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주문춘귀: Bab 71 - Bab 80

148 Bab

제71화

그녀는 고개를 들어 사옥현을 바라보며 낮게 불렀다.“사촌 오라버니와 형수님은 왜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세요?”계연수는 곁에 선 이명유를 보지 않고 다른 한 손으로 사옥현을 밀어내고는 한쪽으로 물러섰다.손바닥에 남아 있던 부드러운 온기가 사라지자 차가운 기운만이 남았다. 사옥현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명유를 한 번 보고는 낮게 말했다.“가자.”이명유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몇 차례 기침이 나와 손수건을 들어 입가를 가렸다. 그러나 사옥현은 그녀 곁을 그대로 지나쳐 버렸다.이명유는 그 자리에 굳어 섰다. 이상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는 그녀가 기침만 해도 반드시 걱정스레 물었을 터였다. 그녀는 사옥현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그의 뒤를 따르는 계연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손수건을 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동쪽 온실에 있던 임씨는 사옥현과 계연수가 앞뒤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계연수에게는 말을 붙이지 않은 채 사옥현에게만 물었다.“늘 일찍 나서던 아이가 오늘은 어쩐 일로 이리 늦은 것이냐? 출근길에 지체될까 염려되지 않느냐?”사옥현은 곁에 선 계연수를 한 번 보고 답했다.“날이 차서… 연수와 함께 오느라 그랬습니다.”임씨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사옥현이 그녀 앞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그가 계연수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에,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임씨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사옥현에게 먼저 가 보라고 했다.사옥현은 떠나기 전, 방 안의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계연수를 향해 낮게 말했다.“오후엔 일찍 돌아올 테니 저녁은 나와 함께 하자꾸나.”계연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인 눈매에는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사옥현은 그녀를 깊게 바라본 후에야 몸을 돌려 나갔다.이명유는 이 낯선 장면을 보며 마음이 묘하게 굳어 갔다. 임씨 역시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해가 서쪽에서 뜬 것만 같았다.임씨는 계연수를 향해 물었다.“요 며칠, 방에 들어와 잠을 자긴 했느냐?”계연수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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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이명유는 임씨의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전까지 가슴을 누르던 불편함이 풀리는 듯했다.그녀는 부드러운 말씨로 한동안 임씨 곁을 지키다 오전이 깊어질 무렵에야 자리를 떴다.방을 나서자마자 그녀는 곧장 사씨 노부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명유는 잘 알고 있었다. 사가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이모 한 사람의 신임만으로는 부족다는 것을. 결국 가장 중요한 이는 사씨 노부인이었다.그녀가 계연수를 아낀다는 사실쯤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씨 노부인은 그녀 또한 좋아했으니까.이명유는 그녀의 취향을 잘 맞췄다. 자주 불경을 읽어 드렸고 직접 불경을 필사해 공양하며 차곡차곡 호감을 쌓아 왔다. 그러나 이날 그녀가 찾아갔을 때, 사씨 노부인은 자리에 없었다. 뒤뜰로 산책을 나갔다는 말에 이명유는 곧장 발길을 돌리려 했다.그때였다. 앞쪽의 오솔길에서 낮은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노부인의 목소리 같았다.그 길은 그녀가 거처로 돌아올 때 지나치는 곳이었는데, 마침 외출에서 돌아오는 모양 같았다. 이명유는 한마디를 듣는 순간, 반사적으로 가산 뒤로 몸을 숨겼다.곧이어 노부인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도 몰랐지. 연수 그 아이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옥현이와 이혼을 하게 해 달라고 할 줄은. 원래 말이 없는 아이야. 그런 아이가 나를 찾아와 무릎까지 꿇을 정도라면 마음이 얼마나 상했다는 뜻이겠니? 헌데 내가 어찌 모른 척하겠느냐?”곁에 있던 장씨 어멈이 부드럽게 달랬다.“노부인, 너무 마음 쓰지는 마십시오. 어젯밤 나으리께서 다녀가셨는데 아직 부인을 놓지 못한 눈치셨습니다. 평소엔 마음이 없어 보이셨지만, 어젯밤 보니 꽤나 중요한 사람처럼 보이더군요. 아마 부인께서 그간 냉대를 받아 마음이 식었던 게지요. 이번 일로 나으리께서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게 된 듯하니 앞으로는 잘 살아가실 수도 있을 겁니다.”노부인은 다시 한 번 깊은 숨을 내쉬었다.“부디 그러기를 바랄 뿐이다. 옥현이는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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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사옥현은 걸음을 멈췄다. 그의 가슴 한가운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허와 불안이 서늘하게 번져 갔다.그 시각, 계연수는 아직 밖에 있었다. 길가에 자리한, 부원자를 파는 작은 노점 앞 낮은 의자에 용춘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그녀는 일부러 사옥현을 피했다. 그와 함께 저녁을 먹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외가에 너무 자주 들르는 것도 그들을 괜히 걱정시키는 일이라 차라리 바깥이 편했다.사옥현과 혼인한 뒤로 계연수는 거의 사가의 안채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사옥현은 늘 바빴기에 그녀를 데리고 나설 여유가 있을 리 만무했다. 게다가 시어머니의 눈치와 사옥현의 꾸중이 두려워, 혼자 외출하는 일은 더더욱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늘 조심스러웠다. 사옥현의 아내로서 흠잡힐 일 없이 살고 싶었고 사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최선을 다해 왔다. 하지만 부족했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끝내 닿지 못한 그들의 마음이었다.기댈 곳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이런 자유가 오히려 편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계연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얼굴의 얇은 베일을 살짝 젖혀 한입 베어 물었다. 달았다. 참으로 달았다.그녀는 웃으며 용춘에게도 얼른 먹어 보라고 손짓했다.용춘은 사가에서 계연수의 웃는 얼굴을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계연수는 눈동자가 반짝였고 예전처럼 웃음을 잘 짓던 소녀 같았다.가슴이 뜨거워진 용춘은 고개를 숙인 채 한입 베어 물었다. 뜨거운 단팥이 입안에 퍼지며 달콤함이 가득 찼다.그녀도 웃으며 얘기했다.“정말 맛있네요.”사방은 사람들로 붐볐고 웃음소리와 발걸음이 뒤섞인 진한 생활의 기운이 넘쳤다. 계연수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그러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문득 이런 의문이 피어올랐다. 이런 삶이 더 나은 걸까, 아니면 부유하지만 답답하고 체면만 남은 사가의 삶이 나은 걸까? 여인은 평생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노부인은 이전에 여인의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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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그 대인이 누구인지 계연수가 모를 리는 없었다. 다만 이유를 알 수 없이 마음이 자꾸만 들떠서 심서준이 자신을 불러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괜히 여러 생각이 스쳤다.그녀는 안내를 따라 마차 앞으로 갔다. 굳게 내려진 휘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릴 적 그를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가슴이 조여 왔다. 마차 밖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괜히 빨라졌다.계연수는 잠시 망설였다. 마차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문하가 이미 휘장을 걷어 올리며 부드럽게 웃었다.“아가씨, 들어가시지요.”피할 수 없음을 알기에 계연수는 결국 마음을 다잡고 마차에 올랐다.안은 생각보다 따뜻하지 않았다. 바깥보다는 나았지만 온기가 도는 공간은 아니었다. 그제야 떠올랐다. 심서준은 본래 추위를 타지 않는 사람이기에 마차에 화로를 두는 일도 없다는 것을.마차 안은 어둑해져 있었다. 넓은 공간 속에서 심서준의 얼굴은 어둠에 잠겨 있어, 계연수는 그의 표정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고개를 들 용기도 나지 않아 그녀는 몸을 조금 움츠린 채 맞은편에 앉았다.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계연수는 몇 번이나 숨을 고른 뒤에야 얼굴의 얇은 베일을 걷어 올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심 대인께서는…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심서준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마차 안의 공기는 그녀가 들어온 뒤로 묘하게 달라진 듯했다. 봄날 같은 은은한 향기가 스며들어 괜히 사람 마음을 흐트러뜨렸다.등불 아래 드러난 그녀의 얼굴은 옥처럼 희었고 밝은 눈동자가 그를 향해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에는 물기가 어리고 시선은 늘 그랬듯 조심스러웠다. 그 눈은 언제나 촉촉했고 고운 정이 배어 있어 아름답고도 연약해 보였다.심서준의 시선이 그녀의 그림 같은 눈썹과 부드러운 턱선을 지나 끝내 다시 그 눈동자에 머물렀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늘 그를 그렇게 바라봤다. 조심스럽게, 두려움을 품고.어린 시절의 계연수는 눈처럼 고왔고 얼굴에 살이 도톰해 눈송이 같은 아이였다. 턱을 괴고 그의 글씨를 구경할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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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계연수는 지금 당장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심서준이 그녀를 부른 이유가 설마 그 한마디를 묻기 위함이었을까?심서준의 시선이 슬쩍 그녀에게 머물렀다. 반쯤 걷힌 얇은 베일이 분홍빛 옷자락에 어리고 귀 옆의 녹빛 귀고리가 흔들리며 은근히 빛났다.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관능적인 온기가 점점 짙어졌고 그 사이로 갓 지은 부원자의 달콤한 향까지 섞여 들어왔다. 그의 목울대가 작게 움직였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각이 다시금 치밀어 올랐다. 심서준은 고개를 떨구고 차갑게 가라앉은 시선을 그녀의 매끈한 치마 자락 아래 가느다란 허리선에 두었다.몸을 뒤로 젖혀 등받이에 기대며 그는 다시 어둠 속으로 스스로를 숨겼다. 고개를 살짝 젖힌 채 눈을 감고 늘 차분하던 목소리에 옅은 쉰 기운을 섞어 물었다.“사씨 집에서는 지낼 만합니까?”심서준은 만약 계연수가 그곳에서 힘들다고 말한다면 그는 사옥현의 곁에서 그녀를 데려올 이유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저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정당한 명분 하나를 찾고 싶었을 뿐이었다.심서준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가 다시 계연수를 마주한 이유를. 그는 다시 한번, 말없이 그녀를 위해 기회를 던져주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그녀의 억울함 하나, 외로움 하나, 후회 하나만 말해 주면 됐다.부군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말해도 좋고, 눈 내리는 밤 홀로 남겨졌다고 해도 좋고, 이 시간까지 혼자 거리에 있는 이유를 털어놓기만 해도 되었다.그녀가 단 한 걸음만 내디디면 그는 그녀에게 더없이 부귀하고 총애받는 삶을 건네줄 수 있었다.어둑한 마차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압박과 긴장이 서서히 번져 갔다.계연수는 심서준의 얼굴을 분명히 볼 수 없었다. 다만 그의 무릎 위에 얹힌 손만은 또렷했다. 선명한 마디, 그리고 검지에 낀 송석 반지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그는 늘 그녀에게 그런 존재였다. 어른처럼 감히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사람.계연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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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그녀는 머릿속에서 두서없이 이런 눈빛을 분명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끝내 떠올리지는 못했다.그렇게 넋을 놓고 있던 사이, 다시 심서준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부인, 마차에서 내리시지요.”계연수는 그제야 꿈에서 깨어난 듯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그는 심서준을 향해 몸을 굽혀 인사하려 했으나 마차 안은 생각보다 낮았다. 머리 위가 마차 천장에 부딪히며 그녀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몸이 앞으로 쏠리자 급히 한 걸음 내디뎌 균형을 잡았고 손은 반사적으로 정수리를 눌렀다.그 순간, 심서준 앞에서 이런 꼴을 보였다는 자각이 온몸을 덮쳐왔다. 부끄러움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오며, 얼굴이 불에 덴 듯 붉게 달아올랐다. 심장이 떨리듯 뛰었다. 고개를 숙여 사과하려던 찰나, 그녀의 시선은 마침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는 심서준의 눈과 마주쳤다.그의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한 수면 같았다. 아무런 파문도, 감정도 없었다.그는 여전히 신상에 가까운 존재처럼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고 무심한 시선으로 그녀가 아래에서 얼마나 초라해지는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사실은 계연수에게 더욱 참기 힘든 수치와 곤혹을 안겼다.아마도 심서준의 눈에 비친 자신은 이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난처한 순간에도 그가 표정 하나 바꾸지 않는 것을 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그 무심함이 오히려 그녀를 더욱 작고 하찮은 존재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마치 그의 앞에 놓인 한 톨의 먼지처럼.계연수는 조용히 눈을 내렸다. 이유를 알 수 없이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녀는 급히 낮은 목소리로 물러나겠다고 말한 뒤, 옆의 발을 걷어 올렸다. 그러고는 거의 도망치듯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 난감하고 숨 막히는 상황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다.거리 한편에 선 그녀는, 화려한 마차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눈앞을 지나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밤바람이 머리 위의 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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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계연수는 사옥현을 보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그의 곁을 스쳐 지나려는 찰나, 손목이 단단히 붙잡혔다.그녀가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보자 사옥현 역시 돌아보았는데, 그의 눈에는 쉽게 풀리지 않는 복잡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그가 먼저 물었다.“어디에 다녀온 것이냐?”그리고 곧이어 덧붙였다.“일이 좀 생겨서 늦었다. 저녁은 먹었느냐?”계연수는 그가 했던 약속도,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해놓고 늦은 일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오히려 마음 한편이 가벼워진 상태였다. 다시 혼자서 그를 기다리며 애태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녀에게는 다행이었다.그녀는 담담히 말했다.“외가에 잠시 들렀습니다.”그 거리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를 듣자 사옥현의 음성도 한층 낮아졌다.“연수야, 나와 함께 주채로 가서 자자.”계연수는 고개를 저었다.“서재에서 마무리할 일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나으리께서는 먼저 들어가 쉬세요.”그녀의 손목을 붙잡은 손에 힘이 더해졌다. 사옥현은 한참이나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연수야, 우리 사이가 이 정도까지는 아니잖아. 이렇게 방을 나눠 쓰면 아래 사람들은 뭐라 생각하겠느냐? 어머니께서 알게 된다면 또 너를 어떻게 나무라시겠느냐?”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체념에 가까운 한숨이었다.“연수야, 너는 원래 이런 식으로 고집을 부리는 사람이 아니었다.”계연수는 여전히 고개를 저었다.“나으리, 저는 지금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에요.”그의 말이 더는 닿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사옥현의 얼굴에는 어느새 실망감이 짙어졌다. 그는 거의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채,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내가 예전엔 너를 많이 소홀히 했을지 몰라도 그게 네가 이렇게 행동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연수야, 네가 사가에 시집온 지도 벌써 삼 년이다. 아직 아이도 없지 않느냐? 정으로 보나 이치로 보나, 내가 너를 내친다 해도 흠잡을 데는 없다. 그런데도 계속 이렇게 나오면, 정말로 사가를 떠나야 하는 날이 올 텐데 그게 정녕 네가 바라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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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사옥현은 한 걸음 뒤로 휘청하며 물러서고는 그대로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계연수는 그가 밖에 남아 있는지, 이미 떠났는지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하던 일을 이어가며 하인에게 목욕할 물을 데우라 지시했다.이제는 그의 기분을 헤아리며 그가 무엇을 바라는지 되짚는 일조차 하지 않기로 했다. 이 모든 일은 본디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기에, 사가의 모든 사람에게 맞추기 위해 그녀 스스로를 바꿀 필요도 없었다.다음 날 아침에도, 사옥현은 여전히 뜰 문 앞에 서 있었다. 피할 길이 없던 계연수는 결국 그의 앞을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사옥현이 다시 손을 뻗으려는 순간, 계연수는 이미 한 발 앞서 몸을 비켜섰다. 그는 허공에 멈춘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계연수의 뒷모습을 보고는 그녀의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언제부터였을까?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도 말 한마디 오가지 않는 사이가 된 것이.계연수가 가끔 먼저 말을 꺼내던 것이 당연해졌던 사옥현은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언제나 그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그녀가 입을 다물자 두 사람 사이에는 꺼낼 말 자체가 없었다.그는 애써 새로운 화제를 찾았다.“부엌에서 보낸 보약은 왜 먹지 않았느냐?”계연수는 발밑을 바라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필요 없어져서요.”사옥현은 미간을 찌푸렸다.“지난번에 풍한이 심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좀 나아졌다고 해도… 조심해야지.”계연수는 마음이 딴 데 가 있는 듯 그저 가볍게 응했다.“네.”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기색이 분명했다. 그녀의 그 무심한 한마디에 사옥현의 목에 걸려 있던 말들이 모두 막혀버렸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말했다.“연수야, 나는 지금 너와 차분히 이야기하고 있다.”계연수는 뜻밖이라는 듯 그를 한 번 바라보았다.“전에도 나으리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잠시 말을 멈춘 뒤, 그녀는 덧붙였다.“나으리, 저는 지금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정도도 허락해 주실 수 없는 건가요?”그 말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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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계연수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어머님께서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혼하게 된다면 저는 결코 막지 않을 겁니다.”계연수가 물러난 뒤에도, 임씨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그녀는 곁에 서 있던 어멈을 돌아보며 물었다.“저 아이가 미친 것이냐?”어멈은 잠시 멈칫하다가 허리를 굽히고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제가 보기에도 부인께서 하신 말씀이 어딘가 심상치 않습니다.”임씨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다시 말했다.“도대체 왜 이리도 난리를 치는 게냐? 옥현은 본래 공무가 바쁜데 집에서까지 저렇게 가만두질 않으니… 갈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임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됐다. 어차피 본인이 먼저 꺼낸 말이니 오늘 밤 옥현이와 상의해 보마. 아이를 낳지 못하니 차라리 다른 사람이 낳게 하면 될 일이지. 그때 가서 어떻게 난리를 치든,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어멈은 얼굴에 걱정을 띠우고 조심스럽게 물었다.“허나, 만에 하나 대감께서 이 일을 아시게 되면 어찌하시렵니까? 이제 보름 남짓 있으면 섣달 그믐이고 곧 노부인 생신도 다가옵니다. 대감께서 반드시 돌아오실 텐데요.”임씨는 어멈의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다.대감은 예전의 그 약속을 유독 중히 여겼다. 이 일이 알려지면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임씨는 잠시 생각하다가 담담히 말했다.“어쨌든 본인이 먼저 꺼낸 말이다.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대감께서 따져 묻거든, 저 아이가 직접 설명하게 하면 될 일이지.”그러고는 냉소를 흘렸다.“정말로 이혼에 응한다면 그때는 나도 그 아이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그로부터 이틀 동안, 계연수는 사옥현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대신 외조모에게서 편지가 도착했다. 한 번 다녀오라는 짧은 말이 적혀 있었다.계연수는 오후가 되어서야 외가로 향했다. 대문에 이르자 문간을 지키던 이가 미소를 띠고 말했다.“아가씨, 오시거든 곧장 영안당으로 오라 하셨습니다.”계연수는 영안당에 들어선 후 두꺼운 휘장을 걷고 온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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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고씨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으로 시선을 돌려 계연수를 바라보았다.“네 큰 외숙모 말도 일리가 있다. 고운이가 정말로 황후 마마의 눈에 들었다면 우리 고씨 집안도 이제야 숨을 돌리는 셈이 되니까. 어쩌면 네 큰 외숙부가 변방에서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계연수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조용히 다물었다. 솔직히 이 이야기는 그녀에게도 다소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황후 마마가 어찌 고씨 집안의 처녀에게 눈길을 줄 수 있단 말인가? 규중의 딸들은 대부분 뒤뜰에서 지내기 마련인데 황후 마마가 언제 그런 아이를 눈여겨볼 기회가 있었던 걸까?그런 사정은 계연수로서도 알 길이 없었다. 다만 심씨 집안 같은 가문이라면 혼사에서 이미 문벌을 따지는 단계는 지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외조모의 말처럼 차라리 가능성을 믿는 편이 고씨 집안에는 나쁠 것이 없었다.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그렇다면 분명 좋은 일이지요.”고씨 노부인은 다시 말을 이었다.“이번에 너를 불러온 것도 그 일 때문이란다. 네 어릴 적에 심서준 후작을 여러 번 본 적이 있지 않느냐? 그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아는 게 있으면 말해 보거라. 예컨대 여인의 차림은 어떤 쪽을 선호하는지,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 즐겨 먹는 음식이나 평소의 습관 같은 것들 말이다. 자세할수록 좋다. 하운이도 미리 준비해 두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결국 사람 마음이란 취향에 맞추는 게 제일이니.”그 말에 방 안의 시선이 일제히 계연수에게로 향했다.장씨는 계연수를 바라보며 늘 담담하던 눈빛에 드물게 온기가 실렸다.“연수야, 일이 정말 잘 풀린다면 큰 외숙모가 반드시 네게 고마워할 것이다.”계연수는 입을 열다 잠시 멈췄다. 고씨 집안을 위한 일이라면 그녀가 아는 바를 숨길 이유는 없었다. 다만 어릴 적 심서준과 약간의 인연이 있기는 했지만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와는 손에 꼽을 만큼만 말을 나누었을 뿐이니.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심서준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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