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는 안성당에서 나온 뒤로도 줄곧 정신이 멍했다. 제 두 눈으로 목도한 광경이었지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옥죄어와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평생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쥐며 살아온 그에게, 이는 난생처음 겪는 굴욕이었다.한편, 배명월과 취옥은 안성당에 도착했으나 해수에게 가로막혔다."아가씨께서는 당분간 손님을 받지 않겠다 하셨습니다."해수가 차갑게 선을 긋자, 취옥이 곧바로 받아쳤다."무엄하다! 태자비마마께서 친히 오셨거늘, 네깟 년이 감히 앞을 막아서느냐!"소란은 결국 금영의 방 안까지 흘러들어갔다. 그녀는 곁에 앉아 있는 황제를 바라봤다. 그는 평온한 얼굴로 마음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금영이 잠시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외쳤다."태자비마마께서 오셨다면 들여보내라."어차피 태자에게도 들킨 마당이었고, 황제 역시 더는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배명월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 찾아왔는지 궁금했던 찰나였는데,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허락이 떨어지자, 배명월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해수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입을 열었다."배금영, 너..."그러나 말은 끝맺지 못했다. 금영의 옆을 지키고 선 황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황제는 평범한 검은색 옷차림이었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과 중압감은 결코 덜하지 않았다.배명월은 충격으로 굳어버렸다. 말을 끝까지 뱉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그대로 쏘아붙였다면, 황제의 목전에서 자신이 금영의 아이를 지우려 한다는 사실을 자백하는 꼴이 될 뻔했다.참사를 겨우 피하자 머릿속이 하얘졌고, 황제가 금영을 보러 온 것에 이상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대신 질투가 올라왔다.금영과 배명월은 모두 선대 영안후의 손녀였다. 하지만 황제는 늘 금영만을 편애했고, 태자비가 된 배명월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녀는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며 예를 올렸다."폐하를 뵙습니다."침상 머리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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