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131 - Chapter 140

354 Chapters

제131화

태겸 같은 좋은 가문에서 자란 사람들의 결혼은 대부분 가문에서 정해진다.태겸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예주와 자신은 애초에 격이 맞지 않는다. 예주와 결혼한다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것이 분명했다.사실이라면 아이도 남겨둘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예주의 몸이 약했다. 이번 아이가 아니면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그래서 태겸은 생각했다.‘이번 아이 하나 정도는... 예주에게 남겨줘도 되겠지.’다만 거기까지였다.태겸에게 예주와의 관계는 그 이상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꾸중을 들은 예주의 눈가가 붉어졌다. 예주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이 아이는 예주에게 남은 마지막 방패였다.곧 정하영에게서 카톡이 도착했다.[예주 씨, 대표님이 보라고 하신 집 목록입니다.][아파트 A/위치: 시내 중심/평수: 58평][아파트 B/위치: 강변/평수: 65평][아파트 C/위치: 시내 중심/평수: 72평][아파트 D/위치: 문화거리 인근/평수: 60평][아파트 E/위치: 시내 중심/ 펜트하우스 /평수: 83평][마음에 드는 곳을 말씀해 주세요. 바로 계약 진행하겠습니다.]예주는 메시지를 한참 바라봤다.그리고 가장 넓은 집을 골랐다.도심 한가운데 있는 펜트하우스였다.이유는 단순했다.여기는 땅값이 비싼 곳이었다. 평당 가격이 평범한 직장인의 몇 달치 월급과 맞먹는 수준이었다.‘작은 집을 고를 이유가 없지.’‘넓은 집이 훨씬 나아.’예주는 그렇게 가장 큰 집으로 바로 이사했다.태겸은 회사로 돌아갔다.HJ그룹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예주는 보름 동안 휴가를 냈다.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이번 사건 이후 예주는 회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완전히 사회적으로 매장된 상태였다.회사 단체 단톡방은 온통 그 이야기뿐이었다.예주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채팅을 한 번 훑어봤다.그리고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던졌다.‘저 사람들... 내가 이 방에 있는 거 모르는 건가?’‘아니면 일부러 이러는 거야
Read more

제132화

점심때, 승아가 해인을 불러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었다.예주 일은 이미 너무 널리 퍼져 있었다. 지인들 사이에서도 SNS를 통해 온갖 버전이 돌고 있었고,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승아 역시 그 소식을 다 알게 됐다.“하예주 진짜 자업자득이네! 우리 해인 씨는 조용히 있다가 크게 한 방 날리는 스타일이셨네!”해인이 빨대로 주스를 한 모금 마시자 볼이 통통하게 부풀었다.“하예주 얘기는 이제 그만해. 넌 요즘 왜 이렇게 바빠?”승아가 한숨을 쉬었다.“이 망할 놈의 회사는 맨날 상사 눈치나 보게 만들고 월급은 통장에 찍히자마자 사라지는데, 하루 종일 바빠서 밥 먹을 시간도 없어.”승아는 테이블 위에 턱을 괴며 해인을 바라봤다.“친구야, 나도 그냥 퇴사하고 네 밑으로 들어가면 안 돼?”해인은 주스에 들어 있는 과육을 한 알 씹었다. 탱탱한 볼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천천히 주스를 삼켰다.“나도 아직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데, 네가 어떻게 나를 따라오겠어?”와세라에 들어간 첫날부터 그렇게 큰 일이 터졌다. 지금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고 해도 해인은 아직 이직한 회사에서 완전히 자리를 잡은 상태가 아니었다.승아는 바로 말했다.“너한테는 YD그룹이 있잖아! 빨리 고태겸 손에 있는 YD그룹 다시 가져오고, 절친인 나를 좀 챙겨주면 되지. YD그룹 홍보팀에 넣어주면 안 돼? 홍보 담당 같은 걸로.”해인은 진지하게 생각해봤다. 생각보다 정말 가능할지도 몰랐다.승아는 미디어 관련 일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홍보팀은 원래 언론과 자주 부딪히는 부서였다. 승아에게 딱 맞는 자리처럼 느껴졌다.“유호 씨랑 인수 관련 얘기 정리되면 와.”승아의 눈이 커졌다.“결혼한 지 그렇게 됐는데 아직도 그 얘기를 안 했어?”승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부부끼리는 원래 그런 거 금방 정리하는 거 아니야? 한집에서 같이 자고 같이 지내면 자연스럽게 얘기 다 끝나는 거지. 뭐가 그렇게 복잡해?”태겸은 해인의 약혼자였다는 이유만으로도 YD그룹을 거의
Read more

제133화

유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핸드폰 화면을 열었다.대현이 보낸 메시지였다.사진 한 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사진에는 한 식당에서 두 여자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카메라를 등지고 있었지만, 유호는 한눈에 알아봤다.해인이었다.오늘 아침 해인이 입고 나간 바로 그 원피스였다.곧이어 대현의 메시지가 이어졌다.[야 유호! 오늘 진짜 웃긴 일 있었어. 나 오늘 우연히 제수씨 만났다!]해인이 승아와 점심을 먹으러 간다는 건 유호도 알고 있었다.아침에 유호가 직접 차로 태워 쇼핑몰 입구까지 데려다 줬기 때문이다.그런데 다음 메시지를 보는 순간, 유호는 눈살을 확 찌푸렸다.[근데 말이야... 제수씨 친구가 너 보고... 너 그쪽으로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하더라.][힘내라!! 남자의 자존심 보여줘라!! 우리 유호 할 수 있다!!]유호는 핸드폰을 들고 그대로 멈춰 있었다.30초가 지나도록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유호는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며 눈을 가늘게 떴다.‘여자들은... 둘이 모이면 저런 얘기를 하는 건가?’유호의 머릿속에 대현이 보낸 문장이 다시 떠올랐다.바로 그쪽으로 문제 있는 거 아니냐는 문구.그건 남자가 가장 듣기 싫은 말이었다.‘내가... 그게 안 된다고?’유호의 눈이 조금 더 좁아졌다....점심을 먹은 뒤, 해인과 승아는 쇼핑몰을 조금 더 돌아다녔다.해인은 옷도 여러 벌 사고 화장품도 몇 가지 샀다.그리고 승아가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하던 물건도 결국 몇 개 골라 선물해 줬다.승아는 예전에는 집안 형편이 나쁘지 않았다.하지만 몇 년 전부터 회사가 빚을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3년 전 파산했다.그 뒤로 승아 집안은 자연스럽게 상류층 모임에서 멀어졌다.두 사람은 향수 매장에서 이것저것 향을 테스트하면서 고르고 있었다.그때, 매장 앞을 지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지안아, 조금만 천천히 가.”익숙한 목소리였다.해인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Read more

제134화

유호가 밤늦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집 안은 조용했다.요 며칠 동안 유호가 늦게 돌아올 때면 해인이 복도에 작은 등을 하나 켜 두곤 했다.그런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주변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유호는 무심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신발장 위에는 해인이 벗어 둔 구두가 놓여 있었다.유호는 아무 말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3층 방의 불은 꺼져 있었다.해인은 이미 잠든 듯했다. 집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유호는 잠깐 그 문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했다.욕실에서 막 나온 순간이었다.위층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뭔가 바닥에 떨어진 듯한 소리였다.유호는 잠깐 망설였다.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겨 3층으로 올라갔다....해인은 희미하게 꿈을 꾸고 있었다.꿈속에서 해인은 16살로 돌아가 있었다.장례식장 빈소에는 아버지와 두 오빠의 영정사진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제단 위에는 하얀 국화가 가득했고, 향 냄새가 무겁게 실내를 채우고 있었다.아버지와 두 오빠의 관은 뒤쪽 안치실에 모셔져 있었다.해인은 제단 앞 바닥에 홀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울음이 터져 나왔지만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몸이 휘청거렸고,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그때 해인은 문득 주여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엄마는... 어디 있지?’‘혹시 너무 힘들어서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자리에서 일어난 해인은 장례식장 안을 돌아다니며 주여진을 찾기 시작했다.하지만 강씨 가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모두 돌아봐도 주여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빈소 뒤쪽으로 이어진 복도를 지나가던 때였다.해인의 발걸음이 멈췄다.임시 휴게실 문 안쪽에서 이상한 기척이 들렸다.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서 좁은 틈이 있었다.해인은 무심코 그 틈 사이를 들여다봤다.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주여진이 어떤 남자와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해인의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발은 납덩이를
Read more

제135화

해인은 고개를 갸웃했다.“대현 씨가 왜 당신을 놀려요?”유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어두운 연못처럼 착 가라앉은 눈이었다.“그건 너한테 물어봐야겠지.”유호가 해인을 바라보며 말했다.“너랑 친구가 밥 먹으면서 나 욕했지?”해인은 잠깐 눈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그러다가 곧 표정이 굳어졌다.‘설마... 그 얘기?’해인의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유호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해인을 바라봤다. 눈빛이 묘하게 깊어 보였다.“여보.”유호가 나지막하게 말했다.“나... 그거 안 된다고 의심했어?”해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아 진짜... 승아...’‘괜히 그런 말을 꺼내서 다른 사람한테 들리게 만들다니.’해인은 황급히 말했다.“그건 그냥 농담이었어요. 승아랑은 대부분 YD그룹 인수 얘기만 했어요.”“그래?”유호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이미 화제가 나온 김에 해인은 바로 물었다.“유호 씨는... 정말 YD그룹을 원하세요?”유호가 조용히 해인을 바라봤다.해인은 말을 이었다.“KH그룹이랑 YD그룹은 사업이 일부 겹치잖아요. 제가 회사를 유호 씨한테 넘기면... 두 회사를 합칠 생각이신가요?”경쟁사를 없애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수였다.지난 몇 년 동안 KH그룹 산하 회사들이 YD그룹 사업을 여러 번 빼앗아 갔다.두 회사는 분명 경쟁 관계였다.그래서 많은 대기업들이 인수에 집착했다.회사를 인수하면 두 회사는 하나가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시장을 독점할 수 있다.유호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인수하면 사업을 합치는 게 제일 자연스럽지 않겠어?”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같은 그룹 아래 비슷한 사업이 두 개 있다면, 대부분의 오너들은 자원을 통합해 효율을 극대화하려 할 것이다.해인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사업가는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유호의 생각은 전혀 잘못된 게 아니었다.하지만 어쩌면 처음부터 두 사람의 입장은 달랐는지도 몰랐다.YD그룹은 아버지의 평생 노력으로 만든 회사였다.해인은 그 회사를 자
Read more

제136화

해인이 물었다.“왜요?”유호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사업 라인을 합치면 KH그룹 산하 회사들에서 불필요하게 나가는 비용도 줄일 수 있어. 나도 돈을 아끼는 거고, 두 회사 입장에서도 이익이 커지겠지. 아까 너도 말했잖아. 네 건 내 거라고.”유호의 태도는 담담했다. 마치 이런 결정이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유호는 침대에 앉아 해인을 바라보고 있었다.해인은 살짝 주먹을 쥐었다.‘이게... 정말 가능한 일일까?’너무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졌다.해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유호가 다시 말했다.“그래도 네가 마음 놓이지 않으면 나중에 변호사한테 계약서 하나 만들게. 시간 될 때 내 사무실 들러서 서명만 하면 돼.”유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대신 회사는 고태겸 손에서 가져온 뒤에 내가 당분간 직접 맡을 거야.”그 부분에 대해 해인은 당연히 반대할 생각이 없었다.태겸은 YD그룹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내부는 태겸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총수가 갑자기 바뀌면 회사 분위기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유호가 직접 나서는 편이 훨씬 안정적일 것이다.유호가 이어 말했다.“사업 라인이 합쳐지고 나서 어느 정도 안정되면 KH그룹 전문 팀에 맡겨도 되고. 나중에 네가 경영에 관심 생기면 직접 YD그룹을 맡아도 되고.”해인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YD그룹을 팔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유호가 대신 관리해 주는 방식이었다.해인은 여전히 최대 주주였다. 주식 역시 그대로 해인의 손에 남는다.그뿐만 아니라 유호는 KH그룹의 사업 일부까지 YD그룹에 붙여 주겠다고 했다.‘이건... 거의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는 수준인데?’해인은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유호를 향해 품고 있던 의심도 그 순간 사라졌다.하루 종일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마음도 조금 가벼워졌다.해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왜... 이렇게까지 해줘요?”유호는 간단하게 답했다.“아까 네가 말했잖아. 우리 부부라고. 내
Read more

제137화

“여보.”해인의 목소리에 은근한 유혹이 묻어났다. 물에 젖은 듯 반짝이는 눈동자가 사람을 끌어당겼다.“되는지 안 되는지... 해 보면 알지 않겠어요?”방 안이 잠깐 고요해졌다.유호의 눈빛이 깊어졌다.해인은 고양이처럼 부드럽게 그의 가슴에 기대 있었다.여자의 손이 장난스럽게 유호의 울대를 가볍게 건드리고 있었다.이런 해인의 모습은 유호가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유호는 갑자기 해인을 끌어안았다.두 손으로 해인의 허리를 잡아 올린 뒤, 해인을 화장대 위에 앉혔다.유호의 입술이 해인의 귓가에 가까워졌다.“역시 나한테 마음이 있었네.”유호가 조용히 말했다.“언제부터였어?”해인이 태연하게 답했다.“2분 전부터요.”유호가 가볍게 웃었다.그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잠깐 생각하던 유호가 말했다.“그래도 괜찮네.”그리고 곧바로 키스가 쏟아졌다.해인은 처음 겪는 감각에 정신이 아득해졌다.유호의 키스에 숨이 막힐 것처럼 느껴졌다.해인은 버티지 못하고 목을 살짝 뒤로 젖혔다.유호의 입술이 천천히 내려왔다.창밖의 바람은 방 안의 공기를 전혀 식히지 못했다.두 사람의 숨결이 뜨겁게 얽혀 있었다.남자의 입술이 해인의 쇄골 근처에서 멈췄다.유호가 해인을 바라봤다.어두운 눈동자에 해인을 가득 담고 있었다.유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여보, 내가 누구야?”해인의 하얀 손가락이 유호의 팔을 살짝 긁었다.해인은 고개를 들어 유호를 바라봤다.그리고 장난처럼 유호의 울대를 살짝 물었다.그 감각에 유호는 잠시 숨을 멈췄다.유호의 눈빛이 더 짙어지면서 다시 키스가 이어졌다.해인의 몸이 유호의 팔 안에서 힘없이 풀렸다.이런 감각은 해인에게 낯선 것이었다.해인의 눈가가 붉어지면서 눈가에는 얇은 물기가 맺혀 있었다.해인의 손이 유호의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갔다.손가락이 천천히 머리칼을 흐트러뜨렸다.“유호 씨는...”해인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제 남편이잖아요.”“여보.”유호가 웃음을 흘렸다.그리
Read more

제138화

전날 밤에 체력을 너무 많이 쓴 탓일까?다음 날 해인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정오 무렵이었다.해인은 몸을 뒤척였다.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환하게 빛나는 통유리창이었다.해인은 잠깐 멍하니 누워 있었다.잠시 뒤에야 전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떠올렸다.‘어쩐지... 몸이 이렇게 뻐근하더라.’온몸이 심하게 쑤셨다.어젯밤 해인이 먼저 다가갔던 이유는 유호가 했던 말 때문이었다.마음속에는 고마움이 더 컸다.하지만 고마움만이 전부는 아니었다.‘남자는 역시 위험해.’유호의 외모가 큰 몫을 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었다.유호가 이미 집에 없는 걸 보니, 아마 출근한 모양이었다.해인은 침대에서 일어났다.거울을 흘끗 보던 해인의 시선이 멈췄다.몸 여기저기에서 붉거나 보랏빛의 키스마크들이 남아 있는 게 보였다.해인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해인은 얼른 옷장을 열고 목까지 올라오는 옷을 꺼냈다.가려야 할 곳을 전부 가린 뒤에야 해인은 밖으로 나왔다.오늘은 KH그룹에 가서 계약서에 서명해야 했다.어젯밤 침대에서 유호와 이미 이야기를 끝낸 일이었다.별일이 없다면 계약서에 서명한 뒤, YD그룹은 앞으로 유호가 대신 경영하게 된다.유호는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YD그룹의 의사 결정권을 손에 넣게 된다.잠재적인 경쟁사를 하나 없애는 셈이었다.해인은 돈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하지만 회사는 여전히 해인의 것이고 주식도 그대로 해인의 손에 남는다.거기에 KH그룹에서 넘어오는 생산 라인까지 얻게 된다.장기적으로 보면 엄청난 이익이었다.해인과 유호 모두에게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오히려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결정이었다.해인이 차에 막 오르는데 휴대폰이 울렸다.예주의 전화였다.예주가 먼저 말했다.[우리 이야기 좀 해요.]해인이 피식 웃었다.“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해?”예주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HJ그룹에서 더는 못 버티겠어요. 언니가 제 커리어를 완전히 망쳐 놨어요.][이렇게 오랜 시간 알고 지냈는데... 정말 이렇
Read more

제139화

말을 마친 해인은 곧바로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불렀다. 그리고 119 접수원에게 예주가 사는 집 주소를 전달했다.그 정도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 셈이었다.해인은 의사가 아니다. 설사 예주의 집까지 간다 해도 자신이 직접 도울 수 있는 일은 없었다.도로가 조금 막히는 바람에, 차가 KH그룹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해인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참이었다.그때 다시 전화가 울렸다.여전히 예주의 번호였다.하지만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태겸이었다.[예주는 병원에 들어갔어. 네가 한 거야?]해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태겸이 이어 말했다.[의사가 그러는데 예주 아이는... 살리기 힘들대. 해인아, 너 예주한테 목숨 하나 빚졌어.]그 말을 듣자 해인이 폭발했다.“내가 왜 예주 목숨을 빚져야 하는데? 말 좀 똑바로 해. 너무 나가는 거 아니야?”태겸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전화로 싸우고 싶지 않아. 병원으로 와서 직접 보고 얘기해.]곧바로 전화가 끊어졌다.해인은 잠시 침묵했다. 고개를 들어 KH그룹 건물을 바라봤다.하지만 결국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병실 앞에 도착했을 때, 해인은 멈춰 섰다.예주 몸 어디에도 칼에 찔린 흔적이 없었다.예주는 멀쩡하게 산부인과 병실 침대에 누워서 수액을 맞고 있었다.몸에도 피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해인은 이미 예주가 자신을 부른 게 함정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시골 사람들은 대체로 겁이 많고 일을 크게 벌이지 않는 편이다.그 절뚝거리는 남자도 집 안에서나 큰소리치는 정도였지, 정말 사람을 찌르고 도망칠 만큼 대담한 인간은 아니었다.사람을 찌르면 살인 미수다.그 정도 상식은 누구나 안다.병실 안에서는 예주가 울고 있었다. 눈물범벅이 된 채 태겸의 품에 기대 있었다.“오빠... 우리 아이가 없어졌어요. 저 이제 평생 엄마 못 되는 거예요.”해인이 미간을 찌푸렸다.“아이가 왜 없어진 건데?”목소리를 들은 태겸이
Read more

제140화

태겸이 몸을 돌려 예주를 바라봤다.“증거는?”태겸이 물었다.“목격자 있어?”예주는 고개를 저었다.“없어요. 언니가 저를 해치려 했다면... 누가 보는 데서 그러겠어요.”예주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제가 쓰러진 뒤에... 해인 언니가 바로 구급차를 불렀어요.”“죄책감이 있으니까 부른 거겠죠.”해인이 냉소를 흘렸다.“하예주, 나 네 아파트 단지 근처에도 가 본 적 없어.”해인이 차갑게 말했다.“정신 좀 차려!”해인은 팔짱을 낀 채 예주를 바라봤다.“나한테 전화해서 칼 맞았다고 했지? 불쌍해서 그냥 구급차 불러 준 거야. 그게 이제는 내가 죄를 지은 증거가 된 거야?”해인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고태겸, 넌 머리는 어디다 두고 다녀? 너 공부 잘하던 애 아니었어?”“시험 볼 때마다 1등 하던 그 머리는 어디다 두고 왔어? 하예주 같은 인간한테 휘둘리기나 하고.”해인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하예주랑 붙어 다니다가 뇌를 좀비한테 먹혔냐?”태겸이 잠깐 멈칫했다.해인이 이렇게까지 거칠게 말한 건 처음이었다.예전의 해인은 늘 부드럽고 조심스러웠다.하지만 태겸은 화가 나지 않았다.오히려 마음속에서 다른 감정이 올라왔다.‘해인이가... 질투하는 거네.’태겸은 그렇게 생각했다.이번에 예주에게 손을 댄 것도 예주가 자신의 아이를 가졌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태겸의 가슴 어딘가에서 묘한 기쁨이 올라왔다.‘곧 끝나겠네.’태겸은 확신했다. 한 달 넘게 이어진 해인과의 냉전이 곧 끝날 것 같았다.그때 예주가 급히 태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태겸 오빠.”예주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오빠도 아시잖아요... 저 몸 약한 거... 제 평생에 단 한 번뿐인 임신 기회였어요.”“제가 제 아이를 이용해서 해인 언니를 함정에 빠뜨리겠어요?”예주의 몸이 약하다는 건 태겸도 알고 있었다.이번 아이를 잃으면 앞으로 엄마가 될 가능성도 사라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태겸은 잠시 침묵한 뒤 해인에게 말했다.“해인아, 예
Read more
PREV
1
...
1213141516
...
3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