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1151 - Chapter 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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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1화

“그럼 사실상 남성 기능을 잃은 거네요?”허경빈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유주만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보호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마음은 우리도 이해합니다.”곁에 있던 의사가 지친 듯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지금은 모든 책임을 병원 측에 돌리면서 계속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요. 애초에 그 환자는 다친 뒤에야 우리 병원으로 전원해 왔는데 말입니다.”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씁쓸한 어조로 덧붙였다.“그래도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구치소에 있는 전 여자 친구가 임신 중이니까요.”“듣기로는 설씨 집안도 이제 그 여자를 고소하지 않을 생각이라더군요. 어쩌면 성대한 혼례까지 치러서 며느리로 맞아들여야 할지도 모르죠.”설도윤이 진이화와 결혼한다고?두 사람이 그토록 끔찍하게 서로를 상처 입혔는데도 부부가 되어 한집에서 살아야 한다니.그렇다면 평생 서로를 괴롭히며 살아가게 되는 것 아닌가.설씨 집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진이화가 가진 아이를 지키려 할 터였다. 전에는 설씨 집안이 진이화의 약점을 쥐고 마음대로 휘둘렀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주도권은 진이화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참으로 지독한 악연이었다.허경빈은 유주만과 점심까지 함께 먹은 뒤 병원을 나섰다. 겨울 햇살이 희미하게 내려앉은 병원 정원을 지나던 중, 뜻밖에도 설씨 가족과 마주쳤다.설도윤은 환자복 차림으로 휠체어에 앉아 어머니와 격렬하게 다투고 있었다.그는 당장 퇴원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설씨 가족은 여전히 병원 측과 책임 문제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라 퇴원 수속을 밟으려 하지 않았다.“여기 계속 있다가는 온 세상 사람들이 내 일을 다 알게 될 거예요!”설도윤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지금 저를 위해 이러는 거예요? 아니면 그냥 죽으라는 거예요!”남성 기능을 잃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도윤에게는 견디기 힘든 치욕이었다.차라리 그날 진이화가 휘두른 칼에 그대로 죽었더라면 나았을 것 같았다.살아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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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2화

그 시각, 송지아는 이미 허경빈과 만나고 있었다.두 사람이 약속 장소로 정한 곳은 외진 골목 안에 자리한 프라이빗 다이닝이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데다 별실이 잘 갖춰져 있어 다른 손님들의 시선을 걱정하지 않고 조용히 식사하기에 알맞은 곳이었다.“여기 길이 꽤 복잡한데. 너희 집 기사님은 위치를 알고 계셨어?”허경빈이 자리에 앉은 송지아에게 물었다.“기사님과 온 게 아니라 택시 타고 왔어.”“택시?”허경빈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기분 좋게 웃었다.“그럼 식사하고 나서 근처를 좀 걷자. 집에는 내가 데려다줄게.”송지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여기는 조기 수프가 맛있어. 닭볶음도 괜찮고…”허경빈은 메뉴판을 한 장씩 넘기며 먹을 만한 음식을 골랐다. 맞은편에 앉은 송지아는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차를 조금씩 마셨다.은은한 차향이 피어오르자 며칠 전 새언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허경빈에게 고백을 받은 바로 그날 밤이었다.송지아가 집으로 돌아오자 새언니는 따로 그녀를 불러 돌려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너, 허경빈이랑 무슨 일 있지?”송지아의 심장은 순간 크게 내려앉았지만, 겉으로는 최대한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두 사람이 같이 밖에 나갔다가 돌아온 뒤로 눈만 마주치면 꿀이 뚝뚝 떨어지더라. 네 오빠가 술에 취해서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새언니, 저랑 걔는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너는 네가 허경빈을 대할 때 유난히 다르다는 걸 모르겠어?”“제가 허경빈한테 특별하다고요?”송지아가 되묻자 새언니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너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늘 지나치다 싶을 만큼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잖아. 그런데 허경빈 앞에서는 오히려 솔직한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 입으로는 그렇게 싫다고 하면서도 민정이를 데리고 그 사람 집까지 고양이를 보러 갔지. 지난번에 그 사람이 우리 집에서 술을 마셨을 때도 네가 직접 집에 데려다줬고.”“그건 허경빈이 술을 많이 마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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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3화

두 사람은 식사를 하는 동안 딱히 정해진 화제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가 끊겨 어색해질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사소한 이야기만으로도 신기할 만큼 말이 잘 통했다.식사를 마친 뒤에는 나란히 거리를 걸었다. 밤공기는 제법 쌀쌀했지만 길가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따뜻했고, 오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주말 저녁의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그때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외국인 남성이 두 사람 곁을 스쳐 지나갔다.허경빈은 그의 뒷모습을 슬쩍 바라보다가 괜히 헛기침을 했다.“외국 남자들은 다 저렇게 키가 크고 잘생겼어? 몸도 좋고?”“그럭저럭?”“너 외국에 있을 때 외국인 남자 친구는 안 사귀어 봤어?”“공부하느라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었어. 오빠도 워낙 엄하게 굴었고.”허경빈의 눈빛이 조금 밝아졌다.“그럼 경성에 돌아온 뒤에도 아무도 안 만났어?”“어른들이 몇 명 소개해 주셔서 같이 밥을 먹은 적은 있어. 그래도 정식으로 사귄 사람은 없었어.”송지아는 잠시 생각하다 솔직하게 덧붙였다.“사실 연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그 말을 들은 허경빈은 속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송지아에게 과거의 연애 경험이 있다고 해도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만나면서 경험하게 될 모든 처음을 자신과 함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게 벅차올랐다.허경빈은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감추지 않은 채 말했다.“몰라도 괜찮아. 내가 가르쳐 주면 되니까.”송지아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말하는 것만 들으면 연애에 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 같았다.그러나 허경빈은 지금껏 제대로 연애해 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하채린과 얽힌 일이 워낙 크게 번지는 바람에 기자들이 그의 과거를 남김없이 파헤쳤고, 그 과정에서 연애 경험이 전혀 없다는 사실까지 이미 알려진 뒤였다.방주헌에게 여자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는 두 사람이 사교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문 속 한 쌍이기도 했다.매일같이 붙어 다니는 모습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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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4화

영화가 끝났는데도 송지아의 품에는 팝콘이 절반 가까이 남아 있었다.허경빈은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를 송지아의 가족들이 아직 모르고 있었기에, 평소처럼 집에서 백여 미터쯤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송지아가 안전벨트를 풀고 내리려는데 허경빈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그녀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그 시선이 의아해 송지아는 작게 웃었다.“다 왔어.”“알아.”송지아는 품에 안고 있던 팝콘 통을 내밀었다.“이거 너 먹을래?”“안 먹어.”송지아는 팝콘을 다시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차에서 내리기 전, 그녀는 햇빛가리개에 달린 거울을 열어 얼굴을 확인했다.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은 탓에 입술의 립스틱이 조금 지워져 있었다.입술을 가볍게 맞물려 색을 고르게 정리하던 순간, 허경빈이 불쑥 말했다.“전에 내가 연애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잖아.”송지아가 거울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바라보았다.“배워 볼래?”“지금?”허경빈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에게도 연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송지아는 오히려 궁금해졌다. 대체 무엇을 안다고 자신에게 연애를 가르치겠다는 것일까.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어떻게 가르쳐 주려고?”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이었다.찰칵.허경빈이 안전벨트를 풀었다.그와 동시에 상체를 기울여 송지아 쪽으로 가까이 다가왔다.순식간에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서로의 숨결이 뒤섞일 정도로 가까웠다.밀폐된 차 안에는 팝콘에서 풍기는 달콤한 캐러멜 향이 아직 짙게 남아 있었다. 그 달큰한 향에 두 사람 사이를 오가는 아슬아슬한 기류까지 뒤섞이자 공기마저 지나치게 달콤하고 끈적하게 느껴졌다.송지아는 피하지 않은 채 허경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가 천천히 다가올수록 시야 속의 얼굴도 점점 크게 번졌다.허경빈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너무 가까워서 그의 몸에서 풍기는 산뜻하고 깨끗한 향까지 선명하게 느껴졌다.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좁은 차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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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5화

“또 뭘 하려고?”송지아가 경계하듯 바라보자 허경빈은 그녀의 허리를 감싼 채 표정을 살폈다.“화났어?”“나는…”송지아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기습적으로 입을 맞춘 행동이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정말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말끝만 흐렸다.허경빈은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럼 우리 이번 주에도 다시 만날 수 있어?”“주말에는 출장을 갈 수도 있어서 시간이 될지 모르겠어.”허경빈도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할 만큼 눈치가 없지는 않았다.송지아는 방금 자신이 갑자기 입을 맞춘 일에 크게 화를 내지 않았다. 다시 만나기를 거절한 것도 아니었다.그렇다면 두 사람 사이에는 아직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이제 그만 놔줘. 나 집에 들어가야 해.”송지아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그의 팔을 밀어냈다.“저기…”허경빈이 어색하게 헛기침했다.송지아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기다렸다. 그러나 허경빈은 대답 대신 재빨리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가에 짧게 입을 맞췄다.따뜻한 입술이 가볍게 닿았다가 순식간에 떨어졌다.“잘 자.”*송지아는 자신이 어떻게 현관을 지나 방까지 돌아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부모님은 이미 잠자리에 든 뒤였다. 거실을 정리하던 가사도우미가 그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급히 다가왔다.“아가씨, 혹시 무슨 일 있으셨어요?”“아무 일도 없었어요.”송지아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가사도우미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살폈다.“정말 괜찮으신 거 맞아요?”“정말 아무 일도 없어요.”“그런데 입술이…”가사도우미가 조심스레 그녀의 입가를 가리켰다.송지아는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섰다.밝은 조명 아래로 비친 입술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입맞춤에 문질러진 립스틱이 입술선을 벗어나 엉망으로 번져 있었다.송지아는 두 손으로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쌌다.자신이 방금 허경빈과 입을 맞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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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6화

입맞춤을 나눈 뒤로 허경빈은 하루 종일 기분이 들떠 있었다.혼자 있을 때도 실실 웃었고, 이따금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넋 나간 사람처럼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허진강은 아들이 송지아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요 며칠 눈에 띄게 들뜬 모습을 보니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진전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그는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물었다.“송씨 집안 아가씨와는 잘되어 가고 있냐?”“나쁘지 않아요.”“네 성격이라면 여자 친구가 생기는 순간 온 세상에 떠들고 다닐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의외로 조용하구나.”허경빈은 순간 멈칫하더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아빠, 지아는 아직 제 여자 친구가 되겠다고 대답하지 않았어요.”“관계를 확실히 정하고 공개까지 했다가 헤어지면 서로 귀찮아질 수 있으니까, 일단 너를 좀 더 지켜보려는 거겠지.”허진강은 지극히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그러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널 차 버릴 수도 있고.”“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 아가씨가 널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니까.”허경빈은 어이가 없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빠, 정말 제 친아버지 맞아요? 저 이제 아빠 아들 안 할래요.”“솔직히 나도 너 같은 아들은 낳고 싶지 않았다.”허진강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받아쳤다.“내 아들이 남혁이나 강민이, 아니면 이석이 같은 녀석이었다면 내가 이렇게 걱정할 일도 없었을 텐데.”그는 세상 모든 근심을 홀로 짊어진 사람처럼 길게 탄식했다.“어떤 자식은 부모에게 은혜를 갚으러 태어난다는데, 너는 빚 받으러 온 게 분명해.”허경빈은 더 이상 집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방주헌은 지난번 일을 계기로 일방적으로 그와 ‘절교’를 선언한 상태였다. 육씨 집안은 아이들이 여럿이라 언제나 시끌벅적할 것 같았다.결국 별다른 목적도 없이 하씨 집안으로 향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집에는 온유란만 있었다.온유란은 방 안에서 전문 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요가를 하는 중이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공간에는 은은한 아로마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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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7화

허경빈은 온몸이 쑤시는 꼴을 송지아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멋진 모습만 보여 주고 싶었던 그는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기를 기다렸다가, 출장 전날이 되어서야 만나자고 연락했다.하지만 송지아에게는 이미 선약이 있었다.“미안해. 오늘은 친구 몇 명과 저녁 약속이 있어. 출장에서 돌아온 뒤에 만나자.”그녀는 오랜만에 친구들과 쇼핑도 하고 식사도 할 예정이었다.*송지아와 약속을 잡지 못한 허경빈은 그날 저녁 고객들과 접대 자리를 가졌다.곁에서 대신 술을 받아 주는 사람이 있기는 했지만, 그 역시 분위기상 몇 잔은 피할 수 없었다. 잔이 오가고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허경빈은 틈틈이 휴대폰을 확인했다.그러다 송지아가 올린 게시물을 발견했다.친구들과 식사하며 찍은 사진들이었다. 함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허경빈도 아는, 학창 시절 동창들이었다. 사진 속 송지아는 편안하게 웃고 있었고, 제법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보였다.허경빈은 자연스럽게 ‘좋아요’를 누른 뒤 그녀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내일 출장도 가야 하잖아. 너무 늦게까지 놀지 마.]몇 분쯤 지났을까.탁자 위에 놓인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송지아에게서 답장이 왔다.[보고 싶어.]그 문장이 나타나는 순간, 채팅창 안으로 반짝이는 작은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허경빈은 숨을 순간적으로 들이켰다.술자리에서 오가던 대화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화면 속 문장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확인했다.하지만 설레는 감정을 채 느끼기도 전에 메시지가 돌연 삭제되었다.곧이어 송지아가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친구들이랑 게임 중이야.]허경빈의 숨결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지금 자신을 놀리는 건가?한편 송지아는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오늘 모인 친구들 가운데 두 명은 송지아와 허경빈 모두의 메신저 친구였다. 허경빈이 그녀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누르자마자 두 사람은 그 사실을 발견했다.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게임에서 진 사람은 친구들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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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8화

가로등 아래 세워진 차 안에서 허경빈의 비서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입은 떡 벌어졌고, 두 눈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만큼 커졌다.허경빈은 평소 직접 운전하는 사람이었다. 오늘은 접대 자리에서 술을 마신 탓에 비서에게 운전대를 맡겼을 뿐이었다.비서는 자신의 상사가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저 요즘 허경빈이 한껏 들떠서 온종일 싱글벙글 웃고 다닌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상사의 기분이 좋으면 사소한 일로 자신을 괴롭힐 일도 없었다. 그래서 비서는 동료들과 농담 삼아 허경빈에게 분명 여자가 생긴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하지만 그 상대가 송씨 집안의 공주님일 줄이야!두 사람이 사이가 나빠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앙숙이라는 소문이 사교계에 널리 퍼져 있지 않았던가?세상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실을 알아 버렸다.일단 진정할 시간이 필요했다.*잠시 후 허경빈과 송지아는 저택 단지 안쪽의 작은 정원으로 들어갔다.허경빈의 비서와 송씨 집안의 운전기사, 경호원은 나란히 정원 입구의 계단에 걸터앉았다.세 사람은 두 사람을 기다리는 동시에 주변을 살피며 망을 보는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송씨 집안의 경호원이 비서의 얼빠진 얼굴을 보고 웃었다.“아니, 당신 표정을 보니까 두 사람 사이를 오늘 처음 안 모양이네요.”비서는 어색하게 마른웃음을 흘렸다.“두 분이… 만난 지 오래됐습니까?”“보름 조금 넘었을걸요.”“저는 매일 대표님과 붙어서 일하는데도 전혀 몰랐어요.”비서는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제가 꼭 바보가 된 기분이네요.”“모르는 사람이 많으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만 몰랐던 게 아닙니다.”“두 분, 지금 비밀 연애라도 하시는 겁니까? 굳이 이렇게까지 유행을 앞서가실 필요가 있나요?”*그 시각, 허경빈과 송지아는 달빛이 내려앉은 정원 산책로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계절이 바뀌려는 듯 바람에서는 한겨울의 매서운 냉기가 한결 옅어지고, 부드러운 온기가 조금씩 묻어나기 시작했다. 맑은 달빛은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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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9화

그에게 정식으로 남자 친구라는 자리를 내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 같았다.“시간이 늦었어. 너 내일 출장도 가야 하잖아. 이제 집에 데려다줄게.”허경빈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전했다.당장이라도 송지아의 대답을 듣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더는 재촉하거나 부담을 주지 않았다. 그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그 순간, 송지아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붙잡는 힘은 아주 약했다.그런데도 그 작은 힘이 허경빈의 심장을 부드럽게 움켜쥔 듯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조여 오고, 숨을 쉬는 법조차 잊은 것처럼 아찔해졌다.뒤에서 송지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허경빈…”허경빈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우리… 한번 만나 볼래?”그 말이 떨어진 순간, 온 세상이 갑자기 고요해진 듯했다.허경빈이 천천히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한 걸음 다가서자,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다시 가까워졌다.주변에서는 바람이 풀잎과 나뭇가지를 스치는 소리가 잘게 흩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송지아의 귀에는 서로에게 닿을 듯 얕고 뜨거워진 두 사람의 숨소리만 선명하게 들렸다.“너… 방금 뭐라고 했어?”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확인하려는 듯 허경빈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그의 눈동자에는 뜨거운 바람이라도 일렁이는 듯했다. 똑바로 바라보고 있으면 피부까지 달아오를 만큼 열기가 가득했다.“못 들었어?”송지아가 부끄러운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들었는데,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우리 한번 만나 보자고…”송지아는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허경빈이 갑자기 그녀를 힘껏 끌어당겼기 때문이다.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포옹이었다.이번에는 품에서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 팔에 힘을 주어 단단히 끌어안았다. 너무 세게 안은 탓에 송지아는 순간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허경빈의 가슴에 뺨을 기댔다.옷감 너머로 거칠고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은은한 술 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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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0화

허경빈은 술기운까지 오른 탓에 평소보다 한층 더 들떠 있었다.허진강은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아들을 한참이나 달랜 끝에 겨우 방으로 돌려보냈다. 그런데 마침 허경빈의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전화를 건 사람은 송지아였다.무사히 집에 도착했는지 확인하려고 연락한 것이었다.허진강은 아들이 휴대폰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실실 웃는 모습을 황당하게 바라보았다.“응, 집에 잘 도착했어.”“나도 방금 짐을 다 챙겼어. 이번 출장은 조금 길어질 것 같아. 일주일 정도 예상하고 있어.”허진강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아들이 통화하는 바로 옆에 태연히 앉아, 조금도 숨길 생각 없이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달콤한 목소리로 한참이나 이야기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고 있으니 허진강의 얼굴에는 어느새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가 번졌다.속으로는 은근히 어깨까지 으쓱해졌다.예전부터 송씨 집안에 송지아처럼 똑똑하고 훌륭한 딸이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자신은 그런 딸을 낳지 못했지만, 그녀가 며느리가 된다면 사정은 달라졌다.어딜 가든 자랑하고 다녀도 모자랄 일이었다.“그냥 내가 같이 출장 갈까?”허경빈의 말에 송지아가 되물었다.“넌 회사에 안 나가도 돼?”“우리 아버지도 계시잖아. 아직 정정하시니까 앞으로 이십 년은 더 일하실 수 있어.”허진강의 입가에서 흐뭇한 미소가 그대로 사라졌다.정말이지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었다.처음에는 거실에서 통화하던 허경빈은 이내 휴대폰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아버지가 조금도 눈치껏 자리를 피해 줄 생각을 하지 않고, 바로 옆에 앉아 통화 내용을 하나하나 엿듣고 있었기 때문이다.허경빈도 평소에는 낯이 두꺼운 편이었지만, 아버지가 뚫어지게 바라보는 앞에서 연인과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부끄러웠다.한참 통화하다 다리가 아파진 그는 마당 한편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러고는 송지아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손에 잡히는 풀을 한 포기씩 뽑기 시작했다.그 모습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던 허진강은 문득 생각했다.저 녀석이 저런 식으로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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