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Chapter 401 - Chapter 410

418 Chapters

제401화

시후는 레미처럼 여유를 부릴 기분이 아니었다.“중현이 죽을까 봐 진짜 안 무섭냐?”[너는 죽어도 중현이는 안 죽어.] 레미의 마음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다. 조금도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잊지 마. 하중현은 복수전공만 한 게 아니라 의대 수업도 청강했었어.]시후가 말을 멈췄다.곧 시후는 한 가지 문제를 알아차렸다.“그러니까 네 말은... 중현이가 강솔 씨 보라고 일부러 칼을 꽂았다는 거야?”[아마 아닐걸.] 전 과정을 전해 들은 레미에게는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중현은 원래 자해로 동정 사는 짓 싫어해. 아마 둘이 뭔가 얘기하다가 합의가 안 됐고, 중현이 갑자기 돌아서 미친 짓을 한 거겠지.]“그런데 안 죽는다고?” 시후는 걱정돼 죽을 지경이었다. “초기 소견으로는 꽤 깊게 들어갔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중현이 아무리 미쳐도 마지막 이성 한 줄은 남겨 둬.]레미는 방관자의 입장에서 비교적 전체를 또렷하게 보고 있었다. [진짜로 목숨 끊을 만큼 정신 나간 짓까지는 안 해.]“정신 나갔네.” 시후가 중현에게 이런 말을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레미는 태연했다.[정확히 봤어.]“진짜 안 올 거야?”레미는 책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지안을 한 번 바라봤다.[안 가. 강솔이 중현한테 잔뜩 놀랐을 거야. 내가 가서 대신 뒷수습 좀 해야지.]시후는 조금 전 강솔이 완전히 넋이 나간 듯한 모습을 떠올리고 더는 말하지 않았다.보통 사람이 중현 같은 미친 사람을 마주쳤다면.확실히 옆에서 상황을 보고 중현에게 맞춰 줄 사람이 필요했다.강솔은 지금 감정이 몹시 좋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흰 셔츠 위로 번졌던 눈부시게 선명한 붉은 자국만 가득했다.임풍은 앞에서 운전하다가 룸미러로 강솔의 표정을 확인하자,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사모님.”강솔은 움직이지 않고, 임풍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몸은 계속 같은 자세로 굳어 말을 듣지 않았다.“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보스는 백 퍼센트 괜찮으실 겁니다.” 임풍은
Read more

제402화

강솔은 차에서 내렸다. 활짝 열려 있는 별장 문을 바라보자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이 시간쯤이면, 하중현은 위험한 고비를 넘겼을까.’“왔어?”레미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시선은 평소와 다름없이 강솔에게 머물렀다.“호텔에서 있었던 일은 시후한테 들었어. 많이 놀랐지?”강솔은 복잡한 마음으로 레미를 바라봤다.레미는 강솔 앞까지 다가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가볍게 정리해 주었다.“왜 그래?”강솔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어렵게 입을 열었다.“너희는... 날 원망 안 해?”‘레미와 고 대표는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몰라...’‘나와 하중현이랑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모르고...’중현의 친구라면 대부분은 강솔에게 이렇게 말해야 하는 거 아닐까?아무리 심하게 다퉜어도 칼을 들면 안 되는 거라고. 중현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않냐고.중현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엉망이 되는지 모르냐고.그런 다음 강솔을 원망하고, 강솔의 문제로 여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레미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곡선이 떠올라 있었다. 보는 사람까지 편안하게 만드는 표정이었다.“우리가 너한테 가스라이팅도 안 했는데, 왜 네가 먼저 너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어?”“난 그냥...” 레미가 그럴수록 강솔의 마음은 더 괴로워졌다.분명 돌아갈지 말지를 이야기했을 뿐이었다.그런데 칼까지 나왔다.“중현이 어떤 성격인지 우리는 다 알아. 중현이 그 개같은 성질머리로 그런 짓을 한 것이 놀랄 일도 아니야.” 레미는 강솔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오히려 너야말로 쓸데없이 죄책감 느끼지 마. 따지고 보면 중현이가 너한테 정신적 피해 보상금이라도 줘야 돼.”강솔이 눈을 들었다.레미가 말했다.“너를 그렇게 놀라게 했잖아.”강솔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고마워.”“나 여기서 이틀 정도 손님으로 지내도 돼?” 레미가 물었다. “그냥 손님으로. 중현이랑은 상관없이.”“와도 돼.”강솔이 그렇게 말하자, 레미는 강솔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Read more

제403화

그해 여름, 8월은 일 년 중 가장 뜨거운 달이었다.레미는 아주 오래전으로 돌아가 그 사람에게 묻고 싶었다.“8월의 옥상은 뜨겁지 않았어? 왜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았어? 단 5분이라도...”“그 일 뒤로 중현이는 잘 안 웃게 됐어. 예전만큼 잘난 척하지도 않았고.” 레미는 네 사람이 함께 웃고 떠들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움이 눈가에 옅게 번졌다. “중현이... 옛날엔 진짜 자아도취 심했거든. 맨날 그 녀석이랑 누가 더 잘생겼는지 다퉜어.”강솔의 가슴이 더 무겁게 짓눌렸다.열여섯 살의 사춘기.대부분의 사람에게 평생 가장 선명하게 남는 시기였다.그 나이에 그런 일을 겪었다면, 어쩌면 평생 잊지도 못하고 내려놓지도 못할 일이었을지 몰랐다.“그때 나랑 시후는 중현이가 그 일로 마음에 병이 날까 봐 걱정했어.” 레미가 말했다. “중현은 말도 줄고 웃지도 않게 됐어. 사람을 상대하는 방식은 갈수록 더 독해졌고.“그러다 중현이가 너랑 함께 있는 걸 봤어.“중현이도 조금씩 온기를 되찾기 시작했어. 그래서 우리도 각자 해야 할 일을 하러 갈 수 있었어.”강솔은 중현과 처음 제대로 마주하고 말을 나눴던 때를 떠올렸다. 꽤 큰 규모의 연회장이었다.그날 부모님은 따로 이야기를 나누러 갔고, 강솔은 사람들 눈에 덜 띄는 구석을 찾아 앉아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사람이 강솔에게 들러붙었다. 곤란해진 강솔을 구해 준 사람이 중현이었다.그때의 중현은 레미가 말한 그대로 웃음기 하나 없었다. 몸 전체에서 강한 거리감과 서늘함이 배어 나왔다. 강솔은 줄곧 중현을 상대하기 어렵고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본능적으로 거리를 두었다.하지만 그날 이후.강솔과 중현은 이상하리만큼 자주 마주쳤다. 우연처럼 마주치고 또 마주쳤다.그 뒤 두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야 중현은 강솔에게 말했다.그 모든 우연은 중현이 일부러 만든 것이라고.“솔아.”레미가 강솔을 불렀다.강솔은 생각에서 빠져나왔다.레미의 눈에
Read more

제404화

두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다. 강정숙은 메시지로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지 않겠다고 알렸고, 강솔은 레미와 지안, 자신이 먹을 3인분 식사만 주문했다.막 식사를 끝냈을 때, 핸드폰으로 강 비서의 메시지가 도착했다.[사모님, 대표님께서는 생명에 지장 없는 상태로 회복되셨습니다.]강솔은 그 소식을 레미에게 말했다.“중현이 아무리 미쳐도 진짜 자기 목숨까지 끊지는 않아. 기껏해야 반쯤 죽다 살아나는 정도지.”레미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중현이의 목적은 널 다시 데려가는 거야. 미친 짓을 해도 자기 몸에는 어느 정도 선을 남겨 둬.”“하중현... 예전에도 이랬어?” 강솔이 물었다.“예전엔 남한테 미친 짓을 했지.” 레미는 중현에 관한 일들을 꽤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특히 자기 부모한테.”강솔은 중현과 하준호 쪽 사람들의 관계를 떠올리고 더 묻지 않았다.‘알수록 마음이 약해질 뿐이야.’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먼저 독하게 마음먹는 편이 나았다....그 시각, 병원 쪽.중현은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옮겨졌다. 환자복을 입은 중현은 다소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그런 와중에도 묻는 것을 잊지 않았다.“지안 엄마... 답장했나?”“아직 안 하셨습니다.” 강 비서는 핸드폰을 쥔 손에 긴장이 묻어 있었다. “아마 바쁘신 것 같습니다.”시후가 낮게 코웃음을 쳤지만, 따로 말은 하지 않았다.그 짧은 소리만으로도 비웃음은 충분했다.중현은 시후를 한 번 쳐다봤다. 다친 몸이었지만 기세는 여전했다.“왜 봐? 자신 있으면 일어나서 나 때려 보든가.” 시후는 중현의 자해 같은 행동에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도대체 머릿속이 얼마나 꼬이면 멀쩡한 사람이 자기 몸에 칼을 꽂냐?”중현은 새까만 눈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머릿속에는 강솔이 감정 하나 없이 말했던 안 간다는 대답이 떠올랐다.“소식은 막았나?” 중현이 마음을 가라앉히며 물었다.“막기는 막았지. 그런데 여긴 어쨌든 H시야.” 시후가 도
Read more

제405화

“진영재가 널 만나러 온다고? 왜?”시후는 중현의 행동도 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너랑 진영재가 이해관계가 얽힌 것도 아니잖아. 지금까지 서로 건드리지도 않고 살았고.”“지안 도련님이 전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킨 일, 진영재가 사람을 시켜 벌인 일입니다.”강 비서가 입을 열어 설명했다.시후가 눈을 크게 떴다.이어 입을 열자마자 욕부터 했다.“그 자식, 머리에 문제 있는 거 아니야?”두 집안은 지금까지 아무 관계도 없었다.연회장에서 마주친 일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그런 일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진영재를 어떻게 할 생각이야?” 시후는 나중에 지안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던 일을 들은 뒤로 진영재가 몹시 못마땅했다. “내가 도와줄까?”중현은 얇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진영재가 오면 그때 보고. 서두를 필요 없어.”시후가 중현을 보며 물었다.“마취 풀려서 아프기 시작했어?”중현은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 시선은 강 비서에게 향해 있었다.“아직 답장 없나?”시후는 말을 잃었다.강 비서도 잠시 말문이 막혔다.강 비서는 아무런 변화 없는 메시지 창을 한 번 확인하고, 최대한 완곡하게 말했다.“지금 점심시간입니다. 사모님께서 식사를 마치고 쉬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무슨 휴식이야. 제수씨는 그냥 너 같은 미친 인간 상대하기 싫은 거지.” 시후는 조금도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 예전처럼 중현이 상처받을까 조심하지도 않았다. “정말 네가 죽는지 사는지 신경 썼다면, 이렇게 오래 아무 말도 안 할 리가 없잖아.”중현의 눈이 짙게 가라앉았다.중현은 침묵한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수씨가 그렇게 보고 싶으면 내가 지금 바로 데려올게.” 시후는 중현이 저런 모습으로 있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아니면 강 비서한테 제수씨한테 네 상태가 나빠졌다고 말하라고 해. 진짜 신경 안 쓰는 건지, 신경 안 쓰는 척하는 건지 확인해 보면 되잖아.”“필요 없어.”중현은 거절했다.시후는 정말 중현을 이해할 수 없었다.“
Read more

제406화

강솔은 가능한 한 냉정한 태도를 유지했다.“그럴 것 같진 않네요.”강 비서가 멈칫했다.시후도 강솔을 바라봤다.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곧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세 사람은 이미 중현의 병실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병상 위에는 창백한 낯으로 눈을 감고 잠든 중현이 누워 있었다. 강솔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중현의 가슴 쪽으로 향했다.“대표님.”강 비서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사모님 오셨습니다.”중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늘 거리감 있고 서늘하던 눈에는 평소에 있던 압박감이 옅어져 있었다. 대신 부드러움이 조금 담겨 있었다.강솔이 온 것을 보자, 중현의 눈 안쪽에 감정이 스쳐 갔다.“당신이랑 단둘이 할 얘기 있어.”강솔은 들고 있던 가방을 병상 옆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아주 단정하고 심플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중현은 두 사람에게 눈짓했다.강 비서는 중현의 침대를 조절해 등받이를 세워준 뒤, 얌전히 시후와 함께 병실을 빠져나갔다....문밖.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먼저 입을 연 사람은 시후였다. 시후는 굳게 닫힌 병실 문을 한 번 흘끗 보았다.“강솔 씨가 너희 보스랑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아?”강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상처 걱정 아닐까요?”“상처 걱정이면 첫날 왔겠지.” 시후는 이 일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굳이 지금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어?”게다가 강솔의 표정은 누군가를 걱정하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일을 벌이러 온 사람 같았다.“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강 비서는 시후보다 훨씬 담담했다. “중요한 건 사모님께서 오셨다는 사실만으로 대표님께서 기뻐하실 거라는 점입니다.”시후는 병실 문을 바라봤다.‘그러면 좋겠는데...’...병실 안.중현은 아직 손등에 수액을 맞고 있었다. 상체를 세운 중현은 옆에 앉은 강솔을 바라보다가 첫마디로 물었다.“그날 많이 놀랐지.”강솔은 숨기지 않았다.“
Read more

제407화

“좋아한다고?”강솔이 되물었다.“그게 당신이 말하는 좋아하는 거라면 사양할게. 난 감당 못 해.”말을 마친 강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머물 생각은 없었다.이미 들킨 일이었다. 더 있을 이유도 없었다.“잠깐.”중현이 강솔을 불렀다.강솔은 걸음을 멈췄고, 몸을 돌리자마자 중현보다 먼저 말을 꺼냈다.“당신이 소담이랑 안토니를 이용해서...”중현도 같은 때 입을 열었다.“내 상처는 안 물어봐?”두 사람의 말이 겹쳤다.병실 안의 공기가 그대로 가라앉았다.중현의 눈 깊은 곳에 알아채기 어려운 상처가 스쳤다. 그러나 오래 머물지 않고 금세 사라졌다.“오면서 들었어. 의사가 생명에는 지장 없다고 했어. 2, 3주 정도 쉬면 퇴원할 수 있고, 지금까지는 합병증도 발견되지 않았대.”중현은 강솔의 찌르는 듯한 말을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상태를 알려 줄 뿐이었다.“걱정 안 해도 돼.”“걱정 안 해.”강솔의 대답은 빨랐다. 하지만 손은 저도 모르게 꽉 쥐어졌다.중현의 시선은 여전히 강솔에게 머물러 있었다.예전에는 왜 몰랐을까?강솔이 이렇게 마음과 다른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걸.“걱정 안 하면 됐어.”중현은 강솔의 말을 굳이 들춰내지 않았다.“돌아가는 길 조심하고, 집 도착하면 나한테 메시지 하나 보내.”강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문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중현이 다시 강솔을 불렀다.“여보.”강솔의 손이 문고리에 올라가 있었다.중현은 거리감이 느껴지는 강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소담이랑 안토니한테 뭘 하지는 않아. 하지만 너랑 이혼하지도 않을 거야.”강솔은 문을 열고 나갔다.조금도 멈추지 않았다.“둘...”시후가 막 입을 열었지만, 강솔은 시후의 곁을 지나쳐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아무래도 대표님과 사모님의 대화가 좋게 끝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강 비서는 조금 지친 기분이 들었다.시후가 말했다.“그건 딱 봐도 알겠다.”강솔은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뒤 녹음
Read more

제408화

진환식의 눈에 자애로운 눈빛이 스쳤다.“네가 강솔이지?”강솔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어르신은 누구세요?”“내가 네 외할아버지다.”진환식은 그렇게 말하며 강솔을 바라봤다. 눈은 강솔을 보고 있으면서도, 강솔 너머의 다른 누군가를 보는 듯했다.“괜찮으면 나랑 집에 한번 가자. 가서 제대로 얘기 좀 하자.”“저한테 외할아버지는 없습니다. 저희 엄마 성은 ‘진’ 씨가 아니라 ‘강’ 씨예요.”강솔은 바로 거절했다.“네 외할머니는 ‘강’ 씨였다.”진환식은 품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강솔에게 건넸다.“예전에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사람이 네 엄마 젊었을 때 모습인지 한번 봐라.”강솔은 사진을 받았다.사진 속 사람은 분명 강정숙이었다.“집에 가서 이야기하는 게 싫으면, 맞은편에 조용한 가게 하나 들러서 잠깐 얘기해도 된다.”진환식에게는 위엄이 배어 있었다. 다만 강솔에게 말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그 기세를 조금 거두는 듯했다.“그것도 싫으면 네 집으로 가고.”강솔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진환식에 대한 첫인상은 매우 좋지 않았다.처음 만난 자리에서부터 협박이라니.‘엄마한테도 예전에 이런 식으로 나타났겠지.’“정했느냐?” 진환식이 물었다.강솔은 사진을 돌려주었다. 얼굴에는 거리감과 차가움이 선명했다.“맞은편 카페요. 10분만 드리겠습니다.”진환식이 집에 온다면 강정숙에게 괜한 상처를 더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지난 20 몇 년 동안 강정숙은 예전 집 이야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다. 그 집에서 많은 상처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진환식은 흔쾌히 받아들였다.“좋다.”일행은 카페로 갔다.예상대로였다.카페는 통째로 비워져 있었다. 안에는 강솔 외에 진환식과 곁에 선 최 집사만 있었다. 문 앞에는 경호원 몇 명이 반듯하게 서 있었다.“저를 찾으신 이유가 뭔지 바로 말씀하세요.”강솔이 먼저 입을 열었다.“성격이 네 엄마랑 많이 닮았구나.”진환식의 얼굴에 약간의 부드러움이 떠올랐다. 말투에는 전보다 묵직
Read more

제409화

진환식의 표정이 잠시 멍해졌다.진환식이 대답하기도 전에 강솔이 다시 물었다.“아니면 그때 일에 여씨 집안 그분만이 아니라, 진씨 집안도 관여했던 건가요?”“그때 일은 회장님께서도 많이 후회하고 계십니다.”곁에 서서 줄곧 입을 열지 않던 김 집사가 말했다.“그래서요?”강솔은 온몸에 가시를 세운 사람 같았다.진환식은 입을 열려다 말았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는 듯했다.강솔은 진씨 집안을 향한 거부감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앞으로 강솔과 강정숙을 다시는 나타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가식적으로 후회하시는 거라면, 차라리 지난 이십여 년처럼 앞으로도 찾아오지 마세요. 그러면 제가 어르신들을 조금은 더 좋게 볼지도 모르죠.”말을 마친 강솔은 두 사람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강솔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대체 무슨 자격으로, 예전에 강정숙에게 상처를 주고 이제 와서 가볍게 후회한다는 말 한마디로 덮으려 한단 말인가?후회한다고 시간이 되돌려지나?후회한다고 강정숙 마음속 상처가 사라지나?아무것도 되돌릴 수 없었다.“솔이 아가씨는 어머니를 깊이 생각해서 그런 겁니다.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십시오.”김 집사가 침묵한 진환식을 달랬다.“저 성격이 예전의 정숙이랑 똑같구나.”진환식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김 집사, 내가 그때 일을 정숙이에게 사과해야 할까?”김 집사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정숙 아가씨 성격상 받아들이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진환식의 표정이 복잡해졌다.“그래. 그 아이도 고집이 쇠심줄이지.”김 집사가 가볍게 농담을 건넸다.“회장님도 마찬가지입니다.”“그것도 맞아. 두 아이가 다 나를 닮았어.”진환식은 시원하게 인정했다.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호되게 꾸중을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정숙이가 그렇게 오래 의식 없이 지냈다는 걸 몰랐다면, 나도 평생 고집부리며 버텼을 거다.”“한번 만나 보시겠습니까?”김 집사가 조심스레 제안했다.“
Read more

제410화

“진 대표한테 줘.”중현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영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시후가 잠깐 멍해졌다.“뭘 줘?”시후에게 대답한 건, 강 비서가 어디선가 가져온 작은 망고 두 개였다.영재는 망고를 한 번 훑어보더니, 여전히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매형은 정말 당한 건 꼭 갚는 분이시네요.”중현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물건은 거기 있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네 몫이고.”“선택할 게 뭐가 있겠어요? 사랑하는 매형 화를 풀어 드리려면 제 선택지는 하나뿐이죠.”영재는 작은 망고 두 개를 손에 들었다. 온몸에서 건들거리는 분위기가 났다.함께 들어온 엘리트 분위기의 남자 비서가 미간을 좁혔다.“드시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영재는 손안의 망고를 굴리듯 만지작거렸다.“그 정도는 아니야. 기껏해야 숨 좀 막히겠지.”영재의 비서 한욱은 말을 잃었다.“아, 맞다. 이건 내가 먹고 싶어서 먹는 거야.”영재는 고개를 돌려 한욱에게 말했다.“조금 있다 무슨 일 생겨도 우리 매형이랑은 상관없어. 매형 귀찮게 하지 마. 알았지?”한욱의 눈에 어쩔 수 없다는 기색이 스쳤다. 한욱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준비해 주십시오. 곧 응급 처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시후가 영재와 한욱을 번갈아 봤다.시후의 머릿속은 물음표로 가득했다.‘이게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진영재가 미친 건 그렇다 쳐도, 중현이도 같이 미쳐 있고.’‘저 사람은 비서인지 뭔지 모르겠는데...’‘왜 저렇게 같이 장단에 맞춰 춤추고, 말리지도 않는 거지?’“제가 이 두 개를 먹으면, 어린 조카 일은 없던 걸로 해 주시는 겁니까?”영재는 망고 껍질을 벗기며 물었다.“내 쪽에서는 끝난 걸로 하지.”이런 일에서 중현은 강솔을 대신해 멋대로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내 와이프 쪽은 네가 직접 가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보아하니 매형의 집안 내 입지가 그렇게 높진 않으신가 봅니다.”영재는 작은 망고를 입에 넣으며 발음이 흐트러진 채 놀리듯 말했
Read more
PREV
1
...
37383940414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