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지헌의 목소리가 단숨에 날카로워졌다."서진이는 권씨 가문 자식이 아니에요? 할아버지가 서진이한테 찾아준 그 남자, 권씨 가문 딸과 결혼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럴 자격이나 되냐고요!"권호성은 그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진하윤이 와락 달려들어 권호성을 덮치더니 연거푸 내리쳤다."이 죽지도 않는 영감탱이! 내 인생을 이 꼴로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내 딸까지 망가뜨리려고 해!"권호성은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았다. 진하윤을 떼어내려 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분노에 찬 여자의 힘을 당해내지 못하고 몇 대나 맞고 말았다.그제야 박희수가 안으로 들어와 진하윤을 끌어안아 떼어냈다.노인네가 나이도 있는데 진하윤한테 맞아서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뒷수습이 곤란해질 터였다.박희수가 들어오는 걸 본 권지헌이 고개를 돌렸다.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허설아가 보였다.집에서 입던 실크 슬립 롱원피스에 급하게 롱코트만 걸치고 나온 모습이었다. 코트가 몸을 감싸 꽃병 같은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가냘프면서도 놀랄 정도로 아름다웠다.권지헌이 허설아를 바라봤다.하지만 허설아는 시선을 내리깐 채, 차갑고 오만한 눈빛으로 권호성을 보고 있었다.순간, 권지헌도 허설아의 속내를 읽을 수 없었다.허설아는 무척 차분했다. 이미 모든 전후 사정을 짐작하고 있었던 만큼 얼굴에는 싸늘한 표정만 느껴졌다. 하지만 한마디 말도 없이 서 있는 모습이 오히려 권지헌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권호성에게 맞서는 일보다 지금 허설아가 먼저 입을 떼기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 권지헌에게는 훨씬 더 괴로웠다.허설아가 권지헌 쪽으로 다가갔다. 희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셔츠 소매를 잡아 천천히 걷어 올려주는 허설아의 기다란 속눈썹이 나비가 날갯짓하듯 가볍게 떨렸다."집안이 이렇게 더운데 옷도 안 벗고 뭐 했어."권지헌이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경황이 없었어.""등은 아직도 아파?""괜찮아."등에 난 상처는 사실 아직도 가끔씩 욱신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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