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Chapter 171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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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강지연은 멍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설마 진짜로 문제가 있는 거야?”온하준은 순간 멈칫하다가 얼굴이 굳어지며 말했다.“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말해!”강지연은 그의 손을 툭 쳐냈다.“사람은 원래 부족한 걸 건드리면 더 예민해지는 법이야. 예를 들어 진짜 예쁜 사람이 못생겼다는 말 들으면 신경도 안 쓰잖아. 예쁘다는 게 객관적인 사실이니까. 그리고 또 하나, 예전엔 누가 내 발이 어떻다고 하면 엄청나게 화났거든. 그게 진짜 사실이니까.”“그래서? 빙빙 돌려서 뭘 말하려는 건데?”강지연은 눈을 흘기며 말했다.“그러니까 네가 진짜 문제가 없다면 그렇게 발끈할 이유가 없다는 거야. 내가 뭐라고 하든 신경도 안 쓸 테니까.”“너...”온하준은 화가 치밀어 이를 악물었다.“이제 보니까 너 진짜 말 독하게 하는구나. 12년을 알고 지냈는데 네가 이렇게 독설을 잘하는 사람인 줄 몰랐어. 누구한테서 배운 거야?”강지연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네가 모르는 게 한두 가지인 줄 알아?”“그래?”온하준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그럼 내가 모르는 게 또 뭐가 있는데? 예를 들어 너랑 그 춤추는 놈 사이에 뭐가 있는 거?”강지연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온하준, 말 좀 가려서 해. 예의라는 것도 없어?”‘자기가 그러니까 다른 사람도 다 그런 줄 아나?’“예의? 강지연, 그러는 넌 네 남편을 존중한 적은 있어? 다시 말하자면 네 금전적 후원자를 존중한 적은 있어?”온하준은 강지연의 허리를 확 끌어안으며 말을 이었다.“내 돈 받아 가면서 밖에서 수상한 놈들한테 독설이나 배워와서는 남편한테 지껄이는 거야? 나한테 미안하지도 않아?”“수상한 놈들? 온하준, 네가 수상하니까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아?”강지연은 분노에 이를 악물었다.온하준은 강지연의 허리를 감싸안은 채 침대로 가더니 그대로 강지연을 침대 위로 밀어버렸다.“너 정말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구나.”“놔! 더 이상 네 머리카락 잡아 뜯고 어깨 물어뜯고 싶지 않아!”“해 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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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할머니...”강지연은 이제 더 이상 할머니에게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나랑 온하준은 사실 안 맞아요. 할머니도 아시잖아요. 온하준은 제가 그를 구해줘서 저랑 결혼한 거예요. 사실 온하준은 저를 좋아하지도 않고 저도 이제는 그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헤어지는 게 맞아요.”홍순자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강지연을 꼭 끌어안았다.“결혼이라는 게 억지로 한다고 되는 건 아니야. 할머니도 다 알아. 행복하지 않다면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는 게 더 나은 일이지. 그런데 너 며칠 뒤면 출국이잖니. 하준이한테는 계속 말 안 할 거니?”강지연은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말을 꺼내는 순간 온하준이 어떻게든 막아설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그보다 더 두려운 건 그 뒤에 펼쳐질 파장이었다. 차라리 아무 말 없이 떠나면 온하준도 나중에 알아차릴 거로 생각했다.“할머니, 말할 거예요. 적당한 때를 정해서요.”‘떠나는 날 온하준에게 편지 한 장을 남기면 되겠지.’강지연은 홍순자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할머니, 저 오늘 할머니랑 같이 잘래요.”“그래.”홍순자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할머니, 여권은 며칠 뒤 집으로 바로 배송될 테니 안심하세요. 제가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오면 그때 함께 비자도 신청하시면 돼요. 그러면 아마 8월 안으로 고모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그래, 알았어.”눈을 떠보니 출국까지 남은 기간은 닷새였다.남은 닷새 동안 강지연은 집에는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오전에는 한의원에 가서 치료받고 오후엔 할머니 곁에 붙어 있을 작정이었다.배우진이 책임감을 가지고 끝까지 재활을 끌어가 주길 바랐던 만큼 그녀는 며칠 만이라도 더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다.그날 아침, 할머니와 마주 앉아 아침을 먹으려는 그때 마당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엄마!”강지연의 아버지 강성호의 목소리였다. 강지연은 미간을 찌푸렸다.‘저 인간이 왜 온 거야?’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강성호는 이미 집 안으로 들이닥쳤고 그 뒤로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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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강지연은 고개를 당당히 들고 때릴 수 있으면 때려보라는 눈빛으로 강성호를 노려봤다.유서원이 급히 강성호의 손목을 붙잡고는 연신 눈짓을 보냈다.“애가 이제 다 컷으니 자존심이 있잖아. 손은 대지 마.”강성호가 그 말뜻을 모를 리 없었다. 강지연이 커서가 아니라 이제는 예전 같지 않다는 뜻이었다.필경 강지연은 현재 온하준의 아내였고 두 사람은 여전히 온하준의 돈이 필요했다.강성호는 씩씩거리며 숨을 몰아쉬다가 결국 분노를 억지로 삼켰다.유서원은 갑자기 모성애가 생겨난 듯한 표정으로 강지연을 달래듯 말했다.“지연아, 그래도 우리가 너를 이렇게까지 키워줬는데 고마운 마음은 있어야지.”“키워줬다고요?”강지연이 되물었다.“뭘 어떻게 키워줬는데요? 밥을 제대로 먹였어요, 아니면 학교를 제대로 보냈어요? 날 키운 건 처음부터 끝까지 할머니예요!”유서원은 말문이 막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그래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억지를 밀어붙였다.“그래도 우리가 낳았잖아! 낳아준 은혜도 은혜야! 우리 없었으면 네가 있어? 낳아준 은혜를 봐서라도 오늘은 네 아빠한테 효도해야지!”“그래요?”강지연이 고개를 돌려 강태하를 바라봤다.“낳아준 은혜가 그렇게 크면 저 귀한 아들놈은 오늘 아버지한테 어떤 효도를 했는데요? 제가 손해를 보더라도 똑같이 하면 되겠네요.”강태하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왜 나를 끌어들여? 나랑 무슨 상관인데.”“얼마 줬냐고요. 말해 봐요.”강지연은 강태하가 한 푼도 안 줬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강성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너랑 태하가 비교되니? 태하가 지금 창업하느라 얼마나 힘든데! 이제 결혼도 준비해야 하고! 나도 너한테 뭘 그렇게 많이 바라는 건 아니야. 전에 말했던 집, 그거만 확실히 해주면 돼.”유서원이 기다렸다는 듯 거들었다.“맞아. 지연아, 너랑 네 동생은 달라. 넌 팔자 좋게 시집 잘 갔잖아. 남들은 이십 년 넘게 고생하고 발버둥 쳐도 너처럼 못 살아. 너는 우리가 온하준의 돈을 얼마나 썼는지 따질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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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강성호는 말하면서 슬쩍 강태하의 정강이를 발로 차며 너도 좀 거들라는 뜻으로 신호를 보냈다.강태하는 마지못해 앞으로 나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할머니, 나 어릴 때 할머니는 누구보다 나를 제일 예뻐했잖아요. 근데 이제는 누나만 챙기고 나는 왜 안 챙겨주는 거예요? 혹시 내가 못나서 누나만큼 돈도 못 버니까 이제는 나를 무시하는 거예요?”“헛소리하지 마!”홍순자는 분에 겨워 손까지 떨었다.“이 집에서 너희 셋 말고 돈에 눈 돌아간 사람이 어디 있니?”“그런데 왜 나를 예전처럼 생각해 주지 않는 거예요? 저 너무 섭섭해요...”강태하는 정말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눈시울을 붉혔다.홍순자도 손주가 괴로운 표정으로 울먹이자 차마 독한 말은 못 하고 괴로움에 눈시울을 붉혔다.옆에서 지켜보던 강지연은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말했다.“할머니가 네 생각을 안 한다고? 강태하, 너 진짜 양심이라는 게 없어? 너 어릴 때 우리 부모님은 항상 나가서 자기들끼리 놀기에 바쁘고 할머니가 너를 키웠어. 분윳값도 못 내서 쩔쩔매던 때 누가 분유를 사서 너 먹였는데? 네가 아플 때 누가 병원비 내고 누가 밤새 네 옆을 지켜줬는데? 너 대학 갈 때 부모님이 돈 한 푼 보태지 못해서 누가 등록금 내주고 매달 생활비를 보내 줬는데? 할머니가 가진 그 얼마 안 되는 돈을 우리 집사람들이 다 갈아먹었잖아.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강태하가 얼굴을 홱 돌리며 우물쭈물 말했다.“그건 할아버지 돈이잖아. 나를 제일 많이 아껴준 건 할아버지였어.”강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래? 할아버지가 너를 제일 아꼈어? 그러면 할아버지한테 가. 할아버지한테 가서 회사 투자받고 할아버지한테서 프로젝트 따오고 할아버지한테 집 사달라고 하고 결혼자금도 할아버지한테 받아.”강태하는 더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그건 매형이 해주면 되잖아.”강지연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그래서 오늘 왜 왔는데? 갑자기 무슨 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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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강성호는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와 홍순자의 얼굴 앞에서 속삭이듯 말했다.“엄마, 집을 나한테 넘겨요. 그러면 그 돈 얘기는 안 할게요. 아니면 그냥 이억을 주세요.”홍순자는 찢어질 듯한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강성호의 뺨을 갈겼다.“차라리 나를 죽이지 그래! 이 늙으니 뼈로 기름을 짜서 팔아봐! 만원이나 나오나!”강성호는 뺨을 맞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건들거리며 말했다.“엄마, 이렇게 나오면 재미없죠. 집도 안 주겠다면 어쩔 수 없이 내가 엄마 통장을 뒤져야겠네요.”그의 눈짓에 유서원과 강태하는 약속이라도 한 듯 함께 홍순자의 방 쪽으로 달려갔다.“가운데 서랍이야! 자물쇠 부숴!”강성호도 뒤따라가며 소리쳤다.강지연은 홍순자를 의자에 앉혀놓고 혼자 문 앞으로 달려가 문틀을 두 손으로 붙들고 버티며 외쳤다.“못 들어가요!”강성호가 씩 웃었다.“딸아, 그 절뚝거리는 다리로 우리 셋을 어떻게 막는다고 나서는 거야? 너는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아무 일에도 끼어들지 말고 네 남편이나 잘 모셔. 그래야 원하는 거 얻어내지. 태하야, 밀어!”강지연은 문틀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셋이 들이밀수록 그녀는 더욱 이를 악물고 버텼다.손톱이 부러지고 몇몇 손가락은 피가 맺혔지만 놓지 않았다.하지만 탐욕에 눈이 먼 세 사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그때 거실 쪽에서 홍순자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오늘 그 방에 누구라도 들어가면 내가 죽는 꼴을 보게 될 거야!”홍순자는 칼을 들고 자기 목에 갖다 댄 채 견결한 눈빛으로 버티고 서있었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강지연은 큰 소리로 울며 외쳤다.“할머니, 안 돼요! 제발 그러지 마요! 할머니가 그렇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원하는 걸 전부 이루게 된단 말이에요! 할머니, 제발!”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강지연에게는 할머니를 멈추게 할 유일한 선택지가 그 한마디뿐이었다.강지연의 말에 홍순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래, 내가 죽으면 통장도, 이 집도 결국 저 자식 손에 들어가겠지. 이 시골집이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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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강지연은 왜 집안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온하준을 두려워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온하준도 알고 보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다. 화가 난다고 누구 몰래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돈이 많은 게 전부였다.어떤 사람들은 약한 사람 앞에서는 목소리를 키우고 힘으로 찍어 누르면서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 앞에 서면 금세 허리를 굽혔다.차라리 아버지가 방금 전 자기와 할머니에게 하던 그 기세로 온하준에게도 맞섰다면 강지연은 그를 조금은 높이 샀을 것이다.셋이 악을 쓰고 덤비면 온하준 하나쯤 제압 못 할 리도 없었다.그런데도 저들은 온하준을 보는 순간 그냥 무너졌다.이런 자들은 오직 약한 자들만을 짓밟는 비열한 자들일 뿐이었다.온하준이 나타나자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그는 한 팔로 강지연을 감싸고 다른 팔로 할머니를 감싸안더니 두 사람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채 보호막처럼 서서 말했다.“지금 할머니 모시고 강지연 손부터 치료하러 갈 거니까 이만 꺼지세요.”강성호는 유서원과 눈빛을 교환하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리는 여기 있을게. 집을 지켜야지.”온하준도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허락할 거로 생각하는 겁니까?”강성호는 미소를 지은 채로 얼굴이 굳어졌다.“사위, 여긴 내 집이야. 내가 자란 집이고.”그 말은 네가 간섭할 자격이 없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온하준은 관심도 없다는 듯 무덤덤하게 말했다.“내가 아는 건 여기가 할머니 집이라는 겁니다. 안 나가겠다고 했죠? 좋아요. 기다리세요.”그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김도진, 사람 열댓 명 불러. 위치 보낼 테니 와서 집 지켜. 마당에 있는 꽃잎 하나라도 뜯기면 그 자리에서 반 죽여.”“사위, 사위...”강성호가 급히 온하준 손목을 붙잡았다.“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네 장인어른이고 절반은 아버지와 마찬가지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건 아니지. 갈게. 갈 테니까 전화 끊어.”온하준이 비웃듯 말했다.“내가 원래는 꽤 의리도 있고 예의도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누가 그걸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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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이게 어떻게 아무것도 아니니?”홍순자는 강지연의 손을 받쳐 들고 가슴이 미어지는 얼굴로 한참을 들여다봤다.“정말 별일 아니에요.”강지연은 가볍게 웃어 보였다.열 손가락이 저릴 만큼 아픈 건 맞지만 그때의 교통사고 통증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온하준의 얼굴색도 좋지 않았다. 강지연은 온하준도 그날을 떠올렸을 거라고 짐작했다.그 사고는 온하준에게 흑역사이자 어쩌면 꺼내기 싫은 상처였다.사고를 계기로 결혼을 거래처럼 맞바꿨고 그 결혼은 그의 인생이 뒤틀린 시작이었으니까.강지연은 이제 며칠 뒤면 모두 자유로워질 테니 괜찮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가볍게 웃었다.온하준은 강지연을 근처 병원으로 데려가 처치와 치료를 받게 한 뒤 담담히 말했다.“할머니, 일단 우리 집에 가서 잠깐 쉬고 계세요. 저랑 강지연이 처리할 일이 좀 있거든요. 일 끝나면 제가 다시 모시고 들어갈게요.”“아니야.”홍순자가 서둘러 손을 저었다.“지연이 상처만 잘 처리하면 됐어. 나는 먼저 들어갈게. 너희는 너희 일 봐. 저 못된 자식은 나도 방법이 있다.”온하준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저는 먼저 마을 이장님 한번 만나고 오겠습니다. 그런데 할머니, 장인어른이 갑자기 왜 이 집을 달라고 하는지 아세요?”홍순자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아마 어디서 들은 모양이네요. 이 근처가 관광 프로젝트로 개발된답니다. 할머니 집도 철거 대상이라 보상 얘기가 나올 거고요.”온하준의 말에 홍순자는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였구나...”“할머니, 이 집 소유관계가 지금 정확히 어떻게 돼 있죠?”온하준이 다시 묻자 홍순자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그때 그 인간은 시골집은 값어치도 없다며 싫다고 하면서 이 집은 강지연 고모한테 준다고 말만 했어. 그리고 영감이 남긴 돈은 전부 가져가고 우리한테는 한 푼도 안 남겨줬지.”“유언장은요?”홍순자는 한탄하며 고개를 저었다.“유언장이 다 뭐니. 그땐 아무것도 몰랐어.”“알겠습니다. 할머니, 걱정하지 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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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온하준은 일 처리만큼은 확실한 사람이니 그가 괜찮다면 정말 괜찮다는 뜻이었다. 이제 남은 건 두 사람 사이의 약속뿐이었다.“강지연, 네가 요구한 건 다 했어. 집은 이미 팔았고 하나 가방이랑 선물은 전부 회수해서 현금으로 바꿨어. 돈은 지금 너한테 보낼게.”온하준은 말을 끝내고 바로 송금했다. 강지연이 금액을 가늠해 보니 얼추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진짜인지 아닌지 직접 가서 확인해 봐. 집은 지금 다른 사람이 매수해서 리모델링 중이야.”온하준이 시동을 걸며 말을 이었다.“집을 확인하고 나서 네가 한 약속도 지켜. 경찰서 가서 정리하자.”강지연의 손가락엔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었고 머리 쪽 상처도 이제 막 아문 참이었다. 그걸 본 온하준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나도 알아. 지금 너한테 이런 걸 재촉하는 건 아니라는 걸. 그런데 어차피 언젠가 해야 할 일이야. 하나는 약속을 지켰는데 네가 계속 끌면 걔는 마음이 불안해질 수밖에 없잖아.”강지연은 손목을 천천히 돌렸다. 햇빛 아래 붕대의 흰색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온하준은 참, 어떨 때는 사람 같다가도 어느 순간이면 짐승처럼 변했다.“약속해.”온하준이 확실한 대답을 요구하자 강지연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뭘 그렇게 급해하고 그래. 어차피 사나흘이면 끝날 일이야.”강지연은 어차피 출국하기 전에 모든 걸 정리할 생각이었다.“사나흘이라니? 무슨 소리야?”온하준의 미간이 구겨졌다.“아직도 며칠 더 끌겠다는 거야? 그건 아니지.”그녀의 말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온하준 때문에 강지연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강지연.”온하준이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았다.“너 지금 나 가지고 노는 거야? 나는 네가 시키는 대로 헐레벌떡 모든 걸 다해줬는데, 이제 와서 고소를 취하하지 않겠다는 소리야? 지금 날 시험해?”“아니. 가, 지금 가자.”강지연이 웃으며 말하자 온하준은 한동안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 미소가 진짜인지, 거짓인지 확인하려는 듯한 얼굴이었다.“오늘 안 가면 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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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온하준은 무의식적으로 다시 강지연을 돌아봤다.강지연은 차창 턱에 팔을 걸친 채 여전히 두 사람을 내다보며 웃고 있었다.‘저 인형들 내가 퀵을 통해 온하준 사무실로 보냈던 것들이잖아. 그걸 이하나가 챙겨간 거야?’“안녕!”강지연이 차 안에서 손을 흔들었다.“나 여기 있어. 굳이 온하준을 통해서 말하지 말고 나한테 바로 하면 되잖아.”강지연을 보자 이하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거기다 강지연이 웃고 있다는 게 더 충격이었고 동시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이하나는 지금 이 상황을 보고 강지연이 마음을 바꿔서 고소를 취하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떡하나 싶었다.“강지연...”이하나는 급히 차창 쪽으로 다가와 강지연 앞에서 연기를 이어갔다.“미안해, 네가 날 좀 이해해 줘. 다른 건 괜찮은데 이 인형들만큼은 정말 포기 못 하겠어. 명품이니 큰집이니, 시계니, 보석이니 돈이니 그런 건 사실 없어도 상관없는데 이건 정말 나한테 너무 소중한 거야. 이건 하준이가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모아준 거잖아. 값이 비싼 건 아닐지 몰라도 돈보다 더 소중한 거야. 강지연, 너는 이거 안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나한테 주면 안 될까?”‘와, 연기력 대박이네. 배우를 해도 되겠어.’강지연은 웃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괜찮아. 내가 버린 쓰레기일 뿐이야. 네가 주워가고 싶으면 주워가.”강지연은 쓰레기라고 말하며 일부러 온하준을 한번 쳐다보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온하준은 그 웃음이 싫었다. 특히 ‘쓰레기’라는 단어는 묘하게 자기를 말하는 것 같아 더 거슬렸다.“강지...”온하준의 목소리에 짜증이 번졌다. 하지만 강지연은 그가 이름을 다 부르기도 전에 더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온하준, 방금 잘 들었어? 너의 이하나가 방금 그랬잖아. 집도 필요 없고 명품도 필요 없고 시계랑 보석도 필요 없고 돈도 필요 없대. 그러니까 앞으로 이렇게 순수한 영혼을 더럽히지 마. 알겠지? 그거 안 좋은 거야.”온하준은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그래? 그러면 너한텐 집이랑 명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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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하준아, 그 나무패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이하나는 마치 온하준이 자기한테 고의로 뭔가를 숨겼다는 듯이 말끝에 서운함을 묻혔다.온하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강지연이 웃으며 말했다.“그거 황화단으로 만든 거야. 온하준의 평안과 바람이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여의 모양으로 새긴 거고.”“황화단?”이하나가 중얼거렸다.“그럼 비싼 거야? 하준아, 미안해...”이하나는 즉시 눈가를 붉히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늘 그랬듯 본인이 무슨 잘못을 저지르든 항상 자기가 제일 억울한 사람처럼 굴었다.이하나는 고개를 돌려 강지연에게까지 사과했다.“강지연, 미안해. 이렇게 귀한 건 줄 몰랐어. 그냥 흔한 나무 조각인 줄 알았거든.”강지연은 미소를 유지한 채 이하나를 바라봤다.“응? 조금 전엔 돈이니 뭐니 그런 건 상관없고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근데 갑자기 왜 흔한 나무라고 무시하는 거야? 아무리 흔한 나무로 만든 거라도 다 마음이 담긴 거야. 그것도 한칼 한칼 손으로 깎은 건데.”이하나는 더 서럽다는 듯 얼굴을 구기려 말했다.“난 정말 네가 직접 깎은 건 줄 몰랐어. 알았으면 절대 안 뗐지. 내가 뗄 때 하준이도 아무 말 안 했어. 그래서 그냥 별거 아닌 줄 알았어. 미안해.”“우리 온 대표가 별것도 아닌 나무 쪼가리를 차에 걸어둘 리 없잖아. 그것도 제일 잘 보이는 위치에. 당연히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거지.”강지연은 온하준을 힐끗 바라보며 웃음을 꾹 눌러 참았다.한눈에 봐도 온하준은 지금 짜증이 치밀어 오른 상태였다. 그는 참지 못하고 결국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둘 다 그만해.”강지연은 워낙 두 사람과 말을 섞기 싫었던 터라 차라리 잘됐다는 마음으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이하나는 굳이 강지연 쪽으로 또 파고들었다.“하준아, 설마 강지연이 기념일 선물로 준 거야? 그럼 내가 진짜 잘못했네. 내 거 떼고 다시 나무패를 걸어.”그러고는 다시 강지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강지연, 진짜 미안해. 이렇게 중요한 건 줄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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