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날, 나는 태자가 아닌 황제를 선택했다: Chapter 491 - Chapter 500

504 Chapters

제491화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곁에 누운 황제를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폐하, 주무십니까?”황제의 목소리는 온화했다.“아니다, 무슨 일이냐? 아까 어린 궁녀가 한 말 때문에 겁이라도 난 것이냐?”황제는 말을 건네며 금영을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아직 어린 금영이 어둠이나 귀신을 두려워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금영이 나직이 대답했다.“그건 두렵지 않습니다.”회귀 전에 이미 삼 년을 귀신으로 살았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레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귀신보다는 사람이야말로 훨씬 더 무서운 존재였다.금영의 어조가 어딘지 모르게 아득해졌다.“폐하께서는 이 세상에 귀신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십니까?”역시 두려워하고 있는 게 맞다고 황제는 생각했다. 좀 전에 아니라고 한 것은 그저 애써 괜찮은 척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금영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달랬다.“그런 것이 있을 리 없지 않느냐?”금영이 조용히 읊조렸다.“신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러자 황제가 말을 이었다.“그만 잊어버리거라. 설령 귀신이 있다고 한들, 내가 지켜줄 터이니.”금영이 말했다.“폐하,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선하지 않듯이, 귀신이라고 해서 모두 악하다고 볼 순 없지 않겠습니까?”황제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그 말에는 과연 일리가 있구나. 하지만 밤이 깊었다. 너는 아이까지 품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이제 귀신 같은 이야기는 접어두고 이만 자거라. 그만 쉬어야지.”황제가 다시 다정하게 덧붙였다.깊은 밤의 짧은 소란은 금영에게 티끌만 한 두려움도 주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간만에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해주었다.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황제는 금영이 입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몸까지 무거워 마음이 울적할까 염려되었다. 그리하여 조회가 시작되기 전, 금영에게 다정하게 일렀다.“오늘 기마장에서 축국 시합이 열린다 하니, 가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거라. 나도 정무 마치는 대로 찾으러 가마.”기마장은 황궁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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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2화

금영의 서슬 퍼런 기세에 눌린 궁녀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둘러 고개를 조아렸다.금영은 차가운 눈길로 그들을 내려다보며, 곁에 선 해수에게 나직이 물었다."해수야, 감히 아랫것들이 상전을 입에 올린 죄는 어찌 다스린다 하였느냐?"금영이 태자비가 되기 위해 궁중 의규를 익힐 때 해수 역시 곁에서 배운 터라, 답은 막힘없이 흘러나왔다."경하게는 태형 서른 대요, 중하게는 참형에 처해도 할 말이 없는 대죄로 알고 있사옵니다."죽음이라는 단어가 비수로 꽂히자, 궁녀들은 사시나무 떨듯 하며 바닥에 납작 엎어졌다."요, 용서해 주시옵소서, 마마!""저희가 잘못했사옵니다!""한 번만 살려 주십시오! 평생 이 은혜를 잊지 않고 매일 마마의 안녕을 빌겠나이다!"눈앞에서 애걸복걸하는 세 궁녀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금영이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청아한 웃음소리에 궁녀들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후궁의 여인들이 겉으로는 온화해 보일지언정, 속에는 얼마나 매서운 칼날을 품고 사는지 익히 보아 왔기 때문이다. 금영의 웃음은 마치 죽음을 앞둔 이들을 관조하는 저승사자의 미소처럼 섬뜩하게 다가왔다.이윽고 웃음기를 싹 거둔 금영이 싸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했다."방금 전 너희끼리 속닥거리던 말을 단 한마디도 빠짐없이 고하거라.""그, 그것이..."궁녀들이 더욱 깊숙이 고개를 처박자, 금영의 불호령이 떨어졌다."당장 입을 열지 못할까! 정녕 곤장에 맞아 죽고 싶은 것이냐!""마, 말씀드리겠사옵니다! 실은... 저희도 궐내에 도는 소문을 무심코 입에 담았을 뿐이옵니다."그나마 간담이 서늘해진 와중에도 이성이 남아 있던 한 궁녀가 몸을 떨며 입을 열었다."마마께서 입궁하신 것 자체가 천리를 어기는 일이니, 향후 나라에 큰 재앙을 몰고 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마마께서 처음 궁에 드시던 날 흉조가 나타난 것부터, 황후마마께서 앓아누우신 것과 궁에서 귀신이 출몰한 것 모두... 전부 마마 탓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사옵니다."한 번 터진 말문은 둑이 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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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3화

어린 궁녀에게 이런 무지막지한 소문을 퍼뜨릴 배짱이 있을 리 없었다. 배후는 십중팔구 서 황후일 터였다.한편으로는 아프다는 핑계로 서지안에게 황제와 맞닥뜨릴 기회를 만들어 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금영에게 더러운 누명을 씌운다. 서 황후로서는 그야말로 일거양득의 계책이었다. 이대로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 앞으로 궁궐에 작은 풍파만 일어도 사람들은 금영을 그 화근으로 여길 게 뻔했다.'어떻게든 이 판세를 뒤집어야 해.'금영이 신중하게 대책을 도모하는 사이, 기마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몇몇 이들이 말을 몰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옅은 미소를 띤 채 비빈들을 위해 마련된 단상으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마침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던 배명월과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았다.배명월은 병색이 완연한 얼굴을 감추려는 듯 분을 하얗게 바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노력에 무색하게 도리어 더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반면 금영은 영안후부에 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안색이 개어 있었다.원래도 명주처럼 매끄러운 피부에 눈부신 광채를 머금은 미색이었는데, 늘 먼지를 뒤집어쓴 듯 숨을 조여 오던 영안후부를 마침내 벗어났으니, 얼굴에 빛이 날로 더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오늘 금영은 화려한 붉은빛 의복을 입고 엷게 화장했을 뿐인데도 눈이 부실 만큼 고혹적이었다. 얼핏 스치듯 바라보아도 두 사람 중 누구의 판정승인지는 단번에 가려졌다.배명월은 금영을 발견하자마자 황급히 걸음을 옮겨 자리를 피하려 했다. 과거 눈에 띄기만 하면 먼저 찾아가 시비를 걸고 짓누르려 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였다.하지만 금영은 그녀를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명월아. 윗사람을 보았으면 예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배명월은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어두운 안색으로 짓씹듯 말했다."배금영, 적당히 해."금영은 그런 배명월을 바라보며 천진한 얼굴로 생긋 웃었다."적당히 하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시집가기 전 신분으로 따져도 나는 네 언니이니 예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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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4화

배명월은 태자비의 자리에 올랐으나, 영안후부의 적녀라는 배경을 제외하면 언행과 용모, 기품 중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게 없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궁중 안팎으로 모두 진심으로 그녀를 태자비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으며, 도리어 비웃음거리가 될 만한 꼬투리가 잡히기만을 은근히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그런 와중에 영안후부의 두 자매가 대치하는 광경이 벌어졌으니, 쏠리는 이목이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영안후부는 최근 들어 명문가 사이에서 평판이 많이 내려간 상태이기도 했다.주변의 시선이 집중되자, 해수가 목소리를 높여 쐐기를 박았다."태자비마마께서 영비마마를 뵙고도 예를 올리지 않으신 건 백 번 양보한다 쳐도, 언행까지 이리 무례하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그러자 금영이 만류하듯 나섰다."해수야, 그만하거라. 명월이도 일부러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마마, 어찌 이 상황에서도 태자비마마를 두둔하십니까! 장유에는 차례가 있고 존비에는 구별이 있거늘, 어찌 이를 그냥 두고만 보신단 말입니까!"주변의 시선이 한층 더 따갑게 내리꽂히는 것이 느껴졌다.금영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배명월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명월아, 정말 끝까지 예를 갖추지 않을 셈이냐? 이러다 후궁에 네가 장유유서도 모른 채 윗사람을 업신여긴다는 추문이 돌까 염려되는구나."과거 영안후부에 있을 때의 배명월이었다면, 특유의 순진한 얼굴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내숭을 떨며 은근히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었을 터였다. 어차피 영안후부의 모두가 제 편이었으니 평판 따위는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호시탐탐 흠집을 잡으려는 이들이 가득한 궁궐이었고, 그녀는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하는 태자비의 신분이었다.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다.배명월은 보기 흉하게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금영을 노려보다가, 결국 이가 갈리는 심정으로 허리를 숙였다."신첩, 영비마마를 뵙습니다."금영은 고개를 숙인 배명월을 내려다보며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문득 네가 예전에 했던 말이 기억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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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5화

회귀 전, 황제가 붕어하자 자식이 없던 여비와 후궁들은 모두 순장되는 운명을 맞이했었다.물론 모두가 황제의 저승길 동무가 되라는 잔인한 명에 순순히 따르지는 않았다. 여비처럼 스스로 흰 비단에 목을 맨 이가 있는가 하면, 안빈처럼 끝까지 반항하다가 태감들에게 목 졸려 죽는 이도 있었다.귀신이었던 금영은 그 참담한 광경을 고스란히 목도했다. 지금 다시 떠올려도 온몸이 차갑게 식을 정도로 끔찍한 기억이었다.결국 궁에 발을 들인 이상, 누구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그러니 차라리 여비처럼 대놓고 적의를 드러내는 자는 대처하기 쉬웠다.정말 영악하고 무서운 자들은 시커먼 속내를 감춘 채 현비처럼 다정하게 다가오는 이들이었다.금영은 막 입궁한 자신에게 현비가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 위인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서 황후를 견제하기 위해 쓸 만한 장기말을 하나 더 쥐려는 속셈에 불과할 터였다. 하지만 이 생각을 티 낼 수는 없는 법, 금영은 가면을 쓰고 온화한 낯으로 현비를 향해 예법을 갖추었다."현비마마를 뵙습니다."같은 비라 해도 엄연히 서열은 나뉘는 법이었기에, 금영의 행동은 마땅한 도리였다. 자리에 앉은 금영은 고개를 들어 경기장을 바라보았다.어느새 축국장에서는 젊은 공자들과 황족들이 각자 말을 몰며 격렬하게 공을 다투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태자와 이황자가 있었고,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을 따르는 세가 자제들의 조력을 받으며 팽팽하게 맞섰다.겉으로는 형제간의 우애를 다지는 친목 시합처럼 보였으나, 금영의 눈에는 황권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전초전으로 보였다.태자를 지지하는 자들이 사방에서 이황자를 에워싸며 그가 공을 잡지 못하도록 악착같이 방해했고, 결국 첫 득점은 태자가 가져갔다.이황자가 표적 한가운데를 꿰뚫는 공을 보며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이를 가는 모습도 보였다.만약 경기장이 아니었다면, 목숨을 걸고 결투라도 하고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만큼 분위기가 아주 살벌했다.하긴 목숨을 걸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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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6화

금영과 태자가 과거 어떤 사이였는지, 그리고 태자를 향한 그녀의 연정이 얼마나 깊었는지는 이곳에 있는 이들 중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결국 태자는 금영의 동생인 배명월을 태자비로 맞이했고, 금영은 황제의 비가 되었다.두 사람 사이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오가고 있을지, 또 그 심경이 얼마나 복잡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태자가 금영을 향한 불만을 품고 일부러 공을 날린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하기도 했다.이황자는 망설임 없이 단상 위로 올라와 먼저 현비에게 예를 올렸다."모비(母妃)."그리고는 이어서 영비를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띤 채 말했다."영 모비, 소자가 축국공을 제대로 막지 못해 놀라게 해 드렸습니다. 송구합니다."이황자는 아주 자연스럽게 금영을 어머니로 대우했다. 물론 황자의 신분이니 부황의 비에게 서모로서 호칭을 쓰는 게 법도상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금영의 나이와 태자와의 과거 인연을 생각하면, 굳이 이 자리에서 이렇게까지 부를 필요는 없었다.그러니 이건 십중팔구, 태자인 소한의 속을 긁으려는 교묘한 속셈이 분명했다.뒤늦게 태자도 천천히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는 금영을 바라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영비마마, 좀 전에는 제 실수였습니다."이황자가 파놓은 함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태자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사과하지 않았다가 황제의 귀에 이 일이 들어가기라도 하면, 정말 다른 이들의 추측처럼 그가 금영에게 보복하려고 일부러 공을 던졌다고 오해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금영이 담담한 어조로 답했다."괜찮습니다. 시합을 계속하시지요."상황을 지켜보던 현비가 화사하게 웃으며 모두를 향해 말했다."이황자가 어쨌든 실수를 저질러 모두의 흥을 깨고 영비까지 놀라게 했으니,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본궁도 사죄의 의미로 오늘 시합에 상품을 하나 더 걸겠습니다."현비가 살짝 손을 들어 올리자, 대기하던 궁녀가 쟁반에 정교한 연꽃 문양이 장식된 나침반을 들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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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7화

맹운산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영과 대립하던 유진설이 갑자기 무슨 이유로 이리 변했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허나 당장은 그녀에게서 금영을 향한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물론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기에 경계를 늦출 생각은 없었다. 만에 하나 그녀가 금영을 배신한다면 반드시 제 손으로 직접 처단하리라 다짐하며, 오늘은 일단 한편이 되어 보기로 했다.유진설은 여인이었기에 경기장의 젊은 사내들은 그녀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기를 난처해했다. 하지만 유진설은 겉보기로도, 실제 실력으로도 유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가 채를 휘둘러 공을 내리칠 때마다 실리는 힘은 결코 사내들에게 뒤지지 않았다.게다가 뛰어난 무예를 지닌 맹운산의 정교한 조력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날개를 단 격이었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유진설은 뜻밖에도 두 황자를 제치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그녀는 곧바로 단상에 올라 현비에게 상을 하사받았다. 그러고는 사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영험한 보물, 연화 나침반을 손에 든 채 거침없이 금영의 앞으로 걸어갔다.“영비마마, 제 손으로 직접 준비한 보물은 아니지만, 오늘 시합에서 얻은 이 귀한 물건을 마마께 바치고 싶습니다."유진설이 웃으며 말했다.“부디 이 나침반이 마마를 지켜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앞으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기를 기원하옵니다.”금영은 유진설을 바라보며 웃음을 머금었다.“고맙네.”맹운산은 이 장면을 단상 아래에서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황제 폐하 납시오!”이때 내관이 외치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고,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한 곳으로 향했다. 곧이어 검은 의복을 입은 황제가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금영을 발견하자마자 차가운 눈빛에 희미한 온기를 담았다.“폐하를 뵙습니다.”현비가 먼저 예를 올렸고, 황제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예는 되었네.”그리고는 곧바로 금영의 곁으로 걸어가 그녀를 부축했다. 이미 그가 전에 여러 번 예를 올리지 않아도 된다고 분명히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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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8화

황제는 금영의 해명을 듣고도 딱히 불쾌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은 채, 도리어 내관 손복안에게 명을 내렸다."맹운산이 공을 세웠으니, 상을 내리거라."손복안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예, 폐하."금영은 의외라는 듯 황제를 바라보았다. 천자란 모름지기 제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라면 무엇도 용납하지 않는 존재라 여겼다. 황제가 맹운산의 연심을 아는 데다 오늘의 소동까지 겹쳤으니, 필시 그를 곤란하게 만들 줄 알았다. 그러나 황제의 처사는 예상외로 관대했다."그리고... 태자 소한."황제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마침 황제가 당도했다는 소식을 듣고 인사하러 달려온 참이던 태자가 급히 예를 올렸다."소자, 부황을 뵙사옵니다.""듣자 하니, 하마터면 너 때문에 영비가 다칠 뻔했다더구나. 사실이냐?"황제가 태자를 응시하며 담담하게 물었다. 현비의 말을 그대로 믿는 대신, 상황을 태자의 입으로 직접 확인하고자 함이었다.태자의 낯이 일순간 굳어졌다. 이황자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파놓은 수작임을 빤히 알면서도, 부정할 방도가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어쩔 수 없이 시인했다."예, 소자가 실수를 저질렀사옵니다."이런 상황에서 구차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간 황제의 노여움만 키울 뿐이었다.황제가 그런 태자를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일국의 태자가 되어서 어찌 이리도 경솔하단 말이냐!"현비가 은근슬쩍 옆에서 거들고 나섰다."폐하, 노여움을 거두시옵소서. 그저 잠시 부주의했을 뿐, 맞으면 크게 다칠 공을 설마 태자 전하께서 일부러 영비에게 던지셨겠사옵니까?"금영은 그 말을 듣고 현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 황후와 태자가 결코 좋은 인물이 못 되듯, 현비 또한 깊이 마주할 위인이 아님이 뼈저리게 실감되었다.금영은 태자를 무너뜨리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제 손으로 죽이고 싶을 만큼 그를 증오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남의 손에 쥐인 칼날이 되어 태자를 찌르고 싶지는 않았다. 이로써 적의 적이 결코 아군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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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9화

황제가 금영의 입에서 맹운산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듣고 나직하게 정정했다."그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금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의 심기가 가라앉은 이유가 맹운산 때문이 아니라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그럼 무엇 때문이옵니까?"금영이 황제를 가만히 바라보며 물었다.순진무구한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금영을 마주하자, 황제는 더 이상 그녀를 몰아붙일 마음이 사라졌다.그는 결국 헛기침을 하며 화두를 바꾸었다."오늘 보니 참으로 대담하더구나. 짐을 현비의 곁으로 보낼 생각을 다 하고."황제는 금영의 마음속에서 제 위치가 어디쯤인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입궁 자체가 그녀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에 이리 덤덤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그의 말을 들은 금영은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황제를 언짢게 만든 이가 맹운산이 아니라 현비였다니, 대단히 의외의 상황이었다.새삼 사람들이 왜 어심은 헤아리기 어렵다고 하는지 실감이 났다. 황제의 마음이란 정말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 되었든 황제가 토라진 원인을 알게 되었으니, 어떻게든 이 상황을 유연하게 넘어갈 방도를 찾아야 했다.금영은 눈가에 살짝 물기를 머금은 채 아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폐하, 신첩은 그저 폐하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옵니다. 신첩이 조금 서운하고 억울한 것은 견딜 수 있으나, 괜히 저로 인해 후궁에 분란이 일어 폐하의 옥체에 근심을 더해 드릴까 두려웠습니다."자신은 오로지 황제만을 위했을 뿐이라 호소하는 목소리였다.황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런 금영을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어린 나이임에도 제 안위보다 남을 먼저 살피는 모습이, 지나치게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것 같아 되레 마음이 아려왔다.'도대체 그동안 영안후부에서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토록 처연한 성정을 가지게 되었단 말인가?'황제가 목소리를 한껏 누그러뜨리며 말했다."짐은 네가 좀 더 제멋대로 굴어 주었으면 좋겠구나."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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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0화

“이 미인마마, 왕 미인마마! 노비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디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머리가 산발이 된 궁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애걸했다. 그녀는 낮게 흐느낄 뿐,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처량한 모습이었다.이 미인이 매섭게 호통쳤다.“이 요망한 계집이! 영비마마께서 자비를 베풀어 놓아 주셨거늘, 감히 약속을 어기고 입을 함부로 놀려? 정녕 목숨이 아깝지 않은 게냐!”지나가던 금영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내 이름이 왜 저기서 나오지?’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이 미인과 왕 미인이 금영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두 사람은 서둘러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고개를 숙였다.“영비마마를 뵙사옵니다.”금영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는데, 마침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든 궁녀와 시선이 마주치고 말았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어젯밤 덜덜 떨며 그녀에게 귀신을 본 것을 고하던 채아였다.금영이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이번엔 또 무슨 소란이냐?”채아가 금영의 발치로 기어 와 머리를 조아렸다.“영비마마, 제발 한 번만 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소인이 잘못했습니다.”이 미인이 서둘러 말을 가로채며 고했다.“마마, 이 미천한 년이 어젯밤 있었던 귀신 소동을 밖으로 떠벌리고 다닌 모양입니다. 그새 궁 안에 흉흉한 소문이 사방으로 퍼졌사옵니다. 하여 신첩들이 마마를 대신해 이 계집의 버릇을 고치던 중이었습니다. 마마께선 마음이 어지시니, 이런 더러운 일은 저희들에게 맡겨 주십시오.”채아는 억울함이 가득한 눈망울로 눈물만 뚝뚝 흘렸다.금영이 채아를 응시하며 다시 물었다.“채아야, 정말 네가 소문을 퍼뜨린 것이냐?”채아가 겁에 질려 선뜻 답하지 못하자, 이 미인이 윽박지르듯 끼어들었다.“마마, 이렇듯 입이 가벼운 것들은 몽둥이찜질로 다스려야 마땅합니다!”옆에 있던 왕 미인도 얄밉게 맞장구를 쳤다.“신첩 역시 이 미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옵니다.”금영이 두 사람을 무시한 채, 채아에게 차가운 시선을 던졌다.“나는 네 입으로 직접 듣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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