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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101 - Chapter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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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역시나 투표가 시작되자마자 강지현에게는 만장일치의 찬성표가 쏟아졌다. 그녀의 권한은 그 자리에서 즉시 활성화되었고 임명장 또한 전 직원에게 전달되었다.모든 것이 끝났을 때, 주단우의 오만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넥타이도 느슨하게 풀어 헤쳐졌다. 그는 안경을 벗어 던지며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혔다.“부대표님,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쉽게도 엄 대표님이 며칠째 안 계시네요. 그분께 경영 노하우를 좀 배우고 싶었는데... 대신 안부라도 전해주시고 부디 쾌차하시길 바란다고 말씀해주세요.”강지현은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나섰다. 떠나기 전, 그녀는 주단우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그래, 알았어.”주단우는 이를 악물며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모두가 떠난 뒤, 그는 곧장 사무실로 돌아가 격분한 채로 방금 찬성표를 던진 두 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체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꾼 건지 맹렬히 따져 물었다.강지현의 금융계 인맥이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었던 모양이다. 그 두 주주의 약점까지 모조리 파헤쳐 놓았을 줄이야.현재 그들의 모든 자산은 주상 그룹에 묶여 있고 생명까지 주상 그룹과 깊이 얽혀 있다. 또한 주단우를 위해 부정한 이익 제공까지 몰래 해왔던 터였다.강지현은 그들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녀의 권력 승계를 돕지 않을 경우, 수십조 자산을 미끼로 주상 그룹 주가를 휴짓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초토화 작전을 개시할 예정이었다.그들은 감히 도박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강지현이 마음먹고 독하게 나오면 정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테고 결국 손해를 보는 건 이사회에 속한 자신들이니까.게다가 주단우와의 은밀한 거래 내용까지 그녀에게 넘어갔으니...주단우는 너무 분해서 심장이 욱신거릴 지경이었다. 이 늙은이들은 역시 믿을 구석이 못 됐다.이토록 중대한 일을 감히 그와 상의도 없이 처리하다니. 그는 몇 마디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전화를 툭 끊고는 즉시 차를 몰아 엄경미를 찾아 나섰다.그 시각, 강지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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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알았어, 자기야. 꼭 약속할게!”이도운은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는 백하린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강지현이 회사로 돌아오는 것은 이미 물 흐르듯 당연한 수순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이규진이 최후통첩을 날렸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지현을 다시 불러와 엉망진창이 된 이경 그룹을 수습하라고...50%의 지분을 확보하려면 결국 어머니와 민지가 가진 주식까지 강지현에게 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이 모든 일을 그 두 사람 몰래 처리했고 오늘이 마지막 기한이다. 백하린과 함께 시간을 보낸 뒤에는 곧바로 강지현을 찾아가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라 이도운도 잠시 모든 번뇌를 접어두고 싶었다.어차피 강지현이 돌아오면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을 테고 나중에 어떻게든 그녀에게서 모든 걸 다시 토해내게 할 방법이 있겠지.백화점에 도착하자 백하린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그녀는 이도운의 팔짱을 끼고 가방부터 시작해 액세서리까지 깡그리 쇼핑했다.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무려 2억이나 플렉스한 백하린, 손목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팔찌를 보며 그녀는 행복한 듯 이도운의 품에 기댔다.“도운아, 고마워. 나 이제 기분이 훨씬 좋아졌어. 너무 많이 쓴 거 아니야? 어떻게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이렇게 비싼 걸 다 사줘...”“당연히 사줘야지. 내 돈은 전부 너 쓰라고 있는 건데.”이도운은 그녀의 가늘고 하얀 손목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강지현과 함께 쇼핑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아무리 선물을 마음껏 고르라고 해도 수년 동안 그 여자는 몇십만 원이 넘는 물건은 고른 적이 없었다.그녀가 가진 가장 비싼 물건이라야 아마 자기 힘으로 모아 산 것들뿐이었다.강지현은 그의 돈을 쓰는 것을 늘 아까워하며 회사가 아직 성장 단계이니 아낄 수 있을 때 아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어, 저기 저 브랜드 너무 예쁘다. 우리 저기 한번 가볼까?”백하린의 눈이 반짝였다. 유명한 왕실 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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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백하린의 불만 표시는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다. 이도운은 재빨리 그녀에게 시선을 던지며 자제하라고 은밀히 경고한 뒤에야 말을 이었다.“지현이 네가 회사에 없는 동안 교수님이 확실히 회사 일을 많이 도와줬어. 윤후도 줄곧 돌봐줬고.”“그래? 그렇게 열심히 하셨다는데 왜 내가 듣기론 교수님이 프로젝트를 망치고 사직서까지 냈다고 했을까? 이틀 전에는 아줌마가 문자 보내셨는데 교수님이 밤중에 짐 싸서 나갔다고 하는 건 또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강지현이 일부러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질문을 내던지자 두 남녀는 대뜸 똥 씹은 표정이 돼버렸다.백하린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글거리는 눈길로 그녀를 째려봤다.이때 이도운이 즉시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지현아, 네 프로젝트는 교수님께서 최선을 다했어.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거래처에서 오직 너만 찾잖아. 게다가 집까지 나갔으니 교수님도 계속 계시는 게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짐 뺀 거야. 이만 화 풀고 나랑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 응?”이도운의 말투가 점점 더 부드러워지고 가까이 다가서며 강지현의 손까지 잡으려 했다.그녀는 쏜살같이 남자의 손길을 피했다. 남우 주연상급 연기에 박수라도 쳐주고 싶었다.“너한테 화낸 적 없어. 다만 요즘 혼자 지내는 게 훨씬 편하더라고. 게다가 교수님도 나보다 윤후 더 잘 돌보니 네 옆에 있는 게 마음이 놓이지.”“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네가 원하는 지분 다 모아뒀어. 내일 오전에 회사로 돌아와 줘...”이도운은 백하린이 곁에 있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이제 이경 그룹의 절반이 네 몫이야. 더는 나한테 불안해할 거 없다고.”순간 백하린이 손이 떨려서 방금 산 물건들이 우르르 바닥으로 떨어졌다.숨이 막힌 나머지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이도운이 거짓말을 할 줄이야.정말로 이경 그룹의 절반을 강지현에게 넘길 생각이었다니!“지현아, 이 매장은 제일 저렴한 제품도 2억 원 가까이 하던데 그 커프스도 만만치 않아 보이네? 도운이 주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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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이거 다 내돈내산이에요. 지난 몇 년간 이경 그룹에 안겨준 이익이 이미 조원이 넘어서 설령 도운이가 돈을 줬다 해도 내가 받아야 할 배당금의 푼돈도 안 될 거예요. 이참에 여기서 모든 정산 내역을 항목별로 따져보는 게 어때?”강지현이 차분하게 쏘아붙였다. 이를 듣고 있던 이도운은 제대로 저격당해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가 가장 꺼리는 것이 바로 강지현이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나마 남자의 체면을 세워주느라 회사를 온전히 혼자 이끌어왔음에도 모든 공을 이도운에게 돌리곤 했었다.하지만 그녀가 각 잡고 따지기 시작한다면 지금까지 진행했던 모든 프로젝트의 수치는 누구든 확인할 수 있는 명백한 실적으로 드러날 것이다.“지현아,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야, 그리고 교수님도 그럴 의도는 아니잖아.”이도운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라 해명하고 싶어도 강지현이 들을 기미가 없이 바닥에 떨어진 쇼핑백들만 힐끗 쳐다보았다.“교수님, 꽤 많이 사셨네요. 이것들 다 합치면 얼마야? 도운이 오늘 좀 썼네? 나한테 미리 말도 없이? 지금 네가 쓴 돈 ‘우리 부부’의 공동 재산인 건 알지?”강지현은 일부러 ‘우리 부부’라고 강조했다.“강지현, 너!”제대로 긁힌 백하린은 당자이라도 달려들어 그녀의 멱살을 잡고 싶었다.부부 공동 재산은 개뿔, 어디 강지현 따위가!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강지현이 쓰는 돈이야말로 백하린의 남편 이도운의 재산인 것을.그러나 이도운이 한발 앞섰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쇼핑백들을 재빨리 주워 강지현에게 건넸다.“오해야, 지현아. 이것들 다 거래처 선물이야. 백 교수님 건 아직 사지도 않았어. 네가 싫다면 안 살게. 교수님 이런 거 신경 안 써. 너야말로 속 좁게 굴지 마. 이제 하다 하다 교수님까지 질투해?”이도운은 나름 태연했다. 심지어 살짝 웃음기까지 띠며 여유로운 척 행동했다.강지현 역시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려 백하린의 손목에 채워진 노란 다이아몬드 팔찌를 바라보았다.“그 팔찌도 거래처 선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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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손님, 이건 너무 고가라서 받을 수가 없어요...”“받으세요. 우리 남편 돈 많아요. 친구들한테도 원래 이렇게 선물해요. 방금도 보셨잖아요?”“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여자 점원은 그야말로 몸 둘 바를 몰랐다. 좀 전에 옆에서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며 이 삼각관계의 전말을 파악한 터였다.역시 재벌가 사모님 노릇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예쁜 아내를 두고 왜 굳이 한눈파는 걸까?그래도 강지현이 보여준 처신만큼은 완전 사이다였다.이도운은 그녀가 수억을 호가하는 명품을 저리 쉽게 남에게 내주는 모습을 보고 속상해서 미간을 잔뜩 구겼다.“지현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이게 다 널 위해서잖아. 안 그러면 멋대로 딴 사람 데려와서 선물 고르는 꼴을 회장님께 알리고 싶어?”강지현이 고개를 홱 돌리고 반박했다.환한 미소와 달리 내뱉는 말은 가차 없었다.이도운은 이를 박박 갈았다. 그녀가 백하린과 기 싸움을 벌이는 걸 뻔히 알면서도 스스로 운이 안 따라준다고 인정할 따름이었다.여자의 질투는 끔찍함 그 자체이다.백하린도 그렇고 강지현도 마찬가지였다.옆에서 지켜보던 백하린은 속에서 천불이 났다.강지현이 득의양양하게 굴며 노골적으로 자신을 모욕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하지만 이도운이 곁에 있으니 둘만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결국, 그녀는 눈물이 툭툭 떨어지자 황급히 등을 돌려 손으로 쓱 닦았다.이도운도 그녀의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안타까웠지만 이제 막 다가가려는데 강지현이 선물을 고르는 걸 봐달라며 다시 불렀다.방금 점원에게 푸짐한 선물을 했더니 갖은 정성으로 매장의 최고급 상품들을 모조리 꺼내왔다.최상급 터키석 커프스단추, 맞춤 제작 상품으로 가격은 3억9천6백만 원이고 제작 기간은 무려 석 달이 걸린다고 한다.“지현아, 이건 너무 사치스러워. 다른 거로 바꾸는 게 어때?”“나보고 고르라며? 백 교수님이 고른 것보다 조금 비싸긴 해도 품격 자체가 하늘과 땅 차이야. 이 브랜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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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강지현이 마침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자 이도운도 안심했다.그녀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한편으론 백하린과 이윤후를 챙기기 편하지만 어쨌거나 겉치레는 해야 했다.이 여자가 계속 토라진다면 그 역시 머리가 아플 테니까.“난 개인적인 일이 있으면 안 돼? 꼭 너랑 이경 그룹만 맴돌아야 하는 거니? 말했잖아, 혼자 지내는 게 훨씬 편하고 조용해서 좋다고. 그러니까 별일 없으면 제발 좀 찾지 마.”강지현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제 연기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다만 이도운은 그녀가 여전히 투정을 부리는 거로 여겼다.“지현아, 우리가 결혼한 지 2년이 됐고 너도 이제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한 거 알아. 그렇지만 난 너 없이는 안 돼. 요즘 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강지현이 미처 대꾸하기도 전에 점원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백하린이 쓰러진 것이다.이를 본 이도운은 거의 본능적으로 달려가 뭇사람들을 파헤치고 그녀를 꽉 껴안았다.“하린아, 정신 차려!”백하린은 마치 급성 쇼크라도 온 듯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도운은 그녀의 이름을 몇 번이나 애타게 부르더니 곧바로 품에 안고 차고로 직진했다.제 자리에 서 있는 강지현에게 인사를 건넬 겨를조차 없이 말이다.역시 찐사랑의 위력은 이길 수가 없구나. 연기도 채 이어가지 않고 사랑하는 애인을 챙기는 걸 보면...하긴, 10년의 감정과 6년의 속임수라면 어느 쪽이 더 소중한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법했다.강지현은 기분이 확 잡쳤다. 오늘 저 두 남녀를 마주친 것 자체가 재수 털리는 일이었다....그날 저녁, 집에 도착하자마자 김태하에게 전화를 거는 그녀였다.자신이 고른 선물을 감상하며 은근한 기대까지 품었다.“네, 지현 씨.”전화가 연결되자 김태하의 목소리가 곧장 귓가에 닿았다.평소와 같은 말투였지만 혹시 그녀만의 착각일까? 남자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부드럽게 느껴졌다.뼛속까지 녹아내릴 듯한 그런 부드러움이었다.“다름이 아니라... 내일 혹시 시간 돼요? 같이 저녁 먹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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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백화점에서 너무 분해 피가 거꾸로 솟을 지경이었고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며 눈앞이 캄캄해졌다.하지만 쓰러진 것은 절반이 고의였다.이도운이 구걸하듯이 강지현을 어르고 달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확 죽고 싶은 심정까지 들었다.다행히도 결정적인 순간에 이 남자가 가장 걱정하는 사람은 여전히 자신이었다. 그녀가 쓰러지자 강지현을 내팽개치고 곧장 병원으로 실어왔으니까.의사에게 약을 처방받고 병원에서 백하린과 함께 한참을 더 머무른 후에야 집으로 돌아왔고 그 후에도 그녀를 위해 죽까지 끓여주었다.“도운아, 지현이 왜 저렇게 모질게 굴어? 너도 봤지? 오늘 쟤가 우리 둘한테 어떻게 대했는지. 이참에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을까? 어차피 아이도 가졌으니 너희 부모님은 내가 아무리 미워도 받아들이시겠지.”이도운이 해물 죽을 식혀 그녀에게 떠먹이려던 찰나, 이 여자가 대뜸 그의 손목을 잡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이런 말을 속삭였다.백하린이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 역시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도운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었다.“하린이 너도 우리 부모님 성격 알잖아. 설령 부모님께서 우리가 한 짓을 다 받아들이신다고 해도 회사는 어쩔 거야?”집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회사까지 피해를 보게 할 셈인가?백하린은 이 남자가 자신의 제안을 반대할 걸 뻔히 알지만, 이 억울함을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그녀는 입가에 다다른 죽을 냉큼 외면했다.“강지현이 회사로 돌아오면 너희 가족 모두가 그 여자 손에 휘둘리게 될 거야. 그때 가서 난 뭘 더 바랄 수 있는데?”“그렇지 않아. 지현이 회사로 돌아오면 나 걔랑 천천히 관계 회복할 거야.”강지현만 생각하면 이도운은 가슴이 답답했다.오늘 백하린 때문에 그녀와 제대로 화해하지 못했다. 나중에 다시 전화를 걸어 해명하려 했지만, 상대는 냉랭한 어투로 대답했다. 일단 백하린이나 잘 돌보라고 말이다.질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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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강지현은 순간 가슴이 움찔거렸다.연인들의 기념일에 김태하를 불러낸 것이 괜히 그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닐까...그녀가 예약한 자리는 맨 위층의 가장 럭셔리한 룸이었다. 삼면의 통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해원시의 화려한 야경이 한눈에 들어왔다.밤이 깊어지자 세상의 소음마저 잦아들고 왠지 모를 고요함이 짙게 내려앉았다.불현듯 강지현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이도운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취소하려다가 손이 미끄러져서 그만 통화를 수락했다.“지현아.”이도운의 목소리가 전해졌고 그녀는 더 이상 끊을 수가 없었다.실은 이도운도 그녀가 받을 거라곤 예상 못 했던지 말투에 은근한 희열이 섞여 있었다.‘얘도 어느 정도 화가 풀린 모양이네?’“뭔데?”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오늘 실버데이잖아. 지금 안 바쁘지? 레스토랑 예약했어. 우리 함께...”강지현은 그의 말을 싹둑 자르고 무언가 떠오른 듯 입꼬리를 올렸다.“백 교수님은 어떻게 됐어? 어제 기절한 터라 한창 사람 손길이 필요할 때겠네? 오늘 같은 날에 교수님이랑 함께 보내야 하는 거 아니야?”야유가 가득 찬 내용이지만 하도 부드럽게 말하니 이도운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대답했다.“괜한 생각 하지 마. 내가 왜 교수님이랑 이런 날을 함께 보내? 몸이 안 좋아진 건 측은하지만 계속 옆에 있을 의무는 없어.”의무가 없다고...결혼생활 2년 동안 오늘 같은 실버데이는 몰라도 밸런타인데이 때는 강지현이 항상 먼저 귀가해 모든 걸 세팅해두고 기다렸지만, 상대방은 한밤중에야 겨우 굴러들어왔다. 그 이유가 대체 뭘까?어느 한 번은 이도운에게서 낯선 향수 냄새를 맡은 적도 있었다.그럼에도 그녀는 이 남자를 굳게 믿었다. 거래처라고 하니 의심조차 하지 않았고 되레 그를 안쓰러워했다.함께한 6년 동안 그녀는 아내로서 해야 할 모든 걸 완벽하게 소화했다.자신의 모든 신뢰와 헌신, 그리고 본디 여유롭지 못했던 애정까지도 모조리 내어주었다.그 모든 걸 이도운이 스스로 망가뜨린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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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갓 이도운을 알았을 무렵, 그는 소년티를 벗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벌써 지나치게 반듯하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일 처리는 흠잡을 데 없이 치밀했고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결코 없었다.식당에서 저렇게 품위를 잃고 취해있는 모습은 본인부터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이도운의 눈가에 희미한 눈물 자국이 남아 있었다. 모든 일의 무게를 홀로 감당하느라 그의 영혼이 간신히 버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백하린은 그를 보면 볼수록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곧 식당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만취한 이도운을 차에 부축해 태웠다.조수석에 힘없이 누워 있는 남자의 옆모습을 보며 백하린은 미간을 찌푸리고 그의 뺨을 쓸어내렸다.이제 막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려던 순간, 이도운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지현아... 나한테 이러지 마...”그는 벌떡 일어나 백하린의 손을 거칠게 움켜쥐고 그녀를 품에 끌어당겼지만, 입에서는 강지현의 이름만 반복해서 흘러나왔다!백하린은 두 눈을 부릅떴다. 심장은 마치 날카로운 칼에 관통당한 듯 고통스러웠다.한참 멍하니 있고 나서야 이도운을 거칠게 밀쳐냈다.“야, 이도운! 너 혹시 강지현 사랑하게 된 거야?”다만 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이도운은 그녀에게 밀쳐져 손만 휙휙 내저을 뿐 끊임없이 강지현의 이름만 불렀다.“지현아, 제발 날 용서해 줘...”“야!”백하린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도운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그러고는 차에서 홱 내려버렸다.그 시각, 강지현은 늦게까지 기다렸지만, 김태하가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휴대폰에 남은 마지막 통화 기록을 바라보았다.두 시간 반 전, 김태하가 급한 일이 생겨 늦을 것 같다고 문자를 보내왔다.웨이터도 미안한 표정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귀띔했다.“손님, 정말 죄송한데 저희 이제 마감 시간이에요.”강지현이 고개를 들자 벌써 열한 시 반이 돼버렸다.창밖의 불빛마저 하나둘 스러지고 나니 이 밤은 끝없이 깊어만 갔다.“죄송해요. 금방 갈게요.”그녀는 고개를 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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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네.”김태하가 나직이 대답했다. 방금 회의를 마치고 예상 출발 시각보다 몇 분 늦게 나와서 시간에 쫓겨 고속도로에 진입하려다 연쇄 추돌 사고에 휘말렸던 것이다.부상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다. 대부분 찰과상 수준이었지만 사고 현장이 커서 길이 통제되느라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강지현이 걱정할까 봐 전화로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고 상처도 급히 대충 처리한 후 약속 장소로 달려왔다.“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왜 말도 안 했어요! 약속이 뭐가 중요하다고! 태하 씨 안전이 우선이죠.”강지현은 가슴이 철렁거렸다. 남자의 모습을 보니 그녀의 마음속 방어선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온몸을 관통하는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주저 없이 김태하를 끌어안았다.“지현 씨...”김태하는 가슴이 움찔거리고 눈빛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녀의 체온이 낯설도록 따스해서 밤바람에 뼛속까지 시린 김태하의 몸을 사르륵 녹여주었다.그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올렸다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강지현의 가녀린 등 위로 살며시 얹었다.큰 손이 그녀의 비단 같은 머릿결을 천천히 쓸어내리자 은은하게 배어 나는 나무 향이 코를 찔렀다. 그 향은 낯설지만 깊은 안정감을 주며 그 순간 엄청난 안도감을 느꼈다.잠시 후, 강지현이 감정을 추스르고 나서야 쑥스러워하며 그에게서 몸을 떼어냈다.“죄송해요, 제가 너무 경솔했네요... 태하 씨가 다친 걸 보니 너무 놀라서 그만... 혹시 저와의 약속 때문에 사고가 난 거라면 평생 죄책감을 느낄 거예요.”그녀의 눈가에 아련한 눈물이 맺혔다. 아무래도 정말 이 남자를 많이 걱정했나 보다.말을 끝내기 바쁘게 또다시 김태하를 아래위로 꼼꼼히 살펴보았다.“또 다른 데는 다친 곳 없어요? 지금 바로 병원 가서 검사받아 봐야겠어요!”김태하는 서둘러 약속 장소로 오느라 병원에서 제대로 검사도 못 받았을 것이다.“가벼운 찰과상뿐이라 괜찮아요. 오히려 지현 씨와의 저녁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요.”김태하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미안한 기색을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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