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291 - Chapter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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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1화

얘기를 들은 황제의 표정이 더욱 어둡게 굳었다.‘마실 것에 약을 탄 것도 모자라 옷에까지 뿌렸다니, 대체 누가 금영에게 이런 더러운 수작을!’황제는 그녀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고 도중에 다른 누군가와 맞닥뜨렸을 경우를 떠올렸고, 저절로 눈에 살기가 일었다. 이렇게 누군가의 목을 치고 싶은 충동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황제는 금영을 의심하지 않았다. 당연히 그녀가 공난심을 찾아가 미향을 구했을 거란 생각도 못했다.금영은 예비 태자비로 정해지고 교육을 받은 몇 년 동안, 궁중에서 살아갈 생존 규칙이나 해가 되는 약물들, 부군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 등에 대한 가르침은 받았다. 하지만 더 구체적인 것들까진 배운 적이 없었다.그녀가 이러한 것들을 알게 된 것은 따져보면, 모두 배명월 덕분이었다.회귀 전, 그녀는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삼 년 동안 영혼 상태로 배명월의 주변을 떠돌며 태자의 후궁들이 어떤 식으로 서로를 짓밟고 경쟁하는지 똑똑히 지켜보았다.서역에서 온 가무에 능한 여인이 한 명 있었는데 미향을 이용하여 태자의 침소에 들었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배명월은 그 서역 가희를 여우라고 욕하더니 분을 못 이기고 그녀에게 태에 좋지 않은 홍화 세 사발이나 먹이는 일이 있었다.손복안은 조심스레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그렇다는 건 금영 아가씨께서 미약에 취한 것도 모자라, 옷에 미향을 가득 묻히고 폐하와 단둘이 있었단 말인가....’손복안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약은 시간만 좀 지나면 스스로 효과가 사라질 것입니다. 허나 옷에 묻은 이 향은, 만약 사내가 맡게 될 시,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소인이 목욕물을 대령하라고 할까요?”손복안이 조심스레 물었다. 목욕물을 주문한다는 건 듣기에 별것 아닌 것처럼 들려도 후궁에서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황제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리 하거라!”또 한참이 지났다. 금영은 금방 잠에서 깬 것처럼 천천히 눈을 뜨고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여긴… 어딘가요?”방 안을 지키고 있던 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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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황제가 떠난 후, 금영은 고개를 돌려 방 안에 가져다준 욕조를 바라보았다. 사실 아까 자는 척하면서 위명이 욕조에 물을 담아 가지고 들어오는 소리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짐짓 놀란 척하며 물었다.“이게 다 뭔가요?”손복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에게 설명했다.“아가씨께선 누군가의 약에 당하셨습니다. 몸에 나는 향기 역시 서역에서 들여온 미향으로 보이며, 여인에게는 아무런 효과가 없지만, 사내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데는 아주 효과적이지요. 그러니 어서 몸을 정갈하게 씻으십시오. 소인은 이만 나가 있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다면, 언제든 불러주십시오.”말을 마친 손복안은 공손히 물러갔다.방에 홀로 남게 된 금영은 조용히 욕조로 들어갔다.미향의 냄새는 쉽게 씻기지 않았다. 한참을 씻어서야 겨우 향을 없앨 수 있었다.손복안은 진작에 방 안에 새 옷을 준비해 두었다. 미향이 묻은 옷과 매우 흡사한 옷이었다.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금영이 옷을 갈아입은 것도 모를 것이다.금영은 조용히 옷을 입은 뒤, 오늘 있었던 일을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계획대로라면 황제와 만나 뜨겁게 불타오르고 침상 위로 올라갔어야 했다.그러나 치밀하게 준비하고 자존심까지 버리고 매달렸는데도 황제는 끝내 욕구를 참아냈다.손복안이 말한 것처럼 미향은 사내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이성을 잃은 사내가 미향에 당한 여인을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그러나 황제는 그 충동을 끝까지 참아냈다. 금영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직설전 그 일이 없었더라면 그가 사내구실을 못한다고 의심했을지도 모른다.사실상 황제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내였다.다만 그럼에도 그 상황에서 선을 지켜냈던 것은 그가 중히 생각하는 예의와 법도가 욕망의 충동을 이겨냈던 것이다.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니 금영은 초조하고 갑갑해졌다.*혼란스럽기는 황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눈이 소복이 쌓인 소나무 아래에 서서 어두운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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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금영은 면사포를 도로 얼굴에 쓴 뒤, 문을 열었다.황제가 뭘 눈치챘든, 그가 면사포를 벗기지 않았다면 끝까지 모르는 척하며 연기할 생각이었다.“손 태감.”금영은 공손히 그에게 인사했다.손복안도 조용히 금영을 관찰했다. 금방 목욕을 하고 나온 여인의 비단 같은 머리는 촉촉이 젖어 있었다.면사포로 얼굴을 가려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깨끗하고 반짝이는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손복안은 황제가 괜히 그녀에게 마음이 흔들린 게 아니라 생각했다. 금영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다.사람 보는 눈이 없는 태자만 영안후의 둘째 딸에게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금영 아가씨, 이곳은 오래 머물 곳이 못 됩니다. 폐하께서 소인에게 아가씨를 조용히 배웅하라 명하셨습니다.”손복안의 말에 금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폐하께선... 다른 말씀이 없으셨습니까?”손복안은 고개를 저었다.금영은 황제가 자신에 대해 말할 때 어떤 표정이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답을 듣지 못할 걸 알고 있었다.고지식한 위명도 그렇고 능구렁이 같은 손복안도 그렇고 이 두 사람은 오직 황제에게만 충성을 다할 뿐이었다.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만 전달할 것이고 그가 감추고 싶은 것은 절대 이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없다.그 시각 위명은 근처에 숨어 있던 자들을 모조리 잡아끌고 갔다.손복안은 금영을 인적이 없는 조용한 복도 앞까지 바래다주었다.“금영 아가씨, 똑똑한 분이시니 여길 나가서 어떻게 해야 하실지는 굳이 제가 일깨워드릴 필요가 없겠지요.”손복안이 웃으며 말했다.금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복안에게 예를 행했다.“고생 많으셨습니다, 손 태감. 사람들에게는 가슴이 갑갑하여 바람 좀 쐬러 나왔다가 길을 잃었다고 말할 것입니다.”그 말에 손복안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역시 현명하십니다.”참으로 현명하고 눈치가 빠른 아가씨였다.손복안이 떠난 후, 금영은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그런데 갈림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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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금영은 소리를 듣고 곧장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람들 틈에 섞여 자연스럽게 복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맹운산에게 물었다.“무슨 일인지 가볼까?”원래 떠들썩한 걸 좋아하는 맹운산이었기에 흔쾌히 수락했다.그는 금영을 따라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했다.돌산의 한켠에 음침한 얼굴을 한 태자가 서 있고 바닥에는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배명월과 피를 흘리고 있는 소성원이 보였다.배명월은 울며 하소연했다.“전하... 드디어... 오셨네요... 저... 하마터면....”그녀의 처량한 울음소리가 정원에 울렸다.소성원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몽롱한 눈빛으로 배명월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이 요망한 것... 어딜 도망가? 이 오라비가 오늘... 꿈 같은 시간을 보내게....”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자는 다리를 들어 그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소성원은 신음을 흘리며 다시 바닥으로 주저앉았다.그리고 태자가 다시 주먹을 든 순간, 그의 내관인 신귀안이 다급히 말렸다.“아니 됩니다, 전하. 이러다가 사람 죽어요!”“이런 놈은 죽어도 싸다!”태자가 분노한 목소리로 호통쳤다.말을 마친 그는 곧장 배명월에게로 다가갔다. 배명월은 울며 그의 품에 안겼다.“태자 전하....”“이제 되었으니 걱정 말거라. 내가 왔으니 아무도 널 괴롭히지 못할 것이다.”태자는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배명월을 보자 마음이 아파 미칠 것 같았다. 그는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위로했다.“이게 무슨....”맹운산은 착잡한 눈길로 금영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잠시 제쳐두고서라도 태자가 예비 태자비의 앞에서 그녀의 동생을 품에 안고 있는 이 상황은 정말 보기 좋지 않았다.금영은 한눈에 보고 무슨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송정희와 배명월의 간계를 간파했을 때, 따라주는 척하다가 반격할 계획이었다. 금영이 위기를 잘 넘길 방법은 정말 얼마든지 있었다.하지만 그냥 오해만 풀고 넘어가기엔 너무 억울했다.‘왜 나만 맨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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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배명월은 화들짝 놀라며 뒤돌아섰다가 멀쩡한 모습의 금영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이럴 수가! 언니가 왜 여기 있어요?”금영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 어째 내가 주 공자와 한 방에 같이 있길 바랐던 사람처럼 말한다?”그녀는 피식 웃고는 계속해서 말했다.“우리 영안후부는 줄곧 청렴하고 예의를 중시하는 가문으로 이름을 알렸지. 내 비록 한낱 여인의 몸이기는 하나, 다른 사람의 정혼자와 선을 지켜야 한다는 이치는 잘 알고 있단다.”의미심장한 금영의 말에 태자는 마침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람들이 다 보는 곳에서 그가 공개적으로 명월을 품에 안고 있는 행동은 확실히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그런 생각을 하며 태자는 조용히 배명월의 어깨에서 손을 내렸다.“걱정 마렴. 주 공자와는 적정 거리를 잘 유지할 거란다. 아버지께서 너와 주 공자의 혼사를 추진한다고 하셨는데, 언니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는 잘 지켜야지.”금영의 이어진 한마디에 태자의 안색이 음침하게 변했다.배명월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태자를 돌아보며 말했다.“태자 전하, 저... 저는... 다른 사람과 혼인할 생각이... 조금도 없어요.”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그런지 목소리는 모깃소리처럼 작았다.그러나 금영과 주윤안이 듣기에는 충분했다.주윤안의 안색이 차갑게 식었다.“걱정 마십시오, 명월 아가씨. 저도 애초에 아씨와 혼인할 생각이 없었으니 말입니다.”일전에는 아버지의 압박 때문에 어차피 혼인을 해야 하니, 아무든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그런데 오늘 같은 일을 겪자,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말을 마친 주윤안은 홀연히 자리를 떴다.*서왕 세자가 다친 소식은 끝내 서 황후의 귀에까지 전해졌다.한 어린 궁녀가 다급히 현장을 찾아와서 아뢰었다.“태자 전하, 두 아가씨와 함께 오시라는 황후마마의 명이 있으셨습니다.”금영은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갔다.수강궁의 한 편전, 서 황후는 차갑게 식은 얼굴로 상석에서 사람들을 내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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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서 황후는 황제의 눈치를 살피다가 그가 반응이 없자, 굳은 표정으로 태자를 꾸짖었다.“태자! 어찌 된 일인지 말해 보거라! 이 나라의 태자로서 어찌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신하를 폭행할 수 있단 말이냐!”배명월이 작은 소리로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마마, 태자 전하께서 그러신 이유는....”“닥쳐라! 누구 앞이라고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그러자 옆에 있던 궁녀 조씨가 험한 얼굴로 배명월을 내려다보며 꾸짖었다.배명월은 당황한 듯 멈칫하며 서 황후를 올려다보았다. 분명 그녀가 당한 일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사적인 자리에선 늘 인자하고 배명월에게 며느리로 삼고 싶다며 말하고 다니던 사람이었다.‘왜 내게 괜찮은지 먼저 묻지 않으시지?’온갖 의문이 들었지만, 배명월은 궁녀 조씨의 매서운 태도가 꼭 서 황후의 뜻은 아닐 것이라 애써 스스로 다독였다.태자가 입을 열었다.“그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서왕 세자 소성원이 궁에서 영안후의 둘째 아가씨인 명월이를 겁탈하려 했단 말입니다! 제가 마침 그곳을 지나가다 막지 않았다면 명월은 순결을 잃었을 것입니다! 저도 다급한 마음에 둘을 떼어 놓으려다 보니, 조금 과격하게 행동한 것뿐입니다!”서 황후도 이 일이 당혹스럽고 태자의 일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녀는 아들이 서왕을 적으로 돌리길 원치 않았다.하지만 서왕비가 막무가내로 제 아들을 감싸고 나선 지금, 그녀 역시 아들을 감쌀 수밖에 없었다.그리하여 그녀는 황제를 돌아보며 말했다.“폐하, 태자가 조금 과격한 면은 있어도 이유를 들어보니 피치 못할 사정인 듯합니다.”서 황후는 서왕비를 돌아보며 계속 말했다.“서왕비, 태자가 과격했던 점은 인정하네. 내 궁중에서 실력이 가장 뛰어난 어의를 보내 성원을 치료하게 하겠네. 자네의 생각은 어떤가?”“우리 성원이가 조금 한심하긴 해도 아예 멍청이는 아닙니다. 어찌 태후마마의 생신 연회에서 영안후의 딸을 겁탈할 생각을 했겠습니까! 분명 뭔가 사연이 있었을 것입니다!”서왕비가 이를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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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배명월이 갑자기 소리쳤다.“너지? 너 맞지!”처음에는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하고 자신이 재수가 없어 돌아가는 길에 술 취한 소성원과 마주쳤다고 생각했다.소성원은 원래 평판이 안 좋고 망나니로 소문 났으니, 오늘도 그저 술에 취해 발정난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다.그러나 조금 전 서왕비의 말을 듣고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래! 향! 그 기분 나쁘고 이상한 향이었어!’만약 서왕비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까 금영의 몸에서 맡았던 그 묘한 향기가 바로 미향일 것이다!‘어쩐지! 어쩐지 그렇게 쉽게 빠져나간다 했어! 넌 진작에 알고 날 끌어내릴 생각이었던 거야!’배명월의 질타에 금영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곧이어 그녀는 고개를 들고 침착하고도 담담한 눈빛으로 배명월을 바라보며 되물었다.“명월아, 너 지금 나한테 하는 말이니?”“배금영! 발뺌하지 마! 네가 내 옷에 미향을 묻힌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분노에 이성을 잃은 배명월은 제정신이 아니었다.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황제와 서 황후에게 큰절을 올리고는 마치 큰 억울함을 당한 피해자인 양, 울먹이는 목소리로 호소했다.“폐하, 조사를 촉구하여 주십시오! 만약 서왕비의 말이 사실이고 신녀의 옷에 미향이 묻어 있었다면, 이는 분명 배금영의 짓입니다!”이야기를 들은 황제의 눈빛이 싸늘해졌다.서 황후도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명월아, 근거가 있는 말인 것이냐? 금영이는 내가 어릴 때부터 지켜봐온 미래의 태자비이다. 난 이 아이의 품성을 잘 안다. 절대 그런 추잡한 짓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다!”그 말을 듣고 있자니, 금영은 그저 웃음이 나왔다.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가씨가 들었다면 감동해서 눈물을 쏟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말을 음미해 보면 가식이 넘쳤다.그녀는 입궁한 적이 많지 않았고 서 황후와 따로 접촉한 적도 거의 없었다. 혼약이 정해진 후엔 선대 영안후의 병간호를 하느라 바빴고, 그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에는 회양으로 가서 지냈다. 그런데 자신에 대해 잘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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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그런 생각을 하며 황제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에 힘껏 내려놓았다.탁, 하는 묵직한 소리에 계속해서 비난을 이어가려던 서왕비도 멈칫하고 말았다.“입 조심하십시오, 서왕비! 폐하께서 계시고, 자초지종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어찌 근거도 없는 말을 지껄인단 말입니까!”눈치 빠른 손복안이 근엄한 목소리로 호통쳤다.황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내관으로서 황제의 심기가 매우 안 좋은 상태라는 것은 진작에 눈치챘다.서 황후는 옆에 있는 황제를 잠깐 바라보았다.그녀는 차라리 서왕비가 영안후의 두 딸을 범인으로 몰아가 끌어내리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렇게 되면 가짜 적녀이든, 아니면 시골에서 자란 진짜 딸이든 모두 태자의 곁에서 내칠 수 있었다. 그리고 서씨 집안에서 괜찮은 처자를 골라 태자비로 삼는다면 완벽할 것이다.배명월은 서 황후가 자신을 몹시 마음에 들어한다고 여겼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서 황후는 황제의 위엄이 두려워 감히 그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를 수 없었을 뿐이었다.그러니 어차피 받아들여야 한다면, 금영보다 진짜 영안후의 핏줄인 배명월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서 황후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서왕비,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렇게 단언하면 두 아가씨의 명성을 더럽히는 행위가 아닌가!”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금영을 바라보며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금영아, 넌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금영은 평온한 목소리로 답했다.“저는 동생을 해한 적이 없습니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배명월을 바라보며 물었다.“명월아, 넌 날 범인으로 지목했는데, 근거는 있니?”배명월은 이를 갈며 말했다.“애당초 언니가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저는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언니를 부축해 별채로 데려다주었습니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자마자 언니의 몸에서 이상한 향이 나는 걸 느꼈지요! 그때 제 옷에도 향이 묻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언니의 취향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사람을 해치는 미향이었던 거예요! 언니! 언니가 저를 싫어하는 건 알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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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배명월이 늘어놓은 말이 아무리 궤변이라 해도, 방금 한 말 가운데 사실이 하나 있기는 했다. 금영이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 미향을 쓴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서 황후와 서왕비가 누구의 말을 믿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누가 잘못했고, 누가 피해자인지는 황제의 한마디로 갈릴 일이었기 때문이다.황제는 의지할 곳 없는 가련한 금영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결국 그는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두 사람의 몸에 미향이 묻어 있더라고 하더라도 누가 가해자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쩌면 가해자는 따로 있을 수도 있겠지. 하물며 금영이는 짐이 친히 정한 태자비인데 이런 더러운 술수로 누군가를 해하거나 유혹할 이유가 어디에 있단 말이냐!”금영은 입술을 깨물고 감격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사건의 진실은 중요치 않았다.중요한 것은 지고무상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누굴 믿느냐에 달려 있었다.오늘 황제는 그녀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구원을 바라는 모습을 직접 보았고, 그녀가 약에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그녀가 범인이라고는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서 황후는 금영을 두둔하는 황제의 말에 당황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그녀는 입을 열었다.“범인이 누군지는 제쳐두고 그렇다면 금영이 너는 향이 묻은 옷을 입고서 대전을 한 시진 정도 떠나 있을 거로 아는데, 그동안 어디에 있었고 누굴 만났는지 말해 보거라.”서 황후는 곧이어 황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폐하, 이는 금영이, 아니 장래 태자비가 될 사람의 결백과 직결된 일이니, 자세히 따져보는 것이 옳을 듯합니다.”금영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서 황후는 역시나 괜히 황후가 된 게 아니었다.가벼운 한마디로 사람들의 주의를 누가 범인인가에서 금영의 사라진 행적으로 돌렸다.그러나 이는 금영에게 불리한 상황이 아니었다.‘내가 한 시진 동안 어디에서 뭘 했느냐가 궁금하단 거지?’금영은 다소곳이 시선을 내리고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사실을 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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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손복안은 황제의 잔에 새로 차를 따르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폐하, 마마,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지금은 금영 아가씨의 해명보다는 우선 아가씨의 몸에 실제로 미향이 묻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만약 금영 아가씨의 옷에 그런 향이 묻어 있다면 소인이 바로 아가씨의 행적을 조사하여 결백을 밝히겠습니다.”서 황후는 이에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손복안은 원래 황제의 사람이고 금영의 결백 여부는 태자의 명예와 직결된 일이니 나서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서왕비가 다급히 말했다.“저는 이제 누구도 못 믿겠습니다! 저 아이의 몸에 그 요망한 향이 묻었는지 여부는 제가 직접 확인할 것입니다!”서 황후는 당연히 막을 이유가 없었다.소성원과 영안후부의 원한은 모르는 이가 없었다.그녀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리 하게.”서왕비는 기세등등하게 금영의 곁으로 다가가 자세히 그녀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그러나 금영에게서는 여인 특유의 달달한 체향 말고는 그 어떤 향도 나지 않았다. 미향이 아니라 아무런 인위적인 향이 존재하지 않았다.“이... 이럴 수가! 왜 아무 냄새도 안 나지?”서왕비가 곤혹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아무리 그녀라도 황제가 지켜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할 용기는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목이 잘릴 수도 있었다.“어떻게 되었느냐?”황제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이 아이의 몸에서는 미향의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서왕비가 심통이 난 얼굴로 마지못해 답했다.그러고는 분노한 눈빛으로 배명월을 노려보았다.“장녀가 잘못이 없다고 해도 저 아이가 세자를 유혹한 것은 사실입니다!”서 황후가 손짓하자 그녀의 심복인 궁녀 조씨와 환옥이 금영의 곁으로 다가갔다.궁녀 조씨가 말했다.“아가씨, 실례 좀 하겠습니다.”그러고는 금영의 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미향의 특징은 너무도 선명해서 만약 옷에 향이 묻었다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금영의 몸에서는 그 흔한 분내조차 나지 않았다.궁녀 조씨와 환옥이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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