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7년을 바쳤는데, 내가 떠나자 미쳐버렸네: Chapter 121 - Chapter 130

146 Chapters

제121화

하장현은 되레 이렇게 말했다. “강 대표의 지원이 없었으면 오늘 같은 결과도 없었을 겁니다. 강 대표 공도 절반입니다!”강서이는 뭐라고 더 말하려 했다.그때 김설이 재잘재잘 끼어들었다. “두 분 다 그렇게 서로 양보하지 마세요. 제가 보기엔 두 분이 딱 이 제품의 부모 같거든요. 한 분은 품어 내고, 한 분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거니까 둘 다 공이 있는 거죠!”김설이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나았을지도 몰랐다.김설이 그렇게 말하자 회사 사람들이 하나둘 맞장구치기 시작했고, 금세 분위기가 들썩였다.하장현은 부끄러워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 귀끝까지 붉어진 채 사람들을 말려 보려 했다. 말도 자꾸 꼬여서 뜻대로 나오지 않았다.반면 강서이는 담담했다. “농담은 농담으로 듣고요, 일단 제품 이름부터 정하죠. AI 서밋 전에 출시까지 해야 하잖아요.”강서이는 몇 마디로 분위기를 곧장 제자리로 돌려놓았다.의견을 주고받은 끝에 제품 이름도 마침내 정해졌다.이름은 ‘문심’이었다.‘만사를 마음에 묻는다’라는 뜻이었다.강서이는 예전에 이런 문장을 본 적이 있었다. 즉, 지금 세상에서는 모든 일을 마음에 묻고,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는 문장.강서이는 그 문장을 붙잡고 숱한 밤을 버텼다.새벽이 깊어질 때마다 홀로 몸을 일으켜 앉아, 자기 자신과 오래 이야기를 나눴다.놓아야 할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자고, 자기 자신에게 아주 다정하게 부탁하면서.‘문심’이 정식으로 올라간 날, 하장현은 회사 사람들 전부에게 식사를 샀다.하장현은 다른 투자사 쪽 사람들도 부를지 강서이에게 물었다.강서이는 당연히 초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직접 예채정과 서한승에게 전화를 걸었다.예채정은 지금 B시에 부재중이라 올 수 없다고 했다.서한승은 선뜻 오겠다고 했다. 시간 맞춰 가겠다는 대답도 바로 돌아왔다.식사 시간이 다 되어 갈 무렵, 강서이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을 보고 강서이는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이 사람이 누구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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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오늘 밤 강서이는 꽤 기분 좋게 술을 마셨다. 많이 마신 건 아니었다. 기분 좋게 취기가 도는 정도였고, 덕분에 마음도 한결 가벼웠다.최근 3개월 동안 통틀어 가장 마음이 편한 밤이기도 했다.다만 그 좋은 기분은 민도하를 본 뒤 그대로 사라졌다.시간은 많은 것을 흐리게 만들고, 사람의 마음도 바꿔 놓는다.예전이었다면 민도하가 먼저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강서이는 한없이 기뻤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강서이의 마음에는 불쾌함만 남았다.강서이가 먼저 입을 열기도 전에 민도하가 도리어 따져 물었다. “왜 전화 안 받았어?”강서이는 가방 안에서 천천히 집 열쇠를 찾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못 봤어.”“내가 그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해?”민도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거센 것이 터져 나올 듯한 기세였다.강서이는 민도하가 믿든 말든 상관없었다. 대답 한마디해 준 것만으로도 민도하에게는 충분했다.“믿든 말든 네 마음이지.” 강서이는 열쇠를 찾아냈고, 집 문 앞을 막고 선 걸림돌을 향해 말했다. “민 대표, 비켜 줘. 우리 집 문 가로막고 있잖아.”민도하는 말 없이 옆으로 비켜섰다.강서이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그리고 민도하가 따라 들어오기 전에 그대로 문을 닫아 버리려 했다.움직임은 빠르고, 망설임도 없었다.민도하와 단 일분 일초도 더 엮이고 싶지 않다는 뜻이 분명했다.그런데 강서이가 빨랐다면 민도하는 더 빨랐다. 민도하는 곧장 손을 뻗어 문을 막았고, 아마 강서이가 힘을 거둘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강서이는 그러지 않았다.문은 그대로 민도하 손을 끼운 채 쾅 닫혔다.민도하 입에서 낮고 무거운 신음이 흘러나왔다.그래도 민도하는 손을 빼지 않았다.문틀을 끝까지 붙든 채 강서이가 문을 닫지 못하게 막아섰다.“지금 뭐 하는 거야?” 강서이는 끝내 화를 터뜨렸다. 감정도 함께 들끓었다. “우리 사이 이미 다 끝났다고, 분명하게 말한 줄 알았는데? 예전 관계를 당신이 인정하든 말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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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장 기사는 민도하가 민두해를 보러 가려는 줄 알고, 민두해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내비게이션을 맞추려 했다.그런데 민도하는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말했다.그제야 장 기사가 뒤늦게 알아차렸다. “대표님, 다치신 겁니까? 많이 심하십니까?”“안 죽어.”뒷좌석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장 기사는 룸미러 너머로 민도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병원에 도착한 뒤에야 장 기사는 민도하 손에 난 상처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꽤 심했다. 손등부터 손바닥까지 넓게 붓고 벌겋게 올라와 있었는데, 누가 봐도 문에 세게 끼인 상처였다.의사는 상처를 본 뒤 제법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만 더 세게 눌렸으면 뼈까지 다쳤을 겁니다.”그 말을 들은 장 기사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민도하가 손 치료를 마친 뒤에는 다시 장 기사에게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민두해는 아직 잠들지 않은 채 병상에 기대 누워 최신호 경제 잡지를 넘기고 있었다.표지 인물은 민도하였다.그 잡지는 석 달 전에 촬영한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강서이는 프라임로드투자에 있었다.그래서 그때 민도하가 입은 의상과 전체적인 스타일링 역시 강서이가 잡지사와 의견을 주고받으며 정한 것이었다.강서이의 스타일링은 민도하에게 잘 어울렸다.민두해는 민도하가 병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잡지를 덮어 버렸다.민두해는 아무렇게나 옆으로 던졌고, 더 볼 가치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민도하는 떨어진 잡지를 주워 들고 한 번 훑어봤다. “잘 찍혔네요.”민두해가 비꼬듯 말했다. “겉만 번지르르하지.”민도하는 이미 민두해의 그런 말투에 익숙했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그건 아버지 닮은 거 아닙니까.”진인자는 병실 안에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는 기류를 눈치채고 얼른 말을 돌렸다. “그만들 하세요. 두 분 다 말씀 좀 줄이시고요.”그때 진인자 시선이 민도하 손에 감긴 붕대로 향했다. 진인자 표정이 달라지며 놀라 물었다.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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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강서이는 결국 민두해의 병문안을 위해 병원에 갔다.그 이유는 민도하 때문이 아니었다.민도하를 빼고 보면, 민두해는 강서이에게 나름 잘해 준 편이었다.강윤희를 제외하면, 설날마다 세뱃돈 봉투를 챙겨 주던 어른도 민두해뿐이었다.그래서 정으로 보나 예의로 보나, 강서이는 민두해를 한 번 찾아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강서이는 먼저 강윤희를 집에 데려다준 후에 민두해를 찾아갔다. 오는 길에는 일부러 돌아서 민두해가 좋아하는 연꽃 과자도 샀다.늘 굳어 있던 민두해 표정도 강서이가 들어서자 조금 누그러졌다.민두해는 과자를 두 개 먹고 나서 강서이의 근황을 물었다.강서이는 프라임로드투자를 그만둔 뒤 독자적으로 프로젝트를 꾸리고 있다고 했다.지금까지는 진행도 비교적 순조로운 편이라고 덧붙였다.민두해는 강서이가 왜 프라임로드투자를 나왔는지를 묻지 않았다. 민도하와 얽힌 일도 꺼내지 않았다.대신 프로젝트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만 집중해서 물었다.강서이도 숨김없이 하나하나 다 말했다.민두해는 잘하고 있다고 짚어 주는 한편, 실질적인 조언도 몇 가지 덧붙였다.민두해는 다치기 전까지 재계에서 이름을 날리던 인물이었다.당시 민두해는 민성그룹을 이끌며 불과 5년 만에 시장 판도를 뒤흔들었다.부동산부터 인터넷 산업까지, 민두해 손이 닿은 투자는 하나같이 시대 흐름보다 반걸음 앞서나가고 있었다.민성그룹이 가장 잘나가던 시기에는 기업가치가 한때 팔천억 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다만 그 후 오래 지나지 않아 민씨 가문에 큰일이 닥쳤다.아내 주미진은 민성그룹 최고재무책임자로 해외 출장을 나갔다가 현지 사법당국에 은행 사기 혐의로 체포됐다.민두해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가진 것을 거의 다 쏟아부었다.하지만 끝내 돌아온 건 아내의 유골뿐이었다.그 일을 겪은 뒤 민두해는 깊이 무너졌고, 민성그룹도 그때부터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민두해는 교통사고까지 당했고, 두 다리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장애가 남았다.퇴원한 뒤에는 수십 개에 이르던 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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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병원 정문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민도하와 노아리가 나란히 걸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두 사람은 한창 대화하느라 맞은편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강서이를 미처 보지 못했다.강서이 눈에는 민도하 오른손에 감긴 붕대가 먼저 들어왔다.어젯밤 그 한 번에 제법 크게 다친 모양이었다.그런데도 민도하는 끝까지 노아리 곁에 붙어 병원까지 따라왔구나 싶었다.‘어젯밤엔 그냥 손 말고 다리를 끼워 버릴 걸 그랬나?’‘그래야 이렇게 멀쩡하게 돌아다닐 생각도 못 했을 텐데.’병원을 나서자 바깥은 맑게 개어 있었다.B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겨울 햇살이 환하게 내려앉아 있었다.강서이는 고개를 들어 햇빛이 뺨 위에 내려앉는 온기를 가만히 느꼈다. 그러다 입꼬리를 비웃듯 살짝 올렸다.‘뭐가 불가능하다는 건지?’사람 마음이란 원래 변하는 법이었다.지금 강서이가 깨달은 건 단순했다.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고, 해결할 수 있고,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강서이와 하장현이 출장을 떠나는 날은 주말이었다. 하정민은 일부러 학교에서 회사까지 들러 하장현과 사무실에서 한참 수군거렸다.“오빠, 이런 기회는 돈 주고도 못 사. 이번엔 진짜 꼭 잡아야 해!”“내가 서이 언니한테 새언니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오빠한테 달렸어!”“기억해. 고백은 무조건 제대로, 아주 정식으로 해야 해. 꽃도 꼭 있어야 하고! 그래야 오빠가 얼마나 진심인지 티가 나지!”“아무튼 힘내! 나는 B시에서 좋은 소식 기다리고 있을게!”“...”하장현은 하정민 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만약 강 대표가 거절하면 어떡하지?”“그럼 다시 하면 되지!”“난 그게 제일 걱정이야. 괜히 강 대표 불편하게 만들었다가 친구로도 못 지내게 될까 봐.”그게 바로 하장현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였다.하정민은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오빠는 좀 뻔뻔해질 필요가 있어. 게다가 서이 언니도 지금 오빠 프로젝트의 투자자잖아. 오빠가 그렇게 고백했다고 갑자기 사라질 사람도 아니고.”하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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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강서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랐다.그래도 강서이는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했다.한편으로는 분명했다.지난 칠 년 동안 민도하는 강서이와 정상적인 관계의 미래를 단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다는 뜻이기도 했다.강서이는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바깥의 소란스러운 기척을 완전히 끊어 내기 위해서였다.앞자리에 앉은 두 사람은 여전히 쉬지 않고 떠들어 댔다.남자는 여자친구 이사랑에게 민도하 이야기를 자꾸 캐물었다. 나중에라도 잘 보일 방법을 찾으려는 눈치였다.“그럼 네 사촌언니는 완전히 위로 시집가는 거네? 상대가 민도하잖아. 민도하 뒤에는 민성그룹이 통째로 붙어 있는 거고.”이사랑은 숨기지도 않고 뽐냈다. “위로 가는 건 맞지. 근데 우리 언니 남자친구가 우리 언니를 얼마나 끔찍하게 아끼는지 알아?”“나 들었는데, 민도하가 우리 언니를 칠 년이나 기다렸대. 이 정도면 진짜 대단한 순애보 아니야? 사랑이 있으면 조건 차이쯤은 다 넘는 거지.”“그럼 네 사촌언니 집안도 이제 완전히 잘나가겠네.”남자는 부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이사랑은 신이 난 듯 말을 이었다. “나랑 우리 고모는 어릴 때부터 엄청 가까웠거든. 우리 언니가 잘되면 곧 내가 잘되는 거나 마찬가지야.”“내가 프라임로드투자 수석비서 자리만 들어가면, 그다음엔 무슨 자원이든 못 구하겠어? 그땐 그냥 내 말 한마디면 되는 거지.”이사랑 남자친구는 그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애초에 이사랑의 학력이나 실력으로는 프라임로드투자에 들어갈 수준이 아니었다.그런데 노아리가 민도하에게 한마디하자, 이사랑은 면접도 거치지 않고 프라임로드투자에 들어갔다.그 일만 봐도 알 수 있었다.민도하가 노아리를 얼마나 아끼는지, 또 그 마음이 노아리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아무 조건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걸.하장현은 그 대목에서 미간을 깊게 좁혔다.하장현은 강서이 쪽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앞자리 사람들한테 조용히 좀 해 달라고 말해야 하나 잠깐 고민하는 듯했다.그런데 하장현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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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원래 약속한 장소는 두 사람이 묵는 호텔 근처였다.그런데 다음 날이 되자 갑자기 장소가 바뀌었다.강서이는 하장현의 지도교수가 어떤 사람인지 대강은 알고 있었다.업계에서는 손꼽히는 기술 권위자였고, 제자를 여럿 길러냈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들어오는 학생은 몇 되지 않았다.하장현은 그 몇 안 되는 케이스 중 하나였다.하장현은 자기 지도교수가 성격이 꽤 차갑고, 무척 엄격한 편이라고 했다.학교에 있을 때부터 기준이 높기로 이름난 사람이었다.학생이 만든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번 더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쪽이었다.대학원 졸업 시즌만 되면 지도교수 평가란에 자주 적는 말도 늘 비슷했다.나가서 어디 가서 내가 네 지도교수였다고 말하지 마라.“그럼 졸업이 곧 파문이라는 얘기네요?” 강서이가 감탄하듯 말했다. “그 점은 제 지도교수랑도 좀 닮았네요.”좀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던 강서이가 그런 말을 꺼내자, 하장현이 궁금한 듯 물었다. “강 대표의 지도교수님은 어떤 분야였습니까?”“금융이요. 근데 저도 파문당했어요.”이번에는 하장현도 예의 있게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책임감 있는 지도교수님들은 대체로 엄격하신 편입니다. 제 지도교수님도 그렇습니다. 이번 AI 서밋의 핵심 연사이긴 해도, 제자라고 해서 초대장을 뒤로 챙겨 주는 분은 절대 아닙니다.”“지도교수님 말씀으로는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원하는 게 있으면 자기 실력으로 얻어야 한다고요. 그래서 저도 교수님께 초대장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했습니다.”하장현은 그 말을 하며 꽤 미안해했다.초대장 두 장을 강서이가 얼마나 어렵게 마련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강서이는 하장현보다 훨씬 낙관적이었다. 상황을 보는 방향도 달랐다.“그래서 지도교수님이 직접 전화까지 하셔서 미리 오라고 하신 거잖아요. 그건 결국 우리 ‘문심’이 정말 잘 나왔고, 지도교수님 기준에도 도달했다는 뜻이죠.”하장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강서이는 바로 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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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하장현의 지도교수 이름은 오병태였다.나이는 예순 안팎으로 보였다.하장현이 말해 준 그대로, 웃음기라곤 좀처럼 찾기 어려운 사람 같았다.하장현은 오병태를 마주하자 쥐가 고양이 앞에 선 것처럼 몸을 한껏 낮췄다.“교수님.”“그래.”오병태는 담담하게 받았다.그런데 오병태 시선은 곧 강서이 쪽으로 향했다.오병태는 강서이를 두어 초 가만히 훑어본 뒤 물었다. “네 여자친구냐?”하장현은 깜짝 놀라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교수님. 오해하신 겁니다. 이분은 제 투자자이십니다.”오병태는 이미 하장현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듯했다.강서이 정체를 듣고 나자 강서이를 보는 눈길에도 살짝 힘이 실렸다.오병태는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강서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요. 난 장현이 지도교수예요. 장현이 프로젝트에 투자해 줘서 참 고마워요.”강서이는 두 손으로 오병태 손을 맞잡았다. 연장자를 대하는 예의를 갖춘 태도였다. “말씀 과하세요. 저는 투자자로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하지만 오병태의 생각은 달랐다.투자자는 창업자에게 절대적인 존재이다.투자자가 높은 안목으로 알아보고 끌어주지 않으면, 어떤 사업도 들판을 떠돌다 버려지는 아이디어로 남을 뿐이다.강서이와 하장현이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강서이는 그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들어온 사람은 민도하였다.‘민도하는 노아리와 노아리 가족들 식사 자리에 있던 거 아니었나?’‘그런데 왜 이쪽으로 온 거지?’다만 이번에는 노아리를 데려온 게 아니었다.민도하 옆에는 프라임로드투자 IB본부 2부 본부장 주기홍이 함께 있었다.주기홍은 강서이를 보자 적잖이 뜻밖이라는 눈치였다.강서이가 이런 자리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다만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는 자리라 바로 물을 수는 없었다.“민 대표.”이쪽에서는 오병태가 먼저 일어나 민도하를 맞았다.오병태는 동시에 하장현에게도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눈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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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그래서 누군가 웃으며 물었다. “두 분 사귀는 거예요? 호흡이 너무 잘 맞는데요.”이번에는 강서이가 웃으며 부인했다. “아니에요. 저희는 아주 좋은 협업 관계예요. 이런 호흡도 다 같이 일하면서 쌓인 거고요.”조금 전 오병태도 비슷한 질문을 했던 터라, 사람들은 한마디씩 더 얹었다.“교수님 앞이라서 일부러 아닌 척하는 거 아니에요?”하장현은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저희는 아직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그 말에 들어간 ‘아직’이라는 한마디가 묘하게 여운을 남겼다.다행히 다들 농담은 적당한 선에서 멈췄다. 더 캐묻지는 않았다.그때 옆에 있던 민도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식사하세요. 저는 잠깐 나갔다가 오겠습니다.”오늘 식사 자리를 만든 사람은 민도하였다.민도하가 잠깐 자리를 비운다고 해서 누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오히려 민도하가 나간 뒤 주기홍이 먼저 말을 보탰다. “민 대표님 여자친구분도 여기서 식사 중이라 잠깐 들르신 겁니다. 제가 민 대표님 대신 한잔 올리겠습니다.”결국 노아리한테 가는 거였다.이렇게 중요한 자리에서도 몸을 빼서 가야 할 만큼 신경을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그 정성은 듣는 사람까지 놀랄 정도였다.강서이만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강서이는 여전히 힘을 빼지 않고 사람들과 문심 이야기를 했다. AI 시장 흐름 이야기도 이어 갔다.민도하는 생각보다 긴 시간 돌아오지 않았다.식사 자리가 거의 끝나 갈 무렵이 되어서야 다시 들어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자리를 정리했다.강서이가 하장현을 부축하고 있을 때, 민도하 핸드폰이 울렸다.민도하는 전화받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갈게.”누가 봐도 노아리 전화였다.강서이는 일부러 조금 천천히 움직였다.그러고 나서야 하장현을 부축한 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마침 엘리베이터가 이 층에 서 있었다.강서이는 얼른 버튼을 눌렀다.그런데 문이 열리자 안에는 민도하가 서 있었다.강서이는 미간을 살짝 좁혔다.왜 하필 또 이렇게 겹치는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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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목소리는 아주 컸고, 의미도 누구나 알아들을 만큼 분명했다.노아리는 보기 드물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사랑이 떠난 뒤에야 민도하에게 조금 난처한 듯 설명했다. “사랑이는 어릴 때부터 좀 호들갑스러운 편이야. 말도 돌리지 않고 직설적인 편이고. 너무 마음에 두진 마.”“뭘 마음에 두지 말라는 거야?” 민도하가 웃으며 되물었다.“사랑이가 나를 형부라고 부른 것? 아니면 방금 한 덕담을?”정말... 때와 장소도 가리지 않고 저렇게 서로 밀고 당긴다.민도하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예전에는 일과 사생활을 저렇게까지 섞지 않던 사람이었다.결국 사랑 앞에서는 민도하도 달라진 셈이었다.확실히 달라진 모습이 낯설 정도였다.강서이에게는 민도하를 처음부터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처럼 느껴질 만큼.어쩌면 지난 시간은 전부 강서이 혼자 꾸었던 짧은 꿈이었는지도 몰랐다.강서이가 사랑했던 사람은 눈앞에 있는 민도하가 아니라, 강서이 스스로 마음속에서 만들어 낸 민도하의 허상이었는지도 몰랐다.결국 강서이 혼자 제 사랑에 취해 7년을 지냈는지도 몰랐다.노아리는 부끄러워진 듯, 민도하 말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잠깐 망설였다.마침 그때 강서이가 하장현을 부축한 채 곁을 지나갔다.노아리는 민도하를 향해 민망한 듯 타박했다. “사람들 있잖아.”민도하는 강서이를 한번 무심하게 봤다.곧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시선을 거뒀다.강서이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두 사람 앞을 그대로 지나쳐 길가 쪽으로 가 택시를 잡으려 했다.노아리는 민도하를 올려다봤다.민도하는 노아리를 위해 차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가자.”“응.”노아리는 차에 오르기 전, 강서이가 멀어지는 쪽을 아주 옅게 훑어봤다.입가도 또렷이 올라가 있었다.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웃음이었다.그동안 지켜본 끝에 노아리는 확신하게 됐다.민도하에게 강서이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차갑다고 해도 될 만큼 무심했다.남자가 여자에게 품는 소유욕 같은 건 더더욱 보이지 않았다.그러니 강서이가 민도하 곁에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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