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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잃고서야 알았던 사랑: Chapter 241 - Chapter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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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1화

결국 지나윤은 작업실 안으로 들어간 뒤 꼬박 하루를 그 안에서 보냈다.문지혁은 설마 자신이 지나윤의 작업실에서 하루를 통째로 허비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것조차 지루해질 정도였다.양나언과 장효연은 문지혁처럼 무료해할 여유가 없었고, 두 사람은 초조함에 거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마침내 지나윤이 작업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두 사람의 긴장은 정점에 달했다.의자에 앉아 있던 미란다는 고개를 들어 지나윤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시간을 오래 끌었다고 해서 제 인정받으실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면 착각이에요.”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란다의 오른손이 갑자기 지나윤에게 잡혔다.곧 미란다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으나 그 표정은 지나윤의 행동과 함께 완전히 풀어졌다.지나윤이 미란다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준 것이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손가락에는 이미 반지가 있었다.검지에는 불가리의 세르펜티 반지, 로즈 골드에 블랙 에나멜, 다이아몬드로 가득 찬 뱀 형상이었다.약지에는 반클리프 아펠의 네잎클로버 반지, 옐로 골드에 레드 아게이트, 풀 다이아 세팅이었다.브랜드와 디자인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런데도 미란다의 시선은 단번에 자신의 중지로 향했다.그 순간,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의 시선 역시 미란다의 중지에 고정되었다.문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금테 안경을 벗어 닦은 뒤 다시 썼다.미란다의 오른손 중지에는 나비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나비는 날갯짓을 막 시작한 듯한 입체적인 형태로, 마치 진짜 나비가 손가락 위에 잠시 내려앉은 것처럼 보였다.산산이 부서졌던 합성 에메랄드 조각들이 나비의 날개에 자연스러운 결과 반사광을 이루고 있었다.합성 보석의 광택을 살리기 위해, 작은 조각 하나하나에는 미러 반사 포일이 덧대어져 있었다.이에 미란다는 말을 잃었고 오른손을 천천히 흔들었다.중지 위의 나비는 오색빛으로 반짝이며 옆에 끼워진 값비싼 하이엔드 반지들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이것이 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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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2화

문지혁은 몸을 돌려 금테 안경을 밀어 올리며 지나윤을 바라보았다.지나윤은 문지혁 앞에 다가가 얼굴을 굳힌 채 말했다.“아까 망가뜨리신 에메랄드 목걸이는 제 작품이 아니라, 저희 직원이 디자인한 거예요. 그러니 반드시 제 직원에게 책임 있게 말을 해주셔야 할 거예요.”지나윤의 진지한 태도에 문지혁은 그저 우습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그러고는 다시 몸을 돌려, 지나윤의 말을 완전히 무시한 채 걸음을 옮기려 했다.이에 지나윤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보아하니 저를 문제 삼으시는 게 아니라, 원래 인성이 좋지 않고 예의가 없으신 분이시네요.”문지혁의 발걸음이 멈춰서더니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었다.마치 지나윤의 말을 인정하는 듯하면서도, 자신을 못마땅해하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여자를 비웃는 표정이었다.그 순간, 지나윤은 문지혁이 방심한 틈을 놓치지 않고 손목과 옷깃을 동시에 잡아당겼다.그리고 문지혁은 상황을 인지할 틈도 없이, 지나윤에게 깔끔한 업어치기를 당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옆에서 지켜보던 장효연과 양나언은 눈을 크게 뜬 채 말을 잃었다.문지혁은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운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는데, 몸의 통증보다도 놀라움과 혼란이 더 컸다.‘내가 지나윤 같은 여자에게 업어치기를 당하다니.’문지혁은 몇 번 눈을 깜빡였고 시야가 흐릿했는데, 그건 안경이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문지혁의 기억 속에서 싸움은 수도 없이 해봤지만, 여자에게 업어치기를 당한 것은 인생 처음이었다.문지혁은 오히려 신기하다는 듯, 바닥에 누운 채 웃음을 터뜨렸다.웃음소리는 점점 커졌는데 어깨가 들썩일 정도였다.지나윤은 옆에서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구급차를 불러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하지만 과거 격투기와 싸움을 배울 때 이 기술은 머리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지 않는다고 배웠다.그랬기에 문지혁이 이 일로 정신을 잃을 정도는 아닐 터였다.문지혁은 한동안 바닥에서 웃다가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그때 누군가가 안경을 내미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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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3화

이는 주수현이 법무팀을 이끌고 수정한 71번째 이혼 합의서였다.그러나 여전히 통과되지 않았다.처음 유시진이 이미 완성된 이혼 합의서를 무효로 하고 새로 작성해야 한다고 주수현에게 말했을 때, 크게 놀라지도 않았고 어렵다고 느끼지도 않았다.유시진이 HF그룹 지분 10% 양도 조항을 삭제하라고 분명히 지시했기 때문이다.주수현은 그대로 처리했으나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됐다.그 후 반 달 동안, 주수현은 법무팀 전체를 이끌고 이혼 합의서를 계속 수정해야 했다.한 번 제출하면 안 된다고 반려되고, 다시 고쳐서 올리면 또 안 되고, 다시 수정하는 일이 반복됐다.지금 이 문서가 바로 71번째 버전이었는데도 여전히 통과되질 않았다.그리고 더 큰 문제는 주수현 자신이 무엇이 안 되는지조차 모른다는 점이었다.유시진은 어느 부분이 문제인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전혀 말해주지 않았다.주수현이 묻지 않은 것도 아니었으나 유시진은 그저 스스로 생각해 보라고만 했다.가끔 주수현은 유시진이 애초에 지나윤과 이혼할 생각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예전에 6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위자료나, 이후의 HF그룹 지분 10% 양도를 제안했었다.그것 역시 사실은 지나윤이 마음을 돌려 더 이상 이혼을 말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그러나 그런 말은 감히 입에 올릴 수도 물어볼 수도 없었다.논리적으로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유시진은 이혼을 두려워할 인물이 전혀 아니었다.더구나 유시진 곁에는 채연서라는 분명한 대안까지 있었기에 주수현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날 밤, 주수현은 72번째 버전을 다시 제출했지만, 역시 통과되지 않았다.반복되는 실패에 익숙해진 주수현은 이제 낙담하지도 않았다.충분히 익숙해졌기 때문이다.유시진이 의도적으로 주수현을 괴롭히려는 것은 아니었다.물론 주수현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확실히 고의적 트집처럼 보였지만 말이다.맞춤 제작된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어느새 밤 10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그런데도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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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4화

채연서는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묻으며 문지혁 옆의 그네에 앉았다.밤하늘에는 별이 찬란하게 떠 있었고, 작은 그네에 나란히 앉은 남녀의 모습은 마치 서정적인 소녀 만화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오늘 지나윤 회사에 다녀왔어.”문지혁이 말했다.채연서는 일부러 놀란 척했지만, 사실 조금도 의외가 아니었다.지난번 문지혁을 만났을 때, 일부러 지나윤이 LD주얼리 패션위크에서 자신의 경쟁자라고 일부러 말했었다.그 말을 함으로써 문지혁이 지나윤을 찾아가 문제를 일으키길 바랐기 때문이다.“미란다도 함께 데려갔어.”“미란다? 패션계의 거물,「션샤인」 편집장 미란다 말하는 거야?”채연서는 순진하고 무구한 눈을 깜빡이며 물었으나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미란다가 얼마나 까다롭고 냉정한 인물인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문지혁이 미란다를 데려간 이상, 분명 지나윤의 흠을 잡아 LD주얼리 패션위크 참가 자격을 취소시키려는 의도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럼 미란다는 뭐라고 했는데?”채연서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어서 말해 줘. 지나윤의 자격이 취소됐다고.’채연서는 기대감에 마음속에서 파도가 일듯 요동치고 있었다.이번 LD주얼리 패션위크를 위해 충분히 준비했고 자신도 있었지만,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 가장 안전하고 유리한 건 분명했다.특히 유시진 앞에서는 더더욱 그랬다.만약 패션위크에서 자신이 크게 주목받고, 지나윤이 참가 자격을 박탈당한다면, 유시진의 시선은 완전히 자신에게로 쏠릴 것이다.그리고 그 기세로 지나윤보다 먼저 HF그룹의 지분을 손에 넣을 수도 있었다.그날 밤, 채연서는 박유선과 긴 대화를 나눴다.박유선은 채연서에게서 유시진이 한때 이혼 후 HF그룹 지분 10%를 지나윤에게 넘길 생각이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다.비록 실행되지는 않았지만 언제 변수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었다.박유선은 채연서가 반드시 먼저 HF그룹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유시진이 아직 이혼하지 않았든 아직 결혼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말이다.문지혁은 한동안 침묵하더니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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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5화

고도겸은 질문을 던지자마자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곧바로 말을 고쳤다.“설마 어제 밤새 집에 안 들어간 건 아니죠?”지나윤은 하품하며 눈가를 문지르자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그대로 드러났다.“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죠.”그 말에 고도겸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갑자기 급한 주문이라도 받았나요?”“아니요. LD주얼리 패션위크 때문에요.”“네?”고도겸은 고개를 갸웃했다.“LD 쪽 테마는 이미 정해진 걸로 알고 있었는데요.”“정해지긴 했었죠.”지나윤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먹으러 나섰다가, 중청빌딩 아래에서 피터를 마주쳤다. 그렇게 셋은 함께 근처 밥집으로 향했다.“나윤 씨, 혹시 알고 있었나요? 어젯밤에 미란다가 정말 드물게 저를 불러서 야식을 같이 먹자고 하더라고요.”피터의 말투를 듣는 순간, 지나윤은 그 자리가 자신과 관련 있다는 걸 알아챘다.“미란다가 예전에 우리 쪽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걸 알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윤 씨에 대해 이것저것 묻더라고요.”“그런데 미란다 오른손 중지에 낀 반지 있지 않잖아요. 그거 나윤 씨가 디자인한 거 맞죠?”“네.”지나윤은 미란다가 작업실을 떠난 뒤에도 그 합성 에메랄드 반지를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외였다.지나윤은 전날 반지를 만들게 된 경위를 간단히 설명했다.“그래서였군요. 그렇게 높이 평가한 게.”“평가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기분 상했다고 자격을 취소하지만 않으면 좋겠거든요.”지나윤은 씁쓸하게 웃었다.“그래도 어제 미란다의 자극 덕분에 깨달은 게 있죠. 전에 LD주얼리 패션위크에서 내놓으려던 테마가 솔직히 너무 흔했거든요.”“그래서 테마를 바꾸시겠다는 건가요?”고도겸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자 지나윤은 그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샘플 제출 마감이 얼마 안 남았어요.”고도겸은 선뜻 동의하지 못했다.지금부터 전부 다시 시작하는 건,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일이었다.시간도 빠듯했고, 조급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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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6화

고도겸은 퇴근한 뒤에야 채연서가 지정한 장소로 갔는데 도착한 곳은 호텔이었다.고도겸은 채연서가 호텔로 부른 이유가 식사 때문일 거라 여겼으나 도착하자마자 채연서가 문자로 객실 번호를 보내왔다.1783호 객실 앞에 선 고도겸이 노크하려던 그때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문을 연 사람은 채연서였고 고도겸의 눈은 동그래졌다.채연서는 가운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막 샤워를 마친 듯했고 넓게 벌어진 옷깃 사이로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시간 맞춰 와주셨네요. 들어오세요.”채연서는 미소를 지으며 손짓했다.고도겸은 이런 모습의 채연서를 본 적이 없었기에 몸이 뻣뻣해진 채 객실 안으로 들어섰다.테이블 위에는 과일과 간단한 안주가 놓여 있었다.곧 채연서는 위스키 두 잔을 따르더니 그중 한 잔을 고도겸에게 건넸다.“너무 긴장하지는 마요.”고도겸은 고개를 젖혀 위스키를 단숨에 들이켰다.늦가을이었지만 실내에는 보일러가 켜져 있는 듯했다.잠시 앉아 있었을 뿐인데 이마와 목덜미에 땀이 맺혔다.채연서는 고도겸 옆에 바짝 붙어 앉았고 가운 차림으로 일부러 다리를 꼬아 앉으며 허벅지를 드러냈다.이에 고도겸은 무의식적으로 침을 삼켰다.분위기가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채연서는 위스키를 조금씩 마시며 입을 열었다.“사실 전부터 단둘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예전에 해고했던 일 설명하고 싶었거든요. 그땐 정말 어쩔 수 없었어요.”“그건 투자자 쪽 압박이 너무 심했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여전히 고도겸 씨를 높이 평가하고 있어요.”채연서는 그렇게 말하며 부드럽게 고도겸의 손을 잡았다.그러자 고도겸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졌다.“고도겸 씨, 다시 돌아와서 일할 생각은 없으세요?”“무슨 말씀이세요?”고도겸이 놀라 되물었다.“지나윤 쪽에서는 실력도 부족한 직원 둘이 디자인을 시작했다던데, 고도겸 씨는 아직 잡무만 보고 있잖아요.”“거기서 시간 낭비하느니 차라리 제 곁으로 돌아오는 게 낫지 않겠어요?”채연서는 고도겸의 표정을 살폈는데 확실히 눈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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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7화

말을 마친 채연서는 허리를 흔들며 객실 문 쪽으로 걸어가 고도겸을 내보내려 했다.그때 등 뒤에서 고도겸의 망설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지나윤 씨요. 테마를 임시로 바꿨어요.”“뭐라고요?”채연서는 몸을 돌렸다.고도겸의 얼굴에는 배신에 대한 망설임과 죄책감이 뚜렷이 서려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지나치게 솔직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표정은 아니었다.“임시로 테마를 바꾸다니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데요?”채연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쉽게 믿지 못하자 고도겸이 말을 이었다.“사정이 있어서요. 전에 패션계 거물인 미란다 씨가 회사에 왔었는데, 지나윤이 그분에게 나비 반지를 만들어 드렸거든요.”“나비...”채연서는 턱을 만지며 그 두 글자를 곱씹었다.“네.”고도겸이 고개를 끄덕였다.“번데기에서 나비가 된다는 테마가 원래 지나윤이 LD주얼리 패션위크에서 선보이려던 주제예요.”채연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번데기에서 나비라니.’이마의 주름이 점점 깊어졌다.번데기에서 나비가 된다는 상징은 재생의 의미를 담고 있어, 자신의 첫사랑 네잎클로버보다 훨씬 강한 인상을 주는 소재였다.채연서가 생각에 잠긴 틈을 타 고도겸은 한 걸음 다가왔다.“아마 테마가 미리 사용된 데다 미란다 씨가 지나윤의 나비 디자인이 너무 흔하다고 해서, 그래서 임시로 테마를 바꾸기로 한 것 같아요.”채연서는 가까이 다가온 고도겸을 바라보았다.번데기에서 나비가 된다는 설정만 해도 충분히 드문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그걸 두고 흔하다고 말하다니.‘어쩐지 어제 자신의 전시회에서 그렇게 독설을 퍼붓더라니.’채연서는 인맥 면에서 지나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아 유시진에게 부탁해 미란다를 소개받았다.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개인 주얼리 디자인 전시는 본래 미란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미란다는 전혀 체면을 봐주지 않고, 디자인이 쓰레기라며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었다.다행히 유시진이 위로해 준 덕분에, 유시진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뛰어난 이미지가 흔들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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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8화

조커는 어린 나이로 보였다.동안의 얼굴만 보면 스무 살을 갓 넘기는 듯했지만, 눈빛만큼은 전혀 순수하지 않았다.오히려 스무 살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조커는 채연서와 같은 디자인의 목욕가운을 입고 있었다. 채연서가 고도겸을 유혹하던 내내, 조커는 욕실 안에 숨어 투명 인간처럼 숨을 죽이고 있었다.“조커...”채연서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네가 말을 안 한다고 해서 누구도 네가 벙어리라고 생각하진 않을 거야.”조커가 웃었다.“왜? 우리 둘이 어떻게 알게 됐는지 그렇게 말 꺼내기 싫나 봐? 유시진 씨가 M국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간데 알게 될까 봐 무서워?”조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채연서는 손을 들어 뺨을 때리려 했지만, 남자는 재빨리 손목을 붙잡았다.이에 채연서는 손을 거두었다.지금은 아직 조커가 필요했기에 이렇게 관계를 틀어지게 할 수는 없었다.“이번에 귀국해서 얼마나 있을 건데?”“네가 사랑하는 그 유 대표가 너무 몰아붙이잖아.”조커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지난번, 조커가 채연서를 도와 유시진과 지나윤의 소송 이혼 건을 크게 키워 놓았었다.만약 그렇게 안했다면, 해외에서 운영하던 자신의 데이터 회사가 유시진에게 들킬 일도 없었을 것이다.“저쪽 법원에서까지 연락이 왔는데 먼저 도망치지 않으면 감옥에서 콩밥 먹으라는 소리잖아.”“그렇다고 꼭 나한테 올 필요는 없었잖아.”채연서의 차가운 태도에 조커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채연서, 난 널 도우려고 이러는 거야.”“돈도 줬잖아.”“그 정도로 성에 찰 리가 없잖아. 그렇게 적게 줘놓고.”조커는 테이블 위에 있던 위스키를 집어 잔에 따랐다.“약속 잊지 마. 네가 HF그룹 안주인 자리에 제대로 앉으면, HF그룹 지분 25%를 내게 주기로 한 사실을. 그때가 되면 나는 HF그룹의 제2대 주주가 될 거야.”채연서는 조커를 힐끗 바라보았는데, 그 어린 얼굴 밑에 숨겨진 욕심의 크기는 좀처럼 가늠하기 어려웠다.“걱정하지 마. 안 잊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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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9화

“그렇다면 말하지 마세요.”유시진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그렇게 말하자 주수현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유시진이라는 사람은 정말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하다고 느꼈다.이미 퇴사를 결정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 둔 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인지, 주수현은 결국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대표님, 이혼하고 싶지 않으시면 상대에게 직접 그렇게 말씀하셔야 해요. 여자는 달래주면 되니까요. 조건이 이렇게 좋으시니 상대방도 쉽게 놓지 못할 거예요.”유시진이 고개를 들었는데 그 눈빛이 사람을 잡아먹을 듯했다.주수현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서둘러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유시진은 장우영을 불러들였다.“대표님, 부르셨나요?”장우영은 공손히 유시진의 책상 앞에 섰다.“그래.”유시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하게 말했다.“주수현이 사직서를 제출했으니 인사팀에 처리하라고 전해.”“그렇게 하겠습니다. 유 대표님.”“지나윤이 나를 쉽게 놓지 못할 것 같아?”“네... 네?”장우영은 완전히 당황했다.앞선 이야기와 지금 질문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장우영은 한참을 머뭇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유시진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장우영은 유시진이 듣고 싶어 하는 답이 ‘그렇다’라는 것을 직감했다.솔직함과 상사의 기분을 맞추는 것 사이에서 잠시 고민한 끝에, 장우영은 입을 열려 했다.“나가.”하지만 말이 나오기도 전에 유시진이 먼저 끊어 버렸다.오늘은 동지였다.지나윤은 직접 만든 팥죽을 챙겨 유희봉에게 전해주고,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자리를 떠났다.그다음에는 차를 몰아 주경요양병원으로 향했는데, 역시 지연순에게 팥죽을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지연순은 예전과 다름없이 입만 열면 유시진의 안부를 물었다.지나윤의 기억 속에서, 지연순은 과거에도 유시진이라는 사위를 꽤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딸을 먼저 챙기던 사람이었다.하지만 요즘 들어 지연순은 의식이 또렷할 때마다 가장 먼저 유시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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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0화

지나윤의 마음은 저도 모르게 살짝 흔들렸다.예전에는 유시진을 위해 죽을 수 없이 만들어 왔었다.죽의 종류도 다종다양했다. 돼지고기와 배추, 돼지고기와 셀러리, 돼지고기와 표고버섯, 소고기와 양파, 양고기와 애호박까지 안 만들어 본 죽이 없었다.유시진은 한 번도 맛이 없다고 말한 적은 없었으나 그렇다고 맛있다고 말한 적도 없었다.결혼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나윤은 유시진이 가장 좋아하는 죽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그런데 이혼을 앞둔 이 시점에서, 유시진이 갑자기 자신이 만든 죽이 먹고 싶다고 말하니 묘하고 아이러니하다고 느꼈다.“앞으로는 채연서가 만든 죽을 먹어. 아마 내가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을 거야.”지나윤이 담담하게 말하자, 그 옆에서 유시진이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그 한숨이 무엇 때문인지 지나윤은 알 수 없었고, 마치 자신에게 실망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그러나 개의치 않다는 듯 지나윤은 어깨를 으쓱했다.유시진이 실망하든 말든 이제는 자신이 알 바는 아니었으니까.“주수현 변호사 퇴사했어.”뜬금없이 유시진이 그렇게 말했다.지나윤은 잠시 생각한 뒤에야, 유시진이 말한 주수현이 HF그룹 법무팀의 수석 변호사라는 사실을 떠올렸다.지나윤은 고개를 돌려 유시진을 보았으나 남자는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그래서 새 변호사를 선임했어. 이혼 협의서는 LD주얼리 패션위크 마치고 돌아오면 전달할 거야.”유시진의 말투는 평온했고 표정에도 별다른 흔들림이 없었다.그 얼굴만으로는 유시진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전혀 읽을 수 없었다.예상보다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긴 했지만 적어도 구체적인 시점은 알았다.LD주얼리 패션위크.지나윤의 새 주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유시진은 곁눈질로 지나윤을 한 번 보았다.“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 거야?”“아무것도 아니야.”지나윤은 고개를 저었고 유시진도 더 묻지 않았다.두 사람이 휴게공간을 막 벗어났을 때, 지나윤의 휴대전화가 갑자기 울렸다.모르는 번호였지만 스팸 표시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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