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บทที่ 201 - บทที่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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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그래. 이하나 집에서 자면 되지 뭐 하러 온다고 난리야?'강지연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전화를 끊고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하지만 삼십 분쯤 지났을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뭐지? 설마 온하준이 집에 온 거야?'현관 쪽에서 무엇인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온하준의 비틀거리는 발소리가 가까워졌다.강지연은 이렇게까지 만취한 상태라면 강성호가 작성한 포기각서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어 잠시 망설이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거실로 나가자 예상대로 온하준은 초점이 흐릿한 눈으로 현관에 서 있었다.“강지연, 이리 와.”저 정도로 취한 상태에서도 사람을 똑바로 알아보는 온하준의 모습에 강지연은 다가가며 직설적으로 물었다.“나를 알아본 거야?”“내 아내를 내가 왜 못 알아봐?”말투에는 묘한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온하준은 강지연의 어깨를 감싸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비켜.”강지연은 짙은 술 냄새에 속이 울렁거려 그를 밀치려 했지만 온하준은 오히려 더 세게 껴안으며 말했다.“그만 밀쳐! 그러다 내가 넘어지면 넌 남편을 잃는 거야.”그는 평소와 달리 유난히 흥분해 있었다.‘술 취한 사람이랑 무슨 말을 더 해.'강지연이 가만히 있자 다행히 온하준은 거실로 들어온 뒤 혼자 비틀거리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곧바로 들고 있던 가방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가져가.”강지연이 서류를 받아 내용을 살펴보니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러자 온하준은 소파에 기대 비웃음을 지으며 웃었다.“뭘 확인하는 거야? 날 못 믿어? 네가 시킨 일 내가 한 번이라도 기대를 저버린 적 있어?”그건 사실이었다. 다만 애초에 온하준이 못 해낼 일이 거의 없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자신을 스스로 이렇게 대놓고 치켜세우는 건 드문 일이었다.정말 술을 엄청나게 마신 모양이었다.강지연이 서류를 챙겨 방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온하준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 세게 끌어당겼다.애초에 다리가 불편했던 강지연은 술에 취해 힘 조절도 안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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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강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은 온하준이 지껄이는 말을 녹음만 하면 됐다. 나중에 진짜 자원봉사자가 누군지 밝혀지는 날, 이걸 꼭 다시 들려줄 생각이었다.‘온하준, 그때면 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괜히 궁금하네.’“그때 할머니가 그러셨어. 빼빼 마른 자원봉사자 아가씨가 할머니 몸도 닦아주고 약도 먹여주고 검사받으러 갈 땐 매번 안아서 데려다줬대. 정말 착하고 예쁜 아가씨라고. 이하나는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하나도 안 변했어.”온하준은 뭔가 떠오른 듯 갑자기 눈을 떠 강지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그런데 너는? 오로지 나만 네 발을 씻겨줬잖아.”정말로 온하준은 강지연의 발을 씻겨 준 적이 있었다. 그녀의 다리가 제대로 낫지도 않았던 시절, 너무 오래전 일이라 강지연은 그 얼룩진 기억을 다시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강지연, 너 뭐 할 말 없어?”온하준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치켜들었다. 강지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러면 이하나한테 가서 씻어달라 해. 걔는 그런 거 잘 한다며.”‘아니면 매일 씻어달라고 하든지. 어차피 이제 나랑은 더 볼 일도 없을 테니까.’강지연의 말에 온하준은 그녀의 코를 세게 꼬집으며 눈썹을 찌푸렸다.“강지연, 너 진짜 양심이 있기는 하냐? 어떻게 그런 질투를 해?”‘또 질투라고 생각하네. 아내가 이런 말 할 정도라면 질투가 아니라 정말로 마음이 떠나서란 걸 왜 모르는 걸까?’“놔. 숨을 못 쉬겠어.”강지연이 크게 숨을 들이쉬며 그의 손등을 내리쳤다. 온하준은 손을 놓더니 소파에 기대어 긴 한숨을 내쉬었다.“나랑 이하나,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 아니야. 난 걔랑...”잠시 망설이던 온하준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됐어. 말해봤자 넌 이해 못 해.”강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는 진짜 이해가 안 돼. 좋은 말은 되새김질 안 한다잖아. 그때 이하나가 너를 어떻게 헌신짝 버리듯이 버렸는지 잊었어? 그런데 다시 돌아오니까 넌 또 좋다고 따라다녀?”온하준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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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강지연은 떨어져 있던 휴대전화를 집어 온하준의 귀 가까이에 다시 가져다 댔다. 전화기 너머로 김도윤이 몇 번이나 소리쳤다.“하준아, 온하준! 너 설마 잠든 거야?”“응...”온하준은 술에 절어 흐느적거리며 웅얼거렸다.“이하나를 잘 챙겨 줘...”“왜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해? 네가 챙겨주면 되잖아!”김도윤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순간, 강지연은 자기 눈을 의심했다. 온하준의 눈가에서 눈물 한 방울이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 같았다.그리고 잠긴 그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강지연은 그게 착각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진짜 눈물이었다.온하준은 울면서 김도윤에게 말했다.“안 돼. 이번 생은 불가능한 일이야. 나는 강지연을 책임져야지. 나는... 하나를...”“됐다. 쉬어. 끊는다.”김도윤의 긴 한숨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강지연은 휴대전화를 온하준 옆에 조용히 내려놓았다.그녀의 감정은 더 이상 아무런 파동도 일지 않았다.‘걱정하지 마, 온 하준. 기꺼이 보살필 수 있게 해줄게.’두 사람의 통화 덕분에 강지연은 궁금하던 문제가 한가지 해결되었다. 그녀는 내내 온하준이 어떻게 다시 이하나에게 집을 사주고 명품을 사줬는지 의문이었다.이제 보니 김도윤의 월급을 올려주고 반기 배당도 몇십억씩 올려주며 그를 통해 이하나를 챙겨줬던 거였다.‘온하준, 역시 넌 머리가 좋아. 이러면 내가 정해 둔 세 가지 조건도 어기지 않고 마음껏 이하나를 챙길 수 있었겠네. 그런데 양심의 가책도 안 느껴졌어? 아, 맞다. 네 마음은 항상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지.’떠나기까지 카운트다운 셋째 날.아침에 눈을 뜨니 강지연이 이곳을 떠나 조민서 일행과 합류하는 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그날이 오면 강지연은 홍순자와 함께 진경시로 가, 조민서가 마련해 둔 집에 자리할 계획이었다.그다음엔 조민서와 팀원들과 함께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떠날 예정이었다.한 달 뒤 잠시 귀국하더라도 해성으로 돌아올 필요는 없었다.진경시에서 홍순자와 시간을 보내며 할머니의 비자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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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강지연은 방금 본 예능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아 입가에 웃음이 배어 있었다.“김도윤더러 이하나 잘 챙겨주라고 부탁하더라. 너는 이하나를 너무 사랑하지만 이번 생에는 나를 책임져야 한다고.”“끝이야?”온하준이 강지연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응. 뭘 더 말했을 것 같아서 찔려?”강지연이 웃으며 되묻자 온하준은 눈길을 피하며 대답했다.“아니, 전혀.”“그러면 됐네. 방해하지 말고 비켜.”강지연은 온하준의 손을 치우고 휴대전화 화면을 다시 켰다.“화 안 내?”온하준은 강지연의 웃는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화를 왜 내? 이 예능프로가 얼마나 웃기는데.”말을 끝내자마자 그녀는 다시 크게 웃었다.그 웃음도 잠시, 온하준이 그녀를 불쑥 껴안으며 뒷머리를 살짝 눌러 자기 어깨에 파묻었다.“강지연, 할머니 언제 돌아오셔?”“왜?”강지연은 온하준이 혹시 눈치를 챈 건 아닌가 싶어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모레 어때? 모레부터 며칠 한가하거든. 우리 할머니 모시고 여행 가자. 약속했잖아.”“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할머니가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겠어.”강지연은 속으로 중얼거렸다.‘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있지? 모레면 할머니와 함께 여행가는 건 맞지만 그 여행에 너는 없어.’“할머니는 도대체 누구를 만나러 가신 거야? 왜 이렇게 오래 계셔?”온하준의 말투는 걱정을 넘어 심지어 투정에 가까웠다.“내 할머니야. 네가 왜 걱정해?”“네 할머니면 내 할머니잖아.”그는 벌떡 일어나 바지를 챙겨 입었다.“됐어. 나 이제 출근해야 해. 오늘 중요한 일 있어.”강지연은 대꾸도 하지 않고 예능을 보며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아침 못 해줘. 너 알아서 시켜 먹어.”온하준은 말을 마친 뒤 급히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문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강지연은 홍순자에게 영상을 걸었다.할머니는 호텔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갓 돌아온 참이었고 얼굴색이 매우 밝았다.그제야 마음을 놓은 강지연은 뭔가를 챙겨 먹으려고 침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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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이대로 죽기를 기다려야 되는 거야?’아니, 그 전에 누가 왜 자신을 데려왔는지라도 알아야 했다.“당신들 뭘 하려는 거야?”그녀는 가능한 한 차분히 물었다. 두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저 가까운 거리에서 감시할 뿐이었다.강지연은 돈이 필요한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사람 마음은 한순간 탐욕으로 뒤집히는 법이고 혹시라도 자신이 돈이 있다는 힌트를 주면 상황이 더 악화할 것 같았다.삼십 분쯤 지났을까, 새로운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뒤이어 강성호와 이하나도 끌려 들어왔다. 두 사람 모두 눈이 가려진 채였다.난간도 없는 계단으로 질질 끌려오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강지연은 머릿속으로 계산을 시작했다.‘우리 세 사람 다 납치당한 거야? 그러면 이건 저 아버지라는 인간 때문에 벌어진 일이겠네. 목표는 온하준한테서 돈을 요구하는 거겠지. 그렇다면 온하준은 반드시 오겠네. 나 때문이 아니라 이하나 때문이라도.’강성훈과 이하나도 강지연처럼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놔! 얼마면 되는데! 필요한 금액을 말하라고!”이하나는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하하, 돈이 꽤 있는 모양인데? 그러면 두 배로 올릴까?”이하나를 끌고 온 회색 옷을 입은 남자를 입은 남자가 비웃었다.강지연을 납치한 초록색 점퍼 남자가 이하나를 보며 이마를 찌푸리고 말했다.“이 여자는 누구야? 도대체 누구를 잡아 온 거야?”“온하준의 아내라는데?”초록색 점퍼를 입은 남자는 강지연을 가리키며 말했다.“뭐? 온하준 아내? 그러면 이 여자는 누구야?”“내가 어떻게 알아!”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머리를 긁적였다.“너희 엉뚱한 사람 잡아 온 거 아니야?”“온하준 집에서 데려왔는데 그럴 리가 없잖아!”“그러면 우리가 잡아 온 저 여자는 뭐야? 요즘 뉴스에 같이 나올 정도로 온하준이랑 붙어 다니던데?”“그러면 뭐야? 아내가 둘이야? 아니면 하나는 내연이겠지. 부자들이 원래 그러잖아.”“둘한테 직접 물어보면 되지.”초록색 옷을 입은 남자가 강지연과 이하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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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하준아! 나 여기 있어! 하준아, 날 좀 살려줘!”이하나의 비명과 함께 온하준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 뒤를 따라 울렸다.“하나야, 괜찮아! 놀랄 것도 없고 무서워할 것도 없어. 내가 왔으니까 걱정하지 마!”잠시 뒤, 11층 계단 끝에서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땀이 그의 옷을 흠뻑 적셨고 평소에는 늘 단정하던 머리카락도 젖은 채로 이마 위로 흘러내려 있었다.계단을 올라오자마자 온하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울고 있는 이하나를 살피는 것이었다.“이하나, 어디 다친 데는 없어? 괜찮아?”이하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울기만 했다.그제야 그는 숨을 내쉬며 회색 옷을 입은 남자에게 소리쳤다.“이 여자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건드렸으면 다 끝장날 줄 알아.”회색 옷을 입은 남자는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재밌네.”“걱정하지 말라니까. 우린 딱 돈만 요구해. 돈만 준비해 있으면 얘기는 순조로울 거야.”초록색 옷을 입은 남자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갑자기 이하나를 잡아 세우더니 날 선 칼날을 그녀 목에 바짝 들이댔다.잠깐 멈칫하던 온하준은 즉시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뭐 하는 거야! 그 손 떼!”“돈부터 던져. 그러면 풀어줄게.”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먼저 돈부터 이쪽으로 보내. 그러면 사람 놔줄게.”“아니, 먼저 사람부터 풀어.”온하준의 단호한 말에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초록색 옷을 입은 남자한테 뭔가 신호를 보냈다.“그래? 그러면 우리 먼저 게임을 하나 해볼까?”초록색 옷을 입은 남자가 구석으로 가더니 강지연의 팔을 낚아채 끌어냈다.그 순간, 굳어져 있던 온하준의 얼굴이 더 굳어졌다.“넌 왜 여기 있는 거야?”차가운 그의 목소리에 강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지금까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전혀 몰랐다는 거야? 아무리 구석에 있고 앞을 둘러싼 사람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역시 네 눈에는 이하나만 보이는 거구나.’“온 대표, 두 사람 중 도대체 누가 아내인 거야?”회색 옷을 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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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그만!”온하준은 햇빛에 반사된 칼끝이 번쩍이는 걸 보고 서둘러 목소리를 높여 말렸다.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결정했어? 먼저 네 애인부터 풀어줄까?”온하준은 고통스러운 눈빛으로 강지연을 바라보았다. 반면 강지연은 놀랍도록 평온했다.담담하게 그를 그리고 땅을 바라보았다. 해가 더 높이 떠올라 땅 위에 넓은 빛을 쏟아냈고 그 빛이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온하준이 계속 망설이자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히죽이며 말했다.“그러면 좀 더 재미있게 놀아볼까? 네가 계속 망설여진다면 우리가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지.”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나중에 풀어주는 쪽은 어떻게 될지 몰라. 이제 어떡할래?”“무슨 뜻이야?”온하준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묻자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나중에 풀어주는 사람은 실수로 얼굴에 칼자국을 낼 수도 있다는 뜻이야. 우리가 지금 너무 지쳤거든.”말이 끝나기 바쁘게 두 사람의 날카로운 칼이 동시에 이하나와 강지연의 뺨을 스쳤다.“너희들...”온하준은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강지연과 이하나를 번갈아 봤다.이하나는 그제야 비로소 공포에 사로잡힌 듯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다.“빨리 결정해! 우린 너랑 오래 놀아줄 시간 없어. 설마 지금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는 거야?”초록색 옷을 입은 남자가 소리쳤다.“셋을 셀 거야! 그 전에 결정을 못 내리면 두 사람 얼굴 다 망가질 줄 알아!”회색 옷을 입은 남자는 이미 빠르게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하나, 둘, 셋...”“이하나를 풀어줘!”온하준의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 절규는 공기를 가르는 듯했고 심장이 찢어질 듯한 비명이었다.잠깐의 정적 그리고 이어진 광기 어린 웃음소리.회색 옷을 입은 남자도 초록색 옷을 입은 남자도 뒤에 서 있던 다른 인간들도 모두가 박장대소했다.다들 격양된 표정이었다.빚쟁이들에게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고 강성호는 사위가 다른 여자를 선택했다는 사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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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이제 안전해지긴 했지만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다.괜찮냐고 묻는 장시범의 질문에 강지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끝은 아직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방금 잡혔던 손목은 붉게 부어올라 있었고 피부 안쪽이 저릿하게 쑤시는 통증이 가시질 않았다.“그런데 넌 어떻게 거기 나타난 거야?”강지연의 질문에 장시범은 자초지종을 쭉 들려줬다.이맘때면 바로 옆 지방에서 체리가 한창 익는 철이었다. 체리는 그리 비싸고 진귀한 과일은 아니었지만 장시범의 어머니인 장 여사가 유독 좋아하는 과일이었다.그는 해마다 직접 체리 농장을 찾아가 가장 싱싱한 체리를 따서 어머니께 가져다드리곤 했다.요즘처럼 물류가 발달해 있고 장 여사의 경제력이라면 어떤 과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구할 수 있었겠지만 그건 장시범이 끝까지 고집하는 그만의 효심이었다.그래서 어젯밤에도 그는 체리 농장으로 향했고 한밤중에 가장 알찬 체리를 딴 뒤 새벽에 해성으로 돌아왔다.원래 점심 비행기로 진경시에 갈 예정이었는데 문득 강지연도 체리를 좋아한다는 게 떠올라 가는 길에 두 상자를 놓고 가려고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그러나 강지연의 집 앞에 도착해 계속 전화를 걸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마침 엘리베이터에서 두 남자가 큰 상자를 들고나왔고 장시범은 그 틈을 타 체리 상자를 둘로 나누어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장시범은 강지연이 몇 층에 사는지 알고 있었다.불쑥 찾아가는 것이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체리는 신선도가 떨어지면 맛도 떨어지는 과일이라 그녀가 집에 없다면 가정부에게 전해두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다.올라가는 내내 전화를 걸었지만 강지연은 끝내 받지 않았다.현관문 앞에 도착하자 집 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그녀의 휴대전화는 집 안에서 쉬지 않고 울리고 있었다.장시범이 문 앞에서 한참을 불러도 여전히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이상하다는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자 문 앞에 놓여 있던 배달 음식이 눈에 들어왔다.순간, 장시범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아까 커다란 가전제품 상자를 들고 나가던 두 남자가 떠올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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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강지연이 샤워를 마치고 장시범이 사다 준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대충 정리를 끝냈을 즈음,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저예요. 먹을 것 좀 사 왔어요.”문을 열자 장시범이 양손에 커다란 봉투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봉투 안에는 식당에서 포장해 온 음식들과 과일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배고팠죠? 빨리 드세요.”장시범은 웃으며 안으로 들어와 테이블 위에 음식을 펼쳐놓으며 말을 이었다.“선배가 뭘 좋아하시는지 잘 몰라서요. 그냥 이것저것 아무거나 조금씩 사 봤어요.”강지연이 음식을 쭉 훑어보자 결코 ‘아무거나’가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다.그중 특히 눈에 들어온 건 담백한 생선찜 요리였다. 그녀가 예전부터 가장 좋아하던 메뉴였다.강지연은 담백한 맛을 좋아했지만 온하준은 늘 얼얼하게 매운맛을 선호했다.폭풍 같은 오전을 겪었던지라 현재 강지연과 장시범은 극도로 허기진 상태였다.두 사람은 생선 한 마리와 국 한 그릇, 볶음요리 하나, 나물 반찬 하나를 모조리 싹 다 해치웠다.장시범이 웃으며 말했다.“선배, 우리 춤추던 사람들 같지가 않네요.”강지연도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나는 내려놓은 지 오래야.”그래도 식습관만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오랫동안 몸을 관리해 온 탓인지 평소의 강지연은 과하게 먹는 일이 드물었다.“선배, 열정은 이곳에 있는 거죠. 겉모습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장시범이 가슴을 꾹 누르며 그녀를 바라보자 강지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선배, 이제 좀 쉬세요. 저는 옆방에 있을 거니까 필요하시면 부르시고요.”장시범은 재빨리 테이블 위를 정리하고 어수선하게 널브러진 물건들을 치운 뒤 강지연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아, 맞다. 아까 경찰에 신고했으니 뒷일은 경찰이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오늘 일은 그녀에게 분명 큰 충격이었다. 온하준이라는 인간은 원래부터 짐승 같은 놈이었지만 오늘의 선택은 특히나 사람 마음을 깊게 후벼 팠다.장시범은 일이 정리되면 온하준이 틀림없이 강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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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온하준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장시범 씨,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두세요. 그쪽이 누구 앞에서 무슨 선언을 하던 나랑 강지연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겁니다. 강지연은 내 아내고 그쪽은 강지연 옆에 있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그래요?”장시범은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만약 제가 오늘 선배 곁에 없었으면 선배는 아까 뛰어내렸거나 얼굴이 엉망이 됐을 텐데요. 온하준 씨가 보고 싶은 게 그런 결말입니까?”“이 새끼가!”온하준은 장시범의 옷깃을 움켜쥐며 욕을 퍼부었다.“이 새끼가! 아무리 대단한 집안 배경을 가지고 있어도 내 여자를 넘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장시범은 그의 손을 붙잡고 싸늘하게 말했다.“온하준 씨,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죠. 선배 이름은 강지연입니다. 본인의 이름이 있고 직업은 무용가예요. 누구의 여자도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니고 누구의 부속품은 더더욱 아니죠.”온하준은 이성을 잃은 채 장시범의 턱을 향해 주먹을 뻗으며 고함쳤다.“직접 물어봐! 온하준의 여자가 맞는지 아닌지 직접 물어보라고!”강지연은 즉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장시범 앞을 가로막아 세운 채 온하준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온하준! 당장 이 방에서 꺼져!”온하준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되물었다.“뭐라고? 다시 말해봐!”“이 방에서 당장 꺼지라고!”강지연은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으며 장시범을 더 단단히 뒤로 감쌌다.“너... 지금 나보고 꺼지라고 한 거야?”온하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강지연,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는 거야? 나 아니었으면 네가 오늘 이런 호텔에 묵을 수 있을 것 같아?”“죄송하지만, 온하준 씨. 선배는 온하준 씨가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요. 그리고 온하준 씨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유명한 무용가로 이름을 날렸을 거고 박수 소리와 함께 꽃길을 걷고 있었겠죠. 이런 호텔 하나 못 들어올 사람이 아니었다고요.”장시범의 말은 온하준 마음속 가장 깊은 곳, 건드려선 안 될 지점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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