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Chapter 31 - Chapter 40

100 Chapters

제31화

전서진이 입을 열자 주현우는 더 답답해졌다.무심하게 전서진을 힐끗 쳐다본 주현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담뱃갑을 집어 들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술을 다 따른 여자는 그 모습에 급하게 테이블 위 라이터를 들고 무릎을 꿇으며 다가가 불을 붙여주려 했다.주현우는 여자가 건네는 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저 여자 손에서 라이터를 가져온 뒤 손을 흔들어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전서진은 웃음이 났다.자신도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내뿜으며 주현우에게 물었다."그 정도야? 그렇게 심각해?"무대에서는 누군가 노래를 부르고 주변은 시끄러웠다. 주현우는 연기를 뿜으며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어내고 차갑게 말했다."어르신이 이혼하라고 하셨어."전서진은 바로 정신을 차리고 주현우를 보며 물었다."그럼 아연이랑 위자료 문제는 다 정리했어?"두 사람 모두 평소의 건들거리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진지했다. 전서진의 질문에 주현우는 조금 전보다 미간을 더 찌푸린 채 말했다."아무것도 싫고 부대표 자리도 그만두겠대. 비밀 유지 계약서도 이미 작성해 놨어."전서진은 주현우를 바라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모두 허아연이 주현우와 결혼한 건 주씨 가문 자식이기 때문이라 여겼다. 누구든 이익을 추구하는 건 당연했고 비난할 일도 아니었다.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런 것이었다.다만 3년 뒤 허아연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회사까지 그만둘 줄은 상상도 못 했다.허아연이 제정신이 아닌 걸까? 게다가 경주 그룹을 위해 3년 동안 일했으니 주현우가 뭔가 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한참 동안 주현우를 빤히 쳐다보던 전서진은 아예 담배를 꺼버리고 물었다."그럼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이야?"허아연이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면 기뻐해야 할 주현우인데 별로 기뻐 보이지 않았다.오히려 걱정 가득한 모습이었다. 덤덤하게 전서진을 힐끗 쳐다보던 주현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혼할 생각 없어."할아버지에게 허아연과 결혼하겠다고 약속한 순간부터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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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병실 안, 허아연은 허민수의 손을 잡은 채 침대 옆에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주현우와 혼인신고 한 뒤로 허아연은 거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주현우와 일에 쏟아부었다.본가에 돌아가 허민수와 식사하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뒤돌아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허민수 손에서 컸으니까. 허아연은 허민수의 손을 잡아 살며시 자신의 볼에 갖다 대고 혼잣말로 나지막하게 말했다."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제가 앞으로 할아버지 잘 모실게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실 문이 열렸다.허아연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주진우가 온 줄 알았는데 주현우였다.허아연은 놀란 표정으로 주현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다시 돌아왔어요?"주현우는 아무 말 없이 가져온 야식을 식탁에 놓고 무심하게 다가갔다.고개를 들어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감정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주현우와 눈이 마주친 허아연이 나지막하게 말했다."할아버지 이미 잠드셨어요.""응." 주현우가 담담하게 대답했다.주현우는 돌아온 이유를 말하지 않았고 허아연도 묻지 않았다. 허아연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잠든 허민수를 계속 바라보았다.허아연을 한참 바라보던 주현우는 허아연 옆에 있던 의자를 당겨 앉았다.조용한 병실에는 나이트 조명 하나만 켜져 있었다.밤낮없이 허민수를 지키는 허아연을 보던 주현우가 말했다."이미 잠든 어르신 계속 쳐다봐도 별 의미 없어."병원에 있는 며칠 동안 허아연은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허아연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여전히 허민수의 손을 잡고 담담하게 말했다."나한테는 이제 할아버지밖에 없어요."부모님도 돌아가셨고 집안에 다른 친척도 없었다. 할아버지가 유일한 혈육이었다.주현우는 감회에 젖은 허아연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하얀 피부에 정교한 이목구비 중 오뚝한 코가 특히 예뻤다. 다만 입술이 평소보다 건조했고 검은 머리카락은 조금 기름기가 있었고 눈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단순히 허민수를 돌보느라 피곤한 건 아닌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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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허아연의 말은 예의 바르면서도 거리감이 느껴졌다.주현우는 허아연이 인절미만 먹는 것을 보고 물었다."입맛에 안 맞아?"허아연이 웃으며 설명했다."아니에요. 파파야랑 새우 알레르기가 있어서요."주현우는 조금 민망한 듯 맞은편 벽을 바라보며 손을 올려 머리를 쓸어 넘겼다.방금 급하게 음식을 사느라 뭘 샀는지 확인하는 걸 잊은 것이다.주현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허아연은 급히 분위기를 풀려 웃으며 말했다."이 집 떡 맛있네요. 내가 전에 샀던 것보다 맛있어요."주현우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많이 먹어.""네."인절미 몇 조각을 먹은 허아연은 야식을 옆에 내려놓고 맞은편 벽을 보며 감회에 젖어 말했다."몇 년 동안 할아버지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적었어요. 요 며칠 보니까 할아버지가 많이 늙으셨더라고요. 정말 할아버지가 됐어요."주현우가 두 팔을 의자 등받이에 걸친 채 물었다."어르신 일흔 넘으셨지?""일흔다섯이에요. 현우 씨 할아버지보다 한 살 적어요."주현우가 허아연을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물었다."너는 올해 몇 살이야?"주현우를 바라보던 허아연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마치 부모가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몇 학년인지 모르는 느낌이었다.주현우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고 관심이 없다는 건 알았지만 나이조차 모를 줄은 몰랐다.허아연은 주현우를 보며 미소를 띤 채 말했다."스물셋이에요."그 말에 주현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덧붙였다. "겨우 스물셋이야? 난 스물다섯 여섯쯤 된 줄 알았어."허아연이 말했다."수능에 조기 응시해서 스무 살에 대학 졸업하고 바로 경주 그룹에 들어갔어요."주현우가 웃으며 칭찬했다."대단하네."허아연도 따라 웃었다."아니에요."허아연이 웃자 주현우는 두 손을 여전히 벤치 등받이에 올린 채 고개를 돌리고 빤히 쳐다보았다.주현우가 빤히 쳐다보자 허아연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입가를 닦았다. 방금 음식을 먹다가 얼굴에 뭐가 묻은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현우가 갑자기 말했다."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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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집에서 휴가 중이던 주진우는 병원에 자주 찾아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왔고 저녁에도 들르곤 했다. 허아연과 주현우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본 주진우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돌아서서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주진우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옆에 있는 쓰레기통 위에 야식을 올려놓았다.안에는 전부 허아연이 좋아하는 음식들이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주진우는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차분하고 여유로웠으며 많은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복도 한켠.얼굴에서 주현우의 손을 떼어낸 허아연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우린 안 어울려요."주현우가 웃었다."그렇게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 다들 천천히 적응하는 거지." 조금 전 바에서 주현우는 허아연을 달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그런데 얼마나 지났다고 그 말을 번복한 것이다.주현우는 이혼할 생각이 없었다.특히 3년 동안 함께 지내보니 더더욱 굳이 이혼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졌다.허아연은 고개를 들었다. 시간을 끌던 주현우가 또다시 번복할 줄은 몰랐다.허아연이 쳐다보자 주현우가 웃으며 말했다."왜 그렇게 쳐다봐?"이어 또 달래듯 말했다."앞으로 집에 들어갈게."허아연은 진지하게 물었다."할아버지가 현우 씨한테 뭐라고 했죠? 할아버지 말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돼요. 억지로 강요하지 말고 현우 씨 마음을 따르는 게 제일 중요해요."주현우가 갑자기 타협하는 건 아마 할아버지 말씀 때문일 것이다. 허아연이 이혼하면 의지할 곳이 없을까 봐 이혼하는 걸 바라지 않는 듯했다. 허민수와 허아연 두 사람 모두 이혼을 마음먹은 듯했다. 주현우는 시선을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주현우는 두 손을 의자 등받이에 여유롭게 올린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앞에 있는 벽만 바라보았다.얼굴을 돌린 허아연이 꼼짝 않고 주현우를 바라보았다.주현우를 한참 바라보던 허아연은 시선을 거두고 맞은편 게시판을 바라보며 감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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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허아연은 두 가지 요리를 추가했다.잠시 후 웨이터가 두 사람에게 차를 가져다주자 전서진은 허아연에게 차를 따라주고 웃으며 말했다."현우한테 들었는데 회사 그만둘 거라면서? 비밀 유지 계약서까지 다 작성했다고."맞은편에 있던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 "직장 규칙이잖아요."전서진이 차를 건네며 말했다."현우가 그러던데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했어?"허아연은 두 손으로 차를 받아 들고 미소 지으며 말했다. "혼인신고할 때도 관여된 재산은 없었어요. 그러니 이혼도 복잡할 거 없어요."이때 종업원이 요리를 서빙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잠시 대화를 멈췄다.종업원이 요리를 다 올린 뒤에야 전서진은 방금 전 이야기를 다시 이어갔다."아연아, 바보 짓하지 마. 현우와 이혼하겠다는 건 말리지 않을게. 하지만 일이랑 위자료는 홧김에 그러지 말고 받을 건 받아."허아연이 입을 열기도 전에 전서진이 다시 진심 어린 말투로 말했다."지금은 취업 전망도 좋지 않고 모든 업계가 경쟁이 치열해. 네가 경주 그룹에서 보낸 3년은 사실 따져보면 빈 이력이야. 출발점이 너무 높아서 밖에서는 인정 안 할 거야.""이혼에 관해 디테일한 부분들 현우한테 직접 얘기하기 불편하면 내가 대신 얘기해줄게.""아연아, 이것만 기억해. 이익을 네 손에 쥐어야 네 것이 되는 거야. 네가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면서 살 수 있는 게 행복이고 가장 중요한 거야."학교 다닐 때 허아연의 성적이 좋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하지만 실무와 이론 지식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몇 년 동안 경주 그룹에서 순조로울 수 있었던 건 주씨 가문이 뒤를 봐줬기 때문이었다.위기에 처한 사람한테든 모두 등을 돌린다고 했다. 만약 정말 주현우와 이혼하고 부대표 자리에서 물러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돌을 던지고 불난 데 부채질하며 괴롭힐지 몰랐다. 높은 곳에 선 사람을 보면 무너지길 바라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때문에 돈을 받고 계속 허 부대표로 있는 게 가장 올바른 선택이었다.전서진이 간곡하게 말하자 허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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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역시나 결혼은 감정의 무덤이라는 말이 맞았다. 오래 지나면 서로 싫증 나는 게 당연한 듯했다. 차가 건물 아래 멈춰섰고 전서진은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허아연이 회사로 들어가는 걸 지켜보던 전서진은 차에 시동 걸고 자기 회사로 돌아갔다.사무실로 돌아온 허아연은 또다시 일에 몰두했다.일을 다 끝냈을 때 이미 해가 저물어 있었다. 허아연은 본가로 돌아가 할아버지를 뵙고 나서야 차를 몰고 아레아 베이로 돌아갔다.본가에 머물며 할아버지와 더 오래 같이 있고 싶었지만 허아연의 움직임은 경주 그룹의 이익과 연계되었기에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어쨌든 아직 절차를 밟은 건 아니니까.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밤 열 시였다.유서희는 자지 않고 허아연을 기다리고 있었다."아연이 돌아왔구나. 할아버지 요즘 어때? 좀 나아지셨어?"허아연이 신발을 갈아 신으며 말했다."많이 좋아지셨어요. 어머니, 앞으로는 저 기다리지 말고 일찍 쉬세요."유서희가 허아연의 가방을 받아 유미 이모에게 건네며 느긋하게 말했다."늦은 것도 아닌데 뭘. 네가 돌아오면 같이 얘기도 할 수 있잖아."유서희는 또 허아연에게 다가가 몰래 보고하듯 말했다."현우도 여섯 시 좀 넘어 돌아와서 집에서 밥 먹었어. 앞으로 내가 여기 없어도 현우 얌전하게 지낼 거야.""남자는 역시 잡아야 돼. 아연이 너는 평소에 너무 착해. 화도 좀 내고 그러면 현우가 네 말 들을 거야. 요즘 봐봐, 얼마나 말을 잘 들어."유서희는 주현우를 칭찬하면서 돌려서 주현우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고 이혼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허아연은 그 말에 웃으며 말했다."현우 씨가 어머니를 많이 아끼잖아요."이혼할 때 호적 등본도 필요 없으니 다른 사람을 설득할 생각이 없었다. 허아연과 주현우만 잘 의논하면 되었다.사실 이건 언젠가는 겪어야 할 일이었다.게다가 몇 년 더 끌다가 두 사람이 나이가 들고 아이도 없으면 주씨 가문 모두가 중간에 끼어 난처해질 것이다.허아연이 지금 이혼을 고집하는 것도 나중에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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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허아연을 한참 바라보던 주현우가 조용하게 말했다."나한테 사형선고 내리는 거야? 의논할 여지도 없어?"그 말에 허아연은 얼굴이 빨개졌다."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에요."찔려하는 허아연을 보며 주현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자자."허아연은 급하게 대답했다."네."주현우가 불을 끄자 허아연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침대 머리맡에는 나이트 조명이 켜져 있었다. 허아연이 고개를 돌려 주현우를 바라보려는데 주현우가 갑자기 몸을 돌려 허아연을 품에 가두었다.깜짝 놀란 허아연은 급하게 두 손으로 주현우의 가슴을 밀며 귀띔했다. "주현우 씨, 손에 있는 프로젝트들 사인만 끝나면 절차 밟으러 간다고 약속했잖아요."주현우가 더 힘을 주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내 말이 그렇게 잘 먹혀? 그럼 내가 이혼 안 한다고 하면?""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이미 할아버지한테서 호적 등본도 받았고 이혼까지 결심했는데 주현우가 왜 번복하는 걸까?허아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주현우는 저항하던 허아연의 두 손을 잡아 머리 양옆에 누르고 몸을 숙이며 키스하려 했다.이번에 허아연은 키스를 허락하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주현우가 웃음을 터뜨리며 우스운 듯 말했다."내가 진짜 힘으로 밀어붙이면 네가 반항할 수 있을 것 같아?"이어 또 명령했다."얼굴 돌려."허아연은 듣지 않고 오히려 얼굴을 더 옆으로 돌렸다. 얼굴 반쪽 전부가 부드러운 베개에 파묻혔다.허아연의 옆모습은 참 예뻤다.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에 눈빛에서는 강인함도 느껴졌다.마치…… 오늘 밤은 죽어도 주현우의 말을 따르지 않겠다는 듯 말이다.허아연이 고집을 부리자 주현우는 오히려 흥미로워졌다.두 손으로 허아연의 손목을 꽉 잡았지만 거칠게 강제로 밀어붙이거나 허아연의 얼굴을 돌리지도 않았다.그저 몸을 숙여 허아연에게 키스했다.곧이어 부드러운 키스는 허아연의 귀와 목덜미로 이어졌다. 허아연은 숨을 꾹 참은 채 미간을 꽉 찌푸렸다.감히 눈도 뜰 수 없었다. 온몸이 너무 간지러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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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다시 이어진 주현우의 키스에 허아연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감히 눈을 뜨고 쳐다볼 수가 없었다.주현우가 정말 다음 스텝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허아연은 갑자기 주현우를 밀어내고 순진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현우 씨, 나 배고파요."방 안은 무척 야릇한 분위기였다. 주현우가 허아연의 턱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내가 지금 먹여주고 있잖아?"순간 허아연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주현우 무슨 생각하는 거야?'허아연은 정말 배가 고프다는 뜻이었다.저녁을 먹지 않아서 배가 고팠다.빨개진 얼굴로 허아연이 해명했다."저녁 안 먹어서 정말 배가 고프다는 뜻이에요."주현우가 오해할까 봐 일부러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꼼짝 않고 빤히 쳐다보던 주현우는 허아연이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 게 싫어서 핑계를 대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허아연의 배에서 때마침 꼬르륵 소리가 났다. 주현우의 눈빛이 변하는 것을 본 허아연이 몸을 뒤척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정말 배고파요."말이 끝나자마자 배에서 또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렸다. 허아연의 난리통에 주현우도 흥미가 사라졌다.허아연의 잠옷 단추를 잠가주고 일어났다.허아연이 그 모습에 안도의 숨을 내쉬고 두 손으로 침대를 짚고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아래층 가서 뭐 좀 찾아먹을게요. 먼저 쉬어요."홀가분해 보이는 허아연을 힐끗 쳐다보던 주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통유리창 앞으로 걸어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허아연은 방문을 열고 도망치듯 나가버렸다.허아연은 박희수를 본가로 돌려보낼 핑계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두 사람이 정말 무슨 일이 생기면 앞으로 더 골치 아파질 것이다.주방으로 내려온 허아연이 냉장고를 열어 음식을 찾고 있을 때 주현우도 느긋하게 내려왔다.주현우가 다가오는 것을 본 허아연이 물었다."현우 씨도 배고파요?"주현우는 대꾸하지 않고 알아서 냉장고 앞으로 걸어가 안에서 소고기 장조림과 계란을 꺼내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켰다.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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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주현우 얘기가 나오자 허아연은 주현우가 약지에 끼고 있던 반지가 떠올랐다. 오지은과 같은 반지였다. '됐어.' "그냥 정리하자.' 그 뒤로 며칠 동안 허아연은 의도적으로 주현우를 피했다. 연속 며칠 밤이 되면 주현우가 샤워하는 틈을 타서 먼저 잠들었다.주현우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에만 집중했다. 이날 점심,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허아연에게 김민희가 초대장 한 장을 건넸다."대표님, 올해 비즈니스 포럼 초대장입니다. 24일부터 2일까지 해원 리조트에서 진행됩니다."허아연은 김민희가 건네는 초대장을 받고 부드럽게 말했다."알았어요. 항공권 예약해 줘요.""네, 대표님."오후에 주현우도 초대장을 받았지만 허아연에게 얘기하지도 않았고 같이 가자는 약속도 잡지 않았다.주진우가 휴가차 본가에 돌아온 탓에 유서희는 아레아 베이에서 이틀 더 지낸 뒤 짐을 챙겨 돌아갔다.유서희가 떠난 다음 날, 주현우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집에 돌아와 텅 빈 방을 본 허아연은 웃음이 나면서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다만 며칠 전에 흔들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인적이 드문 깊은 밤.허아연이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침실 문이 열렸다.이어 큰 불의 스위치가 켜지며 방 안이 환히 밝아졌다.주현우는 침대 위의 허아연을 힐끗 쳐다보고는 셔츠 단추를 풀고 옷장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내 욕실로 들어갔다.잠시 후.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온 순간, 허아연이 몸을 뒤척이다가 평소 주현우가 자던 자리를 차지한 것을 발견했다.오른쪽에서 자는 습관이 있던 주현우는 머리를 닦고 수건을 옆에 내려놓은 뒤, 침대 옆으로 걸어가 몸을 숙여 허아연을 안아 들었다.주현우가 조심스레 들어서 다시 조심스레 내려놓았지만 그래도 허아연은 잠에서 깨고 말았다. 눈을 뜨자 눈부신 불빛에 급하게 다시 눈을 감은 허아연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잠시 후 실눈을 뜬 허아연은 바로 코앞에 있는 주현우를 발견했다. 허아연은 잠결에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주현우를 보고 웃었다."돌아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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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지은 언니, 몇 년 만인데 점점 더 예뻐지고 분위기가 넘쳐요.""지은아, 이번에 돌아오면 현우랑 결실을 맺는 거지? 빨리 너희 잔치 국수 먹고 싶어.." "지은아, 이제는 다시 돌아가지 마. 너희 아버지 회사도 네 도움이 필요하잖아."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인 오지은에게 사람들은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환영하고 주현우와의 사랑을 축복하며 잔치 국수를 먹게 해달라고 했다. 아무도 허아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마치…… 허아연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허아연이 주현우의 아내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옆에는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을 입어 기품이 넘쳐 보이는 주현우가 서 있었다. 두 손을 정장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오지은을 바라보는 주현우의 눈빛은 차분하고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주현우는 한 번도 허아연을 이런 눈길로 바라본 적 없었다. 허아연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할 때도 없었다.사람들 말에 오지은이 웃으며 말했다."돌아와서 할 일이 많아서 그랬어요. 오늘 저녁에 내가 대접할게요, 괜찮죠? 그리고 이번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 앞으로 자주 만나요."오지은은 다시 고개를 돌려 주현우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나랑 현우 잔치 국수는 현우한테 달렸어요."오지은이 말을 마치자 모두 주현우를 보며 재촉했다."현우 씨, 빨리요. 우리 다 기다리고 있어요.""현우야, 너랑 지은이 벌써 몇 년째야. 이제 결론을 내려야지. 우리 축의금도 다 준비했단 말야."주현우는 여전히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넣고 있었다. 콧대가 날렵한 옆모습은 특히 잘생겨 보였다. 사람들의 재촉에도 주현우는 미소만 지었다. 이때 주변 사람들이 떠들어대며 말했다."현우 씨, 말하지 않으면 인정하는 거예요.""현우 씨, 동의한 걸로 알고 연말에 잔치 국수 먹게 노력해요."허아연은 손에 룸 카드를 들고 말없이 멀지 않은 곳을 바라보았다. 주현우와 오지은은 그야말로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였다. 김민희는 옆에서 사람들과 허아연을 번갈아 쳐다보았다허아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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