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이 방에는 심서준의 명이 없으면 시녀들도 함부로 발을 들이지 못했다.심서준은 그대로 그녀를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두 사람이 서로의 몸을 본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심서준의 심기가 분명 좋지 않아 보였다.그는 욕조 가장자리에 기대 앉아 있는 계연수를 바라보았다.조금 전의 나른함이 사라진 목소리에는 서늘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그렇게까지 나와 가까워지는 게 싫은 것이냐?”계연수는 잠시 멈칫했다.그의 말 속에 담긴 불쾌함을 알아차리고는 작게 대답했다.“아니에요.”심서준의 입가에는 옅은 비웃음이 걸렸다.그는 계연수를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계연수가 몸을 물속으로 더 깊이 숨기려는 모습을 바라보며, 심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나직이 말했다.“혼인도 했으니 넌 이미 내 사람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게 매달려 있었으면서 이제 와서는 내가 보는 것도 싫은 것이냐?”계연수는 놀란 듯 고개를 들어 심서준을 바라보았다.가늘게 접힌 그의 눈은 깊고도 어두웠다.그 시선을 마주하자 가슴이 괜히 조여 왔다.그녀는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 무어라 답하지 못했다.심서준은 젖은 손으로 다시 그녀의 뺨을 쓸어내렸다.그 얼굴에는 거절을 허락하지 않는 강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것이냐?”그는 다시 몸을 숙여 계연수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사적인 자리에서는 날 부군이라 부르라고 하지 않았더냐. 방금 전 침상에서 했던 말도 벌써 잊은 것이냐?”주변은 하얀 수증기로 가득했다. 그 속에서 심서준의 눈빛은 위험할 만큼 날카로웠다.그의 존재감은 너무도 강했다. 마치 빈틈없이 스며들 듯 계연수의 모든 영역을 파고들었는데, 계연수로서는 도저히 그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감정조차 그의 손아귀 안에 놓인 듯했다.반박하고 싶어도 심서준이 주는 압박감 앞에서는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턱을 붙들린 채 다시 고개를 들게 된 계연수는 순순히 그의 깊고도 다정한 입맞춤을 받아들였다.계연수는 오늘만큼은 심서준이 밖에 나가지 않을 줄 알았다
계연수는 심서준의 질문에 순간 숨이 턱 막혔다.그런 걸 어찌 자신에게 묻는단 말인가.계연수는 고개를 돌린 채 못 들은 척하려 했지만, 심서준은 그녀의 턱을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결국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시간이 늦어지면 문안드리는 데 지장이 생길까 봐요.”심서준은 점점 붉게 물드는 계연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옅고 담담하던 눈빛에도 어느새 짙은 기색이 스며들었다. 그의 손은 이미 계연수의 옷자락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어젯밤에 이미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오늘 아침에는 문안을 가지 않는다고.”계연수는 심서준이 미리 그런 이야기까지 해 두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시선을 돌렸지만 굳이 피하지는 않았다.생각해 보면 두 사람은 이미 여러 날 가까이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녀는 심서준을 한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두 팔을 들어 그의 목을 감쌌다.심서준은 붉어진 얼굴의 계연수를 내려다보며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그러자 손길도 한층 더 거침없어졌다.그날은 유난히도 길었다.모든 것이 끝났을 때는 이미 정오가 훌쩍 지나 있었다.심서준이 최근 들어 지나치게 바빴던 탓에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했다.하지만 계연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심서준의 품을 그리워하긴 했지만 탐욕스러운 성정은 아니었으니, 적당한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반면, 심서준은 달랐다. 계연수는 그만하면 됐다고 생각했지만, 심서준에게는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이었다.침상 휘장이 걷혔을 때, 계연수는 몸을 일으킬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심서준은 흰 바지를 입은 채 몸을 일으켜 침상 위를 내려다보았다.계연수는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적잖은 불만이 담겨 있는 듯했다.하지만 그 모습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지친 탓인지 젖은 얼굴과 붉어진 눈가, 코끝이 오히려 보는 이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그저 한없이 사랑스럽고 귀여워 보일 뿐이었다.심서준은 그녀가 왜 자신을 노려보는지 알고 있었다.처음에는 분명 그의 품에 안겨
소장군은 아직 홀로 한 진영을 지휘할 만큼 노련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이가 어린 탓이었다. 게다가 그는 때때로 사람을 놀라게 할 만큼 뜻밖의 기지를 보였고, 전장에서는 늠름한 기세로 적을 베어 넘기곤 했다.그러니 결코 답답하거나 재미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어쩌면 예상 밖의 즐거움도 있을지 몰랐다.무엇보다 소장군은 고기 굽는 솜씨가 일품이라 계연수로서는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계연수의 말을 들은 심서준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다만 눈 깊은 곳에 자조가 스쳐 지나갔을 뿐이었다. 그는 더는 묻지 않고 계연수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제 잘까?”계연수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네.”말을 마치자 그녀는 몸을 웅크리며 침상 안쪽으로 물러났다.심서준도 침상에 올랐지만 휘장을 내리지 않았다. 자리에 눕고서도 평소처럼 손을 뻗어 계연수를 품에 끌어안지 않았다.그녀는 갑자기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심서준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그는 원래 차갑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품에 안겨 있으면 온몸의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두 사람 사이에는 조금의 거리가 남아 있었다.늘 먼저 다가와 안아 주던 쪽은 심서준이었다. 계연수도 여인다운 수줍음이 있었기에 그의 품이 그립더라도 꾹 참고 버텼다.하지만 몰래 그를 바라보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심서준은 단정한 자세로 눈을 감고 있었는데, 얼굴은 평소보다 엄한 기색이 옅어 보였고, 눈매도 한결 부드러웠다. 그의 옆모습은 유난히도 보기 좋았다.계연수는 원래 그와 몇 마디 더 나누고 싶었던 터라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주무세요?”심서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한참 뒤에야 낮게 대답이 돌아왔다.“음.”계연수는 얼른 말을 이었다.“최씨 둘째 아가씨께서 후작께 중매를 부탁하고 싶다고 하셨어요.”그녀는 심서준의 안색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생각해 두신 분이 있으신가요?”심서준은 눈꺼풀조차 움직이지 않았
계연수는 서재를 나서다 말고 뒤돌아 심서준의 뒷모습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검은 옷을 걸친 큰 체구는 여전히 차갑고 고요했다. 조금 전 자신을 무릎 위에 앉혀 두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계연수는 심서준과 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도, 여전히 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아직도 자신이 그를 다 읽어 내지 못하는 걸지도 몰랐다.하지만 한 가지는 부정할 수 없었다. 심서준은 좋은 사람이었다.때로는 지나치게 말이 없고 다정함이 서툴 때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는 짊어진 일이 너무 많았고, 자신은 그저 내택에 머무는 부인일 뿐, 심서준처럼 바쁘고 무거운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방 어멈은 계연수가 빈 탕그릇을 들고 나오자 얼른 받아 들며 놀란 듯 작게 말했다.“예전엔 후작께서 보양탕 같은 건 잘 안 드셨는데, 이번엔 드물게 다 드셨네요.”계연수는 조금 전 심서준이 꽤 빨리 탕을 비우길래 좋아하는 줄 알았다.그러다 문득 전에 시어머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게다가 요즘 심서준은 정말 지나칠 정도로 바빴다. 아무리 몸이 좋아도 저렇게 혹사하면 버티기 힘들 터였다.계연수는 조용히 말했다.“앞으로도 계속 후작께 끓여 드리세요.”방 어멈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계연수는 방으로 돌아와 침상 가장자리에 앉았다. 할 일도 딱히 없어 베개 밑에 숨겨 두었던 화본을 다시 꺼내 읽기 시작했고, 용춘과 소곤소곤 이야기 속 내용을 나누었다.그렇게 이야기하던 중,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자 심서준이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용춘은 재빨리 몸을 물렸다.심서준은 침상 위에 엎드려 있던 계연수를 바라보다가 그녀 곁에 앉았다. 그러고는 계연수가 미처 숨기지 못한 화본을 집어 들었다.그는 대충 몇 장 넘겨 보며 몇 줄 읽더니, 눈썹을 살짝 치켜올린 채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계연수의 귓가가 또 붉어졌다. 마치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얌전히 몸을
계연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조정에서 정한 법으로는… 월 이자가 삼 푼을 넘지 못하게 되어 있지 않나요?”심서준은 눈을 내리깔았다.“경성 안의 전장들은 대부분 구오할 방식으로 돈을 빌려 준다. 이를테면 백 냥을 빌린다 해도 실제 손에 쥐는 건 구십오 냥뿐이고, 차용증에는 백 냥으로 적는 식이지. 거기에 이자를 월마다 붙여 굴린다 해도, 겉으로는 율법을 어긴 게 아니다. 헌데 영청 후작의 전장은 팔삼할 방식이었다. 새로 임명된 지방 관리들만 골라 돈을 빌려 줬지.”“그들은 하루라도 빨리 부임해야 했으니 규례에 들어갈 돈은 줄일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 전장은 영청 후작부와 태후를 등에 업고 있어 온갖 협박과 회유로 차용증을 쓰게 만들고, 심지어 관리가 부임하는 길에 사람까지 붙여 보내 끊임없이 빚을 독촉했다. 이 사건의 현령 역시 그렇게 몰리다가 결국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목을 맨 것이다.”계연수는 듣는 내내 등골이 서늘해졌다.천자의 발아래인 경성 한복판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니.영청 후작부는 정말 하늘이 두렵지 않은 듯 굴고 있었다. 태후의 이름을 등에 업고, 대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것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그때 심서준의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이건 이 년 전 사건이다. 당시에는 도찰원까지 올라오지 않았고, 양주 총독이 대충 덮어 버린 채 더는 조사하지 않았어. 이번에 이런 옛 사건들까지 전부 다시 끄집어내는 건, 영청 후작부를 뿌리째 도려내기 위해서다. 그래야 백관들의 풍조도 바로잡을 수 있을 테니까. 영청 후작부는 이미 거대한 고목과도 같다. 저 나무를 그대로 두면 땅속 뿌리가 어디까지 뻗어 갈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결국 주변은 모조리 메말라 버리게 되겠지.”계연수는 그의 말을 듣다가 문득 멍해졌다.처음에는 심서준이 영청 후작부를 치려는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어쩌면 그것은 그녀 혼자만의 착각이었는지도 몰랐다.그 감정이 서운함인지 무엇인지는 스스로도 설명할 수
사실 계연수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이미 심서준과 몸을 나눈 사이가 되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멀게만 느껴졌고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있는 사람 같았다.솔직히 지금의 그녀는 심서준과 마주하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다.무엇보다 그는 좀처럼 부드러운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모습은, 마치 그녀가 보양탕을 들고 들어온 것이 탐탁지는 않으면서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 듯했다.그는 늘 남들이 자신의 속을 짐작하게 만들 뿐이었다.계연수는 손에 든 탕그릇을 심서준 곁에 내려놓았다.그러다 그의 손 옆에 높게 쌓인 권책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한눈에도 봐도 일이 많아 보였다.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지금 온도가 딱 좋아요. 그러니 먼저 드세요.”심서준은 옅은 달빛 잠옷 차림의 계연수를 바라보았다.막 목욕을 마친 사람 특유의 은은한 향이 부드럽게 풍겨 왔다. 길게 늘어진 머리도 낮처럼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고 반쯤 풀어진 채 어깨를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그러다 문득 그녀의 머리 위를 한 번 바라보았다. 또 그 투박한 은비녀였다.제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은 모양이었다.심서준은 시선을 거두고 보양탕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그러고는 다시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그녀의 표정을 보니, 자신이 얼른 탕을 마시고 그녀를 내보내기만을 바라는 듯했다.괜히 마음이 언짢아졌지만, 결국 그녀 뜻대로 해 주었다.다만 계연수가 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심서준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그대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계연수는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심서준은 그녀를 한 번 보더니 긴 손가락으로 탁상을 가볍게 두드렸다.“볼 테냐?”계연수는 그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내렸다.탁자 위에는 두툼한 권책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그녀는 맨 위의 권책을 힐끗 바라보았다. 빽빽하게 적힌 글씨들 속에서 이상하게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영청 후작부의 죄는 한 현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크다는 사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