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Chapter 631 - Chapter 640

751 Chapters

제631화

권지헌이 정말로 혼자 버틸 수 있을까? 남들 손가락질도 두려울 게 없다는 걸까?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사람만 많고 각자 속셈이 제각각이면 무슨 소용이 있어?"권지호가 멈칫했다.권지헌이 돌려서 경고하는 말이었다.그때 서재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미애 이모가 앞치마에 손을 닦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대표님, 작은 사모님이 아가씨랑 사돈 사모님 데리고 이사 가셨어요."권지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이사를 갔다고요?""네. 사모님이 대표님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큰 사모님이 알려드리라고 해서요. 저도 사모님 따라 가야 해요. 그럼 대표님 일 보세요!"말을 마치자마자 미애 이모는 문을 닫고 부랴부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허설아와 연희가 이사하는데 권지헌은 두고 미애 이모는 데려간다는 것이다. 미애 이모도 서둘러 짐을 챙겨서 허설아를 따라가야 했다. 권지헌은 그 자리에 선 채로 미간을 꾹꾹 눌렀다.허설아가 화난 건 알고 있었지만 인사 한마디 없이 연희까지 데리고 가버릴 줄은 몰랐다.권지헌이 권지호를 돌아보며 차갑게 말했다."너 알아서 해."권지헌은 더 이상 말 섞을 생각도 없다는 듯 문을 열고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권지호도 뒤를 따라 내려갔다.거실에서는 박희수가 짐을 싸고 있었다."이건 가져가고 이건 필요 없어. 지헌이 아빠 골동품은 건드리지 마. 그쪽에도 창고가 있어서 보물들은 이미 다 보냈거든."박희수도 허설아와 연희를 따라 이사를 간다는 뜻이었다!권지호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큰엄마도 가요?""응. 원래 설 전에 이사 가려고 했는데 그때 포름알데히드가 기준치를 넘었다고 했거든. 네 큰아버지가 아는 사람 찾아서 인테리어 맡긴다더니 완전 부실 공사였잖아."박희수가 몇 마디 투덜거리고는 다시 유화 이모와 뭘 챙겨야 할지 의논하기 시작했다.권지호만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박희수가 짐 싸는 걸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큰엄마, 여기 본채에서 몇십 년을 지내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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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2화

새집을 살 때 두 층을 샀었다.오늘 뮤지컬을 보러 외출했던 허민정은 집에 돌아오기도 전에 허설아한테서 연희 데리고 이사 간다는 전화를 받았다. 바로 새집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허민정은 왜 갑자기 말도 없이 이사를 간다는 건지 영문을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새집에 도착해 문을 두드리니 미애 이모가 문을 열어줬다.오늘 오후에 있었던 일을 곧이곧대로 얘기하는 미애 이모의 말을 들으면서도 허민정은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미애 이모가 나지막하게 말했다."사모님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여도 성격이 장난이 아니세요. 한번 뱉은 말은 그대로 해내시더라고요."허민정은 아이가 무사한 걸 확인하고 나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설아요? 절대 얌전한 애가 아니에요. 어릴 때는 나를 감싼다고 마당 가득한 어른들한테 맞받아 소리 지르면서 싸우는 애였어요. 어릴 때 얼마나 고집이 세다고 소문 났는데요.대부분 설아 오빠가 설아 뒷수습하러 다녔죠."미애 이모는 이런 허설아의 모습이 처음이었다. 허민정은 놀라지도 않고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지헌이가 워낙 오냐오냐 해주니까 성깔이 다시 돌아온 거예요.""우리 남편이랑 시어머니가 연달아 돌아가시고 연희까지 생기면서 설아 고집이 다 꺾였거든요. 누굴 때리기는 커녕 화 한번 제대로 못 냈어요."허민정은 만감이 교차했다. 허설아가 성질부리는 걸 보고 기뻐하다니. 가슴속에 쌓인 울분은 밖으로 다 태워버려야 했다. 속에만 담고 있으면 언젠가 자기 자신을 다 태워버릴 것이다. 화를 낸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초인종이 울렸다.허민정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밥하러 가봐요. 내가 문 열게요.""대표님이 오신 것 같아요."문을 열자 역시나 권지헌이 문 앞에 서 있었다."어머니. 설아는요?""방에 있어."이사라고 했지만 이 집은 이미 오래전부터 필요한 것들이 다 준비되어 있었다. 미애 이모가 식재료까지 잔뜩 사다 냉장고를 채워놔서 바로 들어와 살 수 있었다. 허설아가 챙긴 건 본인과 연희, 그리고 허민정의 옷가지 몇 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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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3화

"왜 말 안 했어?""네가 걱정할까 봐. 그리고 심하게 다친 것도 아니고 연희도 옆에 있어서 놀랄까 봐 그랬지." 권지헌도 자기가 잘못한 걸 알고 있었다. 허설아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한 순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허설아는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터졌다. "내가 걱정할까 봐? 그래서 약도 안 발랐어? 권지헌, 혼자 어느 날 죽어서 나한테 아이 데리고 재혼이나 하라는 거야?"권지헌이 허설아 앞에 한쪽 무릎 꿇고 앉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등의 상처가 땅겨져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게 되었다. 허설아는 코웃음을 쳤다.불쌍한 척을 하다니, 그런 수에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권지헌이 해명을 늘어놓았다. "낮에 회사에서 약 발랐어. 못 믿겠으면 조 비서한테 물어봐. 집에 오기 전에 네가 약 냄새 맡을까 봐 씻은 거야."허설아는 당장이라도 한 대 더 때리고 싶었다."권지헌, 지금 나랑 게릴라 작전해?" 허설아는 권지헌의 아내이지 적이 아니었다. 다친 걸 들키지 않으려고 이렇게까지 철통 방어를 하다니, 허설아가 권지헌이 죽길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권지헌이 연신 사과했다."내 잘못이야. 내가 잘못했어."허설아는 그런 권지헌을 빤히 바라봤다. 맑게 빛나는 눈동자가 권지헌을 향해 있었고 눈에서는 빛이 반짝였다. "권지헌, 당신 예전이랑 하나도 안 변했네."여전히 고집스럽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무슨 일이 있어도 말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허설아가 그런 것도 못 견딜 여자로 보였을까? 공장이 통째로 불타도 무너지지 않았던 허설아였는데 정작 그 모든 걸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이 권지헌이라니.허설아는 권지헌의 눈에 자신이 강하고 용감한 여자로 보이기를 바랐다.권지헌의 아내였고 두 사람은 생사를 함께해야 하는 사이였다. 허설아가 늘 원했던 건 권지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었다.말에서 떨어져 다쳤는데 그걸 숨기려고 이렇게까지 철통방어를 하다니. 허설아는 마음속에 왠지 모를 서러움이 밀려와 권지헌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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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4화

전에 조민규가 허설아가 알면 분명 화낼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권지헌은 별일 아니라고 여겼다.허설아는 매일 정신없이 바빴고, 공장 일만으로도 벅찼다.이런 사소한 일로 신경 쓰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허설아는 대꾸하지 않고 혼자 씩씩거렸다. 권지헌이 다시 말을 이었다."먼저 병원 다녀올게. 금방 돌아올게."문이 열렸다가 다시 닫혔다.권지헌이 옷깃을 정돈하고 거실로 나와 외투를 집어 들더니, 손으로 툭툭 털어 주름을 폈다.그 모습을 본 허민정이 물었다."나가려고?""병원 좀 가려고요. 전에 굴러서 좀 다쳤는데 설아가 걱정된다고 가보라고 해서요."허민정은 잠시 멍해졌다."다쳤다고? 심각해? 설아는 왜 이제야 안 거야?""제가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래서 설아가 화났어요."허민정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부부가 오래 살다 보면 말은 숨길 수 있어도, 몸의 변화나 눈빛까지 숨기기는 어려운 법이다.허설아가 걱정할까 봐 권지헌이 다친 걸 숨긴 건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었다.허민정이 차분하게 말을 꺼내며 타일렀다. "지헌아, 너는 부모님이 엄하게 키우셔서 설아랑은 완전히 달라." "설아는 어릴 때부터 설아 아빠가 불면 날아갈세라 애지중지하던 애야. 지헌이가 연희 아끼는 것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니까. 그 고집쟁이가 글쎄, 설아 초등학교 다닐 때 마중 나갔다가 길에서 차가 고장 난 적 있는데 눈길을 헤치고 1km를 걸어갔다는 거야. 온몸이 꽁꽁 얼어붙어서는 설아 준다고 산 호떡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말이야.""그러고는 나한테 들킬까 봐 집에도 못 들어오고 둘이 밖에서 호떡 먹고 들어온 거야." 미애 이모가 따라 웃으며 말했다."그게 다 사장님이 따님을 끔찍이 아끼셨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 양반이 워낙 그런 사람이었어요. 나랑도 못하는 얘기가 없었거든요? 본인이 아프다는 얘기만 빼고요."허민정이 그리운 듯 표정이 서글퍼지고 조용한 한숨을 뱉으며 말했다. 눈시울을 붉힌 채 권지헌을 간절하게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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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5화

전에 허설아도 잠깐 말한 적은 있었지만 그냥 지나가는 말로만 했었다. 지금 허민정한테서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나니 권지헌은 가슴이 미어터질 것 같았다. 허민정이 말을 이었다."설아 정말 강하고 긍정적인 애야. 항암 치료가 긴 시간이 될 수도 있으니 우리 모두 힘내서 버티자고 했어요. 그런데 설아 아빠가 병을 너무 오래 숨겨서 이미 온몸에 퍼진 상태라 손 쓸 수가 없었지. 게다가 우리 시어머니, 그러니까 설아 할머니도 위독하셨고 나도 아픈 데다 설아는 임신 중이었지.""가끔 난 그런 생각을 해. 아이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이 고통을 감당하게 만든 건 아닌가 싶었어." "설아한테 많이 미안해."미애 이모도 허설아가 그런 시절을 보냈을 줄은 몰랐다.혼자 연희를 낳은 시절 얘기만 하면 박희수가 몰래 눈물을 훔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전에 허설아가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을 때도 박희수는 권씨 가문이 허설아한테 빚진 거라고 했었다.권지헌은 목이 꽉 메어 꼭 닫힌 방문을 돌아봤다.방금 허설아가 따지던 순간,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 한 방울이 마치 권지헌의 심장에 박혀버린 것 같았다.권지헌이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작은 부상이라고 생각해서 설아 걱정시키기 싫었어요.""크고 작은 일이 따로 있어? 작은 것도 숨기는데 큰일이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지헌아, 부부 사이에서 이건 신뢰의 문제야.""한 번을 숨기면 설아는 네가 또 다른 것도 숨기는 게 있는지 의심하게 돼."미애 이모도 눈물을 훔치며 거들었다."맞아요, 여자들은 생각이 많잖아요. 대표님도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사모님이 다쳤는데 대표님한테 말을 안 하면 어떻겠어요?"권지헌은 말문이 막혔다.누군가 심장을 꽉 움켜쥔 것처럼 숨이 막혔다.권지헌이 알아들었을 거라 생각한 허민정도 더 이상 잔소리하지 않았다."얼른 병원 가 봐. 설아가 기다릴 테니 빨리 다녀와서 밥 먹어.""네. 감사합니다, 어머니."권지헌이 넋이 나간 사람처럼 문을 나섰다.다행히 엑스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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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6화

이 질문을 한 순간, 권지헌은 괜한 질문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서은석은 핸드폰을 들고 사방팔방으로 셀카를 찍으며 우는 시늉을 했다. "너무 아파 죽겠어, 진짜."핸드폰으로 다친 부위와 깁스한 팔을 이리저리 보여주며 영상을 전송했다.누구한테 보냈는지는 말 안 해도 뻔했다.잠시 후 영상통화가 걸려 오더니 송원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에요?""아무것도 아니야." 서은석이 일부러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그냥 좀 긁혀서 다쳤는데 의사가 당분간 좀 쉬어야 한대."송원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오늘 저녁에 돌아오면 꼬리곰탕 끓여줄게요."서은석은 꼴보기 싫을 정도로 활짝 웃었다. "고마워, 송 대표."카메라가 운전석에 앉은 남자를 훑자 송원영이 물었다."옆에는 누구예요?""아, 지헌이야. 지헌이도 다쳤는데 마침 정형외과에서 딱 마주친 거야 ."다쳐서 같은 과에 진료 받으러 갔는데 거기서 또 우연히 만나는 일도 드물었다. 서은석은 영상통화도 끊지 않고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아무것도 아니야."권지헌이 입을 다물었다. 항상 날카롭던 눈빛에 망연자실한 기색이 드러났다.얼마전처럼 허설아한테 남편과 아이가 있다고 오해해서 한 번이라도 돌아봐 주길 바랐을 때 다쳤다면, 서은석처럼 당장 달려가서 알렸을 것이다. 불쌍하게 포장해서라도 말이다.근데 지금은 허설아한테 숨기고만 싶었다.권지헌이 핸들을 꽉 쥐자 손등의 핏줄이 두드러지며 툭툭 뛰었다.권지헌이 말을 꺼냈다. "설아한테 다친 거 말 안 해서 화났어."서은석이 얼른 카메라를 향해 외쳤다."원영아,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 나는 뭐든 다 너한테 얘기할 거야."권지헌이 미간을 찌푸린 채 카메라 너머로 충성심을 맹세 중인 서은석을 차갑게 흘겨봤다."어릴 때 바지에 오줌 쌌던 것도 말할 거야?"서은석이 눈썹을 슬쩍 올리며 말했다."그게 뭐가 대수라고, 나 지금도 바지에 싸."농담으로 한 말인데 송원영이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서은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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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7화

박희수는 그 모습에 속으로 의아해졌다.'이 녀석이 또 무슨 짓을 해서 설아를 화나게 한 거지?'그런데 권지헌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슬그머니 허설아 쪽으로 의자를 바짝 붙였다. 허설아가 거들떠보지도 않자 권지헌은 꾹 참으며 말했다. "자기야. 왜 나 차단한 거야?"그 말에 박희수는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권정우와 똑같이 저런 짓을 하다니. 권지헌처럼 뻔뻔하지 않았던 허설아는 고개를 들고 눈을흘기며 말했다."조용히 해.""의사가 괜찮다고 해서 문자 보냈더니 차단당했더라고.""그래서? 의사가 안 괜찮다고 했으면 그때는 차단도 못 해?" 박희수가 영문을 모른 채 물었다."무슨 일이야? 병원엔 또 왜 갔어?"연희가 국을 한 모금 마시고 시원스레 얘기했다. "큰곰 할머니, 아빠가 나 데리고 말 타러 갔다가 굴러 떨어졌거든요. 엄마한테 말하지 말랬는데 내가 말했어요."박희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권정우가 바로 화내지 못하게 손을 뻗으며 말렸다. 의사도 괜찮다고 했고 성낼 사람은 따로 있는데 박희수까지 끼어들 것 없었다. "연희야, 아빠랑 약속해 놓고 왜 엄마한테 얘기했어?""엄마는 연희랑 제일 친한 친구니까. 난 엄마랑 비밀이 없어."연희가 밥그릇에 담긴 밥을 먹다가 입가에 붙은 밥풀을 혀로 날름 핥아 먹었다. "아빠가 다음 날이면 다 낫는다고 했는데 거짓말이었잖아."'아빠가 거짓말만 안 했어도 엄마한테 얘기하지 않았을 텐데.'박희수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권지헌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젠 너한테 할 말이 없다. 그 나이 먹도록 연희보다도 못해."권지헌이 재빨리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인정했다. "맞아요. 제 잘못이에요."눈이 마주친 박희수와 권정우의 눈에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권지헌은 어려서부터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그런데 지금 순순히 자기 잘못이라며 인정한 것이다.허설아는 여전히 화가 덜 풀렸지만 그래도 권지헌 손에 있던 엑스레이 필름을 가져다가 불빛에 대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이상 없는 걸 확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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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8화

어른들이 중재해 주니 허설아도 화가 조금씩 가라앉았다.그래도 권지헌을 보면 짜증이 나는 건 여전했다. 허설아가 더 이상 각방 얘기를 꺼내지 않자 권지헌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오다가 은석이 만났는데 공사 현장에서 사고가 있었대요."권정우가 그 말에 맞장구를 쳤다. "아, 그래. 서씨 가문 현장 사고 뉴스에도 났잖아. 은석이는 괜찮아? 아랫사람들이 주머니 채우려고 중간에서 이득 챙기려 했는데 은석이가 직접 현장에 갈 줄은 몰랐던 거지." 권지헌 앞에 사골 국물 한 그릇이 놓였다.허설아는 앞에 내려놓고도 여전히 거들떠보지 않았다.권지헌은 눈치껏 말없이 다 먹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큰 문제는 없어 보였어요."송원영한테 애교 부리고 연락할 여유도 있는 걸 보면 무슨 큰 일이 있겠어. 그 얘기에 권정우가 감회에 젖은 듯 말했다. "은석이 녀석, 전에는 맨날 놀기만 했는데 요즘 들어서 부쩍 열심히 하더라. 스스로 프로젝트도 몇 개씩 떠맡더니 실적도 아주 괜찮아. 은석이 아버지도 나한테 몇 번이나 칭찬하더라." 서씨 가문은 자식이 많아서 서은석 위로 형제자매가 여러 명이나 있었고 서은석은 원래 한량 같은 성격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위에 받쳐줄 형, 누나들이 있었기에 막 나가지만 않으면 되었다. 그런데 또 머리는 좋아서 서씨 가문에서도 권지헌이 좀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주라고 권정우한테 몇 번이나 부탁했었다.그런데 요즘 갑자기 철이 든 것처럼 달라졌다. 박희수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갑자기 철이 든 게 아니라 은석이가 자기 엄마한테 그러더래. 여자 친구가 너무 열심히 살아서 나중에 무능하다고 버림받을까 봐 겁난대." 권정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 녀석도 참."이런 이유로 분발하다니, 난생처음 듣는 얘기였다.박희수가 허설아에게 물었다."설아야, 은석이 여자 친구가 송씨 가문 그 딸이지? 너희 회사라고 하지 않았어?""네. 원영 씨 정말 열심히 해요, 능력도 뛰어나고요. 저한테 1년 치 월급을 미리 가불받지 않았으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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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9화

문을 닫자마자 뒤에서 허설아의 허리를 으스러지게 감싸안았다. "자기야, 화 풀어."허설아는 귓가가 저릿해졌다. 권지헌이 애교 부리며 서운한 척 내뱉는 숨결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아 다리에 힘이 풀렸다."앞으로는 절대 이러지 않을게. 내가 잘못했어."허설아는 믿지 않았다."어떻게 장담할 건데?"권지헌이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만약 또 숨기면 한 달 동안 안지 못하게 해도 돼."허설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엄청난 벌인 것처럼 말하네.'"지호는 본가로 보냈어. 갖고 있던 주식 일부도 서진이한테 넘겼고."허설아가 흠칫 놀라며 말했다. "서진 씨한테 복수하진 않겠지?""서진이 쪽에는 따로 사람 붙여둘 거야. 서진이도 권씨 가문 사람이라 어릴 때부터 경호원이 따라다녔어. 거기다 오늘 아침에 진 어르신이 할아버지한테 전화까지 하셨으니 당장은 별일 없을 거야."진하윤의 아버지는 서예 대가였다. 작품 하나가 경매에서 수억 원에 낙찰될 정도로 집안 내공이 대단한 분이었다.인맥도 아주 어마어마했다. 십여 년 만에 연락을 해서는 다짜고짜 권호성이 선택한 손자사윗감은 절대 안 된다며 엄포를 놓았다. 권호성은 그 자리에서 까무러칠 뻔했다.게다가 진민국은 말주변도 좋았다. 말문을 떼자마자 권호성이 서경시 사정을 잘 몰라서 실수한 거라며 깨끗하지 않은 집안이라고 못 박았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권서진과 결혼하냐는 거였다.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안부 인사를 나눈 권호성은 전화를 끊고 나서는 화가 치밀어 틀니를 바득바득 갈았다. 허설아가 고개를 갸웃했다."할아버지는 왜 굳이 서진 씨한테 안 좋은 남자를 붙여주려는 거야?""남자들은 같은 남자의 잘못을 항상 봐주게 되어 있거든."권호성이 권서진을 아끼지 않으니 당연히 신경도 덜 썼을 것이다. 게다가 권호성 기준에서 남자라면 다 하는 실수는 권서진만 굳이 따지지 않으면 다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허설아가 잠시 침묵했다. "그럼 왜 꼭 서진 씨를 시집보내려는 거야?""맞혀봐."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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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0화

서경시, 화창한 봄날.권서진이 진민국 집 거실에서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최시연이 씻어 온 과일을 받아 들었다."감사해요, 외할머니! 외할머니가 씻어준 과일이 제일 맛있어요!"최시연이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권서진은 부모님의 장점만 쏙 빼닮아 외모가 빼어났다. 언제나 자신감 있고 여유로운 기운이 느껴져 진민국 내외가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옆에 앉아 다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걸 본 진하윤은 마음속 돌덩이를 내려놓은 것 같았다.진민국은 고집이 셌다. 예술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존심이 강했다. 권정열과는 강성시 한복판에서도 칼을 휘두르며 맞붙을 수 있는 진하윤이지만 이 나이가 되어서도 진민국 앞에서는 큰소리 한번 낼 수 없었다. 뜻밖에도 진민국이 권서진에게 무척이나 다정하게 대할 줄을 몰랐다. 진하윤에게는 오빠 둘과 남동생 하나가 있었는데 집안의 유일한 딸이었다.권서진이 온 뒤 외삼촌들도 전화를 걸어와 안부 인사를 전했다. 큰외숙모는 권서진을 보자마자 큰외삼촌보다 더 흥분했다. "아이고, 서진이구나! 나 탈피 시리즈도 주문했고 에덴 시리즈도 네 사촌 언니 주려고 한 세트 샀어. 나 진짜 네 왕팬이야!"권서진이 단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다음에 외숙모가 오시면 할인해 드릴게요.""할인은 됐고 언제 프라이빗 주문 예약할 수 있어? 네 사촌 언니 결혼식에 맞춰서 주얼리 한 세트 제작하고 싶어." "외숙모, 제 연락처 추가하세요. 제가 일정 보내드릴게요."두 사람이 왜 이제야 만났나 싶을 정도로 얘기가 잘 통했다. 권서진의 큰외삼촌이 옆으로 밀려나 있을 정도였다.진하윤도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이 정도면 앞으로 권서진이 새롭게 기댈 곳이 생기는 거니 권호성도 앞으로 결혼 문제에 관해서도 한 번쯤 더 고민할 것이다.최시연이 권서진 옆에 앉으며 물었다."서진아, 너희 할아버지는 왜 굳이 너를 시집보내려 하는 거야?"권서진은 아직 어렸다. 대학 졸업한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심지어 일찍 입학한 편이라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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