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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e Kapitel von 주문춘귀: Kapitel 301 – Kapitel 310

368 Kapitel

제301화

“지금까지 아무것도 못 먹었을 거라 생각했다.”고준안이 내민 경단을 보며 계연수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달콤한 향이 코끝을 스치자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고준안이 일부러 겁을 주어 울리거나 화나게 한 뒤 늘 이 경단을 사 와 달래주던 날들.오래된 일은 떠올릴수록 괜히 마음을 저리게 했다.계연수는 눈을 한 번 깜박이고 한 개를 집어 물었다. 여전히 예전 그 맛이었다.“오라버니, 고마워요.”고준안이 옅게 웃었다.“연수 네가 좋아해 주면 그걸로 됐다.”계연수는 더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에게 느끼는 미안함이 또 하나 쌓인 듯했다.곁에서 다시 들려온 그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마당에 부족한 게 있으면 사람을 보내 내게 전하거라. 내가 다 챙기겠다.”그 말의 뜻을 계연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가슴이 조여오는 느낌에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네.”고준안은 고개 숙인 그녀를 바라보았다. 희고 갸름한 턱선이 유난히 단정했다. 바람이 가느다란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가며 은은한 향을 남겼다. 그 향이 그녀의 슬픔까지 함께 전해 오는 듯했다.그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더 오래 붙잡아 둘 생각은 없었기에 한 걸음 물러나 낮게 말했다.“옷차림이 얇구나. 날이 추우니 어서 들어가거라.”계연수는 손에 쥔 종이 봉지를 내려다보다가 한 발 물러선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그는 언제나 그랬다. 지나치게 다가와 불편하게 한 적이 없었다. 늘 조심스럽게 그녀의 기색을 살피며 한 걸음 물러서 있던 사람.손끝에 살짝 힘을 주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고준안의 시선을 받으며 남은 경단을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방 안에서 고씨 노부인은 계연수의 손에 들린 경단을 보며 미소 지었다.“준안이 준 것이냐? 저 애는 네가 뭘 좋아하는지 늘 기억한단다. 네가 좋아하는 요리도 다 외우고 있지.”계연수는 외조모 곁에 앉아 눈을 내리깔았다.손에 든 종이 봉지를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깥이 서서히 밝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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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2화

강호의 사기꾼이라면 감히 관복을 입을 수 없다. 그건 목이 날아가거나 유배에 처해질 중죄였으니 말이다.설령 대담하게 흉내 내어 만든다 해도 조잡하기 마련이었다.계연수는 그제야 조금 안심하고 용춘에게 서둘러 모셔 오라 일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진 태의가 들어왔다. 풍기는 기품과 차림새만으로도 가짜일 리 없다는 것이 분명했다.그는 공손히 계연수와 고씨 노부인에게 예를 갖추고 스스로 이름과 관직을 밝혔다. 두 사람이 마음 놓도록 하려는 배려였다.계연수는 완전히 안심하고 급히 어머니의 진맥을 청했다.진 태의는 문득 계연수를 한 번 바라보았다. 깊은 규중에서 자란 여인의 부드러움과 단정함 속에 가느다란 강단이 서려 있었다.하지만 더는 시선을 두지 않고 곧바로 눈앞의 일에 집중했다. 애초에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그거였으니.침상 위의 부인은 연약한 연꽃처럼 고왔으나 몹시 쇠약해 보였다. 그녀의 얼굴에서 조금 전 그 아가씨의 모습이 어렴풋이 겹쳐 보였다.그는 숨을 고르고 맥을 짚었다. 진 태의는 아직 마흔이 채 되지 않았지만 열네 살에 이미 태의원에서 의약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웬만한 병증은 그를 곤란하게 하지 못했다.하지만 지금의 맥상은 어딘가 이상했다. 맥이 허약하고 가늘었다. 비장과 폐가 모두 허해 피를 토하고, 숨이 짧고 가쁜 증세를 보이는 듯했다. 이런 증상은 대개 심질에서 비롯된다. 심맥이 막히면 본디 약한 몸은 더 버티지 못할 테고 이런 상황에서 급병이 한 번 덮치면 그대로 세상을 뜨기도 한다. 그런데 얼굴빛을 보니 창백함 속에 희미하게 푸른 기가 돌았다. 단순한 심질이라기보다는 어딘가 중독의 기색도 엿보였다.확신할 수는 없었다. 안색이 푸르게 도는 까닭은 여럿이었기 때문이다. 섣불리 입을 열어 괜한 불안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그는 계연수에게 고씨의 상태를 있는 그대로 전했다.“지금 부인께서는 자극을 더 받으시면 안 됩니다. 맥이 약하긴 하나 급한 형세는 아닙니다. 차분히 조리하시면 회복될 수 있습니다.”계연수는 그 말을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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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3화

계연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고개를 저었다.“안 힘들어요.”고씨는 눈썹을 낮추며 천천히 말했다.“연수야… 내가 또 너의 짐이 되었구나.”계연수는 어머니의 소매를 쥔 손끝에 힘을 주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어머니는 저에게 짐이었던 적 없어요. 어머니께서 안 계시면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어머니만 제 곁에 계시면, 어디든 제 집이에요.”그 말을 듣는 순간, 고씨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예전, 슬픔을 이기지 못해 딸을 두고 떠나고 싶었던 날들이 떠올랐다.그때의 자신은 얼마나 이기적이었던가.그녀는 몸을 숙여 계연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앞으로는 몸을 잘 돌보고 약도 잘 먹겠다. 이 어미가 너와 함께 금릉으로 가마. 휘안현에 가서 조용히 잘 살아 보자꾸나. 연수야, 어미는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다.”고씨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큰 방과 둘째 방 식구들이 차례로 들렀다 돌아갔다.사람들이 물러난 뒤에야 계연수는 조심스레 물었다.“어머니, 제 이혼 때문에 마음이 상하신 건가요? 무슨 말이든 항상 속으로만 담아 두신 거 압니다. 혹시 휘안현에 가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고씨는 풀어 내린 머리카락을 어깨에 흘러내린 채 큰 베개에 기대 앉아 있었다. 얼굴빛은 창백했지만 여전히 고운 기색은 가시지 않았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빛 아래에서 딸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아니다. 나는 오래전에 마음을 정리했다. 네가 이혼하는 걸 바라지 않았던 건, 네가 의지할 세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사가에 있으면 적어도 널 지켜 줄 테니 평탄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으리라 여겼지. 헌데 너는 그 집에서 행복하지 못했고 사옥현은 첩까지 들였다. 그 집을 나설 때 네가 가져온 건 하나도 없었어. 그들은 너를 지켜 줄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업신여긴 것이다. 그 집에 남았어도 네 삶은 쉽지 않았을 거야. 내가 어찌 너를 불 속에 그대로 두겠느냐?”계연수는 잠시 멍해졌다. 그녀는 어머니의 마음에 쌓인 근심은 모두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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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4화

계연수는 지친 기색으로 바깥방 의자에 앉았다. 발치의 화로 위에 손끝을 내밀어 잠시 온기를 쬔 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편지를 펼쳤다.편지는 명 점주가 보낸 것이었다. 끝까지 읽어 내려가던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그러자 용춘이 곁에서 낮게 물었다.“범인을 잡았다는 건가요?”계연수는 몸을 살짝 기울여 의자 팔걸이에 턱을 괴었다.병마사의 사람들이 그녀의 가게에 오물을 퍼부은 두 사람을 붙잡긴 했다. 같은 거리에서 어슬렁거리던 건달들이었다. 그들은 단지 길을 지나가다 가게 앞 돌에 발이 걸려 화가 나 그랬다고 둘러댔다.병마사는 형식적으로 처벌을 내렸다. 각각 장형 오십 대를 때린 뒤 사건을 종결했다. 애초에 가진 돈도 없는 자들이라 매를 맞고 나서는 가게 청소를 돕게 한 것으로 처벌을 대신했다.그러나 이 일이 그렇게 단순할 리 없었다.병마사의 사람들은 그저 사건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 했다. 조금만 더 추궁했더라면 배후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아냈을 터였다. 아니면 알고도 뇌물을 받고 눈감았을지도 모른다.계연수는 눈을 감고 이마를 짚었다.이대로 참고 넘겨야 하는 걸까? 뒤에서 노골적으로 자신을 노린 자를 이렇게 놓아주어도 되는 걸까?한 번 눈 감으면 두 번째, 세 번째가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가게는 끝내 장사를 이어가기 힘들어질 것이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아 종이를 펼치고 붓을 들었다. 결과가 어떻든, 해 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었다.편지를 써 사람을 시켜 보낸 뒤, 그날 밤 다시 명 점주의 답장이 도착했다.그때 계연수는 어머니가 약을 다 드시는 걸 지켜보고 돌아온 참이었다. 나한탑 위에 그림 도구를 펼쳐 놓았으나 아직 붓을 들지는 못한 상태였다.명 점주의 편지를 읽고 나서야 그녀의 추측은 더욱 굳어졌다.계연수는 가게의 장인에게 두 건달을 미행하게 했다. 평소 술값도 외상으로 마시던 자들이었는데 요즘은 밀린 빚을 모조리 갚고 친구들을 불러 술상을 벌이고 있었다.편지를 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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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5화

이튿날 이른 아침, 계연수는 가게에 한 번 다녀올 생각이었다.어제 명 점주가 보낸 편지에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냄새만 사라지면 더는 문제 삼지 않겠다고 했지만 몇몇은 여전히 불만을 품고 은자를 배상하라 요구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가게의 은자는 이미 계연수가 떠날 준비를 하며 거의 정산해 둔 터라 남은 돈이 많지 않았다. 이번에 직접 가서 일을 마무리하고 얼마를 더 내야 이 일을 완전히 끝낼 수 있을지 정하려는 참이었다.그녀는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외조모께 문안을 드리러 갔다가 뜻밖에도 고준안을 마주쳤다.계연수가 들어서자 고준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고모께서는 좀 나아지셨느냐?”그의 움직임에 방 안의 시선이 잠시 모였지만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고씨의 몸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보였기 때문이다.둘째 부인 유씨는 웃으며 한마디 덧붙였다.“준안은 어릴 적부터 고모 댁과 각별했지. 이번에 고모가 편찮으시니 더 마음이 쓰일 수밖에.”유씨 옆에 앉아 있던 장씨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고준안은 계연수에게 두 걸음쯤 떨어진 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줄곧 그녀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그 눈빛에는 걱정이 넘쳤고 동시에 장씨조차 읽어내지 못할 어떤 감정이 엿보였다.요즘 들어 아들은 그녀조차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예전의 그는 더 나은 앞날을 위해 관직과 출세를 무엇보다 중히 여겼다. 국자감에서 늦게까지 남는 일이 잦았고 상관을 따라 연회에 참석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스스로도 알았다. 국자감에만 머물러서는 큰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에 육부(六部)에서 선발해 수학할 기회를 얻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도 장씨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중요한 시기에 이틀 연속 휴가를 내다니.고준안이 얼마나 앞날을 중히 여기는지 장씨는 누구보다 잘 안다.그녀는 아들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지만 여러 사람의 시선 속에서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 속이 타들어 갔다.계연수 역시 고준안이 이렇게 여러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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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6화

고준안의 가슴이 문득 가볍게 뛰었다. 그는 스스로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뒤를 따랐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녀가 걸어 나가는 걸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아침 일찍부터 이곳에서 기다린 것도, 결국 그녀를 한 번 보기 위해서였다. 이제 그녀가 떠났으니 영안당에 더 머물 이유도 없었다.장씨는 아들이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잠시 멍해졌다.그때, 곁에 있던 유씨가 물었다.“준안이가 오늘은 이 시간까지 집에 있네요?”장씨의 얼굴이 다시 굳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씨를 한 번 노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갔다.유씨는 뜻밖의 눈초리를 받고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장씨의 등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큰 방이 둘째 방보다 낫고 장씨가 집안 살림을 맡고 있다지만 남편도 없는 처지에 저리 얼굴을 세울 일인가?그녀는 괜히 말 걸 기분마저 사라졌다.한편, 고준안은 계연수를 따라가며 낮게 불렀다.“연수야.”“준안 오라버니, 무슨 일이세요?”고준안은 잠시 목이 메는 듯했다.“나가려는 것이냐?”그녀가 걷고 있던 길은 뒷문으로 향하는 길이었다.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가게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 다녀오려 합니다.”고준안은 망설이다 말했다.“내가 함께 가도 되겠느냐?”계연수는 옅게 웃었다.“괜찮아요. 혼자 다녀올게요.”며칠 전 가게에서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외조모나 어머니께도 꺼내지 않았다. 집안에 이미 일이 많았기에 또 하나의 근심을 얹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게다가 이 일이 제대로 해결될지조차 알 수 없었다. 괜히 주변 사람들까지 마음 쓰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준안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선이 있었다. 공손하고도 거리를 둔 눈빛에 그의 목이 잠긴 듯했다.고준안은 억지로 붙잡지 않고 한 걸음 물러나며 웃었다.“그래. 조심히 다녀오거라.”계연수는 그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아쉬움을 보았다. 그래도 이해해 주는 표정이 얼굴에 떠 있었다.고준안은 늘 그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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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7화

심정우는 막 병부에서 나오는 길이었다. 친한 벗 몇과 함께 남성 주루에 들러 술을 한 잔 하고 오후에는 다시 군영으로 돌아갈 참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계연수를 마주쳤다.계연수는 휘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멀리서 보아도 다르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저 한 번 스친 시선만으로도 눈길이 붙잡혔다. 몇 걸음 더 다가가 자세히 보자 그 익숙함이 분명해졌다.요 며칠, 밤낮으로 떠올리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사실 예전에는 그런 마음이 없었다. 어릴 적의 계연수는 그저 하얀 찹쌀떡 같은 아이라 귀엽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를 다시 본 뒤, 또 심씨 부인에게서 그녀가 이혼했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는 이상하게 마음이 간질거렸다.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 하나를 던진 것처럼, 작은 파문이 멀리까지 번져 나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느낌이었다.밤에 눈을 감고도 한 번 떠올리고 훈련 중에도 문득 생각이 났다. 친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스치듯 떠오르곤 했다.길게, 깊게 상상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머릿속에 그녀의 얼굴이 스며들었고 어머니의 말이 겹쳐 떠올랐다.어릴 적 자신이 괴롭히던 계연수가 이혼했고 이제 곁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 일었다.방금 전에도 동료가 새로 들인 첩 이야기를 하며 허리가 버들가지처럼 가늘고 아름답다 자랑하던 참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의 머릿속에는 계연수의 모습이 떠올랐다.‘누가… 내 연수보다 나을 수 있겠어.’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고개를 돌리자 닮은 사람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보니 정말 그녀였다.그는 순간 동료들조차 잊어버렸다. 혹시라도 그들이 그녀를 볼까 봐 일부러 재촉해 주루 안으로 밀어 넣고는 자신은 재빨리 그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어린 시절의 장난스러운 기억이 밀려왔다. 그녀를 놀리던 장면이 떠오르자 가슴끝이 달아올랐다. 당장이라도 눈앞까지 다가가고 싶었다.계연수는 심정우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걸 보자 반사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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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8화

그가 문득 웃었다. 준수하면서도 어딘가 거친 기운이 서린 얼굴, 길들지 않은 야성이 묻어났다. 키도 훤칠했고 칼을 찬 허리에는 패옥과 관패가 함께 흔들렸다. 무관의 차림에 관직까지 있는 몸이니 거리 한복판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었다.계연수는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저를 왜 부르셨습니까?”심정우는 낮게 웃음을 흘렸다.사실 그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저, 부르고 싶었을 뿐이었다.계연수는 유난히 왜소한 체구라 말을 건네려면 자연스레 허리를 조금 굽혀야 했다. 예전에는 여자 앞에서 몸을 낮추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이상하게도 기꺼웠다.그는 얇은 비단 너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나를 기억하느냐?”기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씨 부인의 막내 적차자이자 심부의 셋째 도련님.그러나 계연수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습니다.”그 말에 심정우는 오히려 속이 후련해졌다. 어릴 적 저질렀던 철없는 짓을, 아마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얼른 자신을 소개하더니 덧붙였다.“나는 너보다 한 살 위다. 아직 장가도 들지 않았지.”말이 튀어나온 뒤에야 스스로도 놀랐다. 왜 하필 그 말을 꺼낸 걸까?하지만 곧 생각했다. 사실이니 못 할 말도 아니지 않은가. 어머니가 혼처를 고르는 중이긴 하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없었다.계연수는 그를 한 번 바라보았다. 뜬금없이 덧붙인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병마사 일로 마음이 복잡한 그녀는 건성으로 짧게 응해주었다.심정우의 속은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그녀는 아직 혼인이 없고 자신도 아직 미혼이었다. 그렇다면 가까이 다가가 말을 섞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굳이 숨길 일도, 뒤로 돌릴 일도 아니었다.그는 다시 급히 말을 꺼냈다.“며칠 뒤 우리 집 규수들이 시회를 열기로 했다. 어머니께서 고씨 댁 아가씨들을 초대하겠다고 하셨지. 지금 고씨 댁에 머문다 들었는데… 올 생각은 없느냐?”계연수는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이 흘렀다.심가에서 고씨 집안 규수를 부른다면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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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9화

계연수 곁에 서 있던 명 점주는 갑자기 들려온 남자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옆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위아래를 훑어보자 단번에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풍채가 훤칠하고 용모 또한 빼어났다. 몸짓 하나에도 자연스러운 귀기가 배어 있었다. 무관 관복에 허리의 패도까지, 분명 관가 사람임이 틀림없었다.명 점주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병마사 사람이요.”심정우는 병마사라는 말을 듣자마자 자초지종을 물었다.계연수는 본래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 가까운 사이도 아니니 괜히 빚을 지고 싶지도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명 점주는 이미 분을 참지 못하고 모든 일을 쏟아내고 말았다.이야기를 다 들은 심정우가 물었다.“배후에 다른 사람이 있다고 확신하느냐?”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일만큼은 확신이 있었다.그러자 심정우가 옅게 웃었다.“병마사에 다시 찾아가 소란을 피워도 소용없다. 지휘사를 찾아가도 마찬가지다. 아전들이 뇌물을 받았는지는 모르겠다만, 범인은 이미 잡았고 형벌도 내렸다. 그들로선 사건을 종결할 명분이 충분하다. 너희 뒤에는 든든한 배경도 없지 않느냐? 병마사도 바쁘다. 다시는 이 일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계연수는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관가에서 길이 막히면 다른 방법을 쓰겠다고 이미 마음먹은 터였다.그때 심정우가 다시 웃으며 덧붙였다.“다만, 이 일은 그리 큰일도 아니다. 병마사 상관은 순성어사 최무다. 그 자는 우리 오숙부 관할이지. 내가 돌아가 오숙부께 한마디만 하면 된다. 오숙부 말 한마디면 병마사 사람들이 다시 와서 직접 조사할 것이다.”계연수는 그가 말한 ‘오숙부’가 심서준임을 모를 리 없었다.궁궐에서 마주쳤을 때, 심서준의 냉담한 태도가 떠올랐다. 몇 마디 나누지도 않고 먼저 자리를 뜨던 모습. 이미 자신을 번거롭게 여기는 듯했다.사가에서 이혼을 결심한 뒤로도 여러 번 그를 번거롭게 했었다. 이런 사소한 일로 또다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사람을 써서 그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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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0화

심정우는 계연수 앞을 가로막듯 서더니 급히 한마디를 남겼다.“걱정 말거라. 이 일은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다.”그 말을 끝으로 그는 몸을 돌려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계연수는 그가 푸른 옷을 입은 사내의 어깨를 붙들고 인근 주루로 올라가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명 점주에게 당부했다.“당분간은 평소처럼 장사를 이어가거라. 배상할 그림은 하나씩 직접 찾아가 전해 드리고 태도도 더욱 공손히 하면 된다.”명 점주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혹시 그 건달들이 또 찾아오면 어찌합니까?”계연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금 심정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어쩌면 그가 한마디 건네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심서준의 말 한마디면 웬만한 일은 해결될 테니. 그녀는 그저 공정함을 바랄 뿐이었다.*한편, 심정우는 주루에 올랐으나 끝내 창가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사람들 속에서 더는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가슴이 허전해졌다.방금 그 일을 선뜻 맡겠다고 나선 것도 사실은 다시 만날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몇 해 만의 재회였는데 휘모자에 가려 제대로 얼굴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어릴 적 그녀를 괴롭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마음 한구석이 괜히 쓰렸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 감정은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오후엔 군영으로 가야 했지만 술상도 이제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오숙부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심서준은 평소 도찰원이나 궁중, 혹은 형부나 대리시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연회나 주흥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그는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곁에 있던 진염이 그의 팔을 붙잡았다.“어디 가는 거야? 이제 막 곡기 좋은 기녀들을 불러놓았는데 벌써 가겠다고? 자리는 아직 따뜻해지지도 않았어.”심정우는 손을 뿌리쳤다.“먼저 즐겨. 나는 급한 일이 있어.”진염이 다시 붙들었다.“오늘은 오전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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