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Kabanata 291 - Kabanata 300

392 Kabanata

제291화

휴대폰 화면이 계속 켜지자 비서가 귀띔했다. "대표님, 휴대폰이 계속 울리는 것 같아요."허설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휴대폰을 들었다.안초희가 메시지를 한가득 보냈다."설아 씨, 이 영상 우리 회사 게임 아니야? 유출된 거야?"허설아가 영상을 눌렀다.게임 남자 주인공 중 하나가 등장하는 영상이었다.쓰인 일러스트는 전에 서풍 작품을 표절했다고 논란되었던 그 그림이었다.해당 그림은 이미 교체가 된 상태였다.하지만 영상 댓글에 서풍 팬들이 대거 몰려와 서풍 작품을 표절한 일러스트라고 지적하고 있었다.[출시도 전에 서풍 작가님 일러스트 표절해요? 그림판 팬들이 가만히 있는 거 죽은 거 아니거든요!][이게 뭔 쓰레기 게임이야. 아트도 왜 이따위야?][서풍 작가님이 직접 의뢰 받으신 게 아닐까요?][절대 아니에요! 화풍이나 터치나 채색 방식은 아무리 봐도 아무리 봐도 서풍 작가님 본인 작업 아니에요!]다른 게시글에서도 이 게임이 서풍을 표절했다는 글이 추천을 받아 상단에 고정되어 있었다.허설아가 안초희에게 답장을 보냈다."유출된 것 같아. 법무팀한테 넘겨."안초희가 우는 이모티콘을 십여 개 연달아 보냈다.예상대로라면 또 야근이었다.허설아는 이미 퇴사했으니 더 이상 뭐라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권율 그룹 직원이라고 밝힌 제보자가 올린 제보 글에서 게임 자료를 유출한 직원이 마케팅팀 허모 씨라는 주장이 나왔다.나름 근거도 있었다.허설아 이름 세 자만 직접 언급하지 않은 셈이었다. 권율 그룹에는 다른 게임도 있는데 이런 유출을 질색하는 플레이어들의 허모 씨에 욕설이 댓글창을 점령했다.SNS를 확인해보니 서풍 계정으로 이 게임 일러스트를 의뢰 받은 게 맞냐고 묻는 DM이 들어와 있었다.허설아는 답장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하던 업무를 계속했다.권율 그룹 쪽에서 알아서 처리할 테니 자기가 나서서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다.하지만 허설아를 지목하는 그 제보글들은 전부 캡처해뒀다.처음엔 별것 아니려니 했는데 저녁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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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마지막으로 만난 지 시간이 꽤 지나 있었다. 허설아는 요즘 공장 일로 계속 바빴다.허준 그룹 공장 안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조용히 서 있었다.어릴 때 처음으로 연동근을 따라 공장에 왔던 날처럼 말이다.연동근이 공장 안에 서서 허설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설아야, 나중에 네가 엄마 아빠 사업을 이어받든 아니든 이것 하나만은 꼭 기억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돈 버는 게 아니라 생명이야.""사업하는 사람은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자연을 귀하게 여겨야 해.""양심이 없으면 돈은 더 많이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양심이 있어야 더 멀리 갈 수 있어."그때 허설아는 연동근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직접 연동근이 서 있던 자리에 서 보니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허준 그룹 공장은 위치가 좀 외진 편이었다.허설아는 방금 2종 보통 기능시험을 통과했다.실기 시험이 두 번 더 남아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요즘 택시를 타고 출퇴근을 하기는 했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오늘 권지헌이 데리러 왔다고 해서 허설아도 좀 의아했다. 날짜를 계산해 보니 권지헌이 퇴원할 때쯤이었다. 허설아가 바쁜 건 주변 사람 모두 느끼고 있었다.권지헌도 알 수 있었다.메시지를 보내도 허설아가 거의 답장하지 않았다.답장이 와도 늦은 밤에 몇 개만 골라서 보내는 정도였다.오늘 오는 길에 권지헌은 특별히 옷을 갈아입고 온 것이었다. 허설아 시선은 내내 창밖을 향해 있었다.권지헌이 허설아 앞에서 손을 흔들었다."무슨 생각 해?"허설아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권지헌 얼굴을 마주쳤다.살이 빠져 있었다.오래 누워 있었으니 살이 빠지는 건 당연했다.머리카락도 많이 길었는데 아직 다듬을 시간이 없었던 듯했다. 남자 머리는 매달 한 번씩 정기적으로 다듬지 않으면 가로수 사이 관목나무처럼 지저분하게 자랐다. 하지만 권지헌한테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여전히 단정하고 기품이 있었다. 좀 야위었지만 오히려 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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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권지헌이 장발이라니.감히 상사할 수조차 없지만 잘생기긴 할 것 같았다. 저 얼굴이면 삭발을 해도 잘생겼을 테니.허설아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휴드폰으로 앱을 열어 권지헌 장발 이미지를 합성해 봤다.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운전석에 있던 조민규가 적당한 타이밍에 입을 열었다."대표님, 외모가 회사 이미지와 직결되니 신중하게 생각해 주십시오."조민규는 사실 대표님 머리 스타일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대표님이 허설아한테 머리를 잘라달라는 거잖아!눈치 있는 비서라면 대표님이 뭘 원하는지 알아야 하는 법이었다.역시나 권지헌이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이 머리로 혼인신고 하러 갈 수는 없잖아."혼인신고 얘기가 나오자 허설아가 눈을 깜빡였다.휴대폰을 꺼내 타이핑해서 권지헌에게 내밀었다."그러니까 더 내가 자르면 안 되겠네요. 잘못 자르면 사진이 이상해질 테니까요."권지헌이 허설아 손끝을 잡아 손바닥에 꼭 감쌌다."괜찮아. 이상해도 딱 이번 한 번이야."허설아가 결혼을 후회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하지만 그 말은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허설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휴대폰으로 머리 자르는 방법을 검색하려는데 권지헌이 빼앗아 갔다."오래 보면 차멀미 해.""운전면허는 언제 딸 것 같아?"허설아가 어림잡아 계산하더니 두 손 손가락을 권지헌 앞에 펼쳐 흔들었다.열흘쯤 남았다는 뜻이었다.오늘 흰색 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끝에 복슬복슬한 작은 털실 방울이 달려 있었다. 아마 대학 때 산 것 같았다. 손짓이 대학 때의 허설아 모습이 떠오르게 했다.발랄하고 귀여웠다.권지헌이 손을 뻗어 허설아가 내밀고 있던 손가락과 깍지를 꼈다.부드럽고 따뜻한 손을 꽉 감쌌다."내일 혼인신고 하러 가자."허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권지헌은 허설아의 담담한 눈빛을 보며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허설아 얼굴에서 기쁨이나 설렘을 찾아보려 했지만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권지헌은 허설아의 담담한 눈빛을 못 본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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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허설아와 권지헌도 조민규의 분위기에 감화되었다. 맞잡은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집으로 돌아온 뒤.권지헌이 두 집 문 앞에 서서 고개를 낮추고 옆에 선 허설아를 바라봤다.눈빛으로 어느 쪽으로 갈 건지 물었다.허설아는 망설임 없이 자기 집 문을 열고 들어가 빠르게 닫아버렸다.권지헌 혼자 현관에 덜렁 남겨두었다.남자가 낮게 웃으며 뼈마디가 선명한 손가락으로 문을 똑똑 두드렸다.넘어오라고 재촉하는 것이었다.이어 자기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허설아는 노크 소리와 방으로 들어가기 전 들려온 권지헌의 매력적인 웃음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심장이 덩달아 콩닥거렸다.허민정이 거실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요즘 뜨개질에 빠진 허민정은 온갖 색깔의 실을 잔뜩 사다놓고 집 안 모든 사람과 반려견까지 허민정이 뜬 옷을 입게 했다. 아직 연습 단계라 실력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허설아가 패딩 안에 입고 있는 것도 바로 허민정이 풀었다 뜨고 뜨고는 다시 풀기를 반복한 역작이었다.허설아가 들어오는 걸 본 허민정이 고개를 들었다."왔어? 밥은 먹었어?"허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돌아오는 길에 권지헌과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대충 먹었다.권지헌이 심리 분야 전문가 몇 명을 수소문해서 허설아의 실어증을 진단해보려 했다.허설아는 크게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화상으로 진단을 받아봤는데 의사들이 한결같이 허설아 상태가 좋다고 했다.언젠가 기분이 좋아지면 저절로 목소리가 돌아올 거라 했다.기분이 좋아진다는 기준이 워낙 넓긴 했다.그날, 그 모습은 허설아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권지헌을 살려달라고, 연희와 안수영을 구해달라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려던 순간 목소리가 완전히 잃고 말았다.그때, 세상은 마치 음소거 버튼을 눌러 놓은 것처럼 조용해졌다.허준 그룹에 말 못 하는 대표가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만 아니었으면 허설아는 오히려 이 상태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허설아 본인은 전혀 조급하지 않았다.서두른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허설아가 허민정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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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권지헌이 문을 닫지 않고 있었다.들어서자마자 누군가 허리를 감싸안고 들어 올렸다.옷가지들까지 같이 안은 채 공중에서 몇 바퀴를 빙글빙글 돌았다.허설아는 손에 옷을 잔뜩 들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권지헌을 한 대 치고 싶어도 손에 옷이 가득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권지헌이 허설아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그제야 손에 들고 있는 옷들을 발견한 권지헌은 옷장을 열고 허설아와 옷가지들을 함께 안으로 내려놓았다. 옷장에는 선반 하나가 있었다.허설아가 올라앉는 순간 뒤로 기울었고 권지헌이 손을 뻗어 잡아당겼다.권지헌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봤다.옷장 안 공간은 그리 넓지 않았다.키 큰 권지헌이 반쯤 몸을 밀어 넣으니 안에 공간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옆엔 권지헌 정장이 가득했고 허설아 손엔 옷가지들까지 있어서 공간이 훨씬 더 좁아졌다.권지헌이 코끝을 허설아 쪽으로 가까이 들이댔다."옷은 왜 들고 온 거야?"잠옷에 외출복, 심지어 속옷까지 다 챙겨왔다.허설아가 반짝이는 눈으로 권지헌을 올려다봤다.권지헌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말 안 하면 키스한다."어떻게 말을 해.허설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권지헌의 숨결이 이미 닿고 있었다. 사이에 옷가지들이 잔뜩 있고 딱딱한 옷걸이까지 걸리적거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키스 한 번에 허설아는 손발에 힘이 다 풀린 채 몽롱한 눈으로 권지헌을 바라봤다.옷장 안에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욕실 수도꼭지가 덜 잠긴 건지 똑- 똑-하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허설아는 권지헌을 밀어냈다.화장실에 가서 수도꼭지가 제대로 잠겼나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밀어도 꿈쩍을 않았다.허설아는 차라리 입을 벌려 권지헌 입술 끝을 아프지 않게 살짝 깨물었다. 권지헌이 물러나며 약간 못마땅한 목소리로 물었다. "왜?"허설아가 얼굴을 붉히며 욕실 쪽을 가리켰다.권지헌이 바로 눈치챘다."욕실에서 하고 싶어?"허설아 귀까지 확 달아올랐다. '일부러 그렇게 오해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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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명절이 다가오자 창밖 강변 일대에서는 정부 주관 불꽃 축제가 열렸다.허설아가 권지헌 뺨에 입을 맞추는 순간, 창밖에서 불꽃놀이가 시작됐다.머리를 자르느라 욕실 창문도 열어둔 참이었다.욕실 창문 너머로 화려한 불꽃들이 밤하늘 위에 하나씩 피어났다.권지헌 마음속에도 함께 피어났다.남자 눈빛이 순식간에 빛났다.허설아가 먼저 입을 맞춘 것이다.혹시라도 허설아 얼굴에서 약간의 망설임이라도 보일까 봐 두려웠다.허설아의 입맞춤이 하나에 권지헌 마음속에 불씨가 지폈다.연희를 구했다는 이유로 비겁하게 허설아 마음이 약해지게 했거나 동정심을 샀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허설아를 잡고 싶었다.허설아 손목을 잡아 앞으로 당긴 권지헌은 살짝 긴장된 채 허설아 이마에 이마를 맞댔다.창밖 불꽃놀이 규모가 꽤 컸다.옆집인 구조상 권지헌 침실 욕실과 허설아 침실 욕실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로 붙어 있었다.연희가 허민정 품에 안겨 옆집 침실에서 불꽃놀이를 구경하고 있었다.연희 품에는 곰돌이도 안겨 있었다.허설아 귀에 연희 목소리가 들렸다."할머니, 엄마 어디 갔어요?"허민정이 흔들의자에 앉아 품 안의 연희를 안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아빠한테 갔지."허설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허민정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욕실 안에 바디워시 향이 퍼져 있었다. 명품 브랜드의 남성 향수와 비슷한 향이었는데 매장을 지날 때마다 허설아는 권지헌이 떠올랐다.오래 맡다 보면 머리가 살짝 어지러울 때도 있었다. 권지헌이 허설아 허리를 감싸 안았다. 오똑한 콧등에도 방금 잘라낸 머리카락들이 붙어 있었다.두 사람은 코끝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허설아는 옆집에서 들려오는 허민정과 연희의 대화 소리를 들으며 저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꼭 어른들 눈을 피해 몰래 만나는 것 같았다.옆집에서 연희가 하품 소리를 냈다."아, 엄마가 저한테 말해줬어요. 지헌 삼촌이 아빠라고요."허민정이 품 안의 연희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연희 아빠가 생겨서 좋아?"연희가 뭐라고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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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병원에 누워 있던 시간 동안, 머리 말고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머릿속에는 허설아 잔상만 미친 듯이 맴돌았다.자꾸만 예전이 생각났다.허설아가 자기를 그렇게도 사랑했던 그 시절이.권지헌은 그 안에서 즐기고 빠져들고 헤어나오지 못하면서도 사랑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허설아는 다 받아주고 참아주고 아낌없이 내줬지만 실망은 소리 없이 쌓여갔다.권지헌이 이마를 허설아 어깨 위에 얹었다.큰 손이 허설아 뒷목을 잡아 고개를 숙이지 못하게 했다. 지금 자신의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허설아는 어깨 위로 뜨겁게 끓는 것 같은 액체가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허설아를 데이고 권지헌도 데이게 할 것 같았다."미안해, 설아야. 예전엔 내가 잘못했어."허설아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부드러운 손가락으로 권지헌 어깨를 다독이며 달래듯 말했다. "그건 지헌 씨 집안 교육 방식이 잘못된 거야. 앞으로 연희 교육에는 권씨 집안 사람들 끼어들지 마요."자기 아이가 권지헌처럼 자라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그 마음을 끊임없이 부정하고 억눌러서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켜야 하다니. 뒤틀린 방식이었다.그리고 이번 일로 허설아는 처음두 사람이 사랑하고 함께하는 건 결국 두 집안이 부딪히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허설아는 부모님이 준 사랑으로 꽃을 피우면서 살다가 호화로운 새장 속에서 자라다 겨우 숨 쉴 자유를 찾은 권지헌을 만난 것이었다.어떤 의미에서 권지헌은 정말로 빈털터리였다.허설아가 오히려 넉넉했다.권지헌이 고개를 들며 허설아한테 강하게 입을 맞췄다.불안하고 초조하던 감정이 그 순간 전부 야수처럼 들끓었다. 넘쳐흐르는 욕망 속에서 가지를 뻗어 눈앞의 허설아를 있는 그대로 자기 안에 녹여버리고 싶었다. 허설아가 미래를 얘기하고 아이 얘기를 해준다는 건 둘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뜻이었다.그 기대에 며칠 간 쌓인 권지헌의 기쁨과 불안은 더 깊은 욕망으로 바뀌었다.숨이 엉키며 욕실 안에 조용하게 거친 숨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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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다음 날 아침.허설아가 집으로 돌아와 옷장에서 흰색 롱스커트를 꺼내 입었다.전신 거울 앞에 서서 보다가 다시 들어가 분홍색 원피스로 갈아입고 한 바퀴 돌았다. 괜찮은 것 같았다.허민정이 커피잔을 들고 서서 산뜻하게 단장한 딸을 바라보며 웃었다."어디 가? 이렇게 예쁘게 차려입고?""말이 좀 이상하네요? 난 안 꾸며도 예쁜데!"허설아가 립스틱을 바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지헌 씨랑 혼인신고 하러 가요, 어때요?"모녀의 눈이 마주쳤다.둘 다 상대 눈빛에서 뭔가 다른 감정을 찾으려 했다.허민정은 놀라서 표정관리가 안 되었다. "뭐? 어? 너 뭐라고 했어? 허설아, 나 심장병 환자야!""진짜예요."허민정 손에 든 커피잔이 거의 쏟아질 것처럼 덜덜 떨렸다. 하고 싶은 말이 수도 없이 많았다. "목소리 돌아온 거야?"허설아가 눈을 깜빡였다."지금 들리잖아요."좀 쉬긴 했지만 지금 듣기엔 딱히 문제없었다. "아이고!"허민정이 눈을 깜빡이고 또 깜빡였다. 눈가에 눈물이 차올라 흘러내리기 직전이었다.입가를 파르르 떨며 돌아서서 자리를 떴다. 잠시 후 허민정은 자기 방에서 흰 실크 원피스를 가지고 나왔다."이거 입어, 내가 결혼할 때 입었던 거야. 아쉽게도 네 아빠 결혼 양복은 안 남겨뒀어. 권지헌 씨는 너희 아빠보다 체격이 커서 어차피 안 맞겠지만."허민정은 긴장하면 말이 많아지는 편이었다.말을 줄줄이 늘어놓았다. 허설아는 허민정의 이 원피스를 처음 보는 것이었다.보관이 잘 되어 있는 원피스는 높은 목깃에 금붕어 매듭 단추에, 금실 장식이 테두리를 이뤘고 백년해로를 상징하는 활짝 핀 백합꽃 자수가 정교하게 놓여 있었다"이건 좀 그래요. 엄마가 결혼할 때 입던 건데 내가 망가뜨리면 어떡해요.""망가지면 망가지는 거지! 내 나이에 이걸 언제 또 입어? 관 속에 입고 들어갈 것도 아닌데!"허민정을 당해낼 수 없었던 허설아는 방에 들어가 원피스로 갈아입었다.길이가 조금 길어서 바닥에 닿을 듯 말 듯 발목을 스쳤다. 허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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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권지헌은 허설아 이름이 적힌 서류를 가져갔다."내가 보관할게."허설아가 어이없으면서도 웃겼다.차 안에서 방금 구청에서 찍은 사진을 허민정에게 보냈다.권지헌도 박희수와 권정우에게 한 장 보냈다.잠시 후 박희수한테 전화가 오더니 첫마디부터 욕을 퍼부었다. "권지헌 너 미쳤어?""아무리 설아 씨랑 결혼하고 싶어서 정신이 나가도 그렇지, 합성은 왜 해!"권지헌이 미간을 문지르며 허설아한테 휴대폰을 건넸다."어머니, 안녕하세요. 저랑 지헌 씨 진짜 혼인신고 했어요.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박희수가 잠시 말이 없었다.박희수는 손으로 수화기를 가리고 권정우한테 귓속말로 물었다."여보, 목소리도 변조가 돼?"권정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음성 변조기 앱 있잖아, 몰랐어?""변조기 앱 소리 같진 않던데? 설아 씨가 지헌이와 결혼했다는데 당신 휴대폰 봐봐."권정우가 한 마디 더 보탰다."설아 씨가 말 못 하잖아. 지헌이가 미친 거 아닐까?"역시 부부다웠다.생각하는 방식이 판박이였다.친아들이 미쳤으면 미쳤지, 정말로 허설아와 결혼했다는 건 절대 믿지 않았다. 권정우가 자기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니 박희수와 서로 쳐다보았다. 두 사람 모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에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박희수가 휴대폰을 들고 흥분해서 말했다."환불은 안 돼요, 알았죠!""설아 씨, 목소리 돌아온 거예요?"허설아가 조용히 말했다."네, 지헌 씨랑 결혼한다니까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온 것 같아요."박희수는 당장 울 것 같았다.전화를 끊은 뒤 박희수는 허설아한테 돈을 두둑하게 보냈다.메모도 남겼다."결혼 축하해. 아줌마 축의금이야."권정우가 메모를 보며 중얼거렸다."왜 아직도 아줌마야?""당신이 뭘 알아. 여자들은 예의 차리는 걸 좋아해. 설아가 혹시 지헌이한테 어떻게 설득당했는지도 모르잖아.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가야지. 이건 결혼 축하금이지 며느리 인사값이 아니잖아.""맞네, 인사값을 깜빡했네."권정우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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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혼인신고 과정은 허설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간단했다.조민규는 전문 스냅 촬영 작가까지 데려왔다.허설아와 권지헌의 손이 혼인신고서 위에 포개진 사진을 찍었다.얼굴은 안 보이고 겹쳐진 손만 담긴 사진이었다.사진 속 빛과 그림자가 잘 어우러져 있었다.틴달 현상으로 햇살의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났다.허설아와 권지헌이 포개 놓은 손 위로 빛이 내려앉으며 사진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허설아는 마음에 들었다.뒤로 넘겨보니 스냅 작가가 두 사람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이 나왔다.다 좋은데 허설아가 실수로 밀어버린 권지헌 뒤통수 머리가 너무 눈에 띄었다.허설아는 권지헌이 볼까 봐 바로 휙 넘겼다.다행히 권지헌 머릿속은 방금 허설아가 여보 소리로 가득 차 있어서 다른 데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허설아는 권지헌 머리가 떠올라 왠지 좀 찔렸다. 팔꿈치로 권지헌 가슴을 쿡 찌르며 조심스럽게 제안했다."그냥 모자 쓰고 출근하는 거 어때?""모자?"허설아와 눈이 마주친 권지헌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뒤통수를 만졌다.한 군데 움푹 패인 느낌이 났다.어젯밤 허설아의 찔려하던 눈빛과 방금 사진을 슬쩍 가린 의도가 이해되어 실소가 터졌다."괜찮아, 이 정도는 문제 없어.""그, 그래도 회의 있지 않아?"권지헌이 담담하게 말했다."연희가 깎아줬다고 하면 주주들도 이해해 줄 거야."연희한테 뒤집어씌우다니, 괜찮을 걸까.허설아는 좀 아니다 싶었지만 권지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권지헌이 허설아 손을 꽉 잡았다."산소에 한 번 가자. 아버지한테도 소식 알려드려야지."허설아가 권지헌을 바라봤다.허설아도 아빠한테 알리고 싶어서 주말에 연희랑 같이 가려 했는데 권지헌이 먼저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오늘 탄 차는 아빠가 원하던 지프차였다.권지헌이 차분하게 말했다."열여덟 살 때부터 너랑 결혼하고 싶었어.""그동안 가끔 꿈을 꾸면 대학 때 그냥 네 손 잡아끌고 혼인신고 하러 가기도 했어." 허설아가 좀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리며 피식 웃었다."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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