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육강민은 그녀를 곤란하게 하지 않았다.그는 사건 경위조차 묻지 않은 채, 절차를 마무리하고 함께 파출소를 나섰다.“고맙습니다.”“타.”그는 여전히 차갑고 무뚝뚝했다.“괜찮습니다. 전 택시 타고 갈게요.”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조용히 기다렸다.방금 자신을 도와준 것 때문에 잠시 고민하던 서은주는 결국 그의 차에 올랐다.그렇게 병원에 도착한 서은주는 여러 검사를 받았다.의사는 며칠 입원해 경과를 지켜보라고 했고, 뒤통수를 세게 부딪친 만큼 며칠 뒤 재검이 필요하다고 했다.간호사가 그녀의 상처를 처리하는 동안, 육강민은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다.종아리에는 멍이 들고, 양쪽 팔꿈치는 바닥에 쓸려 살갗이 까졌다.소독약이 닿을 때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이를 꽉 물며 고통을 삼켰다.연약한데, 또 고집스럽다. 그 모순이 이상할 만큼 사람 마음을 건드렸다.간호사가 나가고 육강민은 가까이 다가왔다.“안 아파?”서은주는 답하지 않았다.“아프다고 떼를 쓰는 아이한테만 사탕이 주어지는 법이지.” 그러자 서은주는 가볍게 조소를 터뜨렸다.“모든 아이가 우는 만큼 보상을 받는 건 아니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때, 눈이 퉁퉁 부어오를 만큼 울어보아도 사람들은 귀찮다고만 생각할 뿐이죠.”어릴 적부터 타인의 기대에 살아온 그녀였기에 냉정한 현실을 알고 있었다. 육강민이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치켜 올렸다.거친 손끝이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가볍게 스친다.그가 몸을 숙이자, 둘 사이 거리는 단숨에 좁혀졌고, 그의 숨결이 뺨을 스쳤다.“고집이 너무 세면 손해만 볼 뿐이지.”서은주는 가문의 위기로 궁지에 몰려 있었다.그에게 거절당한 적이 있음에도 그녀는 다시 한번 희망을 걸어 보고 싶었다. “제가 조금만 부드러워지면, 저를 신경 써줄 건가요?”“얼마나?”육강민의 눈에 흥미가 스쳤다.서은주는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미숙했던 그녀는 얼굴이 발그스름해졌고 살짝 감긴 눈 위 속눈썹은 미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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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육강민에게는 친형이 하나 있을 뿐, 결혼도 안 했고, 아이도 없었다.다만 집안 어른이 딸을 유독 예뻐했기에 육가희를 편애한 탓에 세간에서 불리는 ‘육씨 가문의 공주님’이라는 호칭도 사실상 명분뿐이었다.육가희는 버릇없고 오만했으며,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너무나 착하고 여린 서은주가 상대하기엔 여러모로 버거운 상대였다. “가희가 네가 먼저 은주를 불러낸 거지.”육강민의 차가운 확신에 육가희는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었다.“진백현은 약혼까지 한 몸이지만 너와 얽혀 있어. 네가 일부러 그놈의 약혼녀를 불러냈으면서 상대를 고소하겠다니 스스로가 너무 뻔뻔하단 생각은 안 해본 거냐?”그의 눈빛은 서늘했다.“입밖으로 내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모르는 게 아니다. 네 행동에 가문의 명성도 달렸으니 적당히 해.” 육가희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다.그때, 노크 소리가 들리고 진백현이 들어왔다. 육강민을 본 그가 공손히 인사를 올렸지만, 육강민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육가희에게 휴식 잘 하라는 말만 남기고 그대로 떠났다.그 무심함이 진백현은 오히려 모욕적이었다.진백현의 얼굴엔 순간 굴욕이 스쳤다.육씨 가문은 경성에서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최상위 명문가. 육강민 주위에 모이는 사람들 또한 상권 집안의 자제들뿐이라, 당연히 그가 눈에 찰 리 없었다. 진백현은 자신을 깔보는 모든 인간들이 후회하도록 반드시 성공하겠노라 다짐했다.그는 다시 표정을 다잡고 육가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입원 절차는 다 마쳤어요.”“흐…흑……”“왜 그래요?”“작은 아빠 말이 맞아요. 은주 씨랑 약혼한 백현씨와 이러고 있는 건 저이니, 제가 나쁜 년이죠. 그러니까 이런 일을 당해도 당연한 거예요.”“정말 그 사람이 가희 씨를 밀친 거예요?”진백현이 거듭 묻자, 육가희는 더 크게 훌쩍이며 말했다. “작은 아빠도 그 사람을 싸고도는 마당에 제가 잘못한 거죠. 뭐.”진백현은 그녀를 품에 안으며 다독이기 바빴다.**서은주는 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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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서은주는 급히 집으로 돌아왔다.거실엔 서진우 부부가 앉아 있었고, 그 맞은편엔 스물다섯, 여섯 정도 되어 보이는 젊은 여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언제 온 거야?”그녀는 서진우와 이순옥의 외동딸, 서미진이다.서은주보다는 한 살 위였고 해외에서 디자인 전공 중이었다.“아빠가 네 약혼남 때문에 병원에 실려 갔다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어야지.”서미진은 한껏 비꼬며 말했다.“남자 하나 제대로 붙잡질 못하니, 참 한심하다.”“서미진, 그만 해.”이순옥은 인상을 찌푸렸고 곧장 서은주 쪽으로 다가와 걱정스레 물었다.“이 상처들은 어떻게 된 거야?”“아무것도 아니에요.”서은주는 억지로 웃어 보였다.“아까는 무슨 일 있었어요?”“너 되게 뻔뻔해졌구나.”서미진이 다시 끼어들더니, 테이블 위에 사진들을 그녀의 얼굴에 던져버렸다.“직접 봐.”사진은 서은주의 얼굴을 스치며 바닥에 흩어졌다.술자리에 끌려갔던 그날, 무릎 꿇고 술을 따르는 서은주의 치욕스러운 모습들이 담겨 있는 사진들이었다.다른 사람은 모두 모자이크 처리되었고 오직 그녀의 얼굴만 적나라하게 선명했다.“이 집에서 풍족하게 살았으면서 뭐가 부족해서 밖에서 이러고 다니는 거야?”서미진의 눈엔 경멸로 가득했다.“진백현이 널 안 보는 이유가 다 있었던 거지.”“아마 강성에 다 펴졌을 거야. 나는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니까. 스스로 천해지기로 작정한 거야?”“서미진!”아무 말 없던 서진우가 버럭 소리쳤다.“아빠.”서미진은 금세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잘못한 건 제가 아니라 얘잖아요. 집안 망신은 얘가 시킨 건데, 왜 저한테 화내요? 처음부터 입양 같은 건 하지 말아야 했어요. 차라리 강아지를 키워도 이보단 나았을 테죠.”“은주는 네 동생이야. 그만하지 못해!”이순옥은 단호하게 말했다.“사촌 동생일 뿐이죠.”“너는 방으로 올라가 쉬거라.”서진우가 명령했다.“진짜 누가 친자식인지 모르겠네요.” 서미진은 투덜거리며 계단을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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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서은주의 사건은 여전히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고, 결국 지역 연예판 1면까지 올랐다.비록 가명이었지만, 다들 누군지 알고 있었다.병원에 재검받으러 갔을 즈음엔, 소란은 잠시 수그러든 듯했다.“최근 두통은 있나요?”“가끔요.”많은 일들이 있었으니, 머리가 아픈 건 당연했다.“후두부에 멍이 크게 잡혔으니, 휴식을 충분히 취해야 합니다.”“알겠습니다.”병원을 막 나서려는데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밀며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진백현 씨와 약혼 상태인데도 술자리에 나갔다는 건… 정말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입니까?”“너무 뻔뻔한 건 아니신지요?”“약혼 중에 몇 명을 상대하신 거죠?”……서은주는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그러다 퍽— 달걀 하나가 얼굴에 터졌고, 기자들은 놓칠세라 셔터를 마구 눌렀다.서은주는 급히 기자들을 밀치고 병원 밖으로 달렸다.그때, 차 한 대가 급히 멈춰 섰고, 차창이 내려졌다.육강민이 있었다.“타.”감히 거절할 수 없는 그의 차가운 목소리와 쫓아오는 기자무리들 때문에 서은주는 재빨리 차에 올라탔다.그렇게 빠르게 달리던 차가 신호등에 멈춰 섰을 때, 육강민은 글러브박스에서 어린이용 물티슈 한 팩을 꺼내 건넸다.“닦아.”“감사합니다.”기자들에게 둘러싸이고 달걀을 맞은 것도 처음이라 서은주는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다.차는 교통체증에 걸려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깨끗이 닦은 건가?”육강민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어디 봐봐.”육강민이 다시 한 장을 더 꺼내더니, 몸을 기울여 그녀의 얼굴을 직접 닦아주었다.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가까이 다가온 육강민에 서은주는 어색해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녀의 고개를 잡고 있어 꼼짝할 수 없었다.“왜 피하지 않았어?”“겨를이 없었어요.” 서은주는 씁쓸하게 웃었다.달걀 맞는 날이 올 줄은 그녀도 몰랐던 것이다.“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병원 근처에서 일 보셨어요?”“아니.”“그럼…”“그쪽을 기다리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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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 의지할 곳 없었던 서은주는 늘 눈치를 보며 살아왔다.아무도 그녀가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그는 처음으로 그녀의 안위를 물어봐 준 사람이었다.“집까지 바래다줄까?” “지금은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진백현의 압박은 계속되고, 서씨 가문은 더는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서진우는 여기저기서 자금을 구하고 있었고 서미진 역시 친구들에게 연락했지만, 이미 내려앉는 집안을 도우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서미진은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돌아와 서은주에게 화풀이했다.처음부터 그녀의 집은 없었다. **차는 교외의 한적한 공터에 멈춰 섰다.육강민이 담배를 꺼내려던 순간, 서은주의 휴대폰이 울렸다.진백현이었다.육강민은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렸다. 자리를 비켜준 것이다.억울함을 당하면서도 밖으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녀가 너무나 안쓰러워 그녀를 도울까도 했었지만, 지금 상황은 그가 자금을 보낸다 해도, 당장의 위기만 해결할 수 있을 뿐, 이후의 문제는 계속될 것이 분명했다.그가 자리를 비운 후, 서은주는 전화를 받았다.목소리는 힘이 없었다.“여보세요.”“참 볼만하더라. 달걀까지 맞고, 그게 또 찍혔더라?”진백현의 목소리는 조롱으로 젖어 있었다.“네 덕분이지.”사진과 영상들이 순식간에 퍼진 건, 누군가 뒤에서 일부러 밀어붙인 것이다.진백현 외에 또 누가 있을까?육가희를 위해, 그녀를 완전히 망가뜨리려는 것, 이건 그가 원하는 바였다.진백현의 냉소가 또다시 들렸다.“가희만 건드리지 않았어도, 난 이렇게까진 안 했어. 이제 결정해야지?”“뭘?” 서은주는 가볍게 웃었다.“서씨 가문과 함께 구정물 속에서 썩어갈지 아님 나와 함께 할지 말이야. 넌 지금 노리개처럼 재미만 보고 버려진 신세라는 걸 잊지 마. 하지만 내가 받아주겠어. 이런 나에게 고마워해야 마땅하지 않아?”“진짜… 역겹다.”“서은주, 마지막 기회야.”“꿈 깨.”“좋아. 그럼, 아주 끝까지 가보자. 그때 가서 손이고 발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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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서은주가 차에서 내렸을 때, 육강민은 한 손에 담배를, 다른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그 역시 방금 올라온 파혼 영상을 본 듯했다.흐릿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너머로 드러난 그의 선명한 이목구비, 하얀 셔츠에 검은 바지, 세련됨 그 자체였다.눈가가 붉어진 서은주의 모습은 가여운 새끼 고양이 같았다. “담배 하나만 빌릴 수 있을까요?”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자.”그는 담배와 라이터를 건넸다.서은주는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길게 늘어진 머리를 뒤로 넘겼다. 라이터가 켜지는 순간, 그녀의 예쁜 얼굴 위로 불빛이 스며들었다. 피부가 약해 며칠이 지났음에도 아직 몸 여기저기에 멍이 남아 있었다.불빛 속에서 그녀의 여림이 이상하리만큼 매혹적이었다.그녀에게는 첫 담배였다.너무 세게 빨아들인 탓에 거센 기침을 했고 결국 눈물까지 흘렸다.“피우지도 못하면서 흉내 냈던 거군.”육강민이 작은 웃음을 지었다.“담배가 고통을 달래준다 하지 않았던가요?”“진백현이 그리도 좋은가?”“아니에요"“계단에서 굴러도 안 울더니 파혼당했다고 마음이 아픈 거야?”“소중하게 쌓아 온 제 감정이 하찮게 버려져서 속상한 거예요.”…육강민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그가 바라보는 눈빛은 뜨겁고도 명확했다.그의 손짓에 서은주가 앞으로 살짝 다가갔고 그 순간, 커다란 손이 그녀를 끌어당겼다.육강민은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저돌적인 키스와 함께 담배 향이 강하게 밀려와 서은주는 숨이 턱 막혔지만 갓 빚은 술처럼 달고 유혹적이었다. “담배 맛 느껴져?”“…네.”서은주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통증은 가라앉았나?”담배가 상처를 덜어주는지는 모르겠지만 육강민의 키스는 충분히 아픔을 덮어버렸다.서은주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커다란 손이 조심스레 계단에서 굴러 다친 곳으로 이동했다.“여긴 아직 아파?”“아파요.”육강민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다음 순간, 그의 뜨거운 숨결이, 서은주의 귓불을 스치며 뜨겁게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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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서은주는 순간 멍하니 굳어버렸고 그런 그녀를 서미진은 위아래로 유심히 훑었다. ‘이 촌스러운 년이, 육강민을? 그럴 능력이 있기나 해?’서은주는 씁쓸하게 웃었다.“운 좋게 한 번 뵌 적은 있지만, 너무 높은 분이라 제가 감히 다가갈 수도 없어요. 게다가 육가희의 작은 아버지이기도 해서, 제가 간청한다고 해도 쳐다봐 주시지도 않을 거예요.”그러자 서미진이 비웃듯 코를 찡긋했다.“그래도 주제 파악은 하고 있나 보네.”서진우는 전 술자리에서, 육강민이 서은주를 도와줬다는 소식을 듣었기에 그사이를 중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그 길도 막힌 듯했다.한편, 진백현은 계속해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그 후로 한동안, 서은주는 육강민을 다시 볼 수 없었다.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그가 원하지 않는 이상, 자신은 그의 세계를 흔들 수는 없었다. 진백현의 압박 속에서 서씨 가문은 이제 막다른 길로 몰렸다.진백현을 직접 찾아갔던 서미진은 회사 로비에서 경비원에게 쫓겨났고, 분노로 얼굴이 새파래져 집으로 돌아왔다. “진백현 그 죽일 놈이 경호원까지 시켜서 나를 내쫓다니! 우리가 없었으면 지금쯤 길바닥에서 헤맸을 인간이! 은혜도 모르는 놈 같으니라고!”“그리 욕한들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이냐!”서진우는 초췌한 얼굴로 말했다.서미진의 분노는 다시 서은주를 향했다. “넌 참 덤덤하구나? 정말 정을 붙일 수가 없는 애란 말이지.”입술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서은주의 모습이 서미진은 가장 싫었다.소귀에 경 읽듯 자신만 힘을 빼고 있을 뿐, 상대는 아무런 타격감이 없었기 때문이다.서은주가 그녀의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서미진는 그녀가 탐탁지 않았다.외동이였던 자신에게 감히 비교하려는 그녀의 존재가 너무나 혐오스러웠다.“은주는 네 동생이잖아!”이숙영이 눈살을 찌푸렸다.“동생? 웃기지 마요. 그동안 밥 먹이고 재워줬더니, 집안이 무너지게 생겼는데도 남 일처럼 조용하잖아요.”“그만하라고 했다!”이순옥은 단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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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이순옥은 웃으며 물었다.“지난번 일이라니, 무슨 일 있었어요?”“한 가족 아니냐. 아직도 삼촌한테 화난 거 아니겠지?”서진우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서진우는 그녀를 키워 준 사람이었다. 이쯤 자세를 낮추는 서진우에 무엇을 더 따질 수 있을까?서진우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이미 지난 일이죠.”“미진이가 돌아왔으니, 우리 가족이 오랜만에 제대로 모였구나. 너도 당분간은 일도 없으니, 오늘은 좀 마시거라.” 서진우는 직접 그녀의 술잔에 레드 와인을 가득 채웠다.네 사람의 술잔이 부딪치고 서진우는10여 년 전 창업의 어려움을 시작으로 서은주의 친부모 이야기까지 꺼냈지만, 그녀는 그저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은주야, 그동안 삼촌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너그러이 이해해주렴.”최근 사건들이 너무 많았는지, 서진우는 감회가 남달라 보였다.서은주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저를 입양해 주시고 모든 걸 챙겨주신 것에 전 한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그래.”서진우도 미소를 지었다.시간이 조금 흐르자, 서은주는 머리가 갑자기 어지러웠다.그녀는 겨우 반 잔밖에 마시지 않았다.“화장실 좀 다녀올게요.”서은주는 찬물을 끼얹으며 정신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다리는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웠다.이건 술 때문이 아니었다.약을 탄 느낌이었다.누가?혹시…?차가운 기운이 발끝에서 사지 구석구석으로 퍼졌다.벽을 짚고 버티며 룸 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없었다.최악의 의심이 단숨에 현실이 되는 순간, 그녀의 손발은 얼어붙듯 굳어버렸다.그때, 뒤에서 익숙하고도 기분 나쁜 목소리가 들렸다.“오랜만이에요.”고철주였다!그녀를 팔아넘긴 전적이 있었던 서진우이기에 백번 이해할 수 있다지만 외숙모는?그렇다면 그녀도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걸까?서은주는 숨이 턱 막혀 왔다.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서은주는 심장이 그대로 바닥에 내팽겨쳐진 듯 산산이 부서지는 듯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가슴을 움켜잡았다. 뒤에서 고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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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그동안 쌓인 감정 때문에, 서은주는 진백현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와 주길 바라고 있었다.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됐다. 그저 문만 열면, 고사장은 감히 함부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5년이란 세월, 결국…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서씨 집안까지도.남자의 더러운 손이 그녀 몸 위를 더듬고 올라갔고,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눈앞의 모든 것이 선명하면서도 흐릿하게 일렁였다. 그녀는 자신의 옷이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몸부림칠 힘이 없었다.입술이 떨렸다.지금 그녀는 마치 도마 위의 물고기 같았다.누군가 마음대로 다루어도, 몸과 마음이 찢기고 피가 흥건하게 흐른다 해도 아무도 그녀를 걱정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너무나도 억울했다.도대체 뭘 잘못한 거지?왜 이토록 잔인하게 그녀를 밀어붙이는 걸까?한편,진백현은 육가희를 따라 룸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육강민의 정면에 앉았지만, 표정은 어딘가 멍했고, 머릿속에는 서은주가 자신에게 보냈던 간절한 눈빛으로 가득했다. 순해 보이나 절대 굽히지 않는 서은주. 그 교만함이 꺾이지 않는 한 절대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고철주 같은 인간은 그녀의 오만을 부숴놓기에 딱 맞았다.그는 그저 기다리면 된다.조금만 잠자코 있다가 구해주는 척 나타나면 그녀는 고마워하며 매달릴 것이었다.“신경 쓰이는 일이라도 있나 보군.”육강민의 담담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백현 씨!”육가희가 진백현의 팔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왜 그래요? 작은 아빠가 말하고 있잖아요.”“죄송합니다. 잠깐 생각할 게 있었습니다.”“그렇다면 그 일부터 처리하지. 나는 가봐야겠어.”육강민의 목소리가 차갑게 변했다.“이만 일어나시죠.”그는 함께 있던 어르신께 말했다.육강민이 떠나는 걸 바라보던 육가회가 발을 동동 구르며 진백현을 질책했다.“작은 아빠와 어렵게 잡은 자리였는데 왜 그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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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세게 걷어차인 고철주는 뒤쪽 의자에 여지없이 부딪혔다.고통에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웅크렸다.“윽—”얼굴이 하얗게 질린 고철주는 심한 통증이 몸을 옥죄어 고통스러운 신음을 연신 뱉을 뿐이었다. 그 힘은 실로 뼈마저 으스러뜨릴 듯한 놀라운 위력이었다. 그는 이번에도 육강민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담담한 그의 시선 속에는 서늘한 압박이 서려있었다.“내가 천국을 맛보게 해드려?”순간 겁에 질린 고철주는 식은땀이 몸 전체를 적셨다.육강민은 서은주를 바라봤다.“일어날 수 있겠어?”서은주는 고개를 저었다.곧이어, 겉옷으로 감싸진 그녀의 몸이 들리더니 그의 은은한 백단 향이 그녀를 포근히 에워쌌다.육강민이 그녀를 안고 나가려던 순간, 서은주가 힘겹게 입술을 뗐다.“영상…”그녀의 말에 즉시 룸을 살피던 육강민은 구석에 설치된 휴대폰을 발견했다.그는 서은주를 의자 위에 내려놓고, 휴대폰을 집어 녹화를 종료했다.그리고 고사장을 힐끗 봤다.바닥을 기던 고철주는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그러자 육강민이 그의 손을 가차 없이 짓밟았다.“악—!”비명 소리와 함께 묵직한 고통이 밀려왔다.“육 대표님...”육강민은 덤덤히 그저 그를 내려다보았다.날카로운 그의 눈빛은 너무나 차가워 간담이 서늘했다.“영상은 이게 다야? 클라우드에 동기화된 건 없나?”고사장은 고통스러워하며,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해?”육강민은 천천히 몸을 숙이며, 차분히 다가갔다.날카로운 눈빛이 그의 목덜미 위에 닿았다.고철주가 만약 거짓말을 한다면 자신의 목을 날려버리기라도 할 것 같은 위협을 느꼈다.“이게 전부입니다. 확실합니다.”고사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육강민의 발에 힘이 더 실리자, 고통을 호소하는 고사장의 비명소리에 서은주는 심장이 쿵쾅거렸다.그제야 그녀는, 왜 경성의 모든 이들이 육강민 앞에서 벌벌 떨 수밖에 없는지 어렴풋이 깨달았다.그는 한치의 자비도 없는 냉혈한이었다.일에 있어서만 칼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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