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451 - Chapter 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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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1화

하지만 송정희는 달랐다.황제는 바닥에 무릎 꿇고 있는 그녀를 싸늘하게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영안후, 짐은 그대가 고의로 황실 핏줄을 해하려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하지만 그대의 부인에겐 어떤 처분을 내려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가?"황제의 말투는 차가웠고,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영안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송정희의 처분을 자신에게 넘기다니, 그는 어쩔 바를 몰랐다."왜 그러는 것인가? 차마 결정을 못 내리겠는가? 그렇다면 두 사람에게 같은 처벌을 내리겠다."황제가 다시 말했다.영안후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창백한 얼굴로 억지로 입을 열었다."이 같은 대죄를 저지른 이상,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송정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영안후를 바라봤다."대인! 어찌 이리 매정하실 수 있습니까! 제가 그동안 대인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했고, 자식까지 여럿 낳아 길렀는데... 이런 저를 죽음으로 몰아넣어야겠습니까!"송정희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이 황제도 금영도 아닌, 수십 년 베개를 함께 베고 잔 영안후가 될 줄은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 송정희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하지만 영안후는 매정하기만 했다."악행을 저질렀으니, 그 후폭풍도 본인이 감당해야 하지 않겠소? 나도 이러는 것이 달갑겠소? 다 영안후부의 미래를 위해 이러는 것 아니오!"곧이어 황제가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송정희의 처분은 그렇게 결정하겠네."송정희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말끔히 가셨다. 그녀는 애끓는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폐하, 저를 죽이시면 안 됩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저는 금영과 태자비인 명월의 어미입니다! 폐하께서 저를 죽이신다면, 두 아이의 명성에도 흠집이 생길 것입니다!"그러자 황제가 미간을 찌푸리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이때, 금영이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황제는 한층 냉기가 가신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러는 것이냐? 이 처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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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2화

영안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아직 자리에서 물러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황제가 영안후의 자리를 속히 넘기라는 뜻을 명백히 밝힌 이상, 더는 선택지가 없었다."위명."황제가 위명을 향해 입을 열었다."예, 폐하. 하명하십시오.""사람을 보내 안성당을 지키게 하거라."그러고는 이어서 영안후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말했다."머지않아 비(妃) 책봉 교지가 내려올 것이다. 그때까지 만약 금영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영안후부의 그 누구도 살아 하늘을 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금영을 황궁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금영을 함부로 취급하는 짓이었다. 자고로 여인이라면 모두 성대한 혼례를 꿈꿀 터인데, 그는 금영이 당당하고 고귀하게 황궁에 입성하기를 바랐다.영안후가 창백한 얼굴로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신, 어명을 받들겠나이다."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금영을 건드릴 용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황제가 손을 살짝 들어 올리자, 눈치를 채고 다가온 손복안이 영안후를 향해 쌀쌀맞게 말했다."영안후, 이제 나가시지요."그렇게 쫓겨나듯 나가는 영안후의 뒷모습을 보며, 손복안은 참지 못하고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영안후, 참으로 어리석으셨습니다."영안후 역시 자신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만약 조금만 눈치가 빨라 금영과 황제의 사이를 알아차렸다면, 일이 이 지경까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터였다. 그는 제 발로 모든 부귀영화를 걷어찬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제 안성당에는 금영과 황제 둘만 남게 되었다.황제의 눈빛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금영은 여전히 두려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붉어진 눈시울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송구합니다, 폐하."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무엇이 송구하다는 것이냐?"금영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답했다."신녀가 또 폐하께 폐를 끼쳤습니다. 신녀도 조용히 폐하께서 모든 일을 정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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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3화

마치 봄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듯, 온 세상이 아름답게 물들기 시작했다.금영의 입가가 살며시 호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참으로 알맞은 순간에 찾아와 준 축복 같은 생명이었다.황제는 다음 날 조정에 나아가기 직전이 되어서야 겨우 안성당을 떠났다. 그리고 황제가 궐 밖에서 하룻밤을 지새웠다는 소식은 서봉전에도 고스란히 전해졌다."또 그 여우 같은 계집을 만나러 간 게 분명해!"서 황후가 이를 부드득 갈며 일갈했다.황제는 후궁들을 멀리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궁 밖에서 밤을 보내기까지 했다. 서 황후가 심복인 이전을 매섭게 바라보며 물었다."그래서, 폐하께서 어디로 거동하셨는지 알아냈느냐?"당연히 이전이 그것을 알 리 없었다. 황제가 궐을 비웠다는 사실조차 상선인 손복안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겨우 짐작해 낸 것에 불과했다.서 황후의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 쓸모없는 것 같으니라고!"*금영은 이른 아침부터 안성당을 나섰다. 곁에 시녀 둘은 물론, 황제가 친히 붙여준 든든한 호위무사들까지 대동한 삼엄한 행차였다.그녀가 향한 곳은 영안후부의 사당이었다. 송정희가 후부에서 완전히 쫓겨나기 전에, 꼭 제 입으로 확인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사당 바닥에 포박당한 채 처량하게 꿇려 있던 송정희는 금영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마자 악에 받친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이 천한 것! 설마하니 폐하의 침상까지 넘볼 줄이야! 역시 너는 네 생모를 닮아 비천한 피가 흐르는구나!"하지만 금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차갑게 내뱉었다."해수야, 저 입을 매우쳐라."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해수가 소매를 걷어붙이며 송정희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찰싹! 짝! 날카로운 마찰음이 고요한 사당 안에 몇 차례 울려 퍼진 뒤에야 매질이 멈췄다. 송정희의 얼굴은 이미 붉고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금영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송정희를 내려다보며 담담히 말했다."부인, 이제 좀 공손하게 대화를 나눌 준비가 되셨습니까? 만약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셨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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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4화

송정희의 소식은 당연히 배경연과 배경천의 귀에도 들어갔다.두 사람은 영안후부 뒷문으로 한달음에 달려가, 송정희를 압송하고 있던 이들의 앞을 가로막았다."어머니!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배경연과 배경천 모두 눈앞의 광경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송정희는 초췌한 얼굴로 두 아들을 바라보다가, 끝내 입술을 짓씹으며 말을 삼켰다. 황제가 직접 내린 잔혹한 경고가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만약 금영에 관한 일을 밖에 발설할 시, 가장 먼저 두 아들의 목을 치겠다고 했던 황제의 음성이 아직도 생생했다. 게다가 그녀는 황실의 고귀한 핏줄을 해하려 했던 죄인이었다. 만약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영안후부 전체에 어떤 피바람이 몰아칠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사지가 떨렸다.송정희는 갈라진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말했다."...돌아가거라. 언젠가 너희들도 다 알게 될 것이다."결국 두 사람은 쫓겨나는 송정희를 붙잡지 못했고, 결국 영안후를 찾아가 답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영안후 역시 진실을 입에 담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도리어 두 아들을 호되게 꾸짖으며,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사당에 무릎을 꿇리는 벌을 내렸다. 아니,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죄 없는 셋째 배경원까지 연대책임으로 함께 사당에 갇혔다.금영은 후부의 상황을 전해 듣고, 곧장 사람을 보내 배경원을 안성당으로 불러들였다.어제 황제가 영안후부에는 새로운 후계자가 필요하다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영은 이미 그 자리에 앉힐 적임자를 점찍어 둔 상태였다.만약 궁에 들어가게 된다면, 밖에서 손발이 되어 움직여줄 든든한 세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하지만 영안후의 작위가 첫째 배경연이나 둘째 배경천에게 승계된다면, 그 조력은 전적으로 배명월에게 쏠릴 터였다. 그러니 판을 뒤집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셋째를 끌어들여야 했다.지금 영안후부에선 금영의 말은 곧 법이었다. 영안후조차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금영의 눈치를 보며 절절매고 있는 판국이었다. 그러니 금영이 사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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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5화

"그렇다면 너는, 내게 무엇을 바라느냐?"배경원이 금영을 바라보며 물었다. 차분하면서도 맑은 눈빛은 금영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듯했다.그제야 금영은 평소 영안후부에서 크게 두드러질 것 없어 보였던 셋째에게도, 남다른 면모와 뜻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건 차차 앞으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며칠만 지나면 곧 입궁하게 될 터였다. 그러니 미래를 위해 든든한 동맹 하나쯤은 미리 만들어둘 필요가 있었다.*배명월은 태자부로 돌아간 뒤로 줄곧 금영이 처참하게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만을 기다렸다.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원하던 비보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어머니 송정희가 큰 죄를 저질러 자음암으로 유배 가듯 쫓겨났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만 돌아왔다.그녀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배명월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이 사태의 전말을 따지기 위해 서둘러 영안후부로 향하려 했다. 송정희를 향한 효심이 깊어서가 아니었다. 송정희는 이대로 허망하게 잃어버리기엔 꽤나 아까운 패였기 때문이었다.그런데 막 궁을 떠나려던 순간, 조정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던 태자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태자가 의아한 듯 물었다."어디를 가는 것이냐?"배명월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였다."잠시 친정인 영안후부에 다녀오려고 합니다."그러자 태자가 지체 없이 말했다."나도 함께 가겠다."배명월은 태자의 속내를 도무지 헤아릴 수 없었지만,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함께 마차에 올랐다. 달리는 마차 안에서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지자, 결국 그녀는 참지 못하고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전하, 언니가 전하를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여전히 미련이 있으십니까?"그러자 태자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대꾸했다."그저 사생아일 뿐이다."그러고는 배명월을 서늘하게 바라보며 덧붙였다."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겠지?"배명월은 그 말을 듣고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 금영이 다른 사내의 아이를 가졌음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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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6화

황제가 단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도 태자는 제 두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깊이 고민할 겨를은 없었다. 그저 자신이 예고도 없이 무례하게 여인의 방에 들이닥친 것에 대해 황제의 꾸중을 들을까 걱정이 앞설 뿐이었다.하지만 공포에 질려 사고가 정지된 태자와 달리, 황제는 지극히 담담했다."그래, 짐이다."태자는 그제야 허둥지둥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부황을 뵙습니다."예를 올리며 태자는 자기도 모르게 살짝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황제의 손에 단단히 붙잡혀 있는 금영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경악이 충격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하지만 감히 황제에게 따져 묻지 못하고, 금영을 향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는 듯 다급한 눈빛을 보냈다. 동시에 온갖 해괴한 상상들이 머릿속을 사납게 휘몰아쳤다.'아니야, 그럴 리 없어. 내가 잘못 생각한 걸 거야.'둘이 조금 친밀해 보이긴 하나, 그저 윗사람으로서 베푸는 온정일 뿐일 것이라며 태자는 필사적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했다.금영은 그런 태자의 모습을 아주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오랫동안 갈망해 오던 순간이었다. 만약 황제와의 관계가 세상에 드러난다면, 태자가 과연 어떤 낯짝을 할지 늘 궁금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후련함이 찾아왔다. 마치 오랫동안 막혀 있던 숨이 탁 트이는 기분이었다.금영은 황제를 바라보며, 일부러 연약하게 젖은 목소리로 불렀다."폐... 폐하."그러자 황제가 금영의 손등을 다정하게 토닥였다. 태자조차 평생 들어본 적 없는, 지극히 온화하고 애틋한 음성이었다."두려워하지 말거라. 모든 일은 짐이 알아서 조치할 테니."황제는 금영이 이 상황을 얼마나 난처해할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언제고 한 번은 당당히 마주해야 할 관문이었다.방금 전까지 과대망상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던 태자도, 눈앞에서 펼쳐지는 황제의 다정함을 본 이상 더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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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7화

어찌 되었든 금영은 태자를 여러 해 동안 연모해 왔었다. 황제는 그녀가 오늘 일로 인해 마음이 많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내심 걱정이 앞섰다.하지만 금영은 담담히 고개를 저으며 맑은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폐하, 태자 전하께서는 이미 혼인하신 몸이 아니옵니까? 신녀와는 이제 더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분 때문에 감정의 동요를 느낄 일은 없을 것입니다."물론 이는 반은 맞고 반은 거짓이었다. 황제가 우려하는 그런 미련이나 슬픔 따위는 먼지 한 톨만큼도 느끼지 않겠지만, 만약 태자가 처참한 곤경에 빠진다면 짜릿한 희열과 기쁨을 느끼지 않을 자신은 없었다.황제는 그 말을 듣고 애틋한 눈으로 금영을 바라보며 낮게 읊조렸다."그렇다면 짐도 안심이다."나이가 어릴수록 예민하고 근심도 많은 법이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완전히 걱정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제 처지를 깨닫고는 허탈한 헛웃음을 지었다. 이 나이에 여인의 감정 하나에 이토록 마음을 졸이는 날이 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까닭이다.배명월은 안성당으로 곧장 향하지 않고 먼저 영안후를 찾아갔다.그러나 영안후는 감히 황제를 거스를 용기가 없었고, 그렇다고 이제 일국의 태자비가 된 딸과 구구절절 말싸움을 벌이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깊이 잠든 척 시치미를 뗐다.아버지를 통해서는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한 배명월은 발길을 돌려, 사당에서 벌을 받고 있다던 배경연과 배경천을 찾아갔다. 하지만 두 사람 역시 제대로 된 내막은 알지 못했다.그날 송정희가 금영을 은밀히 죽이기로 마음먹었을 때, 철저히 입단속을 하기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두고 모두 후부 밖으로 내보냈다. 불길한 일이니만큼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중에 금영이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음을 선택했다고 소문을 내도 의심을 사지 않을 터였다.그러니 황제가 영안후부에 방문했던 현장을 목격한 이는 오직 영안후와 송정희, 그리고 그 곁에 있다가 이미 곤장에 맞아 숨이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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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8화

태자는 안성당에서 나온 뒤로도 줄곧 정신이 멍했다. 제 두 눈으로 목도한 광경이었지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옥죄어와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다. 평생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쥐며 살아온 그에게, 이는 난생처음 겪는 굴욕이었다.한편, 배명월과 취옥은 안성당에 도착했으나 해수에게 가로막혔다."아가씨께서는 당분간 손님을 받지 않겠다 하셨습니다."해수가 차갑게 선을 긋자, 취옥이 곧바로 받아쳤다."무엄하다! 태자비마마께서 친히 오셨거늘, 네깟 년이 감히 앞을 막아서느냐!"소란은 결국 금영의 방 안까지 흘러들어갔다. 그녀는 곁에 앉아 있는 황제를 바라봤다. 그는 평온한 얼굴로 마음대로 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금영이 잠시 입을 달싹이다가 이내 외쳤다."태자비마마께서 오셨다면 들여보내라."어차피 태자에게도 들킨 마당이었고, 황제 역시 더는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배명월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 찾아왔는지 궁금했던 찰나였는데,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허락이 떨어지자, 배명월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해수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입을 열었다."배금영, 너..."그러나 말은 끝맺지 못했다. 금영의 옆을 지키고 선 황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황제는 평범한 검은색 옷차림이었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엄과 중압감은 결코 덜하지 않았다.배명월은 충격으로 굳어버렸다. 말을 끝까지 뱉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그대로 쏘아붙였다면, 황제의 목전에서 자신이 금영의 아이를 지우려 한다는 사실을 자백하는 꼴이 될 뻔했다.참사를 겨우 피하자 머릿속이 하얘졌고, 황제가 금영을 보러 온 것에 이상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대신 질투가 올라왔다.금영과 배명월은 모두 선대 영안후의 손녀였다. 하지만 황제는 늘 금영만을 편애했고, 태자비가 된 배명월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그녀는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며 예를 올렸다."폐하를 뵙습니다."침상 머리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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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9화

만약 저 탕약을 마신다면 한 시각 안에 반드시 유산할 터였다.평소였다면 순순히 그릇을 든 금영의 태도에 쾌재를 불렀겠지만, 하필 황제가 같은 공간에 있었다. 배명월은 찻잔을 든 채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무슨 생각인지, 또 언제 자리를 뜰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한 걸음 물러서야 할 때였다.금영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것을 이미 내다보고 있었다. 배명월이 가로막지 않았더라도 이 탕약을 제 입에 넣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 행위는 그저 황제의 앞에서 자신은 무해함을 증명하고, 상대의 목을 죄기 위해 던진 정교한 덫에 불과했다.금영이 손을 살짝 내리자, 해수가 얼른 그 탕약 그릇을 받아 들었다. 사향 냄새는 희미하여 잠시 맡는다고 해서 당장 유산할 일은 없겠지만, 금영은 단 한 순간도 이 불길한 것을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그녀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몸을 보하는 탕약인데, 그냥 버리기엔 아깝지 않습니까?"잠시 말을 멈추었던 금영이 나직하게 덧붙였다."받은 온정은 돌려드리는 것이 도리이지요. 태자비마마께서 직접 드시지요."배명월의 미간이 미미하게 틀어졌다. 금영이 이런 식으로 주도권을 낚아챌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녀는 다시 슬쩍 황제의 눈치를 살폈으나, 이번에도 찻잔에만 시선을 둔 채 두 사람의 대화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배명월이 애써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제가 회임한 것도 아닌데, 이 약을 굳이..."그때 금영이 해수에게 눈짓을 보냈다. 때로는 상대를 직접 압박하는 것보다, 주변에서 부추기게 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었다.그 뜻을 알아차린 해수가 곧바로 말을 받았다."태자비마마, 혹여 약에 넣지 말아야 할 전갈이라도 섞으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마시기를 꺼리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방자하다!""무엄하다!"두 개의 호통이 동시에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하나는 배명월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금영의 목소리였다.배명월은 당혹스러운 눈으로 금영을 바라보았다. 금영이 제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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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0화

배명월은 금영의 시비가 이토록 대담하게 굴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하지만 해수의 처지에서는 당연한 행보였다. 제 주인이 황제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 무서울 것이 없었다. 평생 그림자조차 보기 힘들 거라 여겼던 제왕이 금영 덕분에 최근 들어 자신에게까지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다.취옥은 더는 탕약 그릇으로 손을 뻗지 못하고, 그저 다급한 눈으로 배명월만 바라볼 뿐이었다.바로 그때, 문밖에서 손복안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폐하, 태자 전하께서 알현을 청하옵니다."황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방금 내쳤거늘 또 찾아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배명월이 이곳에 와 있는 것을 보니, 어쩌면 제 안사람을 데리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제가 묵직하게 허락했다."들라 하라."황제의 짐작대로 태자는 배명월 때문에 온 것이 맞았다. 그는 안성당을 나서자마자 배명월을 찾았으나, 그녀가 이미 이곳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순간 마차 안에서 배명월에게 내렸던 잔혹한 명령이 떠올랐고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결국 그는 허겁지겁 뒤를 쫓아올 수밖에 없었다.태자는 배명월에게 금영의 아이를 지우라 명했었다. 사생아 따위는 없애면 그만이라 여겼다. 아이가 사라지면 친부도 감히 제 핏줄을 찾으러 오지 못할 것이고, 금영도 다시 홀몸이 될 터였다.하지만 방금 황제가 금영을 대하는 태도를 목도한 순간, 태자는 뒤늦게 그 아이가 누구의 핏줄인지 깨달았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배명월이 경솔하게 움직인다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게 뻔했다.다행히 방 안으로 들어선 태자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우려했던 참상과 거리가 멀었다. 금영은 침상에 멀쩡히 누워 있었고, 황제의 표정 역시 평온했다. 태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배명월이 황제의 목전에서 만용을 부릴 만큼 어리석지는 않은 모양이었다.이때, 금영이 문가를 향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손 태감, 태의 한 분을 모셔와 이 탕약을 살펴봐 달라 청해주시겠습니까?"손복안이 공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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