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Chapter 101 - Chapter 110

146 Chapters

제101화

이런 형편은 마치 강서이가 예전에 프라임로드투자에서 처음 프로젝트를 맡았던 때로 돌아간 듯했다.다만 그때는 강서이 뒤에 프라임로드투자가 있었으니, 지금보다는 조금 나은 정도였다.그렇다고 해서 뭔가 많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그 시절 민도하는 강서이에게도 손을 놓고 있었으니까.끼어들지도 않았고, 묻지도 않았고, 도와주지도 않았다.오히려 대부분은 강서이를 돕기는 커녕 찬물을 끼얹듯 말하며, 강서이가 이루어낸 성과를 부정하기까지 했다.강서이는 지는 걸 싫어하는 성미였다.민도하가 부정할수록, 강서이는 더더욱 결과를 만들어 민도하 앞에 내보이고 싶었다.그래서 지금 창업을 하며 마주한 어려움은 강서이에게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이미 예상한 일이었다.오늘 밤 술자리에는 낯익은 얼굴이 제법 많았다.강서이가 아는 사람만 해도 스마트의 지동경 대표, 장리투자의 고창규 대표, 일성투자의 심진호 대표, 거기에 다른 투자회사 대표들까지 있었다.이 모임이 있을 거라는 소식은 사실 조규찬이 강서이에게 흘려준 것이었다.아마도 지난번 약속을 지키지 못한 일을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는 뜻이었을 것이다.물론 이 자리에 모인 약삭빠른 사람들 역시 강서이가 나타난 배경에 조규찬이 있다는 걸 짐작했고, 의리를 저버렸다며 조규찬을 힐난했다.강서이는 먼저 석 잔을 마신 뒤, 몇 사람에게 먼저 조규찬을 찾아가 부탁한 건 자기였다고 설명했다.조규찬도 강서이 편을 들었다.“대표님들, 강 대표님이 창업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다들 한 번쯤은 손을 보태 주시죠. 돈은 함께 벌면 더 좋지 않겠습니까.”웃는 낯으로 속을 감추는 지동경이 말했다.“창업이 어디 쉬운 일입니까? 다들 그렇게 하나씩 버텨 올라온 겁니다. 저희만 그런 줄 아십니까? 프라임로드투자의 민 대표님도 다 그렇게 지나오셨습니다. 밑바닥에서부터 하나씩 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강 대표님이 저희보다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지동경은 몸을 뒤로 기대며 비웃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강 대표님이 그 고생을 못 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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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민도하가 아주 잠깐 얼굴만 비추고 갔을 뿐인데도, 룸 안의 공기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아까까지만 해도 강서이를 곤란하게 몰아세우던 사람들마저, 이제는 강서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어딘가 측은한 기색을 얹고 있었다.강서이는 금세 마음을 다잡았다.그리고 다시 몇 사람을 상대로 자기 프로젝트에 투자해 달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술은 피할 수 없었다.대놓고 강서이를 난처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다들 다른 식으로 강서이를 겨냥했다.한 잔만 마시면 될 술도 꼭 석 잔으로 불어나 있었다.아무리 강서이 주량이 세다고 해도, 혼자서 열 사람을 상대할 수는 없었다.중간에 강서이는 화장실에 가서 한 차례 토했다.속에 든 걸 거의 다 게워 내고 나니 위장 안이 텅 빈 듯했다.강서이는 기운이 다 빠진 몸으로 변기에 앉아, 가방 안에서 미리 챙겨 온 마시는 요거트를 꺼내 위의 불편함을 가라앉혔다.이런 건 전부 예전에 비서로 접대를 다니며 몸으로 익힌 요령이었다.생각해 보면 참 우스운 일이었다.이 방법도 민도하가 알려 준 것이었으니까.그때 강서이는 민도하 대신 술을 마셨고, 너무 많이 마셔 토하게 되면 민도하는 다시 강서이가 술자리를 버틸 수 있게 이것저것 챙겨 주곤 했다.그래야 강서이가 계속 민도하 대신 술을 받아낼 수 있었으니까.가끔 강서이가 정말 버티지 못하고 화장실에서 그대로 취해 쓰러질 때도 있었다.그럴 때면 민도하가 만취한 강서이를 화장실에서 데리고 나와 그대로 집까지 데려다주었다.강서이는 그 세월을 그렇게 버텨 냈다.그래서 자기 주량이 어느 정도인지, 어디까지 마실 수 있는지 잘 알았다.어느 정도쯤 마시면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조금 나아진 강서이가 칸막이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낯익은 사람과 마주쳤다.동화투자 남수환 대표의 비서, 오해림이었다.두 사람은 전에 프라임로드투자 축하연에서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그때 민도하가 강서이에게 남수환 대표와 술을 마시라고 했었다.오해림이 강서이를 보더니 놀란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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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강서이는 늘 가방에 들고 다니던 사업계획서를 꺼내 남수환에게 건넸고, 남수환이 품는 의문에 차분하게 답을 덧붙였다.남수환이 어떤 질문을 꺼내든지 강서이는 막힘이 없었다.그럴수록 강서이를 바라보는 남수환의 눈에는 호감과 기대가 조금씩 짙어졌다.민도하가 돌아왔을 때는 강서이 쪽 이야기가 거의 마무리된 뒤였다.아무래도 민도하의 인맥 덕을 본 셈이었으니, 강서이는 예의상 민도하에게도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민도하는 담담하게 짧은 대답만 내놓았고, 시선도 강서이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민도하는 곧 옆에 있던 남수환을 향해 물었다.“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남수환이 두어 마디 설명을 꺼내려던 때였다.민도하의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연달아 울렸다. 누군가 계속 메시지를 보내는 듯했다.“두 분 먼저 얘기하세요. 저는 메시지에 답장 좀 하겠습니다.”민도하는 한쪽에 앉아 핸드폰을 꺼냈고, 곧장 메시지에 집중했다.강서이는 무심코 흘끗 본 화면에서 익숙한 프로필 사진 하나를 알아봤다.노아리였다.‘그럴 만했네.’저토록 신경을 쓰는 이유가 있었다.민도하는 노아리의 메시지에 답장하느라 남수환까지 잠시 제쳐 둘 정도였으니까.물론 지금의 강서이는 민도하의 그런 태도가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오히려 민도하가 저렇게 대화에만 몰두해 주길 바랐다. 그래야 강서이도 남수환과 프로젝트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나눌 수 있었으니까.일은 강서이가 바랐던 대로 흘러갔다.민도하는 내내 핸드폰만 들여다보며 대화에 빠져 있었고, 단 한 번도 끼어들지 않았다.가끔 입가에 옅은 미소까지 어렸다. 다정했고, 한없이 부드러워 보였다.강서이는 민도하를 알게 된 지 칠 년 만에 처음으로 그런 모습을 봤다.언제나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던 남자도 누군가 앞에서는 저토록 인내심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강서이는 이제야 알았다.며칠씩 강서이의 메시지에 답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그런 민도하가 어떤 한 사람을 위해서는 중요한 자리조차 대수롭지 않게 넘긴 채, 이 자리에서도 오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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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민도하는 강서이를 한동안 빤히 바라보더니, 낮고 싸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못 사는 거야, 아니면 말하기 싫은 거야? 강서이, 내 인맥 써 놓고 나한테는 이런 식으로 굴어? 그게 네 사회생활 방식이야?”강서이는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민도하가 이렇게까지 남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인 줄은.정말 질릴 만큼 숨 막혔다.대체 예전의 자신은 어떻게 저걸 다 견뎠던 걸까?지금의 강서이로서는 도저히 못 참았다.“내가 어떻게 살든 민 대표와는 상관없잖아?”민도하의 눈빛이 한층 가라앉았다.민도하는 눈매를 좁힌 채, 화를 누른 목소리로 쏘아붙였다.“네가 상관없다고 하면 정말 상관없는 줄 알아? 대체 뭘 믿고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건데?”민도하가 한 걸음 다가왔다.“서한승?”이름 하나가 떨어질 때마다 민도하는 더 가까이 다가섰다.“아니면 하장현?”민도하가 다가설수록 익숙하면서도 낯선 체취도 함께 밀려왔다.그 안에는 은은한 여자 향수 냄새가 섞여 있었다.강서이는 그 향을 알고 있었다.노아리에게서 났던 향이었다.강서이는 고개를 돌린 뒤 몇 걸음 물러섰다.민도하와의 거리를 충분히 벌리자, 더는 그 향이 코에 닿지 않았다.강서이는 더 차가워진 눈으로 민도하를 바라봤다.“아무튼 민 대표가 준 게 아니면 됐지.”민도하는 비웃듯 눈을 가늘게 떴다.“예전엔 네가 이렇게까지 당당한 적 없었던 것 같은데.”강서이의 목소리는 담담했다.“그건 민 대표가 나를 그만큼밖에 몰랐다는 뜻이야.”강서이의 말투도, 표정도 지나치게 고요했다.감정의 물결조차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프라임로드투자를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무덤덤해질 수 있다니.그날 민도하와 불편하게 헤어진 일은 강서이의 기분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했다.이유는 단순했다.동화투자의 남수환이 다음 날 따로 시간을 내 프로젝트 이야기를 더 해 보자고 했기 때문이다.민도하가 끝내 노아리가 먹고 싶어 하던 케이크를 구했는지까지는 강서이도 알 수 없었다.다음 날 남수환과의 대화 역시 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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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하장현의 업무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강서이는 직접 회사 인력 채용에 나섰다.막상 사람을 뽑으려고 하니 알게 됐다.경력 있는 시니어 엔지니어의 몸값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한 명 계약할 때마다 강서이 속이 타들어 갔다.돈이 물처럼 빠져나간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예채정이 투자한 돈도 오래 버티지 못했다.바닥이 보이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그래도 강서이는 하장현에게는 말하지 않았다.괜히 하장현의 마음까지 흔들리게 하고 싶지 않아, 강서이가 혼자 버텼다.하정민은 그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회사에 들렀다.직원들이 마실 커피를 챙기고, 복사하고, 잔심부름을 뛰고, 바닥 청소까지 도맡았다.하지만 하정민은 어디까지나 학생이었다.강서이는 하정민 공부에 지장이 생길까 걱정돼 더는 나오지 말라고 했다.잡무를 맡아 줄 사람도 이미 뽑는 중이라고 덧붙였다.하정민은 쉽게 믿지 않았다.원래 그런 일들은 죄다 강서이가 직접 해 왔으니까.하정민이 회사까지 달려와 일을 거든 것도, 강서이가 너무 지쳐 보였기 때문이었다.결국 강서이가 직접 올려 둔 채용 공고를 보여 주고 나서야, 하정민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사실 강서이는 하정민만 대충 안심시키고 나면 채용 공고를 바로 내릴 생각이었다.그런데 뜻밖에도 그날 오후, 정말로 지원자가 찾아왔다.그것도 아는 얼굴이었다.“서이 언니, 저 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김설은 들어오자마자 강서이를 와락 끌어안았다.기세가 어찌나 대단한지, 강서이도 잠깐 밀릴 정도였다.“여기 웬일이야?”예전에 함께 일하던 동료를 다시 보니, 강서이도 반가웠다.“맞혀 보세요.”김설은 눈을 반짝이며 강서이를 향해 윙크했다.“날 보러 온 거야?”“틀렸어요. 한 번 더 기회 드릴게요. 다시 맞혀 보세요.”“설마 면접 보러 온 거야?”강서이는 미간을 좁히며 마음속에 떠오른 짐작을 입 밖으로 꺼냈다.여길 찾아올 사람이라면 아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지원자였다.강서이는 김설에게 이곳 주소를 알려 준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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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강서이는 김설을 데리고 회사 안을 일부러 한 바퀴 돌았다.지금 회사 사정이 어떤지, 김설이 직접 눈으로 확인했으면 했다.직접 보면 마음을 접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무엇보다 강서이 쪽에서 줄 수 있는 조건은 프라임로드투자보다 좋기는 어려웠다.그런데 김설은 아예 강서이와 함께 일할 생각을 굳힌 상태였다.처우 같은 건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오히려 김설은 혼자 신이 나서 미래 계획까지 늘어놓았다.“언니 능력 제가 모르겠어요? 완전 대박 날 상이에요. 언니는 무조건 성공해요. 그러니까 제가 지금 언니 옆에 딱 붙어 있어야죠. 나중에는 제가 언니 곁에 붙고 싶어도 줄 서야 할걸요?”강서이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알았어. 그럼 월요일부터 나와.”아직 월요일도 되기 전인데, 하장현 쪽에서 반가운 소식이 먼저 들어왔다.하장현과 팀원들이 드디어 초기 모델을 완성한 것이다.그동안 계속 조여 오던 강서이의 마음도 그제야 조금 놓였다.“다들 고생 많으셨어요.”강서이는 시간을 확인했다.벌써 밤 아홉 시를 넘긴 데다 주말이었다.그런데도 다들 회사에 남아 일하고 있었다.강서이는 막 집에 도착했다가 다시 몸을 돌려 밖으로 나섰다.하장현과 팀원들을 위해 간식과 먹을 것을 좀 사 들고 가고 싶었다.이 시간까지 문을 연 케이크 가게는 많지 않았다.그래도 강서이는 예전에 프라임로드투자에 있을 때 이런 일들을 자주 해 봐서, 동선이 익숙했다.어느 가게가 늦게까지 영업하는지도 알고 있었다.물론 그런 경험도 그냥 생긴 건 아니었다.강서이는 프라임로드투자에 있던 시절, 거의 B시 안의 케이크 가게를 다 돌아다니다시피 하며 하나씩 익힌 것이었다.덕분에 강서이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아직 영업 중인 케이크 가게를 찾아갔다.직원에게 간식 주문을 하려던 순간, 오랜만에 아는 얼굴과 마주쳤다.장성만 기사였다.민도하의 운전기사.장성만도 강서이를 보자 적잖이 놀란 듯했다.“강 비서님, 정말 오랜만입니다.”강서이는 웃으며 정정했다.“기사님, 저 이제 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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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차 안에는 히터가 따뜻하게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덕분에 바깥에서 묻어온 한기가 금세 가라앉았다.따뜻한 공기 사이로 익숙한 우디 계열 남성 향기가 은근하게 감돌았다.강서이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왜 민도하 냄새가 나지?’곧바로 생각을 고쳐잡았다.지금 강서이가 타고 있는 차는 민도하의 차였다.민도하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게 당연했다.괜히 강서이가 주객이 전도된 생각을 한 셈이었다.다행인 점도 있었다.다른 향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예를 들면 여자 향기수 냄새 같은 것 말이다.장성만이 강서이에게 목적지를 물었고, 강서이는 회사 주소를 말했다.장성만이 운전대를 잡은 채 말했다.“강 대표님은 예전이랑 똑같이 정말 열심히 사십니다.”강서이는 어깨를 으쓱했다.“원래 이런 팔자인가 봐요. 일복은 타고났어요.”목적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차 안에서 몇 마디 나누는 사이 회사 앞에 도착했다.장성만은 먼저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었고, 아까 산 케이크를 꺼내 주려고 했다.강서이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손을 뻗어 룸미러에 걸려 있던 부적을 떼어 냈다.그 부적은 강서이가 예전에 민도하를 위해 직접 절에 가서 받아 붙인 것이었다.아흔아홉 계단을 오르며 하나하나 절을 올린 끝에 겨우 받아 낸 평안부적이었다.민도하에게 건넸을 때, 민도하는 강서이를 미신이나 믿는 사람 취급했다.자신은 그런 걸 믿지 않는다고도 했다.사실 예전의 강서이도 그런 쪽을 믿는 사람은 아니었다.다만 그때 일이 있었다.민도하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였다.민도하 몸에는 큰 상처가 없었다.겉으로 보기엔 찰과상 정도로 끝난 사고였다.하지만 차는 거의 폐차 직전까지 망가져 있었다.강서이가 현장으로 달려가 뒷수습을 하던 날, 강서이는 내내 가슴이 철렁했다.그 뒤로도 한동안 민도하를 간호하면서, 강서이는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민도하가 또 잘못될까 봐 불안했고, 꿈에서도 자꾸 민도하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강서이도 안다.이 세상에 신이나 귀신 같은 존재가 없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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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프라임로드투자 산하에는 여러 기술 산업이 걸쳐 있었다.그중 가장 잘 나가는 분야는 단연 반도체 회사였다.민도하 역시 반도체 프로젝트를 발판 삼아 프라임로드투자를 지금의 자리까지 끌어올렸다.강서이처럼 아직 업계 문턱도 제대로 넘지 못한 작은 회사와는 다르게, 프라임로드투자 산하 기술 계열사 정도 되는 규모라면 이런 최상위 산업 서밋에서 언제나 환영받는 쪽이었다.초대장을 받는 것쯤은 특별할 것도 없었다.그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것이었다.강서이도 그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애초에 그 방법을 떠올리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다만 강서이는 무의식적으로 민도하와 다시 엮이는 일을 꺼리고 있었다.다시 접점이 생기고, 다시 관계가 이어지는 일이 불편했다.그래서 생각만 했을 뿐, 실제로 옮기지는 않았다.그런 강서이에게 예채정이 한마디를 건넸다.공적인 일은 공적인 일로 보면 된다고.사적인 감정까지 한데 섞어 버릴 필요는 없다고.사업 이야기는 사업으로만 하면 된다고.이 바닥은 원래 좁았다.앞으로도 언젠가는 다시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괜히 어색해하고 선을 긋는 태도를 보이면, 오히려 아직도 마음을 못 놓은 사람처럼 비칠 수도 있었다.결국 예채정과 통화를 마친 뒤, 강서이는 민도하에게 전화를 걸었다.민도하는 예전보다 훨씬 빨리 전화를 받았다.다만 강서이는 민도하가 마침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걸려 온 전화를 무심코 받아 들었을 거라고 짐작했다.“민 대표, 잠깐 얘기 가능해?”강서이는 철저하게 업무적인 말투로 운을 뗐다.그러자 민도하가 되물었다.[어디까지가 가능한 건데?]전화를 타고 들려오는 민도하 목소리는 전류를 거치며 한 겹 멀어진 듯했다.너무 오랜만에 듣는 탓인지, 강서이에게는 그 목소리조차 낯설게 느껴졌다.강서이가 담담하게 받았다.“예를 들면, 민 대표의 ‘좋은 일’ 방해하는 건 아닌지.”민도하가 짧게 웃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방해된다고 하면 어쩔 건데?]강서이는 그 말에 바로 맞받아쳤다.“그럼 그 일 끝난 뒤에 다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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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문 앞에 직원이 서 있는 걸 본 민도하는 가운 자락을 한 번 더 여미더니 강서이에게 짧게 말했다.“들어와.”직원은 자리를 뜨면서도 강서이를 한 번 더 힐끗 돌아봤다.눈빛에는 궁금증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강서이는 안으로 들어가 케이크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자마자 곧장 초대장부터 달라고 했다.민도하는 느긋하게 케이크 포장을 뜯었다.이어서 손가락으로 한 조각을 살짝 떼어 입에 넣고 맛을 봤다.이내 민도하가 피식 웃었다.“길거리 케이크 가게에서 대충 사 온 거지? 강서이, 나한테 이런 식으로 할 생각이었어?”강서이는 들킨 사람처럼 움츠러들 기색도 없이 끝까지 우겼다.“무슨 소리야. 예전에 사던 그 집에서 산 거 맞아.”어차피 예전에도 민도하는 강서이가 가져다준 케이크를 제대로 음미하며 먹은 적이 없었다.강서이는 민도하가 그 맛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아마 강서이가 너무 단정적으로 말해서였을까.민도하는 더 이상 케이크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대신 약속대로 초대장을 건넸다.강서이는 반가운 마음에 초대장을 펼쳐 봤다가, 곧바로 표정이 굳었다.“한 장뿐이야?”민도하는 아일랜드 식탁에 기대선 채 젖은 머리를 대충 쓸어 넘겼다.행동도 느슨했고, 욕실 가운 깃도 한쪽으로 흐트러져 있었다.강서이는 저도 모르게 두어 번 더 민도하에게로 시선이 갔다.‘공짜로 보는 건데, 안 보면 손해 아니야?’민도하 목소리는 여전히 무심했다.그 안에는 비웃는 기색도 옅게 섞여 있었다.“네가 가져온 케이크 값어치는 초대장 한 장이야. 알아들어?”강서이는 할 말을 잃었다.몇 마디 따져 보려던 참이었다.그런데 테이블 위에 놓인 민도하 휴대전화가 울렸다.노아리였다.민도하는 거의 받자마자 전화를 연결했다.강서이와 얘기할 때보다 목소리가 훨씬 부드러웠고, 입가에도 웃음이 묻어났다.“방금 씻었어. 케이크도 사 뒀는데, 먹을래? 내가 가져다줄게.”강서이는 천천히 어금니를 악물었다.달달한 기류가 가득 찬 그 공간에서 강서이는 조용히 발을 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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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물론 그건 민도하의 일이었다.강서이가 고작 몇 마디 투덜거릴 수는 있어도, 거기까지였다.강서이에게는 간섭할 권리가 없었다.딱히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무엇보다 지금 강서이에게 가장 급한 건 따로 있었다.AI 서밋 초대장을 한 장 더 구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강서이가 초대장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서한승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요즘 서한승이 꽤 바쁘다는 건 강서이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강서이도 괜히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았다.자금이 빠듯하던 때조차 서한승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ZH은행 사정이 만만치 않다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서한승이 한국에 돌아온 이유도, 겉으로는 ZH은행을 맡으러 온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정확히 말하면 엉망이 된 ZH은행의 경영 상황을 수습하러 온 쪽에 가까웠다.원래 가족기업이라는 게 그렇다.시간이 쌓일수록 내부에 묵은 문제도 늘어나기 마련이었다.게다가 이전 세대 경영진의 역량 부족도 문제였다.그 탓에 ZH은행은 몇 년째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애초에 밑바탕이 탄탄하지 않았다면 벌써 시장에서 밀려났어도 이상하지 않았다.서한승은 자리에 오르자마자 오래된 병폐부터 정리하느라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빴다.그래서 강서이가 전화받자마자 가장 먼저 꺼낸 말도 그거였다.“일은 좀 끝났어요?”서한승이 낮게 웃었다.[거의 마무리됐어.]“잘 풀리고 있죠?”[응.]아주 짧고 단순한 대화였다.그런데도 서한승은 이상하게 몸이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마치 그 잠깐 사이에 어깨 위를 짓누르던 무게가 조금은 덜어진 것 같았다.서한승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지금 시간 괜찮아?]강서이는 바로 괜찮다고 답했다.[ZH은행으로 잠깐 올래?]강서이가 의아해하자, 서한승이 곧바로 이유를 덧붙였다.[오늘 네 대출 신청서 봤어. 자세한 얘기 좀 하고 싶은데, 괜찮으면 지금 와.]“가요.”강서이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답했다.사실 강서이가 신청한 건 소액 대출이었다.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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