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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주문춘귀: Chapter 311 - Chapter 320

368 Chapters

제311화

후작의 대답에 문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후작이 업무에 몰두하면 그 누구도 감히 방해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는 그대로 나가 심정우에게 전했다.하지만 심정우는 모처럼 붙잡은 기회를 쉽게 놓칠 생각이 없었다.“병마사에서 뇌물을 받고 직무를 소홀히 했다는 말이다. 오숙부께서는 그런 일을 가장 못 견디시지 않느냐? 분명 그냥 넘기지 않으실 것이다.”문하는 얼굴을 굳히며 물었다.“증거가 있습니까?”“물론이지.”심정우는 곧 덧붙였다.“계 아가씨의 일이다. 오숙부께서 예전에 아시던 분 아니냐? 가게에 일이 생겼다.”그 말을 듣는 순간, 문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더 묻지도 않고 급히 돌아서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후작이 방해받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에 숨을 죽인 채 방금 들은 말을 빠르게 전했다.예상대로, 말을 마치자마자 심서준의 손이 멈췄다.문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잠시 뒤, 낮고 가라앉은 음성이 흘러나왔다.“들여보내라.”문하는 알고 있었다. 계연수의 일이라면 후작이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낸다는 것을.그는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심정우가 들어섰을 때, 심서준은 여전히 서류가 산처럼 쌓인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그 위엄 있는 모습에 심정우의 마음이 절로 움츠러들었다.심서준은 태생부터 기품이 서린 인물이었다. 늘 엄정하고 냉정한 얼굴, 바깥에서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으며 좀처럼 웃는 법도 없었다. 집안의 동배나 후배들과도 가깝게 지낸 적이 드물었고 늘 일정한 거리를 두며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를 풍겼다.심정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숙부는 또래 중에서도 연배가 높았으니 자신들 같은 후배들에겐 엄연한 어른이었다. 그러니 친밀해지기 어려운 게 당연했다.게다가 성정이 냉담하니 집안 아이들조차 그를 두려워했다. 평소 제멋대로 구는 심정우조차 이 서재에만 서면 자세를 바로잡고 장난기 하나 없이 단정히 서서 예를 갖춰야 했다.“오숙부.”심서준은 앞에 선 심정우를 한 번 바라보더니 무심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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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심서준은 심정우가 내민 소장을 한 번 내려다보았다. 손에 쥐고 있던 붓을 내려놓고 조용히 그것을 받아 들었다.종이 위의 필체는 단정하고 수려했다. 논리는 조목조목 정연했고 의심되는 대목과 정황, 추측까지도 빠짐없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이처럼 정리된 소장을 병마사가 받았다면 의혹이 합리적인 이상 마땅히 다시 조사에 착수했어야 했다. 이번 일은 분명 병마사의 직무 태만이었다.심서준은 소장을 책상 위에 내려두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그녀가 네게 말했느냐?”심정우는 뜻밖의 질문에 잠시 놀랐다. 하지만 곧 단정히 대답했다.“오늘 길에서 계 아가씨를 우연히 만나 직접 들었습니다.”그리고 일부러 말을 덧붙였다.“계 아가씨께서 눈물을 머금고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병마사가 지나치게 억지를 부린다며, 배후에 악의를 품은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도와달라고 했지요. 오숙부, 이 일은 그냥 넘길 수 없습니다.”그는 일부러 사안을 더 크게 부풀렸고 계연수의 반응도 과장해 말했다. 그래야 당당히 부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자 마주한 것은 음침하게 가라앉은 얼굴이었다.그 표정에 심정우는 흠칫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더 서늘해졌는지 알 수 없었다.그래도 이 일만큼은 해결하고 싶었다.그는 조심스레 물었다.“오숙부… 도와주시겠습니까?”만약 거절당하면 스스로 사람을 풀어 두 건달을 붙잡을 생각까지 했다.심서준은 한 번 그를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그래.”그 한마디면 충분했다.심정우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깊이 허리를 숙여 예를 올렸다.돌아서려는 순간, 심서준이 다시 그를 불렀다.고개를 들자 심서준은 이미 다시 문서로 시선을 내린 채였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무심히 흘러나왔다.“언제부터 그녀와 교류가 있었지?”심정우는 잠시 머리가 하얘졌다. 그가 말한 사람이 계연수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오숙부가 이런 일까지 묻는 것이 의외였지만 그래도 대답은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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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그녀가 한마디만 했다면 그는 도왔을 것이다.아니면 자신이 건넨 그림 때문에 지금껏 그녀가 줄곧 자신을 피하고 있었던 걸까?마음을 드러낸 그날 이후로 그녀는 한 발 물러서 있었다.심서준의 머릿속에 스친 장면은 계연수가 눈물 맺힌 얼굴로 심정우에게 도움을 청하던 모습이었다. 그 부드러운 눈빛을 보고서 누가 마음을 접을 수 있단 말인가?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답답함. 늘 감정을 절제하던 그였지만 손에 닿는 대로 청화 다기를 쓸어 바닥에 떨어뜨렸다.문턱을 막 넘어서던 문하는 안에서 들려온 소리에 거의 넘어질 뻔했다. 혼이라도 날아갈 듯 허둥지둥 달려 나가며 부디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를 빌 뿐이었다.한편, 계연수는 가게에 남아 명 점주와 배상해야 할 금액을 정리했다.그림은 여덟 폭, 합쳐 백여 냥이 넘었다.숫자를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욱신거렸다.그래도 심서준이 주었던 귀걸이를 전당 잡혀 둔 덕에 손에 여유가 생긴 것이 다행이었다.하지만 손해는 여기서 끝낼 수 없었다.계연수는 명 점주에게 손실 내역을 따로 정리하라 했다. 심정우가 나서 준다 했으니 만약 심서준이 병마사에 한마디라도 한다면 이 일은 결코 흐지부지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결국 관청에서 대질하게 될 터. 그녀의 손해 역시 마땅히 보상받아야 했다.심서준이 병마사에 경고를 보낸다면 적어도 정의는 바로 설 것이라 믿고 싶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조금은 놓였다.명 점주는 다시 병마사로 가야 했다. 이에 계연수는 세세한 부분까지 다시 짚어 주었다.그들이 술집에서 외상으로 마신 내역, 언제 빚을 갚았는지, 최근에 새로 장만한 물건은 무엇인지, 전에는 살 수 없던 것들을 언제부터 사기 시작했는지까지.이틀 동안 사람을 붙여 뒤쫓게 했던 터라 명 점주는 상황을 훤히 알고 있었다.그는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아가씨, 걱정 마십시오. 이번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압니다.”명 점주는 외조모가 붙여 준 관사라 가게가 자리 잡기까지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었다.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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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고씨는 계연수의 말을 듣고 눈가가 촉촉해졌다.그녀는 그 말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머니만 있다면 어디든 자신의 집이라고.하지만 오늘 오전, 반쯤 잠들었다가 반쯤 깨어 있던 사이에 곁에서 시중들던 어린 계집종 둘의 속삭임을 들었다.이 몸으로는 평생 나을 수 없다고. 약으로 겨우 숨만 붙들고 사는 꼴이라 딸 인생까지 붙잡아 맬 거라고. 딸은 다시는 재가도 못 하고 평생 궁핍하게 살게 될 거라고.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자신이 죽어 버리면 딸도 더는 자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자신이 먹는 약값이 결코 싸지 않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 누군들 부담스럽지 않겠는가?계연수가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건 알았다. 그러나 딸을 짐으로 묶어 두고 싶지 않았다.차라리 자신이 먼저 떠난다면 딸은 미련 없이 다시 한 번 인연을 맺을 수 있지 않을까?그 생각을 오전 내내 곱씹으며 약도 핑계를 대고 미뤘다.고씨는 다시 딸을 바라보았다. 걱정이 어린 눈길로 딸의 낡은 옷자락을 훑었다. 연한 치마 끝에 먼지가 조금 묻어 있었다. 머리 위에 꽂힌 은비녀는 소박하고 가늘었지만 어릴 적부터 가르쳐 온 자세만은 그대로였다. 등은 곧았고 딸은 자신 앞에서 한 번도 무너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그녀는 더 말해 딸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그릇을 받아 들고 삼키기 힘든 걸 알면서도 비둘기탕을 끝까지 비워 냈다.어머니가 낮잠에 들자 계연수는 홀로 식사를 하러 나갔다. 상 위에는 두 가지 반찬과 한 그릇의 국이 놓여 있었다.예전 사옥현의 집에서 먹던 음식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지나치게 소박했다.고씨 집안이 넉넉하진 않다 해도 이 정도로 검소할 형편은 아니었다. 푸성귀 두 접시와 맑기만 한 무국이라니. 며칠 전만 해도 이정도까지는 아니었다.계연수는 이미 마음속으로 다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용춘은 참지 못했다. 음식을 들고 온 어멈을 불러 세웠다.그 어멈는 큰 부인 쪽에서 보내온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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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를 겨우 달래 두었다. 앞으로는 굳세게 버텨 보겠노라 다짐하던 사람이 어째서 다시 그런 체념 어린 말을 꺼냈을까?이 뜰 안에서 춘화만이 어머니 곁의 사람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큰 외숙모가 붙여 보낸 이들이었다계연수의 마음속에 어렴풋한 짐작이 스쳤다.춘화는 묻는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아가씨께서 나가신 뒤, 저는 부엌에 가서 비둘기탕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부엌 사람들은 약한 사람에겐 강하게 굴지 않습니까? 아가씨께서 은자를 주셨다고 하지만 재료를 바꿔치기하거나 슬쩍 빼돌릴까 염려됐습니다. 가끔씩 약재를 덜 넣는 일도 있고요. 그때 고씨 부인께선 주무시고 계셔서 방 안의 어린 계집아이 둘에게 잠시 곁을 지키라 명하고 저는 감시하고 있었어요. 탕이 잘 끓고 약도 제대로 달여지는 걸 확인한 뒤 다시 들어가 보니 부인께서는 이미 깨어 있더라고요. 헌데…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고개를 숙인 채 눈물만 흘리고 계셨어요.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후엔 울음을 그치셨지만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시고 아무것도 드시지 않았습니다.”그 말을 들은 계연수의 마음은 이미 결론에 가까워졌다.그녀는 춘화에게 그 두 아이를 불러오라 했다.잠시 후, 열세댓쯤 되어 보이는 소녀 둘이 들어왔다. 자세는 흐트러져 있었고 주인 앞에서도 긴장한 기색이 없었다.혜란원의 규율은 원래 느슨했다. 어머니는 병약해 집안일을 살필 형편이 아니었고 춘화 역시 큰 외숙모가 붙여 보낸 사람들을 마음대로 다루기 어려웠다.이곳은 고씨 집안이라 큰 부인이 살림을 맡고 있었다. 춘화 또한 종에 불과했다. 혹여 엄하게 굴었다가 그들이 큰 부인에게 달려가 고해 바치면 되레 화를 입을 게 뻔했다.두 소녀는 계연수를 마주하고도 두려워하지 않았다.하나는 병약한 여인, 하나는 막 이혼한 여인. 앞날이 꽉 막힌 사람들 아닌가?게다가 병자를 시중드는 일은 고되고 상금도 변변치 않았다. 그들은 원래 둘째 도련님의 방에서 일하던 아이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어찌 병약한 여인을 모시는 걸 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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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계연수의 입가에 다시 한 번 서늘한 웃음이 스쳤다.“너희의 신분 문서는 내 손에 없지만 큰 외숙모께서 이곳으로 보내셨다면 이 뜰에서의 처분은 내가 한다.”그녀는 곧바로 용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관사를 불러오너라. 오늘 이 두 아이는 언행이 방자하고 주인을 모욕하며 저주까지 했다.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묻겠다.”용춘은 두 아이를 한 번 쏘아본 뒤 속이 시원하다는 듯 급히 나갔다.그제야 소녀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분명, 그들은 그 말을 했다. 부인이 어서 죽어야 자신들도 다시 이방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저주 섞인 말을 내뱉었다.그 말이 크게 번지면 매질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아마 바깥에 있던 춘화가 듣고 고해한 것이리라.두 아이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매달렸다.계연수는 그들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자신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그녀의 시선은 더욱 차가워졌다.“방 안에서 또 무슨 말을 했느냐? 하나도 빠짐없이 말하거라. 윗사람을 속이고 아래를 감추는 종은 이 집에 둘 수 없다. 거짓을 입에 담는다면 외조모와 큰 외숙모께 직접 아뢰어 너희를 팔아버리게 하겠다.”그 한마디에 소녀들은 완전히 무너졌다.거짓말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던 일을 죄다 쏟아냈다. 평소엔 온화하던 아가씨가 지금은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계연수는 무릎 꿇은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마지막까지 듣고 나자 가슴이 서늘해졌다.어머니가 왜 갑자기 마음이 흔들렸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그런 말을 들었으니 누군들 견딜 수 있었겠는가?어머니는 끝내 이 일을 꺼내지도, 아이들을 꾸짖지도 않았다. 그러나 계연수는 더는 묵과할 수 없었다.이런 말이 날마다 귀에 스며든다면, 본래도 마음이 여린 분이 또다시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더구나 어머니의 병은 오랜 근심이 쌓여 생긴 것이었다. 그 때문에라도 이 일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다.잠시 뒤 관사가 도착했다. 상황을 듣고는 기가 막힌 듯 숨을 들이켰다.아무리 그래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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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용춘은 잔뜩 들뜬 얼굴로 약 꾸러미를 안고 들어왔다. 실로 단단히 묶인 약봉지를 계연수 앞에 내밀며 말했다.“아가씨, 보세요. 무려 서른 첩이나 됩니다!”계연수는 몸을 바로 세우며 물었다.“누가 보냈느냐?”용춘이 환하게 웃었다.“그저께 오셨던 진 태의입니다. 고씨 집안에서 도와준 것이 있다며 감사의 뜻으로 약을 보내셨답니다.”그러고는 손가락으로 계산까지 해 보였다.“지난번 처방대로 약을 지으니 인삼편에 서각, 두충까지… 한 첩에 은자 두 냥이 훌쩍 넘습니다. 하루 두 번이면 하루에 일곱 냥, 한 달이면 이백 냥이 넘어요. 그런 돈을 어떻게 감당합니까? 이제 서른 첩이면 보름 치예요. 이건 정말 큰 복이지요.”계연수는 약봉지를 바라보았다.진 태의가 써 준 처방이 얼마나 귀한 약재로 이루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엄두도 못 낼 값이었다. 그래도 그날은 이를 악물고 그 처방을 따랐다.한 첩이 이토록 비싼데 서른 첩이면 이미 백 냥이 훌쩍 넘는다.진 태의가 와서 진료해 준 것만으로도 은혜였다. 이 약을 공짜로 받을 수는 없었다. 반드시 값을 돌려주어야 했다.다만 그의 거처를 몰라 당장 갚을 길이 없었다.“일단 잘 보관해 두자.”용춘은 기쁘게 대답하고 물러났다.*다음 날 아침, 계연수는 명 점주의 편지를 받았다.편지에는 전날 오후 병마사에서 불러갔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남성 병마사 지휘사가 직접 사건을 다시 심리했고 두 건달도 다시 잡아들여 문초했다고 한다.형문 아래에서 그들은 곧 입을 열었다.배후에는 한 여인이 있었고 사가 사람이라는 것만 알 뿐,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얼굴은 베일로 가려져 있었고 큰돈을 건네며 정체를 숨겼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 역시 일이 탈이 날 것을 염려해 몰래 그 여인을 뒤쫓았다 한다. 여인이 사가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했다는 것이다.‘원한은 원한에게 돌아가야지, 괜히 우리만 잡혀서는 안된다’는 계산이었다.계연수는 ‘사가’라는 두 글자를 읽는 순간, 배후가 누구인지 짐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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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이명유가 병마사에 잡혀 들어갔다.배후가 이명유라는 사실에 계연수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도찰원의 처리 속도에 감탄이 일었다.병마사 앞에 도착했을 때, 계연수는 마차 안에 앉은 채 살며시 휘장을 들었다.그 한 번의 시선으로 충분했다.이명유는 양옆의 계집종들에게 거의 끌리다시피 하여 병마사 문을 나서고 있었다. 옷자락에는 핏자국이 번져 있었고 얼굴은 종이처럼 창백했다. 두 다리에 힘이 풀려 종들이 부축하지 않으면 한 발짝도 떼지 못할 듯했다.형벌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그 곁에는 사옥현이 서 있었으나 그는 이명유를 부축하지 않았다. 시선은 허공에 떠 있었고 몸은 어딘가 휘청거렸다. 무슨 생각에 잠긴 건지 알 수 없었다.계연수가 이곳에 온 건 이명유의 몰락을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병마사 차역이 전갈을 보내와 한 번 들르라 했기 때문이다.사실 이 일은 전적으로 명 점주가 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왜 굳이 자신을 부른 건지 계연수도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가게의 주인이 여전히 그녀이기 때문일 터였다.그녀는 두 사람을 더 보지 않았다.이명유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가를 치러야 했다. 더는 사옥현의 보호 아래 무사할 수 없었다.집 안에서는 사옥현이 그녀를 감쌀 수 있었을지 몰라도 담장 밖 세상은 달랐다. 경성에는 사가보다 더한 권세도 많았으니까.이명유는 너무 순탄하게 살아왔으니 모든 일이 늘 제 뜻대로 흘러갈 거라 여겼을 것이다.휘장을 내리려는 순간, 사옥현이 그녀를 발견했다.그는 갑자기 이쪽으로 달려왔다.계연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용춘에게 내리라 했다.“막거라.”용춘이 급히 내려섰으나 사옥현의 힘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밀려났고 작은 창가의 휘장이 거칠게 젖혀졌다.핏발 선 눈이 드러났다.밖에서 용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용춘아, 괜찮다. 여긴 병마사 앞이야. 그가 감히 무슨 짓을 하겠느냐?”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사옥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그 눈빛에는 동요도, 남은 정도 없었다.용춘은 그제야 숨을 고르며 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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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계연수의 비웃음 어린 눈빛을 마주한 사옥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 시선에 속까지 들여다보인 듯한 수치가 솟구쳐 온몸이 굳어버렸다.이명유에게 말해준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녀가 그런 짓을 벌일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막지 않았다. 오히려 계연수가 무너져 돌아오기를, 자신에게 매달리기를 은근히 기다렸다.계연수에게 남은 유일한 의지처였던 가게가 망가진다면, 마지막 버팀목마저 사라진다면, 그녀는 결국 그의 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야만 예전처럼 안정되고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그러나 계연수는 단 한번도 그를 찾지 않았다.그녀 앞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비열한지 뼈저리게 자각했다. 그리고 그 비열함을 들킨 채 서 있다는 모욕감이 목을 조였다.비겁하다는 그 한 마디가 그녀 앞에서 지켜온 냉정함과 단정함을 산산이 부수어 놓았다.그는 늘 그녀가 자신을 좇고 우러러볼 것이라 생각했다.한때 그녀가 보내던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경외와 존중, 부인이 남편을 향해 품는 조심스러운 애정.그런데 이제 그녀는 그를 비겁하다 했다.벗겨진 채 서 있는 사람처럼 초라한 변명이 튀어나왔다.“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명유가 그런 일을 할 줄은 몰랐다.”계연수는 말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 눈빛을 견디지 못한 사옥현의 몸이 휘청였다.“너는 변했다.”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변했지요.”담담한 목소리였다.“마침내 사씨 가문과 당신을 떠났으니까요. 예전에는 좋은 부인이 되기 위해 애썼습니다. 헌데 당신은 그럴 가치가 없어요. 이제 저는 제 자신으로 살겠습니다. 앞으로는 사 대인과 아무런 연도 없기를 바랍니다. 오늘처럼 무례하게 다가오지 마십시오. 마주치더라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가면 됩니다.”사옥현의 눈에 핏발이 더욱 선명해졌다.“그렇게까지 나를 원망하느냐?”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니 제 앞에 다시 나타나지 마십시오.”잠시 숨을 고른 뒤, 또박또박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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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계연수는 마치 잘못을 저지르다 들킨 사람처럼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당황한 나머지 급히 휘장을 놓았다.천이 내려오며 바깥의 횃불빛을 가렸다. 어둑한 마차 안에서 그녀는 자수 손수건을 가슴께에 꼭 쥐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가라앉을 것만 같았다.그러나 다음 순간, 휘장이 다시 들렸다.심서준이 허리를 굽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깊은 한담 같은 검은 눈동자가 조용히 그녀를 향했다. 그 눈빛은 고요했지만 뒤편의 불빛마저 서늘하게 물들일 만큼 차가웠다.이전과는 어딘가 달랐다. 그러나 무엇이 다른지 계연수는 알 수 없었다.그녀가 자리에 손을 짚고 입을 열려는 찰나, 휘장은 다시 스르르 내려왔다.마치 그가 단지 그녀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한 번 들여다본 것처럼.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계연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잠시 뒤, 밖에서 문하의 목소리가 들렸다.“아가씨, 나으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시지요.”그녀는 몸을 기울여 앞쪽 휘장을 들었다. 마차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사옥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행방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계연수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심서준의 뒷모습을 좇았다.그는 밤빛과 하나가 된 듯했다. 온몸에 서린 냉기가 쉽게 다가갈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었다.그 모습이 점점 멀어졌다.문하는 그녀 곁에서 기다리다 그녀가 후작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어서 따라가시지요.”계연수는 흰 베일을 여미고 심서준의 뒤를 따랐다. 맨 뒤에서 걷던 문하는 계연수가 가까이 다가오자 후작의 걸음이 미묘하게 느려진 것을 보고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그리고 재빨리 따라붙으려는 용춘을 붙들며 얼굴을 굳혔다.“어디를 따라가려는 겁니까?”용춘이 눈을 크게 떴다.“저는 늘 아가씨 곁을 지켰습니다. 헌데 왜 못 들어갑니까?”문하는 차갑게 말했다.“우리 나으리께서 사건의 공무를 논하실 겁니다. 게다가 병마사는 중한 곳이니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게 아니지요.”용춘은 그 말에 움찔했다.병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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