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Chapter 51 - Chapter 60

100 Chapters

제51화

주현우의 강압적인 태도에 허아연은 고개를 홱 돌려 쳐다보지도 않고 반항하지도 않았다.허아연의 반응에 주현우의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허아연에게 키스하던 것도 멈추었다. 꼼짝 않고 허아연을 품에 가둔 채 한참 쳐다보던 주현우가 갑자기 빠르게 허아연 몸 위에서 일어났다."냄새나. 가서 씻어."허아연은 주현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벗겨진 옷을 위로 끌어올린 뒤 침대에서 내려와 말없이 욕실로 향했다.방 안에 있던 주현우는 허아연을 힐끗 돌아보더니 테이블 앞으로 걸어갔다. 담배와 라이터를 집어 들고 약간 짜증스럽게 담배에 불을 붙인 뒤 통유리창 앞으로 갔다.허아연이 정말 다음 남자를 찾고 있는 걸까? 정말로 이혼하려고 마음먹은 걸까?그럴 리 없었다. 주씨 가문에 시집 오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했을 때부터 이혼할 리 없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주현우의 마음은 세게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무거웠다.허아연은 욕실에서 샤워를 두 시간 동안이나 했다.결국 참지 못한 주현우가 직접 다가가 문을 쿵쿵 두드리며 허아연을 불렀다."허아연.""무슨 일이에요?"허아연의 목소리가 들리자 주현우가 주머니에 손을 다시 찔러넣고 차갑게 말했다."범죄 현장 처리도 이렇게 오래 안 걸려. 내가 문 차버리기 전에 빨리 나와."주현우가 건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참 애도 많이 썼다. 순간 주현우도 흥미가 사라졌다.사실 허아연이 얼굴을 홱 돌리고 아무 감정 없는 듯한 표정을 지었을 때부터 주현우는 흥미를 잃었다.……그 시각, 아래층 레스토랑은 여전히 떠들썩했다.여전히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지만 주현우가 없는 자리는 왠지 허전한 오지은이었다. 오지은도 오래 놀지 않고 방으로 돌아갔다.……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허아연은 머리가 멍하고 등과 목이 아팠다.팔다리가 나른하고 온몸이 불편했다.책상 쪽에는 주현우가 이미 일어나 있었다.허아연이 깬 것을 본 주현우가 감정없이 말했다."시간 늦었어. 일어나서 옷 갈아입어."허아연은 이마에 팔을 올린 채 힘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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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허아연이 돌아서서 먼저 자리를 뜨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목덜미를 잡았다.놀라서 고개를 돌려 보니 주현우가 환한 얼굴로 어른들과 대화하며 오른손으로 목덜미를 슬며시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마치 대화하고 목덜미 잡은 사람이 같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허아연은 주현우를 바라보며 손을 떼어내려 했다. 그때 주현우가 목덜미를 놓고 아주 자연스럽게 허아연의 손을 잡아 옆으로 끌어당겼다. 허아연이 주현우를 쳐다보며 손을 빼내려 했지만 너무 꽉 잡고 있어 손을 뺄 수 없었다.시선을 돌리던 허아연은 유건희가 혼자 사람들 옆을 지나가는 것을 발견했다. 허아연은 단번에 주현우의 속셈을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유건희는 이쪽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허아연도 발견하지 못했다. 주현우가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이었다. 사실 주현우는 유건희를 보지 못했고 그저 떠나려는 허아연을 발견하고 옆에 붙잡아둔 것이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걸어오던 오지은은 조금 전 주현우의 행동을 전부 보게 되었다.순간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표정이 어색해졌다.주현우가 연기하는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조금은 속상했다.하지만 결국 감정을 추스르고 웃는 얼굴로 인사하러 다가왔다."현우야, 아연아.""지은 언니."사람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뒤 오지은은 웃으며 허아연과 업무 얘기를 나누었다."아연아, 스타라이트 테크 유건희 대표랑 아는 사이 맞지? 그 회사가 최근 2년 동안 무선 전력 기술을 연구한다던데 오성 그룹도 그쪽에 관심이 많고 연구도 하고 있거든.""그래서 말인데 아연아, 소개 좀 해 줄 수 있을까? 우리가 인사라도 나누게 해줘."오성 그룹은 오지은 가문의 회사였다. 오씨 가문이 지분 53%를 차지하고 기타 소액 주주와 자연인 주주가 47%를 차지했기에 오씨 가문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전에도 오지은의 아버지가 유건희를 몇 번이나 만나 협력 얘기를 나누려 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때문에 허아연이 어제 유건희와 하루 종일 함께 있는 것을 본 오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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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허아연의 힘없는 목소리에 주현우는 짧게 대답했다."응."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침대에서 단호하게 전화를 끊는 주현우를 본 허아연은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 눈앞에 들고 한참 쳐다보다가 다시 내려놓았다.……회의장 쪽, 주현우가 막 전화를 끊자 오원빈이 와서 얘기했다."대표님, 식사 시작했습니다."주현우가 휴대폰을 든 채 손을 정장 바지 주머니에 도로 넣고 돌아서서 오원빈에게 지시했다."점심 하나 포장해서 나중에 나한테 가져와."오원빈이 대답하기도 전에 주현우가 또 당부했다."주방 가서 건드리지 않은 걸로 포장해."다른 사람이 손댄 건 주현우는 절대 먹지 않았다."네, 대표님."오원빈은 답하고 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이때 오지은이 다가와 웃는 얼굴로 주현우에게 말했다."현우야, 같이 밥 먹으러 가자."주현우는 무덤덤하게 오지은을 쳐다봤다."난 안 갈게."오지은이 웃음기를 거두고 의아해하며 물었다."현우 너 밥 안 먹어?"주현우가 말했다."일이 좀 있어."똑바로 쳐다보던 오지은은 주현우가 무슨 일인지 말할 생각이 없는 것을 보고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하지만 빠르게 다시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그럼 난 먼저 밥 먹으러 갈게."옆에 있는 여자들과 떠나던 오지은이 고개를 돌려 힐끗 쳐다보았다. 주현우가 이틀 동안 좀 이상한 건 기분 탓일까? 주현우가 허아연을 신경 쓰는 걸까?불가능했다. 그럴 리 없었다.주현우는 그토록 사랑하는 오예은을 저버릴 리 없었다.주현우는 오예은에게 오지은을 오예은으로 생각하며 잘 돌볼 거라고 약속했었다. 그 생각이 들자 오지은은 오른손을 들어 가슴을 어루만졌다. '오예은이 지켜줄 거야.'……위층 스위트룸.주현우가 오원빈이 포장한 점심을 들고 돌아왔을 때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허아연이 커튼을 열지 않은 것이다.챙겨온 점심을 무심하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주현우는 통유리창 앞으로 걸어가 커튼을 반쯤 열었다.햇빛이 들어오자 방 안이 덜 어두컴컴해졌다. 스위트룸에 환기 시스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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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허아연은 깨지 않고 조금 뒤척일 뿐이었다.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던 주현우는 옆에 놓인 의자를 당겨 앉았다.먼저 밥을 먹거나 평소처럼 바쁘게 일하지도 않았다. 그저 옆에서 말없이 허아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오후 세 시가 넘어서야 허아연은 깨어났다.목이 마르고 아파서 아주 괴로웠다. 눈을 살짝 뜨니 방 안이 너무 밝아 다시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옆에서 허아연이 깬 것을 본 주현우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깼어?"주현우의 목소리에 허아연은 손을 내리고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두 손으로 침대를 짚고 천천히 일어나 앉아 주현우를 보며 물었다."오늘 회의 끝났어요? 인터뷰 끝났어요?"허아연은 목이 좀 잠겨 있었다. 말을 마치더니 또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몇 번 했다.그 모습에 주현우는 대답 대신 일어나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 허아연에게 건넸다.두 손으로 주현우가 건넨 따뜻한 물을 받아 든 허아연이 나지막하게 말했다."고마워요."물을 몇 모금 마시자 목이 마르고 아픈 느낌이 많이 나아졌다. 허아연이 다시 주현우를 쳐다보며 기운 하나 없이 흐릿한 눈빛으로 힘없이 말했다. 기운 없고 눈빛도 없이 허아연이 무력하게 말했다."감기가 좀 심한 것 같은데 현우 씨가 다른 방으로 옮기는 게 어때요? 감기 옮을 것 같아서 그래요."허아연이 감기가 심하다는 말에도 주현우는 여전히 대꾸하지 않고 그저 몸을 돌려 캐비닛 쪽으로 걸어갔다. 캐비닛 위에 놓인 봉지 안에서 약을 꺼내 다시 침대 앞으로 돌아와 허아연에게 건네며 말했다."먼저 약 먹어."두 손으로 물컵을 들고 있던 허아연은 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바라보았다. 주현우가 약을 사줄 줄은 몰랐다.약을 받지 않자 분위기가 어색하게 굳어버렸다. 한참 쳐다보던 허아연은 주현우가 여전히 약을 건네는 자세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급히 물컵에서 오른손을 떼어 약을 받으며 인사했다. "고마워요." 말을 마치고는 자세히 보지도 않고 바로 입에 털어 넣었다.그 모습에 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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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두 손으로 그릇을 허아연이 입까지 가져간 젓가락을 떼어내자 입술에 쌀알 두 개가 붙어 있었다.주현우가 허아연을 평온하게 바라보며 오른손을 들어 허아연 입술에 붙은 쌀알을 떼어내고 말했다."뒤로 미뤘어."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은 꼼짝하지 않고 빤히 쳐다봤다.주현우가 허아연 때문에 인터뷰를 미루고 돌아와서 돌봐 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결혼 전에는 주현우가 허아연을 나름 챙겨주긴 했지만 결혼 후 두 사람은 진작 남남처럼 지내왔다. 허아연이 주현우를 쳐다보자 주현우가 웃으며 말했다."날 쳐다보면 배불러? 병 낫게 해줘? 밥 먹어."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이 정신을 차리고 담담하게 말했다."폐 끼쳐서 미안해요."주현우는 대꾸하지 않고 옆에 놓인 젓가락을 들어 허아연 그릇에 갈비 한 조각을 얹어주었다."고마워요."고개를 파묻고 밥을 먹던 허아연 머릿속에 저도 모르게 옛 기억이 떠올랐다. "현우 씨, 무서워서 못 뛰겠어요. 만약 다리 부러지면 어떡해요?""이미 담장 위에 있잖아. 어떻게든 뛰어야 해. 이쪽으로 뛰어, 내가 받아줄게."학교 담장 위에 앉아 있던 허아연은 마지막에 결국 뛰어내렸고 주현우가 받아주었다.하지만 나중에 주민경은 받아주지 못했다.그때 발을 삔 주민경은 집에서 보름 동안 쉬고 나서야 외출 할 수 있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적지 않았다. 다만 결혼 후 두 사람은 변했고 예전 기억들도 다 전생에나 있었던 일 같았다.예전 생각이 떠오르자 허아연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옆에서 무표정하게 허아연을 바라보던 주현우가 덤덤하게 물었다."내가 회의 안 가고 인터뷰 안 간 게 그렇게 웃겨?""아니에요." 고개를 든 허아연은 웃음기를 거두고 주현우를 보며 말했다."그냥 예전 일이 생각나서요."예전 일?허아연을 바라보던 주현우가 시선을 내리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허아연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때문에 주건영은 허아연을 많이 챙겨주었다. 사실 주씨 가문 세 남매도 허아연를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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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허아연은 그 생각을 하며 청경채를 집어 입에 넣었다.식사를 마친 허아연은 책상을 정리하고 컴퓨터를 켜서 업무를 시작했다.아까 약을 먹은 덕분인지 컨디션이 점심보다 훨씬 나았다.회의 자료를 정리하고 사직서도 업데이트한 허아연은 인터넷에서 스타라이트 테크의 최근 몇 년간 동향을 검색하고 전공 지식을 찾아봤다.날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주현우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허아연이 정신없이 일하고 있을 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렸다.허아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답했다."들어와요."말이 끝나자 방문은 열리지 않고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고개를 든 허아연은 그제야 사무실이 아닌 호텔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우스를 내려놓고 급하게 일어나 문을 열었다. 김민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문을 여니 유건희가 서 있었다.허아연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 "유건희 대표님!"문밖에 있던 유건희가 말했다."비서한테 아프다고 들어서 찾아왔어요."유건희가 말하며 들고 온 봉지를 건넸다.허아연이 손을 내밀어 받아보니 투명한 비닐봉지 안에 허아연 얼굴보다 큰 망고 두 개와 코코넛 두 개가 들어 있었다.두 가지 과일 외에 전공 서적 두 권도 있었다."감사합니다, 대표님." 허아연은 문병 선물에 웃음이 났다.유건희가 왜 이 나이까지 솔로인지 이해가 됐다. 진정한 공대남이었다.허아연이 과일을 받자 유건희가 또 물었다."밥 먹었어요? 약은 있어요?"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밥 먹었어요. 약도 있어요."허아연이 또 예의상 말했다."대표님, 잠깐 들어오실래요?"유건희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아니요. 혹시라도 옮으면 안 돼요. 전 일해야 하거든요."순간 말을 잇지 못하던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죠. 대표님은 일이 중요하시니까 아프면 안 되죠. 그럼 전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옮기면 안 되니까요."허아연도 그저 예의상 한 말인데 유건희는 더 솔직했다.괜찮았다.두 사람은 짧게 대화를 나누고 작별 인사를 했다. 유건희는 자기 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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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주현우는 습관적으로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지켜볼 만해, 좀 더 알아볼 가치 있어."오지은은 그 말에 흥미가 생겼는지 눈을 반짝이며 주현우에게 말했다."그럼 우리 먼저 어디 가서 얘기 좀 할까? 내 생각을 말해주고 싶은데, 너만 괜찮으면……"오지은이 주현우를 방으로 초대하려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주현우가 말을 끊었다."그 얘기는 다음에 하자. 아연이가 아파."주현우는 아연이라고 부르며 허아연이 아프다고 말했다. 지은 얼굴의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오지은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주현우를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다시 시간 잡자."이내 다시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아연이는 어때?""심한 감기야. 약 먹었어."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주현우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자기 방 층을 누르며 오지은을 위해 위층 버튼도 눌러주었다.주현우가 급하게 돌아가려 하자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는 오지은의 표정이 조금 쓸쓸해 보였다.주현우 옆에 서 있던 오지은은 허아연과 이혼할 거냐고, 언니에게 한 약속은 아직도 유효한 거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주현우가 오늘 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보여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22층에 도착하자 주현우는 오지은에게 인사하고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라지는 주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오지은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허아연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순진하지 않아. 수완이 있어.'성큼성큼 방문 앞까지 걸어온 주현우는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다른 손으로 룸카드를 찍어 방문을 열었다.방문을 열자마자 본능적으로 방 안을 둘러봤다.다행히 허아연이 책상 앞에 앉아 책을 보고 있을 뿐 방 안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다.주현우의 미간이 살짝 펴질 때쯤 허아연이 고개를 들고 인사했다."일 끝났어요?"지금 허아연이 손에 들고 있는 건 유건희가 준 전공 서적이었다."응."주현우는 담담하게 허아연에게 대답하고는 다시 방 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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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바라본 허아연은 주현우의 눈동자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아주 선명한 모습이었다.시선을 떨군 채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고개를 옆으로 돌려 주현우의 눈빛을 피했다.좋아해서가 아니고 사랑 때문이 아니라면 대체 무슨 이유가 있을까?주현우에게 다시 시선을 돌리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생각하던 그때, 갑자기 주현우의 어깨 위에 눈길이 멈췄다. 립스틱 자국이었다. 주현우 어깨에 묻은 립스틱 자국을 빤히 쳐다보던 허아연은 알아볼 수 있었다.오지은의 립스틱 색이었다.시선을 거두고 다시 주현우의 눈을 바라본 순간,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3년 내내 혼자 빈방을 지켰던 일, 주현우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말, 허아연은 그럴 가치가 없다고 한 말들이 떠올랐다. 주현우의 눈을 빤히 바라보던 허아연은 차분하게 천천히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사랑 때문도 아니고 좋아해서는 더더욱 아니에요. 온갖 수단을 써서 당신과 결혼한 건 주씨 가문의 재산과 권력이 탐나서예요. 부대표 자리가 좋았고 평생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걸 당신한테서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허아연의 진지한 모습은 마침표 하나하나까지 진심이 느껴졌다.주현우는 무표정으로 꼼짝하지도 않고 허아연을 바라보았다.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결국 '픽'하고 비웃었다.얼굴을 옆으로 돌렸던 주현우가 다시 웃으며 허아연을 쳐다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허아연, 정말 솔직하네.""그런데 왜 나랑 싸우지도 않고 다투지도 않는 거야?"얼굴에 드러난 웃음이 무심할수록 주현우는 속으로 자신을 더 경멸했다.분명 혼인신고 전에 허아연의 일기장을 봤고, 허아연의 마음이 다른 곳에 있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밝히지 않았고 단호하게 혼약을 파기하지 못하고 이런 식으로 서로를 괴롭히는 쪽을 택했다.주현우의 무심한 조롱에 허아연은 주현우의 눈을 보며 여전히 침착하게 말했다."당신은 너무 까다롭고 경계심도 너무 심해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좀 더 나은 상대 찾아보려고요."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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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허아연은 바로 눈을 뜨지 않았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깼으면 일어나."주현우가 말을 마치고 또 말했다."열이 조금 있으니 먼저 해열제 먹어. 열이 계속 안 내리면 내일 병원 가."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은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보며 손을 뻗어 물과 약을 받아 들고는 말했다."고마워요."두 사람이 싸우고 난 뒤에도 주현우가 약 먹을 시간을 챙겨줄 줄은 몰랐다.저녁에 주현우가 화가 많이 나서 오늘 밤에는 방에 있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다.약을 다 먹은 허아연은 빈 물컵을 침대 옆 협탁에 놓았다.방 안에는 나이트 조명 두 개가 켜져 있어 밝지는 않았지만 너무 조용해서 분위기가 어색했다.물컵을 들어 책상에 내려놓은 주현우는 침대 왼쪽으로 돌아와 이불을 젖히고 앉았다.허아연과 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 모두 침대에 누웠다.허아연이 등을 돌리자 주현우는 고개를 돌리고 아무 감정 없이 허아연을 힐끗 쳐다보았다.이번에 허아연이 등을 돌린 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저 감기를 옮기고 싶지 않아서였다.다음 날 아침, 허아연이 깼을 때는 이미 오전 8시가 넘어 있었다.감기는 많이 나았고 컨디션도 괜찮았다.두 손으로 침대를 짚고 일어나 앉은 허아연은 주현우가 벌써 회의하러 나갔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상반신은 벗은 채 하반신에는 흰색 타월을 두르고 나른한 얼굴로 욕실에서 나오는 주현우가 보였다.주현우가 전혀 거리낌 없이 나오자 허아연은 시선을 떨군 채 눈을 피했다. 주현우는 머리를 말리며 아무렇지 않게 인사했다."깼네."허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응."머리 말리던 타월을 던져버린 주현우는 침대 옆으로 다가와 오른손을 들어 허아연의 이마를 짚었다. "다행이네, 열 내렸어.""오늘은 계속 쉴 거야, 아니면 회의 갈 거야?"주현우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모습은 마치 어젯밤에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 같았다. 주현우나 허아연도 모두 그런 말들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였다.허아연은 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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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주현우가 쳐다보자 허아연이 말했다."손가락에 쥐 나겠어요."고개를 숙여 두 사람의 손을 본 주현우는 허아연의 손가락이 빨갛게 충혈된 걸 보고 힘을 조금 뺐다가 바로 자세를 바꿔 손깍지를 끼었다.허아연이 주현우를 쳐다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후 며칠 동안 회의에서 주현우는 허아연과 함께 움직였다. 회의도 같이하고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잤다.오지은도 항상 옆에서 같이 회의하고 밥을 먹었다. 오지은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마치 셋이 함께 잘 지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표현하는 것 같았다.포럼이 끝나고 모두 돌아가는 날 허아연도 감기가 나았다."허아연 씨."오전 9시쯤, 허아연이 캐리어를 끌고 주현우와 함께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려는데 유건희가 다가왔다. 지금 호텔 입구에는 사람이 많았고 모두 공항으로 가려는 사람들이었다.오지은도 있었다.유건희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허아연이 고개를 돌려 보니 유건희도 캐리어를 끌고 오는 게 보였다. 유건희 비서도 옆에서 따라오고 있었다.허아연이 웃으며 인사했다."유건희 대표님."유건희가 다가왔다."감기 다 나았어요?""다 나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유건희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옆에 있던 주현우는 통화를 끊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허아연을 돌아보며 덤덤하게 물었다."아연아, 아는 분이야?"'아연아?'허아연이 고개를 돌려 주현우를 쳐다봤다.결혼한 뒤로 더 이상 '아연아'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한참 쳐다보던 허아연이 미소 지으며 소개했다."스타라이트 테크 유건희 대표님이에요."허아연이 소개하자 유건희가 손을 내밀어 주현우와 인사했다."주현우 대표님."유건희가 공손하게 인사하자 주현우도 대범하게 손을 맞잡았다."대표님도 저를 아세요?"유건희는 정식 사업가라고 보기 어려웠다.평소에 거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았고 오로지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했다.회사를 회사라고 하기보다는 실험실이나 연구소라고 하는 게 더 적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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