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월은 태자비의 자리에 올랐으나, 영안후부의 적녀라는 배경을 제외하면 언행과 용모, 기품 중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궁중 안팎으로 모두 진심으로 그녀를 태자비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으며, 도리어 비웃음거리가 될 만한 꼬투리가 잡히기만을 은근히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그런 와중에 영안후부의 두 자매가 대치하는 광경이 벌어졌으니, 쏠리는 이목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영안후부는 최근 들어 명문가 사이에서 평판이 많이 내려간 상태이기도 했다.주변의 시선이 집중되자, 해수가 목소리를 높여 쐐기를 박았다."태자비마마께서 영비마마를 뵙고도 예를 올리지 않으신 건 백 번 양보한다 쳐도, 언행까지 이리 무례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그러자 금영이 만류하듯 나섰다."해수야, 그만하거라. 명월이도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마마, 어찌 이 상황에서도 태자비마마를 두둔하십니까! 장유에는 차례가 있고 존비에는 구별이 있거늘, 어찌 이를 그냥 두고만 보신단 말입니까!"주변의 시선이 한층 더 따갑게 내리꽂히는 것이 느껴졌다.금영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배명월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명월아, 정말 끝까지 예를 갖추지 않을 셈이냐? 이러다 후궁에 네가 장유유서도 모른 채 윗사람을 업신여긴다는 추문이 돌까 염려되는구나."과거 영안후부에 있을 때의 배명월이었다면, 특유의 순진한 얼굴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내숭을 떨며 은근히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었을 터였다. 어차피 영안후부의 모두가 제 편이었으니 평판 따위는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호시탐탐 흠집을 잡으려는 이들이 가득한 궁궐이었고, 그녀는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태자비의 신분이었다.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배명월은 보기 흉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금영을 노려보다가, 결국 이가 갈리는 심정으로 허리를 숙였다."신첩, 영비마마를 뵙습니다."금영은 고개를 숙인 배명월을 내려다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문득 네가 예전에 했던 말이 기억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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