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연수는 사옥현의 그 공허한 말들이 몹시도 괴로웠다. 겉으로는 늘 평온과 체면을 유지해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에게 감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사실 그녀는 묻고 싶었다. 그의 아내라면 모든 것을 그의 뜻에 맡겨야 하는 것인지, 눈 오는 날 그대로 내버려두어도 되는 것인지, 모든 편애와 배려는 다른 이에게 주는 것이 정상인지, 그 후에 밀려오는 씁쓸함까지 곧 그의 아내가 감당해야 할 몫인지.그러나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끝내 그 말들을 삼켰다. 얘기를 꺼내는 순간, 그것은 원망이 되고 불평이 되며 지난 시간에 대한 분노가 될 게 뻔하니까.그렇다면 오랫동안 쌓여 온 억울함을 그에게 쏟아내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그건 아직도 그에게 기대가 남아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그런 기대 따위는 사라진 뒤였다. 계연수는 얼굴에 드러난 거부감을 숨기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채 이마를 짚고 시선은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녀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나으리, 정말 피곤합니다.”그 짧은 한마디에는 짙은 피로가 스며 있었다. 그 순간, 사옥현의 목까지 차오르던 말들이 한꺼번에 막혀 버렸다.그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계연수 앞에서 이렇게 손쓸 수 없는 무력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 무력감이 그를 집어삼켜 마치 자신이 그녀 앞에서 한없이 형편없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그녀가 자신을 싫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한때는 창가마다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기 위해 켜 두었던 등불이 있었고 귀에는 늘 그녀의 부드러운 안부가 맴돌았는데...이명유가 곁에 있지 않았다면 그 또한 지금 이 자리에서 초조하고 무력한 짐승처럼 포효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명유는 두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늘 차갑기만 하던 사옥현의 얼굴에 스친, 어딘가 애써 누그러뜨린 기색까지도.그녀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옥현에게 이렇게까지 거절할 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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