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311 - Chapter 320

336 Chapters

제311화

배경천은 허둥지둥 달려와서 뒤로 쓰러지는 배명월을 품에 안았다.그러고는 당황한 어투로 배명월을 불렀다.“명, 명월아! 이게 다 무슨 일이냐?”이때 안으로 들어온 취옥이 다짜고짜 금영에게 비난을 날렸다.“금영 아가씨, 명월 아가씨는 그저 사죄드리러 온 것뿐인데, 아무리 명월 아가씨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어찌 이런 짓을 하십니까!”그러자 배경천도 분노한 목소리로 금영을 바라보며 호통쳤다.“배금영!”금영은 한켠에 서서 싸늘한 눈으로 이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았다.처음 회귀했을 때만해도 배경천의 차가운 태도에 속상해하며 마음 아플 때가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잘해주던 때가 종종 떠올랐기 때문이다.그러나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이제 헛된 기대를 내려놓았고 아무렇지 않게 그의 날선 감정을 대할 수 있었다. 역시 기대가 없으면 상심도 없는 법이었다.해수도 안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녀는 조금 전 문밖에서 취옥 일당에게 잡혀 있었던 탓에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보지 못했지만, 아주 당연하다는 듯 금영의 편에 섰다. 그리고는 배경천이 혹시라도 위협을 가할까 금영의 앞을 가로막았다.“아가씨, 괜찮으신가요?”금영은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난 괜찮아.”배경천은 지금 상황에서 금영에게 따질 여유가 없었다. 그는 다급히 시녀들에게 소리쳤다.“어서 가서 의원을 불러오거라!”취옥은 배경천의 눈치를 힐끗 살피고는 밖으로 달려나가며 소리쳤다.“큰일 났어요! 금영 아가씨가 명월 아가씨를 찔렀어요! 어서 의원을 불러주세요!”배경천은 지금 당장 배명월을 데리고 나가고 싶었지만, 출혈이 너무 심해 보여 함부로 옮기면 해가 될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그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꿇고 배명월의 어깨를 보듬어 품에 안았다.“오... 오라버니... 저... 너무... 힘들어요....”배명월은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애달프게 말했다.“명월아! 정신 잃으면 안 된다. 정신 차려!”배경천은 차라리 자신이 다치는 게 나을 것 같다며 절규했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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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힘없이 늘어진 배명월을 보고 있자니, 배경천은 가슴이 아파 미칠 것 같았다. 어떻게 되찾은 귀한 여동생인데, 이렇게 잃을 수는 없었다.그의 여동생을 해치려 드는 자는, 설령 한때 그토록 아꼈던 금영이라 해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 역시 한때는 금영을 진심으로 아꼈었다. 만약 금영이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배명월을 아끼고 보살폈다면, 그의 마음도 끝내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금영은 결국 그의 기대를 저버렸다.배경천은 도무지 금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금영은 배명월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끊임없이 배명월을 짓밟고 괴롭히려 들었다.*취옥은 온 저택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영안후와 송정희의 귀에까지 이 사태가 전해졌다.잠시 후, 영안후와 송정희가 안성당으로 왔다.송정희는 금영을 쳐다도 보지 않고 초조한 얼굴로 의원이 배명월을 치료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어떻게 되었는가?”송정희가 다급히 물었다.“한 치만 빗나갔어도 심맥을 다칠 뻔했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아가씨께서 운이 좋으셔서... 목숨엔 지장이 없을 듯합니다.”의원이 공손하게 답했다.“하오나 부상 정도가 심하니, 멀리 이동하긴 힘들 듯합니다. 부인, 근처에 아가씨께서 지낼 곳을 마련해 주십시오.”그 말을 들은 송정희는 곧바로 분부를 내렸다.“안성당에 있는 별채 하나 정리해 명월이를 옮기거라.”금영은 눈살을 찌푸렸다. 안성당에 배명월을 안치하면서 그녀의 의견은 전혀 묻지 않는 태도가 어처구니없었다. 금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다른 곳으로 옮기세요. 저는 무서워서 명월이를 제 처소에 거두지 못하겠습니다. 또 부주의로 다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모두 제 책임이라 할 것 아닙니까!”그 말을 들은 송정희가 음침한 얼굴로 금영을 노려보았다.“배금영, 내 그동안 널 홀대한 적이 없거늘! 네 아버지께선 이미 명월이를 저택에서 내보낸다고 하셨는데 어찌 만족하지 않고 또 이리 해하려 들었느냐!”그러자 금영이 되물었다.“제가 명월의 목숨을 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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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금영은 송정희를 무시하고 영안후에게 시선을 돌렸다.영안후부의 모든 일은 결국 최종 결정권자인 영안후에게 달려 있었다.그녀는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저는 저 아이를 다치게 한 적 없습니다.”영안후는 얼버무리듯 중얼거렸다.“어찌 됐건, 명월이 저 지경이 되었으니... 아비로서 이대로 자음암에 보낸다면, 사찰에서 죽으라고 명하는 것과 다름없지 않느냐?”말을 마친 영안후는 착잡한 시선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금영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아버지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그 대답에 영안후는 목구멍이 막힌 듯 말문을 잃었다.말을 마친 금영은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배명월을 자음암으로 보내라는 결정을 내린 것은 그녀가 아니었다. 하지만 영안후의 태도를 보니, 배명월을 내보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그렇다면 더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고, 영안후의 변명을 듣고 싶지도 않았다.문지방을 넘어서기 전, 걸음을 멈춘 금영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차갑게 한마디 덧붙였다.“명월이 스스로 자해했다고 시인했으니, 이 일로 또 엄한 사람을 물고 늘어지지 마십시오.”*금영이 떠난 후, 배경천은 그녀의 뒷모습을 손가락질하며 불만을 터뜨렸다.“아버지, 어머니! 저것 좀 보십시오! 어찌 저리도 오만방자할 수 있습니까!”영안후는 못마땅한 얼굴로 배경천을 꾸짖었다.“그만 하거라! 너는 오라비로서 누이동생 둘이 사이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 너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영안후는 중얼거리듯 덧붙였다.“경연이 집에 있었으면 좋았을걸.”경연은 영안후부의 장남이자, 배경천의 친형이었다.그는 일찍이 몇 년 전에 경성을 떠나 지방에서 임직 중이었다. 영안후부에서 세상을 떠난 선대 영안후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실무를 보는 유일한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영안후는 선대의 공적에 기대어 수도에서 부귀영화를 누려 왔을 뿐, 실질적인 권력도 변변한 업적도 이루지 못한 상태였다.*그렇게 이날은 배명월 덕분에 집안이 한동안 시끄러웠다.어느덧 날이 밝았고 금영은 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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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금영은 비록 두 번의 삶을 살고 있지만, 회귀 전의 삶과 귀신으로 떠돌던 시간까지 모두 합쳐도 여전히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그래서 간만에 밖에 나오니, 여느 소녀들처럼 길가의 노점들을 신기하게 두리번거렸다.그녀는 길거리에서 탕후루를 파는 장수 앞에 다가가 해수에게 눈짓하여 두 꼬치를 사게 했다.해수는 금실로 수놓은 작은 은자 주머니를 꺼냈다.그런데 은자를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차림새가 지나치게 화려했던 탓인지, 아니면 묵직한 주머니가 눈에 띈 탓인지, 뒤에서 갑자기 사내 둘이 달려들었다.한 놈은 주머니를 낚아채고 다른 한 놈은 금영과 해수를 힘껏 밀쳤다.금영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땅바닥에 넘어지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녀의 바로 앞에는 진하게 졸여지고 있는 설탕 가마솥이 있었다.만약 이대로 고꾸라졌다간 최소 살갗 한 꺼풀은 벗겨질 것이고 운이 나빠 얼굴에라도 닿는 날엔 아무리 천하절색이라도 용모가 망가질 상황이었다.금영은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 지탱할 곳을 찾았다. 설령 손이 데인다 한들, 끓는 솥에 얼굴을 박을 수는 없었다.그녀의 손이 펄펄 끓는 솥단지에 닿으려는 찰나, 문득 옆에서 기다란 팔이 뻗어나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금영은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구해준 상대가 누군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사례부터 하려 했다.“감사합니다....”그런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금영은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었다.그 순간, 그녀의 몸이 경직됐다.‘이런 곳에서 황제를 만날 줄이야! 높으신 분이 황궁에서 국사를 돌보지 않고 왜 백성의 복장을 하고 여기에 나타나신 거지?’놀라기는 황제도 마찬가지였다. 이 주작거리에서 하룻밤 내내 그를 잠 못 이루게 했던 여인을 마주치게 될 줄은 그도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사실 황제는 조금 전부터 그녀를 보고 있었다.도둑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그는 눈앞의 여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옥색 비단치마에 소매와 옷깃에 토끼털을 덧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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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해수야.”금영이 해수를 불렀다. 겨우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해수는 눈앞에 우뚝 선 황제의 근엄한 모습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손복안이 옆에서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벌써 바닥에 다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을 터였다.해수는 목소리를 낮춰 간신히 입을 열었다.“아가씨, 주머니를... 도둑맞았습니다.”금영은 하는 수 없이 다시 몸을 돌려 애절한 눈빛으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폐... 폐하....”황제는 느릿하게 시선을 내리깔아 어색한 표정으로 탕후루 꼬치를 들고 있는 금영을 바라봤다. 그의 눈엔 상당히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반짝 긴장하고 있는 듯했다.황제는 묵묵히 손복안에게 눈치를 주었다.손복안은 황급히 은괴를 꺼내 노점 주인에게 건넸다. 노점 주인은 은괴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황망히 거스름돈을 건네려고 주머니를 뒤졌다.손복안이 웃으며 말했다.“그냥 가져가시오. 남은 건 포상으로 주는 것이니.”노점 주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연신 허리를 굽히다가 조용히 황제를 힐끔 쳐다보았다.‘방금 전 저 아가씨가 저분을 뭐라고 불렀더라?’노점 주인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거라고 생각했다. 궁에 있어야 할 귀한 분께서 이런 변두리 저잣거리에 행차할 리가 없었다.황제는 손복안이 은자를 지불한 것을 확인하고는 걸음을 옮겼다.금영은 어쩔 바를 모르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그때 걸음을 멈춘 황제가 속을 알 수 없는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엇 하는 것이냐? 따라오지 않고?”정신을 차린 금영은 다급히 그를 좇아갔고, 해수도 덩달아 함께 움직이려 했다.하지만 손복안이 그 앞을 제지하며 입을 열었다.“너는 여기서 잠시 기다리고 있거라. 위 총령이 도둑을 잡으러 깠으니, 이따가 네 증언이 필요할 것이다.”“하지만....”해수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금영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손복안은 그런 해수를 근엄하게 쳐다보며 꾸짖었다.“왜 그러는 것이냐? 설마 저분께서 너희 아가씨를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해수는 다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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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황제는 금영을 힐끗 보더니 자신의 맞은편 자리를 눈짓했다.금영은 다소곳하게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노점 주인이 다가오더니 웃으며 물었다.“두 분, 뭐로 드릴까요?”눈치 빠른 노점 주인은 눈앞의 두 손님이 비범한 신분이 아님을 바로 눈치채고 유난히 조심스럽고 공손히 대했다.황제가 입을 열었다.“전병을 대령하라.”“제가 이 거리에서 전병 장사만 십여 년을 했는데 저희 집 연근 전병이 가장 맛이 좋습니다!”“그럼 그거로 하지.”황제가 말했다.“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노점 주인은 고개를 돌려 부인에게 소리쳤다.“부인, 연근소를 꽉꽉 채운 밀전병 두 접시를 준비하시오!”*한겨울 매서운 추위 속에서 전병을 굽는 가마솥 밑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뜨거운 김이 바람에 실려 불어오더니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두 사람을 부드럽게 감쌌다.황제는 그 뒤로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금영 또한 조용히 그를 마주보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황제는 비로소 눈앞의 여인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대담하군.’평범한 명문가 여식이었다면 직설전에서 있었던 그 일만 생각해도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했을 터였다.그러나 눈앞의 여인은 너무도 대담했다. 신분을 숨긴 채 태연한 얼굴로 다시 그의 앞에 나타났다.‘저토록 단정하고 현숙하며 예의 바른 영안후부의 장녀가, 그날 밤 나에게 애처롭게 매달리던 여인과 같은 사람이었다니…!’어제 그 일이 없었다면, 아마 그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무것도 모른 채 속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황제의 안색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하지만 이미 벌어진 잘못은 돌이킬 수 없는 법이었다. 지금 그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였다.처리할 방도를 확실히 알 수만 있다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오늘처럼 수라상도 물린 채로 거리에 나오지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황제는 눈앞의 금영을 바라보며 머리가 점점 더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이 여인을 대체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금영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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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금영은 어떻게든 입궁하여 황제를 사로잡아 정을 무기로 반드시 목적을 달성할 것이다.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고, 쓸모없는 진심 따위는 권력 앞에 너무도 미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그가 전생처럼 일찍 목숨을 잃는 일은 어떻게든 막고 싶었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오래도록 황제를 지켜 무병장수하게 만들 작정이었다.만약에 그가 죽는다면 조정의 모든 권력은 태자와 서 황후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녀가 입궁하는 것은 곧 제 발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같았다.그렇기에 비록 황제에게 품은 마음이 진실한 정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의 생사를 걱정하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독을 시험한 것 또한 황제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 아니라, 오롯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금영은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더 보탰다.“폐하, 부디 옥체를 소중히 하시옵소서.”황제는 그런 금영을 힐끗 바라보았다.‘옥체를 소중히 하라?’비록 소년의 나이는 이미 지난 지 오래지만, 그는 여전히 혈기 왕성한 장년이었다. 그런데 이런 걱정이라니, 황제의 안색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식사 시에는 말을 삼가야 하거늘, 교습 상궁에게서 뭘 배운 것이냐?”금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걱정해서 한 말인데 꼭 저렇게 받으셔야 하나?’금영은 지금까지 영안후부의 딸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아왔고, 예비 태자비의 신분 덕분에 어딜 가든 떠받듦을 받는 존재였다.사람과 이야기하며 지금처럼 갑갑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지금 눈앞에 앉은 이가 황제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벌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을 것이다. 오늘에 와서야 그녀는 황제의 마음이 얼마나 종잡을 수 없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얌전한 척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식사하는 것뿐이었다.황제는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입맛이 없었다. 게다가 금영과 마주 앉아 있으니 생각은 더욱 복잡해지고 머리만 지끈거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입맛만은 도리어 살아났다.그는 비록 황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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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작산행궁에 있을 때부터 금영은 황제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고 싶지 않아 매일 면사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면사를 벗어보라고 하다니, 역시 뭔가 눈치챈 게 분명했다.금영은 침착하기 위해 노력하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만약 그가 자신이 영지라는 것을 확신했다면, 지금처럼 이렇게 무덤덤한 얼굴로 그녀와 마주 앉아 식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어제까지는 그에게 정체를 알릴 생각으로 찾아갔다. 만약 유혹에 성공하고 그가 정체를 알았다면 이렇게 곤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혹에 실패한 지금은 어떻게든 정체를 더 숨기고 싶었다.그녀는 만약 대놓고 정체를 공개한다면 황제는 더 이상 그녀에게 접근할 기회를 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황제가 직접 영지의 이름을 꺼내기 전까진 시치미 떼기로 마음먹었다.금영은 조용히 자신의 답을 기다리는 황제를 바라보았다.‘어떤 핑계를 대야 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지?’금영은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하고 말했다.“송구합니다, 폐하. 신녀, 귀경하기 전에 한 점술 대가에게 점을 본 적이 있는데 만약 혼인 생활이 원만하려면 절대 쉽게 타인에게 얼굴을 보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황제는 점술 대가라는 말에 지난 과거가 떠올랐다. 그가 즉위하고 얼마 안 됐을 때까지만 해도 선황의 영향으로 흠천감에 적지 않은 점술가들이 있었다.선대 영안후가 처음 금영을 황궁에 데려온 날, 한 점술가가 영안후부의 유일한 적녀에게 황후가 될 운명이 깃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흠천감을 숙청하고 점술가들을 모두 궁에서 내보냈다.지금의 흠천감에는 길시를 점치고 천문을 관측하는 관원들만 남아 있을 뿐, 다른 점술가들은 존재하지 않았다.그는 운명 따위를 믿어 금영을 태자비로 정한 것이 아니었다. 황제가 금영을 태자비로 정한 데는 죽음을 앞둔 선대 영안후가 평생 일군 업적을 걸고 한 간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선대 영안후가 어릴 때부터 곁에 두고 기른 아가씨라면 절대 여느 귀녀에게 뒤처지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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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금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황제가 자신을 알아보았든, 아니든, 면사포만 벗기 전까진 끝까지 모르는 척할 작정이었다.황제는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다만, 사람의 운명은 스스로 정하는 법. 운명에 관한 이야기를 지나치게 맹신하지 말거라.”금영은 조용히 답했다.“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폐하. 신녀, 명심하겠습니다.”*오늘의 주작거리는 유난히 번화했다.태자는 아침 일찍 배명월이 자해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는 곧장 태자부를 나와 영안후부로 향했다.그런데 주작거리를 지나던 그는 배명월이 주작루의 다과를 좋아한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길을 돌려 먼저 주작루로 사람을 보냈다.그런데 막 다과를 받아 주작거리를 떠나려던 순간, 그의 시야에 건장한 체구의 위명이 들어왔다. 거리에 사람이 많아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위명의 덩치가 큰 덕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태자는 황제의 측근 시위인 위명이 거리에 나타난 게 의아해 계속해서 힐끗거리며 바라보다가, 손복안도 발견하게 되었다.그제야 그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위명이 이곳에 나타난 것까진 우연이라 치부할 수 있어도, 손복안까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곧이어 허름한 점포에서 냉철하고도 위압감이 넘치는 황제를 발견했다.처음부터 몰랐다면 그렇다고 쳐도, 이미 마주친 마당에 못 본 척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 누군가에게 알려진다면 이 일로 그에게 불효의 죄를 물을 수도 있었다. 태자는 의복을 정리하고 그쪽으로 다가갔다.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확인한 순간, 황제의 맞은편에 익숙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보고 태자는 제 눈을 의심했다. 그는 눈을 비비며 황제가 있는 쪽을 몇 번이고 다시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리 반복해 확인해 봐도 분명 금영이었다.태자는 그녀가 왜 황제와 함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깊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그는 원래 계획대로 황제의 쪽을 향해 걸어갔다.*같은 시각, 황제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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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금영은 이 기회를 빌어 황제와의 거리를 좁혀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손길이 금영을 옆으로 휙 잡아당겼다. 그녀는 애초에 황제에게 기댈 속셈이었기에 몸에 힘을 뺀 상태였다. 그래서 불쑥 나타난 손길에 그대로 끌려가고 말았다.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태자의 지긋지긋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금영아! 괜찮은 것이냐?”태자가 금영을 반쯤 품에 안은 채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하지만 금영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밀치고는 스스로 몸을 세웠다. 그러나 태자는 여전히 금영의 손목을 붙든 채, 그대로 그녀를 끌어 무릎 꿇리려 했다.“금영아, 어찌 이리도 조심성이 없는 것이냐? 당장 폐하께 사죄드리거라!”그러면서 또 금영을 감싸는 듯한 태도를 꾸며 내며 말을 이었다.“부황, 금영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예요. 부디 저를 봐서라도 벌하진 말아주십시오.”금영은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이 상황이 기가 막혀 당장이라도 헛웃음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하필이면 지금 나타나서 이 절호의 기회를 망치다니!’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당장 달려들며 꺼지라고 태자를 걷어차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황제가 보는 앞, 차마 태자를 냉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었다. 금영은 치미는 분노를 억지로 참고 마음을 가다듬었다.게다가 태자의 힘이 워낙 강해 그 기세에 맞춰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금영도 함께 예를 올리며 말했다.“송구합니다, 폐하.”황제는 허전해진 자신의 손을 잠시 내려보다가,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로 사이 좋아 보이는 두 사람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이만 일어나거라.”그러더니 금영의 팔목을 꽉 붙잡고 있는 태자의 손을 한 번 훑고는 물었다.“그런데 태자가 이곳엔 무슨 일이지?”태자는 비록 태자로서 처세술이 형편없었지만, 그렇다고 진짜 바보는 아니었다.그는 황제가 뭘 좋아하고 뭘 혐오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황제는 누구보다 약속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선대 영안후와의 약속을 절대 저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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