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Chapter 81 - Chapter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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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화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강서이 씨 이력서를 소 대표님께 전달해 드리고 확인을 받아 올게요.” 인사 담당자가 환하게 웃으며 강서이에게 말했다.강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잠시 뒤, 한지수가 카카오톡으로 물었다. 면접은 어땠냐고.강서이는 답장을 보냈다. [전부 순조로워.]한지수는 축하 이모티콘을 연달아 쏟아 보냈고, 밥은 강서이가 사라고 했다.강서이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래. 네가 식당 골라.]한지수는 신이 난 듯 바로 식당을 고르기 시작했다.강서이가 대기한 지 대략 삼십 분쯤 지났을 때였다. 인사 담당자가 돌아왔는데, 아까와는 달랐다. 웃음이 남아 있긴 했지만, 어딘가 어색했고 말끝도 조심스러웠다.강서이의 가슴이 이유 없이 철렁 내려앉았다. ‘안 좋은 예감이 드네.’“정말 죄송합니다, 강서이 씨.” 이력서를 강서이에게 다시 건네며 인사 담당자가 말했다. “소 대표님 쪽에서... 이번엔 합격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하셨어요. 죄송해요. 시간만 뺏었네요.”강서이는 차분하게 이력서를 받았다.속이 상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이런 일은 강서이에게 처음이 아니었다. 겪는 횟수가 늘수록 받아들이는 데 필요한 힘도 조금씩 줄어드는 법이었다.“가능하다면 여쭤보고 싶어요.” 강서이가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했다. “소 대표님께서 합격을 주지 않으신 이유가 뭔지요?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인사 담당자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정확한 이유는 몰라요.”강서이는 더 캐묻지 않았다. 상대를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알겠습니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하고 자리를 떴다.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한지수가 식당을 골랐다는 연락이 왔다.강서이는 답장을 보냈다. [좋아.]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려는 찰나, 강서이의 바로 뒤쪽에서 구두 소리와 대화 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너무 익숙해서 등허리에 서늘한 기운이 훑고 지나갔다.하필이면... 민도하와 노아리였다.민도하는 정말 가는 곳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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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그러니까 민 대표님이 제 지난 7년에 대해서 뭐라고 평가했는지. 저도 좀 알고 싶습니다.”강서이가 또렷하게 바닥을 찍듯 되풀이했다.노아리도 답이 궁금했다. 그 한마디가 강서이라는 사람의 자리가 민도하 마음속 어디쯤인지 보여 줄 테니까.민도하의 눈 밑에서 아주 잠깐 뭔가가 일렁댔지만, 금세 가라앉으면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돌아갔다. 민도하의 목소리는 늘 그랬다. 기복도, 온기도 없었다.“내 평가는...” 민도하가 천천히 말했다. “비서로는, 그럭저럭. 프로젝트는... 하...”마지막의 짧은 한숨 섞인 소리 하나로 충분했다.비웃음. 조롱. 경멸.그리고 깎아내림.강서이가 7년을 바쳐 얻은 건, 그 한 줄짜리 평가였다.‘내가 너무 많이 줬지.’‘너무 꽉 채워서 사랑한 게, 내가 한 제일 큰 실수였어.’강서이는 숨이 막혔다. 이미 다 끝났다고 생각했던 심장이, 여전히 민도하의 시선 하나에 시큰하게 아려 왔다. 그래도 7년 동안 다듬어진 건 있었다. 무너질 듯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법.“그럼 제가 꽤 실패했나 보네요.” 강서이가 겨우 평정을 붙들고 말했다. “그래도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 대표님.”말을 마치자 강서이는 망설이지 않고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소대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표정은 끝까지 정중했다.“소 대표님께서 제 지원을 거절하신 건,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네요. 괜히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강서이는 그대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민도하는 그 자리에 서서 강서이가 걸어가는 걸 봤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문이 닫히기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강서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노아리는 겨우 한숨을 쉴 수 있었다.‘내가 괜히 신경 썼네.’민도하는 강서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맞았다. 강서이가 이 정도로 몰려도 민도하는 조금도 손을 늦추지 않았다.노아리는 입꼬리를 가볍게 올렸다. 기분이 한결 정리된 목소리로 말했다.“우리도 가자.”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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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실은 당연한 일이었다.그래서 민도하가 강서이의 사직을 그렇게 시원하게 받아준 거였다. 뒤에 수단을 남겨 둔 상태였으니까.민도하가 하는 짓은 대놓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프라임로드투자에서 나가서 민도하 곁을 떠나면, 강서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그리고 그건 강서이를 다시 끌어들이는 방식이기도 했다. 돌아와서 머리 숙이라고, 결국은 굴복하라는 것이다.민도하는 말했었다. 자신이 없으면 삼 일도 못 버티고, 강서이가 먼저 돌아와 매달릴 거라고.강서이가 조금이라도 덜 고집스러웠다면,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자존심 하나 지키겠다고 버티는 게 얼마나 힘든지, 강서이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강서이는 분명히 말했다. 절대 뒤돌아보지 않겠다고.일도, 감정도 모두 다.‘나를 못 죽이면, 나만 더 단단해지지.’강서이는 숨을 고르고 감정을 정리한 뒤, 조규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밖에서 밥이나 먹자고 약속을 잡아 보려는 마음이었다.평소라면 거의 바로 받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신호음만 길게 이어지면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시간도 늦지 않았다. 저녁 7시를 조금 넘긴 정도였다. 조규찬은 원래 일찍 잠드는 타입도 아니었다.전화를 피한다는 의미는 하나였다. 조규찬도 민도하의 압박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그래. B시가 얼마나 크다고...’‘누가 나 하나 때문에 금융 신흥 강자 민도하를 건드리겠어?’강서이가 조금 기운이 꺾이려는 때, 서한승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그냥 안부 전화려니 했다. 그런데 통화를 받자마자 서한승이 바로 본론을 던졌다.[요즘 일자리 찾는다며?]강서이는 서한승이 아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이 바닥은 좁았다. 금융 쪽 사람들끼리는 소문이 빠르게 돈다.“네.”[괜찮은 데 찾았어?]서한승의 목소리에는 신경 쓰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 전화 너머로 누군가가 술 마시자고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술자리 한가운데 있는 분위기였다.서한승이 ‘잠깐만’ 하고 한마디 던진 다음, 다시 강서이에게 말했다.[그럼... ZH은행 와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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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소문은 빠르네.”민도하는 카운터석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잘생긴 얼굴은 물처럼 밋밋할 뿐 표정이라 부를 만한 것도 없었다.남유환이 비웃듯 말했다. “네가 압박을 안 줬으면, 소대영은 강서이 바로 데려갔을 걸. 너도 알잖아. 그 인간 원래 그런 쪽으로 유명하잖아.”민도하는 대꾸하지 않았다. 테이블 위 잔을 집어 들더니 한 모금 마셨다.남유환이 눈을 크게 떴다. “너 술 알레르기 있잖아?”“요즘 계속 민감 소실 요법 치료받아.” 민도하가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은 마실 수 있어.”남유환은 더 이상하게 여겼다. “멀쩡한데 갑자기 술을 왜 마셔?”옆에서 서태우가 툭 끼어들었다. “당연히 아리 술 받아주려고지. 도하 첫사랑이잖아. 귀하게 모셔야지.”남유환은 민도하한테 직접 확인해 보려다가, 노아리와 서한승이 돌아오는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대신 다시 아까 얘기로 돌아갔다.“근데 너... 왜 강서이 그렇게까지 괴롭혀? 그래도 너랑 7년이나 있었잖아. 너 원래 그렇게까지 매정한 애 아니잖아.”서태우가 먼저 받아쳤다. “강서이가 사람 말을 안 듣잖아. 도하는 그냥 기분 좀 풀려고 한 거지.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았나 봐.”“도하가 붙잡을 줄 알고? 두고 봐. 돌아와서 도하한테 머리 숙일 걸. 그건 시간문제야.”서한승이 외투를 집어 들며 한마디 했다. “너희 마셔. 나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간다.”서태우가 붙잡으려 했다. “야, 무슨 일이 우리 모임보다 중요해?”서한승은 대답도 없이 등을 돌린 채 나갔다.노아리의 표정은 어딘가 좋지 않았다. 서태우가 물었다.“왜 그래? 몸 안 좋아?”노아리가 잠깐 머뭇거리다 말했다. “한승이가... 강서이 씨 쓰려고 하는 것 같아.”민도하는 잔에 남은 술을 한 번에 비웠다.술기운이 올라오자 민도하의 눈가가 살짝 달아올랐다. 그 덕에 눈동자는 더 깊고 어둡게 보였다....강서이는 샤워를 마친 뒤 노트북을 켰다.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다시 공고를 훑었다.회사 규모가 더 작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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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마음이 텅 비는 건,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메울 수 있다.그런데 몸에 남은 상처는 달랐다. 한 번 망가진 건 되돌리기 어렵고, 어떤 건 아예 되돌릴 수가 없었다.강서이는 침대 위에 웅크린 채로 멍하게 누워 있었다. 의식은 흐릿했고, 생각도 한 덩어리로 뭉쳐서 잘 굴러가지도 않았다. 다행히 진통제가 서서히 듣기 시작하면서 아랫배의 통증은 조금씩 가라앉았다.그런데도 강서이는 계속 춥다고 느꼈다. 몸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한기였다.그 한기는 강서이를 어느 비 오는 밤으로 데려갔다.닫혀 있던 문...머리 위를 덮어주던 검은 우산...진흙탕에서 강서이를 끌어 올리던 손바닥...갑작스러운 두드림 소리에 강서이는 잠에서 튕겨 나오듯 깼다. 몸을 벌떡 일으키자, 텅 빈 방이 눈에 들어왔다. 방의 적막이 방금 전의 장면이 꿈이었다는 걸 알려줬다.멍하니 앉아 있는 사이, 문 두드리는 소리가 또 들렸다.아까보다 더 다급했고 더 거칠었다.쿵- 쿵- 쿵-마치 머리를 두드리는 것처럼 신경을 긁었다.강서이는 시간을 확인했다. 밤 12시가 훌쩍 넘었다.‘이 시간에 누가 와?’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옆에 있던 핸드폰도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떠 있는 일곱 글자.‘공짜로 재워준 놈’이었다.강서이는 잠이 덜 깬 탓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 그날 밤, 민도하에게 시달리다 너무 열이 받아서 연락처 이름을 그렇게 바꿔 둔 걸 잠깐 잊고 있었다.그러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이 확 들었다.“문 열어! 강서이!”‘어디 집 잃은 개가 남의 집 문 앞에서 이 시간에 짖어!’강서이는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리고 그냥 다시 자려고 했다.그런데 민도하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저렇게 두드리면 옆집, 윗집, 아랫집까지 다 들을 게 뻔했다.강서이는 이웃들한테 민원이 들어오는 게 더 싫었다. 이를 악물고 일어나 현관으로 갔다.다만 완전히 열어 주진 않았다. 문을 아주 조금만 열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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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강서이는 억지로 웃고 사과하면서 경찰을 돌려보냈다. 문이 완전히 닫히자마자 강서이는 돌아서서 민도하를 노려봤다.“뭐 하러 왔어?”얼굴도 목소리도 차가웠다.민도하는 그런 강서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는 짜증 섞인 숨을 내쉬며 셔츠 깃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목덜미 쪽엔 붉은 자국이 듬성듬성 올라와 있었다. 누가 봐도 알레르기 반응이었다.그제야 강서이는 알아차렸다.‘술 마셨네. 그것도 많이.’7년을 알고 지냈지만, 강서이는 취한 민도하를 본 적이 없었다. 민도하 술버릇이 이렇게 나쁜 줄도 몰랐다. 남의 집까지 찾아와 문을 두드리고 소란을 피우는 수준이라니.강서이는 속에서 열이 올라오면서 표정이 저절로 굳어졌다.그런데 민도하는 예전처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집에 알레르기 약 있어?”“없어.”여기가 약국도 아니고.“그럼 물. 따뜻한 걸로 한 잔 줘.” 민도하가 미간을 누르며 말했다. 마음이 뒤틀린 사람처럼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강서이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민 대표님은 참 기억력이 좋네. 아직도 내가 자신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강 비서인 줄 알아?”민도하가 낮게 말끝을 깎았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강서이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여기까지 와 놓고도, 민도하는 강서이가 그냥 떼쓰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미안한데, 나 그런 거 할 시간 없어.’강서이가 또박또박 말했다.“할 말은 다 했고, 할 일도 다 했어. 근데도 민 대표는 아직도 모르겠으면... 나중에 내가 천 원 줄 테니까 마트 앞에 애들 타는 흔들목마 있거든. 거기 가서 좀 흔들리면서 생각해. 뭐가 뭔지.”민도하의 낯빛이 더 어두워졌다. 시선은 어둡게 가라앉았고, 가까이 있는 공기까지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민도하가 낮게 웃었다.“서한승한테 붙었나 보네. 이제는 아예 숨길 생각도 없고?”민도하가 한 걸음 다가왔다. 노골적으로 비꼬는 말투에 표정은 무감했다.“강서이, 예전에 나한테 어떻게 매달렸는지 잊었어?”강서이는 속으로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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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강서이는 원래 민도하에게 직접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서한승의 전화가 걸려왔다.‘소문 때문에 전화했겠지.’예감은 맞았다. 서한승은 인터넷에 퍼진 이야기 때문에 강서이에게 연락한 거였다. 서한승이 먼저 단호하게 말했다.[이건 내가 정리할게. 너는 신경 쓰지 마. 대응도 하지 말고.]그리고 서한승은 곧바로 설명을 덧붙였다.[내가 취임하고 나서 칼을 좀 뺐거든. 비리가 있는 주주 둘을 정리했어. 그쪽에서 앙심을 품고, 일부러 이런 헛소문을 퍼뜨린 거야.]“아, 그래서 그런 거였네요.”[너까지 엮이게 만들어서 미안해.]강서이는 크게 마음에 담지 않았다. “괜찮아요.”어차피 강서이는 이런 일을 처음 겪는 것도 아니었다.프라임로드투자에서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뛰어다니는 동안, 강서이는 적도 많이 만들었다. 억울해도 정면으로는 못 이기니까 뒤에서 비꼬고 깎아내렸다. 강서이를 두고 낮에는 비서로 있으면서 밤마다 비서를 부른다느니, 그런 식으로.입에 담기 싫은 말들이 끝도 없이 나왔다.그런 중에서도 이런 류의 황당한 소문은 차라리 가벼운 축이었다.처음엔 강서이도 힘들었다. 속상하고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민도하는 그걸 다 보고도, 한 번도 나서서 해명해 주지 않았다.강서이는 그때 눈이 빨개진 채로 민도하에게 따진 적이 있다.그리고 민도하가 했던 말을 강서이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했다.[프로젝트 하는데 그 정도도 못 버티면, 평생 비서나 해.]말은 잔인했다.민도하가 단순히 상사로서 말한 거라면, 일적으로는 이해할 여지도 있었다.하지만 민도하와 강서이 사이에는 다른 관계가 얹혀 있었다. 그래서 강서이는 더 서러웠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은 지금 와서는 도움이 됐다. 마음을 버티게 만드는 방식이었으니까.서한승은 강서이가 생각보다 괜찮아 보이자, 목소리가 한결 편해졌다.[원래는 오늘 ZH은행으로 불러서 면접을 보려고 했는데, 지금은 좀 애매하겠네. 소란이 좀 가라앉으면 다시 얘기하자.]강서이는 잠깐도 뜸 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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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기억이 맞다면, 민도하는 며칠 동안 지방 출장이 잡혀 있었다. 오늘 항공편으로 B시에 돌아오는 일정일 거였다.강서이는 일부러 민도하 소식을 찾아본 적은 없었다.다만 김설이 강서이에게 민도하의 출장 취향과 주의사항을 물어보면서, 어쩔 수 없이 들은 것들이 있었다.민도하가 어떤 항공편을 선호하는지, 어느 호텔을 잡아야 하는지, 식사는 뭘 피하고 뭘 챙겨야 하는지. 귀국은 당일에 바로 돌아오는 걸 좋아하는지, 아니면 다음 날로 미루는지까지.민도하를 그렇게까지 잘 아는 사람은 적어도 이 바닥에서는 강서이만큼 확실한 사람이 없었다.김설은 강서이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전화기 너머에서 거의 울먹였다. 김설은 계속 투덜댔다. 자기가 전생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이번 생에 벌을 받는 거라면서. 그래서 민도하의 ‘임시 비서’가 돼서 일정 잡고 동선 정리까지 다 떠맡게 됐다고.강서이는 김설에게 물었다.“내가 나간 뒤에, 민 대표가 수석 비서 새로 안 뽑았어?”김설이 말했다. [아니에요. 인사팀에서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대표님이 다 막았어요.]그리고 김설은 한숨을 섞어 덧붙였다. [사람들끼리 뒤에서 말이 많아요. 대표님이 일부러 그 자리 비워 두는 거 아니냐고.]그 자리를 누구 때문에 비워두는 건지, 다들 말은 안 해도 알고 있다는 분위기였다.심지어 김설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서이가 다시 프라임로드투자로 돌아갈 생각이 있냐고.강서이는 분명하게 잘라 말했다.“그럴 일 없어. 그런 날은 안 와.”‘그런데 지금 민도하의 행색을 보니, 아마 B시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여기로 온 모양이네.’‘첫사랑의 부모와 식사 자리에 늦지 않으려고... 참 성의 있네.’민도하는 노아리의 일이라면 늘 그랬다. 늘 앞장서고 공을 들였다.그건 강서이가 예전에는 상상조차 못 하던 모습이었다.강서이는 문득 오래전이 떠올랐다.어머니 강윤희가 강서이와 민도하의 교제를 알게 됐을 때, 조심스럽게 민도하를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강서이는 한참을 핑계를 찾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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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강서이가 하장현에게 사실을 숨기지 않은 건, 결국 하장현에게도 신호를 주는 일이었다. 하장현에게는 더 나은 선택지가 많다는 것. 강서이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였든, 하장현은 굳이 강서이에게 묶일 필요가 없다는 것.그런데 하장현은 망설이지도 않고 선을 그었다.“저는 강서이 씨하고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강서이가 말없이 바라보자, 하장현은 더 분명하게 말했다.“강서이 씨가 회사를 다니면 그 회사랑 같이 하는 거고요. 강서이 씨가 창업하면 강서이 씨랑 같이 하는 겁니다. 저는 결국... 강서이 씨라는 사람을 선택한 거예요.”하장현은 웃지도 않은 채 덧붙였다.“오히려 프라임로드투자랑 계약이 엎어진 게 다행입니다. 계약부터 해 놓고 나중에 강서이 씨가 퇴사한 걸 알았으면, 그게 더 손해였을 겁니다.”강서이는 가슴이 뜨거워졌다.‘이 사람... 이렇게까지.’감동이 밀려왔지만, 강서이는 감정에만 기대지 않았다. 지금 당장 넘어야 할 벽들이 너무 많았다.가장 먼저... 돈이었다.초기 자금은 제한적이었다. 굴리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빨리 바닥이 날 가능성이 컸다. 그러다 자금줄이 끊기면 프로젝트는 그대로 멈춘다. 그건 하장현이 앞에서 쏟아부은 시간과 실력까지 함께 무너뜨리는 일이었다.강서이는 그게 가장 두려웠다.그래서 강서이가 하장현에게 내놓은 방안은 하나였다. 가능한 한 빠르게 새로운 투자자를 찾는 것. 그리고 투자자와 공동 개발 형태로 프로젝트를 키워서 함께 인큐베이팅하는 것.초기 비용 부담은 줄일 수 있다. 다만 그 대가로 데이터 권리의 일부를 양보해야 할 가능성이 높았다.강서이가 조심스럽게 설명을 마치자, 하장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저는 사업적인 부분은 잘 모르지만요.” 하장현이 말했다. “강서이 대표님의 능력은 믿습니다. 역할을 나눠서 가죠. 강서이 대표님이 투자자를 찾고, 저는 기술을 잡을게요.”강서이는 그 말 속 호칭에 잠깐 멈칫했다.‘강서이 대표님?’‘갑자기 왜 이렇게 나를 불러?’‘생각보다 듣기 좋네.’ 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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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노아리는 속이 한껏 들뜬 채로 민도하와 함께 식당을 나갔다. 걸어가면서도 노아리는 팔짱을 살짝 낀 채 투정처럼 말끝을 흘렸다.“도하야, 오늘도 너 돈 너무 썼어. 사실 가족끼리 밥 먹는 건 그냥 간단하게 해도 되잖아. 굳이 이렇게 비싼 데 올 필요 없는데.”말은 적당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눈치도 있고 선도 넘지 않았으며, 귀찮게 만들지 않는 종류의 배려였다.민도하는 그런 노아리가 마음에 든 듯했다. 아까 강서이를 평가하던 목소리와는 달리, 민도하의 말투가 확실히 부드러워졌다.“그럴 만하니까 한 거야. 당연한 거고.”두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강서이는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하장현도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괜찮으세요?”강서이가 되물었다. “제가 많이 안 괜찮아 보여요?”하장현은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서 그대로 말했다.“조금요.”강서이는 대답 대신 얼음물 한 컵을 크게 들이켰다.“괜찮아요. 죽진 않아요.”강서이는 사실 괴로웠다. 그러나 그 괴로움이 민도하 때문만은 아니었다.그때의 자신 때문이었다.사랑 하나에 모든 걸 걸던 자신이 떠올라서 강서이 자신이 불쌍했다. 그 관계에서 강서이가 결국 사과해야 할 사람은 민도하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다.노아리가 끼어든 뒤로 식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강서이의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니, 하장현도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하장현이 계산대로 가려고 했다.강서이가 하장현을 막았다.“제가 낼게요.”하장현이 손을 내저었다. “숙녀가 계산하게 할 수는 없죠.”강서이가 살짝 웃었다.“아까 저한테 ‘강서이 대표님의 능력을 믿는다’고 하셨잖아요. 게다가 저를 그렇게 띄워주는 말씀까지 하셨는데요.”“그러니 이 밥은 제가 사야죠. 너무 사양하지 마세요. 앞으로 같이 밥 먹을 일 많을 텐데, 그때 하 사장님이 내도 늦지 않아요.”강서이의 말에 하장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다음부터는 제가 낼게요. 약속한 겁니다.”강서이가 계산대로 가서 결제를 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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