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8년의 짝사랑을 폐기 처분합니다: Chapter 71 - Chapter 80

100 Chapters

제71화

정루아와 이연희는 도착하자마자 허도준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허도준이 직접 그들을 마중 나왔다.그는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가자. 마침 친구들끼리 모여있는데 같이 좀 놀다가 들어가.” 정루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연희랑 오늘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좀 피곤해. 그냥 이혼 얘기는 없던 일로 하겠다고 말하러 온 거야.”허도준은 그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야?”그들이 서 있는 곳은 대강당의 휴식 구역이었는데 커다란 화분 하나가 허도준의 실루엣을 절묘하게 가리고 있었다.옆을 지나가는 사람의 눈에는 이연희를 곁에 둔 정루아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정루아는 진지한 표정으로 허도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분간은 안 하려고. 시간이 좀 지나면 지금보다 덜 복잡해질지도 모르니까.”허도준의 눈동자에 묘한 감정이 스치듯 지나갔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았어. 나중에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으로서 난 네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거든.”정루아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 “고마워.”허도준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정말 안 올라갈 거야? 너도 아는 동창들이랑 친구들인데.”“응. 괜찮아.”정루아가 몸을 돌려 막 떠나려던 찰나, 한 종업원이 그녀의 뒤에서 급히 달려왔다.미처 피하지 못한 그녀는 종업원과 부딪혀 뒤로 넘어질 뻔했다. 허도준이 재빨리 그녀를 받아 안은 덕분에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불상사는 면할 수 있었다.그리고 이 장면은 마침 입구로 들어서던 구태윤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다른 남자의 품에서 빠져나온 정루아는 그를 향해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얼굴까지 붉어진 채로.‘방금 마사지 숍에서 헤어졌는데 곧장 이리로 달려오다니.’‘대놓고 내 속을 뒤집어놓겠다는 건가?’옆에 있던 장유성이 눈치 없이 입을 열었다. “루아 씨 아니야?”구태윤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눈 안 멀었다.”“...”그들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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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허도준은 곧장 구태윤에게 술을 권하며 대화를 나눴다.구태윤의 옆에는 장유성이, 장유성의 옆에는 웬 절세 미녀 한 명이 앉아 있었다.그때 미녀가 갑자기 장유성 쪽으로 몸을 확 기울였고 깜짝 놀란 장유성이 옆으로 피하다가 구태윤을 들이받고 말았다.구태윤이 입에 대려던 술은 그대로 그의 가슴팍에 쏟아졌다.“미안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장유성은 혼비백산하여 사과하더니 미녀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아니. 뭐야?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했어?”미녀는 얼굴을 붉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도련님, 우리 연락처 좀 교환할 수 있을까요?”“...”구태윤의 셔츠 앞섶이 젖어 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거들었다. “화장실에 드라이기 있으니까 좀 말려요. 젖은 옷 입고 있으면 찝찝하잖아요.”구태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히 불쾌한 기분이 들어 그는 화장실로 향했다.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던 정시연이 젖은 그의 가슴팍을 보더니 다시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정시연은 티슈를 꺼내 닦아주며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구태윤은 그녀의 손을 제지했다. “형수님, 제가 직접 할게요.”공중에 멈춰 선 정시연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의 잘생기고 오만한 얼굴을 바라보다 손에 쥔 티슈를 꽉 움켜쥐었다. “미안해요.”구태윤은 의아한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무슨 소리예요?”정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지난번 일 말이에요. 내가 앞뒤 사정도 모르고 루아를 오해해서 몰아세우지 말아야 했는데... 다 내 잘못이에요. 제대로 사과하고 싶은데 루아가 날 만나주질 않아요. 어떻게 방법 좀 내주면 안 될까요?”구태윤은 냉담하게 대꾸했다. “그렇게 미안하면 차라리 루아 눈앞에 나타나질 마요.”하지만 정시연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도 우린 자매잖아요. 평생 이렇게 서먹하게 지낼 수는 없어요. 태윤 씨도 중간에서 곤란하고 우리 부모님은 더 힘들어하셔요. 우리 가족 다 같이 모여 밥 한 끼 먹은 지도 정말 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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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뭐 하는 거야? 놔!”정루아는 경악하며 발버둥 쳤다. 양손으로 구태윤의 가슴을 밀어내며 그가 다가오지 못하게 막으려 애썼다.구태윤의 몸에서는 술기운이 배어 나왔다. 그는 정루아를 짓누르며 온몸으로 몰아붙였고 빈틈 하나 없이 그녀와 밀착했다.뜨거운 숨결이 정루아의 귓가에 흩뿌려졌다.“청야 라운지에서 누구 만났어?”낮게 가라앉은 구태윤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자 정루아는 귀 끝에서부터 온몸으로 번져나가는 찌릿한 소름을 느꼈다.“무슨 소린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놔.” 구태윤의 숨결에 데인 듯 정루아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그녀는 이런 자신이 혐오스러웠다.분명 마음을 접기로 결심했건만 구태윤의 체취와 분위기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의 몸을 너무나도 잘 알았다.살짝 스치기만 해도 본능적인 반응이 일어났다.이 끌림은 치명적이었고 끊어내기 가장 힘든 것이었다.그렇기에 정루아는 필사적으로 구태윤과의 접촉을 거부해 왔다.하지만 구태윤은 놓아주기는커녕 더 밀착했고 얇은 입술은 이미 정루아의 귓등을 파고들고 있었다.“루아야, 누구 만났는지 말해. 왜 남자한테 웃어줬어? 무슨 대화가 그렇게 즐거웠던 거야?”정루아는 도무지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구태윤의 말투는 마치 그녀가 바람이라도 피운 것처럼 들렸다.하지만 바람을 피운 건 명백히 구태윤이 아니었던가!정루아는 고개를 돌렸다. “무슨 헛소린지 모르겠고. 취했어. 놔.”그녀의 하얗고 가느다란 목덜미가 그의 눈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구태윤의 목젖이 크게 일렁였다. 정루아의 냉담함은 구태윤을 숨 막히게 했고 그는 그녀가 예전처럼 열정적으로 반응해 주길 원했다.구태윤은 고개를 숙여 정루아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여린 살결 위를 집요하게 맴돌며 붉은 자국들을 하나둘 남기기 시작했다.정루아는 눈을 치켜뜨고 거세게 몸부림쳤다.그러나 구태윤은 정루아의 양 손목을 낚아채 등 뒤로 꺾어 제압했고 그녀의 몸이 그에게 바짝 밀착되도록 강요했다.구태윤은 몸을 낮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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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정루아는 거세게 억눌린 채 반항해 보았지만 그 저항도 점점 힘을 잃어갔다.구태윤에게서 풍겨오는 술기운이 그녀에게까지 전염된 듯 정루아 역시 몽롱한 취기에 젖어 들었다.정루아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낀 구태윤도 그녀를 누르던 힘을 조금 낮추었다.찰싹!순간 날카로운 뺨 때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구태윤의 얼굴에는 금세 선명한 손가락 자국이 새겨졌다.그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눈에 거센 폭풍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그는 정루아를 똑바로 응시했다.남자를 때린 정루아의 손도 떨리고 있었다.정루아는 억지로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 “말했잖아. 하기 싫다고.”구태윤은 손을 뻗어 자신의 뺨을 만져보더니 혀끝으로 입안을 툭 밀어냈다. 그의 눈동자에 갑자기 광기 어린 빛이 감돌았다.“더 때릴 거야?”정루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그때 구태윤은 돌연 힘을 주어 그녀의 옷을 찢어버렸다.“안 때릴 거면 난 계속할게.”정루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하지만 구태윤은 그녀가 반응할 틈조차 주지 않고 다시 입을 맞춰왔다. 이번에는 정루아가 다시 덤벼들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밤은 더없이 길게만 느껴졌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루아의 거친 숨소리가 겨우 잦아들었다. 정루아는 침대에 엎드려 있었고 구태윤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어깨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정루아는 눈을 감은 채 쉰 목소리로 내뱉었다. “씻을래.”“내가 물 받아 놓을게.”구태윤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정루아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독한 자괴감과 분노가 치밀었다.그때, 휴대폰 벨 소리가 짧게 울렸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익명의 메일 한 통.내용은 사진이었다.어스름한 조명 아래, 구태윤과 정시연이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모습이었다. 구태윤은 정시연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정시연의 손은 그의 가슴팍에 놓여 있었다. 조명이 두 사람을 감싸안은 화면은 더없이 아름답고 서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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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구태윤은 정시연과 애매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장옥경의 요구를 받아들여 놓고선 돌아서자마자 정루아에게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구태윤은 도대체 정루아를 무엇으로 생각하는 걸까?정루아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지난 8년 동안의 감정이 송두리째 의심스러웠다.그녀는 깊은 무력감을 느꼈다.문득 깨달았다. 자신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쿨하지 못하다는 것을.구태윤과 정시연에 관련된 일이라면 도저히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한 명은 8년 동안 사랑했던 사람.다른 한 명은 십수 년을 증오해 온 사람.하필이면 그 둘이 얽히고설켰다.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구태윤은 구겨질 대로 구겨진 옷차림으로 건물 아래 서서 이린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멀리서 구태윤을 발견한 이린은 눈이 휘둥그래졌다.‘세상에!’‘대표님이 맞으신 건가? 쫓겨나신 건가?’한밤중에 길가에 서 있는 구태윤의 모습이 마치 버려진 유기견 같아 보여 몹시 가련했다.차가 코앞에 도착하자 이린은 재빨리 모든 감정을 숨겼다.“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구태윤은 뒷좌석에 앉아 들고 있던 겉옷을 옆으로 툭 던졌다. 가슴이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죽으러 아무 데나 가자.”이린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대표님, 농담하지 마시고요. 정수원으로 모셔다드릴까요?”그곳은 그의 신혼집이었다.하지만 그곳엔 아내가 없었다. 돌아가서 무엇 하겠는가.구태윤은 눈을 감았다. 목소리는 더욱 싸늘해졌다. “아무 데나 가.”“...”참으로 난감한 노릇이었다. ‘사모님께 버림받아서 자포자기하신 건가?’이린은 결국 차를 몰아 정수원으로 향했다.“대표님, 도착했습니다.”구태윤은 눈을 떴다. 익숙한 별장 정원을 보자 두통이 밀려왔다.그는 미간을 꾹꾹 누르더니 문득 물었다. “너 여자 친구 있냐?”이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없습니다.”구태윤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됐다. 너한테 말해봐야 소용없지.”이린이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대표님, 유성 도련님께 말씀해 보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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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구 대표님, 어쩐 일이십니까?”프로젝트 책임자는 구태윤을 발견하자마자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달려 나갔다.구명 그룹이 이 회사에 투자했으니 구태윤은 그들에게 갑 중의 갑인 셈이었다. 예고도 없이 나타난 그의 등장에 직원들은 당황하며 조심스럽게 눈치를 살폈다.구태윤은 몸에 딱 맞는 검은색 정장 차림에 머리까지 완벽하게 세팅한 상태였다. 수려한 이목구비와 가늘고 긴 눈에는 담담한 기운이 서려 있었고 몸짓 하나하나에서 타고난 귀티가 흘러넘쳤다.구태윤의 시선이 정루아를 가볍게 스쳐 지나가더니 책임자에게 향했다. “근처를 지나다 들렀습니다. 오늘 면접 보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결과는 어떻습니까?”책임자가 대답했다. “방금 끝났습니다. 정루아 씨인데 실력이 정말 대단하더군요. 캐릭터 소화력이 워낙 좋아서 지금 막 계약서를 쓰려던 참이었습니다.”“루아야, 축하해.” 이때 정시연이 입을 열었다.정루아의 표정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오늘 일진이 사나우려니 했지만 설마 여기서 이들과 마주칠 줄이야.그런데 구태윤이 정시연을 데리고 왔다?대체 무슨 속셈일까.‘또 이 배역을 뺏으려는 걸까? 한 번 뺏어갔으면 됐지, 두 번이나?’정루아가 구태윤을 바라보는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날이 서 있었다.“그렇습니까?” 구태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난 들어보지 못했는데.”책임자는 당황했지만 이내 재빠르게 반응했다. “구 대표님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녹음실에 백업 파일이 남아 있습니다. 원하신다면...”“라이브로 듣고 싶군요.” 구태윤이 말을 잘랐다.“...” 책임자는 그가 이런 요구를 할 줄 몰랐기에 말문이 막혔다.정루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부러 시비라도 걸겠다는 거야?’그때 정시연이 나섰다. “태윤 씨, 나도 성우고 배역을 위해 노력해 왔잖아요. 캐릭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고요. 비록 하차하게 됐지만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요. 마침 루아도 있으니 우리 둘이 같이 연기해 보는 건 어때요? 그냥 구경 삼아 들어봐요.”정루아가 쏘아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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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지금 무슨 뜻이야?” 정루아는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그러자 구태윤이 대수롭지 않게 내뱉었다. “둘이 함께 하나 맞춰봐. 안 그러면 계약은 없는 걸로 하지.”“나쁜 자식!”정루아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이때 정시연은 한숨을 내쉬며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됐어. 루아 네가 싫다는데 그만하자. 나 때문에 네 일을 망칠 순 없잖아. 나중에 또 날 원망할 텐데.”그녀는 구태윤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태윤 씨, 우리 그냥 가요.”하지만 구태윤은 단호했다. “형수님이랑 상관없는 일이에요.”구태윤의 눈은 여전히 정루아를 향해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가 언제까지 고집을 피우나 보겠다는 태도였다.정루아는 정말이지 그의 뺨을 한 대 더 후려치고 싶었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판이었다! 나쁜 자식이라고 욕하는 것조차 나쁜 자식이라는 단어에 실례일 정도였다.주변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며 서로 눈치만 살폈다. ‘아니, 대체 무슨 상황이야? 아는 사이인가? 우리가 뭐라고 끼어들어야 하지?'성우 감독은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구 대표님, 정시연 씨의 음성 파일은 이미 확인했습니다만, 확실히 실력이 많이 뒤처집니다. 그냥 이대로 진행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구태윤은 덤덤하게 대꾸했다. “내가 싫다면요?”“...”‘돈줄을 쥐고 계신 분이 싫다는데 어쩌겠어!'감독은 정루아를 돌아보며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한 번만 맞춰보는 게 어때요? 어차피 시간도 얼마 안 걸릴 테고 끝나면 바로 계약서 씁시다. 다른 조건이 있다면 얼마든지 들어줄게요.”책임자 또한 거들었다. “맞아요. 그냥 짧은 한 장면일 뿐인데 시간 얼마 안 뺏길 겁니다.”모든 이의 시선이 정루아에게 쏠렸다. 만약 여기서 거절한다면 그녀는 앞뒤 꽉 막히고 무례하게 구는 사람이 될 판이었다. 그녀는 또다시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처지가 되었다.정루아는 구태윤을 뚫어지라 응시했다. 그녀의 마음은 조각조각 부서졌다가 다시 희미하게 아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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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책임자가 감독을 돌아보며 말했다.“됐어요. 그냥 악역일 뿐이잖아요. 구태윤 대표님이 적합하다고 하시니 그렇게 합시다. 어차피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는 주인공한테 있는 거 아니겠어요?”성우 감독은 이를 악물었다. 안색이 좋지 않았지만 그는 이 프로젝트의 성우 감독일 뿐이었다. 프로젝트가 계속될 수 있을지는 결국 투자자의 기분에 달려 있었다. 만약 구태윤의 심기를 건드려 프로젝트가 중단되기라도 한다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간다.그는 비서를 보며 말했다. “계약서 한 부 더 준비해.”비서가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정루아와 정시연이 나오자 책임자가 다가가 두 사람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정시연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유비 역할을 저한테 주신다고요? 하지만 전 제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그러자 구태윤이 말했다. “내 생각엔 잘 어울려요. 전에도 일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이번 기회에 경험을 쌓아 봐요.”정시연은 미소를 지었지만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는 정루아를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태윤 씨, 이러면 안 돼요. 루아는 자기 실력으로 기회를 따낸 건데 저한테 덥석 배역을 주시면 루아한테 불공평하잖아요.”구태윤의 눈길이 정루아를 향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해?”정루아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 주인공 배역만 뺏기지 않는다면 상관없었다.정시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태윤 씨, 관둬요. 루아가 원래 우리를 오해하고 있는데 태윤 씨가 이러면 오해를 풀 길이 없잖아요.”구태윤은 그녀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정루아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봤다.‘아무 의견이 없다고? 이제 상관없다는 건가?'구태윤은 이를 갈며 그대로 자리를 떴다.계약을 마친 정루아는 성우 감독과 연락처를 주고받았다.성우 감독의 이름은 정호였다. 그는 복잡한 눈빛으로 정루아를 보며 물었다. “구 대표님과 정시연이라는 사람 무슨 사이입니까?”정루아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답했다. “끼리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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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정루아가 원작 영상을 보며 캐릭터의 감정 변화를 분석하고 있을 때, 책상 위에 과일 음료 한 잔이 툭 놓였다. 고개를 들자 눈에 들어온 건 정루아가 그토록 혐오하는 정시연의 얼굴이었다.정루아는 싸늘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정시연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산 건데 너 마시라고. 이제 우리 동료잖아. 화목하게 지내야지.”말을 마친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태윤 씨도 참 그렇지? 갑자기 나한테 일을 맡기다니... 이럴 줄은 정말 몰랐어. 루아야, 너 절대 오해하면 안 돼.”정루아는 차가운 시선으로 정시연을 응시했다. “오해받기 싫으면 네가 거절하면 되잖아. 이득은 다 챙겨놓고 착한 척이라니. 가증스럽지 않니?”그러자 정시연은 억울하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난 거절했어. 그런데 태윤 씨가 워낙 완강하게 밀어붙이는데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야?”“허!”정루아는 콧방귀를 꼈다. 지금 구태윤이 자기한테 얼마나 잘해주는지 자랑이라도 하겠다는 건가?정시연은 정루아를 보며 말을 이었다. “루아야, 절대 화내지 마. 태윤 씨가 나한테 잘해주는 건 순전히 하준이 때문이야. 갓 태어난 하준이를 바라보던 태윤 씨의 다정한 눈빛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해. 마치 자기 아이를 보는 것 같았거든.”그 순간, 정루아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머릿속에는 구태윤이 출산을 지켜보던 그 사진들이 떠올랐다. 분노가 폭발 직전의 화산처럼 치솟았고 감정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다.정루아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내뱉었다. “네가 그렇게 능력이 좋으면 태윤 씨를 꼬드겨서 나랑 이혼하게 만들지 그래? 그럼 둘이 아주 순조롭게 합칠 수 있을 텐데.”“오해라니까.” 정시연은 한숨을 쉬었다. “나랑 태윤 씨는 결백해. 태윤 씨는 널 사랑하고 있어.”“꺼져.”정루아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시연은 물러날 기색 없이 계속해서 지껄여댔다. “루아야, 태윤 씨가 나를 네 옆에 둔 이유를 나도 알아. 일상에서 부대끼면서 우리 사이가 회복되길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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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정루아는 고개를 돌려 사무실 안에 정시연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숨을 내뱉었다. 정시연은 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고 목소리만 들어도 뺨을 후려치고 싶게 만드는 존재였다.하지만 지금은 성질을 죽여야 했다. 조금 전 정시연이 대놓고 도발한 건 정루아가 폭력을 휘두르게 만들어 또다시 가련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기 위함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써먹던 수법이다.정루아는 다짐했다. 절대로 정시연의 수작에 놀아나 평정심을 잃지 않겠다고. 이 일자리는 반드시 지켜내야 했다.하지만...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정루아가 아니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장옥경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구태윤이 정시연을 우리 성우 회사에 꽂아 넣었어요. 둘 사이가 점점 더 각별해지네요.][내가 처리하마.]정루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장옥경은 정시연을 혐오하기에 그녀가 구태윤의 곁에 머무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구태윤이 직접 꽂아준 자리라면 장옥경이 직접 그 자리를 파괴할 터였다. 정시연이 쫓겨나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누군가 대신 정시연을 치워줄 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녀는 다시 헤드셋을 쓰고 원작 영상을 살피기 시작했다.한편, 장옥경은 안색을 굳힌 채 곧장 성우 회사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 지강은 공손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사모님, 무슨 지시라도 있으신지요?”장옥경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시연이라는 사람이 채용됐나요?”지강은 사장이라 그런 사소한 일까지는 알지 못했다. “잘 모르겠습니다만, 바로 확인해 보겠습니다.”장옥경이 명령했다. “적당한 핑계를 대서 해고하세요.”지강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내 말대로만 해요. 회사 지분의 상당 부분을 구명 그룹이 가지고 있는데 요구가 과한 건 아니죠?”지강은 얼른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과하다니요. 바로 처리하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지강은 즉시 사람을 시켜 조사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정시연은 구태윤이 직접 지시해서 들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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