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얘기에 미쳐 버린 내 남편: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좋아요, 할머니!”도우미의 손을 잡고 나가면서도, 루이는 아쉬운 듯 유한을 몇 번이나 돌아봤다. 평소에는 아빠가 너무 바빠서 거의 볼 수도 없었으니까.루이가 도우미의 손에 이끌려 나간 뒤, 강덕순은 어두운 표정으로 유한을 바라봤다.“너 평소에도 루이한테 이런 태도니?”소파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있던 유한은, 손에 쥔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무심한 태도를 취했다.“제가 뭘요?”“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네 아이야. 네 피가 흐르는 네 딸이야. 루이한테 좀 살갑게 대하면 안 되겠니? 적어도 아빠 노릇은 해야잖니!”어떤 말이 귀에 거슬렸는지, 유한은 손안에 굴리며 장난치던 라이터를 툭 건드렸다. 순간 ‘탁’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터 뚜껑이 닫혀버렸다.“지금 제가 루이한테 못 해준다는 거예요?”강덕순은 미간을 팍 구겼다.“네가 루이한테 잘해준 게 있어? 아버지 자격은 있고? 너 부모가 함께하는 루이 유치원 행사에 참석한 적이라도 있어?”피식 냉소를 흘린 유한은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을 하고서 라이터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제가 먹고 입는 걸 남보다 못 해준 게 있어요? 해성시에서 루이가 제 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것만 해도 이미 남들보다 훨씬 더 나은 건데요.”“너!”강덕순은 그 말에 유한을 째려봤다.“그게 같아? 물질적인 것과 감정적인 걸 어떻게 함께 논해?”유한은 더 이상 할머니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눈썹을 추켜세울 뿐 반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집안을 한 바퀴 훑어본 뒤 말했다.“뭘 봐?”“그냥 대충 둘러본 거예요.”“집에 뭐 볼 게 있다고?”강덕순은 의미심장하게 유한을 훑어보았다.“걔를 찾는 거지?”유한이 할머니에게 대답하려고 입을 열려고 할 때. 강덕순이 먼저 입을 열었다.“찾을 필요 없어. 리은이는 없으니까.”유한은 입꼬리를 올리면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누가 진리은을 찾는대요?”“오늘 일이 있어 못 온다더구나.”“그래요?”유한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강덕순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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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유한은 결국 루이를 데려갔다.꼬맹이는 앙증맞게 뒷좌석에 앉은 채 입을 꾹 다물었다.선호가 루이를 만난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하지만 매번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아가씨의 외모는 사모님을 너무나 닮았다. 심지어 판박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다.다만 두 부녀 사이는 어딘가 좀 서먹해 보였다.루이는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처음으로 아빠와 단둘이 있는 터라 루이는 바짝 긴장했다.그 때문에 집으로 가는 내내 아빠를 얼마나 많이 힐끗 쳐다봤는지 모를 정도였다.유한이 그 동작을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니다. 결국 루이가 몇 번이나 유한을 힐끗 쳐다보자, 고개를 돌려 딸을 바라면서 말했다.“뭘 그렇게 보니?”루이는 부끄러운 듯 싱긋 미소를 지었다.“아빠요.”유한은 자기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자그마한 얼굴을 보면서 씩 미소를 지었다.“내가 뭐 볼 게 있다고?”긴장한 듯 양쪽 검지를 맞댄 루이가 용기를 내서 말했다.“아빠가 평소에 바빠서 집에서 못 보니까, 기회가 생겼을 때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요.”유한은 눈썹을 살짝 치켜 세우면서 루이를 가만히 살펴봤다.“엄마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어?”“아니요.”루이는 고개를 저었다.유한은 리은의 도플갱어인 루이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아빠가 없을 때, 엄마는 평소에 너한테 아빠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루이는 눈을 깜빡이며 한참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자그마한 머리 위에 예쁘게 묶은 똥머리가 흔들리는 걸 보자, 유한은 참지 못하고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는 조금 전보다 더 온화한 말투로 물었다.“고개를 저은 건 무슨 뜻이야?”“음. 엄마는 아빠 얘기를 거의 안 해요. 그래서 고개를 저은 거예요.”유한의 눈이 가늘어졌다.“엄마가 너한테 아빠 얘기를 거의 안 한다고?”“네.”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유한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면서 가볍게 웃었다.루이는 아빠의 잘생긴 얼굴을 보면서 살짝 불렀다.“아빠?”어린 딸을 바라본 유한이 고개를 살짝 들고 말했다.“할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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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선호는 백미러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유한은 어두운 눈빛으로 눈앞의 어린 딸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때 루이가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작은 몸을 세우고는 유한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아빠. 저는 사실 아빠도 사랑해요. 그러니까 화내지 마세요. 앞으로 아빠 보러 자주 갈게요. 네?”그 모습에 선호는 심장이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꼬마 아가씨한테 대표님은 왜 그렇게 쌀쌀맞게 대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사모님을 싫어해서 아가씨까지 싫어하시나?’‘하지만 대표님이 사모님을 미워한다고 하기에는...’걸리는 게 너무 많았다.이혼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하지만 두 사람은 함께 5년이나 생활했다.게다가 이혼은 사모님이 먼저 언급했다.때문에 선호는 사모님에 대한 대표님의 태도가 너무 이상했다. 물론 어디가 이상한지 콕 짚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대표님이 사모님을 신경 쓴다고 하기에는 태도가 너무 무신경한 듯했고.신경 쓰지 않는다고 하기에는 또 그런 것 같지도 않았다.어찌 됐든 두 사람의 사이는 너무 복잡했다.한편 유한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린 녀석이 갑자기 이렇게 애교를 부릴 줄은 몰랐다.진한 우유 냄새에 유한의 눈빛이 한층 어두워지더니, 약간 뻣뻣한 자세로 딸을 안아 자기 무릎에 앉히고는 한 손으로 자그마한 얼굴을 들어 올렸다.“아빠랑 엄마가 헤어진다는데 할 말이 없어?”루이 역시 깜짝 놀란 모습이었다. 처음으로 아빠 품에 안긴 아이는 눈에 띄게 좋아했다.“어른들 일은 저도 몰라요. 그저 엄마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만 알아요.”유한은 벌써 철이 든 어린 딸을 바라보면서 눈썹을 움찔거렸다.루이는 말을 마치자마자 하품했다.“아빠, 저 졸려요. 자고 싶어요.”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이는 자그마한 머리를 유한의 품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어린애라서 그런지 눈을 감자마자 바로 꿈나라로 향했다.유한은 뻣뻣한 자세로 루이를 안고 있었다. 그걸 본 선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아가씨를 옆으로 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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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사모님, 오셨어요?”“루이는 안에 있나요?”“네. 사장님이 오늘 루이 아가씨를 데리고 돌아오셨어요. 루이는 지금 방에서 자고 있어요.”고개를 끄덕인 리은은 신발을 벗고 곧장 2층으로 향했다.“사장님이 정말 사모님과 이혼할까?”“알게 뭐람? 사장님이 그동안 사모님을 좀 싫어했어? 이번에 사모님이 먼저 이혼을 언급했으니 이혼하겠지, 뭐.”“하. 사모님처럼 좋은 분을 사장님은 왜 안 좋아하시는지.”“보나 마나 그때 사모님이 약 탄 이유 때문이겠지...”“그런데 사모님은 그럴 분이 아니신데. 오해일지도 모르잖아.”“사장님이 어떤 분이신데. 오해라면 진작에 조사했겠지. 내가 볼 때 약을 탄 건 십중팔구 맞을 거야...”딸의 방문을 연 리은은 침대에 누워 자는 딸을 보자마자 얼른 인기척 소리를 줄였다. 살금살금 침대 곁으로 다가간 그녀는 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루이야. 엄마가 데리러 왔어. 루이야?”리은은 무의식적으로 목소리를 낮췄다.“깨울 작정이야?”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나직한 목소리에 리은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유한은 금방 샤워를 마쳤는지 문 앞에 기대 그녀를 바라봤다.유한을 힐끗 보고 시선을 거둔 리은은 다시 딸을 바라봤다. 잠시 망설이던 끝에 잠든 딸을 안고 떠나기로 결심했다.그 모습을 본 유한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애가 잠들었잖아. 안 보여?”리은은 불쾌함이 가득한 유한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유한이 갑자기 왜 차가운 표정을 짓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루이는 한번 잠들면 쉽게 깨지 않으니까 바로 데려갈게. 오늘 고마웠어.”리은의 말은 예의 바른 동시에 거리감이 느껴졌다. 말을 마친 리은은 딸을 안으려고 손을 뻗었다. 하지만 딸에게 닿기도 전에 유한의 손이 리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어디로 데려가려고? 그 개집 같은 아파트로?”리은이 세를 든 집은 비록 작지만 그래도 모든 게 구비되어 있었다.“개집이 아니야.”“개집이 아니면 뭔데? 우리 주씨 가문의 딸을 그런 작은 집에서 지내게 하려고? 내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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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이러지 마!”“주유한, 이러지 마! 우리 이혼하기로 했잖아!”유한은 리은의 턱을 잡은 채 그녀를 자신의 아래에 가두었다. 검은빛이 일렁이는 눈동자는 오롯이 리은을 향한 채였다.“아직 안 했잖아.”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의 입술이 리은을 덮쳤다.마침 리은이 고개를 돌려 피하는 바람에, 유한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에 떨어졌다.“안돼. 이거 놔. 싫어. 하지 마!”리은의 목덜미를 따라서 유한의 키스가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그러다가 셔츠가 거슬리는지 거칠게 옷을 잡아 뜯었다. 다음 순간 단추들이 뜯겨 바닥에 이리저리 떨어졌다.“역시 슬립 치마를 입는 게 더 마음에 들어.”리은은 미간을 찌푸린 채, 천장을 쳐다보며 불쑥 말을 내뱉었다.“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왜 건드리는 거야?”두 사람은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 사이가 여전히 나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부 생활은 유독 순조로웠다.주유한이 허인영과 해외로 휴가를 떠날 때 말고는, 적어도 한 달에 2번은 부부관계를 가졌다.동작을 멈춘 유한이 리은의 고개를 돌리며 비아냥거렸다.“꼭 사랑해야 잘 수 있다고 누가 그래? 지난 5년 동안 나랑 쭉 잤으면서, 그 질문이 우습지 않아?”리은은 눈을 질끈 감으며 유한에게 도리를 따지려고 했다. 이왕 헤어지기로 했으니 깔끔하게 헤어질 생각이었다.“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면 재미도 없잖아. 사실 나랑 이혼하면 언제든 좋아하는 여자랑...”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리은의 턱에 고통이 전해졌다. 다음 순간 그녀의 시선은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유한의 시선과 맞부딪쳤다.“그래서 지난 5년 동안 나랑 침대에서 재미없었어?”유한이 왜 이 문제에 집착하는지 리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분명 이혼하면 떳떳하게 허인영과 만날 수 있다고 했는데 말이다.그때가 되면 두 사람이 더 이상 바람피우러 해외로 나갈 필요도 없이, 언제든 포옹하고 키스하고 심지어 잠자리를 가질 수 있다.“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그럼 무슨 뜻인데?”유한은 갑자기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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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점점 다가오는 유한을 보자, 리은의 심장은 쿵쿵 뛰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침실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그 멜로디는 너무나 익숙했다. 유한이 허인영 전용으로 설정해 둔 벨 소리였다.수많은 사람들 중, 유독 허인영한테서 전화가 걸려올 때만 다른 벨 소리가 울렸다.“핸, 핸드폰이 울리는데 안 받아?”유한은 리은의 속내를 꿰뚫어 보려는 듯 빤히 응시하며 말했다.“내가 받았으면 좋겠어?”“예전에는 항상 받았잖아.”유한은 리은을 한참 동안 응시하다가 욕실을 나갔다. 그러자 리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는 이 벨 소리만 들으면 가슴을 조이면서 불안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해방되게 해줘서 감사할 따름이었다.리은은 옆에 있는 목욕 타월로 꽁꽁 싸맨 뒤 욕실을 나섰다. 욕실 문 앞에 도착하기 바쁘게, 전화 건너편의 사람을 달래는 유한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렸다.“지금 바로 갈게.”전화를 끊은 유한은 곧바로 밖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돌려 리은을 바라봤다.과거의 리은은 자기 마음을 애써 숨기려고 해도 은연 중에 감정이 새어 나왔다.하지만 지금은 표정이 평온하다 못해 눈동자조차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유한은 핸드폰을 꽉 쥔 채 리은을 응시했다.리은은 유한이 대체 뭘 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자신은 유한을 보고 싶지 않아서 욕실 문을 닫아버렸다.온몸이 흠뻑 젖은 탓에 이대로 떠날 수는 없었다.굳게 닫힌 욕실 문을 본 유한의 표정은 서리가 내린 것처럼 차가워졌지만, 결국 입술을 꾹 다문 채 집을 나섰다.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리은은 옷장을 열었다. 안에는 그녀가 예전에 입던 옷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올 때 입었던 옷은 이미 다 젖어 더 이상 입을 수 없었기에, 할 수 없이 옷장 안에서 옷을 골라야 했다.옷을 갈아 입은 리은은 딸의 방으로 돌아가서 깊이 잠든 루이를 조심스럽게 안았다.“음. 아빠...”딸의 웅얼거림에 리은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도 그럴 게, 유한은 그동안 루이와 단 한 번도 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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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그래. 아주 좋아. 전화를 안 받는다 이거지? 이제 막 나가네?”밤이 지나고 아침이 다가오자, 리은은 딸을 유치원에 보내고 출근했다.그러다가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수군대며 가십거리를 말하는 걸 들었다.“혹시 기사 봤어?”“봤지, 그럼. 그런데 주강그룹 대표는 진작 결혼하지 않았어? 왜 다른 여자 때문에 화를 내는 거지?”“결혼했지. 그런데 어젯밤 그 여자가 누군지 알아?”“누군데?”“예전에 결혼하기로 했던 사람이래.”“옛 애인?”“응. 사진을 보니 상대 남자가 반 죽을 정도로 두들겨 맞았던데. 얼굴이 시퍼렇게 멍 들어서 친엄마도 못 알아볼 지경이었다니까.”“하. 부자들의 사생활은 참 재밌다니까. 주 대표 아내가 그 사진을 보면 어떤 기분일까?”“그러고 보니 너무 이상하네. 인터넷에는 왜 주 대표 아내에 대한 얘기가 없지? 마치 누군가 일부러 지운 것처럼. 뭐가 이렇게 은밀한 건데?”“신비해 봤자지 뭐. 그래도 결국 자기 남자도 단속을 못 하잖아. 재벌가 사모님도 쉬운 게 아닌가 봐...”리은은 사람들의 수군대는 소리에 얼른 핸드폰을 꺼내 확인했다. 검색 사이트를 켰더니 역시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사진 속 유한이 누군가를 때리고 있었고, 그 옆에는 인영이 눈시울을 붉힌 채 서 있었다. 유한의 외투를 걸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 연약해서 보호 욕구를 자극했다.딱 봐도 인영한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유한이 대신 복수해 준 모양이었다.리은은 유한이 언제 또 이렇게 주먹을 휘두른 적이 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대학교에 다닐 때, 웬 남자가 리은에게 치근대자 한 번 주먹을 휘두른 적이 있었다.다만 유한이 이제는 어떻게 하든 더 이상 리은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이젠 더 이상 과거 일을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기사 검색을 마친 리은은 핸드폰을 넣고 지하철에서 내렸다.그런데 카드를 체크하고 막 엘리베이터에서 나왔을 때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병원 번호라서 곧바로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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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리은 씨, 미안해요. 우리도 상부 지시에 따르는 거라 상세한 이유는 몰라요.”환자를 병원에서 쫓아내는 건 그들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들도 단지 이 병원에서 월급 받고 일하는 직원일 뿐이기에.“병원장님은 어디 있어요? 병원장 좀 만나게 해 줘요.”“죄송해요. 병원장은 안 계세요.”“아니...”리은은 더 따지고 싶었지만 성빈이 손을 잡았다.“됐어 리은아. 나 많이 좋아졌어. 사실 병원에서 돈 낭비할 필요 없어. 집에 돌아가서 몸조리만 잘하면 돼.”그 말에 고개를 숙인 리은이 성빈을 바라봤다.“그래도 분명 아직...”성빈은 리은의 손등을 토닥이며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집에 가자. 나 병원에 너무 오랫동안 있어서 더 이상 있기 싫어.”다만 진씨 가문 저택은 진작에 경매에 부쳐졌기에 두 사람이 돌아갈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현재로서는 리은이 세를 든 아파트에서 함께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애초에 돈을 더 주고 침실 2개가 있는 집을 구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정말 갈 곳이 없게 되었을지도 몰랐다.쪼그리고 앉아서 성빈의 무릎을 담요로 덮어준 리은이 눈시울을 붉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응. 집에 가자.”리은이 성빈을 데리고 떠나려고 할 때, 광윤이 마침 차에서 내리다가 두 남매와 마주쳤다.리은은 순간 어리둥절했다.“대표님?”광윤 역시 리은에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빈의 상태를 지그시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내 친구가 요양병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필요하면 연락해 줄게요.”요양병원에서 지내는 게 집에서 지내는 것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리은은 낮에 출근해야 하기에 성빈을 돌봐 줄 시간도 없었다.때문에 별로 고민도 하지 않고 리은은 광윤의 도움을 받아들였다.산 중턱에 위치한 요양병원은 공기도 환경도 좋아서, 요양하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처음 보자마자 휴양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결론을 내린 리은이 고개를 돌려 광윤을 바라봤다.“대표님, 여기 1년에 얼마예요?”차 문을 닫은 광윤이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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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왜? 너 매제 좋아했잖아? 왜 갑자기 이혼하는 건데?”오빠의 걱정 어린 눈빛에 리은은 조용히 설명했다.“같이 사는 게 행복하지 않아서 그래.”“오빠, 나 지난 5년 동안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어.”리은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성빈이 눈을 내리깔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내가 너한테 누를 끼쳤어. 나만 아니었다면 너도 그때...”“오빠, 내가 말했잖아. 내가 한 결정은 오빠랑 전혀 상관없어. 오빠가 아니라도, 그때 상황이라면 그 사람과 결혼했을 거야.”다만 성빈 때문에 리은이 유한과 결혼할 이유가 더 생겼을 뿐이었다.그때 유한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성빈은 지금쯤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랐다.그동안 주씨 가문의 재력과 인력 덕분에 성빈은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어. 의사 선생님도 오빠가 회복이 잘 되고 있다고 했어. 이제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회복에 더 전념하면 문제없어.”성빈은 눈을 들어 리은을 바라봤다. 리은의 얼굴을 한참 동안 응시하던 성빈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짝 미소를 지었다.“그래. 너를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날게.”리은은 그 말에 눈에 띄게 기뻐했다.“응. 나도 오빠 믿어. 할 수 있을 거야.”부드러운 눈빛으로 리은을 그윽하게 바라보던 성빈이 동생의 얼굴을 살짝 만지면서 미소를 지었다.마침 통화를 마치고 돌아선 광윤은 그 모습을 본 순간 잠시 굳어졌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두 남매 사이를 훑어보았다.성빈은 광윤의 눈빛을 느낀 듯 고개를 들었다.허공에서 눈이 마주치자, 성빈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광윤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두 남매에게 다가갔다.방금 본 건 단순히 잘못 본 것일지도 몰랐다.“한 달에 한 번씩 내도 된대요.”리은은 반색하며 광윤을 바라봤다.“정말이에요”광윤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잘 됐다, 오빠. 앞으로 여기서 몸조리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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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뭐요? 떠났다고요?”선호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네, 알았어요.”전화를 끊은 선호는 고개를 돌려 굳게 닫힌 집무실 문을 바라봤다. 조금 전 전화로 지시 받은 일을 떠올리니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대표님이 갑자기 형님의 병원비를 끊고 병원에서 쫓아낸 건, 사실 사모님이 자기한테 굴복하길 바란 거였을 텐데...’‘사모님은 고개를 숙이는 건 고사하고 아예 자기 오빠를 데려가고 말았어.’‘이걸 어떻게 보고한다?’“하...”한숨을 푹 내쉬면서 안경을 밀어 올리던 선호가 결국 집무실 문을 열었다.“대표님, 방금 병원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유한은 눈을 들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더니 선호를 담담하게 바라봤다.“그래서 갔대?”선호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병원에 들른 건 맞지만 다시 떠났대요...”“자세히 말해 봐.”“병원에서 말하길, 사모님이 진성빈 씨를 데려갔다고 합니다.”“데려갔다고?”유한은 어두운 표정으로 몸을 똑바로 세웠다.“어디로 데려갔는데?”“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아파트로 데려간 것 같아요...”쾅, 하는 소리에 선호는 유한 쪽을 힐끗 쳐다봤다. ‘헉!’또 노트북 하나가 이렇게 망가져 버렸다.하지만 유한이 집무실을 나섰으니, 선호는 그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아파트 단지에 도착한 유한은 미간을 찌푸렸다.“여기서 지낸다고?”선호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모님과 아가씨는 여기서 지내세요.”유한은 어두운 얼굴로 차 문을 닫았다.“얌전히 재벌 사모님 생활이나 즐길 것이지, 뭐 하러 심술을 부리는 건지.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안 그래?”선호는 콧등을 쓱 만지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감히 사모님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없어 속으로 중얼거렸다.‘사모님뿐만 아니라, 대표님 머릿속도 모르겠는걸요.’‘분명히 신경이 쓰여 죽을 지경이면서 왜 아닌 척하는 건지. 사람마다 뇌구조와 생각이 확연히 다른가 보네.’“대표님, 올라갈까요?”“어딘데?”선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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