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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151 - Chapter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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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화

강지현은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샤워부터 한다. 하지만 오늘은 김태하가 있으니 잠시라도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녀는 넌지시 물었다.“뭐 하고 싶어? 영화든 책이든 게임이든 다 같이 해줄 수 있는데.”강지현의 연애 경험이라고는 까마득한 학창 시절의 풋풋했던 짝사랑이 전부였다. 솔직히 말해 아직 찐 사랑도 못해본 새내기 소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때는 이도운이 먼저 다가왔고 데이트 계획도 늘 그가 짜다 보니 대부분 이도운의 취향이 우선이었다.학창시절 이도운은 스포츠 경기를 보는 걸 유난히 좋아했고 강지현은 그를 따라 여기저기 경기를 보러 다녔다. 졸업 후에는 데이트라고 해봤자 밖에서 밥 먹고 쇼핑하는 게 전부였다.이도운은 일에만 몰두하여 회사가 상장하거든 그녀에게 밀린 신혼여행을 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때는 강지현이 원하는 곳, 하고 싶은 모든 걸 다 들어준다고 했다.하지만 강지현은 그런 미래를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사랑에 있어서 그녀는 늘 묵묵히 감싸 안고 지켜주는 편이었고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다.“굳이 나랑 뭘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돼. 피곤하면 쉬어. 기분이 안 좋으면 네가 기분 좋아질 만한 걸 하면 되고. 너만 괜찮다면 오늘 있었던 일을 나한테 이야기해 줘도 돼. 엄청 궁금하거든.”김태하가 이 말을 건넸을 때, 강지현은 잠시 멍해졌다.남자는 그녀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 피로감을 알아챘다.오늘 강지현은 꽤 늦게 돌아왔다. 그 이유를 굳이 묻지 않았지만, 그녀가 기분 나쁜 일을 겪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그럼 나 먼저 샤워부터 하고 올게. 우리 그때 못 본 영화 이어서 보자. 근데... 오늘도 끝까지 못 볼 수도 있어. 지금 좀 많이 피곤하거든. 그래도 너랑 같이 이야기 나누고 싶긴 해.”강지현은 잠깐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재벌가에서 정략결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안다.그것은 자원 통합, 철저한 이해관계, 상호 지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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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김태하가 그 일을 아직도 신경 쓰고 있었다니, 강지현은 마음이 뭉클해졌다.“별거 아니야. 말해봤자 너도 덩달아 기분 나빠질 텐데 뭘.”그녀가 나지막이 대답했다.사실 강지현은 이도운에게 복수하려는 계획을 그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김태하는 겉모습과 달리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다. 깊은 상처로 얼룩진 자신의 내면에 아직도 짙은 원망과 분노를 품고 있는 모습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 감정들을 완전히 도려내기 전까지는...강지현이 입을 열지 않자 김태하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전에 말했던 일은 아직 정리 안 됐어?”잠시 후, 그가 다시 말을 꺼냈다.강지현은 잠시 멍해 있다가 이 남자가 이도운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깨달았다.“응. 곧 마무리될 거야. 아직 손 봐야 할 게 좀 남았거든.”“혹시 내 도움 필요해?”김태하가 다시 한번 묻자 그녀는 여전히 담담하게 대꾸했다.“괜찮아. 나 혼자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어.”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이 필요할까?더군다나 이도운 같은 인간을 상대하는데 어찌 김태하의 손을 더럽힐 수 있을까!그녀는 이도운을 천천히 괴롭힐 생각이다. 6년 동안 그 남자가 뺏어간 모든 것을 되갚게 하고 싶었다.“...”김태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굵직한 팔로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자신에게 기대게 했지만 정작 마음은 얼음장 속으로 가라앉는 것처럼 형언할 수 없는 상실감이 휘몰아쳤다.조금 전, 몇 통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누군가 병원에서 강지현이 한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그녀는 오늘 밤 이도운을 만나러 간 것이었다.그렇다면 오늘 기분이 나쁜 이유도 그 남자 때문이겠지.강지현과 6년을 함께한, 그녀의 첫사랑 이도운, 배신을 당했어도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는 걸까?김태하는 너무 묻고 싶었으나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끝내 다시 삼켰다.오랜 세월 쌓인 감정이 단숨에 정리되지 않는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녀의 마음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고 씁쓸함이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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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일어났어? 아침은 문 앞에 뒀으니 챙겨 먹어.]강지현은 메시지를 보고 곧바로 방문을 열었다. 아니나 다를까 문 앞에 검은색 원형 보온 도시락이 놓여 있었다.도시락 안에는 정교하게 빚은 만두와 여러 종류의 다과, 해물 죽과 두유 등 갖가지 음료까지 가득했다.전부 집에서 쓰는 보온 용기에 담겨 있었는데 겉모습만 봐도 김태하네 집 요리사가 정성껏 만든 것이 분명했다.강지현은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고마워, 잘 먹을게. 넌 아침 먹었어?]사실 그녀는 묻고 싶은 게 더 많았다. 어젯밤에는 왜 그냥 가버렸는지, 오늘은 할 일이 많은지 등등.하지만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한 문장만 보내고 말았다.김태하는 금세 답했다.[먹었어. 지금 좀 바빠서 나중에 얘기해.]남자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자 강지현은 열심히 작성했던 긴 문장들을 싹 다 지우고 알겠다며 답장하곤 이모티콘만 하나 남겼다.김태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나서야 자신의 사무실에 다짜고짜 쳐들어온 여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지아야, 우리 회사 규정상 사전 약속 없이 날 찾아오는 건 금지되어 있어. 다음에 또 이런 식이면 서강 그룹과의 모든 협력을 취소하는 수가 있어!”김태하의 목소리는 얼음장 같았다. 그는 의자에 넌지시 기대앉아 서지아를 쳐다볼 의지조차 없는 듯했다.그녀의 눈가가 붉게 충혈되었다. 최동윤과 경호원들은 옆에 서서 대체 그녀를 강제로 내보내야 할지 망설였다.서씨 가문과 김씨 가문은 요즘 중요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중이라 서지아도 마침 미래 그룹 내 통행증이 있었다.두 사람은 꽤 안면이 있었고, 전에도 서지아는 급한 일로 김태하와 연락이 닿지 않을 때 종종 사무실로 찾아오곤 했었다. 그때마다 김태하는 늘 무덤덤하게 대처했을 뿐 이렇게 심한 말을 한 적은 없었다.하여 그의 직원들 역시 서지아에게 늘 예의를 갖춰왔다.“태하야, 내 카톡 왜 삭제했어? 왜 이렇게 매정하게 구는 거야? 내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 그렇게 너한테 상처 준 여자를 아직도 믿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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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내가 그렇게 싫어? 전에 일은 다 내가 잘못했어. 나한테 복수하려고 스스로를 이렇게 괴롭힐 필요는 없단 말이야. 그 여자는... 정말 너한테 안 어울려.”“내가 한 말 못 들었어?”김태하가 서지아의 말을 자르고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더 이상 그녀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서지아는 이 남자가 내뱉은 말을 반드시 실행하는 사람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그는 협력 취소를 감행할 것이 분명했다.서강 그룹은 미래 그룹만큼 재력이 막강한 회사가 아니다. 이번 양사의 협력 프로젝트는 서강 그룹 입장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는 투자를 이어오고 있었다.“알았어. 나갈게, 당장 갈게. 더 이상 강지현 뒷조사도 안 하고 그 사진들도 싹 다 삭제할게!”서지아는 가족들의 생계가 걸린 문제로 김태하와 기 싸움을 벌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결국 마지막 순간에 굴복하고 말았다.여자가 눈물범벅이 되고 나서야 김태하도 전화를 내려놓았다.“나가 봐.”그는 나직이 이 한 마디만 내던질 뿐 일말의 동정심도 실려있지 않았다.서지아는 얼굴을 감싸고 엉엉 울며 황급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최동윤도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내심 안쓰러웠다.잠시 후,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며 대표님께 뒷수습해야 하나 물으려던 참인데 김태하가 덤덤하게 말했다.“앞으로는 내 허락 없이 서지아 사무실에 들이지 마. 그리고 이번에 서강 그룹과의 프로젝트 협력이 끝나면 영원히 협력 안 한다고 지시해둬.”김씨 가문과 서씨 가문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고 김태하와 서지아의 관계 역시 과거에는 남달랐다.최동윤은 설령 대표님이 결혼하더라도 서지아에게 이렇게까지 무정하게 대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이 남자가 진짜 이 지경으로 해버리다니.대체 이건 매정한 것일까 아니면... 더 신경 쓰다 보니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까?...오후가 되어 권미숙 어르신은 며느리 문수정의 부축을 받으며 이씨 가문 본가로 막 돌아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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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윤후가 그년이 밖에서 낳은 잡종이었어. 어쩐지 도운이가 그렇게 감싸고 돌더라니. 두 사람 역시나 질긴 인연이라 끊어지지 않았던 거야. 도운이도 분명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야!”문수정 역시 기가 막혀 이도운을 옹호할 생각조차 못 했다. 남편 이규진이 집에 없었으니 망정이지 만약 그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도운을 아작냈을지도 모른다.권미숙은 겨우 마음을 다잡고 병원에 연락해서 친자확인서의 진위를 확인했다.대체 누가 이런 걸 집에 보냈는지,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급선무는 백하린과 이윤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다.가문의 수치스러운 비밀은 결코 밖에 새어 나가서는 안 되며 이경 그룹에까지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저녁 무렵, 이도운은 다급한 전화 한 통에 본가로 불려 갔다.할머니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는데 집에 도착하자 엄마와 할머니가 거실에 앉아서 정색한 얼굴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무슨 일이에요? 할머니, 엄마, 집에 뭔 일 생겼어요?”이도운은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을 감지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문수정이 차가운 시선으로 쏘아봤다. 그제야 이도운은 테이블 위에 놓인 팩스 보고서를 발견했다.“아니 이건...”이도운은 표정이 돌변하며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엄마, 이거 누가 보낸 거예요?”“익명으로 왔지만 보고서는 진짜야.”문수정이 차갑게 답했다. 한편 권미숙은 정면만 응시한 채 자리에 미동도 없이 앉아서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그녀가 이럴수록 이도운은 등골이 더욱 서늘해졌다.“이거 분명 가짜일 거예요. 윤후는 제가 입양한 아이인데 어떻게 하린 씨랑 관련이 있겠어요? 아마 경쟁사에서 저희 집안을 이간질하려고 꾸민 짓일 겁니다...”“너랑 하린의 일은 우리 가족만 알고 있어. 네가 지현이랑 결혼한 것조차 외부에선 비밀에 부쳐서 아는 사람이 얼마 없는데 진짜 경쟁사가 한 짓이라면 대놓고 스캔들을 퍼뜨렸겠지, 이렇게 시시콜콜한 짓을 할 이유가 없잖아!”이도운이 변명하기도 전에 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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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권미숙은 피식 웃으면서 이제 막 격렬하게 질책을 쏟아부으려는 문수정을 손짓으로 제지했다.“도운아, 일주일 시간 줄 테니 그 여자 깨끗하게 정리해. 그리고 그년한테 꼭 전해. 당장 이 나라 떠나고 앞으론 평생 해원에 발붙일 생각 말라고 해! 안 그러면...”어르신의 흐릿한 눈빛에 잔혹한 한기가 스쳤다.“안 그러면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거다. 평생 제 아들 얼굴을 못 볼 테니!”이 말을 들은 이도운은 무언가 떠오른 듯 잠시 멈칫하다가 곧바로 문수정을 향해 물었다.“엄마, 설마 윤후 데려가셨어요?”그는 당장이라도 집에 전화를 걸려 했으나 문수정이 차갑게 막아섰다.“걱정 마라. 백하린이 순순히 떠나면 일 년 뒤에 걔한테 이윤후 돌려보내 줄 거야. 나라고 그년 아들을 키워주고 싶겠니? 다만 그년이 기어코 너한테 매달린다면 윤후는 평생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보내질 거야. 그땐 백씨 가문도 백하린도 우리 집안과 끝까지 맞서 싸울 각오를 다져야 할 거다.”“할머니, 앞으로 다시는 백하린 안 만나겠습니다! 맹세해요.”이도운은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했다.“그래도 윤후는 단지 제가 입양한 아이인데... 그 어린애한테 손을 대다니...”“도운아, 일이 이 지경으로 됐으니 이제 와서 뭘 더 확인해 볼 필요는 없겠지?”권미숙은 소파 팔걸이를 꽉 움켜쥐고 힘겹게 숨을 삼켰다.“두 번 다시 그년 얼굴 보고 싶지 않아. 우리 가문의 체면을 떳떳하지 못한 아이에 심성이 고약한 여자 때문에 깎아내릴 순 없어. 어떻게 할지는 스스로 판단해.”모든 말을 마친 어르신은 이도운을 더 쳐다보지도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옆에 있던 가정부가 즉시 그녀를 부축해 나갔다.이도운은 할머니를 설득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고 즉시 문수정에게 매달렸다.“엄마! 윤후 어디로 보낸 거예요?”“그건 나도 몰라. 할머니 쪽 사람들이 처리한 일이야. 설령 내가 안다고 해도 너한테 알려줄 순 없지. 하지만 걱정 마라. 우리 집안에서 한낱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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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문 앞에 나타난 이도운을 본 순간, 백하린은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며칠간 두 사람의 관계는 꽤 소원해졌는데, 특히 권미숙이 집에 돌아온 이후로 이도운은 그녀의 연락도 잘 받지 않았다. 종일 강지현 생각뿐인 것 같았다.베프 서이정은 백하린에게 조언했다. 이럴 때일수록 조급해하면 안 되고 오히려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이다.강지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전에는 이도운의 말이라면 거의 강아지처럼 순종적으로 따랐지만 정작 이 남자는 온통 백하린에게 마음을 쏟고 있었다.그런데 이제 그녀가 훌 떠나버리고 이도운을 홀대하자 남자가 오히려 그녀를 그리워하고 난리도 아니었다.이게 바로 인간의 심리, 얻지 못하는 것은 늘 마음을 맴도는 법이다.이도운은 지금 심신이 지쳐있고 스트레스가 극심하니 백하린이야말로 그에게 더 많은 공간을 열어주어야 했다.그녀도 서이정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비록 여전히 억울하고 속상해서 미칠 지경이지만 둘 사이에는 이윤후가 있다.아이가 그녀를 놓지 못하는 한 이도운도 결국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다.백하린은 잠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겉옷을 벗었다. 얇은 캐미솔 원피스만 남긴 채 천천히 문을 열었다.“웬일이야? 이 늦은 시간에 다 찾아오고? 오늘은 갑자기 내 생각이라도 났어? 집에서 뭐라고 안 해?”백하린의 말투에 야유가 가득 찼지만, 목소리가 더없이 부드러워 혼을 쏙 빼놓을 것만 같았다.하지만 이도운은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백하린을 한 번 쓱 쳐다보더니 곧장 안으로 걸어 들어가 앉았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뭐 골치 아픈 일 있어? 회사 일이야?”백하린이 조심스럽게 물으며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남자에게서 짙은 담배 냄새가 났다.평소 이도운은 그녀가 싫어해서 담배를 거의 피우지 않았다.백하린은 의아한 듯 물었다.“담배 피웠어?”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겉옷을 벗기려 손을 뻗었는데 남자가 덥석 손목을 잡았다.“하린이 너... 당분간 해외로 나가 있어야 할 것 같아.”“뭐? 왜?”백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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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이도운,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백하린이 제대로 분노가 폭발했다. 그녀는 대성통곡하더니 이도운의 뺨을 찰싹 내리쳤다.남자는 피하지 않고 그녀의 발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완전히 기진맥진해지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의 손을 놓아줬다.“진실을 다 털어놓는다고 해서 우리가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 할머니 손에 할아버지의 유언장이 있어. 앞으로 이씨 가문의 모든 게 우리와 상관없어진다고. 내가 빈털터리가 되는데 무슨 수로 너랑 윤후를 보살필까? 강지현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 일이 엄청난 스캔들이 될 거야. 그때 가서 우리가 해원에 발붙일 곳이 있을 것 같아?”이도운의 말은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한마디 한마디가 송곳처럼 백하린의 심장을 콕콕 찔렀다.그녀는 이미 가족들과 절연한 상태인데 이도운마저 이씨 가문에서 버림받는다면 두 사람은 앞으로 무슨 수로 이윤후를 돌볼까?백하린이 잠잠해지자 이도운도 이마를 짚고 깊은숨을 들이쉬었다.“이제 더 이상 일을 키우고 싶지 않아, 하린아.”“그 친자 보고서는 누가 보냈어?”백하린은 무언가 떠오른 듯 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한편 이도운은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아직 몰라. 하지만 우리 사정을 알 만한 사람은 지인일 가능성이 커. 너 당분간 예전 친구들이랑 연락하지 마. 서이정도 포함해서!”“지금 내 친구를 의심해?”백하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강지현이야말로 가장 의심스러운 거 아니야?”강지현 이름 석 자에 이도운은 온몸에 감전된 것만 같았다. 그는 황급히 말을 끊었다.“지현이는 아니야, 절대!”“왜? 왜 아닌데? 잘 생각해봐. 강지현 널 대하는 태도가 너무 달라졌어. 내가 너희 집에 들어온 뒤로 회사 일도 팽개치고 우리 일도 어머님께 들통났어. 그리고 이제 윤후까지...”백하린은 말할수록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여자의 직감이 말해주길 모든 일의 배후에 강지현이 깊숙이 관련되어 있었다.“뇌피셜 그만해!”백하린의 주장은 그럴듯했지만, 이도운은 그저 시큰둥하게 받아들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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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안우진은 이도운만큼 조건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이도운에 비해 강지현과 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입학했을 때 강지현을 처음 맞이해 준 사람이 바로 그였으니까.강지현은 공부를 열심히 했고 안우진은 늘 그녀를 졸라 함께 수업 듣고 자습을 하곤 했다. 그가 옆에 있는 통에 이도운이 강지현에게 구애하는 것이 퍽 불편했다.하여 안우진이 금융학과에서 다른 과로 전과하고 싶어 할 때, 백하린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하지만 안우진이 금융학과를 떠나기 전에 학과 전체 학생들 앞에서 강지현에게 떠들썩하면서도 낭만적인 공개 고백을 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당시 모든 학생들이 분위기를 띄웠고 백하린조차 이도운이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며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다행히 강지현은 전혀 체면을 봐주지 않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깔끔하게 안우진의 고백을 거절했다.백하린은 아직도 안우진이 체면을 구긴 나머지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린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그 일 때문에 안우진은 졸업할 때까지 원래 과 동기들과는 거의 교류하지 않았고 졸업을 하고 나서야 단톡방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기자라, 그것도 강지현과 깊은 인연을 맺은 기자라니... 백하린의 머릿속에 별안간 한 가지 수가 떠올랐다.그녀는 곧장 안우진에게 개인톡을 보내 축하 인사를 건네고 근황을 물었다.안우진 역시 백하린에게 매우 열성적이었다. 그녀는 학교의 ‘여신 멘토’ 같은 존재였기에 모두가 좋아하는 선생님이었다. 게다가 자신에게 이토록 잘해주며 전과까지 일사천리로 처리해 주었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혹시 강지현 기억나?][아... 갑자기 왜 그 사람 얘기를 해요? 학교 때 일은 벌써 다 잊었는데.]안우진의 말투에 백하린은 확신이 섰다. 겉으로는 잊었다고 하지만 아직 마음속에 앙금이 남아있는 듯했다.백하린은 전화를 걸어왔다.지금 감정이 격해진 상태였기에 곧장 용건부터 털어놓았다. 강지현의 실체를 폭로하는 기사를 써달라고 부탁한 것이다.동문 단톡방 사람들은 이도운과 강지현이 결혼한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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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뉴스계에서 이런 일은 낯설지 않았다. 설령 가짜 뉴스라 할지언정 권력도 빽도 없는 고아 출신인 강지현이 그 기자에게 무슨 수를 쓰겠는가?안우진의 전문 능력은 뛰어났다. 그가 해원 방송국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도 대중의 감정을 자극하는 ‘대박 기사’를 쓰는 데 탁월했기 때문이었다.어떤 뉴스든 그의 손끝에서 한 번 비틀어지면 순식간에 여론을 폭발시켰다.이번에 강지현을 소재로 쓴 기사는 그의 심증과 맞아떨어졌다. 마치 자신이 연애에서 농락당한 피해자라는 시점으로 울분을 터트렸고 강지현을 명문대 출신 ‘어장관리녀’로 묘사했다.[학교에서는 그야말로 남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공공재’였고, 사회에 나와서는 사회에 나와서는 남자들을 능숙하게 휘어잡는 ‘플레이걸’이었다.]새벽녘, 안우진은 해원 방송국 기자의 높은 팔로워 수를 보유한 계정으로 기사를 올렸다. 하룻밤 사이에 기사의 화제성은 폭발했고 심지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상위 3위 안에 들었다.가장 많이 검색된 키워드는 바로 [명문대 캠퍼스 퀸, 결혼 후 해원 재계 거물들에게 흘리고 다녀]였다.안우진의 기사에는 강지현의 이름이나 학교는 가명 없이 그대로 사용되었고 이경 그룹만 약간 모호하게 처리되었다.당연히 강지현의 동문들이 즉시 누리꾼으로 나섰고, 동문 단톡방과 SNS는 순식간에 기사를 퍼 나르기 시작했다.온라인상의 여론은 사회 전반의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지만, 강지현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은 달랐다.평소 강지현은 흠잡을 데 없었으나 저렇게 예쁘고 잘난 여자에게는 본디 꼬이는 시선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기사가 나온 이상, 호감을 느꼈던 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이제 모두가 그녀를 헐뜯기 시작했다.이경 그룹 내부에도 강지현에 대한 뉴스가 쫙 퍼졌다.“원래 그런 사람이었구나... 매번 프로젝트를 따내는 이유가 있었네...”“예쁘장한 얼굴 믿고 저렇게 추악한 짓을 벌인 거야? 정말 여자들 체면을 다 깎아놨어...”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이도운은 사무 구역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강지현의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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