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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1화

"그리고 최순자가 설아한테는 왜 못되게 군 거야? 설마 그것도 고연정이 시킨 건 아닐 텐데."그건 유화 이모가 오히려 더 알고 있었다."자기가 사모님 시어머니인 줄 알았던 거죠. 요즘 인터넷에서 다들 그러잖아요. 나쁜 이모 들이면 남의 집에서 쫓겨난 시어머니를 모셔다가 집안 규율 잡게 하는 꼴이라고요."최순자가 딱 그랬다.어차피 경찰에 연행됐으니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며칠 뒤 최순자가 훔친 물건 중에 권정우의 소장품이 하나 있다며 경찰이 직접 방문했다. 개인 수집가한테는 소장품이었지만 달리 말하면 박물관에 보내도 될 문화재였다.연루된 금액은 차치하고 지금 행방이 묘연해져서 해외로 밀반출됐을 가능성이 있었다.권정우는 바로 추적을 지시하면서 찾으면 당장 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그 자리에서 약속했다.최순자가 물건을 훔쳤을 때 문화재인지 아닌지 알 리가 없었다. 비싸 보이면 몰래 챙겼다가 나중엔 누구한테 팔았는지도 기억이 묘연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최순자는 결국 고연정 이름을 불었다.고연정은 순식간에 온통 부정적인 이슈로 여러 실시간 순위에 올랐다. 허설아가 핸드폰을 열자 고연정 관련 기사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고연정 이름이 뉴스에 오를 때마다 언론은 고연정과 권정우의 과거 관계를 끄집어내서 낱낱이 공개했다.이번엔 사건 연루 의혹까지 나오면서 더욱 떠들썩했다. 고연정 쪽이 폭풍 전야였다면 허설아 쪽은 분위기가 좋았다.손 가는 대로 그린 일러스트가 장난감 홍보가 돼서 품절 사태가 난 것이었다. 브랜드 측은 허설아에게 연락해 광고비용을 주고 싶다고 했다.처음부터 돈을 벌려고 그린 그림들이 아니었다.허설아는 브랜드 측에 광고 비용 대신 추첨 이벤트 몇 개를 열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에덴 시리즈를 위해 그려둔 그림도 함께 공개했다.주얼리의 특성을 살려 빨간 사과와 보석을 함께 담은 그림이었다. 소녀가 스커트 자락을 가볍게 나풀거리며 사과나무 아래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그림의 중심은 사과나무였는데 바로 권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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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2화

다음 날 정례 회의에서 허설아가 사람들과 같이 의논했다."서풍도 제 계정이긴 하지만 저한테는 àl'aube만큼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요."곰곰이 생각한 끝에 서풍을 상업 광고 계정으로 쓰지는 않기로 했다. 대신 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서풍 계정으로 일러스트 한 세트씩 홍보용으로 올리기로 했다. 김지유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저희한테 할인해 줄 수 있어요? 서풍님 원고 가격이 너무 비싸거든요."국내 일러스트 작가 중에서도 서풍은 가격이 높은 편이었다.재무 담당인 김지유는 그 돈이 나가는 생각을 하면 배가 아팠다.허설아가 피식 웃었다."우정 의뢰는 돈 안 받아."공개적으로 올리는 그림들은 원래 다 편하게 그린 것들이었다. 가끔 영감이 떠오르거나 팬들한테 약속한 그림이었는데 어떤 경우든 다 무료였다.얼마 전 권율 그룹과의 게임 협업 작업은 거의 2년 만의 드문 상업 의뢰였다.àl'aube를 위해 그리는 그림은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회의가 끝나고 민지강이 문을 두드리며 고개를 들이밀었다."대표님, 김지유 씨 찾아온 아가씨가 있는데 제가 데리고 왔어요."날씨가 많이 풀려서 얇은 가디건을 입고 있는 소녀는 손가락과 귀에 온통 동상 자국이었다.김지유와 왠지 얼굴이 좀 닮아 보이는 소녀가 안쓰러워 데리고 들어온 것이었다. 박준규는 원래 규정상 안 된다고 했다. 민지강은 까무잡잡하고 깡마른 몸집의 여자아이가 진짜 사고를 치러 온 거라면 밖에 내동댕이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허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김지유 씨 여동생인 것 같아요. 전에 얘기 들었거든요. 가서 일 봐요.""네, 알겠습니다."소녀를 휴게실에서 기다리라 하고 허설아가 들어가는데 김지유도 마침 도착했다.까무잡잡하고 깡마른 편에 볼이 발그레한 소녀는 김지유를 보더니 고개를 들고 어색하게 웃었다.발에는 맞지 않는 신발을 신어서 엄지발가락이 삐져나와 있었다. 허설아의 시선이 발로 향하자 김초원이 민망한 듯 뒤로 숨더니 발가락까지 따라 오그라들었다.그 모습을 본 김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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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3화

사람 사이의 감정이란 때로는 정말 신기했다.김지유를 처음 알게 된 건 현서가 일부러 함정을 판 일 때문이었다.지금의 김지유와 여동생을 보다 보니 문득 눈앞에 서 있는 김지유가 얼마나 먼 길을 돌아 여기까지 왔을지 새삼스레 느껴졌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동생 잘 챙겨주는 건 과거의 너 자신을 다시 한번 키우는 거야. 힘든 일 있으면 또 얘기해."김지유가 잠깐 멈칫했다. 허설아 말이 맞았다.보답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예전에 산골에서 세상 물정 모르면서 운명에 지지 않으려 발버둥 쳤던 어린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제대로 키워주고 싶었던 것이었다.-퇴근 시간이 지나도 허설아는 보고서 작업 때문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 사이로 누군가 자그마한 얼굴을 조심스럽게 들이밀었다. "대표님, 휴게실에 고양이 새끼들이 있던데 여기서 키워도 될까요? 언니가 집에서는 못 키운다고 해서요. 제가 와서 고양이들 돌볼게요."허설아가 그제야 지난번에 에어컨 배관 청소할 때 기사가 임신한 어미 고양이 한 마리가 도망쳐서 못 잡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마 그 어미 고양이가 낳은 새끼들인 것 같았다.허설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가봐야겠네."김초원이 허설아 옆에 다가갈 때면 왠지 조심스러워했다. 지저분한 자신이 허설아한테 닿아서 싫어할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빠르게 걸음을 옮겨 몇 걸음 만에 휴게실에 도착했다.소파 뒤쪽에 갓 태어난 것 같은 새끼 고양이 몇 마리가 있었다. 눈에 아직 파란 막이 걷히지 않은 고양이들이 사람을 보고 겁을 먹었는지 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나란히 쪼그려 앉은 허설아와 김초원 얼굴에 동시에 웃음이 번졌다."나도 예전에 고양이 한 마리 구조한 적 있어. 다 나은 다음에 입양도 보냈고 고양이 돌봐본 경험이 있으니까 내가 맡을게, 걱정 마."김초원은 허설아가 고양이들을 흔쾌히 남겨두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그럼 가끔 보러 와도 돼요?"허설아가 손을 뻗어 김초원 머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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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4화

핸드폰 화면 불빛이 송원영의 얼굴을 환하게 비췄다.송원영은 순간 멍해졌다.'누가 돈을 보낸 거지?'모바일 뱅킹 앱을 열어 입금자 이름을 확인한 송원영은 굳어버렸다.서은석이었다.이체 메모에는 자유 증여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그 말은 서은석이 애초에 이 돈을 돌려받을 생각이 없었다는 거였다.송원영이 지금 돈이 필요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게다가 정확히 부족했던 액수였다.송원영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허설아를 불렀다."대표님이 서은석 씨한테 내가 돈이 필요하다고 얘기했어요?"허설아가 돌아보며 웃었다."아니요.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난 서은석 씨 연락처도 없어요."피해야 할 관계가 있었다. 서로 상관없다 해도 허설아는 자기 선을 지키고 싶었다.서은석은 권지헌의 친구일 뿐 허설아의 친구가 아니었다.마찬가지로 권지헌도 안초희나 허설아 친구들 연락처는 없었다.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더 편했다.송원영은 입금된 돈을 보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서은석이 왜 갑자기 이체를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허설아가 건물 밖 길 건너편에 서 있는 검은 세단 한 대를 바라보더니 송원영을 돌아봤다."직접 가서 물어보는 거 어때요?"송원영이 길 건너편 차를 봤다.처음 만났을 때 서은석은 스포츠카를 좋아했다. 특히 색깔이 요란하고 번쩍거리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송원영이 너무 눈에 띄어서 탈 엄두가 안 난다고 한 뒤로 더 이상 그런 차는 다시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기꺼이 송원영의 2인승 미니카에 껴서 타기도 했다.허설아는 길가에 세워진 권지헌 차에 올라타면서 송원영에게 손을 흔들었다."내일 봐요.""네, 내일 봐요."차창이 올라가고 쌩 하고 지나쳐 갔다.회사 위치가 워낙 외진 곳이라 이 시간에는 신호등도 형식상 있는 정도였기에 송원영은 그냥 가로질러 걸어갔다.바로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탔다."나한테 돈 보냈어요?""너 송씨 가문 지분 사들이고 있는 거 아니었어? 계산해봤더니 그만큼 부족할 것 같아서, 아직도 부족해?"송원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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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5화

서은석은 너무 촌스러운 방법이라며 따르지 않았다.역시 여자는 촌스러운 걸 더 좋아하는 걸까?송원영이 살짝 뒤로 물러났다."그냥 다시 돌려줄게요."사실 송씨 가문 지분을 샀다고 해도 그 회사들이 언제 흑자로 돌아설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지분을 샀다가 결국 손해로 끝날 수도 있었다.서은석이 송원영을 조용히 바라보다 피식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너만 즐거우면 이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니야."송원영의 마음이 저도 모르게 시큰거렸다.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어딜 봐도 좋은 사람이었다.하지만 서은석은 송원영이 돈을 돌려주려는 이유를 모르는 것 같았다.말한다 해도 서은석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차 안은 불을 켜지 않아서 밖에서 비춘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서은석의 얼굴을 비추었다. 잔잔하게 일렁거리는 부드러운 눈빛이 송원영 얼굴에 향해 있었다. 송원영이 고집스럽게 말했다."꼭 돌려줄게요, 차용증 써도 돼요.""싫……"거절하기도 전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입술이 잠자리가 수면을 스치듯 서은석의 입술 위에 닿았다가 순식간에 떨어졌다.송원영이 고개를 돌리며 더듬더듬 말했다."이, 이건 이자예요."서은석은 손을 올려 자기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송원영한테서 원금을 돌려받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송원영이 기어이 갚겠다고 하고 이자가 이런 방식이라면 계속 빚을 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서은석이 혼잣말로 낮게 중얼거렸다."원금은 필요 없고 이자만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송원영은 귓불이 빨개진 채 못 들은 척했다.-송민재는 가진 지분을 전부 처분해서야 여기저기 뚫린 구멍들을 겨우 막을 수 있었다. 해주시에 숨어서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있었다.송동건과 김수진이 송민재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기회를 봐서 재기하고 다시 돌아가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호텔에 틀어박혀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익명의 메시지가 왔다.[네가 판 지분 다 송원영이 사 갔어.][이 멍청아.] 송민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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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6화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허설아는 거래처에 연락했다.상대방은 이중 계약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그냥 실수였다고 하며 말을 돌렸다."지난번 가격으로는 저희도 지금 맞추기가 어렵습니다.""저희가 합의한 가격으로 정했는데 지금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이중 계약은 저희가 책임을 추궁할 수도 있어요."상대방이 두루뭉술하게 넘겼다."한두 번 거래한 것도 아니고 다 아는 사이잖아요. 계약서 일은 저희 실수가 맞지만 저희도 정말 어려운 상황이 있어서 그래요."말을 살짝 바꾸며 말했다."허 대표님, 저희한테 잔금만 먼저 주시면 어떨까요? 이전 가격 그대로 해드릴게요."허설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계약서 내용이나 거래 관행으로 봤을 때도 잔금을 미리 치르는 규정은 없었다."규정상 입금일은 다음 달 말이에요, 지금이 아니라.""허 대표님, 그러시면 좀 곤란합니다. 저희도 연초에 자금 회수가 필요한 데다 대표님 의뢰는 단가도 맞추기가 어려워요. 저희한테도 살길을 남겨주셔야 하지 않겠어요?"허설아는 상대방 의도가 훤히 보였다.계약서에 손을 쓴 것도 아마 잔금을 미리 받아내기 위한 수작인 것 같았다.허설아가 단호하게 말했다."그런 규정은 없어요. 계약 문제는 저희 법무팀에서 연락드릴 거예요."허설아는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그런데 상대방 법무팀도 만만치 않았다. àl'aube 측에 잔금 선납을 요구했다.법무팀에서 이유를 묻자 상대 회사에서 링크 묶음을 보내왔다.열어보니 전부 허설아와 권지헌의 혼인 경위가 떳떳하지 않다는 내용의 게시글이었다.거래처는 그걸 빌미로 àl'aube 대표한테 이른바 흑역사가 있는 것 자체가 파트너 입장에서는 큰 손해라며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 다행인 줄 알라는 식으로 뻔뻔하게 나왔다.법무팀은 빠르게 허설아한테 게시글들을 전달했다.전달한 뒤에도 혹시 허설아가 화나서 따지면 어쩌나 싶어 미리 셀렉이라도 할 걸 그랬나 생각했다. 한참을 기다려도 답장이 없었다.법무팀은 또 평소에 한없이 다정한 허설아가 이런 악성 게시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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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7화

허설아가 법무팀에 답장을 보냈다."거래처가 기어이 잔금을 요구하면 줘요. 대신 앞으로 더 이상 거래는 없어요.""네, 대표님."법무팀도 화를 꾹 참고 있었다. àl'aube 브랜드는 처음부터 하이엔드 럭셔리 라인으로 포지셔닝을 했다. 좀 싼 수백만 원대 주얼리는 금 제품과 경쟁이 안 되기 때문에 시작부터 하이엔드로 방향을 잡은 것이었다.때문에 àl'aube의 고객들은 이런 유언비어 따위에 쉽사리 휘둘리지 않았다. 오히려 재벌가 세계가 얼마나 복잡한지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어떤 고객은 권지헌 부부 지지하는 의미로 이 시국에 에덴 시리즈 세트를 주문하기도 했다.의도치 않게 àl'aube에 판매량을 증가시켜 준 셈이었다.다만 여론상으로는 분명히 적지 않은 잡음이 있었다. 몇몇 거래처가 잔금 선납을 요구하며 이후 생산 작업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된다고 나왔다.허설아는 하나하나 다 응대했다. 하지만 잔금을 지불하는 조건은 더 이상 거래가 없다는 얘기를 들은 일부 공장은 그냥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 허설아도 이해는 했다.지금 àl'aube가 허설아 때문에 여론의 한가운데 서 있으니 거래처 입장에서 몸을 사리고 싶은 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몸을 사리다가 나중에는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거래를 이어가겠다는 뻔뻔함은 용납할 수 없었다. àl'aube는 지금 자금 흐름이 탄탄해서 잔금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었다. 허설아는 거래처 요구들을 다 처리하고 손목을 주물렀다.퇴근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봄이 되고 해가 길어져서 오후 여섯 시인데도 창밖 하늘이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다.창밖 나무에는 새순이 돋아났고 자그마한 고양이 몇 마리가 나무줄기에서 발톱을 갈고 있었다.자세히 살펴보니 휴게실에서 키우는 고양이들이었다.덩치가 좀 큰 고등어 무늬 고양이가 창틀로 훌쩍 뛰어오르더니 허설아를 보며 틈 사이로 쏙 들어왔다.허설아 발 밑을 빙빙 돌다가 친근하게 다리에 얼굴을 문질렀다.새끼들의 어미 고양이였는데 겨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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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8화

차를 주차장에 세운 허설아가 시간을 확인했다.꽤 늦은 시간이었다.박희수가 아까 오늘 밤은 연희와 허민정이 본채에서 자기로 했으니 퇴근하고 연희 데리러 오지 않아도 된다며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밤늦게까지 야근할 것 같다는 권지헌 메시지가 맨 위에 있었다. 고.허설아는 그냥 차에서 내려 돌아가기로 했다.권씨 가문 도우미들은 매일 마당을 깨끗하게 쓸었는데 가을에는 일부러 낙엽을 남겨두어 분위기가 있었다. 봄이 된 지금은 저녁에 걸어가도 그렇게 춥지 않았다.허설아도 본채로 향했다.유화 이모가 보더니 반갑게 다가왔다."사모님, 배고프시죠? 밥 데워드릴까요?""만둣국 좀 끓여줘요, 고추 조금 넣어서요.""네, 기다리세요."허설아가 위층으로 올라가 권지헌이 학교 다닐 때 쓰던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 항상 청소를 해두어서 침구도 새것처럼 깔끔했다.권지헌이 없을 때 이 방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허설아는 오늘 진한 갈색 롱 드레스에 같은 색 단화를 신었다. 폭신한 카펫 위를 걷는데 이상하게 괜히 몰래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방 안을 둘러보자 권지헌이 머물렀던 흔적이 방 안 곳곳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학교 다닐 때는 자주 오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래도 졸업할 때 허설아가 전에 선물했던 것들은 전부 이 방에 남겨두었다. 허설아가 태블릿을 꺼내 라이브를 켰다.처음에 팬들은 서풍이 라이브 방송을 켰다는 걸 보고도 믿지 못하다가 직접 들어와 확인하고서야 진짜라는 걸 알았다.서풍이 진짜 라이브를 켰다니!처음이라 라이브 화면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랐던 허설아는 가까이 들여다보며 혼잣말을 했다."이 필터를 어떻게 끄지?"라이브 방송에 들어온 팬이나 최근 권씨 가문 소식에 관심을 갖고 몰려든 구경꾼들이나 어떤 생각으로 들어왔든 간에 예상치 못한 미모 공격을 당하고 말았다. 정말 예쁜 얼굴이었다.특히 허설아는 항상 잔잔하고 부드러운 분위기가 느껴져서 보고 있으면 절로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 생각나곤 했다. 라이브 설정을 마치고 나서야 허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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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9화

그때는 권지헌이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같이 찍은 사진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유독 이렇게 나란히 기댄 그림자 사진만은 남겨두고 있었다.사진첩이라고 해도 일상적인 사진들을 인화한 것들이었다. 먹었던 음식, 걸었던 길이 대부분이고 투샷은 그림자 사진 한 장과 권지헌 아파트에 있던 행인이 찍어준 사진 한 장뿐이었다. 허설아가 피식 웃었다."대학교 때 내가 찍은 거예요. 사진첩도 내가 만든 거고요.""네?""이 펜꽂이도, 이 키링도 다 내가 만든 거예요."유화 이모가 놀라며 물었다."옷장 안에 있는 옷들도 사모님이 사주신 거예요?""맞아요. 다 내가 산 거예요. 이렇게 한데 모아놓고 보니까 그때 이렇게 많이 선물했나 싶네요."유화 이모가 물었다."그럼 도련님은 사모님한테 뭐 선물하셨어요?""대부분 내가 다 돌려줬어요. 그때 지헌이가 직접 알바해서 학비랑 생활비를 부담했고 창업도 하려고 했으니까 돈을 함부로 쓰길 바라지 않았거든요."허설아가 사진첩을 넘기다 사진 한 장을 가리켰다."이 목걸이 지헌이가 선물한 거예요. 내가 환불하라고 했지만요." "환불 안 하셨어요. 여기 서랍에 있는데 보실래요?" 유화 이모가 서랍을 열자 과연 그 목걸이가 있었다.너무 비싸다고 생각했던 허설아는 돈을 아껴서 다른 데 쓰라고 하며 선물을 전부 돌려주었다. 그런데 그 선물들이 전부 다 이 방에 그대로 있었다.어쩌면 그때 허설아의 거절이 한 남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허설아가 선물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바보같이, 왜 다 간직해둔 거야.""버리기가 아까우셨나 봐요. 졸업하기 반년 전쯤에 이 물건들을 전부 가져오시면서 아무도 손대지 말라고 하셨거든요."졸업하기 반년 전이라면 허설아가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고 이별을 통보했던 시기였다.허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내가 찼거든요."유화 이모가 따라 웃었다."만둣국 드시고 계세요, 부엌에 국 올려둔 게 있어서 보고 올게요."허설아는 봐도 괜찮지만 유화 이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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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0화

한창 라이브 중일 때, 아래층에서 차 경적 소리가 들렸다.잠시 후 권지헌이 집으로 들어왔다.오는 길에 이미 허설아가 라이브를 시작한 걸 봤었다. 원래는 적당한 타이밍에 직접 공식 입장을 내려 했는데 허설아가 먼저 나선 것이다.이 문제를 허설아 혼자 감당하게 둘 수 없었다.방에 들어온 권지헌이 옆에 있는 그릇을 손으로 만졌다."식었네, 더 먹을 거야?""연희가 빚은 거라 먹긴 했는데 이제 못 먹겠어."그릇에 만두가 반쯤 남아 있었다.연희가 빚었다는 말에 권지헌은 그릇을 들어 남은 만두를 다 먹어버렸다.국을 들고 올라왔던 유화 이모는 권지헌이 남은 만둣국을 다 먹은 걸 보더니 흐뭇하게 웃으며 빈 그릇을 들고 내려갔다.권지헌이 허설아 휴대폰 속 댓글들을 훑어보더니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전에 이미 입장을 밝혔지만 저와 집사람 모두 사생활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공유하거나 세상 모든 사람한테 설명해야 할 의무도 없다고 생각했어요.""그런데 이렇게 계속 태클을 거는 분들이 있다니 정말 예상 밖이네요." 권지헌이 옆에 있는 허설아를 바라봤다.허설아는 권지헌이 어릴 때 쓰던 책상 앞에 앉아 별처럼 눈을 반짝이며 미소를 띤 채 권지헌을 바라보고 있었다.권지헌이 다시 말을 이었다."저희는 몇 년을 사귀는 동안 오해도 있었고 다투기도 했습니다. 헤어진 이유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해서였고 다시 만난 이유도 연희 때문만이 아닙니다.""저는 설아를 사랑하기 때문에 연희도 사랑합니다. 연희가 제 아이가 아니었어도 똑같이 사랑했을 거예요."권지헌이 잠깐 멈췄다가 씩 웃으며 말했다."오히려 연희가 제 딸이어서 설아를 다시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제가 잘못했어요. 두 사람 중에 처음부터 작정하고 덤빈 사람이 있다면 그건 무조건 저예요.""최근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많던데 전부 증거를 확보해 뒀습니다. 법정에서 뵙겠습니다." 힘 있고 단호하면서도 짧은 말로 단도직입적으로 명확히 설명했다. 채팅창에 가득 있던 여론 몰이 알바들은 권지헌이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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