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그 일을 거절하지 않고 일단 생각해 보겠다고까지 했으니, 태후가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설마 지금 당장 교지를 내려 새 비를 책봉하라고 황제를 몰아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황제가 말했다.“문안도 이미 드렸으니 소자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자리에서 일어나려던 황제는 문득 서 황후를 바라보았다.“어제 황실 연회에서 이런저런 소란이 끊이지 않았으니, 황후는 중궁의 권한을 당분간 현 귀비에게 맡겨 두게.”황제는 마치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도 말하듯 가볍게 한마디를 던졌다.그러나 서 황후의 얼굴은 순식간에 새까맣게 굳었다.황제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그 모습을 본 현 귀비가 얼른 말했다.“금영 동생, 우리도 이만 물러가 태후마마와 황후마마를 더 번거롭게 하지 않는 것이 좋겠네.”금영 역시 이곳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마침 빠져나갈 기회가 생겼으니 어찌 마다하겠는가.수강궁을 나온 뒤 현 귀비가 말했다.“금영 동생, 본궁은 따로 볼일이 있어 이만 가 보겠네.”그러고는 잠시 멈춰 서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황제를 바라보았다.“폐하, 신첩은 먼저 물러가겠사옵니다.”현 귀비가 떠나자 금영은 황제의 곁으로 걸어갔다.금영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이었다.황제의 길고 반듯한 손가락이 먼저 금영의 손을 감싸 쥐었다.차갑게 식은 손끝을 느낀 황제의 미간이 곧바로 찌푸려졌다.“어찌 이리 얇게 입고 나온 것이냐?”날씨는 이미 제법 풀려 있었다.황궁 안에 쌓였던 눈도 거의 다 녹아, 금영은 밖으로 나올 때 여우털 외투나 두터운 겉옷을 따로 걸치지 않았다.그런데도 이상한 일이었다.한겨울에는 그다지 춥다고 느끼지 않았건만, 초봄의 바람을 조금 맞았을 뿐인데 손끝이 유난히 시렸다.황제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검은 외투를 벗었다.두 손을 들어 금영의 어깨 위에 그대로 둘러 주었다.황제의 외투는 금영에게 지나치게 컸다.가녀린 몸이 외투 속에 폭 파묻혔고, 긴 자락은 바닥에까지 끌렸다.금영은 두어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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