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131 - Chapter 140

636 Chapters

제131화

육가희는 책상을 돌아서 그의 무릎 위에 앉았다. 그리고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싸며 살짝 웃었다.“백현 씨 전 약혼녀, 참 대단하던데요?”“무슨 말이에요?”진백현은 모르는 척했다.“아직 몰라요?”육가희가 비웃으며 말했다.“서은주가 발표회에서 친삼촌을 짓밟았잖아요. 서진우 부부는 경찰에 소환됐고, 회사 주식은 이미 폭락했어요. 어디서 그런 수완이 생긴 걸까요? 할머니조차 서은주를 다시 보게 됐다네요.”육가희는 한주미가 서은주에게 본때를 보여주길 바랐지만, 서은주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던 자신을 자책하게 되었다.“게다가 함께 경성으로 갈 거라던데요?”진백현의 몸이 순간 굳었다.“뭐죠? 아직 서은주가 신경 쓰여요?”“말도 안 돼요. 지금 내 눈에는 자기밖에 없어요.”진백현은 고개를 숙여 육가희에게 입을 맞췄다.두 사람은 사무실에서 격정적인 시간을 보냈고, 밖에 있던 비서조차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얼굴이 빨개질 정도였다.한바탕 거사를 끝낸 뒤, 진백현은 육가희를 품에 안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언제쯤 가족분들에게 인사드릴까요?”“성세 연말 기념행사 때, 함께 경성으로 가요.”“좋아요.”서은주를 버리고 육가희에게 접근한 이유는 최고의 명문가에 입문해 더 좋은 기회를 얻기 위함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위로 올라가야 한다.육강민처럼 권력과 부를 손에 넣으면 서은주도 결국 얌전히 그의 말에 순종할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한편, 서은주는 조사에 협조하기 위해 경찰서에 들러 진술을 마쳤다.그곳을 나설 때는 이미 황혼이 깃들었다.입추가 지나자, 바람 끝자락에 서늘함이 한가득 스며들어 더위는 가시고 남아 있던 열기마저 흩어졌다. 느릿한 황혼 속 마침 불어온 저녁 바람이 세상을 낭만적으로 물들이던 순간, 작은 아이가 서은주를 향해 달려와 와락 안겼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깜짝 놀랐지만, 서은주는 기꺼이 받아주었다.“이모!”육민찬은 서은주의 품에 온전히 자리 잡았다.서은주는 놀란 얼굴로 아이를 바라봤다.오랜만에 본 녀석은 머리를 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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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엄명한은 비록 강성을 떠났지만, 줄곧 서은주의 소식을 주시하고 있었고 기자회견 사건을 보고서야, 자료를 핑계로 서은주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요즘 어떻게 지내요? 몸은 괜찮아요?]서은주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해요.][학업 부담도 크실 텐데, 자료까지 찾아주셔서 이미 많은 도움을 받은걸요. 더는 폐 끼치고 싶지 않아요.]서은주는 엄명한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기에 그에게 오해의 여지를 주고 싶지 않았다.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는 없었으니, 엄명한이 자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알기에 그의 관심을 편히 받아들이는 건 엄명한에게 못된 짓이라고 생각해 최대한 정중하게 돌려서 거절했다.그 속뜻을 알아차린 엄명한은 표정이 어두웠다.반면 육강민은 마지막 문자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그 모습에 육민찬도 궁금한 눈빛으로 물었다.“아빠, 뭐가 그리 기분이 좋아요?”“오늘 날씨가 좋으니까.”육강민이 낮게 웃었다.“날씨요?”육민찬은 고개를 갸웃했다.요즘 날씨는 비슷비슷했는데, 뭐가 다른 건지 알 수 없었다.그 광경을 지켜보던 방주헌이 속으로 중얼거렸다.‘저리도 음흉한 웃음은 절대 날씨 때문이 아니란다.’오늘 서은주는 기분 좋았고, 육민찬도 함께였기에 직접 요리를 하기로 했다.원래부터 낯가림따위 없었던 방주헌도 자연스럽게 합류했다.서은주는 부엌에서 식재료를 씻고 있었고, 어느새 다가온 육강민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았다.육강민은 서은주의 목덜미에 얼굴을 부비며 살짝 거칠어진 목소리로 속삭였다.“내가 준 선물, 마음에 들어?”“마음에 들어요.”고철주 사건은 여전히 서은주의 악몽이었다.간혹 밤중에 그때의 무력감과 절망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서은주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하던 고철주가 체포되면서 비로소 그 일도 깔끔한 마침표를 찍었다.“어떻게 보답할지 생각해 봤어?”서은주는 몸을 돌려 그와 시선을 맞췄다.젖은 손 때문에 제대로 안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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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방주헌은 순간 벙졌다.‘뭐야, 나도 명색의 귀한 집 도련님인데 고작 마늘을 까고 있으란 거야?’하지만 형수님 체면은 봐줘야 했기에 일단 참았다.그리하여, 평소 오만하고 제멋대로인 방주헌은 어린이용 의자에 쪼그려 앉아, 조용히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갈비와 백숙, 아스파라거스 새우까지... 오늘 차린 음식은 다양했다.방주헌은 전혀 거리낌없이 먹어 대며 연신 감탄했다.“앞으로도 자주 와서 먹어도 될까요?”서은주가 웃으며 답하려는 순간, 육강민이 선수 쳤다.“자주? 그건 너무 뻔뻔하지.”방주헌은 그저 새우를 까며 태연하게 답했다.“나 어려서부터 완전 뻔뻔했는데 하루이틀 본 사람처럼 왜 그래.”너무나 당당하게 스스로를 뻔뻔하다고 칭하는 사람은 서은주도 처음이었다.방주헌이 마지막 갈비를 집으려는 순간, 육민찬도 젓가락을 움직였다.좁은 자리에서 맞붙은 두 사람. 민찬이는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전 아기라 아저씨가 양보해야죠.”“왜 어리다고 꼭 양보해야 하지?”방주헌의 젓가락 솜씨는 민찬이보다 훨씬 능숙했다.갈비를 낚아챈 그는 자칭 ‘인생 강의’까지 곁들였다. “민찬아, 사회는 어리다고 봐주지 않아. 세상 모두가 네 가족처럼 예뻐해 주지 않거든. 그러니까 스스로 강해져야 해. 아저씨에게 강해진 너를 보여줄 수 있지?”육민찬이 이를 악물었다.“내가 강해지면, 제일 먼저 아저씨를 모래사장에 눌러버릴 거예요.”방주헌은 낮게 헛기침하며 말했다.“어린 친구가 그렇게 뒤끝 있으면 못 써.”녀석의 콧김이 세차게 뿜어졌다. 이는 완전히 삐친 상태였다.그러다 방주헌이 내일 놀이공원에 가자고 약속해서야 삐쭉 튀어나온 입술이 반쯤 들어갔다.“그럼, 이번엔 봐줄게요. 단 약속은 지켜야 해요!”그들이 있으니, 집은 전처럼 냉랭하지 않았고 서로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며 식사하는 것도 즐거웠다.방주헌은 식사 후 설거지를 하고 떠났다.육강민은 직접 그를 배웅했고 잠깐 이야기를 나눈 뒤 돌아왔다.그사이 육민찬은 이미 씻고 나와 침실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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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서씨 가문 문제를 모두 처리한 서은주는 육민찬을 품에 안고 깊이 잠에 빠져들었지만 육강민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녀석의 ‘엄마’ 한 마디가, 마치 예리한 칼날처럼 그의 심장을 깊숙이 찔렀기 때문이다.자신이 아무리 채워주려 해도, 엄마의 부재는 끝내 메울 수 없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혔다.다음 날 아침, 육민찬은 유난히 일찍 일어났고 한껏 들뜬 얼굴로 놀러 나갈 준비를 했다. “형, 어차피 다들 시간 많으니, 같이 가.”방주헌이 웃으며 초대했다.“이모, 같이 가자!”육민찬은 서은주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서은주는 결국 아이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다.그런데 방주헌이 예약한 곳이 ‘호서 리조트’라는 사실을 알고, 서은주는 순간 얼어붙었다.전에 육강민과 함께 여기서 말을 탔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그때 거의 다리가 부러질 뻔했던 기억에, 지금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말 타러 가는 거야?”육강민은 서은주 눈빛 속 망설임을 보고, 손을 잡아 주었다.“걱정 마, 이번엔 살살할게.”서은주가 말을 타자, 육강민은 한쪽 고삐를 잡고 깔끔하게 몸을 돌려 말에 올랐다.그의 몸이 등 뒤에 닿아 뜨거운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지난번 사건으로 잔뜩 긴장했던 서은주는 고삐를 꽉 잡고 있었다.“무서워하지 말고, 힘 풀어.”그의 숨결이 목덜미에 닿자, 온몸이 은근히 달아올랐다.“긴장 풀어.”그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다.육강민이 고삐를 살짝 당기자, 말은 그의 움직임에 맞춰 풀밭 위를 걷기 시작했다.승마는 차를 타는 것과 달라, 어느 정도의 흔들림은 피할 수 없었다.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던 서은주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몸이 풀리고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기댔다. 두 사람은 여지없이 밀착되어 있어 산들바람에게 조금의 틈도 주지 않았다. 그 시각, 방주헌은 육민찬의 말을 잡아주다 졸지에 달달함 과다 복용으로 속이 울렁거렸다.저 두 사람을 끌어들이는 게 아니었다.그렇게 방주헌은 입방정을 떤 자신을 탓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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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사내대장부가 어찌 이리도 속 좁고, 뒤끝이 길단 말인가!“지금 당장 답할 필요 없어. 충분히 생각해 보고, 경성에 갈 때 답하면 돼.”결혼은 소꿉장난이 아니다. 맞지 않으면 그저 헤어지면 되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육강민은 서은주에게 결정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강민 씨 가문에서 저를 받아들일까요?”서은주가 조심스레 물었다.결혼은 문벌과 배경을 따지는 법이고, 하물며 명문가 육씨 가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네가 법을 어겼어? 살인을 했어? 못 받아들일 이유가 뭐지?”육씨 가문은 그런 진부한 사상만 고집하는 집안이 아니었다.서은주는 그저 담담히 웃었다.**두 사람이 말을 타고 돌아온 뒤에도, 육민찬은 계속 육강민에게 말을 타고 싶다 졸랐다.그리하여 육강민은 녀석을 안아 말에 태우고, 고삐를 잡고 풀밭을 달렸다.육강민은 태생부터 완벽했기에 검은색 승마복을 입은 모습은 강렬한 존재감을 자랑했다.그와 결혼하는 건 수많은 여인들의 꿈일 수밖에 없었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방주헌이 음료수를 건네며 물었다.“고마워요.”“여기 마장은 좀 작죠. 나중에 경성에 가면, 더 넓고 좋은 곳으로 초대할게요.”방주헌은 손에 든 아이스 콜라를 홀짝이며 말했다.그는 다른 재벌 2세처럼 멋 부리거나 술을 마시는 타입이 아니었다.그저 콜라, 그것도 얼음을 듬뿍 넣은 콜라면 된다.서은주는 미소를 머금은 채, 그저 녀석에게 말타기를 가르치는 육강민의 모습을 지켜봤다.인내심 넘치는 그 모습은 영락없는 훌륭한 부친이었다. “형이 겉으로는 차가워 보여도 정말 따뜻하고 다정해요.”방주헌이 육강민을 자랑하기 시작했다.“자신이 선택한 사람이면, 뭐든지 다 해줄 사람이거든요. 아이에게 저렇게나 잘하고, 인내심도 많으니, 결혼하면 정말 좋은 남편이 될 겁니다.”고개를 끄덕이던 서은주는 한참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민찬이 생모에 대해서 여쭤봐도 될까요?”방주헌은 살짝 놀랐다.“괜찮아요. 말하기 불편하면 안 물어볼게요.”아무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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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호서 리조트에서 돌아온 뒤 며칠 동안, 육강민은 일에 매달리느라 좀처럼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육민찬은 한주미가 돌보게 되었고, 그 덕분에 서은주는 두 사람 사이를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그 사이, 예전에 근무했던 병원의 윗선들은 서은주의 거주지를 알아내,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저번 사진 사건은 오해였습니다. 저희가 충분히 조사하지 않고, 정직 처분을 내린 것에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병원장은 고개를 숙이며 덧붙였다.“원하신다면 언제든 복귀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서은주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이미 경성으로 갈 예정이라 당분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괜찮습니다. 돌아오고 싶으시다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병원장은 즉각 보장했지만 서은주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분위기가 이리도 빠르게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랄 따름이다.그 후, 서은주는 다시 로펌을 찾았다.서씨 집안 재산 분 할 문제는 열흘, 보름에 끝날 일이 아니었다.서은주는 여기서 계속 시간을 끌 수 없었기에, 모든 일을 변호사에게 위임했다.“서씨 저택에서 찾아온, 어머님께서 남기신 보석입니다.” 변호사는 정교하게 짜여진 나무 상자를 건네며 말했다.“수고 많으셨어요.”서은주는 상자를 열어 잠시 들여다보았다.흔히 보이는 명품은 아니었지만, 디자인 하나하나가 독특하고 정교했다.특히 블루빛 목걸이는 주변에 작은 다이아몬드를 세밀하게 박아, 완벽하게 커팅 되어 있어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반짝였다.“디자인이 워낙 유니크해서 세상에 똑같은 건 없습니다. 그래서 이순옥 씨가 감히 밖에서 하고 다니지 못했을 겁니다.” 변호사는 웃으며 덧붙였다.“원래는 이 보석들의 가치를 감정 받아 보았습니다. 액수가 이순옥 씨의 유죄 판결과 형량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서요.”변호사는 말을 이었다.“감정 전문가께서 시가를 따질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이라고 하더군요.”서은주는 잠시 멈칫했다.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서은주는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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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굳이 아랫사람과 일일이 따질 필요는 없지.”진백현 얼굴이 순간 쟂빛이 되었다.“작은 엄마? 꿈도 야무지군.”“사람은 꿈을 크게 가져야지. 언젠가 진짜로 이루어질 수도 있으니까.”서은주는 태연하게 자리를 떠났다.화가 난 진백현은 차를 몇 번이나 세게 발로 찼다.육강민과 함께 경성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그만 물러서라고 설득하려 했지만, 되레 서은주에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같은 시각,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된 다른 차 안에는, 육가희가 두 사람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육가희의 눈빛은 시리다 못해 음산하기까지 했다.역시, 직백현은 서은주를 아직 잊지 못하고 있었다!**그날 저녁, 서은주는 손리정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은주야, 요즘 무슨 일 있어? 얼굴색이 너무 안 좋아.” 손리정이 서은주를 유심히 살펴보았다.“그래?” 정작 서은주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혹시 강민 씨가 밤마다 너 붙잡고 안 놔주는 거 아냐? 오랜만에 만나서 시도 때도 없이 널 힘들게 하는 거라든가.”“요즘 바빠서 얼굴도 못 봐.”강성에 돌아온 뒤로는 욕구를 채우는 정도로 점잖게 끝냈다.“그래서 밤마다 외로워서 못 자는 거네?”서은주는 말문이 막혔다.‘얘는 왜 하루 종일 이런 생각만 하는 걸까?’손리정은 웃으며 말했다.“농담한 거야. 너 지금 서씨 집안일 처리하느라 힘든 거 알아. 그래도 몸 잘 챙겨야 해. 나는 내일 학교로 돌아가야 해서 함께 경성에 못 가지만, 네가 경성에 오면 내가 맛있는 것도 사주고 잘 챙겨줄게.”“내일 내가 배웅 갈게.”“아침 첫 차여서 배웅하려면 적어도 5시쯤 일어나야 하는데 너 힘들까 봐 싫어. 곧 경성에서 만날 거니까. 괜찮아.”손리정은 서은주를 집까지 데려다주며 잔소리 많은 엄마처럼 꼭 몸조심하라며 끊임없이 당부했고, 또 엄명한을 대신해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하기도 했다.그렇게 밤이 깊어서야 손리정이 떠났고, 서은주는 잠옷을 챙겨 샤워실로 향했다.요즘 들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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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서은주는 마스크를 쓰고 밖으로 나가 주변을 한 바퀴 돌았지만 24시간 영업하는 약국이 없어, 임신 테스트기를 구할 수 없었다.직장에 다닌 뒤로 야간 당직을 자주 서다 보니, 서은주의 생리는 지난 2년간 계속 불규칙했다.게다가 요즘은 이런저런 일이 겹쳐 정신이 없었고, 그쪽으로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온천에서의 그날로부터 아직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의사로서 기본적인 상식은 알고 있었다.입덧은 보통 이렇게 빨리 나타나지 않지만, 예외가 없는 건 아니다.그 순간 서은주의 머릿속은 완전히 엉켜 버렸다.막막했고, 혼자라는 기분에 손발이 차가워졌다.서은주는 휴대폰을 열어 육강민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울리더니 금세 연결됐다.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옅은 웃음기까지 묻어 있었다.“이 시간에 웬일이야?”선을 잘 지키는 서은주는 거의 먼저 연락하는 법이 없었다.“바빠요?”목이 바짝 말라, 목소리가 약간 잠겼다.“창립기념 행사라 잡다한 일이 너무 많아. 좀 피곤하네.”육강민은 며칠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있었다.서은주는 마음이 점점 더 복잡해져,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이 일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고, 혹시 혼자만의 오해라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무슨 일 있어?”“아니에요. 일 끝나면 얼른 쉬어요.”그는 짧게 응답했다.전화를 끊은 뒤, 서은주는 침대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그러다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고, 침실 문이 열리는 순간 서은주는 눈을 떴다.어둠이 내려앉은 밤,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든 달빛이 실내를 은은히 밝혔다.덕분에 육강민의 날카로운 선들이 한결 부드러워졌다.“내가 깨웠나?”그는 외투를 벗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침대 곁으로 다가와 서은주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씻고 올게.”잠시 후, 육강민은 침대에 누워 서은주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왜 갑자기 온 거예요?”“네가 보고 싶다고 해서.”“제가 언제요?”“갑자기 전화한 게, 보고 싶어서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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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육강민이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네가 나한테 준 건, 공포뿐이다.”육강민은 서은주 곁으로 다가갔다.“먼저 씻고 와. 여기는 내가 정리할게.”“할 수 있겠어요?”“나 못 믿어?”서은주는 가볍게 웃었다. 함께 살면서 늘 집안일은 자신이 맡아 했기에, 육강민이 과연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내가 회사 맡기 전엔 뭐 했는지 벌써 잊은 거 아니지?”육강민은 노련한 움직임으로 방주헌의 졸작을 깔끔하게 버렸다.서은주는 문득 기억해 냈다. 육강민은 군 생활을 했던 터라 생활 능력이 엉망일 리는 없었다.아니나 다를까, 육강민은 네 가지 반찬과 국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고, 비주얼은 나쁘지 않았지만, 맛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형은 이제 주방에 들어가면 안 돼. 남이 한 요리엔 돈이 들지만, 형이 하면 목숨을 걸어야 할 판이야.”방주헌의 불만 어린 목소리에 서은주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육강민이 서은주의 눈치를 살폈다.“많이 별로야?”“아니, 괜찮아요.”훌륭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방주헌은 할 말을 잃었다.사랑하면 콩깍지가 씌인다고는 해도, 이 정도면 눈 뜨고 거짓말하는 수준이었다. “민찬이는 어때?”방주헌이 육민찬을 향해 물었다.녀석은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밥만 먹었다.“밥맛은 괜찮아요.”그러자 방주헌이 빵 터졌다.“밥은 내가 한 거거든!”육강민 얼굴이 어두워졌다.식사 자리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서은주는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었다.육강민이 직접 요리를 했다는 사실이 의외였고,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심지어 설거지를 하면서도 서은주는 멍하니 있었다.“뭐 생각해?”육강민이 서은주를 보고 물었다.“당신이 요리를 할 줄은 몰랐어요.”서은주는 고개를 숙이고 설거지를 계속했다.“우리가 결혼하면, 모든 걸 다 네가 할 수는 없어.”육강민이 서은주의 허리를 감싸며 입술을 내렸다. “보는 눈도 있는데.”서은주는 또 방주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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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서은주는 임신 테스트기를 손에 쥔 채, 얼마나 멍하니 있었는지 자신도 몰랐다.“이모? 뭐해?”그러다 육민찬의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서은주는 얼른 정신을 차리고 테스트기를 내팽개쳤다.그리고 이내 웃으며 녀석을 바라보았다.“생각 좀 하고 있었어.”“아빠가 이모도 함께 경성에 간다고 했는데 진짜야?”녀석은 그 소식을 듣고 나서부터 계속 신이 나 있었다.서은주는 기대에 찬 녀석의 모습에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그럼, 우리랑 계속 같이 사는 거지?”육민찬이 다시 물었다.“그건…”서은주는 선뜻 답할 수 없었다.배 속의 아이가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머릿속은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뭐 아니어도 괜찮아. 경성에만 있으면 이모가 민찬이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잖아.”육민찬은 아닌 척했지만 사실은 서은주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그래.”서은주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집엔 텃밭도 있고, 분수도 있고, 미끄럼틀도 있고, 엄청 큰 마당도 있어!”육민찬은 두 팔을 벌려 크기를 설명하듯 휘저으며, 서은주를 어떻게든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서은주는 그저 웃으며 녀석을 바라볼 뿐이었다.그 모습에 육민찬은 조금 부끄러워졌다.“이모, 너무 빤히 보면 어떡해!”“너 진짜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서은주는 녀석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얼굴이 빨개진 육민찬은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육강민은 오늘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회식 때문에 저녁은 함께하지 않았다.서은주는 육민찬을 재우고 나서야 안방으로 돌아왔다.작은 생명이 손에 닿자, 서은주의 마음은 다시 복잡해졌고 쉬이 잠에 들지도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옆자리가 조금 내려앉는 느낌이 들더니, 서은주의 몸이 익숙한 품에 안겼다.은은한 단향에 담배 냄새가 살짝 섞여 있었다.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자, 서은주는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었다.“왜 그래?”육강민이 품속의 서은주를 내려다봤다.“담배 피웠어요?”“고작 한 대 피웠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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