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41 - Chapter 50

628 Chapters

제41화

서은주는 말을 끝내자마자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이대로 보내면 다시는 그녀를 붙잡지 못할 것 같은 초조함에 진백현은 즉시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그 힘이 워낙 세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서은주는 가볍게 냉소를 터뜨렸다. “아직 뭐 할 말이라도 남았어?”“넌 내가 좋다며? 그런데 바로 다른 남자와 몸을 섞어? 네 사랑이 그렇게 하찮은 거였어?”“어렸을 땐 눈 돌아가서, 한 번쯤은 쓰레기 같은 놈 좋아하기도 하잖아.” 진백현의 눈빛이 매섭게 변하더니 그녀의 손목을 쥔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여긴 병원이야. 내가 소리라도 지르면,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나랑 붙어 있다간 육씨 가문 문턱에라도 갈 수 있겠어?”그 말은 정확히 그의 급소를 찔렀다.이를 악문 진백현은 결국 그녀를 놓아주었다. “언젠가 반드시 후회할 거야.”“그거 알아? 스스로를 아끼지 않으면 그냥 썩은 곰팡이래. 내 눈엔 네가 딱 그 꼴이거든.”진백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평소엔 말없이 얌전하던 서은주에게서 이토록 날 선 말들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진백현은 그저 멀어져가는 서은주를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결국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그는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고, 곧장 피가 흘러나왔다.그는 곧장 육가희를 찾아갔고 그를 본 육가희는 그의 얼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얼굴이 왜 그래요? 누구한테 맞았어요? 손은 또 왜 이래…”“아무것도 아니에요.”이 모든 게 서은주 때문이라는 걸 진백현은 말할 수 없었다.하지만 육가희도 그 정도 눈치는 있었다.“혹시 서은주를 못 잊은 거예요?”“아니에요.”진백현은 급히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볼에 입을 맞췄다.“사람들이 보잖아요. 그만해요.”육가희는 얼굴을 붉히며 몸을 비틀었다.“싫어요.”“나 병원에서 막 퇴원했단 말이에요…”“살살 할게요.”엉겨 붙은 두 사람은 어느새 거실을 지나 침실에 도착했다.셔츠와 원피스는 바닥에서 뒹굴고 두 사람은 침대에서 서로를 탐했다.진백현은 육가희의 붉게 물든 얼굴을 바
Read more

제42화

진백현과 육가희는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침대 위에 엉겨 붙어 있었다.몸을 추스르고 비로소 비서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은 진백현은 그제야 육강민이 자신이 오래전부터 눈여겨보던 동쪽 구역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육강민이 마음만 먹으면 진백현은 게임 상대도 되지 않았다.성세 본사는 경성에 있는데, 왜 강성에서 땅을 사려는 걸까?“무슨 일 있어?”샤워를 마치고 나온 육가희가 그에게 매달리며 물었다.“가희 씨 작은 아빠께서 나를 영 탐탁지 않아 하시는 것 같아요.”“그럴 리가요. 작은 아빠는 누구한테나 차가워요.”“일부러 나를 찍어 누르려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육가희는 그저 웃어넘겼다.“지난번에 작은 아빠가 유 박사님을 모시고 식사하실 때, 제가 오빠를 인사시키려고 했는데 백현씨는 딴생각하고 있었잖아요. 다음 기회에 점수 따면 돼요.”진백현은 육강민을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대화를 합쳐도 열 문장도 되지 않는다.육강민은 그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이번엔 노골적으로 겨냥하는 걸 보면, 서은주가 일러바친 것이 틀림없었다.샤워를 마치고 스킨케어중이던 서은주는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휴대폰을 보았다.모르는 번호였다.“여보세요?”“침대에서 극진히도 모셨나 보네.”진백현의 목소리였다.“제대로 미친 거야?”밤늦게 전화를 걸어와서 빈정거리는 진백현에 서은주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받아쳤다.“그 남자는 널 가지고 놀다가 질리면, 바로 차버릴 거야.”“누구야?”막 샤워를 마친 육강민이 가운 차림으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물었다.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바퀴에 입을 맞췄다.“미친놈인 거 같아요.”서은주는 담담하게 답하고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진백현의 얼굴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는 그대로 휴대폰을 던져버렸다.“잘까?”육강민이 그녀의 귓가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었다.서은주도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아직 모든 게 능숙지 않은 그녀는 육강민의 장난스러운 손길을 버텨내지 못했고,
Read more

제43화

서은주는 두 사람일 거란 생각은 못 해 잠시 멍해졌다.반면 육가희는 육강민을 보자마자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서은주를 손가락질하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작은 아빠, 이 뻔뻔한 여자는 뭐예요?”“뻔뻔한?”육강민은 소파에 앉아 여유로운 태도로 다리를 꼬았다.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위압감 가득했다.“사실이잖아요.”“삿대질은 또 어디서 배워 먹은 거니?”“작은 아빠…”육가희는 즉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매달렸다.“여긴 내 집이다. 누굴 들이느냐는 내 권한이지, 너는 물론이고 가문에서도 훈수 둘 자격은 없어.”웃어른의 자세를 장착한 육강민은 그야말로 서늘한 권위 그 자체였다.육가희는 감히 반박도 못 했지만, 서은주 앞에서 체면을 구긴 터라 분하고 서러웠다.눈시울이 붉어진 그 모습이 가엽기는 했지만 육강민에게 통할 리 없었다.육강민은 여전히 냉담하고 단호했다. 서은주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결국 진백현이 나섰다.“가희 씨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성격이 급해서 그만…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난 지금 가희에게 말하고 있어. 우리 가문의 일에 외부인이 감히 끼어들어?”육강민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차갑고도 묵직했다.그 한마디에, 진백현의 얼굴은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다.진백현은 이렇게 대놓고 망신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작은 아빠…”육가희가 다급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덧붙였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냥 이 사람이 여기에 있는 게 너무 놀라워서 그런 거예요.”하지만 그 눈빛은 서은주를 뚫을 기세였다.“사과해.”“저보고 사과하라고요?”눈이 휘둥그레진 육가희는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가희 씨.”진백현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대로 굽히지 않는다면 더 험한 꼴을 당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계란 세례까지 맞은 주제에 어떻게 작은 아빠를 꼬신거지?육가희는 이를 악물고 서은주를 노려보았다.하지만 결국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죄송해요.”“괜찮아요. 저
Read more

제44화

“눈여겨보신 그 땅 말이에요. 그곳은 사실 백현 씨가 먼저 알아보고 있던 곳이고 회사에서 향후의 핵심 개발지로 잡아둔 곳이라, 그걸 따내려고 이미 인력도 예산도 꽤 투입한 상황이에요. 작은 아빠는 어차피 강성에서 사업 확장하실 계획도 없으시니 그 땅은 그냥 양보해 주시면 안 될까요?”육가희가 눈치를 보며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양보?”육강민이 눈썹을 살짝 올리며 진백현을 바라봤다.“내가 양보해야 하나?”남자는 곧 자존심이었다.진백현은 비굴하게 굽히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특히 서은주 앞에서는 더더욱.두 남자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부딪혔다.누가 먼저 고개를 숙이느냐의 싸움이었다.육가희는 급히 팔꿈치로 진백현을 툭 건드렸다.굽히려 하지 않는 진백현이 육가희는 이해 가지 않았다.결국 진백현은 주먹을 꽉 쥔 채, 이를 악물었다.“아닙니다.”육가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갑자기 바뀌는 흐름에 그녀는 어리둥절할 뿐이었다.반면, 육강민은 담담하게 웃었다.“배포가 있군. 원래 사업이란 건 실력으로 승부 보는 거지. 그렇지 않은가?”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백현을 하찮게 바라보는 육강민의 시선이 모든 걸 말해 주고 있었다. 소파에 걸터앉았을 뿐인데도 전장을 내려다보는 군주의 위압감 못지않았다.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그것 때문인가?”육강민이 시계를 흘끗 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작은 아빠…”육가희가 말끝을 흐리며 난처해했다.진백현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건지 그녀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중요한 순간에 허세 부린다고만 생각했다.육강민은 시계를 다시 확인했다.“점심시간이구나. 그럼, 다른 볼일은 없는 거지?”즉, 이제 가라는 뜻이었다.진백현의 체면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얼굴을 얻어맞은 듯 굳어졌다.더는 그 자리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진백현은 간신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럼,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진백현이 먼저 몸을 돌렸고, 육가희가 몇 마디 투덜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서은주는 주방에서 볶음요리를
Read more

제45화

진씨 가문이 기울어졌다고 해도, 누군가가 얼굴을 향해 물건을 던질 정도로 모욕당할 처지는 아니었다.하지만 화가 치밀어올라도 진백현은 결국 육씨 가문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했으니, 그저 화를 꾹꾹 삼킬 수밖에 없었다. 진백현은 허리를 굽혀 가방을 주워들었다.그러고는 육가희를 품에 안으며 달래기 시작했다.“폼 잡는 게 아니고 여자 등에 업혀 산다고 할까 봐 그랬어요. 난 내 힘으로, 내 실력으로 가희 씨한테 행복을 주고 싶었어요.”“정말이에요?”육가희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훑어보았다.“대표님은 원래도 나를 좋게 보지 않는데 내가 부탁까지 하면 더 무시할 거고. 난 가희씨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를 바라보는 육가희는 여전히 못 미더운 표정이었다. “문제는 왜 그 천한 년이 저기 있냐는 거예요!”“우리가 관여할 수는 있는 일이 아니에요.”“아니, 누군가는 할 수 있지요.”육가희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이미 뭔가 계산이 선 듯,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위미든.식사를 마친 뒤, 육강민은 서재에서 일을 처리하고 있었고, 서은주는 침실에서 낮잠을 청하고 있었다.그러다 침대 매트리스가 살짝 내려앉는 느낌이 들자, 서은주는 몸을 뒤척이며 자연스럽게 육강민의 품으로 파고들었다.고개만 숙여도 바로 입술이 맞닿는 거리였지만, 육강민은 서두르지 않았다.그의 따뜻한 손길이 그녀의 입가를 천천히 스쳤다.마치 그녀가 빠져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아니나 다를까 달아오른 서은주가 먼저 그에게 입을 맞춘 순간, 육강민은 바로 그녀를 삼킬 듯이 입술을 포개었다.부드럽고도 섬세한 움직임이 그녀의 몸 곳곳에 황홀을 흩뿌려 놓았다.조용한 침실에 서로의 거친 숨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기분 좋은 무직함에 짓눌린 채 그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은주야.”귓가에 닿는 목소리는 부드럽게 잠겨 있었다.“?”“너는 눈이… 참 예뻐.”서은주는 원래도 예쁜 눈을 가졌지만, 지금처럼 살짝 흐트러진
Read more

제46화

그는 몸을 살짝 틀어 서은주를 더욱 끌어당기고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내 허리는 네가 이미 알고 있잖아.”서은주의 얼굴은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엔젠가 육강민이 경성에 돌아가는 날에 두 사람의 관계도 정리할 생각이었다.그리고 바로 박사 과정 준비를 위해 학교 근처에 방을 얻을 계획이다.이러한 결심으로 서은주는 일부러 그의 비위를 맞출 이유도 없었다.각자 바쁘게 지냈기에 두 사람 관계는 아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서은주는 여러 ‘단톡방’에서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고, 예전 친구들과도 다시 연락이 닿았다.하루하루가 편안하고 여유로웠다.그 사이 서진우에게서 몇 차례 연락을 해왔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이순옥도 여러 통의 문자를 보냈다.여자 몸으로 혼자 지내면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걱정과, 서씨 가문은 언제나 그녀의 집이라는 말이었다.서미진의 SNS는 최근 꽤 많이 업데이트되어 있었다.대부분 친구들과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었다.보아하니, 이번 위기는 넘긴 듯했지만, 서은주는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그날 아침, 육강민은 출근 전 그녀에게 속삭였다.“점심엔 약속이 있고 저녁에 돌아오면 내가 괜찮은지 아닌지 확인 시켜줄게.”육강민은 항상 진지한 얼굴로 음담패설을 하는 재주가 있었다.서은주는 볼을 붉힌 채 그의 넥타이를 정리해 주고 문 앞까지 배웅했다.그가 떠나고 약 30분 뒤, 초인종이 울렸다.육강민 없었으니, 육지성은 아니었다.그녀는 도어스코프를 들여다봤지만 아무도 없었다.돌아서려는데 다시 울리는 초인종.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없다.한낮에 귀신?등줄기가 서늘해졌지만, 초인종은 계속 울리고 있었다.진백현도, 육가희도 이런 장난을 칠 리 없고, 누군가 장난을 친 건가? 아니면 벨이 고장 난 건가?잠시 망설였지만, 서은주는 결국 문을 열어보기로 했다. 거기엔 아이가 서 있었다. 다섯,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귀여운 헤어스타일에, 통통한 볼, 그리고 오른쪽 이마에는 반
Read more

제47화

육가희?진백현과 혼인을 파혼한 자신에게, 아직도 이토록 집착한다는 게 우습기도 했다.아직 현관에 서 있는 꼬마에게 서은주가 말했다. “들어와.”“슬리퍼 없어.”서은주는 피식 웃었다. 나이는 어린데, 요구 사항은 제법 많았다.집에 어린이용 슬리퍼가 없어, 육강민의 슬리퍼를 꺼내 건넸다.“아빠 건데 괜찮아?”“아빠 거?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뭐.”꼬마가 큰 슬리퍼를 신고 있는 모습은 조금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뭐 마실래?”“콜라. 얼음 가득.”“여긴 미지근한 우유밖에 없는데.”“안 마셔!”꼬마는 너무나 단호하게 거절했다.서은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다시 말했다.“그럼, 물 마셔.”꼬마는 그제야 입을 삐죽이며 작게 중얼거렸다.“아니, 우유 마실게.”꼬마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서은주는 절로 미소가 번졌다.우유를 가지러 가는 동안에 서은주는 육강민에게 아들의 도착을 알리는 문자를 남겼다.하지만 그는 바쁜지 바로 답이 오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혼자서 꼬마를 상대하게 됐다.육민찬은 우유를 홀짝이며 그녀를 바라봤다.“우리 아빠랑 같이 산다며?”“지금은 그렇지.”“내 새엄마 되고 싶은 거지?”육민찬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말해두는데, 우리 아빠랑 결혼하고 싶다는 사람 많아. 하지만 내 허락 없인, 아빠는 절대 결혼 안 할 거야.” “난 그럴 생각 없어.”서은주는 있는 그대로를 답했다.그녀는 자신과 육강민은 그저 잠깐 스치는 인연일 뿐이라 기대한 적도 없었다.순간 말문이 막힌 듯한 꼬마는 얼굴이 불그락푸르락했다.“거짓말! 아니잖아! 우리 아빠랑 결혼하고 싶은 거잖아!”“절대 아닌데.”“왜? 우리 아빠 엄청 부자야.”꼬마는 바짝 약이 오른 것 같았다.“부자라고 다 결혼하고 싶은 건 아니지.”“근데 우리 아빠는 엄청 잘생겼잖아.”이 아이의 사고회로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었다.서은주는 그저 차분히 미소를 지었다.“네 말대로 네 아빠는 잘생기고 돈도 많아서 내가 한참 부족해.”육민찬은 얼굴을 찌푸리며
Read more

제48화

육강민과 한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서은주는 그의 입맛도 어느 정도 파악했다.그의 취향에 맞춰 점심을 준비하는 동안, 거실에서 TV를 보던 육민찬은 이따금씩 부엌 근처를 어슬렁거렸다.가끔은 두 손을 등 뒤로하고, 동네를 산책하는 노인네처럼 그녀 주변을 맴돌았다.꼭 시장 조사하는 꼬마 상사 같았다.식탁에 차려놓은 반찬들을 보던 육민찬은 또다시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싫어하는 것들뿐이잖아.”“그러지 말고, 조금이라도 드시지요?”서은주는 살갑게 달래보았다.“음식은 버리면 안 되니까 먹는 거야!”“맞아.”그렇게 말한 뒤에야, 꼬마는 젓가락을 들었다.결국 밥공기를 비우고,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들이킨 뒤, 볼록하게 나온 배를 어루만지면서도 시큰둥하게 말했다. “맛은 그냥 그래.”그저 괜히 새침 떨고 잘난 척하는 녀석이었다. 서은주가 설거지를 마치고 나오자, 녀석은 이미 곯아떨어져 소파에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조심스레 녀석을 안아 침실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준 뒤 조용히 문을 닫았다.육강민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질 무렵이었다.꿀잠을 자던 육민찬은 인기척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아빠…”육강민이 아무 말도 없자, 녀석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비위를 맞추려는 듯, 어색한 웃음까지 지으며 그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아빠, 나 다시는 안 싸울게.”육강민은 그의 이마에 밴드를 살폈다.“아파?”“엄청 아파.”육강민은 허리를 굽혀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다.꼬마는 방 한켠에 서 있는 서은주를 의식했는지 갑작스레 부끄러운 듯 그의 품에 얼굴을 묻어버렸다.서은주는 처음 이토록 다정한 육강민을 보게 되었다.늘 차갑던 눈빛에 온기가 돌고 입꼬리는 자연스레 올라갔다.“말썽 부리진 않았고?”“나 진짜 착했어. 상 줘야 돼.”“뭐가 필요한데?”“자동차!”“그래. 사줄게.”부자가 대화하는 동안, 서은주는 그저 말없이 옆에 서 있었다.그녀는 그저 ‘외부인’이었다.정확히는 원래부터 그들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아들을
Read more

제49화

서미진의 비아냥에도 서은주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그냥 돌아서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은주야, 정말 너구나.”이순옥은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은 채, 울먹이며 말했다.“어디 있었던 거야?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보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호텔 사건 이후, 서은주는 더 이상 몇 마디 감정 섞인 말에 쉽게 흔들릴 만큼 순진하지 않았다.수년 동안 얽혀 있던 정이 완전히 사라질 순 없어, 눈가가 뜨거워졌지만, 시선은 차갑고 담담했다.“사모님, 손 놓으시죠.”“…뭐라고?”이순옥의 얼굴이 굳어버렸다.“엄마, 뭐해? 얼른 가자니까.”차에 타 있던 서미진이 성가시다는 듯 재촉했다.“사모님?”이순옥의 눈가가 금세 빨갛게 젖어 들었다.“네가 그 일 때문에 날 원망하는 건 알아, 외숙모로 생각하지 않아도, 밥 한 끼 사줄 기회는 줄 수 없겠니?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그럴 필요 없어요.”서은주는 손을 뿌리치며 돌아서려 했지만, 이순옥은 서은주를 놔주지 않았다.“그냥 밥 한 끼만. 장소는 네가 정해.”도로 한복판에서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호텔 사건은 온 동네에 소문이 난 지 오래, 더 이상 시선을 끌고 싶지 않았다.결국 서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맞은편 레스토랑으로 가죠.”길 건너 고급 레스토랑은 비싼 가격 탓에 손님도 드물었다. 레스토랑.서은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주문했다.반면 서미진은 스테이크를 시키며 그녀를 힐끗 보았다.“오늘은 우리가 사는 거니까 비싼 걸 좀 시키지 그래? 우리 집에서 나간 이상, 이런 데서 밥 먹을 일은 평생 없을 테니 말이야.”“미진아 그만해!”이순옥은 딸을 노려보고는, 직접 서은주가 즐겨 먹던 메뉴들을 주문해 주었다.“은주야, 너 살 빠진 것 같구나.”“엄마, 노안이야? 딱 봐도 살쪘구만.”“……”서은주는 요즘 마음이 편해져서 혈색이 좋아진 것뿐이었다.“우리 집 떠난 뒤로 아주 편하게 잘 지내는 모양이네.”서
Read more

제50화

“그럼, 내가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겠네?”서은주는 냉소를 터뜨렸다.“남들이 너를 ‘아가씨’라고 불러준 건 서씨 가문의 체면을 봐준 거야. 우리를 떠나면 넌 아무것도 아니야.”서미진은 여전히 오만했다.“게다가 그날 일, 우리가 알기론 고철주가 너한테 손도 못 댔다며? 그런데도 넌 내 뺨까지 때렸으면서 뭐가 그리 유세야!”서은주는 오히려 웃음이 새어 나왔다.“서미진, 개랑 너 사이의 차이가 뭔지 알아?”“뭐?” 서미진은 순간 멍해졌다.“넌 사람 모양만 하고 있다는 것뿐이야. 개는 적어도 목줄을 하고 다녀. 사모님께서는 다음에 밖에 데리고 나오실 때 괜한 사람 다치지 않게 꼭 목줄을 잘 묶어 주시지요.”서은주는 말을 마치고 곧장 돌아섰다. “서은주, 이 미친년이 뭐라는 거야!”서미진은 자리를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서은주! 거기 안 서?”그녀를 쫓아가려다 이순옥에게 붙잡힌 서미진은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말해두는데, 진백현은 이제 육가희랑 사귀고 있어! 애초에 널 좋아한 적도 없다고!”“너 같은 재수 없는 년을 데려온 뒤로 우리 집은 죄다 꼬였어! 하지만 네가 나가자마자 바로 풀렸단 말이지!”“네 부모가 일찍 죽은 것도 네 팔자 때문이야! 너 같은 애 받아줄 사람은 없다고!”레스토랑 출구에 다다른 서은주가 발걸음을 멈췄다.그리고 천천히 돌아섰다.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서미진은 숨이 턱 막혔다.서은주의 서늘한 눈빛에 서미진은 괜히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하지만 겁을 들킨 것 같아 억지로 허리를 펴고 맞받아쳤다.“내 말 틀렸어? 네 부모님은 너 때문에 죽은 거야.”“미진아!”이순옥이 거의 비명을 지르듯 말렸지만 이미 늦었다.이미 돌아온 서은주는 테이블 위에 놓인 레몬주스를 들어, 그대로 서미진 얼굴에 끼얹었다.“꺄악!!”서미진은 비명을 질렀다.“서은주! 미쳤어?!”서은주는 차갑게 물었다.“정신이 좀 들어?”“고아 주제에...”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서은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어 그대로 한 번 더 끼얹
Read more
PREV
1
...
34567
...
63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