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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作者: 오월이
태겸이 몸을 돌려 예주를 바라봤다.

“증거는?”

태겸이 물었다.

“목격자 있어?”

예주는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언니가 저를 해치려 했다면... 누가 보는 데서 그러겠어요.”

예주는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제가 쓰러진 뒤에... 해인 언니가 바로 구급차를 불렀어요.”

“죄책감이 있으니까 부른 거겠죠.”

해인이 냉소를 흘렸다.

“하예주, 나 네 아파트 단지 근처에도 가 본 적 없어.”

해인이 차갑게 말했다.

“정신 좀 차려!”

해인은 팔짱을 낀 채 예주를 바라봤다.

“나한테 전화해서 칼 맞았다고 했지? 불쌍해서 그냥 구급차 불러 준 거야. 그게 이제는 내가 죄를 지은 증거가 된 거야?”

해인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고태겸, 넌 머리는 어디다 두고 다녀? 너 공부 잘하던 애 아니었어?”

“시험 볼 때마다 1등 하던 그 머리는 어디다 두고 왔어? 하예주 같은 인간한테 휘둘리기나 하고.”

해인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

“하예주랑 붙어 다니다가 뇌를 좀비한테 먹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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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68화

    희정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은 서진의 얼굴에만 머물렀다.서진을 보지 못한 지 거의 한 달이 됐다.늘 자신감 넘치던 서진은 많이 말라 있었다. 볼이 움푹 꺼져서 오히려 이목구비가 더 또렷해 보였다.그 한 달 동안 희정은 하루도 서진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서진은 그저 한 지점만 멍하니 바라볼 뿐, 재판 내내 희정 쪽으로는 한 번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희정은 쓸쓸하게 눈을 내리깔았다.‘이렇게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랑 한마디도 하기 싫은 걸까...’마지막 선고에서 재판장은 희정에게 징역 10년 3개월을 선고했다.서진은 스스로 자수했고 차장섭 사망 자체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았으며 수사 과정에서 알고 있는 사실을 모두 진술했다는 점이 참작됐다. 최종 선고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었다.건훈의 경우 외도 자체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었다. 건훈의 변호인은 건훈이 건물 관리실의 영상을 없앤 이유도 희정과의 관계가 알려지는 걸 막으려고 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그 논리대로라면 영상 삭제 동기는 희정을 범행에서 빼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생활을 감추려는 것이 된다. 재판부는 건훈이 차장섭 사건에 직접 관여한 정황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서 징역 3개월을 선고했다.건훈의 선고를 들은 희정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방청석의 진씨 집안 사람들은 자리에서 축포라도 터뜨리고 싶을 만큼 안도한 표정이었다.해인도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해인은 멀지 않은 곳에서 건훈의 어머니 하선미가 아들의 액운을 털어 낸다며 가족끼리 크게 식사 자리를 잡자고 하는 모습까지 봤다.“제일 좋은 식당으로 잡아. 메뉴도 비싼 걸로 다 시켜. 그 정도 돈 아낄 집도 아니잖아.”하선미는 곁에 선 집사에게 그렇게 지시했다.집사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재판 끝나는 대로 예약해 두겠습니다.”선고 절차가 끝나자 세 사람은 차례로 법정 밖으로 이동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건훈이 출입문 가까이 갔을 때 희정이 갑자기 달려들었다.사람들이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67화

    진정화가 애원하듯 말했다. “언니, 서진이 어릴 때부터 봤잖아. 어떤 애인지도 알잖아. 경찰 조사에서도 장섭 오빠를 죽인 건 서진이가 아니라는 게 확인됐어.”도수희는 그 말을 듣고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수술 뒤 의식을 되찾은 도수희는 정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온 탓인지 많은 일들을 담담하게 보게 됐다.차장섭의 시신을 처음 봤을 때는 자신이 무너져 울부짖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도수희는 그저 곁에 서서 잠든 듯 누워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차장섭의 곁에서 말없이 오후를 보내면서 창 너머로 지는 해까지 함께 바라봤다.도수희는 차장섭을 인생의 절반 가까이 사랑했지만 부부로 함께한 시간은 짧았다.젊었을 때 두 사람은 억지로 갈라져야 했다.중년이 돼 겨우 다시 만났지만, 행복하게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도수희가 병에 걸렸다.두 사람의 삶은 늘 어긋난 박자로 흘렀다. 길다면 긴 세월인데도 돌아보면 아쉬움만 가득했다.도수희는 울먹이는 진정화를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했다.“누가 옳고 누가 잘못했는지 나한테 와서 말할 필요 없어. 법원이 법과 증거대로 판단할 거야.”용서해 줄 생각은 없다는 뜻이었다.도수희는 해인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휠체어를 밀고 가자는 신호였다.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본 진정화는 가슴을 치며 울었다. 숨이 넘어갈 듯 울다가 쓰러질 뻔했다.유족이 합의해 줄 생각이 없다니. 그러면 서진은 어떻게 해야 할까?천호선은 묘비 앞에서 천천히 일어나 진정화를 복잡한 표정으로 바라봤다.“할 말 다 했잖아. 이제는 포기할 수 있겠어?”진정화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만큼 흐느꼈다.천호선이 달래듯 말했다. “법조계 아는 사람들 통해서 알아봤어. 서진이는 자수했고 수사에도 협조했어. 실형이 나온다고 해도 길어야 1년 정도일 거라고 하더라.”진정화가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건훈이는?”희정과 건훈의 관계가 알려진 뒤, 진정화는 친정에 찾아가 크게 싸웠고 이후 연락까지 끊었다.친조카가 자기 아들의 아내와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66화

    해인 옆에는 도수희가 힘없이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라 안색도 병색이 짙었다. 그래도 이식 수술은 성공적이어서 목숨을 건졌고, 이제부터 긴 회복 기간을 견뎌야 했다.도수희는 계속 눈물을 참았다. 해인은 말없이 도수희의 손을 가볍게 잡아줬다.묘역에는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아 있었다.차장섭이 생전에 알고 지냈던 사람들은 거의 모두 자리를 찾았다.천호선과 진정화도 나타났다.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자 주변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차장섭의 죽음이 서진의 직접적인 범행은 아니었다. 하지만 서진은 차장섭이 죽은 뒤 진실을 숨기려고 하면서 희정을 감싸려고 했다.게다가 천호선과 차장섭은 오래전부터 왕래해 온 사이였다.조문객 몇 명이 두 사람을 알아보고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천씨 집안 사람들이 여기 올 낯짝이 있나? 나 같으면 입구에서 돌려보냈어.”“그러게. 경찰에 잡혀 있는 아들 일 때문에 온 거 누가 몰라. 며칠 안에 선고가 나온다던데.”“결국 여자 하나에 눈이 멀어서 저렇게 된 거지.”“제일 악랄한 건 차희정 아니야? 두 남자 사이에서 그러고 다닌 것도 모자라서 친아버지까지 죽였잖아. 죽어서도 지옥 밑바닥에 떨어질 인간이야.”“...”주변의 수군거림은 끊이지 않았지만 천호선은 흔들리지 않았다.천호선은 차장섭의 묘비 앞으로 걸어가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장섭아, 내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다. 내가 너한테 죄를 지었어.”천호선은 그대로 몸을 깊이 숙였다.거듭 큰절을 올리느라 이마가 바닥에 세게 닿았고, 결국 이마에서 피까지 배어 나왔다.하지만 누구도 다가가서 천호선을 말리지 않았다.천호선은 차장섭의 묘비 앞에서 오래도록 무릎을 꿇고 있었다. 얼굴에는 죄책감이 짙었다.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고 집안끼리도 가까웠다. 자신의 아들이 이런 일을 벌일 줄은 천호선도 상상하지 못했다.참 지독한 인연이었다.조문객이 전부 떠난 뒤에도 천호선은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계속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하늘에서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65화

    “씨X! 천서진, 너 미쳤어?”서진이 경찰을 데리고 온 걸 본 건훈은 바로 폭발할 듯 날뛰었다.이마에 핏줄을 세운 건훈은 서진을 노려보며 욕을 퍼부었다. “네가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경찰까지 끌고 와서 희정이까지 잡히게 만들어?”건훈이 욕을 해도 서진은 자신과 상관없는 말을 듣는 사람처럼 냉담했다.서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차창 밖만 바라봤다.“야, 천서진. 모른 척한다고 끝난 줄 알아? 차희정은 이제 내 여자야. 나도 이건 그냥 안 넘어가.”건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찰 한 명이 건훈에게 다가왔다.찰칵-건훈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다.건훈은 눈을 크게 뜨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형사님. 이건 뭐예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수갑까지 채워요?”경찰은 단호하게 말했다. “체포할 사유가 있으니까 하는 겁니다. 말 그만하고 타세요.”건훈은 억울한 듯 이동하는 내내 투덜거리며 욕을 섞었다.태어나서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제압당한 적이 언제 있었던가.건훈은 차장섭 사망 사건이 B시에서 크게 다루는 중대 사건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몰랐다. 범인을 숨기고 핵심 증거까지 없애려고 했다면, 그 부분도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었다.희정 역시 수갑이 채워진 채 이미 경찰차 안으로 옮겨져 있었다.희정의 눈은 계속 서진의 얼굴만 쫓았다.하지만 서진은 희정을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외면했다.희정의 가슴은 칼로 베인 듯 아팠다.결국 자신을 경찰 손에 넘긴 사람이 서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예전에는 누구보다 희정을 지키려고 애쓴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은...‘그래. 이제는 내가 죽도록 밉겠지.’희정의 눈가가 붉어지면서 눈물이 흘렀지만, 서진은 멍하니 앉은 채 차가운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서진아...”희정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입을 열어도 흐느끼는 소리만 나왔다.경찰차는 백 킬로미터쯤 떨어진 B시를 향해 달렸다. 차 안에는 무거운 공기와 건훈의 낮은 투덜거림만 이어졌다.“희정아,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64화

    서진은 고개를 내려 희정의 피 묻은 두 손을 바라봤다.망설임 없이 희정의 팔을 떼어냈다.“네가 내 멀쩡하던 인생을 다 엉망으로 만들었어. 집에도 못 돌아가게 됐고 일도, 인생도, 가족도 전부 망가졌어.”서진은 몸을 돌려 희정의 눈을 마주했다. 깨진 얼음판처럼 차가운 눈에 깊은 금이 간 것 같았다.“너 때문에 내가 잘못한 일이 너무 많아. 한유호 수술 건부터 시작해서 내 인생은 너 때문에 돌아갈 수 없는 데까지 왔어.”“이제 확실하게 말할게. 나 후회해.”희정은 충격이 가득한 얼굴로 서진을 바라봤다.서진에게는 분노도 혐오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감정이라도 있다면 아직 마음이 남았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서진은 너무 무심했다.“바보처럼 네한테 휘둘린 걸 후회하고, 내가 한 잘못 때문에 가족까지 끌어들인 것도 후회해. 제일 후회되는 건 너를 알게 된 거야.”어쩌면 예전에 서진이 희정을 병원으로 데려가 임신중지 처치를 받게 했을 때부터, 두 사람에게 좋은 끝은 없다고 정해져 있었는지도 몰랐다.서진은 냉담하게 돌아서 떠났다.희정은 뒤쫓고 싶었지만 아랫배의 통증 때문에 더는 따라갈 힘이 없었다.두 걸음쯤 움직이다가 통증에 몸을 접고 주저앉았다. ‘이상해. 왜 이번에는 이렇게까지 아픈 거야?’그때 고급 승용차 한 대가 희정 앞에 멈춰 섰다.“차희정!” 건훈은 희정의 상태를 보자 바로 차에서 내려 부축했다. “왜 이렇게 안색이 하얘?”건훈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 피로 젖은 희정의 옷을 발견하자 눈을 크게 떴다. “아이...”“없앴어.”희정은 건훈과 말을 하면서도 계속 서진만 바라봤다.하지만 보이는 건 점점 멀어지는 서진의 뒷모습뿐이었다.건훈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아, 나 진짜 아빠가 되는 줄 알았는데.”희정은 차갑게 받아쳤다. “태어나 봐야 사생아잖아. 이 세상에 나올 이유도 없어.”“너...” ‘사생아’라는 말에 건훈의 미간이 구겨졌다.건훈도 희정의 시선을 따라봤다. 서진은 이미 멀리 가면서 뒷모습도 손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63화

    경호원들이 병원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자, 희정은 새파랗게 질려서 거부했다. “싫어. 나 병원 안 가!”경호원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 제정신입니까? 피가 이렇게 나는데 병원을 안 가겠다고요? 잘못되면 누가 책임집니까?”병원에는 경찰이 먼저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희정은 병원에 가면 스스로 경찰 손에 들어가는 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아무튼 안 가. 죽어도 병원은 안 가!”경호원은 이상한 사람을 보는 눈으로 희정을 쳐다봤다. 정말 상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결국 경호원은 희정을 강제로 차 안에 태웠다.병원으로 이동하던 길에 서진이 나타났다.차창 밖에 익숙한 사람이 보이자 희정은 흥분해 유리창을 두드렸다. “차 세워! 빨리 세워! 서진아! 천서진, 거기 서!”경호원은 라경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허락을 받은 뒤에야, 차문을 열어 희정을 내려 줬다.희정은 비틀거리며 백 미터쯤 앞에 있던 서진에게 달려가 옷소매를 붙잡았다.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서진아, 며칠 동안 어디 있었어?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정말 나 버린 거야?”서진의 상태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몸에서는 술 냄새가 났고 눈은 충혈돼 있었다. 살도 쑥 빠져저 볼까지 패일 정도였다.희정은 서진의 허리를 와락 안았다. “우리 있던 집에 경찰이 왔었어. 나 겨우 빠져나왔어. 그날 일은 설명할 수 있어. 진건훈이 네 안전을 가지고 나 협박했어. 나도 어쩔 수 없이...”희정은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지만 서진은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아무 감정 없이 낯선 사람을 보는 듯한 눈빛이 희정을 불안하게 했다. 예전의 서진은 언제나 사랑과 기쁨이 담긴 눈으로 희정을 봤는데 지금은 지나칠 만큼 차가웠다.“서진아, 한마디만 해 줘. 이러면 나 너무 무서워. 궁금한 거 있으면 다 설명할게.”하지만 서진은 희정에게 궁금한 것조차 없는 듯했다.예전에는 서진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며 무시했던 희정이 이제는 서진의 작은 반응 하나에도 불안해했다.“맞다, 아이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1화

    달빛이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버려진 제약 공장 안, 강해인의 몸은 거칠게 꼬인 밧줄에 묶여 있었다.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기댄 채, 여자의 가느다란 손목은 높이 들어 올려진 채 벽에 고정돼 있었다.그리고 뒤에서 다가온 남자가 해인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얇은 여자의 허리가 남자의 손아귀 안에서 움츠러들었고, 남자의 입가에는 음습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강해인 씨. 아무도 몸값을 들고 안 오면, 그땐 미안하지만 말이야.”해인의 뒤쪽에서 벨트를 푸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해인의 심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7화

    해인은 말문이 막혔다.오늘의 유호는 그날의 단정한 군복 차림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해인 앞에 있는 유호는 검은 셔츠의 단추를 풀어 헤친 상태였고, 언뜻 드러나는 가슴 근육의 선이 거친 생기를 더했다.해인이 앉은 자리에서는 그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음... 한유호... 몸은 정말 좋네...’유호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별생각 없는 듯 물었다.“손은 왜 다쳤어?”해인은 멈칫했다. 고개를 숙이고서야 언제 그랬는지 모를 새, 유리컵에 베인 손바닥에서 선혈이 번져 나온 것을 알아챘다.입술을 살짝 다문 해인은 손등을 위로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6화

    해인은 뒤로 밀리면서 중심을 잃었다.태겸은 뒤쪽에서 급히 끼어들었고, 그때의 반동으로 깨진 유리컵의 날이 해인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손끝에서 전해지는 통증이 너무나 선명해서 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예주 앞을 가로막고 선 태겸이 난처한 표정으로 해인을 바라봤다.“이게 뭐 하는 거야? 예주는 내가 부른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그 말을 듣자 해인은 쥐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눈가가 젖은 채 태겸을 향해 말했다.“내가 난리야? 고태겸, 하예주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한 번이라도 들어볼 생각은 있어?”

  •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제5화

    말을 꺼낸 사람은 윤준이었다.태겸의 오래된 친구였고, 오늘 이 자리를 만든 당사자이기도 했다.윤준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이 있든 오늘만큼은 잠깐 접어 둬. 오늘은 내 여자친구 생일이잖아. 내 체면 좀 세워줘.”곧바로 맞장구가 이어졌다.“맞아. 태겸이 마음속엔 늘 해인 씨밖에 없는 거 다들 알잖아. 둘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 해인 씨랑 조금만 삐걱해도, 나중에 태겸이 술 취하면 친구들 붙잡고 난리 나는 거 다들 봤잖아.”“야, 그런 소리 하지 마. 태겸이 언제 울어. 술병 안고 ‘여보, 사랑해’만 반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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