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의 모든 챕터: 챕터 71 - 챕터 80

100 챕터

제71화

주현우가 트집 잡으려는 모습을 보며 허아연은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앞으로 그런 애들 나한테 찾아오지 못하게 해요."허아연이 아무렇지 않게 구는 모습에 주현우가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허아연에게 다가갔다.몇 걸음 뒤로 물러나 등이 벽에 닿자 허아연이 고개를 들어 주현우의 눈을 쳐다봤다.양손을 주머니에서 꺼낸 주현우가 천천히 허아연을 벽에 가두고 고개를 숙여 놀리듯 말했다."네가 사람들 다 병원에 데리고 갔으니 이 정도면 나한테 아들 하나 보상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허아연이 말문이 막혔다.눈을 마주보던 허아연이 말했다. "그 여자 임신 안 했어요. 아들 원하면 좀 더 노력해요."허아연의 은근 비꼬는 듯한 말투에 주현우가 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허아연, 나 도발하는 거야? 너한테 검증해 볼까?"주현우는 화내지 않는 것 같았다.오히려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농담 같았다. 허아연은 등을 벽에 꼭 붙이고 두 손은 주현우 가슴에 대고 있었다."필요 없어요. 검증하려면 다른 데 가서 해요."허아연이 거부할수록 주현우는 더 가까이 다가왔고 허아연이 눈길을 피하자 주현우가 몸을 숙여 키스하려 했다.허아연이 단번에 주현우를 밀쳤다.주현우도 화내지 않고 허아연의 두 손을 잡아 벽에 눌러놓고 몸을 숙여 허아연의 입술에 키스했다.키스를 당한 순간 화가 난 허아연은 주현우의 손을 뿌리치고 밀치며 말했다."주현우 씨, 정말 날 바보로 알아요? 정말 내가 화낼 줄 모른다고 생각해요? 내가 당신한테 따지지 않고 소란 피우지 않는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에요."말하며 잔뜩 굳은 표정으로 잡혔던 왼쪽 손목을 문질렀다.주현우는 전혀 개의치 않고 허아연의 턱을 들어 올리며 비웃듯 말했다."그럼 무슨 생각인데, 나한테 말해봐."결혼 3년 만에 허아연이 처음으로 주현우가 밖에서 한 일 때문에 화를 냈다.주현우는 꽤 흥미로웠고 허아연의 속마음을 듣고 싶었다.주현우가 허아연에게 따질 거나, 허아연이 큰소리친 것에 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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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말을 마친 허아연은 더블 침대 오른쪽으로 가서 이불을 펼치고 누웠다.주현우가 자는 쪽에 등을 돌린 채 허아연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이때 주현우가 돌아누워 허아연을 쳐다봤다.아까 허아연이 한 그 말들은 확실히 충격이 컸다. 주현우가 예상하지 못할 만큼 충격적이었다.아주 의외였다.허아연을 한참 쳐다보던 주현우는 그제야 시선을 거두고 아무 말 없이 옷을 챙겨 욕실로 갔다.잠시 후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허아연은 여전히 주현우에게 등을 돌린 자세로 침대에 옆으로 누워 있었다.머리를 말리던 주현우는 머리가 다 마르자 큰불을 끄고 허아연 옆에 누웠다.방 안에는 침대 옆 나이트 조명 하나만 켜져 있었다.주현우가 고개를 돌려 허아연을 한 번 쳐다봤다.여전히 꼼짝 않고 등을 보이고 있는 허아연을 본 주현우는 옆으로 누우며 손을 뻗어 허아연을 품에 안았다.아직 잠들지 않았던 허아연은 오른손으로 주현우의 팔을 꽉 잡았다.주현우는 허아연을 더 꽉 안았다.허아연이 숨을 고르며 막 입을 열려는데 주현우가 뒤에서 껴안고 허아연의 어깨에 턱을 올리고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밖에 있는 애들 건드린 적 없어. 네가 더럽다고 하는 애들 나도 더러워."주현우가 해명할 줄은 몰랐던 허아연은 주현우 팔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이 풀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말했다."시간 늦었어요. 일찍 쉬어요."말하며 오른손으로 주현우의 손을 잡아당겼다.하지만…… 떼어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주현우의 손이 허아연의 피부를 따라 거침없이 위로 쓰다듬으며 올라갔다.허아연이 급하게 주현우의 팔을 붙잡았다."주현우 씨!"주현우가 웃었다."어떻게 하는 것도 아닌데 안지도 못하게 할 거야?"이어 또 해명했다."방금 한 말 못 믿으면 내일 나 데리고 병원 가도 돼."허아연은 주현우가 빈정대는 것 같았다. 따뜻한 손으로 허아연의 아랫배를 어루만지며 또 물었다."배 많이 아파?"허아연이 대답하지 않고 주현우의 팔을 잡은 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프로젝트들 곧 계약하는 거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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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허아연의 마음이 차게 식어갔다.아까 그렇게 많이 말했는데 다 귓등으로 들은 걸까? 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쳐다보던 주현우가 허아연의 이마에 키스했다."자."말하며 허아연을 품에 안았다.다음 날 아침 허아연이 눈을 떴을 때 주현우는 이미 깨어 있었다.주현우가 허아연을 데리고 함께 회사에 가려고 했지만 허아연은 도시계획국에 가야 한다며 주현우의 차를 타지 않고 자기 차를 몰고 갔다.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고 저녁 퇴근 시간이 된 허아연은 아레아 베이로 돌아가 주현우와 마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허아연의 기분이 별로였다.특히 어젯밤 주현우가 놀리던 일과 아이 만들자던 일을 생각하면 더욱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차를 몰고 본가로 돌아가 할아버지를 보러 갔다.집에 도착했을 때 날이 아직 밝았고 할아버지는 마당에서 새와 놀고 있었다.허아연이 그 모습을 보고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할아버지."허민수가 소리를 듣고 급하게 손을 내리며 돌아보았다."아연이 왔구나.""네, 할아버지 보러 왔어요."가져온 떡을 정아 이모에게 건넨 허아연이 또 허민수 가까이 가서 물었다."할아버지, 요즘 몸은 어떠세요?"허민수가 손을 휘저으며 호탕하게 말했다."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그럼 할아버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웃으며 말한 허아연은 마당에서 허민수와 함께 새와 놀고 화초를 정리했다.저녁을 먹고 나서도 허아연이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자 허민수도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정아 이모에게 2층 방을 정리하라고 시켰다.거실에서 허민수의 분부를 들은 허아연이 감동한 얼굴로 팔을 붙잡았다."할아버지, 고마워요."그 모습에 허민수는 허아연의 팔을 토닥이고 위로하며 말했다."할아버지가 비록 큰 재주는 없지만 너 평생 먹고사는 건 문제없어."지난번 입원했을 때 주현우가 비록 괜찮게 행동했지만 3년 동안 진작에 허아연 마음을 차갑게 식어버리게 만들었다. 게다가 주현우가 허아연에게 한 그 말들을 허아연은 따지지 않았지만 허민수는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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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주현우의 질문에 허아연은 고개를 들어 허민수를 보며 말했다."오늘은 할아버지랑 있을 거예요. 아레아 베이로 안 갈게요."예전 같았으면 유서희가 아레아 베이에 있을 때라 체면상 돌아가야 했다.요즘에는 유서희가 아레아 베이에 있지 않기에 고민할 것이 많지 않았다.전화기 너머 주현우는 허아연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허아연이 답 없는 주현우에게 말했다."별일 없으면 먼저 끊을게요. 일찍 쉬어요."주현우가 답하기도 전에 허아연은 전화를 끊고 계속 허민수와 바둑을 뒀다.아레아 베이, 주현우가 뚜뚜뚜 하는 신호음 소리에 탁 하고 휴대폰을 옆 캐비닛에 던졌다.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마당 밖의 야경을 바라보는 주현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예전에는 늘 허아연이 밤새도록 주현우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지금은 오히려 주현우가 허아연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담담한 눈빛으로 마당 밖을 보던 주현우는 갑자기 허아연 일기장의 그 사람이 누군지 궁금해졌다.그 생각이 든 주현우는 몸을 돌려 양복 재킷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허씨 본가, 주현우의 전화를 끊은 허아연이 재빨리 허민수를 재촉하며 말했다."할아버지, 벌써 10시예요. 주무셔야 해요. 내일 또 해요."허민수가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좋아, 좋아, 내일 또 두자."허민수가 일어서는 것을 본 허아연이 서둘러 부축해 침실로 모셔 먼저 쉬도록 했다. 허민수 방에서 나온 허아연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오늘 밤 하늘에는 별이 많았고 달도 아주 둥글었다.주변의 익숙한 야경을 보며 방금 주현우의 전화와 어제의 소동, 오지은, 그리고 3년을 생각하던 허아연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돌아갈 수 없었다. 주현우와 다시는 돌아갈 수 없었다.시선을 거두고 마당의 꽃과 나무를 보자 다시 힐링된 것 같았다. 마치 3년 전, 주현우와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이혼하고 나면 집에서 할아버지를 잘 모시고 생활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을 것이다.앞으로 자신만을 위해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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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본가는 아레아 베이의 신혼집보다 훨씬 소박했지만 부족한 것도 없었고 살기에 아주 편안했다.주현우는 앉지도 않고 무표정하게 허아연을 보며 말했다."집에도 안 돌아오고 성질이 만만찮네."허아연이 자연스레 방문을 닫았다."아니에요, 그냥 할아버지랑 시간 좀 보내고 싶어서요."허아연 말에 주현우는 대꾸하지 않았다.허아연을 쳐다보던 주현우는 방을 둘러봤다. 결혼 전에 자주 왔을 때와 여전히 똑같았는데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시선이 허아연의 책장에 향한 순간, 허아연의 일기장이 눈에 들어왔지만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이때 허아연이 말했다."오늘 밤은 아레아 베이로 안 갈 거예요. 현우 씨는 지금 돌아갈래요, 아니면……"허아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현우가 손을 들어 반쯤 마른 허아연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허아연이 고개를 돌려 머리를 쳐다보며 해명했다."이따 말릴게요."손을 거둔 주현우가 천천히 물었다."여기 내가 입을 옷 있어?""없는 것 같아요.""괜찮으면 할아버지 옷 한 벌 가져다줄게요."주현우가 좋다는 말에 허아연은 아래층에 가서 허민수의 개량 한복 한 벌을 가져왔다. 흰색 상의와 검은색 비단 바지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허아연이 머리를 다 말렸을 때 주현우도 샤워를 마치고 허민수의 옷을 입고 나왔다. 잘생긴 얼굴이라 그런지 허민수 옷을 입어도 제법 그럴듯하게 나름의 느낌이 있었다. 잠시 멍하니 주현우를 쳐다보던 허아연이 그제야 말했다."잘 어울려요."주현우가 타월로 머리를 문지르며 웃었다. 허아연의 칭찬을 꽤 즐기는 듯했다.……다음날 아침 두 사람이 아래층에 내려가 아침을 먹자 허민수도 의외였다. 주현우가 올 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현우도 왔구나.""할아버지, 좋은 아침이에요." 주현우가 시원시원하게 또 물었다."할아버지 요즘 몸은 어떠세요?""괜찮아. 동갑내기들보다 훨씬 낫지."허민수와 함께 아침을 먹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다 앞으로 자주 뵈러 오겠다고 약속한 뒤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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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허아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주민경이 말했다."분명 우리 부모님 때문이 아닐 거야. 현우 오빠는 그렇게 말 잘 듣는 사람이 아니거든. 만약 오빠가 정말 부모님 말을 잘 들었다면 두 사람 이 지경까지 안 됐을 거고 부모님은 진작 손주를 안았을 거야.""그리고 프로젝트도 그래. 현우 오빠 손에 있는 대형 프로젝트들은 진작 계약 다 끝났어. 몇 년간 일 안 해도 될 정도야. 게다가 정부랑 협력하는 건 이틀 안에 발표회 할 거야."주민경의 말에 허아연이 젓가락을 든 채 고개를 들고 쳐다봤다.허아연이 사람을 시켜 주현우 옆에서 지켜본 게 한 것이 헛수고였다니. 주현우의 프로젝트는 진작 계약이 끝나 있었다.그런데 며칠 전에도 주현우는 아직 안 끝났다며 보름은 더 걸린다고 했다.허아연의 놀란 눈빛에 주민경이 무심하게 말했다."아연아, 또 현우 오빠한테 속았네."허아연은 할 말이 없었다.허아연이 어이없어하자 주민경이 또 말했다."분명 네가 잘 속는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야. 오빠는 이혼하기 싫은 거야. 현우 오빠 정말 이기적이야."주민경이 다 알려줬지만 허아연은 여전히 내색하지 않았고 집에 돌아가서도 주현우에게 이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주현우가 계약을 이미 다 체결했고 발표회와 착공식이 곧 진행될 예정이니 숨기고 싶어도 오래 숨길 수 없을 것이었다.과연 다음날 오전, 경주 그룹이 하이테크 단지에서 발표회를 열고 하이테크 단지와의 전략적 협력 발전을 발표했다. 허아연은 사무실에서 생중계를 봤다."하이테크 3구역 발전에 대해 관련 기관 및 경주 그룹은 반드시 최고 수준, 최고 요구의 품질로 프로젝트 공사를 완성할 것이며 각 부서와 시민 여러분의 감독을 환영합니다."일행 중에서 주현우가 제일 젊으면서 기품 넘치고 카리스마가 넘쳤다.사람들 가운데 주현우가 가장 눈부셨다.이런 자리에 주현우는 허아연과 함께 참석할 수 있었다. 허아연이 주현우의 아내일 뿐만 아니라 경주 그룹의 부대표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주현우는 허아연을 데려가지 않았다.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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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부대표님."허아연에게 인사하는 사람들은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회사의 임원들과 대주주들 모두 오늘 발표회에 참석했고 몇몇 부대표들도 갔는데 허아연만 가지 않았다.허아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 사람들의 동정어린 눈빛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설령 눈치챘다 해도 사실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저녁. 전서진과 심유환이 주현우를 위해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 모두 업계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었다.허아연은 회사에서 야근 중이었다. 7시가 넘어 허아연이 짐을 챙기며 막 퇴근하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전서진의 전화였다.전화를 받은 허아연이 웃으며 인사했다."서진 씨."전화기 너머에서 전서진이 말했다."아연아, 현우가 하이테크 협력 계약을 체결해서 저녁에 다들 같이 식사하는데 지금 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전서진의 말에 허아연이 부드럽게 말했다."다들 축하파티해요. 난 집에서 할아버지 모시고 있어서 안 갈게요."괜히 유난 떨거나 체면을 차리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전서진의 전화 외에는 아무도 허아연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급하게 부른 회식이었다.됐다.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오지은도 분명 있을 텐데 가면 허아연만 난처해질 뿐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오늘 발표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점심 식사 자리까지 오지은은 항상 여주인처럼 주현우 곁을 지켰다. 일부 사람들은 오지은을 주현우 아내로 착각해서 사모님이라고 불렀다.오지은은 부인하지 않았고 주현우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아연아, 한옥집에 있지? 지금 데리러 갈게."전서진의 말이 끝나자 허아연이 급하게 말했다."서진 씨, 괜히 신경 쓰지 마세요."전서진이 그래도 데리러 온다고 할까 봐 허아연이 또 한숨을 내쉬며 담담하게 말했다."서진 씨, 나 오늘 이 프로젝트 제일 늦게 안 사람이에요. 게다가 점심 식사 자리든 저녁 축하 연회든 아무도 나한테 알려주지 않았어요.""서진 씨, 좋은 마음인 거 알아요. 하지만 저 너무 난처하게 만들지 마요. 그래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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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거실에 가보니 역시나 전서진도 도착해 있었다.두 사람 모두 술을 마신 상태였다. 허아연이 2층에서 내려오는 것을 본 전서진이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고개를 들어 허아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아연아, 데리고왔어."허아연이 웃으며 다가갔다."수고했어요, 서진 씨."허아연이 미소 지으며 말하자 주현우가 약간 나른한 모습으로 고개를 돌려 전서진을 보며 말했다."서진아, 들어가. 나 괜찮아.""알았어."웃으며 대답한 전서진이 허아연을 보며 팔을 톡 쳤다."아연아, 그럼 나 먼저 갈게. 현우 부탁해."전서진의 말과 행동에는 인사 외에도 위로와 안쓰러움도 있었다.무시당한 것에 대한 안쓰러움과 아내이면서도 주현우 생활에서 철저한 외부인이라는 것에 대한 안쓰러움이었다. 허아연이 고개를 끄덕였다."네."한쪽에서 주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서진아, 세 살짜리 애도 아니고 달래줄 필요 없어."고개를 휙 돌려 주현우를 한참 쳐다보던 전서진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먼저 갈게."말을 마친 전서진이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 전서진은 주현우가 저런 태도인데 허아연이 이혼하려고 할 때 또 말리면 성을 갈겠다며 다짐했다. 전서진이 현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배웅하던 허아연이 고개를 돌렸다.주현우를 보던 표정이 점점 무표정으로 바뀌었다. 주현우는 허아연에게 친절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허아연에게 친절한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침실에 들어가 보니 주현우가 벗어놓은 재킷이 소파에 던져져 있었다.허아연이 담담하게 말했다."차 한 잔 끓여올게요.""응."주현우가 넥타이를 잡아 당기며 아주 낮게 답했다.잠시 후 허아연이 차를 들고 침실로 돌아왔을 때 주현우는 이미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었다. 샤워도 하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팔로 눈을 가리고 잠들어 있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옆에 서서 주현우를 한참 쳐다보던 허아연이 허리를 숙여 끓여온 녹차를 옆에 있는 탁자에 놓았다.돌아선 허아연은 침대 위 주현우를 내려다보며 가까이 가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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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그때 허아연이 걸려온 전화를 받으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서야 유미 이모가 옆에서 낮은 목소리로 주현우를 나무랐다."도련님도 참, 어젯밤에 밤새 오씨 가문 둘째 따님 이름 부르셨어요. 사모님이 얼마나 민망하겠어요.""앞으로 술 좀 줄이세요. 괜히 실수하지 말고요."어젯밤 허아연 눈에 비친 쓸쓸함 때문에 유미 이모는 밤새 잠을 설쳤다. 유미 이모의 말에 주현우는 그릇과 젓가락을 든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허아연을 바라봤다.허아연이 조금 전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인사하던 모습을 떠올린 주현우는 피식 웃었다. 역시 눈꼽만큼도 신경쓰지 않고 전혀 감정 변화도 없었다. 주현우가 대답하지 않자 식탁 옆에 있던 유미 이모가 또 조용히 말했다."도련님, 제가 방금 한 말 들으셨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세요."주현우가 허아연한테서 시선을 거두고 웃으며 말했다."알았어요. 유미 이모 말 들을게요.""그러셔야죠."유미 이모가 눈을 찡긋하며 주현우에게 또 당부했다."사모님 괜찮으신 분이에요, 능력도 있으시고요. 앞으로 사모님과 잘 지내보세요."주현우가 죽을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그래요."잠시 후 전화를 끊고 식탁 앞으로 돌아온 허아연은 대충 몇 입 먹고 출근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계단을 내려와 차고에 가서 차를 몰고 나가려는데 주현우의 차가 허아연 앞에 세워져 있었다. 차창이 열리고 주현우가 양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여유로운 얼굴로 허아연을 보며 말했다."타."고개를 숙여 주현우를 보던 허아연은 결국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탔다.주현우가 이혼 얘기를 하려는 걸지도 몰랐다. 차가 아레아 베이를 빠져나가는 동안 두 사람은 한참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주현우가 차창을 조금 열고 담배에 불을 붙이자 허아연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주현우를 보며 말했다."프로젝트 계약 끝났으니 우리 절차 밟으러 가요."담배 연기가 차창 틈으로 흩어져 나가 차 안에는 담배 냄새가 나지 않았다.주현우가 담배를 차창 밖으로 내밀어 재를 털며 비웃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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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고가도로를 달리는 차창 밖으로 건물이 빠르게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던 허아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허아연은 차문 손잡이를 잡은 채 더 이상 주현우와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허민수가 아직 한옥에서 기다리고 있고 돌아가서 같이 바둑을 두겠다고 약속한 것이 떠오르자 조용히 차문 손잡이에서 손을 뗐다.허아연은 더 이상 주현우와 따지지도 않고 소리치지도 않았다.그저 고개를 돌려 흐릿한 눈으로 주현우를 보며 조용하게 물었다."주현우 씨, 내가 3년 동안 아주 잘 지낸 것 같아요?"그 말을 들은 주현우는 핸들에서 오른손을 떼어 허아연의 목덜미를 가볍게 쥐며 부드럽게 말했다."내가 요즘 계속 집에 돌아갔잖아. 떼쓰지 마."사람의 감정은 애초에 서로 통하는 것이 아니었다.주현우의 터치에 허아연은 구역질이 났지만 과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그저 주현우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손 치워요, 더러워요."순간 주현우가 멈칫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허아연을 한참 쳐다보았다. 뒤차량이 경적을 울리며 안전 운전을 귀띔해서야 정신을 차리고 손을 떼고 다시 핸들을 잡았다.두 사람 모두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허아연은 주현우를 더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아무리 주현우가 허아연을 구해준 적 있다 해도 3년 동안 주현우를 위해 꾹 참고 한 일들을 따져보면 마음의 빚도 다 갚은 셈이었다. ……10여 분 후 차가 회사 문 앞에 멈춰 섰다.차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허아연은 주현우를 기다릴 새도 없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먼저 회사로 들어갔다.예전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허아연은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다. 다만 오늘은 연기하기가 버거워 감정이 숨겨지지 않아 굳은 표정이었다. "부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부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부부가 앞뒤로 떨어져 걷고 있었고 굳은 허아연의 표정에 비해 주현우는 더욱 심하게 굳어 있었다. 직원들은 어제 일 때문에 싸운 게 아닐까하는 의심에 전전긍긍하며 인사했다.사실 허아연은 어제 일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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