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851 - Chapter 860

987 Chapters

제851화

지금의 하이석은 표정이든 분위기든, 쉽사리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게 만드는 냉랭한 거리감이 있었다.사람들은 모두 하씨 가문의 권세를 탐냈지만, 동시에 그 권세를 두려워했다.“하, 하 대표님…”온창섭은 비위를 맞추듯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곁에 있던 온유정을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얼른 일어나.”하이석은 차갑게 시선을 내리깔았다.“지난번 일로 온 대표도 충분히 교훈을 얻으신 줄 알았습니다만. 설마 이렇게까지 기억력이 나쁘실 줄은 몰랐군요.”그의 목소리는 단단하고 서늘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살기가 몰아치는 듯해, 온창섭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오, 오늘 일은 오해입니다. 오늘은 유정을 데리고 사과드리러 온 겁니다.”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온유정이 울분 어린 얼굴로 외쳤다.“하 대표님, 온유란은 애초에 우리 온씨 가문 사람이 아니에요!”한바탕 얻어맞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그녀는 이를 악문 채 온유란에게 악의적인 말을 퍼붓기 시작했다.“저 여자, 절대 좋은 마음으로 대표님 곁에 있는 거 아니에요.”“우리 아빠가 돈 안 주기 시작하니까 바로 대표님한테 붙은 거잖아요. 결국 돈 보고 접근한 거라고요. 대표님도 속지 마세요. 저 여자 그냥 잡종이에요. 대표님 같은 분이랑은 애초에 어울리지도 않는다고요!”온유란은 맞고도 저렇게까지 독한 말을 쏟아내는 온유정을 보고 순간 멍해졌다.혼자 들을 때야 참고 넘길 수 있었지만 하이석 앞에서까지 저런 말을 들려주고 싶진 않았다.무슨 말을 꺼내려던 순간, 서은주가 조용히 그녀를 붙잡았다.서은주는 옆에 서 있던 하씨 가문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따뜻한 물 한 잔만 부탁드릴게요.”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곧 뜨거운 물이 담긴 컵이 건네졌고, 서은주는 그걸 온유란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형수님, 손 좀 녹이세요.”온유란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러자 서은주가 몸을 가까이 기울이며 작게 속삭였다.“하이석 씨가 계시잖아요. 저런 인간 상대하는 건 남편한
Read more

제852화

설마… 아무 말도 없이 정말 하씨 가문에 시집간 걸까.온유정은 얼굴이 퉁퉁 부어 돼지처럼 변해 있었고,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제비집 같았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엉망으로 울고 있었다.하지만 온창섭은 그녀를 달랠 여유조차 없었다.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온유란은 원래 정에 약한 아이라는 걸. 자신이 부녀의 정을 내세워 사정한다면, 어쩌면 온씨 가문에도 마지막 숨통 정도는 남겨줄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출생이 드러난 이상, 그마저도 끝이었다.하이석의 태도를 보면, 온유란이 마음만 먹고 입을 여는 순간 온씨 가문은 그대로 무너질 게 뻔했다.현정민은 온창섭을 차갑게 흘겨보며 비웃듯 말했다.“온씨 가문 핏줄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러세요? 우린 애초에 유란이를 아낀 거지, 당신들 집안 보고 데려온 거 아니에요.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다니, 속이 뻔히 보이는군요. 차라리 어릴 때 시골에 보내 키운 게 다행이었어요. 당신들 집안 같은 환경에서 컸으면 애 진작 망가졌을 테니까.”온유정은 처음엔 온유란의 출생을 폭로하면 하이석이 분명 그녀를 혐오하고 버릴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현정민까지 직접 나설 줄이야.처음부터 끝까지 온유란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씨 가문 사람들은 끝까지 그녀의 편을 들었다.그 사실이 온유정을 더욱 분하게 만들었다.동시에 미칠 듯 질투났다.왜 온유란만 저렇게 운이 좋은 걸까.하지만 얼굴이 심하게 부어 입조차 제대로 열 수 없었다.온유란은 낯빛이 참담하게 굳은 온창섭을 바라보며 단 한 마디만 물었다.“전… 정말 당신 친딸이 아니에요?”온창섭은 고개를 떨군 채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침묵이 곧 대답이었다.그 역시 이제는 체면이 남아 있지 않았다.그럼에도 무언가 변명이라도 해보려 애써 입을 열었다.“유란아… 그래도 내가 예전엔 너한테 잘해줬잖니. 너도 기억하지? 사실 그동안 난 정말 너를…”“온창섭.”현정민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오늘 아침을 많이 안 먹어서
Read more

제853화

서은주는 집에 돌아간 뒤에도 육강민 앞에서 연신 하이석 이야기를 꺼냈다.“예전엔 하이석 씨랑 자주 엮일 일이 없어서 그냥 젠틀하고 차분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완전 아내 바보더라고요. 일 처리하는 것도 얼마나 시원시원한지 몰라요.”육강민은 코웃음을 쳤다.“협상 테이블에서 얼마나 뻔뻔한 인간인지 못 봐서 그래.”“질투하는 거 아니에요?”“난 이미 아내도 있고 아들딸도 있는데, 내가 뭐 하러 저 늙은이를 질투해.”하이석은 기껏해야 몇 살 더 많을 뿐인데, 어느새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서은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근데 온씨 집안 일은… 아직 안 끝난 것 같아요.”*온씨 가문의 일은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후 방주헌이 나서서 실시간 검색어를 내리긴 했지만, 여론의 열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온유란을 안쓰러워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녀 어머니가 바람을 피웠다며 욕하는 이들도 있었다.심지어 온창섭을 두둔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예전에 밖에서 여자를 둔 것도 이유가 있었다느니,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자가 어떻게 참겠느냐느니 하는 말들이 끝없이 쏟아졌다.인터넷은 그야말로 온갖 말들로 들끓고 있었다.하지만 온유란은 며칠 내내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냈다. 헤이엘과 삼정 병원을 오가고, 틈틈이 재봉 도구를 사러 다닐 뿐이었다.자신은 괜찮으니, 하이석에게 괜히 일까지 미루지 말라고도 했다.하이석 역시 그녀가 특별 대우를 받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평소처럼 출근하고 퇴근했지만, 이전부터 그녀를 지키던 경호원 두 명만큼은 끝내 거두지 않았다.그날 밤, 하이석은 육강민과 사업 이야기를 나누기로 되어 있어 늦게 들어갈 예정이었다.밤 여덟 시쯤.그는 부하에게서 사진 한 장을 전달받았다.사진 속 온유란은 헤이엘 근처 광장 계단에 홀로 앉아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텅 빈 눈빛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도자기 인형 같았다.“남은 얘기는 다음에 해.”하이석은 짧게 말한 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육강
Read more

제854화

차는 흔들림 없이 매끄럽게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운전대를 잡은 왕 기사는 백미러 너머로 하이석의 표정을 몇 번이고 살폈다.무언가 단서를 찾으려는 듯한 눈빛이었다.온씨 집안 친자 확인 결과를 본 뒤부터 하이석이 계속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온씨 쪽에서 재산 빼돌리는 건 어떤 루트를 쓰고 있어?”하이석이 물었다.“떳떳하지 못한 방식입니다. 온씨 그룹 직원들은 몇 달째 월급도 못 받아서 집안 살림이 다 무너질 지경인데, 회사 대표가 뒤로 재산 빼돌린다는 걸 알게 되면 아마 산 채로 찢어 죽이려 들 겁니다.”“지금까지 얼마나 옮겼지?”“아직은 일이 커질까 봐 일, 이억 정도만 시험 삼아 움직인 것 같습니다. 원래 이런 뒷돈은 절차도 복잡하고 흔적도 잘 안 남기니까요. 아마 이후엔 더 크게 움직일 겁니다.”“누구 앞으로?”“온창섭 아들인 온호 명의로 만든 해외 계좌입니다.”하이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온창섭에게 아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거의 잊고 있었다.온유란의 새어머니가 결국 사모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도, 아들을 낳아줬기 때문이겠지.“계속 붙어서 지켜봐.”“알겠습니다. 그리고 온씨 집안 관련해서 하나 더 나온 게 있습니다.”왕 기사의 말이 끝나자, 하이석은 또 한 번 웃었다.온씨 집안 일은 파고들수록 점점 더 재미있어지고 있었다.*온유란이 온창섭 친딸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계속 번져 나갔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화제들에 밀려 열기는 자연스럽게 식기 시작했다.육남혁과 연주의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육씨 가문에서 크게 떠들며 준비한 결혼식은 아니었지만, 관심은 자연히 쏠릴 수밖에 없었다.강학용까지 직접 회성에서 올라올 정도였으니 말이다.하나는 축하를 위해서였고, 또 하나는 서은주와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였다.육수린은 강학용 앞에서 노래 한 자락 뽑아주었다.발음은 다 뭉개지고 박자도 엉망이었지만 강학용은 그걸 듣고도 함박웃음을 지었다.반면, 육남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Read more

제855화

이런 인생의 중대사를 치르는데 영상 하나 남기지 않았을 리 없었다.강희진이 집에 돌아왔을 때, 강학용이 자신의 청혼 영상을 보고 있는 걸 발견하곤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런데 강학용이 한 말은 고작 두 마디뿐이었다.“이 반지 보석, 꽤 좋은 물건이구나. 방주헌이 돈 좀 썼겠어.”강희진은 어색하게 웃었다.“아버지, 보는 포인트가 참 남다르시네요.”“근데 원래 청혼이라는 게 반지 끼워주고 나면 포옹도 하고 키스도 하는 거 아니냐? 너희는 왜 그런 게 하나도 없냐?”강희진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정말이지 너무 정확한 질문이었다.청혼 당일 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흥분 상태였다. 머릿속은 어지럽고 정신은 붕 떠 있었고, 세세한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그러니 포옹이나 키스 같은 걸 떠올릴 정신이 있었을 리 없었다.하지만 더 예상 못 한 건, 아버지가 영상을 다 보고 내린 결론이 고작 그거였다는 사실이었다.“맞다. 정한이는 요즘 뭐 하고 지내냐? 통 얼굴 보기가 힘드네.”강학용은 청혼 영상을 다시 돌려 보며 물었다.강희진은 웃으며 답했다.육남혁이 예전부터 연주를 위해 목걸이 하나를 주문 제작했는데, 그걸 강정한이 맡고 있었다. 결혼 전에 꼭 직접 전해주고 싶어 최근 며칠째 밤새워 작업 중이었다.공정이 꽤 복잡한 탓에, 결국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완성되었다.순금으로 만든 목걸이였다.연주가 혼례 때 입을 드레스와도 잘 어울릴 터였다.육남혁은 결혼식 이틀 전부터 연씨 집안 친척들을 경성으로 모셔와 호텔에 머물게 했다. 신부 맞이 역시 호텔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온유란은 이른 아침 서은주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신부 보러 호텔로 오라는 연락이었다.온유란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답했다.하이석은 들러리 명단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찍 육씨 저택으로 향했다.두 사람은 각자 따로 움직이기로 했다.온유란이 호텔 스위트룸에 도착하자 자연스레 시선이 쏠렸다.서은주가 너무도 친근하게 그녀의 팔짱을 끼고 이야기하고 있었기 때
Read more

제856화

하이석이 곁에 있는 연우진을 흘끗 바라봤다.“긴장했어?”“안 했어요.”“손가락으로 바지 다 뜯을 것 같은데?”“너무 긴장되면 삼촌이 밖에 데리고 나가 줄까?”하이석은 연우진을 데리고 밖으로 천천히 걸었다.“뭐 하고 싶은 거 있어? 삼촌이 같이 해줄게.”“목마 타고 싶어요.”하이석은 잠시 멈칫했다가, 그 말의 뜻을 뒤늦게 이해했다.그리고는 단칼에 거절했다.그러자 연우진은 금세 시무룩해졌다.어른들은 다 거짓말쟁이였다.한편, 육강민 어머니는 들러리들에게 두둑한 봉투를 나눠주며 웃었다.“오늘 고생 많겠다, 얘들아.”“전혀 안 힘듭니다!”방주헌은 원체 이런 북적거리는 분위기를 좋아했다. 남 결혼식인데도 신랑보다 더 신난 얼굴이었다.“주헌아, 있다가 신부 데리러 갈 때 네가 좀 많이 도와줘야 해. 이모는 네가 제일 믿음직하거든.”한주미 말에 방주헌은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쳤다.들러리 쪽에서 토끼 귀나 레이스 치마 같은 짓궂은 장난은 준비 안 했다는 얘기는 이미 들은 상태였다. 그래서 방주헌은 신부 데려오는 것도 별 어려움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이모, 걱정 마세요. 신부 모셔오는 건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막상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야,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연주가 부른 들러리들은 대부분 직장에서 알게 된 동료들이라, 확실히 장난감 소품 같은 건 없었다.방주헌은 맨 앞에 나서며 씩 웃었다.“어떻게 해야 신부를 데려갈 수 있는지만 말씀하세요.”그런데 그의 눈앞에 불쑥 놓인 건 아이엘츠 시험지였다.순간 방주헌의 얼굴이 굳어졌다.‘미친? 나는 신부 데리러 온 거지 시험 보러 온 게 아니라고!’방주헌은 학창 시절 시험만 보면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질 정도로 예민해지던 인간이었다.겨우 졸업해서 이제 평생 시험 같은 건 안 볼 줄 알았는데!더 웃긴 건 듣기, 독해, 작문도 모자라 스피킹 시험까지 있었다.오늘이 육남혁 결혼식만 아니었으면 당장 목이라도 맸을 판이었다.“방주헌, 이제 네가 활약할 차례야.”
Read more

제857화

온유란 역시 이런 자리에서 괜히 주인공보다 눈에 띄고 싶지는 않았다.결혼식이 거의 시작될 무렵이 되어서야 그녀는 메인 홀로 들어섰다.하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온 순간,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육씨 가문에서 말한 ‘소박한 결혼식’이라는 게 이 정도 규모일 줄이야.사람이 너무 많아 아는 얼굴조차 찾기 어려웠다.하이석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다.주변에서는 이미 그녀를 알아본 사람들이 낮게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저 사람이 온유란이야? 왜 왔지? 누가 초대한 거야?”육씨 가문의 결혼식은 경비가 엄격하기로 유명했다. 청첩장 없이는 아예 들어올 수도 없는 자리였다.“근데 진짜 온창섭 친딸 아닌 거 맞아? 그 집 사람이랑 닮아 보이는데?”“나도 그렇게 느꼈어. 근데 십몇 년 전에 친자 확인까지 했다잖아. 설마 그게 가짜겠어?”낮은 목소리들이 사방에서 흘러나왔다.“저 사람 형수님 아니야?”온유란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방주헌이었다.방씨 집안과 하씨 집안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그 시각, 현정민과 이야기를 나누던 하이석은 방주헌의 말에 시선을 돌려 온유란 쪽을 바라봤다.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람들은 온유란이 대체 누구 연줄로 이 결혼식장에 들어온 건지 궁금해하던 참이었다.그런데 하이석이 그녀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표정이 서서히 바뀌었다.호기심과 놀라움에서 점차 믿을 수 없다는 충격으로.하이석은 온유란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손가락이 단단히 맞물렸다.하이석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온유란의 손을 잡고 넓은 연회장을 가로질렀다.그녀의 긴장을 눈치챈 듯 고개를 살짝 기울여 나직하게 물었다.“긴장돼요?”“조금은요.”“제가 있잖아요.”그 말과 함께, 그녀의 손을 감싼 힘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지금 내 눈이 잘못된 거야? 저 사람이 진짜 하이석 맞아? 온유란이랑 손까지 잡고 있다고?”“하이석 눈빛 봤냐? 완전 꿀이 뚝뚝 떨어
Read more

제858화

온창섭은 끝내 마음을 놓지 못한 채 아내에게 자산 이전 상황을 재차 확인했다.“정말 돈 다 빼돌린 거 맞아?”양수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걱정 말아요. 오늘 밤이면 무조건 입금 되니까. 정상적인 루트가 아니다 보니 좀 늦는 것뿐이에요.”“돈만 들어오면 바로 비행기 표 끊고 해외로 나갈 거야.”온창섭은 이를 악물듯 말했다.온유란과 하이석의 관계가 공개된 이상,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경성 사람들은 원래 바람 부는 방향 따라 움직이는 법이었다. 강한 쪽엔 비위를 맞추고, 약해진 쪽은 가차 없이 짓밟았다.이미 온씨 가문은 기세가 꺾였다.이제 저들은 하씨 가문에 잘 보이기 위해서라도 분명 한 번쯤 더 온씨 집안을 짓밟으려 들 터였다.온유정은 끝까지 출국을 원하지 않았다. 외국어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자신이 해외에 나가 무슨 수로 살아가겠는가 싶었다. 하지만 일이 여기까지 온 이상 달리 방법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인터넷에서는 온유란과 하이석 이야기가 연일 화제가 되고 있었다.그걸 보고 있던 온유정의 얼굴은 점점 음산하게 굳어 갔다.정말 재수 좋은 잡종 같으니.*호텔 연회장 안은 조금 전까지의 소란이 거짓말처럼 차츰 잦아들고 있었다.하이석과 온유란이 등장하며 잠시 술렁였지만, 대형 스크린에 웨딩 사진이 재생되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결혼식 무대로 쏠렸다.오늘 밤 화동은 연우진과 육민찬이었다.한쪽은 발랄했고,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과묵했다.육민찬은 형이 계속 말없이 있자 어깨를 툭 치며 속삭였다.“형, 긴장하지 마. 나 이런 거 해본 적 있어. 내가 데리고 갈게. 자, 손 잡자. 아빠가 그랬어. 진짜 형제는 손잡고 같이 가는 거래.”연우진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육강민은 아들의 전적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식 전에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다.“식 끝나면 바로 내려와. 무대 위에서 괜히 더 버티고 있으면 안 된다.”연주의 부모님은 오늘 참석하지 못해, 고모부가 대신 그녀
Read more

제859화

라미현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곧 아들을 못마땅하다는 듯 흘겨봤다.“너도 하이석 좀 본받아. 가만있다가도, 한번 나서면 바로 며느리부터 데려오잖니. 진작부터 걔 좀 보고 배우라고 했지?”“걔처럼 뻔뻔해지라고요?”“말하는 것 좀 봐. 너는 평소에 체면 차리면서 살기라도 했니?”*연주의 부케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여자 동료가 받아 갔다.곧이어 이어진 건 건배 순서였다.연회장 안은 한층 더 떠들썩해졌다.이번만큼은 하이석도 도망칠 수 없었다.들러리 부탁을 받고도 육남혁 결혼식 때 잠수를 탄 전적이 있었으니, 술자리가 시작되자 육강민은 아주 자연스럽게 하이석을 앞으로 밀어 세워 대신 술을 받게 했다.상대가 하이석인 만큼 다들 대놓고 과하게 권하진 못했지만, 워낙 경사스러운 날이다 보니 분위기는 점점 들떴다. 특히 연주의 친척들과 직장 동료들은 한껏 흥이 오른 상태였다.몇 차례 술잔이 돌고 나니, 아무리 주량이 좋은 하이석이라 해도 결국 취기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현정민은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찼다.“남 결혼식 와서 자기가 이렇게 취해 버리면 어쩌자는 거니.”“어머님은 먼저 들어가세요. 제가 기다렸다가 같이 들어갈게요.”온유란이 조용히 말했다.얌전하고 속 깊은 성격이라 현정민은 원래부터 그녀를 마음에 들어 했다. 그래도 술 취한 사람 하나 감당하기 쉽지 않을까 걱정돼 다시 당부했다.“육씨 집안에서 호텔 방 잡아 놨대. 얘가 너무 취하면 육강민이나 다른 애들 불러서 방에 데려다 달라고 해. 너 혼자 애쓰지 말고.”온유란은 고개를 끄덕였다.시간이 흐르며 하객들도 하나둘 자리를 떴다.하이석은 온유란과 왕 기사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차에 올랐다.왕 기사가 중얼거렸다.“아니, 대체 얼마나 마신 겁니까?”“결혼식이라 분위기가 좋았나 봐요.”온유란이 웃으며 대신 답하자 왕 기사는 장난스럽게 웃었다.“나중에 유란 씨랑 대표님께서 결혼식 올리면 오늘보다 훨씬 더 시끌벅적하겠네요.”그 말에 온유란은 잠시 멈칫했다.그녀는 희미하게
Read more

제860화

돈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온씨 집안은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온창섭은 그야말로 불판 위의 개미처럼 안절부절못했다.“대체 어떻게 된 거야? 돈이 왜 없어져!”“저, 저도 모르겠어요…”양수진은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소파에 주저앉은 채 식은땀을 줄줄 흘렸고, 몸은 자꾸만 떨려 왔으며, 말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저쪽 말로는… 돈이 온호 계좌로 들어갔다는데, 온호 쪽에서는 아직 입금된 게 없대요.”“송금 기록은?”“어, 없어요…”“뭐라고?”온창섭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그는 양수진의 팔을 거칠게 움켜쥐더니 소파에서 억지로 끌어올렸다.“방금 뭐라고 했어? 다시 말해 봐.”“애초에 불법 자금인데 어떻게 기록을 남겨요…”짝!순간, 날카로운 뺨 맞는 소리가 거실 안을 울렸다.양수진은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이미 온씨 집안의 사용인들은 모두 내보낸 뒤였다. 온유정은 방에서 짐을 싸고 있다가 소란을 듣고 급히 뛰쳐나왔다. 그녀는 눈앞 상황을 보자마자 다급히 어머니를 감싸 안았다.“아빠, 지금 뭐 하는 거예요!”“저 여자한테 물어봐!”온창섭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부자는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온씨 집안은 회사가 무너진 뒤에도 아직 남은 재산이 있었다. 할아버지 세대부터 여러 사업과 투자에 손을 뻗어 온 덕에 아직도 값나가는 상가와 서화, 보석들이 남아 있었다.그걸 전부 처분해서 겨우 마련한 돈이 3천억이었던 것이다.그건 그의 전 재산이었다.그 돈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온창섭은 바닥에 쓰러진 아내를 매섭게 노려봤다.“양수진, 설마 네가 내 돈 빼돌린 거 아니겠지?”양수진은 맞은 뺨을 감싼 채 몸을 떨었다. 그리고 손까지 들어 맹세했다.“그 돈 제가 가져간 거면 천벌 받아도 좋아요. 당장 나가다 차에 치여 죽어도 좋고, 유정이랑 온호도 죽어 마땅해요.”온유정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엄마, 맹세하는데 왜 나까지 끌어들여?’양수진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Read more
PREV
1
...
8485868788
...
99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