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1180

1325 فصول

제1171화

허경빈은 당연히 방을 한 사람당 하나씩 쓰는 줄 알았다.그런데 객실 배정을 마친 송현근이 느닷없이 그를 가리켰다.“너는 오늘 나랑 같이 자.”“예, 예?”허경빈은 순간 제 귀를 의심했다. 눈을 크게 뜬 채 송현근을 바라보던 그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삼촌, 저더러 삼촌과 같이 자라고요? 그건 좀 그렇지 않습니까?”“다 큰 남자 둘이 한방에서 자는 게 뭐가 어때서? 밤에 코 고나?”“안 곱니다.”“그럼 됐어. 나랑 자.”단호한 대답에 허경빈은 입술만 달싹이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물론 송현근도 아무 생각 없이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허경빈에게 방을 따로 내줬다가는 자신이 잠든 틈을 타 딸의 방으로 몰래 숨어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역시 다 겪어 본 사람이었다.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이 서로에게서 얼마나 떨어지지 못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그러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이 예정보다 일찍 외할아버지가 될 수도 있었다!그런 불상사를 막으려면 오늘 밤만큼은 반드시 이 녀석을 곁에 붙들어 둬야 했다.예전에 방주헌이 강학용과 한방에서 잔 적이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허경빈은 당시 방주헌을 실컷 놀리며 함께 자 본 소감이 어떠냐고 집요하게 캐물었다.하지만 언젠가 자신에게도 똑같은 일이 닥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갑작스럽게 찾아온 탓에 갈아입을 옷조차 챙겨 오지 않은 허경빈은 샤워를 마친 뒤 호텔 가운만 걸쳤다. 따뜻한 물에 달아오른 피부 위로 얇은 가운 자락이 어색하게 감겼다. 그는 욕실 문손잡이를 붙든 채 한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결국 다시 변기 위에 쭈그리고 앉은 허경빈은 휴대전화를 꺼내 친구들에게 다급히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방주헌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잠든 뒤였다. 화면에 좀처럼 답장이 뜨지 않자 그의 속은 더욱 답답해졌다.한참을 꾸물거리던 허경빈은 더는 버틸 수 없어 마지못해 욕실 문을 열었다. 희미한 객실 조명이 젖은 머리칼과 하얀 목덜미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았다.침대에
اقرأ المزيد

제1172화

경성으로 돌아가는 차 안.송지아는 조수석에 앉아 이따금 뒤를 돌아보았다. 뒷좌석에는 아버지 송현근과 연신 하품을 터뜨리는 허경빈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간밤에 송현근의 우렁찬 코골이에 시달려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한 허경빈은 쏟아지는 졸음을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눈치였다.처음에는 그저 눈을 감고 잠시 피로를 풀 생각이었다. 하지만 잔잔하게 이어지는 차의 진동과 따뜻한 실내 공기에 긴장이 풀린 허경빈은 저도 모르는 사이 깊이 잠들고 말았다.송현근은 고개를 숙인 채 휴대전화로 정치 뉴스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곁에서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자 슬쩍 시선을 옮겼다. 허경빈이 완전히 잠든 것을 확인한 그는 운전기사에게 손짓해 차를 조금 더 부드럽게 몰라고 지시했다.잠시 후, 차가 완만한 곡선을 따라 움직이자 허경빈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었다.툭.그의 머리가 그대로 송현근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송현근은 순간 얼어붙었다. 휴대전화를 든 손조차 어정쩡하게 굳은 채, 제 어깨에 기대 잠든 허경빈을 황당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밀어내자니 어젯밤 자신 때문에 제대로 자지 못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고, 그렇다고 그대로 두자니 묘하게 불편했다. 평소라면 당장 깨웠을 텐데, 피곤에 지쳐 고른 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니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겉으로는 무뚝뚝하게 굴어도 결국에는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그 결과, 허경빈은 경성으로 돌아오는 길의 절반이 넘도록 송현근의 어깨를 베개 삼아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그러다 송지아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전화를 받은 그녀의 목소리가 조용하던 차 안에 울리자 허경빈은 그제야 천천히 눈을 떴다.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눈을 몇 번 깜빡이던 그는 제 머리가 어디에 기대 있는지 알아차리고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송현근의 어깨를 베고 잤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번졌다.“삼촌, 죄송합니다. 제가 잠든 줄도 몰랐어요.”“괜찮다.”“그래도 깨우시지 그러셨어요.”“잠들면 정말 코를
اقرأ المزيد

제1173화

송지아는 아랫입술을 살짝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딸이 민망해하는 모습을 본 송현근은 더는 놀리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그런데 설씨 집안에서는 따로 연락 없었어?”“설도윤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어요. 아들을 한 번만 봐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할 말이 있으면 제 변호사에게 직접 연락하라고 했어요. 그런데 말하는 걸 들어 보니 저한테 불만이 꽤 많은 것 같았어요. 제가 자기 아들 인생을 망쳐 놓았다고 생각하나 봐요.”두 사람이 설씨 집안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 가자, 허경빈은 더 듣지 않고 조용히 발길을 돌려 집 안으로 돌아갔다.그러나 입가에 번지는 웃음만은 도무지 감출 수 없었다.‘저 경빈이 좋아해요.’송지아의 고백이 귓가에서 자꾸만 되풀이되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벅차올라, 그의 마음속에는 어느새 꽃이 만발한 듯했다.*저녁 식탁에는 자연스럽게 술도 올랐다.송현근은 딸이 제 짝을 만나 행복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금지옥엽으로 애지중지 키운 딸을 웬 돼지 같은 녀석에게 빼앗긴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속이 쓰렸다.결국 그는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고, 허경빈도 예비 장인 앞에서 잔을 피할 수 없어 계속 술을 받아 마셨다. 그렇게 한 잔 두 잔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두 사람 모두 거나하게 취하고 말았다.술기운이 오른 송현근은 묵혀 둔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허경빈이 초등학생 시절 송지아를 괴롭혔던 일까지 일일이 들춰내며 타박하자, 그의 아내는 난처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보다 못한 그녀는 딸에게 눈짓을 보냈고, 모녀는 함께 송현근을 부축해 방으로 데려갔다.“경빈이 집에 보내지 말고 잠깐 기다리게 해. 내가 해장국을 끓여 줄 테니 마시고 가. 안 그러면 내일 머리가 아플 거야.”말을 마친 송지아의 어머니는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갔다.허경빈은 처음에는 제법 얌전했다. 거실 소파에 반듯이 앉아 혼자 실실 웃기만 했다. 술에 취해도 송지아의 고백이 떠오르는지, 입가에서는 좀처럼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잠시 후 해장
اقرأ المزيد

제1174화

여기는 송지아의 집이었다. 아버지는 술에 취해 방에 들어가 있었지만, 어머니는 언제든 거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불안해진 송지아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허리에 감긴 허경빈의 팔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다.그때 허경빈이 불쑥 얼굴을 가까이했다. 이마를 맞댄 채, 술기운에 잠긴 목소리로 나직이 속삭였다.“많이 써?”송지아가 대답하려 입술을 벌렸지만, 미처 한 음절도 내뱉기 전에 그의 입술이 겹쳐 왔다.허경빈의 숨결은 짙고 뜨거웠다. 입가에 닿아 흩어지는 온기만으로도 심장이 떨릴 만큼 가까웠다.그는 송지아의 입술을 머금듯 가볍게 입 맞췄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듯 닿았지만, 이내 조금씩 깊이 파고들었다. 얕았다가 깊어지는 움직임은 부드러우면서도 거부하기 힘들 만큼 단호했다.송지아의 머릿속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누군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가슴을 뒤흔드는 설렘이 한데 뒤엉켰다. 결국 그녀는 균형을 잡기라도 하듯 두 팔로 허경빈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그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얇은 옷감 너머로 전해지는 손바닥의 열기가 허리께의 피부를 녹일 듯 뜨거웠다.입안에 짙게 남아 있던 약의 쓴맛은 두 사람의 입술과 숨결 사이에서 서서히 옅어져 갔다.한참 뒤, 허경빈이 천천히 입술을 물렸다. 맞닿았던 혀끝을 거둔 뒤에도 완전히 떨어지지는 않은 채, 붉어진 송지아의 입가를 가볍게 쪼듯 입 맞췄다.송지아의 얼굴은 여전히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어때?”허경빈이 물었다.술기운 탓인지 그의 발음은 조금 흐릿했다. 입안에 남은 쓴맛을 묻는 것인지, 방금 나눈 입맞춤의 느낌을 묻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송지아는 눈을 내리깔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아직도 써?”이번에는 질문이 분명했다.나직하게 내려앉은 목소리와 함께 그의 따뜻한 숨결이 뺨을 스쳤다. 코끝끼리 살며시 맞닿았다가 떨어졌다.가볍고도 뜨거운 감촉이었다.아직 쓰냐고?입안에는 분명 약의 씁쓸한 맛이 조금 남아 있었다. 송지아가 굳은 얼
اقرأ المزيد

제1175화

허경빈은 해장국이 담긴 잔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마치 술이라도 들이켜듯 호기롭게 단숨에 비워 버렸다.곧이어 지독한 쓴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 만큼 끔찍한 맛이었다.*그날 밤, 허경빈은 송씨 집안 운전기사가 집까지 데려다주었다.허진강 부부는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허경빈이 술에 잔뜩 취해 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물어볼 수가 없었다.오히려 허경빈은 비틀거리면서도 아버지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아빠, 아들이 오늘 드디어 큰일을 해냈습니다.”허진강은 황당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았다.이 녀석, 어디서 당나귀한테 머리라도 걷어차인 건가?다음 날이 되어서야 허씨 부부는 지난 이틀 동안 벌어진 일을 자세히 전해 들었다. 두 사람은 설도윤이 저지른 무모한 짓에 혀를 내둘렀다.그러다 허진강은 문득 납득할 수 없다는 얼굴로 아내를 바라보았다.“송씨 집안 그 아가씨는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살았잖아. 세상 물정도 잘 알고 눈도 높을 텐데, 괜찮은 남자를 얼마나 많이 봤겠어.”그는 소파에 앉아 있는 아들을 흘끗 쳐다보며 진지하게 덧붙였다.“그런 애가 대체 왜 우리 집의 이 못난 녀석을 골랐을까?”‘못난 녀석’으로 지목된 허경빈은 당장 발끈했다.“아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얼마나 괜찮은 남자인지 모르셔서 그래요. 지금까지 저를 쫓아다닌 여자들을 줄 세우면 지구를 한 바퀴도 돌걸요?”허진강은 코웃음을 쳤다.“허풍은 그만 떨고, 그쪽 부모님은 널 어떻게 대하시던?”“거의 친아들처럼 대해 주시던데요.”“허풍 안 떨면 입에 가시라도 돋냐?”허경빈은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요즘 시간 나면 육씨 집안이나 하씨 집안에 자주 들러. 강민이나 이석이가 아내를 어떻게 챙기는지 보고 좀 배워. 언제까지 그렇게 철없이 굴 셈이야?”허경빈은 잔소리를 순순히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마침 요즘 한가했던 그는 며칠 뒤 선물을 조금 사 들고 육씨 집안을 찾아갔다.그날은 수업이 없는 육
اقرأ المزيد

제1176화

송지아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라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운전기사가 곧장 다가가 설도윤의 어머니를 떼어 놓으려 했지만, 그녀는 마치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붙잡은 듯 송지아의 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켜쥐었다.“나한테는 이 아이 하나뿐이에요. 물론 잘못한 건 맞지만, 그렇다고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요. 요즘 너무 큰 충격을 연달아 받아서 순간적으로 그런 짓을 저지른 거예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줘요!”“일단 이 손부터 놓으십시오.”운전기사는 난감한 얼굴로 그녀의 손을 떼어 내려 했다.“지아 씨, 넓은 마음으로 한 번만 눈감아 줘요. 좋은 일 해서 복 쌓는다고 생각하고 말이에요.”“아주머니, 우선 일어나세요.”하지만 설도윤의 어머니는 놓칠 수 없다는 듯 온 힘을 다해 송지아의 다리에 매달렸다. 손가락이 살을 파고드는 바람에 송지아는 다리가 욱신거릴 정도였다.“일어나면 우리 도윤이를 용서해 줄 거예요?”그녀는 땅바닥에 엎드리다시피 무릎을 꿇은 채 애타는 눈으로 송지아를 올려다보았다. 평소의 우아한 귀부인다운 모습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송지아는 가라앉은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차분하게 설명했다.“설도윤 씨가 저지른 일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끝나는 사건이 아니에요. 제가 용서하고 합의해 드린다 해도 형사책임까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그래도 당신이 처벌불원서나 선처 탄원서를 써 주면 형량을 줄일 수 있잖아요!”설도윤의 어머니는 감정이 북받친 듯 목소리를 높였다.송지아도 처음에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이제 쉰을 바라보는 사람이 길바닥에 무릎까지 꿇고 자신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아들이지, 어머니가 아니었으니 애처로운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했다.그러나 뒤이어 나온 말 한마디가 그 연민을 말끔히 지워 버렸다.“도윤이가 당신을 미행하고 그런 짓까지 저지른 건 분명 잘못한 짓이에요. 맞아도 싸요. 그런데 도윤이가 그렇게 심하게 두들겨 맞았는데도 당신 쪽에 책임을 묻지 않
اقرأ المزيد

제1177화

설도윤의 어머니에게서 가까스로 벗어난 뒤, 송지아는 차에 올라 종아리를 천천히 문질렀다.운전기사는 룸미러를 통해 그녀의 심상치 않은 기색을 알아차렸다.“아가씨, 어디 불편하십니까? 먼저 병원으로 모실까요?”“괜찮아요.”조금 전 설도윤의 어머니는 송지아의 다리를 죽기 살기로 붙들고 마구 잡아당겼다. 피부가 벗겨지지는 않았어도 분명 벌겋게 붓고 멍이 들었을 터였다.그때 송지아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허경빈이었다.“이제 출발했어?”“응.”“정말 내가 데리러 가지 않아도 되겠어?”“괜찮아. 길만 안 막히면 삼십 분 정도 뒤에 도착할 것 같아.”“나 지금 마트에서 샤브샤브에 넣을 재료를 사고 있는데, 먹고 싶은 거 있어?”“나는 아무거나 괜찮아.”두 사람은 아직 연애 사실을 요란하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모임 장소도 허경빈이 혼자 사는 아파트로 정했다.모두 가까운 사이인 만큼 격식을 차리지 않고 훠궈를 먹기로 했다. 재료를 사러 가는 길에는 방주헌이 허경빈과 동행했다.사실 허경빈은 얼마 전 타지에서도 샤브샤브를 먹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송현근이 함께 있었기에 눈치를 보며 쉴 새 없이 재료를 익히고 물을 따르느라 정작 자신은 몇 점 먹지도 못했다.필요한 재료를 모두 고르고 계산대로 향하던 중이었다.방주헌이 갑자기 진열대에 놓인 콘돔 두 상자를 집어 들더니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미쳤어? 주헌아, 너 진짜 체면도 없냐?”허경빈은 주변 사람들이 들을까 봐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우리는 샤브샤브 재료 사러 왔잖아. 그런데 지금 뭐 하는 짓이야?”“보면 몰라? 콘돔 사는 중이잖아.”방주헌의 표정은 시장에서 신선한 채소를 고르는 사람처럼 태연하기만 했다.그는 이제 이런 일이라면 제법 능숙했다. 시간만 나면 강희진과 뜨거운 시간을 보냈고, 두 사람 모두 취향이 꽤 대담한 편이라 제품을 고르는 손길에도 망설임이 없었다.하지만 허경빈은 달랐다.그는 민망해서 당장이라도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었다.“사고 싶으면 나중에 혼자 사면
اقرأ المزيد

제1178화

송지아가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는 야근 중인 강희진을 제외하고 모두 모여 있었다.육씨 집안 아이들 중에서는 육수린만 부모를 따라왔다. 육시안은 아직 너무 어렸고, 육민찬과 연우진은 밀린 숙제를 해야 했다.육수린은 말재간이 좋고 붙임성도 뛰어난 아이였다. 송지아를 발견하자마자 눈을 반짝이며 외쳤다.“언니!”그 말을 들은 허경빈은 곧장 불만을 드러냈다.“육수린, 이 언니는 삼촌 여자 친구야. 그런데 나는 삼촌이라고 부르면서 지아한테는 언니라고 하면 안 되지. 나도 오빠라고 불러 볼래?”육수린은 입술을 오므린 채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허경빈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몸을 낮추며 달콤하게 회유했다.“착하지? 오빠라고 한 번만 부르면 맛있는 사탕 사 줄게.”육수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그래도 허경빈은 포기하지 않았다.“왜 나한테는 오빠라고 부르기 싫은데?”“삼촌은 늙었으니까.”*옆에서 듣고 있던 방주헌은 배를 움켜쥐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누가 뻔뻔하게 어린애한테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느냐며 허경빈을 신나게 놀렸다.송지아는 육강민 일행과 이미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허경빈의 여자 친구라는 자격으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는 건 처음이라 아무래도 긴장되고 조심스러웠다.눈치 빠른 육수린은 그런 송지아의 손을 덥석 잡더니 제 어머니 곁으로 이끌었다.“오랜만이에요.”서은주가 따뜻한 미소로 그녀를 맞았다.서은주의 곁에는 연주와 온유란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성품이 부드럽고 편안한 이들이라, 송지아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금세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어느새 송지아 곁에 자리를 잡은 육수린이 궁금한 듯 물었다.“민정이 언니는요?”“민정이?”송지아는 아이가 자신의 조카를 찾을 줄 몰랐는지 잠깐 놀랐다가 이내 웃었다.“민정이는 학교에 가야지.”“그럼 방학 때 우리 집에 놀러 와도 돼요?”“그럼. 당연히 되지.”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던 서은주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
اقرأ المزيد

제1179화

“그만 생각하고 좀 먹어.”허경빈은 잘 익힌 쇠고기를 송지아의 그릇에 올려 주었다. 이제 설씨 집안 일은 잊고 식사에 집중하라는 뜻이었다.*식사를 마친 뒤, 서은주는 송지아에게 앞으로도 자주 만나자고 인사를 건넸다.모두가 돌아가고 나자 송지아는 허경빈과 함께 식탁을 정리했다. 평소에는 가사도우미가 아파트를 청소해 주지만, 친구들과 사적으로 모인 자리까지 맡길 수는 없었으니 뒷정리는 두 사람이 직접 해야 했다.“내가 쓰레기 버리고 올게. 넌 여기 앉아서 좀 쉬어.”허경빈은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혼자 남은 송지아는 소파에 앉아 그의 아파트를 천천히 둘러보았다.키우던 고양이는 아마 허진강 부부에게 맡긴 모양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대화로 시끌벅적하던 공간이 갑자기 고요해지자, 송지아는 낯설고 허전한 기분마저 들었다.단순히 쓰레기만 버리러 간 허경빈은 십 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한참 뒤 현관문이 열렸을 때, 그의 손에는 약국 이름이 인쇄된 봉투가 들려 있었다.“어디 아파?”송지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내가 아니라 네가.”허경빈은 그녀의 곁으로 다가오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오늘 네가 걸을 때마다 조금 불편해 보였어. 아까 내려간 김에 네 집 운전기사에게 물어봤더니, 설도윤 어머니가 찾아왔었다면서.”송지아는 실제로 다리가 아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허경빈이 그 미묘한 이상까지 알아차렸다는 사실에 놀라 미처 대답하지 못했다.그사이 허경빈은 그녀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송지아의 한쪽 다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제 무릎 위에 올린 뒤 바짓단을 걷어 올렸다.드러난 종아리에는 손톱에 긁히고 거칠게 붙들린 흔적이 벌겋게 남아 있었다.“많이 아파?”상처를 바라보는 허경빈의 눈에 안쓰러운 기색이 짙게 어렸다.“참을 만해.”허경빈은 약국 봉투에서 멍과 부기를 가라앉히는 연고를 꺼냈다. 손끝에 약을 짜서 붉어진 종아리에 고르게 바른 뒤, 조심조심 문질러 흡수시켰다.손놀림은 다소
اقرأ المزيد

제1180화

창밖에서는 거센 바람이 유리창을 스치며 잘게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그러나 실내의 공기는 전혀 다른 의미로 얼어붙어 있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 밀착된 야릇한 자세였지만, 조금 전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난감한 정적만 흘렀다.“지아야, 이건 내가 설명할 수 있어…”허경빈은 다급히 발을 뻗어 콘돔 두 상자를 맞은편 소파 밑으로 걷어차 버렸다.너무 긴장한 나머지 혀까지 꼬일 지경이었다.두 사람은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다. 이대로 송지아가 자신을 음란한 생각만 가득한 변태, 오로지 그녀의 몸만 탐내는 불한당으로 오해하기라도 한다면 입이 열 개라도 해명할 길이 없었다.“일단 좀 일어나. 무거워.”허경빈의 몸 절반이 송지아를 짓누르고 있어 숨쉬기조차 힘들었다.더구나 그의 한 손은 바짓단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있었다. 뜨거운 손바닥이 맨살에 닿아 허벅지를 달구자, 낯설고도 미묘한 감정이 밀려들어 송지아의 마음을 어지럽혔다.허경빈이 몸을 비켜 주자 송지아는 서둘러 상체를 일으켰다. 흐트러진 호흡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뺨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술은 입맞춤 탓에 살짝 부어 있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옷매무새도 여기저기 흐트러져 있었다.누가 보아도 실컷 괴롭힘을 당한 사람처럼 보였다.허경빈도 자신이 조금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조금 전에는 뜨거운 열기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그녀를 그대로 한입 한입 모조리 삼켜 버리고 싶었다!“뒤돌아 있어. 절대 돌아보지 말고.”허경빈은 군말 없이 등을 돌렸다. 그사이 송지아는 흐트러진 옷자락을 끌어 내리고 옷매무새를 정돈했다.허경빈은 이를 악물고 속으로 방주헌을 저주했다.방주헌, 이 망할…!“여기 잠깐 앉아 있어.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경빈은 화장실로 달려갔다. 잠시 뒤 안쪽에서 쏴아 하는 물소리가 길게 이어졌다.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한 송지아의 얼굴이 또다시 붉어졌다.한참 뒤 허경빈이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اقرأ المزيد
السابق
1
...
116117118119120
...
133
امسح الكود للقراءة على التطبيق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