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의 모든 챕터: 챕터 651 - 챕터 660

751 챕터

제651화

허설아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밥 먹다 말고 몸무게부터 재는 게 어디 있어요?""재고 나서 마저 먹어. 내가 보기엔 45kg도 안 되겠던데.""그 정도는 아니에요."막상 체중계에 올라서니 47.5kg이 나왔다. 허민정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연신 고개를 저었다."방금 밥 먹은 무게가 더해져서 그래. 실제로는 아마 44kg 정도밖에 안 될 거야." 허설아는 이런 식으로 빼면 머리카락과 입은 옷 무게까지 빼야 할 것 같았다. 허설아가 허민정 손을 끌어다 팔뚝에 올리고 힘을 주자 단단한 근육이 느껴졌다. "요즘 짐을 자주 드니까 근육이 붙어서 말라 보이는 거예요."하루 세 끼 가운데 점심 한 끼만 밖에서 먹곤 했었다. 하지만 유산 후 몸조리를 마친 뒤로는 점심마저 권지헌이 직접 가져다주거나 박희수가 챙겨 줬다.게다가 옆에서 다 먹는 걸 지켜본 뒤에야 자리를 뜨곤 했다.허설아도 사실 좀 부담스러웠지만 점심마다 잘생긴 남자와 마주 앉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그제야 허민정도 마음이 놓였다. 식사를 마친 허설아가 창가에 서서 바다를 보고 있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미애 이모가 문을 열자 박희수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야, 할아버지 집에 일이 생겼어. 얼른 옷 갈아입고 같이 가보자."허민정이 얼른 다가가 연희를 받아 안고 토닥이며 박희수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나도 잘 모르겠어요. 지헌이 아빠가 밥 먹자마자 건너갔는데 몇 분 전에 전화 와서 아버님이 갑자기 위독해지셨다고 설아랑 같이 본가로 오라고 하네요. 지헌이는 벌써 그쪽에 가 있대요."허설아가 외투를 걸치고 나오다 그 말에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지헌이가 벌써 거기 가 있어요?""오후부터 거기 있었대."허설아는 문득 저녁에 볼 일이 있다고 했던 권지헌의 전화가 떠올랐다. 당연히 회사에서 야근하는 줄 알고 더 묻지 않았다.그런데 오후부터 본가에 가 있었을 줄이야. 권지헌이 오후부터 본가에 있었는데 저녁에 권호성이 쓰러졌다니, 어쩐지 이 모든 게 우연
더 보기

제652화

허설아는 박희수를 붙잡고 문밖에 멈춰 선 채 서둘러 들어가지 않았다.박희수는 본능적으로 허설아를 끌고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허설아는 속눈썹만 파르르 떨릴 뿐 놀라거나 충격받은 기색이 전혀 없었다.박희수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허설아가 이러는 걸 보면 이미 짐작했거나 원래 침착한 성격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박희수는 자기 아들을 너무 잘 알았다.권지헌이 허설아한테 이런 얘기를 했을 리 없었다.어느 쪽이든 이런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박희수의 손목을 잡고 있는 모습에 흐트러진 기색 하나 없는 모습이 박희수는 너무 흡족했다.허설아는 권지헌한테도, 권씨 가문에도 딱 맞는 사람이었다.그에 비하면, 박희수는 젊었을 때 일이 생기면 금세 우울해져서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려고 했었다. 그런 걸 보면 허설아는 박희수보다도 훨씬 강한 사람이었다.허설아는 문틈 사이로 시선을 옮겨 권지헌을 바라봤다.권지헌은 아침에 허설아가 골라준 캐시미어 코트 안에 짙은 버건디색 셔츠를 받쳐 입고 있었다. 평소엔 이런 색을 거의 입지 않았는데 늘 점잖다 못해 고리타분한 스타일만 고집했었다.허설아는 권지헌을 스타일링해주는 게 좋았다. 작은 디테일만 조금 더하면 한층 기품 있고 무게감 있어 보였다.지금 보니 역시 허설아의 안목이 틀리지 않은 듯했다.권지헌이 권호성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그때 일은 저와 상관없어요. 그런데 인생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 할아버지가 즐겨 하시던 말 아니에요?"권호성의 축 처진 볼이 부르르 떨렸다."너 지금 어쩌겠다는 거냐?"권지헌은 권호성 앞에 우뚝 선 채 차분하면서도 얼음장처럼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설아는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에 이미 임신한 상태였어요. 비록 얘기한 적은 없지만 설아도 저만큼이나 그 아이를 기다려온 걸 저도 알고 있었어요." "설아가 연희 낳을 때도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고 항상 미안했어요."권호성도 그때 허설아가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더 보기

제653화

권지헌의 목소리가 단숨에 날카로워졌다."서진이는 권씨 가문 자식이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서진이한테 찾아준 그 남자, 권씨 가문 딸과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럴 자격이나 되냐고요!"권호성은 그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진하윤이 와락 달려들어 권호성을 덮치더니 연거푸 내리쳤다."이 죽지도 않는 영감탱이! 내 인생을 이 꼴로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내 딸까지 망가뜨리려고 해!"권호성은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았다. 진하윤을 떼어내려 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분노에 찬 여자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몇 대나 맞고 말았다.그제야 박희수가 안으로 들어와 진하윤을 끌어안아 떼어냈다.노인네가 나이도 있는데 진하윤한테 맞아서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뒷수습이 곤란해질 터였다.박희수가 들어오는 걸 본 권지헌이 고개를 돌렸다.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허설아가 보였다.집에서 입던 실크 슬립 롱원피스에 급하게 롱코트만 걸치고 나온 모습이었다. 코트가 몸을 감싸 꽃병 같은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가냘프면서도 놀랄 정도로 아름다웠다.권지헌이 허설아를 바라봤다.하지만 허설아는 시선을 내리깐 채, 차갑고 오만한 눈빛으로 권호성을 보고 있었다.순간, 권지헌도 허설아의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허설아는 무척 차분했다. 이미 모든 전후 사정을 짐작하고 있었던 만큼 얼굴에는 싸늘한 표정만 느껴졌다. 하지만 한마디 말도 없이 서 있는 모습이 오히려 권지헌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권호성에게 맞서는 일보다 지금 허설아가 먼저 입을 떼기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 권지헌에게는 훨씬 더 괴로웠다.허설아가 권지헌 쪽으로 다가갔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셔츠 소매를 잡아 천천히 걷어 올려주는 허설아의 기다란 속눈썹이 나비가 날갯짓하듯 가볍게 떨렸다."집안이 이렇게 더운데 옷도 안 벗고 뭐 했어."권지헌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경황이 없었어.""등은 아직도 아파?""괜찮아."등에 난 상처는 사실 아직도 가끔씩 욱신거렸다.
더 보기

제654화

박희수가 떼어냈지만 진하윤은 계속 눈물 콧물 쏟으며 울부짖었다."그때 그 일,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겉으로는 내가 권정열을 심씨 가문 그 여자한테 접근하게 만든 것처럼 보였지만 애초에 다 당신이 짜놓은 판이었잖아요! 그 여자를 권정열 첩으로 만들려고 한 거잖아요! 안 그랬으면 권정열이 그렇게 빨리 그 여자를 알 리가 있어요?"권정열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권호성을 쳐다봤다.진하윤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그 여자한테 약혼자가 있고 그 사람이 권정열과 크게 한판 붙을 줄은 예상 못 한 거죠. 세상에 권씨 가문 무서운 줄 모르는 사람도 다 있더라고요!"진하윤은 그날 일을 진작부터 다 알고 있었다.모든 비난이 자기한테 쏠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정작 아무것도 모른 채 속고 있던 사람은 권정열이었다.권정열은 진하윤의 질투 때문에 권호성한테 다리가 부러지게 맞은 거라고 믿고 있었다.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권호성이 짜놓은 판이었다. 다만 진하윤이 순순히 따라주지 않았고 강성시 심씨 집안도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을 뿐이었다.그 바람에 권정열만 희생양이 된 셈이다.진하윤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권정열 씨, 당신 아버지가 당신을 정말 아꼈다고 생각해? 겨우 비단 원단 때문에 당신한테 심씨 가문 사람들한테 접근하라고 한 거야, 계약을 따내려고! 당신은 그저 심씨 집안 딸 환심 사려고 갖다 바친 접대부에 불과해!"말할수록 신이 난 진하윤은 나중엔 몇 번이나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권호성 눈에는 아들 권정열이 접대부보다도 못했을지 몰랐다.권정열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고 얼굴에는 이미 핏기가 싹 사라졌다. 권호성을 보는 눈빛에는 증오뿐이었다!권정열이 여자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권호성은 권정열의 친아버지였다!그런 약점을 이용해서 권정열의 가치를 쥐어짜 내려 한 것이다.권정열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권호성을 노려보며 좋다는 말만 연신 반복했다. 정말 좋은 일이었다. 권호성이 차갑게
더 보기

제655화

권호성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부들부들 떨면서 권지헌을 노려봤다!"너! 나를 그 별장에다 처박아두겠다는 거냐?""경치도 좋고 요양하기엔 딱이에요. 셋째 삼촌이 옆에서 돌봐드릴 거고 둘째 삼촌도 시간 날 때마다 찾아뵐 거예요."권정민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차라리 나았을지 몰랐다. 권정민을 언급하자마자 권지호는 증오 가득한 눈으로 권지헌을 바라봤다. 방금 오간 말다툼 속에서 권지호도 이미 알아챈 게 있었다.원래 고연정과 권정민은 금슬이 꽤 좋았었다. 고연정이 잠깐 마음 흔들린 적 있었다고 해도 정말 한순간일 뿐이었다.권호성이 일부러 고연정의 첫사랑을 권정민의 영화에 출연시켜 고연정한테 다시 접근하도록 만든 것이었다.권호성의 지시를 받은 남자는 일부러 고연정을 유혹해 바람을 피우게 했다.권정민과 고연정을 이혼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이혼하면 권씨 가문에 도움이 될 만한 다른 여자와 새로 결혼시키려 했다. 그 무렵, 정계 집안 딸 하나가 권정민한테 호감을 보였는데 권정민이 유부남이라는 게 걸림돌이었다. 권호성은 이 수법을 아들들한테 똑같이 써먹었다.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었다. 사람 마음을 읽을 줄 몰랐던 것이다. 그렇게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 두 집안을 망가뜨렸다. 권호성이 입버릇처럼 자기만 믿으라던 말도 사실은 자식들을 이용하려고 지어낸 핑계였다.권호성 눈에 권지호는 그저 바둑판 위 바둑알에 불과했다.심지어 바둑알 자격도 없었다.그저 권지헌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쓰일 발판에 불과했다.권지호는 그제야 권호성이 권서진에게 많은 내어주는 걸 아까워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손자들에게도 나눠줄 생각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걸 권지헌 한 사람한테만 물려주려 한 것이다!그래야 가문의 기반이 온전히 유지된다고 믿었다. 마음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당혹감이 밀려온 권지호는 연신 뒷걸음질 쳤다. 권지헌은 권지호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더 이상 권호성과 설전을 벌일 생각도 없었다. "할아버지, 드릴 말씀은 다 드렸어요
더 보기

제656화

어느덧 5월 중순이 되었다. 예정된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원래 별로 긴장하지 않았던 허설아는 매일같이 온갖 디테일이 마음에 드는지 물어보는 권지헌 때문에 덩달아 긴장되고 설렜다.결혼식 준비에서 허설아가 직접 관여한 건 웨딩드레스를 고른 것뿐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권지헌이 직접 결정했다.허설아가 나설 일은 거의 없었다.결혼식 장소는 바닷가의 한 호텔로 정해졌고 허설아는 전에 딱 한 번 가서 장소만 둘러본 게 전부였다.다시 그곳을 찾은 건 결혼식 날이었다.바닷바람이 허설아의 얼굴을 스치고 수평선 너머에서 밀려온 파도가 겹겹이 부서지며 가까이 다가왔다. 초대한 손님이 많지는 않았지만 다 세어보면 그래도 백 명은 넘었다.권씨 가문에서 수십 년 만에 처음 열리는 결혼식인지라 축의금을 들고 찾아오겠다는 사람들로 문턱이 닳을 지경이었다. 결혼식 모든 걸 협찬해 주겠다고 제안한 업체도 한둘이 아니었다.하지만 허설아와 권지헌은 전부 거절했다.두 사람의 결혼식을 이용해 세간의 이목을 끌 생각도 없었기에 브랜드 협찬도 필요 없었다.권서진이 상자 하나를 품에 안고 신부 대기실 문을 두드렸다.송원영과 안초희가 허설아의 드레스를 정리해 주고 있었다. 대기실로 들어선 권서진은 허설아의 모습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허설아는 옅은 하늘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여러 겹으로 풍성하게 겹쳐진 드레스 자락마다 수작업으로 박은 다이아몬드가 반짝였고 허리 라인에는 허설아의 아름다운 모습에 이끌려 내려앉은 듯한 날개를 펼친 나비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드레스도 아름다웠지만 신부는 더 아름다웠다.허설아가 입은 웨딩드레스를 처음 본 권서진은 여신이 강림한 것 같다며 감탄을 터뜨렸다.권서진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손에 든 상자를 열었다."언니, 결혼 선물이에요."주얼리 세트였다.진주와 보석을 메인으로 하고 다이아몬드가 화려하게 빛나는 디자인으로 목걸이와 귀걸이뿐만 아니라 티아라와 팔찌까지 세트로 갖춰져 있었다. 권서진이 대체 언제 시간을 내서 디자
더 보기

제657화

만약 연동근이 오늘 이 자리에 있었다면 분명 또 펑펑 울었을 것이다. 그 생각에 허민정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허설아가 권지헌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는 모습을 바라봤다.마치 아기였던 허설아가, 학생이던 허설아가, 어른이 된 허설아가 허민정을 향해 걸어왔다가 다시 멀어지는 것 같았다.이제는 허설아만의 세상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허민정과 연동근이 애지중지 키운 딸이 마침내 허설아를 보물처럼 소중히 여겨줄 남자를 만난 것이다. 박희수도 눈물을 닦았다.허민정의 손을 잡은 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얼굴에는 안도와 흐뭇함뿐이었다.허설아의 손을 잡은 권지헌이 마이크를 들었다. 권지헌이 주위를 둘러보며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저와 설아의 결혼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말을 하던 권지헌이 갑자기 울컥했다. 허설아가 권지헌의 등을 토닥이며 웃었다."뭐가 그렇게 긴장돼?"두 사람의 결혼식은 리허설이 없었기 때문에 권지헌이 무슨 말을 할지는 허설아도 몰랐다."제 아내한테 줄 선물이 하나 있습니다."허설아가 의아해하며 하객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뒤편 대형 스크린에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언제 찍은 건지 알 수 없었다.영상 속에는 앳된 얼굴의 허설아와 권지헌이 나무 아래 서 있었다.허설아가 권지헌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지헌아, 이 나무한테 소원 빌면 다 이루어진대!"권지헌이 무덤덤하게 대꾸했다."유치하긴."그래도 허설아는 신이 나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채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권지헌은 소원도 빌지 않고 눈도 감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시선을 줄곧 허설아를 향해 있었다. 마치 권지헌의 세상에는 오직 허설아 뿐인 듯했다. 화면이 바뀌자 이번에는 권지헌 혼자 나무 아래 서 있었다.낮에 입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옆에 허설아는 없고 권지헌 혼자뿐이었다.권지헌이 거만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허설아가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했으니까 난 허설아와
더 보기

제658화

권지헌이 준비한 이 결혼 선물을 보지 못했다면 허설아는 그때 그곳에 갔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었을 것이다.아름드리나무한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말은 그냥 한 말이었다.게다가 권지헌이 유치하다고 해서 살짝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그런데 지금 보니 혼자만의 짝사랑이 아니었다.이미 몇 년 전부터, 두 사람은 같은 소원을 빌었던 것이다.곁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소원을 말이다.허설아는 화장이 번질까 걱정하며 눈을 깜빡이며 눈물을 참았다. 레드카펫 끝에는 허설아의 웨딩드레스와 같은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은 연희와 똑같이 깜찍하게 꾸민 곰돌이가 서 있었다.연희의 손에는 허설아와 권지헌의 결혼반지가 들려 있었다. 결혼 선물을 주려고 고모인 권서진과 함께 디자인한 것이었다. 이런 식순이 있는 줄 몰랐던 허설아는 연희를 보자마자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허설아가 몸을 낮춰 연희를 향해 두 팔을 벌리자 찹쌀떡처럼 부드럽고 귀여운 아이가 품에 쏙 안겼다. 허설아의 보물이었다.반지는 허설아도 몰랐고 심지어 권지헌조차 어떤 디자인인지 알지 못했다.다만 전에 권서진이 의미심장하게 연희와 함께 디자인한 반지가 권지헌이 찾은 결혼반지보다 훨씬 재밌을 거라고 말한 적은 있었다.반지 케이스를 열어보니 크기가 제각각인 별 세 개가 메인 주얼리였는데 별마다 알파벳이 새겨져 있었다. 세 식구의 이니셜이었다. 권지헌이 고개를 숙이며 피식 웃었다.허설아도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재밌는 디자인이었다.이 세상에 결혼식에서 딸이 디자인한 반지를 결혼반지로 쓰는 신부는 아마 허설아뿐일 것이다.하지만 허설아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권지헌도 마찬가지였다.전에 허설아는 결혼식 식순이 너무 많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 적 있었다. 허민정이 진행 담당 직원에게 손을 흔들고는 허설아한테 눈을 찡긋했다."아빠, 엄마도 너한테 줄 선물이 있어."멈칫하던 허설아가 뒤돌아 뒤편 스크린을 바라보니 이번에도 영상이었다.배경은 병원 병실이었다. 새 양복을
더 보기

제659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내가 바라는 건 두 사람이 화목하게 백년해로하는 것뿐이야."이쯤 되자 연동근도 더 이상 말할 힘이 없었고 마침 문밖에서 허설아의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허민정이 황급히 일어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영상을 종료하기 직전, 허설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갑자기 양복은 왜 입었어요?""마지막일 것 같아서 입고 싶었어."영상은 여기서 종료되었다. 허설아는 둑이 터지듯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화장이 망가지든 체면이 구겨지든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연동근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양복을 차려입은 건 허설아를 위해서였다.그때는 분명 앉아서 말할 힘조차 없었을 텐데도 억지로 버틴 것이다.허설아는 그날 연동근 컨디션이 좋아 보여서 좋은 징조라고만 생각했다.그게 꺼져가는 촛불의 마지막 불꽃인 줄은 몰랐다. 그나마 남은 빛을 오롯이 허설아에게 쏟아부은 것이다. 항상 아낌없이 모든 걸 남김없이 다 주었다.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허설아를 꼭 끌어안아주는 권지헌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연동근이 허설아한테 아낌없이 쏟은 사랑과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걱정하던 마음을 떠올릴 때마다 권지헌은 마음이 울컥했다. 권지헌이 허설아의 등을 토닥이며 다독였다."아버님도 우리 보면서 안심하실 거야." 허설아는 몇 번이나 흐느끼며 울었다.허민정도 따라서 눈물을 훔쳤다.권지헌이 허설아의 얼굴에 흐른 눈물을 닦아주며 웃었다."나랑 아버님이 마음이 잘 통하나 봐. 다 영상을 준비했네."심지어 시기까지 비슷했다.텔레파시가 통한 셈이었다.허설아는 권지헌의 농담에 피식 웃으며 마음을 짓누르던 먹먹함을 겨우 가라앉혔다.부케 던지는 순서에서 허설아는 부케 안에 선물을 숨겨뒀다.다들 결혼하기 싫다고 부케를 안 받으려고 할까 봐 걱정했는데 허설아가 몸을 돌리자 뒤에 부케를 받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농담이 아니었다.부케는 몰라도 행운만큼은 다들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받을 생각도 없이 구경만 하던 권서진의 손에 부케가
더 보기

제660화

지난번 맞선도 사실 우연이었다.마친 김아림이 양쪽을 다 알고 있어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았다면 양준우와 권서진은 평생 만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그날 있었던 추돌 사고가 떠올랐다.어쩌면 그것도 인연이었을지 몰랐다.하지만 양준우한테 권서진은 화려하고 정열적인 빨간 장미 같은 존재였고 자신은 그저 재미없는 흙일 뿐이었다.갑자기 눈앞에 술잔 하나가 불쑥 나타났다.서은석이 술잔을 건네며 양준우를 향해 눈썹을 치켜올렸다."우리 서진이 마음에 들어요?""그런 건 아니고 그냥...... 호감인 정도예요."삼십 년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양준우는 권서진 같은 사람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감정이라고 하기엔 아직 섣불렀다.서은석이 씩 웃었다."그럼 이미 끝난 거예요. 서진이는 어릴 때부터 저랑 같이 자라서 어떤 남자들이 서진이를 좋아하는지 제일 잘 알거든요."서은석은 누구보다 정확히 보아낼 수 있었다.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권서진 주변을 맴도는 남자들은 외모에 끌렸거나 성격에 반해서 쫓아다니거나 아니면 집안을 보고 다가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양준우 같은 부류였다.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속은 의외로 능글맞은 타입이었다.게다가 남자는 남자를 알아보는 법이었다.한 남자의 눈에 오직 한 여자 뿐이면서 호감이라고 할 때는 사실 결론이 난 거나 다름없었다.양준우는 목젖을 꿀렁이며 잔에 든 술을 한 모금 마셨다. 도수가 꽤 높아서 마시자마자 독한 술 특유의 알싸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양준우의 시선은 마치 나비처럼 꽃밭을 사뿐사뿐 옮겨 다니는 권서진을 따라갔다.마음속에서 불현듯 답답하면서도 뜨거운 덩굴이 자라나 온몸을 휘감아 숨 막히게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서은석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양준우가 숨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물었다."서진 씨는 어떤 거 좋아해요?""가방, 옷, 명품 좋아하는데 그런 건 이미 다 차고 넘치죠."양준우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어떤 타입 좋아하는지 물었습니다
더 보기
이전
1
...
6465666768
...
76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