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기억을 잃은 척할 때는 언제고: Chapter 321 - Chapter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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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화

“내가 신예진을 해고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지금 당장 둘 다 차에 타.”배윤제가 협박했다.강하율과 안혜슬은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뒤 결국 차에 올랐다.기숙사 근처에 도착했을 때 강하율이 차에서 내리려 하자 배윤제가 붙잡았다.배윤제는 안혜슬을 힐끗 보며 말했다.“먼저 내려요. 저는 강하율이랑 따로 할 얘기가 있어서요.”안혜슬은 움직이지 않았다.강하율은 배윤제가 눈살을 찌푸리자 혹시라도 배윤제가 또 안혜슬을 해고하겠다고 협박할까 봐 그녀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괜찮아. 너 먼저 내려.”결국 차 안에는 강하율과 배윤제 둘만 남았다.“배윤제 대표님, 무슨 일이시죠?”“나랑 있는 게 그렇게 싫어?”배윤제는 의외로 차분하게 말했고 심지어 상처받은 듯이 강하율을 바라보았다.강하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할 말 있으면 그냥 하세요. 옥상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함구하라고 하실 생각이라면 그렇게 할게요.”그건 정다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예진의 명예를 위해서였다.배윤제가 말했다.“그 말을 하려는 게 아니야. 나는 치료를 받으면서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어. 그리고 네가 나를 많이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됐어.”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인 결론이었다.강하율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제가 대표님을 많이 사랑한다고요? 그러면 대표님은요?”“...”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배윤제는 감히 인정하지 못했다.강하율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예전에는 사랑했어요. 그건 부정하지 않을게요.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사랑하지 않아요. 그것도 진심이에요.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꽤 좋더라고요. 그러니까 부담 가지지 마세요.”그 말을 듣자 배윤제의 목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그는 갑자기 강하율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그러면 누구를 사랑하는데? 내가 치료도 받겠다고 했잖아. 대체 뭘 더 원하는 거야?”“계속 이런 식이면 더 얘기 나눌 필요가 없겠네요.”강하율은 저항하며 떠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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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강하율은 배윤호가 그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해 순간 슬픈 것도 잊은 채 뭐라 설명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배윤호는 차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타.”강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차에 올라타자 따뜻한 온기가 몸을 감싸며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강하율은 입술을 깨물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아까... 실수로 부딪혀서 좀 기분이 안 좋았던 거예요.”“풉.”그것은 분명 양승아의 웃음소리였다.“그게 그렇게 웃겨요?”“아, 아니요.”양승아가 서둘러 부인했다.강하율은 멋쩍은 얼굴로 배윤호를 바라봤다. 아마 배윤호도 그 핑계를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그러나 뜻밖에도 배윤호는 별말 하지 않았고 더 묻지도 않았다.강하율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입술에 배윤제의 냄새가 남아 있는 것 같아 굉장히 불쾌했다.강하율이 여덟 번째쯤 입술을 닦고 있을 때, 갑자기 눈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배윤호가 그녀의 턱을 잡고 고개를 돌렸다.강하율이 잠깐 당황한 사이 배윤호가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술을 몇 번이나 세게 문질렀다.그리고 강하율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입술이 따끔거리는 게 느껴졌다.“이건 뭐예요?”“술. 소독 좀 하라고.”배윤호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그 나이 먹고도 입을 부딪칠 줄은 몰랐네.”“...”강하율은 순간 울적했던 기분이 사라졌으나 웃기도 애매해서 차마 그러지 못했다.배윤호가 또 손수건에 술을 묻히려고 하자 강하율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됐어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그래.”배윤호는 짧게 대꾸한 뒤 손수건을 쓰레기통에 버렸다.강하율은 잠시 멍해졌다.‘내가 더러워서 그러나?’그래서 예전에 그녀에게 옷값을 물어내라고 한 걸지도 몰랐다.‘신예진 씨한테는 괜찮다고 했으면서.’역시 남자들은 모두 신예진처럼 여리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듯했다.정다인처럼 약한 척 연기하는 경우라도 관심과 배려를 받는 걸 보면 말이다.강하율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치 없는 질문을 했다.“오빠,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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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그해 배준혁은 갑작스럽게 병을 앓게 되었고 배윤호는 아버지와 함께 치료를 위해 해외로 떠났었다.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조윤서는 배윤제와 함께 국내에 남아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온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줬다.그 사건을 숨긴 이유는 뻔했다.배준혁의 병세가 빠르게 악화하면서 의사들조차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통보를 하게 되며, 배씨 가문은 상당히 위태로워졌고 사소한 일이라도 배씨 가문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게다가 배씨 가문에는 두 명의 후계자가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배윤호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어린 여자아이가 납치범을 유인했다면 그곳 환경에 익숙했던 거겠지.”“네. 그해 호텔 행사 기록을 확인해 봤는데 어르신께서 주최한 것이었고 그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는 임현서 씨 어머님, 기소정 씨 어머님도 있었습니다. 당시 그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아 보니 정다인 씨뿐이었죠. 그런데 신예진 씨가 갑자기 나타난 걸 보면 배윤제 씨는 당시 근처 마을을 조사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납치범은?”“산에서 굴러떨어져서 죽었다고 합니다.”양승아가 사실대로 답했다.배윤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우연이라기에는 이상한데.”“대표님, 혹시 뭔가 짐작 가시는 게 있습니까?”“배윤제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의심받을 사람은 누구지?”배윤호가 되물었다.양승아는 손에 든 자료를 내려다보다가 눈을 반짝였다.“대표님이요. 어르신께서 배윤제 씨를 해칠 리는 없으니까요. 만약 배윤제 씨가 납치당하고, 마침 또 대표님 아버님께서 몸이 좋지 않으시다는 것까지 밝혀진다면 당연히 대표님이 가장 의심받겠죠 그러고 보면 그 여자아이가 오히려 대표님을 도와준 셈이네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배윤제 씨가 납치당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데, 왜 흐지부지 끝난 걸까요?”“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배윤호가 작게 중얼거렸다.“사람을 더 붙여서 조사하도록 해.”“네.”양승아가 이어서 말했다.“경매에는 임현서 씨 어머님과 임현서 씨도 참석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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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그 뒤 정다인은 이틀 동안 출근하지 않았다.비록 병가를 냈다고 하지만 사실은 뒤에서 퇴사 절차를 밟고 있었다.체면을 잃고 싶지 않아 손을 써둔 것이다.정다인이 없으니 강하율은 훨씬 더 수월하게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건 오래 가지 않았다.똑똑똑.“강하율 씨 계신가요?”문 앞에는 퀵서비스 기사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강하율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저인데요. 무슨 일이세요?”남자는 옆에서 작은 카트를 끌고 왔는데 그 위에는 거대한 장미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강하율 씨, 서명 부탁드립니다. 남자 친구분께서 보내신 겁니다.”“남자 친구요?”강하율은 깜짝 놀랐다.그러나 그녀가 묻기도 전에 동료들이 몰려들었다.“와, 장미 1004송이네요.”“강 팀장님, 언제부터 연애하기 시작하신 거예요?”눈치 빠른 몇몇 동료들이 아부하기 시작했다. 정다인이 떠난다면 부총괄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큰 사람이 바로 강하율이었기 때문이다.“원래 운이라는 건 한 번 트이면 막을 수가 없다잖아요. 강 팀장님은 계속 잘못된 선택을 하는 허지연 씨랑은 완전히 다르다니까요.”“허지연 씨요? 허지연 씨가 왜요?”“예전에 강 팀장님한테 사랑에 눈이 멀어서 남자한테 버림받았다고 비꼬았었잖아요. 그런데 조익현 씨는 감옥에 갔고, 본인은 그런 짓을 당한 데다가 심지어 돈만 주면 얻을 수 있는 여자라는 꼬리표까지 달게 됐죠. 이렇게 새롭게 연애를 시작한 강 팀장님이랑은 확연히 다르죠.”강하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남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을 치켜세우는 분위기를 싫어했다. 특히 그들은 한때 정다인의 말에 휘둘려서 그녀를 깎아내리며 정다인을 치켜세웠던 사람들이라서 더 싫었다.강하율은 기사 앞으로 다가간 뒤 서명하는 대신에 꽃다발에 꽂혀 있던 카드를 집어 들었다.[하율아. 나 다 기억 났어.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도 전부 떠올랐어.]‘그래서 뭐?’강하율은 동료들이 다가오기 전에 카드를 다시 꽂아 넣은 뒤 말했다.“잘못 배송됐네요. 다른 주소로 보내 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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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신예진은 그가 그려오던 이상적인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무서워하지 않아도 돼요. 돈을 돌려달라고 할 생각은 없어요. 그냥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부른 거예요.”“네.”신예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배윤제는 직원에게 커피를 가져오게 한 뒤 덤덤한 얼굴로 물었다.“열두 살 때 다쳤다고 했었죠? 그때 기억이 있나요?”신예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조금은요. 그런데 마취 때문에 자세한 건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요.”“기억 나는 거 말해줄 수 있어요?”“대표님, 왜 제 일에 관심을 가지시는 건가요?”신예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이미 한 번 실수를 했던 배윤제는 더 이상 납치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둘러댔다.“저도 어렸을 때 호텔 근처에서 자주 놀았었거든요. 지난번에 예진 씨 얘기를 들으니까 뭔가 친근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을 좀 떠올려 보고 싶어서요.”“호텔은 이 근처 마을 사람들한테 은인 같은 곳이에요. 저희 엄마가 그러셨는데, 어렸을 때 강하율 씨 어머님과 대표님 어머님이 마을 아이들한테 책도 많이 기부해 주고, 마을마다 작은 놀이터도 하나씩 만들어줬었대요. 대표님도 아마 그때 근처에서 놀았겠죠. 저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노는 걸 좋아했어요. 특히 호텔에 큰 행사가 있을 때는 친구들이랑 같이 호텔에 갔어요. 호텔에서 남는 간식들을 항상 나눠주곤 했거든요.”“그때가 아마 가을이었을 거예요. 호텔에서 큰 행사가 있었고 저희는 간식을 받으러 간 뒤에 근처에서 놀았었죠. 그런데 정신없이 놀다가 어느샌가 혼자가 되어버렸죠. 그 뒤로는 기억이 흐릿한데... 계속 뛰었던 것만 기억나요. 그러다가 산에서 굴러떨어져서 그대로 기절했어요.”신예진은 1억을 받은 입장이었기에 배윤제의 질문에 솔직히 대답했다.그녀는 그 돈으로 집을 수리하고 밭도 정리했다. 이제 아버지도 편히 살 수 있게 되었고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비록 입막음을 위한 돈이었지만 그래도 두 사람에게는 아주 큰 액수였다.배윤제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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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신예진은 혼자 상상을 하다가 장천우의 호의를 단호히 거절했다.그녀는 아무것도 받지 않고 적당한 핑계를 대고 돌아가 버렸다.결국 장천우는 어쩔 수 없이 그것을 그대로 배윤제에게 보고했다.배윤제는 웃으며 말했다.“괜찮네. 그러면 장 비서가 적당히 좀 사서 보내줘.”“도련님, 제가 느끼기에 신예진 씨는 도련님과 잘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르신께서 좋아하시는 분은 정다인 씨고요.”솔직히 말해 정다인은 사람을 다루는 데 능했다.그래서 배윤제의 할머니와 배윤제 모두 정다인을 오랫동안 아껴줬던 것이다.배윤제가 갑자기 웃음을 멈추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곧 아니게 될 거야. 선물을 보내고 난 뒤에는 경매 준비를 해.”...호텔.강하율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다가 양승아가 보낸 문자를 보았다.[자선 파티 준비물은 1806호에 놔뒀습니다. 퇴근 후 바로 올라가셔서 챙기면 됩니다.][네, 알겠습니다.]휴대폰을 내려놓자 맞은편에 누군가 앉았다.바로 안혜슬이었다.평소 닭 다리가 나오면 누구보다 신나게 먹던 안혜슬이 오늘은 뭔가 정신이 딴데 팔린 것 같았다.“왜 그래? 안 먹을 거면 내가 먹는다?”강하율이 젓가락을 들자 안혜슬이 슬쩍 막았다.그녀는 강하율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율아, 예진이가 좀 달라진 것 같아.”강하율이 멈칫했다.“왜?”“어제 보니까 수백만 원짜리 가방을 메고 출근하더라고. 예전에 객실 청소하면서 부잣집 사모님들이 들고 다니는 걸 봤었어. 걔 원래 10만 원짜리 옷도 돈이 아까워서 사지 않았던 애인데 왜 갑자기 그렇게 비싼 가방을 들고 다니는 걸까?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 보니까 누가 계속 걔한테 몰래 선물을 보내준대. 나는 예진이가 엄마를 떠나보내고 불안감이 심해져서 갑자기 조금이라도 잘해주는 남자가 생기면 쉽게 넘어갈까 봐 걱정돼.”안혜슬이 미간을 찌푸렸다.마침 그때 신예진이 도착했다.신예진은 수십만 원짜리 머리핀을 머리에 꽂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강하율 옆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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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그 말을 들은 신예진이 젓가락을 놓치는 바람에 젓가락과 접시가 부딪쳐 맑은 소리가 났다.신예진을 본 강하율은 배윤제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얼른 덧붙였다.“그냥 일 때문이에요.”신예진은 젓가락을 살짝 물며 말했다.“네, 강 팀장님은 워낙 예쁘시니까 배윤호 대표님도...”“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대표님에 관한 얘기는 함부로 하면 안 돼요.”강하율이 웃으며 받아쳤다.신예진은 입을 다물고 더 묻지 않았다.안혜슬이 끼어들었다.“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아? 닭 다리 안 먹을 거야? 식으면 맛없어.”강하율은 닭 다리를 집어 안혜슬에게 건넸다.“너 먹어.”오늘 저녁 강하율은 드레스를 입어야 했기에 먹는 것과 마시는 걸 최대한 줄이는 게 좋았다.“나 먼저 갈게. 천천히 먹어.”식판을 정리한 뒤 강하율은 자리를 떴다.신예진은 강하율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기 접시에 있던 닭 다리를 안혜슬에게 건넸다.“혜슬아, 배윤호 대표님은 강 팀장님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 같아? 배윤호 대표님은 여자한테 관심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그 말을 듣고 안혜슬은 신예진을 힐끗 봤다.“예진아,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 나는 배윤호 대표님이랑 전혀 안 친해. 대표님이 하율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무슨 수로 알겠어? 게다가 대표님을 좋아하는 여자들이 한 트럭일 텐데 우리가 그런 걸 신경 써 봤자 뭐 해? 우리는 우리 월급이나 신경 쓰면 되지.”“그렇긴 하지.”“예진아, 우리한테는 여기서 조용히 일하는 게 가장 중요해.”안혜슬이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신예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녁.강하율은 양승아가 예약해 둔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안녕하세요, 강하율 씨. 저희는 스타일리스트입니다.”“저...”강하율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거울 앞 의자에 앉혀졌다. 그리고 한 시간 가까이 지난 뒤에야 모든 준비가 끝났다.스타일리스트가 감탄하며 말했다.“워낙에 본판이 좋으셔서 조금만 꾸며도 정말 아름다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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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강하율이 배윤호의 손을 바라보며 망설이는 사이, 배윤호가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가자.”손에서 전해지는 온기에 강하율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그러나 그녀는 뿌리치지 않고 배윤호의 손에 이끌려 엘리베이터 앞까지 걸어갔다.엘리베이터 문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았을 때, 강하율은 스스로를 설득했다. 배윤호는 그저 그녀가 넘어질까 봐 잡아준 거라고. 그럼에도 시선은 자꾸만 맞잡은 손으로 향했다.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난감한 일은 늘 그렇듯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엘리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배윤제와 정다인이었다.정다인은 배윤호를 보자 반사적으로 인사하려 했지만, 강하율이 그녀조차 구하지 못한 드레스와 액세서리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눈빛이 달라졌다.예전에 정다인은 배윤제와 마찬가지로 배윤호에게 강하율이 짝사랑하는 상대가 그라고 알려줘도, 배윤호가 강하율을 좋아할 리는 절대 없다고 믿었었다.그러나 상황은 정다인의 예상과 정반대로 흘러갔다.강하율은 패배자가 아니라 한없이 아름다운 여자였다.정다인은 무의식적으로 배윤제의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배윤제가 그녀를 슬쩍 밀어내며 일부러 거리를 뒀다.배윤제가 물었다.“형, 왜 하율이랑 같이 있는 거야?”강하율은 배윤제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입을 열려는 순간, 배윤호가 곧바로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눌렀다.“우리 하율이가 입은 드레스가 워낙 길어서 엘리베이터에 같이 못 탈 것 같네. 너희는 먼저 내려가.”‘우리 하율이?’강하율은 놀란 얼굴로 배윤호를 바라봤다.‘뭐 잘못 먹었나?’배윤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강하율을 향해 손짓했다.“강하율, 들어와. 다인이는 다음 거 타면 되니까.”정다인이 거절하려던 찰나, 배윤제가 배윤호를 바라보면서 빠르게 닫히려는 문을 막았다.“형, 하율이는 나랑 더 친해. 마침 우리끼리 할 얘기도 있는데 괜찮지?”배윤제가 뻔뻔하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었어도 그들의 사이가 평범하지 않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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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아이러니하게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확신이 있었다.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남은 애정은 전혀 없었다.두 사람은 잠시 걸어가다 경매 행사 지원으로 차출된 신예진을 발견했다.신예진은 두 사람을 보며 부러움과 민망함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고개를 숙이고 지나가려던 순간, 신예진은 싸늘한 눈빛으로 배윤제의 뒤쪽을 바라봤다.배윤제가 몸을 돌려 보니 강하율과 배윤호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배윤호가 파티에 파트너를 데리고 온 적은 드물었기에 그들이 등장하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주목했다.배윤제는 신예진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그는 정다인의 손을 놓고, 사람들의 시선이 배윤호에게 쏠린 틈을 타 신예진을 옆쪽 룸으로 데려갔다.“우리 형 좋아해요?”“대표님, 그...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신예진은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의 빨개진 얼굴이 모든 걸 말해주었다.배윤제의 목숨을 구해준 신예진이 배윤호를 좋아한다면 오히려 일이 쉬워진다.어쩌면 신예진과 배윤제에게 모두 이득이 될 수도 있었다.“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신예진 씨가 원한다면요.”“저를 도와준다고요?”신예진이 망설이며 물었다.“진짜예요?”“물론이죠. 이따가...”배윤제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 뒤 신예진에게 준비하러 가라며 재촉했다.신예진이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배윤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은혜도 갚고, 배윤호도 처리하고 나면 강하율은 다시 그의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배윤제는 이미 결정했다. 강하율의 신분이 문제라면 어머니를 내세우면 될 것이다. 배씨 가문의 집안 어른도 그의 어머니의 체면을 어느 정도 봐줄 것이다.배윤제는 그런 생각을 하며 미소 띤 얼굴로 파티장으로 향했다....경매장.강하율이 배윤호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입장하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배씨 가문 사람들까지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중에서도 가장 의외였던 건, 이런 자리에 관심도 없던 조윤서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이었다.강하율은 다가가서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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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강하율은 그의 집요함이 감탄스러울 지경이었다.‘정말 끝까지 연기를 하네.’게다가 더 진실되어 보이려고 조윤서까지 속이다니, 정말 우스웠다.강하율이 조윤서를 안심시켰다.“환절기라 감기에 걸렸나 보죠.”조윤서는 당황했다.“하율아, 너 윤제랑 싸웠니? 예전 같으면 네가 더 걱정했을 텐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네. 혹시 걔가 너한테 잘못한 게 있다면 꼭 나한테 얘기해.”조윤서가 걱정해 주자 강하율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강하율은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이모, 저랑 윤제 오빠는 잘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마음 접으세요.”조윤서는 말없이 미간을 찌푸렸다.강하율이 약속한 대로 배윤호를 찾아가려 할 때 갑자기 배윤제가 다가왔다.“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괜히 형 일을 망치지 마.”“무슨 일이요?”강하율이 반사적으로 묻자 배윤제가 턱짓을 했다.“봐.”강하율이 시선을 돌리자 신예진이 호텔 행사 때 입던 옷을 입고 배윤호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신예진은 부드럽고 단아해 보여서 원래도 대부분의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타입이었다. 그런데 화려한 드레스들 사이에서 심플한 옷까지 입고 있으니 오히려 더 눈에 띄었다.신예진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그리고 그녀가 들고 있는 트레이 위에는 와인 몇 잔이 놓여 있었다.배윤호는 신예진을 한 번 바라보더니 자신이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고 새 잔을 들었다.옆에서 배윤제가 웃으며 말했다.“형은 참 운이 좋다니까. 나중에 임현서랑 결혼해도 저렇게 예쁜 여자랑 만날 수 있잖아.”그 말을 듣는 순간 강하율은 역겨움을 느꼈다.배윤제는 마치 그녀에게 자신이 기억을 잃은 후 했던 일들이 틀린 일이 아니라고, 다들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랑 만난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강하율은 배윤제를 바라봤다.“오빠, 오빠가 원하는 건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세요.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게다가 오빠 여자 친구도 그 말을 들으면 서운할 거예요. 오빠는 여자 친구가 서운해하는 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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