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Chapter 471 - Chapter 480

550 Chapters

제471화

권지민이 손으로 뺨을 만졌다."형, 얼굴을 때리면 형수님 다음에 볼 때 곤란하잖아.""멀리 떨어져."권지민이 힐끗 흘기며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원래 형수님은 나한테 눈길도 안 돌리는데 뭘 그렇게 두려워해."권지헌이 권지민 옷깃을 잡아채며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냉소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네까짓게 내가 무서워할 만한 상대야?"무서운 게 아니었다.불쾌한 것이었다.자기가 좋아하는 여자, 자기 아내를 동생이 탐하고 뒤에서 엿보고 있다는 게 권지헌의 마음속 분노를 활활 태웠다.눈앞의 권지민을 그 불 속에 같이 집어던져 태워버리고 싶었다.권지민은 겁먹지 않고 오히려 차분하게 웃었다."형은 항상 그래."권지헌이 손을 놓으며 권지민을 옆으로 밀쳐버렸다.더러운 것을 만진 것처럼 휴지를 뽑아 손등을 닦았다.권지민이 심하게 기침을 했다.속에서 올라오는 억울함과 분노를 억지로 눌렀다.오장육부를 다 쏟아낼 것 같은 기침을 하다가 탁자 앞에 가서 물을 몇 모금 마셔서야 겨우 목 안의 비린 맛이 가라앉았다.등 뒤에서 권지헌 목소리가 들렸다."삼촌이 나한테 준 지분은 안 받을 거야. 하지만 네가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네 문제야. 내일 당장 해주시로 꺼져. 내 허락 없이는 돌아오지 마."권율 그룹 현 결정권자인 권지헌한테는 권지민을 유배보낼 권한이 있었다.권지민이 기침을 몇 번 하며 말했다."그래. 형 말대로 할게.""네 형수가 물어보면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지."권지헌은 허설아가 이런 일에 어두운 편이라 생각했다.어쩌면 이번 사고에서 권지민이 도와준 것 때문에 권지민한테 관심을 더 가질 수도 있었다. 권지혁이나 권서진한테 대하듯 말이다. 권지헌은 허설아가 이 더러운 것들을 알기를 원하지 않았다.권지민이 소리 없이 웃었다."당연하지. 해주시는 살기 좋은 곳이지. 형 배려 고마워.""꺼져."권지민이 문 앞까지 걷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권지헌을 쳐다보더니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톤으로 물었다. "형, 자격이 없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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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2화

서재 문을 닫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고요한 별채 안, 허설아 방에만 불이 켜져 있고 의료진이 밤새 상태를 살폈다.권지헌이 허설아 방 문 앞에 서 있는데 홈웨어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 화면이 켜졌다.조민규한테서 온 메시지였다. 안유민이 연행된 후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권지헌이 방문에 손가락을 걸친 채로 카메라 사각지대를 찾아 발길을 돌려 베란다 쪽으로 나갔다.바람이 차고 쓸쓸한 마당에서도 사과나무는 잘 자라 있었다.생기 넘치는 가지에 눈이 쌓여 있었다.권지헌이 전화를 걸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위에 압박을 줘서 답 내놓으라고 해. 권율 그룹이 투자한 빌딩 철수할 수도 있으니까.""알겠습니다."작게 열린 창문 틈새로 싸늘할 겨울 찬바람이 파고들었고 권지헌 얼굴도 싸늘해졌다."3일 안에 그 남자 찾아."더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전에 허설아 공장 사건은 관련된 사람이 많고 허준 그룹 이전 직원들도 얽혀 있었다. 그래서 허설아가 직접 처리했고 권지헌은 나서지 않았다.그 덕에 턱에 점 있는 남자한테 다시 허설아를 건드릴 기회를 준 것이다.조민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네, 이미 찾고 있습니다."목소리는 그다지 상황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 남자 이력을 보면 워낙 온갖 밑바닥을 굴러다니던 인간으로 미꾸라지처럼 잡기가 어려웠다. 허설아 차를 들이받은 후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현장에서 빠져나간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방법으로는 쉽지 않았다.권지헌이 조민규와 통화를 끊고 창문을 닫으며 분부했다."설아가 일어나면 바로 연락해. 나 물어보면 서은석 집에 간다고 해.""알겠습니다, 대표님."도우미한테서 외투를 받아 걸친 권지헌이 방 안으로 들어가 세상 모른 채 자고 있는 허설아를 바라보았다. 꿈에서 뭘 보는 건지 입꼬리가 올라가 있고 뺨이 발그레해서 빨간 사과 같았다.머리에 붕대를 새로 감고 몸에서 약 냄새가 났는데 권지헌은 그 냄새가 오히려 향기롭게 느껴졌다.허설아가 무탈하게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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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3화

"고마워."서은석이 설명했다."안에 다른 가족들이 있어서 들어오라고 못 했어."서은석은 집에서 여섯째라 다른 형제자매들이 있었다. 권지헌이 한밤중에 찾아와서, 그것도 조직 사람을 빌리겠다는 얘기는 집 안에서 할 수가 없었다.사이가 좋으니 망정이지, 산책하러 나간다고 하면 집에서 의아하게 여겨도 묻지는 않을 것이었다.하지만 영하의 날씨에 바람 쐬러 나가는 사람도 없었다.권지헌이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고개를 들다 둘째네 별채 2층 방에서 느껴지는 시선과 마주쳤다.2층 창문, 한예린이 짙은 빨간색 V넥 잠옷을 입고 권지헌을 보며 요염하게 웃고 있었다.붉은 입술이 살짝 열리며 소리 없이 오빠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권지헌은 바로 시선을 거뒀다. 서은석도 한예린을 발견하고 숨기지 않고 외마디 소리를 외쳤다. "아이——야!"얼른 눈을 가리며 권지헌을 잡아끌고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나 아무것도 못 봤어. 원영이가 알면 화낼 거야. 안 그래, 지헌아."권지헌이 걸음을 옮기며 차갑게 웃었다.혐오와 경멸을 전혀 숨기지 않은 말투였다."역겨운 것."한예린은 권지헌을 볼 때마다 눈빛에 탐욕과 욕구가 쓰여 있었다. 권지헌도 다 알고 있었지만 대꾸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여자들이 그런 눈으로 훑어보는 게 싫었다. 가치를 저울질하고 집안을 따지고 외모와 몸매를 훑어보며 권지헌한테서 뭘 얻을 수 있는지 계산하는 눈빛이었다.권지헌이 아니었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여자들이었다.한예린은 권지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마음속에서 서러움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커튼을 홱 당겼다.권지민이 들어오더니 방금 한예린이 권지헌한테 추파를 던지던 장면을 못 본 척했다."내일 해주시 가야 해. 너는 안 가도 돼.""그게 무슨 말이야?"한예린이 멍해졌다.아무리 두 사람이 서로 감정이 없어도 명의로는 약혼녀였다. 권지민이 한예린을 데려가지 않으면 누가 봐도 이 약혼이 웃음거리라는 걸 알 것이었다.권지민이 숨기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여기 있어야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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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4화

별채로 돌아온 권지헌이 말했다."여기서 하룻밤 자고 갈래?""그래, 어차피 돌아가기도 귀찮은데 일단 네 서재로 가자."서재 문이 다시 열릴 때는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서은석이 하품을 하며 게스트룸으로 들어갔다.권지헌도 씻고 나서 허설아 방에 들어갔다.방 안에 의료 기기가 꽤 많아서 권지헌이 누울 자리가 변변치 않았다. 잠시 허설아를 바라보던 권지헌은 옆에 있던 간이침대에 누웠다.의료진이 보다 못해 말했다."대표님, 위층에서 쉬세요. 여기는 저희가 있을 테니 사모님한테 변화가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게요.""괜찮아요. 제가 여기 있을 테니 다들 좀 쉬어요."권지헌이 얇은 담요 한 장을 덮고 눈을 감았다.좁은 간이침대에서 편하게 잘 리가 없었다.그래도 상관없었다.그냥 허설아 곁에 있고 싶었다.더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아는 의료진도 입을 닫았다.속으로는 대표님과 사모님이 금실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대부분의 재벌가들은 쇼윈도 부부인 경우가 많아서 이렇게 다정하게 챙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더군다나 권지헌이 허설아 동향을 항상 신경 쓴다는 건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방문이 닫히고 야간등 하나만 켜졌다.잠이 깊지 않았던 권지헌은 잠시 꿈을 꾸었다.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꿈이었다.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한 여학생이 길가에 쪼그려 앉아 전화하고 있었다."아빠, 나 이정로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나 다친 고양이 봤어요."권지헌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고양이?교복 치맛자락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실제로 옹크리고 있는 노란 고양이가 있었다. 몸에 피가 묻어 있었는데 교통 사고가 난 건 아닌지 몰랐다.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어서 고양이가 길을 건너려다가 사고나기 딱 좋은 위치였다.권지헌은 이해되지 않았다. 고양이 하나 때문에 등교를 지체하는 사람이 있다니.이 세상에 매일 다치는 고양이가 얼마나 많은데.저 여자는 그걸 다 챙길 셈인가? 신호가 길어서 아직 파란불이 안 켜지기 전, 길 어귀에 차가 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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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여기서 잔 거야?""응, 네가 자다가 부를까 봐."허설아가 옆 자리를 손으로 툭툭 두드렸다."올라와서 여기서 자, 간이침대보다 낫잖아."권지헌이 힐끗 쳐다봤다."됐어. 네가 불편하잖아.""이리 와. 내가 너그럽게 절반 줄게, 올라와."물을 마시고 나서 입술에 윤기가 돌았고 잘 잔 덕에 혈색도 돌아왔다.권지헌이 못 이기는 척 올라와 누웠다.허설아를 꼭 껴안은 권지헌이 눈을 감고 낮게 말했다."전에 네 말이 맞았어.""뭐가 맞았는데?""고등학교 때 널 만났으면 금방 너 사랑했을 것 같아." 허설아가 잠시 멈칫했다. 뜬금없이 이게 무슨 말인지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이미 눈을 감은 권지헌 눈 밑에 짙은 다크서클이 드러나 있어 너무 피곤해 보였다. 깨우기 미안해서 꾹 참고 같이 눈을 감았다.-다음 날 아침.한예린이 울먹이며 본채에 나타나 박희수한테 하소연했다."큰어머니, 지민 씨가 왜 화가 난 건지 모르겠어요. 어젯밤에 저한테 엄청 화를 냈어요, 저 너무 겁나요……"얼굴이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어도 이목구비는 나쁘지 않았다. 울 때 각도를 잡으면 그럴싸하게 마음을 건드리는 구석이 있었다.박희수는 몇 마디 타일러주고 싶었다. "지민이가 감수성이 좀 예민한 편이야. 같이 살 사람이니까 더 잘 이해해야 하는 거야.""저도 많이 노력했어요. 어젯밤에 큰형님 집에서 돌아온 뒤로 저한테 사업에 도움도 안 된다는 둥, 쓸모없다는 둥 하면서 화냈어요."박희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권지민이 허설아가 사업 성공한 걸 보고 한예린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 걸까?탈피 시리즈가 성공을 거두면서 권율 그룹 주얼리 주식이 하루 사이에 꽤 올랐다.오늘도 계속 오르는 중이었다.이른 아침부터 이사회에서 권호성한테 연락해서 집안에 좋은 며느리를 들였다며 칭찬했었다. 허설아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권호성이 몇 마디 하려다가 칭찬이 어찌나 자자한지 권호성까지 높이 추켜세웠다. 권정우가 옆에 서 있어서 웃을 수도 없었지만 광대가 내려올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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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6화

유화 이모가 찾아갔을 때 허설아는 깨어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었다.유화 이모가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하자 허설아가 싱긋 웃었다.유화 이모는 새삼 대표님 사모님이 진짜 예쁘다고 생각했다.얼굴이 예쁜 사람이 있고 풍기는 분위기가 예쁜 사람이 있었다.허설아가 부드러운 웃음을 머금고 따뜻한 햇볕을 받는 모습을 본 유화 이모는 박희수 젊을 때가 떠올랐다.그때 박희수도 이렇게 아름답고 우아했었다. 하지만 허설아한테는 단단한 면이 더해져 있었다.허설아는 유화 이모한테 돌아가서 권지헌이 쉬고 있으니 박희수더러 권호성한테 중재를 도와달라고 전하라고 했다. 유화 이모가 무릎을 탁 쳤다.그래. 원래 이 혼사는 권호성이 밀어붙인 거였다.권지민이 박희수 친아들도 아니었다.박희수가 뭐라 해도 빌미만 될 뿐이었다.돌아가기 전에 유화 이모가 저도 모르게 부드럽게 한마디 더 했다."바깥바람이 세니까 들어가세요. 별채에 선룸이 있는데 지금 당장 정리해 드릴까요? 아니면 본채 선룸에 가세요, 거긴 꽃도 있어요.""괜찮아요. 잠깐 바람 쐬러 나온 거예요. 고마워요, 유화 이모."유화 이모는 마음이 훈훈해졌다.박희수를 따른 지도 삼십 년이었다. 박희수가 시집오기 전부터 함께한 박희수 도우미였다. 오랜 세월 동안 박희수와 권지헌이 크는 것도 봐왔다.그런데 허설아처럼 편하게 대해준 사람이 없었다.잠시 후.유화 이모가 본채로 돌아와서 말했다."작은 사모님께서 대표님이 막 잠드셨다고 해서 제가 부르지 않았어요. 주무시는 데 방해가 될까 봐서요."박희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반사적으로 나무랐다."당연하지, 아무리 급해도 설아 쉬는 거 방해하면 안 되지."유화 이모가 대꾸하며 입을 가린 채 박희수 귀에 대고 말했다."작은 사모님께서 어르신 찾아가 보시래요."박희수 눈이 반짝였다.허설아가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 금방 알아챘다.바로 얼굴이 환해지며 말했다."예린아, 잠깐만 기다려. 할아버지한테 전화해서 오셔서 판단 좀 해달라고 해볼게. 너도 알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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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7화

허설아도 신경 안 쓰는 일을 이렇게 마음 쓰다니. 저녁에 돌아와 온실에 들어간 권정우가 안경까지 쓰고 두리번거리더니 박희수를 불렀다."내 국화 어디 갔어? 왜 없어? 내 꽃은!""유화 이모가 설아한테 갖다줬어. 별채 선룸에 장미 몇 개밖에 없어서 허전하다길래 당신 화분이 좋아보여서 같이 가져갔어."권정우가 미간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소리야? 그 화분들이 얼마짜린지 알아? 나 그거 못 보면 매일 잠이 안 와!" 매일 권정우가 직접 손보는 화분들이었다. 정원사한테 맡기는 것조차 시름 놓이지 않았다. 이제 못 본다니 마치 마누라를 못 보는 것처럼 마음이 허전했다."안 돼, 가져와야 해."말하며 밖으로 나가려 했다. 고작 화분 때문에 진짜 가겠다는 기색이었다.박희수가 황급히 불렀다."영감, 창피한 줄도 몰라? 화분 몇 개 때문에 한밤중에 며느리한테 돌려달라고 할 거야? 체면 좀 차려!"하나뿐인 며느리한테 그러는 게 말이 되냐고.화분이야 마음에 들면 또 사면 됐다.권정우가 중얼거렸다."안 돼, 가져와야 해. 내 보물 화분 못 보면 잠을 못 자. 그 화분들도 다 조선 시대 건데 걔네가 어떻게 다룰 줄 알겠어?"박희수는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이 영감탱이는 자기 수집품 앞에서는 늘 이렇게 안절부절했다.권정우가 신발을 신고 다시 들어오더니 화분 두 개를 양쪽에 안고 나와서 바꾸러 간다고 했다.박희수는 창피해서 따라가지 않았다.삼십 분이 지나고.권정우가 환한 얼굴로 흙투성이가 되어 빈손으로 돌아왔다.박희수가 물었다."당신 보물 화분은?""거기 놔두고 왔어! 애들이 귀한 걸 다룰 줄 모르니까 내가 직접 정리해줬어. 내일 저녁에 또 가야겠어!"박희수가 눈을 흘겼다.한밤중에 아들 내외한테 가서 화초 관리를 해주고 온 것이었다.권정우가 손을 씻으며 흐뭇하게 말했다."연희랑 같이 했어. '조심해요, 할아버지. 연희가 도와줄게요.' 하는데 착하기도 하지, 우리 손녀."이 나이 먹고 좋아 죽는 모습을 본 박희수가 웃으며 한마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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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8화

권정우가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연희 말씀하시는 거예요?"권호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수염을 씰룩거리며 퉁명스레 말했다."아니면 너겠어?"권정우가 알겠다고 하며 유화 이모한테 데려오라고 했다.잠시 후 권지헌이 허설아 휠체어를 밀며 들어왔다. 꼭꼭 싸매고 있다가 집안에 들어와서야 얼굴의 목도리를 풀었다.권호성은 처음에는 여전히 못마땅했다.휠체어에까지 앉아 저렇게 꼭꼭 감싸고 있다니, 누가 보면 권지헌이 귀한 보물이라도 모시는 것 같았다.그런데 허설아 머리에 감긴 붕대를 보고 그날 전시회에서 허설아가 빈틈 없이 인터뷰에 응하던 모습이 떠올랐다.줄곧 오르고 있는 권율 그룹 주가도 떠오른 권호성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희를 품에 안고 종종걸음으로 들어온 박시연이 연희를 내려놓고 유화 이모 옆에 섰다.연희가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훑었다.한 바퀴 돌며 인사를 했지만 유독 권호성만 그냥 지나쳤다.권호성은 지팡이를 짚고 눈썹을 씰룩거리며 한참 기다렸다. 연희 눈에 띄기를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다.고개를 들어보니 연희가 그 자리에 앉아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등을 꼿꼿이 세우고 단정하게 앉아 조용히 책을 보다가 가끔 박시연과 몇 마디 나눴다.입을 열면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허설아가 설명했다."겨울 방학 이후로 매일 이 시간엔 그림책을 봐요."연희 고정 스케줄이라는 뜻이었다.어디를 가도 바뀌지 않았다.권호성은 처음에 세 살배기가 그림책을 얼마나 알까 싶었다.영어 단어도 몇 개 모를 거라 생각했다. 아마 그냥 폼만 잡는 거겠지.이따가 인내심이 다 떨어지면 여기저기 만지고 둘러보겠지. 엄마한테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가 얼마나 제대로 컸을지 권호성은 믿지 않았다.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연희는 그림책을 다 보고 질문을 하더니 박시연과 그림책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고 피아노 앞으로 갔다.본채의 피아노는 권지헌이 어릴 때 박희수 아버지가 선물준 것이었다.요즘은 거의 연희가 사용하고 있었다. 아직 완전한 곡을 다 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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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9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왕할아버지."권호성이 연희를 뚫어지게 봤다.노인과 아이가 한참 눈을 마주쳤다.꼬맹이가 생김새도 남다르고 성격도 야무졌다. 나중에 허설아와 권지헌이 낳는 아이도 이렇다면 권씨 집안 다음 세대 걱정은 없었다.아쉬운 건 이 아이가 권씨 핏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권호성이 허설아를 봤다."너희들 이 아이 성은 언제 바꿀 생각이야? 권씨 집안 사람이면 권씨 성을 따라야지."허설아가 태연하게 말했다."안 바꿔요. 바꿔도 제 성으로 바꿀 거예요. 나중에 기회가 돼서 아이가 생기면 그때 지헌이 성을 따르면 되죠."권호성이 미간을 찌푸렸다.속으로는 연희가 사실 마음에 들었다.여자아이인 것도 권지헌 친자식이 아닌 것만 아니면 그 외에는 다 나무랄 데가 없었다.적어도 권씨 성으로 바꾸면 마음에 걸리는 게 조금은 덜할 것 같았다. 하지만 허설아 태도를 보면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권호성이 또 입을 꾹 닫고 지팡이를 쥐며 혼자 속을 끓였다.포기한 게 아니라 권지헌이 자기 말을 들을 리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연희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왕할아버지, 제 성이 그렇게 중요해요? 외할아버지 성을 따랐다고 해서 엄마, 아빠 자식이 아닌 건 아니잖아요?"그건 아니지만, 이건 다른 문제잖아? 권호성이 코웃음을 쳤다."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이야. 아버지 성을 따르지 않으면 뿌리를 잊는 거야."연희가 짧게 대꾸했다."그러면 저는 엄마의 아빠 성을 따른 거니까 같은 거잖아요."권호성이 말하기도 전에 연희가 또 물었다."왕할아버지, 왕할아버지의 왕할아버지 이름이 뭔지 기억해요?"권호성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권호성의 증조할아버지는 데릴사위로 들어온 사람이었다!그때 처음으로 권씨 성을 쓰기 시작했다.다시 말해 권씨 성 자체가 증조할머니 쪽에서 물려받은 것이었다.이게 무슨 뿌리를 지키는 것이란 말인가?권호성이 뭔가 말하려는데 목구멍에 뭔가 막힌 것처럼 도무지 말이 나오질 않았다.권정우가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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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0화

남자는 두들겨 맞아 온몸이 성한 데가 없었다.권지헌의 질문을 듣고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지만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조직 쪽 일과 그 바닥에서만 통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서은석이 권지헌보다 훨씬 잘 알았다.이 남자는 분명히 뭔가 책 잡힌 게 있어서 말을 못 하는 것이었다.입을 열면 진짜로 목숨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서은석이 옆에 있는 중년 남자에게 눈짓했다.얼굴에 난 칼자국이 왼쪽 눈 밑에서 오른쪽 입술 끝까지 뻗어 있는 남자였다.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서은석이 손을 뻗어 권지헌 팔을 잡아당겼다."저쪽에 가서 담배 한 대 피우자."권지헌이 서은석을 따라 한쪽으로 물러나자 칼자국 남자가 다가가 남자 옆에 쪼그려 앉아 귓속말을 몇 마디 했다.폐건물 안은 온통 모래와 먼지투성이였다.권지헌이 담배에 불을 붙이더니 한 모금만 빨고 바닥에 던지고 발로 불을 껐다.서은석이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진짜 끊었어?""응. 집에 들어가면 설아가 냄새 난다고 싫어해."그 말에 서은석의 기분이 좀 안 좋아졌다.행복하면 혼자 좀 즐기지. 꼭 남 기분 언짢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할까? 송원영은 서은석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담배를 펴도 술을 마셔도, 옆에 어떤 여자가 나타나도 못 본 척하고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누가 다가오면 오히려 송원영이 먼저 손을 놓아버렸다.서은석이 담배를 한 모금 빨며 답답한 듯 말했다. "여자들은 다 그래? 네 와이프도 전엔 네가 뭘 하든 신경 안 썼잖아?" "전엔 간섭 안 했고 지금도 간섭은 안 해." 다만 전에는 허설아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담배를 끊지 않았을 뿐이었다. 아마도 사랑을 받는다고 제멋대로 한 것이다. 허설아가 모든 걸 받아주고, 모든 걸 용서해 줄 거라고 제멋대로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서은석이 별생각 없이 말했다."얼마 전에 온라인에서 어떤 글 봤는데 여자친구 있는 남자는 앉아서 볼일 봐야 한다고 하더라. 나도 그렇게 했는데 원영이 아무 반응도 없었어."권지헌이 고개를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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