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파혼 후 시작된 그의 집착: Chapter 861 - Chapter 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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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1화

온유란은 현정민을 통해 두 사람의 부부 관계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지만 아들의 결혼 같은 큰일조차 남편에게 알리지 않았을 줄은 미처 몰랐다.그녀는 작게 대답했다.“네.”“내일 하이석한테 전화하라고 전하게.”짧게 말을 남긴 뒤 전화는 그대로 끊겼다.온유란은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다.하씨 가문의 사정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집안일에 자신이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하루 종일 정신없이 움직인 탓인지, 그날 밤 온유란은 오랜만에 깊고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육남혁과 연주의 결혼식 다음 날부터는 근로자의 날이라 연휴기간이었다.하이석도 휴가에 들어간 상태였고, 그가 눈을 뜬 건 오전 열 시가 훌쩍 넘은 뒤였다.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탁자 위에는 어젯밤 그가 건넸던 은행 카드가 그대로 놓여 있었고, 주방에는 따뜻한 국이 약불 위에 올려져 있었다.하이석은 커피를 한 잔 내려 들고 다락 작업실로 올라갔다.온유란은 현정민에게 줄 옷을 입체 재단 마네킹에 걸어 둔 채 마지막 손질을 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다락 창가에 엎드려 햇볕을 쬐고 있었고, 한쪽 테이블 위 양생 주전자에서는 달콤한 오렌지 홍차가 은은하게 끓고 있었다.실내 가득 희미한 오렌지 향이 감돌았다.“일어났어요? 머리는 안 아파요?”“괜찮아요.”“카드는 탁자 위에 뒀어요. 술 취하면 남한테 거액 송금하는 버릇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하이석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허리를 감싸 안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턱이 그녀의 목덜미에 느슨하게 닿았다.뜨거운 숨결이 스칠 때마다 온유란의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그 돈은 원래 당신 거예요.”온유란은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보더니 손을 들어 그의 이마를 짚었다.“열도 없는데요.”하이석은 낮게 웃듯 응답하더니 그대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방금 마신 커피 때문인지 그의 입술 사이에서는 은은한 캐러멜 향이 감돌았다.온유란은 그저 가벼운 아침 인사 정도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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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2화

여행 마지막 날, 서은주와 연주는 온유란을 붙들고 쇼핑하러 나갔다.덕분에 아이 셋은 자연스럽게 남자들 무리에 던져졌다.육강민은 하이석을 바라보며 물었다.“온창섭 돈, 네가 빼돌린 거지?”하이석은 눈썹을 슬쩍 치켜올렸다.“무슨 소리야?”“야, 너 연기 좀 그만해. 지금 경성에서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온창섭이 해외로 빼돌리려던 돈 통째로 날아갔다며? 네가 아니면 누가 했겠냐?”방주헌이 콧방귀를 뀌었다.“증거 있어?”방주헌은 혀를 찼다.“역시 너였네. 우리가 몇 년을 봤는데 내가 널 모르겠냐?”하이석은 느긋하게 웃었다.“그렇게 잘 아는 사람이 왜 내기에서 져서 공중제비를 돈 건데?”순간 말문이 막힌 방주헌은 괜히 씩씩거리기만 했다.“온창섭, 요즘 흰 머리도 늘었다더라. 회사 직원들도 돈 숨겨 놓은 거 알게 됐대. 해외로 빼돌릴 돈은 있으면서 월급은 안 준다고 회사까지 몰려가서 난리 피웠다잖아.”원래 가장 빠르게 소문을 물어 오는 건 방주헌이었다.그러자 허경빈이 물었다.“회사 경비는 뭐 했는데?”“몇 달째 월급도 못 받은 사람들이 뭘 하겠냐. 같이 안 패면 다행이지.”방주헌은 혀를 차며 덧붙였다.“머리까지 깨졌다던데.”허경빈이 비웃었다.“꼴좋네.”“근데 진짜 얼마 뜯은 거야?”방주헌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묻자 하이석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얼마 안 돼.”“얼만데?”“3천억 정도?”무려 3천억인데, 얼마 안 된다고?육강민은 미간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를 바라봤다.“원래 이번 여행 안 온다더니 갑자기 따라나선 이유가 있었네. 온창섭이 자산을 해외로 빼돌리려 했다는 얘기 퍼뜨린 것도 네 작품이지?”온창섭이 여기저기 인맥을 동원하며 사람을 찾아다녔다고는 해도, 설마 그런 불법 자금 이야기를 제 입으로 떠벌리고 다녔을 리는 없었다. 회사 직원들 귀에까지 들어갔다는 건 누군가 일부러 흘렸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결국 온창섭이 직원들에게 쫓겨 맞기까지 한 거고.하이석은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육남혁이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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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3화

그 말을 듣는 순간 온유란의 몸이 굳어졌다. 하지만 하이석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그는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가볍게 뺨에 입을 맞췄다.“이미 경찰에는 신고해 뒀습니다. 그런데도 온씨 그룹 직원들이 회사 앞에서 안 떠나고 있습니다. 현수막까지 들고 시위 중이에요. 경찰이 강제로 해산시키면 분명 몸싸움이 날 겁니다.”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온씨 그룹이 이렇게 된 게 다 대표님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따지러 왔습니다. 대표님께서 권세만 믿고 사람을 짓밟는다고 말하고 있어요...”온유란과 하이석의 관계가 공개된 뒤, 굳이 하이석이 직접 움직이지 않더라도 예전에 온씨 그룹과 거래하던 회사들은 알아서 선을 긋기 시작했다.하씨 가문에 잘 보이기 위해 온씨 집안을 밟는 곳도 적지 않았다.온씨 그룹이 여기까지 몰락한 데 하씨 가문 영향이 전혀 없다고 하긴 어려웠다.“알겠어. 바로 들어가지.”전화를 끊은 하이석이 고개를 돌리자 온유란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어떻게 저럴 수가 있죠…”온유란은 이를 악물었다.“자기 회사 망한 걸 왜 당신 탓으로 돌려요? 직원들까지 선동해서 찾아오다니, 정말 뻔뻔해도 정도가 있지.”하이석은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걱정돼요?”그러고는 느긋하게 말을 이었다.“같이 들어갈래요?”이번 일은 결국 자신과도 무관하지 않으니 온유란 역시 모른 척할 수 없었다.차에 올라탄 뒤에도 그녀는 쉽게 긴장을 풀지 못했다.온창섭이 얼마나 비열한 인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혹시 무슨 짓이라도 벌이면 어쩌나 생각하고 있던 순간, 하이석이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낮게 웃는 목소리가 귓가에 스쳤다.“긴장 풀어요.”“온창섭은 직원들 앞세워 난리 치면 내가 물러설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그 인간은 아직도 날 너무 몰라요. 미친개처럼 사람 물어뜯는 놈들 상대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요?”온유란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물었다.“뭔데요?”“몽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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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4화

모든 일은 하씨 그룹의 로비에서 처리됐다.온창섭은 원래 하씨 가문의 방식이라면 보디가드를 시켜 자신을 끌어내거나, 최소한 한바탕 두들겨 패고 끝낼 거라 생각했다.앞선 두 번의 마주침에서도 하이석은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으니까.그런데 오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마치 정말로 이성적으로 이야기를 해보겠다는 태도였다.그 순간, 온창섭은 오히려 불안해졌다. 산적 같은 인간이 갑자기 예의를 차리며 이치를 따지기 시작하면 더 무서워지는 법이니까.일은 애초 자신이 계획했던 방향과 완전히 어긋나고 있었다.하이석은 심지어 직원 대표들과 기자들을 위해 의자까지 준비해 두었다.하지만 온씨 가족 셋에게만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온창섭은 이를 악문 채 입을 열었다.“하이석 대표님, 이게 무슨 뜻입니까? 다들 앉을 자리는 챙겨 주면서 저랑 제 아내, 딸은 서 있으라는 겁니까?”하이석은 느긋하게 웃었다.“의자는 사람 앉으라고 둔 건데요.”그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덧붙였다.“당신들도 앉을 자격이 있습니까?”막 장비를 설치하던 기자들까지 순간 얼어붙었다.시작부터 이렇게 살벌하다고?온창섭은 이미 감정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상태였다.바짝 마른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고, 분노에 일그러져 있었다.그는 갑자기 온유란을 향해 소리쳤다.“온유란! 내 돈 네가 가져간 거지!”온유란은 하이석 옆에 앉아 있다가 순간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그 멍한 눈빛이 오히려 온창섭을 더 자극했다.“아직도 연기해?”온유정이 냉소를 흘렸다.“예전엔 몰랐는데 진짜 연기 잘하네. 설령 네가 우리 아빠 친딸이 아니라 해도, 시골에 처박아 두고 생활비는 꼬박꼬박 줬잖아. 근데 이제 와서 남 부추겨 우리 아빠 돈까지 등쳐먹어? 온유란, 진짜 뻔뻔하다.”그 말을 듣던 온유란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하이석을 돌아봤다.하지만 하이석은 그저 웃기만 했다.“당신들 나 찾으러 온 거 아니었습니까?”그는 천천히 눈을 들어 세 사람을 바라봤다.“왜 자꾸 화살은 전부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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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5화

“세상에는 참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들은 부끄러운 짓, 교양 없는 짓 다 해 놓고는 정작 남 입은 틀어막으려 들죠. 그러면서 남한테만 품위와 교양을 요구해.”하이석은 느긋하게 웃었다.“이런 걸 보통 내로남불이라고 하나?”그는 손끝으로 온유란의 손가락을 천천히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제가 교양이 있네 없네 할 자격은 당신한테 없어요.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압니다.”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체면이나 교양 같은 건, 당신들한텐 애초에 없는 물건이라는 거.”회사 안으로 들어온 기자들조차 완전히 얼어붙어 있었다.그들은 하씨 가문 사람과 직접 부딪혀 본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하이석이 차분하고 신중한 성격이라는 소문 정도는 들어 봤다.그런데 실제 모습은 전혀 달랐다.말 한마디 한마디가 지나치게 날카롭고 독했다.원래는 온씨 가족이 들이닥치며 한바탕 격렬한 충돌이 벌어질 줄 알았지만 막상 시작되고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하이석의 일방적인 압살이었다.온유정은 옆에 서서 겁에 질린 채 입도 제대로 열지 못했다.온창섭은 겨우 몸을 일으켜 배를 감싼 채 숨을 몰아쉬었다.강하게 밀어붙이는 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자 이번에는 태도를 바꿨다.그는 온유란을 바라보며 억지로 목소리를 눌렀다.“유란아… 내가 너한테 미안한 건 맞다. 하지만 그동안 나도 나름대로 해 준 건 있잖아.”그의 목소리에는 처절함까지 섞여 있었다.“내가 부탁할게. 그 돈 돌려줘. 전부 다 안 줘도 돼. 일부만이라도… 돈만 받으면 내가 아주 멀리 사라질게. 다시는 너희 앞에 안 나타나마.”“어디로 가시게요?”그 말을 끊은 건 하이석이었다.그는 여전히 온유란의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오랫동안 재단 가위를 잡아 온 손이라 곱고 부드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옅은 상처와 굳은살이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하이석은 그 손등을 천천히 쓸며 말을 이었다.“해외에 있는 아들한테 가시려고요?”온창섭의 표정이 굳었다.“그건 제 일입니다.” “듣기로는 해외에서 국제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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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6화

하씨 그룹 로비 안.온유란은 이복동생을 어린 시절에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온호.기억은 흐릿했다. 그저 통통했던 아이였다는 정도만 남아 있었다.그런데 지금 다시 마주한 순간, 온유란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온창섭은 키가 178 정도였고, 양수진 역시 작은 체격은 아니었다.그런데 온호는 아무리 봐도 170이 채 안 돼 보였다.키도 작고 몸까지 둥글둥글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나이도 어린데 벌써 배가 불룩 나와 있었고, 밤낮없이 생활이 무너진 탓인지 눈 밑은 푹 꺼져 있었다. 얼굴에는 여드름과 흉터 자국이 가득했고, 어깨까지 잔뜩 굽어 있었다.젊은 사람 특유의 생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에 패배감과 퇴폐적인 기운만 가득했다.하씨 가문 사람들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끌려 들어올 때만 해도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는데, 가족의 얼굴을 보자마자 갑자기 울부짖듯 외쳤다.“엄마!”예고도 없이 터진 괴성에 온유란은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그 모습을 본 하이석이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겁도 참 많네요. 저 정도에 이렇게 놀라요?”온유란은 놀림받았다는 걸 깨닫자 바로 그를 흘겨봤다.그 반응이 하이석은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이제 그녀는 예전처럼 그를 무조건 두려워하거나, 조심스럽게 눈치만 보지는 않았으니까.반면, 양수진은 이미 다리에 힘이 풀린 상태였다. 갑자기 나타난 아들을 보고도 놀라거나 기뻐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몸은 체처럼 덜덜 떨리고 있었다.하씨 가문 사람들이 온호를 놓아주자 온창섭은 급히 달려가 아들을 끌어안았다.“아들! 너 언제 귀국한 거야?”“저…!”온호는 아버지를 붙들고 울먹였다.“아빠, 나 좀 살려줘요. 저 사람들이 갑자기 절 끌고 갔어요!”“어디 다친 데는 없고?”온유란은 온창섭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저렇게 다급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어릴 적엔 자신에게도 지어 준 적이 있었다.언제부터였을까. 이 모든 게 변해 버린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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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7화

정말 독한 입이었다.온창섭은 방금 복부를 걷어차인 탓에 한 손으로 배를 감싼 채, 다른 손으로는 아들을 뒤로 감췄다.말로는 도저히 하이석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자 이번엔 다시 온유란 쪽으로 화살을 돌렸다.“네가 내 친딸이 아니라고 해도, 그동안 돈은 써 줬잖아. 내가 아니었으면 도정숙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겠냐?”그는 눈을 부릅뜨고 악을 질렀다.“우리 온씨 집안은 이미 네 손에 풍비박산 났어! 대체 어디까지 망가뜨려야 속이 시원하냐? 그동안 내가 잘못한 건 인정한다. 하지만 나도 대가는 치렀잖아! 이제 그만 좀 놔주면 안 되겠니? 대체 뭘 더 원해!”온유란은 입가를 아주 희미하게 올렸다.“전 한 번도 당신을 어떻게 하려고 한 적 없어요.”“웃기지 마!”온창섭은 그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그럼 내 돈 돌려줘! 내 돈 빼돌려 놓고 아직도 뻔뻔한 척이냐? 돈만 돌려주면 우리 여기서 끝내자. 연 끊고 남남 되는 거야.”그는 이를 악물고 덧붙였다.“걱정 마. 나중에 굶어 죽더라도 너한테 부양받을 일은 없을 테니까.”“그 말, 책임질 수 있습니까?”이번엔 하이석이 되물었다.“기자들도 있는데 맹세하죠. 확실히 끝낼 겁니다.”“그럼 계약서 쓰시죠.”하이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왕 기사가 서류를 꺼냈다.계약서와 펜, 인주까지 이미 전부 준비되어 있었다.온창섭은 머릿속이 멍해졌다. 대체 하이석이 무슨 생각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는 애초부터 온유란에게 부양받을 생각 따위 한 적 없었다.지금은 오직 자기 돈만 되찾고 싶었다.그는 별 의심 없이 계약서에 손도장을 찍었다.그런데 손을 떼는 순간, 뒤늦게 이상함을 깨달았다.오늘은 분명 자신이 일부러 판을 벌이러 온 날이었다. 그런데 왜 하이석은 처음부터 모든 준비를 끝낸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었지?마치 함정을 다 파 놓고 자신이 뛰어들기만 기다린 사람처럼.그 순간, 하이석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온 대표께서 이렇게 시원하게 협조해 주시니, 저도 선물 하나 드려야겠네요.”왕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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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8화

회사는 무너지기 직전이었고, 온씨 집안도 사실상 끝난 상태였다.온창섭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은 오직 아들 뿐이었는데 그 희망마저 산산이 부서졌으니 그 충격이 얼마나 컸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창섭 씨, 일부러 속이려던 건 아니었어요!”양수진은 그의 다리를 붙든 채 흐느껴 울었다.“제가 당신의 내연녀라는 이유로 얼마나 욕먹고 살았는지 알잖아요. 저도 우리 아들이 잘되길 바랐단 말이에요… 게다가 최근 회사 사정도 너무 안 좋았잖아요. 당신도 너무 힘들어했고… 그래서 차마 말 못 했어요. 당신이 버티지 못할까 봐…”“내가 못 버틸까 봐?”온창섭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내가 걔한테 해마다 수백억씩 퍼부은 돈은 다 어디 갔는데?”그는 갑자기 악을 질렀다.“개한테라도 처먹인 거야!”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다리를 번쩍 들어 양수진을 거칠게 걷어찼다.양수진은 미처 피할 틈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주 세게 부딪힌 듯 신음소리까지 새어 나왔다.기자들의 카메라는 쉴 새 없이 그 장면을 따라갔다. 누구 하나 이 난장판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았다.“엄마!”온유정이 급히 달려가 양수진을 부축했다. 그리고 울먹이며 온창섭을 바라봤다.“아빠! 엄마가 잘못한 건 맞아도 어떻게 사람을 때려요!”“감히 날 속여?”온창섭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원래부터 가부장적인 성격이 강했던 그는 스스로를 집안의 절대적인 가장이라 여겼다. 그러니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분노에 눈이 뒤집힌 순간, 그는 갑자기 무언가 깨달은 듯 눈빛이 변했다.그러고는 곧바로 달려가 온유정을 밀쳐내고, 바닥에 쓰러진 양수진의 팔을 거칠게 끌어당겼다.“너, 솔직히 말해!”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그 돈 네가 빼돌린 거지!”“뭐, 뭐라고요?”양수진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네가 내 돈 숨긴 거잖아!”“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양수진은 다급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한번 무너진 신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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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9화

그 말을 내뱉으며 온창섭은 양수진을 거칠게 밀쳐냈다.최근 들어 쌓인 분노는 이미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하지만 그 화를 하이석이나 온유란에게 직접 터뜨릴 수는 없었다.결국 갈 곳 잃은 분노는 모조리 아들에게 쏟아졌다.온호도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언제까지 맞고만 있을 리 없었다.그는 갑자기 몸을 날리듯 달려들었다. 그리고 머리로 온창섭의 배를 들이받았다.그 모습은 마치 투우장의 황소 같았다.온창섭이 그대로 뒤로 넘어지자 온유란은 눈을 크게 떴다.정말 가관이네.기자들의 카메라 역시 쉴 새 없이 그 장면을 따라다녔다.“이 개자식이 감히 애비를 쳐?”온창섭은 벌떡 일어나 다시 달려들었다.“그동안 공부시킨 게 다 헛짓거리였어! 패륜아 같은 새끼!”온호도 더는 맞고만 있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온창섭과 뒤엉켜 몸싸움을 벌였다.키는 작아도 덩치는 컸다. 젊긴 했지만 몸이 워낙 망가져 있었는지 몇 번 버티지도 못하고 결국 온창섭에게 깔려 얻어맞기 시작했다.양수진은 아들이 맞는 걸 보자 급히 달려들었다.결국 세 사람은 체면도 잊은 채 바닥에서 서로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온유정은 옆에서 겁에 질린 얼굴로 주저앉아 있었다.온유란은 오늘 이 자리가 분명 피 튀기는 싸움판이 될 줄 알았지만, 막상 펼쳐진 건 그저 막장극 같은 난장판이었다.“이제 가죠.”온유란은 흥미를 잃은 얼굴로 말했다.“병원도 들러야 해요.”그런데 하이석은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아직 안 끝났어요.”온유란이 고개를 갸웃했다.“설마 또 싸워요?”표정은 오히려 조금 기대하는 것처럼 보였다.하이석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었다.도대체 저 작은 머릿속엔 뭐가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일이 생겨도 기억해요.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거.”온유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결국 온씨 그룹 직원 대표 둘이 나서고 나서야 세 사람은 겨우 떨어졌다.*온창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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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0화

“하이석!” 온창섭이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봤다.분위기를 망치는 데에는 정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인간이었다.하이석은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방금 당신, 뭐라고 하셨죠? 돈을 받았다면 진작 도망쳤을 거라고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안 떠난 건 아직 돈을 다 못 챙겼기 때문이겠죠.”“당신…!” 양수진은 몸을 덜덜 떨었다. “또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온 대표, 보여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온창섭의 얼굴이 순식간에 경계로 굳었다.“이번엔 또 뭘 꾸미려는 겁니까? 제가 말했죠. 사진 같은 거 들고 와도 소용없다고. 우리 가족 사이 이간질하려는 짓은 그만 두세요!”하이석은 피식 웃었다.“걱정 마세요. 그냥 잠깐 보여드리기만 할 겁니다. 군더더기 말은 안 하죠.”“안 봅니다!”“보셔야 할 겁니다.”온창섭은 그대로 속이 뒤집혀 버릴 지경이었다.이건 거의 강도나 다름없었다.분명 안 본다고 했는데, 왕 기사는 사람을 시켜 그를 한쪽으로 데려갔다. 사실상 억지로 보게 만든 셈이었다.양수진과 아이들도 뭔가 말하려 했지만, 하이석 뒤에 서 있는 검은 양복 차림의 사내들을 보자 차마 나서지 못했다.“하이석 씨, 이건 불법입니다! 경찰 부를 거예요. 당신 꼭 잡혀갈 줄 알아요!” 온창섭이 악을 쓰자 하이석은 느긋하게 대꾸했다.“다 보고 나서도 신고하고 싶으시면 하세요. 안 말립니다.”온창섭은 차갑게 코웃음쳤다.왕 기사가 갈색 서류 봉투를 건네자, 그는 거칠게 봉투를 찢어 안의 서류를 꺼냈다.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던 양수진과 두 아이는, 그의 표정이 분노에서 충격으로 바뀌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온몸이 사정없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시선만큼은 끝까지 서류에 박혀 있었다.손끝엔 힘이 잔뜩 들어갔고, 이마엔 핏줄이 불거졌다.그는 서류를 한 장 한 장 아주 천천히 넘겼다. 전부 서로 다른 기관에서 나온 친자 확인 결과였다.그런데 결과는 놀랍도록 같았다.그 안에는 온유정과 그의 친자 감정 결과가 들어 있었다.결과는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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