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91 - Chapter 100

100 Chapters

제91화

경매가 끝나자, 육강민은 이어질 만찬에 참석하지 않을 예정이라는 소식에 인맥을 트려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명함을 내밀며 다가왔다. 서은주는 이런 분위기가 영 익숙하지도 않았고, 솔직히 말해 지루했다.“피곤해?”육강민이 고개를 기울여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괜찮아요.”“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어. 금방 끝날 테니까.”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서은주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키스를 받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원래도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그 모습이 꽃처럼 화사하고도 눈부셨다.주변 사람들은 그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처음으로 이런 모습을 보게 된 진백현은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 서은주는 자신의 여자였는데 말이다.경매장을 빠져나와 한쪽 창가에 기댄 서은주는 그제야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드레스를 입고 있어 배에 바짝 힘을 주고 있어 너무 힘들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미간을 살짝 접은 그 모습은 햇살 아래 일광욕을 하는 고양이처럼 나른했다.“내가 널 너무 얕봤지. 이렇게 진짜로 육강민한테까지 붙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은주가 고개를 돌리자, 진백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서씨 집안 파티에서도 널 감싸주더니, 이런 자리에까지 데리고 다니는 걸 보니, 침대에서 꽤 잘 모셨나 보지?”진백현의 말투에는 분노와 수치심이 뒤엉켜 있었다.육강민에게 철저히 놀아나 회사 재무에 큰 타격을 입은 것도 모자라, 너무나도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하는 것은 사람을 무너뜨리고도 모자라 자존심까지 짓밟는 것이었다. 억울함과 원망이 가슴속에서 들끓어 입을 여는 순간 날카로운 칼날이 되었다. 서은주는 담담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웃었고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 몸을 돌리려 했다.그 순간, 진백현이 성큼 다가와 길을 막아섰다.“약혼 5년, 나를 사랑한 것도 5년이잖아. 이렇게 빨리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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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지난번에 은주가 병원에 갔을 때, 그 자리에 너도 있었지? 그리고 손까지 댔고.”육강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진백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은주가 일러바친 겁니까?”육강민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진백현은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서은주 말은 전부 믿으시면 안 됩니다. 그 여자는 예전에 우리 집안이 어려워진 틈 타 저와 약혼을 강행했던 인간입니다. 얼마나 계산적인 여자인지 모르니, 절대 속으시면 안 됩니다.”“저희 5년이나 만났습니다. 저만큼 그녀를 잘 아는 사람도 없습니다.”육강민은 고개를 숙여 소매 단추를 풀더니, 팔꿈치까지 말아 올렸다.평소의 절제된 분위기는 사라지고, 대신 섬뜩할 정도로 거친 기운이 배어 나왔다.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진백현을 바라봤다.시선이 마주친 순간, 진백현은 육강민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에 압도당해 질식할 것만 같았다.그리고 다음 순간, 육강민의 주먹이 그대로 날아왔다.진백현은 미처 반응도 하지 못한 채 뒤쪽 유리창에 처박혔다.군 복무로 다져진 육강민의 주먹은 빠르고, 정확했고, 잔혹했다.진백현의 얼굴은 순식간에 부어올랐고, 눈은 충혈됐으며, 입꼬리가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왜 이러십니까!”이유도 모른 채 맞은 진백현은 분통이 터져 입가의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물었다.그를 내려다보는 육강민의 시선은 차갑고도 위압적이었다.기세로 완전히 눌려 반격도 못 한 형국이었다.“이건 은주 대신 날린 거다.”늘 정장 차림으로 칼날을 감춰왔던 육강민은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었다.진백현이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서은주, 참 대단하네요.”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육강민의 발이 다시 날아갔다.둔탁한 충격음과 함께 진백현은 뒤로 밀리며 바닥에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가슴을 부여잡고 몸을 웅크린 채, 복부에 밀려오는 통증에 얼굴이 고통으로 여지없이 일그러졌다.그 힘은 정말로 사람을 죽일 기세였다. 진백현은 몸을 가눌 힘조차 없었지만 육강민이 또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시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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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화

서은주는 그 말에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애들도 싸우면 안 된다는 건 아는데, 당신은 정말……”그때 육강민이 손을 뻗어, 아까부터 붉게 올라와 있던 그녀의 팔을 살며시 쓰다듬었다.진백현이 거칠게 움켜잡았던 자리였다.“아프진 않아?”“괜찮아요. 원래 피부가 좀 예민해서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자국이 남아요.”육강민이 몸을 더 가까이 기울이자,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가를 스쳤다.“그래서 나도 매번 힘 조절하느라 힘들잖아.”서은주는 그가 화제를 그렇게 돌릴 줄은 몰랐다.얼굴이 확 붉어진 서은주는 얼른 고개를 돌려 버렸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육지성은 백미러로 두 사람을 힐끗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제발 좀 솔로도 살길은 줘야지.’예전엔 매일 야근이더니, 요즘은 매일같이 눈꼴 시린 애정행각에 시달리고 있었으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큰 피해를 입고 있었다.그들이 보살핌센터에 도착하기도 전에, 육강민의 휴대폰이 진동했고. 전화받자마자 육강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무슨 일이에요?” 서은주가 물었다.“민찬이가 또 싸웠어.”지난번, 그가 경성에 없을 때, 육민찬은 한 차례 싸움을 벌인 적이 있었다.이유를 물어도 끝내 말하지 않았고, 다시는 함부로 주먹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일단 화부터 내지 말아요. 민찬이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예요.”서은주가 달랬지만, 육강민의 미간에 서린 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보살핌 센터에 도착하자, 그들은 곧장 교무실로 향했다.그곳에는 교사와 육민찬, 그리고 남자아이 두 명과 들의 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두 아이는 하늘이 무너질 듯 울부짖고 있었고, 부모들이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반면 육민찬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고집스러운 얼굴로 서 있었다.육강민과 서은주는 지나치게 격식을 갖춘 차림이라 모두들 순간 멈칫했다. “육민찬, 또 싸운 거야?”육강민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갑게 물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아이는 아빠를 보자, 슬그머니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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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화

한바탕 엉엉 울고 나서야, 육민찬은 겨우 진정을 되찾았다.서은주는 반쯤 몸을 낮춰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손수건으로 녀석의 눈물을 닦아주었다.“우리 민찬이, 제일 착하고 의젓한 상남자지? 절대 아무 이유도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애가 아니지. 그렇지?”육민찬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이모한테 왜 싸운 건지 말해줄래?”“걔들이 엄마 없다고, 아빠가 주워 온 애라고, 나보고 잡종이래!”서은주는 순간 말을 잃었다.그 기분을 그녀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어릴 적 남의 집에 얹혀 살며, 재수 없다고 부모 잡아먹었다고 수도 없이 손가락질받아 왔었다.“민찬이가 잡종이야?”서은주가 조용히 물었다.“아니!”“엄마가 지금 곁에 없더라도, 민찬이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있다고 이모는 믿고 있어. 민찬이에겐 아빠도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있고...민찬이를 아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그런데 민찬이가 친구랑 싸우면 그 널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이 너무 아파. 그러길 바라는 거 아니지?”육민찬은 고개를 끄덕였다.“근데 아빠는 항상 내 잘못이라고만 해.” “아빠한테 이유를 말해줬어?”아이는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자, 일단 이모랑 돌아갈까?”육민찬은 고집스러운 표정으로 선뜻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서은주가 한참을 달래고 나서야, 아이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서은주는 육민찬의 손을 잡고 돌아가는 길에 육지성을 만났다. “지성 씨, 민찬이 얼굴 좀 씻겨주세요.”“알겠습니다.”육민찬를 보낸 뒤, 서은주는 교무실로 돌아갔다. 두 아이의 부모들이 육강민에게 병원에 가서 검사도 받아야겠다며 거칠게 요구하고 있었다. “당연히 검사해야죠. 그리고 민찬이도 사과할 겁니다.”서은주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말을 이었다.“그 전에, 이 아이들도 민찬이에게 사과해야 합니다.”서은주는 육강민에게 짧게 눈짓을 보냈다.자신에게 맡겨 보라는 신호였다.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겁니까?”부드러운 인상의 서은주를 만만하게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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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5화

아이의 울음소리에 주변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아까까지만 해도 고집스러울 정도로 당당하던 육민찬은 너무나 서럽게 운 탓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서은주는 녀석의 손을 잡고 두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사과해.”그때 한 학부모가 아이를 감싸며 나섰다.“아직 애잖아요. 철없이 한 말일 수도 있으니, 제가 대신 사과하면 안 될까요? 아이를 너무 몰아붙이지는 마시지요.”자신의 아이가 사과를 강요받는 상황에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 부모였다. “만약, 어머님 아이가 그런 말을 들었다면 과연 이렇게 관대하실 수 있을까요?”서은주의 반문에 상대는 말문이 막혔다.상관없는 남일 때는 가볍게 넘길 수 있어도, 막상 자신이 겪게 되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걸그 역시 알고 있었다.그러자 다른 학부모가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웃으며 끼어들었다.“애들한테 따지지 마시고, 이쯤에서 검사 비용만 보상하는 걸로 좋게 넘기면 안 될까요?”“안 됩니다.”서은주는 단호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육강민은 아이를 지키려는 그녀의 태도에 마음이 복잡하게 일렁였다.“참 융통성도 없네요. 서로 한 발씩 물러서면 좋잖아요.”한 학부모가 작게 중얼거렸다.“다섯 살이면 옳고 그름 정도는 배워야 할 나이예요. 어릴 때 사람 대접을 안 해주면, 커서도 사람답게 크지 못한다는 말 들어보셨잖아요?”그 자리에 있던 교사와 학무모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서은주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자, 결국 두 남자아이는 울먹이며 사과했다.그제야 육민찬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미안해.”너무 창피했던 탓인지, 두 학부모는 아이들과 함께 황급히 자리를 떴다.그들은 의료비 얘기도 꺼내지 못했다.“이제 좀 괜찮아? 아직도 서러워?”서은주는 허리를 굽혀 다시 한번 녀석의 얼굴을 닦아주었다.육민찬은 급하게 고개를 저었고, 그녀를 향해 활짝 웃기까지 했다.그 순간, 콧물 방울이 뽀글하고 튀어나왔다.육강민가 괜히 민망해졌다. 하지만 육민찬은 세상 다 가진 얼굴로 밝게 웃고 있었다.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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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6화

“….”육강민은 녀석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그저 손짓으로 다가오라고 했고 한참 망설이던 육민찬은 느릿느릿 그에게로 걸어왔다.육강민은 팔을 뻗어 녀석을 품에 안았고, 목소리도 한결 누그러졌다. “다친 데는 없어?”“없어요! 오늘 나 혼자서 둘을 상대했어요. 아빠가 가르친 대로 왼손으로 훅하고, 오른 쪽 다리로 날라차기!”오늘의 ‘일 대 이 대전’을 떠올린 녀석은 스스로가 상당히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침실에 있던 서은주는 부자 간의 대화를 듣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외모는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싸우고 나서 으스대는 모습만큼은 똑같았다.메이크업을 다 지웠을 즈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손리정이었다.“은주야, 진백현 그 호구가 십억도 아니고 몇천억을 들여서 땅을 낙찰받았대. 너무 흥분했는지 넘어지기까지 해서 얼굴이 퉁퉁 부었다더라. 아 진짜 웃겨 죽는 줄!”손리정은 숨넘어가도록 웃어댔다.“알아. 그 현장에 내가 있었거든.”“걔 진짜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 돈 주고 사서 수지가 맞겠어?”“함정에 걸린 거지.”“누구한테?”“누구겠어.”손리정이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나 이제부터 육강민 찐팬이야, 1호 팬이자 광팬. 너, 무조건 그 남자 잡아!”“신께 제발 두 분 백년해로할 수 있도록 비나이다!”“그만 좀 해.”서은주는 그저 웃으며 말을 잘랐다.“저녁에 나올래? 오늘 무슨 일 있었는지,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다음에. 애 데리고 온천 가기로 했거든.”손리정은 연신 한숨을 쉬며 의리보다 남자가 우선이라며 타박하면서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내가 준 거 꼭 챙겨 가. 아주 정신 못 차리게 만들란 말이다.”“….”서은주는 그제야 옷장에 숨겨둔 물건이 떠올랐다.저 상태로 두는 건 너무 위험했기에 당장 은신처를 옮겨야 했다.막 쇼핑백을 꺼내 드는 순간,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아직도 더 걸려?”기다리다 못한 녀석도 아빠를 재촉하며 함께 들어오려 했다. “금방 끝나요.”서은주는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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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7화

온천 리조트.오늘 육민찬은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탓에 유난히 서은주에게 들러붙어 있었다.하지만 온천에 몸을 담그고 나니, 금세 잠들어 버렸다.서은주는 우윳빛 온천에 몸을 담근 채 지난번 이곳에 왔을 때를 떠올렸다.그땐 육강민을 유혹하겠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모든 게 너무 많이 달라져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충분히 온천을 즐긴 서은주가 막 일어서려는데 발소리가 들려 급히 몸을 숨겼다. 머리만 살짝 내밀고 있는 그녀에게 가운을 걸친 육강민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왔어요?”“내 개인 온천인데, 내가 오면 안 되나?”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가운을 벗고 탕으로 들어왔다.그가 뭘 하려는지 서은주도 모를 리 없었다.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지만, 허리는 이미 단단한 팔에 붙잡혔다.육강민은 그녀의 턱을 들어 올리며 입을 맞췄다.천천히, 집요하게. 온갖 방법으로 그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여긴 안 돼요…”그녀의 목소리가 나른하게 떨렸다.뜨거운 물이 온몸을 감싸 심장이 빠르게 뛰고, 머리도 어질어질했다.그의 뜨거운 키스는 입술에서 시작해 귓가로 이어졌다. 육강민의 거친 숨소리가 끊임없이 그녀의 신경을 자극했다.뜨겁고, 관능적이면서도 애원하는 듯한 간절함도 섞여 있다.“은주야… 나 품어 줘. 응?”부탁 같기도, 유혹 같기도 한 그 떨림에 서은주는 입술을 꾹 깨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의 키스는 점점 더 거칠어졌다.탕 속에서 몸은 밀착돼 있었고, 스치기만 해도 불이 붙을 것 같았다.“은주야…”그는 계속해서 더욱 집요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그녀도 더는 버틸 수 없었다.서은주는 그의 품에 기대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예전의 그녀라면 이렇게 뻥 뚫린 공간에서 그를 받아들이는 일은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야외 온천, 주변은 지나치게 고요해서 그녀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올까 봐 이를 악물었다. 매미가 울어대고 무정한 나무숲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어 만물을 따스히 감싼다.오직 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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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서은주는 새벽부터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육강민이 손을 뻗어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니, 미열이 있는 듯했다.그는 곧바로 카운터로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직원이 해열제와 해열 패치를 가져다주었다.약은 독이 될 수도 있기에, 평소 육민찬이 아플 때도 웬만하면 약부터 쓰지 않는 편이었기에 우선 열만 내릴 수 있도록 패치를 붙였다. 힘없이 내려앉은 그녀의 눈이 육강민을 올려다봤다. 꼭 쓰다듬어 주길 바라는 새끼 고양이 같았다.“많이 아파?”“머리 아프고 온몸에 힘이 없어요.”가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애교가 살짝 묻어났다.“내가 지켜줄게.”그 말에 서은주는 안심한 듯 다시 눈을 감았다.육강민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그의 눈빛엔,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온기가 깃들어 있었다.원래도 몸이 연약했던 서은주는 결국 폭주하던 그를 감당할 수는 없었다.육강민 역시 스스로가 조금 지나쳤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오직 그녀만을 더 가까이 원했을 뿐, 그녀가 버텨낼 수 있을지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그럼에도 그녀는 육강민을 밀어내지 않았다.“은주야.”“네?”열이 오른 상태에서도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서은주는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앞으로 이렇게까지 착하게 굴지 마. 그러면 더 괴롭히고 싶어져.”“….”서은주는 대답 대신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열에 시달리던 서은주는 동이 틀 즈음에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이모 아파요?”일찍 일어난 육민찬은 서은주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침대 곁으로 다가왔다.통통한 손으로 어른 흉내를 내며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다시 자신의 이마도 만져봤다.“뜨겁지는 않은데요?”“열은 내렸어. 이제 막 잠든 거니까, 방해하지 마.”육강민이 당부했다.“나 방해한 적 없어요.”육민찬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매번 아빠가 이모 붙잡고 안 놔주잖아요!”육강민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이 녀석,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는 있는 거야?’“내가 이모랑 못 자는 것도 아빠 때문이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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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9화

“어때?”육강민이 몸을 기울여 이마를 맞대며 그녀의 체온을 가늠했다.“열은 다 내렸군.”“목 아파요…”서은주의 목소리는 이미 간 상태였다.“배 고프진 않아? 뭐라도 좀 먹을까?”육강민은 그녀에게 죽을 떠먹여 주려했다.육강민의 손길은 지나칠 만큼 다정하고 조심스러웠다.서은주는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돌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육강민은 군더더기 없이 능숙했다.서은주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숟가락은 이미 입가에 와 있었다.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그녀는 너무 어렸다.희미한 기억 속에서 그녀가 아플 때마다 어머니가 이렇게 죽을 떠먹여 주었다.멍하니 있는 그녀를 보며 육강민은 재촉 한마디 없이 그저 웃으며 말했다.“입 벌려야지.”서은주는 얌전히 입을 벌렸다.그녀에게 죽을 떠먹여 주고 있으면서도 육강민의 시선은 그녀의 입술에 고정돼 있었다.한 치의 숨김 없는 노골적인 시선에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두근 거렸다. 금방이라고 활활 타오를 것만 같은 그의 눈동자에 그녀는 숨마저 턱 막혀왔다.‘사람 잡아먹을 기세야.’“이 겁먹은 표정은 뭐지?”육강민은 그녀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가볍게 웃었다.“아니에요.”서은주는 괜히 강하게 부정했다. “걱정 마. 아무리 내가 짐승이어도, 아픈 사람한테까지 손대진 않아.”“……”죽 한 그릇 다 비운 후에도 서은준는 얼굴이 여전히 발그레했다.다시 열이 오르는 거 같았다.식사를 마친 뒤,육강민은 육민찬을 데리고 안 어린이 놀이시설로 갔다.서은주는 가톡을 열었다.손리정이 소개해 준 선배가 친구 신청을 수락했고 열 시간 전에 이미 여러개의 문자를 보내 왔다.그녀의 연구 방향과 희망 교수에 대해 묻는 내용이었다. 서은주도 답장을 보냈다.[죄송해요. 개인적인 일때문에 이제 확인했네요.][괜찮아요. 리정이한테 다 들었습니다.]서은주는 순간 멈칫했다.‘설마 또 쓸데없는 말을 한 건 아니겠지?’[제가 요즘 학술교류회때문에 강성에 와 있으니, 시간 되면 만나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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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0화

’어르신께서 워낙 많이 주셔서 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대표님.”놀이공원에서 나오는 길에 육강민은 아이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고, 서은주는 장미꽃 한 송이를 받았다.“이모, 꽃 받으니까 좋아?”요즘 육민찬은 서은주를 무척 따랐다.아빠와도 잘 어울리는 모습에 은근히 밀어주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응, 좋아. 꽃 받아본 거, 처음이야.””장미를 안은 그녀는 꽃보다 더 아름다웠다.육강민은 마치 누군가가 심장을 살짝 건드린 듯 마음이 살짝 아렸다.위미든으로 돌아온 뒤, 육강민은 육민찬과 함께 씻으러 갔고, 서은주는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녀의 허리는 이미 그의 품에 갇히고 말았다.그리고 반응할 틈도 없이 그가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여름 저녁노을이 주방을 가득 채웠다.서은주는 마음속에서도 잔잔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읍—”서은주가 그를 밀어냈다.“왜?”육강민이 그녀의 입꼬리를 가볍게 쪼아 물었다.“불편해?”“고개 들고 있는 게 힘들어요.”그는 키가 커서 키스할 때마다 그녀는 늘 고개가 꺾였고 오래 지속되다 보면 목이 뻐근해졌다.다음 순간, 서은주의 몸이 공중으로 들리고. 놀란 그녀가 짧게 숨을 들이마시는 사이, 차가운 조리대 위에 엉덩이가 닿았다.그녀는 그의 어깨에 의지한 채,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이 정도면 괜찮지?”서은주가 내려오려 하자, 그의 입술이 다시 서은주의 입술을 차지했다. “민찬이 나올 수도 있어요.”“벌써 잠들었어.”“아직 요리 중인데…”“내가 지금 먹고 있잖아.”“……”결국 서은주는 그를 당할 수 없었다.한바탕 사랑을 나눈 뒤, 서은주는 그의 품에 기대어 숨을 고르고 있었다.“민찬이랑 잠깐 경성에 다녀와야 올 거야.”그 말에 그녀의 몸이 확 굳는 게 느껴졌다. “언제 가요?”“내일 아침.”그는 고개를 숙여 다시 입술을 내렸다.“차는 두고 갈게. 너 이동할 때 편할 거야.”서은주는 고개만 끄덕일 뿐, 언제 돌아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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