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Chapter 561 - Chapter 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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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1화

삼십 분 후, àl'aube 공장에 불이 났다.불길이 하늘을 뒤덮을 듯 치솟았고 공장 전체가 화마에 휩쓸렸다. 수많은 기계가 연이어 폭발하면서 불길은 점점 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갔다.허설아는 잠결에 무언가 축축한 것이 필사적으로 간절하게 계속 얼굴을 핥는 느낌에 눈을 떴다. 날카롭고 다급한 고양이 울음소리가 혼수상태의 허설아를 깨우려는 듯 계속 들렸다. 눈을 떠보니 고등어 무늬 고양이가 허설아의 얼굴과 코를 쉴 새 없이 필사적으로 핥고 있었다. 허설아가 간신히 눈을 뜨자 고양이는 휴게실 위쪽 환기 통로로 훌쩍 뛰어오르더니 따라오라는 듯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다. 허설아는 온몸에 힘이 없었다. 문틈 새로 이미 연기가 스며들고 있었고 휴게실 소파에도 불길이 번지려 하고 있었다."야옹! 야옹!"허설아가 이를 악물고 마지막 힘을 끌어모았다."금방 갈게."허설아는 소파와 테이블을 계단 삼아 고양이 뒤를 따라 통로를 기어나갔다.기어가는 내내 무릎에 닿는 바지가 밑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녹아드는 것이 보였다. 무릎 피부도 타는 듯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코안 가득한 연기는 이미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고양이 뒤만 보며 기어가다 보니 어느새 공장 바깥쪽 작은 통로로 빠져나와 있었다.새끼 고양이들이 몰려들더니 어미와 허설아 모두 나온 걸 보고 쉴 새 없이 야옹야옹 울어댔다.허설아는 몇 번이나 심하게 기침했다. 고양이 털이 반 넘게 그슬리고 하얀 가슴털이 새까맣게 그을려 있는 걸 본 허설아가 손을 뻗어 쓰다듬었다."고마워. 네가 나 살린 거야."고양이가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길게 야옹야옹하고 울었다. 뒤를 돌아보니 공장에서 불길이 하늘까지 치솟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막 완성된 첫 번째 물량은 이미 출고된 상태였고 직원들도 대부분 구조되었다. 공장 앞.소방차가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고 공장 전체가 아수라장이 되었다.최고급 사양의 랭글러가 공장 밖에 멈추기 무섭게 권지헌이 차에서 뛰어내리며 다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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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2화

허설아는 생각에 잠겼다.휴게실에서 고양이의 까끌까끌한 혀의 촉감에 깨어나 불길을 발견했을 때, 허설아는 차분하고 냉정했다.제일 먼저 한 건 상황 파악이었다. 누군가에게 습격당해 휴게실에 던져진 뒤 문이 잠겼고 공장에 불이 나면서 화재 현장에 갇히게 되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스스로 탈출할지였다. 고양이 뒤를 따라 통로를 기어 나오는 동안 허설아는 감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마치 허설아를 영원히 그 자리에 잡아두려는 것처럼 불길이 쫓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공포감도 무의미해졌다.허설아는 빨리 이곳을 탈출해 살고만 싶었다. 옷이 이미 타들어 가고 코안도 연기로 가득 찼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밖으로 빠져나오니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밖으로 안내해 준 고양이에 대한 고마움이 밀려왔다.권지헌이 꽉 안아주는 지금에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릿한 통증과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들었다. 뒤늦게 엄습한 공포감에 등줄기가 오싹해졌다.눈물을 왈칵 쏟으며 온몸에 힘이 빠진 채 흐느끼며 권지헌 품에 폭 기댔다. "진짜 안에서 죽는 줄 알았어."허설아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화재 현장을 안전하게 탈출했다는 충격이 뒤늦게 눈물로 왈칵 터져 나왔다. 허설아가 권지헌 소매를 꽉 움켜쥐었다.마치 갈망하듯 권지헌의 체온과 심장 소리를 온몸으로 느꼈다.권지헌은 허설아가 우는 걸 보고 다급하게 말했다."어디 다쳤어? 병원 가자!""나는 괜찮아, 그냥 피부만 좀 긁힌 거야. 근데 고양이 어디 갔어? 고양이 병원 가야 해.""고양이?"허설아가 눈물을 닦았다.얼굴 여기저기 그을음이 묻어서 닦을수록 더 얼룩져서 볼품없고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신경 쓸 겨를이 없이 허설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풀숲에서 새끼들에게 둘러싸인 어미 고양이를 찾았다."이 고양이가 나 구해준 거야. 얘가 아니었으면 잠든 채로 깨어나지 못했을 거야."권지헌이 쪼그려 앉아 젖은 수건으로 허설아의 얼굴과 손을 닦아주며 더 큰 부상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무릎과 팔이 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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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화

àl'aube 공장은 화재로 수많은 기계가 파손되며 피해가 심각했다.그래도 사망자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다친 직원들은 이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입건해서 조사하기에 충분했다.경찰은 자세한 경위를 확인한 뒤 허설아에게 수사 협조를 부탁했다. 공장으로 달려온 김지유와 송원영은 권지헌 재킷을 두른 채 서 있는 허설아를 보고서야 동시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김지유는 결국 참지 못하고 와하고 눈물을 터뜨렸다."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에요. 놀라서 죽는 줄 알았어요!"송원영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내내 처음엔 직원들 걱정, 그다음엔 장비 걱정을 했다. 그러다 허설아가 공장에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겁만 날 뿐이었다. 심장을 졸이며 달려온 두 사람은 허설아가 멀쩡하게 서 있는 걸 본 순간 동시에 눈시울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곧이어 숨이 넘어갈 듯 울었다.허설아도 같이 부둥켜안고 울었다.허설아는 이미 불길이 꺼지고 잿더미만 남은 공장을 바라보았다.어떤 감정인지 딱 잘라 말하기 힘들었다.눈앞의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허설아가 살짝 고개를 들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모든 심혈이 눈앞에서 잿더미가 되었다. 기계들은 고철 덩어리가 돼 사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권지헌이 옆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차가워진 허설아의 손을 잡았다."너만 괜찮으면 됐어. 이런 건 다 중요하지 않아.""맞아, 사람만 괜찮으면 됐어. 어떤 상황이든 삶과 죽음 앞에서 더 중요한 건 없어." 허설아가 흐르는 눈물을 닦아봤지만 아무리 닦아도 멈출 줄 몰랐다. 아무리 닦아도 끊어진 구슬처럼 계속 흘렀다. 또 닦으면 또 흘러내렸다. 눈물이 완전히 바닥나서 더 흐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허설아는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봤다."아직 더 힘겨운 싸움이 남아 있어요."공장이 없어졌고 기계도 망가졌고 원재료도 대부분 손실됐다.하지만 출고 날짜는 이미 정해져 있고 발표회 미디어 초대장도 이미 다 발부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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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4화

현장에는 아직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허설아가 대표인 데다가 사건 당시 공장에 있었던 당사자이기도 했다.소방관들이 구조된 직원 수를 파악해 병원으로 이송하고 있었다.공장 안에서 누군가 소리쳤다."아직 사람이 있어요! 여기 사람 있어요!"허설아도 따라가 보려 했지만 권지헌이 뒤에서 손목을 잡았다."급하게 들어가지 마. 소방관들이 나오면 그때 확인해. 지금 들어가봤자 방해만 돼."체력도 장비도 없는 상황에 아무리 불길이 잡혔다 해도 허설아가 들어가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허설아는 위험하지 않은 곳까지만 가서 확인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도무지 말릴 수 없었던 권지헌이 함께 따라갔다.못 들어가게 막은 것도 사실 멀쩡하던 공장이 이 지경이 된 걸 보면 허설아의 마음이 더 무너질까 봐 걱정이 돼서였다. 그나마 지금은 안에 있는 사람한테 정신이 팔린 게 다행이었다.들것에 실려 나오는 사람을 본 허설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권지민이었다.위태로운 상태로 들것에 누워있던 사람은 허설아가 바라보자 힘없이 웃었다.외투 안에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숨어 있었다. 멀쩡하게 움직이는 새끼 고양이가 품 안에서 뛰쳐나와 허설아한테 품에 안겼다. 아까 어미 고양이의 새끼 중 마지막 한 마리였다. 허설아가 빠져나오면서 미처 제대로 세어보지 못했던 것이다.이제야 한 마리가 없어진 걸 발견했다. 어미 고양이가 허설아를 구하러 통로로 들어갈 때 장난기 심한 새끼가 따라 들어간 모양이었다.그걸 권지민이 데리고 나온 것이다.허설아가 새끼 고양이를 받아 안고 놀라며 물었다."왜 여기 있어요?"허설아를 보며 씩 웃던 권지민은 연기를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말은 못 하고 손짓으로 뭔가를 표현했다. 방화범이 누군지 안다는 뜻 같았다.허설아가 입 모양을 읽으려 눈을 동그랗게 떴다.입 모양을 읽어낸 허설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권지민이 말한 건 '송'이었다.송씨 가문이 방화를 저질렀다고? 송민재일까? 아니면 송민우일까?허설아가 알아챘다는 걸 확인한 권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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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5화

권지헌이 쇼핑백을 받아 허설아에게 건넸다."가서 갈아입어.""고마워요, 조 비서님.""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조민규도 àl'aube가 지금까지 성장한 과정을 다 봐온 셈이었다.허설아와 직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 알고 있었다.공장 화재 소식에 조민규도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도 인명 사고가 없는 게 다행이었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서야 허설아는 아까 전에 입고 있던 옷이 볼품없는 상태라는 걸 발견했다. 권지헌 재킷을 걸치고 있어서 몰랐는데 등쪽에 크게 구멍 나서 등이 거의 다 드러나 있었다.거울 속 허설아 얼굴도 많이 지쳐 보였다. 너무 울어서 눈은 복숭아처럼 퉁퉁 부어 있었다.수도꼭지를 틀어 차가운 물로 세수하고 손가락으로 눈을 꾹꾹 누르자 눈꺼풀 위로 혈관이 뛰는 게 느껴졌다. 심장 박동이 서서히 진정되고 있었다. 세수를 하고 나니 안색이 그나마 덜 안쓰러워 보였다. 권지민 병실로 돌아오니 이미 의식이 돌아와 있었다. 허설아가 들어오는 걸 본 권지민의 시선이 허설아한테 꽂혀있었다. 권지헌의 경고의 눈빛은 완전히 무시한 채였다.허설아가 붕대를 감은 곳 외에 다른 곳은 괜찮은지 확인하고 나서야 시름 놓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았다.경찰이 입을 열었다."권지민 씨가 송민재라는 사람이 방화했을 거라고 하네요. 사건 며칠 전에 송민재 씨가 해주시로 가서 권지민 씨를 찾아와 àl'aube를 복수할 방법을 같이 모의하자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합니다.""그 내용들이 문자 기록으로 다 남아 있어서 증거로 쓸 수 있어요."권지헌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럼 오늘은 왜 àl'aube 공장에 있었던 거야?"권지민이 말을 하려 입을 열었지만 기관지에 화상을 입어서 말을 하거나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입을 열 때마다 산소마스크에 흰 수증기가 맺혔다.권지민이 고통스럽게 말하려는 모습을 본 허설아가 얼른 핸드폰을 손에 쥐여줬다."휴대폰에 적어요, 말하지 말고요."권지민은 웃으려는 듯 얼굴 근육이 살짝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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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6화

권지헌과 허설아는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왔다.집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박희수와 허민정은 권지헌이 허설아를 안아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더 다급해졌다. "다친 거야? 다쳤으면 입원해야지, 집에 왜 데리고 왔어?"권지헌이 짧게 말했다."작은 상처예요."다만 오늘 하루 너무 지쳐 있었다. 신경이 곤두서 있은 데다 기분도 롤러코스터를 탔던 상황이었다. 이제는 힘이 다 빠져서 물먹은 솜마냥 축 늘어져서 아무 표정도 없이 권지헌 품에 웅크려 있었다.권지헌은 그 모습이 마음 아팠다.유화 이모가 밥을 차려놓고 계속 허설아에게 괜찮냐며 물었다.허설아는 유화 이모에게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권정우가 위로했다."사업이란 게 원래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거야. 설아 너만 무사하면 됐어. 다른 건 중요하지 않아."권씨 가문은 사업을 오래 해온 만큼 이런 부분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허설아도 알고 있었다. 다만 오늘 불 속에 갇혔다가 또 눈앞에서 공장이 다 타는 걸 지켜봐야 했기에 피곤한 건 어쩔 수 없었다.가족들 모두 다들 걱정스레 바라보는 데다 연희까지 조심조심 눈치를 살피는 걸 보자 허설아는 마음이 약해졌다. "저 진짜 괜찮아요. 다만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할 것 같아요. 이번 일은 누군가 일부러 한 짓이지만 저희 공장 보안이 허술했던 것도 있어요." 방화한 직원은 아마 송민재가 매수한 사람이었을 것이다.그 인과관계는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어떻게 다시 시작할지만 생각하고 싶었다.권정우가 권지헌과 함께 의논했다."설아가 반년 사이에 사고가 너무 잦아. 경호 업체에 연락해서 곁에 사람 한두 명 붙이는 게 좋겠어."교통사고 이후 권호성이 또 손을 쓸까 봐 권지헌이 경호원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그때는 허설아가 거절했다.교통사고 같은 건 경호원이 있어도 막을 수 없었다.하지만 이번은 달랐다.권지헌이 바로 답했다."제가 알아볼게요. 앞으로 설아 곁에 사람이 없으면 안 되겠어요."이번 일로 권지헌이 많이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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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7화

권지헌이 통화를 마치고 방에 돌아오자 연희와 허설아는 꼭 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오후부터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그제야 천천히 내려앉는 것 같았다.얼마나 두려웠는지는 권지헌 본인만이 알고 있었다. 침대 머리맡 따뜻한 오렌지빛 조명이 허설아의 옆모습을 비추고 있었다.권지헌이 얼굴 위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쉽게 깨질 것 같은 도자기를 어루만지듯 손가락 끝으로 얼굴을 만졌다. 조금 전 전화기 너머에서 결국 다 권씨 가문이 잘못이라며 떠들어대던 송민재의 말이 떠올랐다. 권씨 가문 때문에 허설아를 해쳤다는 것이다. 송민재는 허설아가 반드시 죽었을 거라고 믿는 것 같았다.말끝마다 묻어나는 의기양양한 태도가 권지헌 마음속에 억누르고 있던 마지막 이성에 불을 지폈다. 손을 거두는 권지헌의 눈빛이 싸늘하게 날카로워졌다. 허설와 연희에게 이불을 덮어준 권지헌이 별채를 나섰다.-깊은 밤.문 앞에서 기다리던 서은석은 권지헌이 오자 조용히 말했다."손 좀 보면 되지, 직접 들어갈 거야?"권지헌이 어둠 속에 서서 서은석을 싸늘하게 바라봤다."네 생각에는?"잠시 말이 없던 서은석이 권지헌 뒤를 따라 구치소 안으로 들어갔다.바닥에 쓰러진 송민재는 맞아서 성한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반죽음 상태였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곁눈질로 눈앞에 서 있는 권지헌을 본 순간, 송민재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권지헌이 죽어가는 벌레를 보듯 싸늘하게 내려다봤다."우리 집사람이 무사하다는 것에 감사해. 아니면 여기까지 올 기회도 없었을 테니까."오늘 허설아가 화재 현장에서 정말 불의의 사고가 났다면……송민재는 법의 심판을 받을 기회조차 없이 오늘이 그의 삶의 마지막 날이었겠지. 하지만 허설아가 무사한 이상 권지헌도 굳이 이성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손을 더럽힐 이유가 없었다.송민재는 그만 굳어버렸다.무사하다고?허설아 그 여자가 아직도 살아 있다고?분명히 만반의 준비를 마쳤는데! 어떻게 목숨이 그렇게 질긴 거지? 송민재는 만약 허설아가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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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화

전화기 너머 송동건이 처참하게 울부짖었다.송민재가 자기 지분을 몰래 팔아치우면서 송동건과 김수진 명의로 된 지분까지 슬그머니 처분한 것이다. 빚을 돌려막기 위해서였다.송민재가 운영하던 공장들은 밖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비밀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어렵사리 구멍들을 겨우 다 메운 송민재는 자기한테 문제가 생겨도 송씨 가문은 멀쩡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송씨 가문과 송민재 본인이 동시에 파산할 줄은 몰랐다. 송동건이 반응할 틈도 없이 오열했다."원영아! 집안 좀 도와줘!"송원영은 어젯밤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권서진과 함께 잠깐이라도 도움을 줄 만한 공장을 찾아 연락을 돌렸다.권서진이 말한 대로 가능한 곳이 거의 없었다.그런 설비를 갖춘 건 큰 브랜드뿐인데 권서진이나 브랜드 측이나 서로 자존심이 있어서 각자의 브랜드가 다른 브랜드와 섞이는 걸 원하지 않았다.밤새 노력했지만 결국 빈손이었다.그런 상황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송동건이 울며불며 걸어온 전화라니. 송원영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민재 오빠가 범죄를 저질렀는데 내가 어떻게 구해줘요? 오빠가 불을 질러서 태운 게 우리 공장이라고요!"송동건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그, 그래. 네가 거기서 일하니까 너희 대표한테 부탁해서 네 오빠를 위해 합의서 하나만 써줄 수 있는지 물어볼래? 네 오빠 앞날 이렇게 망칠 수는 없잖아!"송원영의 마음이 서서히 차갑게 식어버렸다.àl'aube 공장을 불태운 불길은 그동안 수없이 많은 밤낮을 바쳐서 쌓아온 모든 심혈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다친 직원들도 있고 못 쓰게 된 장비들도 있었다.그런데 송동건은 허설아한테 부탁해서 합의서를 써달라고 해보란다.어떻게 합의해? 뭐로 합의할 건데? 무슨 자격으로 합의를 해!송원영이 차갑게 말했다."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난 낄 자격이 없어요. 그리고 권씨 가문이 하려는 일을 누가 감히 막겠어요? 민재 오빠한테 물어봐요. 몇 번씩 살인을 사주했을 때 무슨 생각이었냐고요!"단 1초라도 후회한 적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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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9화

김수진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말했다."그게, 우리 이사는 안 하면 안 돼? 그냥 여기 살면 안 될까? 원영아, 엄마가 여기서 평생을 살았는데 다른 데로 이사 가면 진짜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아."송원영이 딱 잘라 말했다."안 돼요. 방 세 개짜리 집 마련해 뒀으니 지낼 수 있으면 지내고, 싫으면 알아서 해요. 별장은 이미 팔았으니까 최대한 빨리 짐 빼요."뭐라고?별장을 팔았다고?김수진은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송동건이 말렸다.전화를 끊은 송동건은 김수진을 보며 말했다."원영이 성격이 지 할아버지를 쏙 빼닮은 거 안 보여? 전에 집에서는 착한 척했던 거야! 진짜로 건드렸다간 방 세 개짜리 집도 없어! 일단 참아. 사람 찾아서 민재부터 빼내고 나서 그다음 생각해."송동건이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마음속으로 왠지 겁이 났다.송원영이 왜 이렇게 변한 거지?인정하기 싫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두려움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송원영은 송민재와 달랐다.딸이라는 이유로 많은 부분에서 매정하게 대했다. 어차피 시집갈 테니 딸을 이용해 송씨 가문에 더 많은 이득을 가져오는 게 중요했다.원하지도 않는 송원영을 귀국시켜서 권지헌과 만나게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김수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송동건을 보자 불안해하며 물었다."설마 원영이가 우리 모른 척하는 건 아니겠지?""그동안 원영이 교육에 우리가 얼마나 쏟아부었는데. 피아노며, 가야금이며, 바이올린까지 다 합치면 지방 도시에서 집 한 채는 충분히 살 수 있어!"송동건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잘 가르쳤지. 그러니까 지금 그룹 최대 주주가 됐잖아. 어릴 때 아버지도 원영이가 자기를 가장 닮았는데 딸인 게 아깝다고 하셨잖아."송영식은 송원영이 어릴 때부터 송동건에게 잘 키우라고 했었다.하지만 그때 송씨 가문 사람들은 어차피 딸인데 설마 가업을 잇겠냐고 반신반의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어떤 의미에서는 성공한 교육이었다.김수진 뒤에서 송원영이 최대 주주가 됐다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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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0화

송원영에게 전화한 사람은 지난번에 같이 식사했던 거래처의 이재균이었다.이 타이밍에 관련 설비가 갖춰진 공장을 바로 살 수 있다니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다."설비도 있어요?""CNC 조각기, 핀홀 주조 기계, 원심 주조 기계 다 있어요. 다만 규모가 크진 않고 공장도 작은 편이에요. 전에 독립 브랜드 하나 만들려다가 잘 안됐거든요."이재균이 솔직하게 말했다."알다시피 원영 씨네 브랜드 설비랑은 비교가 안 되겠지만 그래도 임시로 쓰기엔 충분하고 가격도 상의할 수 있어요."송원영이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주소가 어떻게 돼요? 지금 바로 가볼 수 있나요?"이재균이 주소를 알려줬다.송원영이 옆에 있는 두 사람에게 말하자 바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이재균이 보낸 주소의 공장에 도착했다.설비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들여온 것들로 필요한 대형 설비가 다 갖춰져 있었다. 추가로 소형 설비 몇 가지만 더 들이면 될 것 같았다.이재균 말대로 공장 위치가 다소 외졌고 규모도 크지 않았다.하지만 지금 àl'aube에게는 딱이었다. 너무 큰 공장은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많은 자금을 당장 마련하기도 어려웠다.지금 이 정도면 충분했다.가격을 확인한 김지유가 살짝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저희 계좌에 있는 자금은 지금 다 신제품 생산에 투입돼서 일단 돌아가서 대표님과 상의해 봐야 할 것 같아요."검은 이너에 롱 코트를 걸친 이재균은 뒤집은 코트 깃 사이로 하운드투스 체크 안감이 살짝 드러나 영국 신사 느낌이 물씬 풍겼다.그 말을 들은 이재균이 씩 웃었다."원영 씨가 밥 한 번 사주면 할인 생각해 볼게요. 그래도 최대 10%예요. 그 이상은 나도 정말 손해거든요."10% 할인 가격이면 마침 àl'aube가 지금 지불할 있는 금액이었다.그런데 이재균을 바라보는 김지유와 권서진의 눈빛이 묘해졌다.권서진이 송원영 앞을 막아서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재균 씨, 이 타이밍에 도와줘서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할인받을 필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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