리적 근거가 있는 사업 분석뿐이었고 모든 부분에서 중요한 요점을 정확히 파고들고 있었다.순간 심성빈은 입이 열 개라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그는 그저 놀람과 당혹감이 섞인 눈빛으로 송하나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마침, 건물 밖으로 걸어 나오던 서유준이 이 장면을 목격했다.그는 송하나 곁으로 다가가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심성빈을 바라보며 말했다.“심 대표님, 하나에 대해 너무 모르고 계시는 것 같네요. 설마 하나가 현진 바이오테크에 이름만 걸어둔 연구원이거나, 제 덕으로 출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시겠죠?”서유준은 살짝 웃으며 진지한 어조로 덧붙였다.“하나는 우리 회사의 핵심 인재입니다. 20살이 되기도 전에 희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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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이강우의 기억 속 송하나는 그저 얼굴이 그럭저럭 예쁘고 특별한 능력도 없는 평범한 여자에 불과했다.심성빈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오늘 현진과 협력 논의하러 갔다가 거절당했어. 중요한 건 현진의 핵심 연구원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거야. 심하 그룹이 그들의 협력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그래서?”이강우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렸다.“그게 송하나랑 무슨 상관인데?”“그 핵심 연구원이 바로 송하나야.”심성빈은 한 마디 한 마디를 강조하듯 말했다.“서유준이 그러던데. 현진이 업계를 뒤흔든 그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었던 건, 송하나의 역할이 컸다고.”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송태리가 보온병을 들고 들어오며 얼굴에 달콤한 미소를 띠었다.“강우 씨, 야근하신다고 해서 제가 야식 좀 챙겨 왔어요.”그녀는 보온병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는 발치에 앉아 있던 고양이를 안았다.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탓인지 고양이는 낯선 듯 발톱을 세워 그녀의 손목을 할퀴었다.송태리의 손목에는 금세 붉은 줄이 그어졌다.“아야!”송태리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손목을 바라보더니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서운한 어조로 말했다.“오랫동안 못 봐서 그런가? 귤이가 저를 기억 못 하는 것 같아요.”이강우의 시선이 그녀의 상처에 머물렀다.“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어?”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기 쪽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일이 좀 생겨서 먼저 끊을게.”심성빈이 무언가를 말하려는 순간, 이강우는 벌써 전화를 끊어버렸다.심성빈은 끊긴 전화를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는 이강우가 항상 하찮게 여기던 아내가 사실은 의약계의 숨은 거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닌 듯했다.‘그래, 관두자. 어떤 진실은 남이 알려주는 것보다 직접 깨달을 때 더 충격적이니까.'이강우는 송태리의 상처를 처리하러 병원으로 가려고 이미 차 열쇠를 집어 들고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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